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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시청만 하지말고 비평도 시청자의 몫이다 | 문화 2009-01-13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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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텔레비전 보기 - 시청에서 비평으로

정준영 저
책세상 | 200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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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달 동안 우리 사회는 '언론관련7대 법안'으로 상당한 파열음을 경험했다. '언론관련 7대 법안'을 '언론 7대 악법'으로 규정하고 언론노조는 파업, 민주당은 국회본회의장을 점거했을까?

 

이명박 정권이 재벌방송과 특정 신문 방송을 출연시키면서 언론자유 침해와 여론 독과점과 이념 독점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터넷' 등장 이후 여론 공간의 영향력이 크게 확장되었지만 '텔레비전'은 아직까지 대중매체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텔레비전이 대중매체로서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정치권력이 방송장악 시도를 막아야 한다. 이와 함께 우리는 텔레비전을 비평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뉴스와 드라마, 시사교양 모든 프로그램에서 비평하는 능력을 가질 때만 권력집단이 여론을 왜곡하는 일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준영이 쓴 <텔레비전 보기-시청에서 비평으로>는 이런 점에서 텔레비전을 단순히 시청하는 것이 아니라 '비평'하는 능력을 갖추는 일에 많은 도움이 된다. '시청에서 비평으로'라는 부제에서 보여주듯이 정준영은 텔레비전을 '필요 없으니 집에 치워라' 같은 텔레비전 무용론 같은 주장이 아니라 텔레비전을 '작품'으로 본다.

 

텔레비전이 작품인 이유는 장르와 관계없이 브라운관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프로그램드은 모두 제작진의 일정한 의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의 형식적인 질, 즉 표현의 방법에 대한 제작진들의 관심은 다른 예술가들의 활동과 다르지 않다. 텔레비전이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이처럼 텔레비전이 작품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12쪽)

 

정준영은 '비평'을 좁게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우리는 텔레비전을 시청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 따위를 보면서 주인공과 내용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촌평하는 것도 넓은 의미의 비평이라 한다.

 

인터넷이 새로운 여론 매체로 자리잡으면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가족과 동무들 사이에 나누었던 주인공과 내용에 대한 촌평과 이야기를 벗어나 지금은 적극적으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전문가와 비슷한 식견으로 비평하는 능력을 갖춘 이들도 많아진 것은 매우 좋은 모습이다.

 

텔레비전은 '작품'... 적극적인 비평이 이어져야

 

정준영은 우리가 텔레비전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텔레비전은 하찮다 텔레비전은 현실을 반영하거나 반영해야 한다' 따위라고 말한다. 하찮은 텔레비전이므로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은 분명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텔레비전 영향력을 설명하기 위해 프랑스 사회철학자 부르디외(Pierre Bourdieu) 말을 인용한다.

 

"아직도 텔레비전을 의식하지 않고 시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실패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점점 더 텔레비전을 위한 시위, 즉 텔레비전 방송국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성격의 시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들의 지각 범주에 맞을 때, 그들에 의하여 시위는 중계되고 증폭되어 최대의 효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31쪽)

 

텔레비전이 이렇다면 청소년과 어린아이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전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텔레비전은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연히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효과를 논할 때 단지 프로그램 속에 담겨 있는 내용 뿐만 아니라 그 프로그램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환경도 고려해야 한다고 정준영은 말한다.

 

정준영은 대중매체가 거대 기업이므로 텔레비전이 미칠 정치적 우려를 제시한다. <텔레비전 보기>가 2002년에 나왔는데 2009년 대한민국 현실을 정확하게 예언한 느낌이 든다.

 

"일반적으로 거대 기업은 세금이나, 이자율, 노동 정책, 독점 규제 정책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국가 정책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또는 국가는 이들 기업의 가장 중요한 구매자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 기업이 언론 기업을 통제하고 있을 경우 모 기업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가와 특수한 관계를 맺게 될 가능성이 당연히 높아진다."(61쪽)

 

텔레비전은 하나의 문화로서 우리 사회를 곳곳을 파고들면서 우리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각 프로그램과 방송사가 지향하는 방향에 대하여 우리 자신들이 비평하는 일은 당연하다. 이 비평까지 막으려는 시도가 지금 자행되고 있으니 과연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는지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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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보존과 복원은 생명 창조 | 문화 2009-01-09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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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문화재의 보존과 복원

김주삼 저
책세상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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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2월 10일 밤 8시 40분쯤 국보 1호 숭례문에 불길이 쏫았다. 불길이 쏫은지 5시간만인 다음 날 오전  1시 55분쯤 숭례문은 600년 역사를 뒤로했다. 600년 역사가 잿더미로 변한 참혹한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울었다.

 

1971년 송산리 5호분·6호분의 배수구를 마련하는 작업중에 우연히 고분이 발견되었다. 고분 주인공은 백제 25대 무령왕(501-523 재위)이었다. 1500년 역사를 그 때 사람들은 하룻밤 정리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다.

 

숭례문과 무령왕릉을 우리는 '문화재'라 부른다. 문화재가 무엇인지 살펴보기 전에 '문화'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영국의 인류학자 타일러Sir E. B. Tylor는 <원시문화Primitive Culture>에서 지식, 신앙, 예술, 도덕, 법률, 관습 등 인간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를 '문화'라 했다.

 

문화활동 결과물이자 증거물이 '문화재'다. 경제적인 가치보다는 정신적 인류학적인 의미가 부여된 개념이다. 즉 문화재란, 현재는 물론 미래에까지 한 시대의 정신을 보여줄 수 있는 매우 폭넓은 대상물이자, 인류가 과거에 만들어 현재에 전한 문화적 대상물이다.

 

숭례문 화재 전에 쓴 글이지만 이런 점에서 김주삼의 책세상 문고 · 우리시대 052 <문화재의 보존과 복원>은 의미있는 읽을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김주삼은 "문화재의 현재 가치에 따라 보존 방법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면서 "무리한 복원 작업을 자제하고, 처리 대상물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과학방법론, 담당자들의 기술력, 전문가 협조, 보존과 복원 기록"을 강조한다.

 

김주삼 지적에 따라 1971년 당시 1500년을 하룻밤 청소하듯 정리했던 일은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숭례문 화재 후 2년이면 충분하다는 어처구니 없는 발상을 아직까지 하는 이들이 있었다. 문화재가 경제적 가치가 아니라 인류학과 문화적 대상물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결과이다.

 

<문화재의 보존과 복원> 1장은 문화재의 중요성과 문화재 보존에 대한 개념, 2장은 문화재 보존의 이유가 될 수 있는 여러 손상 원인인 사람들 때문이 일어나는 손상과 자연 현상으로 일어난 손상을 실핀다. 특히 3장은 예방 보존 및 복원 방법을 다룬다. 그는 복원보다는 문화재의 현 상태 존중과 수명 연장이 더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예방보존이라는 것이 대상물에 손을 대지 않는 보존방법이라는 면에서 보존윤리상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며 여러 연구를 종합해본 결과, 파손이 진행되고 있는 문화재를 일일이 복원해주는 것에 비해 인력 면이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큰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84쪽)

 

무엇보다 한 번 훼손된 문화재를 아무리 복원해도 '원형'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든, 자연현상이든 문화재는 시간이 지나면서 훼손될 수밖에 없다. 복원이 따라 올 수밖에 없다.

 

그럼 복원은 어떻게 해야 할까? 복원 작업에는 '가역성'(reversidility)이 강조된다. 가역성이란 "현재 잘못된 복원이나 향후 복원이 필요한 때를 대비하여 언제라도 최초의 상태로 되돌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복원은 원형 왜곡 금지를 위하여 "복원한 흔적을 보이게 하고, 문화재에 담긴 노화 현상과 역사적인 내용을 존중해야 한다"고 김주삼은 강조한다. 복원 기록을 남기는 것을 물론이다.

 

문화재 보존이든, 복원이든 부러진 의자 다리를 수리하는 것과 아파트를 개보수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삽질 경제가 다시 부활하여 문화재 훼손이 우려되는 요즘 김주삼이 남긴 맺음말에서 남긴 글은 문화재 보존과 복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준다.

 

"문화재 보존은 창조를 생명으로 하는 예술가들처럼 개개인의 판단에 다라 그 방향이 좌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예술품을 다루는 보존 전문가는 생명 존중이라는 윤리의식을 가지고 환자를 대하는 의사에 견줄수 있어야 한다."(143쪽)

 

김주삼 지적은 '보존 전문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고, 특히 이 나라 정권 담당자들이 새겨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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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야 문명의 교류 | 문화 2008-07-3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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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스탄불

이희수 저
살림출판사 | 2004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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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의 탄생, 눈먼 자의 땅에 도시를 세우라>

 

이스탄불은 파리와 런던, 도쿄, 뉴욕보다는 분명 우리에게 생소하다. 서구 문명 사고가 도시에 대한 인식까지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스탄불은 그리스 로마, 비잔틴, 이슬람 문화 등 동서양 문명이 만나는 격동의 도시다.

 

중동에 정치 상황이 발생하거나 이슬람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이슬람 학자인 이희수 한양대문화인류학 교수가 쓴 <이스탄불-동서양 문명 교류>는 문고판이지만 우리를 이스탄불 속으로 이끈다.

 

지은이는 한 눈에 반하여 상사병을 앓는 것처럼 이스탄불에 다녀오면 열병을 앓는다고 말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라고 말한다. 다시 가지 않을 수 없는, 색다른 분위기와 사람을 녹여버리는 끌림, 감동과 아름다움이 배여있고, 흘러 넘치는 도시다.

 

이스탄불은 사람 냄새, 시장터 만난 인민들 삶에는 삶에 대한 저항이라는 응어로보다는 달관과 부드러움을 가진 도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 사람을 일등 국민으로 대접하는 나라이며, 도시다.

 

함께 나누며, 사랑하는 공동체 의식, 열정과 감성, 의리를 귀히 여기는 국민성을 가져 신자유주의로 빼앗겨버린 소중한 것들을 다시 기억나게 하는 도시다. 성(聖)과 속(俗)이 하나되고 자연과 사람이 넉넉한 공간이 함께 하는 이스탄불이라 지은이는 말한다.

 

믿을 수 없는 찬사이지만 이스탄불 탄생 굴곡의 역사였다. 이스탄불은 기원전 7세기 그리스 통치자 비자스는 오랜 기도 끝에 “눈 먼 땅에 새 도시를 건설하라”는 델피 신전의 신탁을 받아 탄생한 도시다.

 

“비자스는 보스포러스 해안 맞은편 언덕과 마주친 순간 무릎을 쳤다. 그곳에는 세 바다가 만나는 천혜의 요새에다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절경이 숨어 있었다. 이 언덕은 바로 지상의 천국이었다. 그 누구도 눈이 멀어 미처 보지 못했던 언덕에 비자스는 그의 도시를 건설했다. 비자스의 도시 비잔티움은 이렇게 생겨났다.”(7쪽)

 

질곡과 굴곡은 이렇게 시작된다. 풍부한 자원, 빼어난 자연, 세 바다가 만나는 천혜의 요소 비잔티움은 새로운 지배세력이 등장할 때마다 가장 먼저 관심을 갖는 지역이었다. 어떤 권력과 제국도 비잔티움을 놓칠 수 없었다.

 

기원전 512년 페르시아 제국 다리우스 왕, 그리스 스파르타에게 복속, 기원전 150년에는 로마와 협약을 통하여 조공을 바치는 대가로 독립을 기원후 2세기 말까지 유지한다. 하지만 323년에는 로마 황제 콘스탄틴 대제가 이 도시를 수도로 정한 후 그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플이 되었다.

 

콘스탄티노플의 비극은 1203~1204년에 걸친 제4차 십자군 원정군의 침입으로 절정에 달했다. 1203년 7월 17일 도심에 진입한 십자군 원정대는 부와 풍요를 자랑하던 콘스탄티노플의 재산과 문화적 기반을 유린하였다.

 

문득 떠오른 생각은 사랑과 평화를 추종하는 기독교가 어찌 이토록 파괴와 유린을 좋아하는지, 아직도 이 못된 버릇은 고쳐지지 않고 있다. 십자군 원정 때 처럼 ‘십자가’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사실 콘스탄티노플 비극은 이슬람 문화가 아니라 900년 이상을 지켜온 기독교 문화였다. 기독교 역사와 지적 기반을 기독교 스스로 철저히 파괴, 송두리째 뽑아버렸다. 기독교 스스로 기독교 문화와 정신을 파괴하고 유린한 비극이다.

 

서구학자들 말대로 요즘 그토록 저주하는 이슬람 문명을 결국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에 의해 점령당했고, 이후 이슬람의 도시인 이스탄불로 그 운명이 바뀌었다. 거짓된 욕망으로 저지른 십자가 군 전쟁이 사악한 전쟁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스포러스>

 

이스탄불은 보스포러스 해협을 가졌다. 흑해에서 지중해로 흐르는 물은 원한과 아쉬움, 사람이 가진 모든 찌꺼기와 상처를 쉼 없이 흘러 보낸다. 보스포러스에는 낭만과 절경, 환희와 한탄이 배여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 비잔틴과 오스만 제국이 경쟁하면서 인류 역사의 흐름을 뒤바꾼 숱한 경쟁과 격돌, 전쟁이 묻혀 있다. 오스만 제국 멸망을 재촉했던 돌마바흐체 궁전을 보면서 아무리 강력한 제국일지라도 인민과 민중의 피를 통하여 기득권들의 배를 채우는 순간 500년을 이어온 제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스탄불 상징으로 자리 잡은 성소피아 성당. 하지만 성소피아 성당은 이슬람 건축물이 아니다. 비잔틴 제국의 전성기인 537년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에 의해 완성된 그리스 정교의 총본산이었다.

 

하지만 이슬람은 이를 파괴하지 않았다. 성 소피아를 처음 정복한 메흐메트 2세는 이곳을 모스크로 바꾸면서도 기독교 성화를 건드리지 않고 하얀 천으로 덮어놓고 의례를 행했다고 한다.

 

“11세기까지 로마의 가톨릭과 우상숭배 논쟁으로 격돌하면서 무자비한 성상 파괴 운동을 벌였던 비잔틴 제국 자신의 종교적 요람이 이슬람으로부터 보호 받는 것이야 말로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닌가?”(28쪽)

 

성 소피아는 이렇게 종교가 공존할 수 있고, 존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슬람을 기독교 정복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기독인들이 성 소피아에서 과연 무엇을 배워야 할까? 저주는 저주를 낳고, 파괴는 파괴를 낳을 뿐이다.

 

이스탄불은 5천 년 역사와 문화가 땅 속 깊이 배여 있다. 인류문명의 살아 있는 현장 박물관, 동양과 서양의 각기 다른 모습들이 조화를 이룬다. 다른 종교가 서로 공존할 수 있으며, 문명과 문명, 문화와 문화가 서로 만나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스탄불은 이런 뜻에서 진정 가보말한 곳이며, 지은이 말대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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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안내서 아닌 문화 기행 | 문화 2007-12-22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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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80일간의 세계 문화 기행

이희수,이강온 공저
청아출판사 | 2007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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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단순히 놀이가 아니다. 다른 문화를 영위해가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 아무리 세계화 시대이지만 음식, 습관, 역사, 정치, 경제, 사회 모든 것이 다르다. 나와 같은 거의 없다. 그러기에 국외 여행을 갈 때 그 나라와 사람들이 살아온 역사와 문화, 삶의 방식을 먼저 알고 가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다. 여행 가지 전에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다.


 


<80일간의 세계 문화 기행>은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이희수 교수와 딸이 80일간 떠나는 51개국 문화 기행이다. 그 나라 사람들의 역사, 도시, 문화, 지역을 세밀하고 재미있게 엮었다. 딸과 함께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은 조금 부족한 듯하지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그림이 일치하기 때문에 별 문제 될 것은 없다.


 


이 책이 좋은 점은 이희수 교수 이력이다. 첫 터키 이스탐불 대학 유학, 첫 박사 학위, 첫 현지 대학 교수가 그것이다. 이희수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이슬람 세계를 논할 때 빠지면 안 될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이슬람 전공자다. 여기에 주목했다.


 


우리는 유럽이나 세계를 인식할 때 서구가 설정해 놓은 여행 자료와 서구 문명과 문화 형성시킨 사상에 알게 모르게 노출되어 있다. 이 인식은 국외여행에서도 다를 바 없다. <80일간 세계 문화 기행>은 일단 이런 인식틀을 깬다.


 


이슬람권은 이슬람 문화와 역사를 통하여 각 나라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리고 각 나라를 소개하면서 그 나라의 좋은점만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정치가 다른 나라에는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설명하면서 인간을 말하려고 했다. 이는 매우 좋은 시도다.


 


"이스라엘에서는 여자는 2년, 남자는 3년 동안 군인으로서 활동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적다는 이유로, 핵무기를 개발하고 첨단 무기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공격하는 이스라엘의 행동은 분명히 잘못되었지요."(본문 111쪽)


 


여자까지 군대 가는 이스라엘을 말하면서 사람들은 '애국심'을 말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에게는 '애국심'이 될 수 있지만 팔레스타인에게는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도구가 됨을 인식하지 못했다. 작은 비평이지만 우리는 이스라엘을 새롭게 볼 수 있다.


 


특히 'TIP'작은 편집은 각 나라의 습관과 관습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81쪽 'TIP'을 살펴보자. 이슬람에서는 먹지 않는 음식이 무엇일까? 우리는 돼지고기로 알고 있다. 그런데 돼지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는 잘모른다. 하지만 코란은 조금 다르다. "죽은 고기와 돼지 고기를 먹지 말라.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먹을 경우는 죄가 아니다." 이 내용은 율법의 획일적 적용보다는 인간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런 내용은 이슬람이 파괴적인 종교로 알고 있는 독자들 시각을 고쳐주는 작은 배려이다.


 


<80일간 세계 문화 기행>은 여행 안내서가 아니다. 어디에 가면 유명한 관광지가 있고, 유적지가 있는지 말하지 않는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문화 기행이다. 국외 여행을 다녀왔지만 무엇을 가져왔는지 묻는다면 관광상품 몇 개 뿐이라면 억울하지 않는가? 그들의 역사와 문화, 생각과 사상을 아는 것이 여행의 참 목적이다. 이희수 교수와 이강온씨가 떠난 문화 기행을 우리도 떠날 수 있다.


 


TIP을 하나 소개한다. 마야와 아스텍인들의 인신공양 풍습이다. 마야 사람들은 운동경기를 통하여 이긴 사람이 자신의 심장을 신께 바쳤다. "오! 태양신이시여, 이 팔팔한 심장과 피를 드시고 기운을 얻이 내일 다시 우리에게 떠오르소서!"


 


승자가 자신의 심장을 떼어 내어 신에게 바치는 것도 우리 시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인신공양 역시 우리 문화로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이희수 교수 생각을 들여다 보자.


 


"식량이 점차 부족해지니, 늘어나는 인구를 조절하기 위해 이러한 풍습을 만들었을 가능성은 없었을까요? 강력한 정치적 위협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일 수도 있고요. 혹은 최고보다는 겸손과 미덕을 가르치는 마야인들의 지혜가 정복자나 승리자의 심장을 요구했던 것은 아닐까요?"(413쪽)


 


인신공양을 말하면서 지금 시각으로 미개한 풍습이라 단죄하지 않고 풍습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희수 교수 자신이 답하지 않고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과연 인구 조절일까? 강력한 위협세력 제거일까? 승자의 겸손일까?


 


이렇게 생각해보았다. 승자는 분명 제사장은 아니었고, 지배계급은 아니다. 승자는 전사다. 지배계급은 승자의 심장을 요구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위협세력을 제거할 수 있고, 더욱 강력한 지배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답은 독자 각자가 내려야 한다. 물론 전문가가 내려 놓은 답이 있겠지만 전문가 정의가 항상 맞지 않음을 알면 자신이 내린 답이 맞을 수도 있다.


 


<80일간 세계 문화 기행>은 여행 소개서와 안내서를 넘어 51개국을 새롭게 만날 수 있는 참 좋은 책이다.


 


여행이란 단순히 놀이가 아니다. 다른 문화를 영위해가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 아무리 세계화 시대이지만 음식, 습관, 역사, 정치, 경제, 사회 모든 것이 다르다. 나와 같은 거의 없다. 그러기에 국외 여행을 갈 때 그 나라와 사람들이 살아온 역사와 문화, 삶의 방식을 먼저 알고 가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다. 여행 가지 전에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다.


 


<80일간의 세계 문화 기행>은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이희수 교수와 딸이 80일간 떠나는 51개국 문화 기행이다. 그 나라 사람들의 역사, 도시, 문화, 지역을 세밀하고 재미있게 엮었다. 딸과 함께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은 조금 부족한 듯하지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그림이 일치하기 때문에 별 문제 될 것은 없다.


 


이 책이 좋은 점은 이희수 교수 이력이다. 첫 터키 이스탐불 대학 유학, 첫 박사 학위, 첫 현지 대학 교수가 그것이다. 이희수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이슬람 세계를 논할 때 빠지면 안 될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이슬람 전공자다. 여기에 주목했다.


 


우리는 유럽이나 세계를 인식할 때 서구가 설정해 놓은 여행 자료와 서구 문명과 문화 형성시킨 사상에 알게 모르게 노출되어 있다. 이 인식은 국외여행에서도 다를 바 없다. <80일간 세계 문화 기행>은 일단 이런 인식틀을 깬다.


 


이슬람권은 이슬람 문화와 역사를 통하여 각 나라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리고 각 나라를 소개하면서 그 나라의 좋은점만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정치가 다른 나라에는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설명하면서 인간을 말하려고 했다. 이는 매우 좋은 시도다.


 


"이스라엘에서는 여자는 2년, 남자는 3년 동안 군인으로서 활동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적다는 이유로, 핵무기를 개발하고 첨단 무기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공격하는 이스라엘의 행동은 분명히 잘못되었지요."(본문 111쪽)


 


여자까지 군대 가는 이스라엘을 말하면서 사람들은 '애국심'을 말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에게는 '애국심'이 될 수 있지만 팔레스타인에게는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도구가 됨을 인식하지 못했다. 작은 비평이지만 우리는 이스라엘을 새롭게 볼 수 있다.


 


특히 'TIP'작은 편집은 각 나라의 습관과 관습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81쪽 'TIP'을 살펴보자. 이슬람에서는 먹지 않는 음식이 무엇일까? 우리는 돼지고기로 알고 있다. 그런데 돼지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는 잘모른다. 하지만 코란은 조금 다르다. "죽은 고기와 돼지 고기를 먹지 말라.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먹을 경우는 죄가 아니다." 이 내용은 율법의 획일적 적용보다는 인간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런 내용은 이슬람이 파괴적인 종교로 알고 있는 독자들 시각을 고쳐주는 작은 배려이다.


 


<80일간 세계 문화 기행>은 여행 안내서가 아니다. 어디에 가면 유명한 관광지가 있고, 유적지가 있는지 말하지 않는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문화 기행이다. 국외 여행을 다녀왔지만 무엇을 가져왔는지 묻는다면 관광상품 몇 개 뿐이라면 억울하지 않는가? 그들의 역사와 문화, 생각과 사상을 아는 것이 여행의 참 목적이다. 이희수 교수와 이강온씨가 떠난 문화 기행을 우리도 떠날 수 있다.


 


TIP을 하나 소개한다. 마야와 아스텍인들의 인신공양 풍습이다. 마야 사람들은 운동경기를 통하여 이긴 사람이 자신의 심장을 신께 바쳤다. "오! 태양신이시여, 이 팔팔한 심장과 피를 드시고 기운을 얻이 내일 다시 우리에게 떠오르소서!"


 


승자가 자신의 심장을 떼어 내어 신에게 바치는 것도 우리 시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인신공양 역시 우리 문화로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이희수 교수 생각을 들여다 보자.


 


"식량이 점차 부족해지니, 늘어나는 인구를 조절하기 위해 이러한 풍습을 만들었을 가능성은 없었을까요? 강력한 정치적 위협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일 수도 있고요. 혹은 최고보다는 겸손과 미덕을 가르치는 마야인들의 지혜가 정복자나 승리자의 심장을 요구했던 것은 아닐까요?"(413쪽)


 


인신공양을 말하면서 지금 시각으로 미개한 풍습이라 단죄하지 않고 풍습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희수 교수 자신이 답하지 않고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과연 인구 조절일까? 강력한 위협세력 제거일까? 승자의 겸손일까?


 


이렇게 생각해보았다. 승자는 분명 제사장은 아니었고, 지배계급은 아니다. 승자는 전사다. 지배계급은 승자의 심장을 요구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위협세력을 제거할 수 있고, 더욱 강력한 지배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답은 독자 각자가 내려야 한다. 물론 전문가가 내려 놓은 답이 있겠지만 전문가 정의가 항상 맞지 않음을 알면 자신이 내린 답이 맞을 수도 있다.


 


<80일간 세계 문화 기행>은 여행 소개서와 안내서를 넘어 51개국을 새롭게 만날 수 있는 참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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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 | 문화 2007-12-01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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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

심재관
책세상 | 200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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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침략으로 식민지배를 경험한 사람들이 85%에 이른다. 2차세계대전이 종결되어 많은 나라가 제국주의 식민 통치에서는 독립하였지만 아직도 제국주의의 직접 통치는 받지 않더라고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모든 영역에서 간접통치를 받고 있다.


 


근대문물은 대부분 제국주의에 의하여 유입과 강요를 통하여 정착되었다. 우리나라에 전래된 지 1500년이 넘은 불교도 마찬가지다. 불교가 들어온 지는 오래 되었지만 '불교학'은 우리가 만든 독특한 것은 아니다. 심재관이 쓴<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은 이런 면에서 식민시대 이후 우리나라 불교학에 대한 작은 소고가 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전후 일본을 통해 들어온 근대 불교학의 학문적 방법이 나라 안에서 제대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불교학이란 불교라는 종교에 대한 연구다. 불교 승려들은 불교 연구를 위하여 천국까지 가서 경전을 가져왔고 연구했다.


 


심재권은 불교가 인도에서 태동한 종교이지만 불교학은 서양에서 연구되어왔다고 주장한다. 서양에서 연구된 불교학을 수입하지만 토착화시키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한국 불교는 결국 주체도, 타자도, 전통도 근대도 아닌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다고 주장한다.


 


제1장에서는 서구 불교학을 설명하기 전에, 약간의 혼동을 방지할 목적으로 전통적 불교학과 근대 불교학이 전혀 다른 성격의 학문임을 밝혔다. 한국에서 불교학 연구는 40년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라고 말한다.


 


제2장과 3장에서는 문헌의 수집과 편집에서 선점권을 누릴 수밖에 없었던 유럽의 불교학이 어떻게 오늘날까지도 지속적인 영도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살폈다. 서구 사회의 문헌연구는 구체적이며, 체계적이었다. 제국주의가 나은 수탈이지만 그들은 문헌을 통하여 연구하고 탐구하여 후대 사람들에게 훌륭한 자료를 유산으로 물려 준 것이다. 안타깝고, 부당한 일일 수 있지만 학문적 역량 축적은 순수한 학자들의 노력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적인 배경이 중요함을 말한다.


 


"사실 발견과 편집, 번역은 쉽사리 도외시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문서의 소유와 보관은 번역과 편집에 의한 학문적 자부심보다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고문서를 소유하지 못한 제3세계의 학자들은 결과적으로 제1세계 국가들이 고문서 보관소에서 편집해낸 원전들을 참고함으로써 그들의 편집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서지학적 사항들이나 판본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제3세계 학자들이 끼여들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이다."(45쪽)


 


제4장에서는 근대 불교학의 탄생과 연구 원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유럽의 불교학이 식민지 근대화를 통해 일본과 한국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그려보았다. 상당히 빠르고 정확하게 불교학의 문헌학적 방법을 모방한 일본과는 달리, 피상적인 근대화에 머물렀던 한국 불교학의 근대화 문제를 짚어보았다.


 


"식민화된 불교는 가장 열정적인 민족적 개혁주의자의 목소리에도 숨어 있다. 그들의 민족주의적 불교 이해는 식민 종주국에 대항하면서 그 대항의 근거로 제시된다. 근대화를 빌미로 종속이 강요될 때, 이에 대항하기 위한 근거로 그들이 끌어온 기준이 제시되는데 이 역시 그들이 말하는 근대화를 보여주려는 노력의 일환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식민주의 논리가 피식민지의 저항체에게 남겨놓은 함정이다. 그 함정에 빠지는 순간, 전통의 고유성은 피식민주의 개혁가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근대화의 괴변에 가려지기 때문이다."(81쪽).


 


제5장에서는 근대 불교학의 특성과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식민지적 성격과 문제를 현재 한국을 중심으로 노출시켰다. 이것은 식민주의는 식민통치 기간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불교신자가 아니라 불교에 대한 지식도 미천하고, 더구나 불교학에 대한 지식은 더 미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불교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서구에서 비롯되었다는 지적은 조금 충격이었다. 기독교를 동양에서 먼저 연구하여 서양이 동양이 연구한 기독교를 통하여 자신들 신앙을 조명한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서양제국주의가 불교문헌을 찬탈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먼저 연구했을 수도 있다. <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은 제국주의에 찬탈된 문헌과 불교학 연구가 서양에서 시작되어 동양이 받아들이는 구조는 매우 아픈 제국의주 역사를 새삼 깨닫게 한다.  이제 주체적인 연구를 통하여 불교는 자신들을 바로 알고, 연구하는데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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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동안 사라진 100가지 이야기 | 문화 2007-11-18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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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100년 동안 사라진 100가지 이야기

서인영 글/낙송재 그림
계림(계림북스) | 2005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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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막내와 함께 시립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왔다. 빌려 오는 길에 떨어진 낙엽을 쓸어 담는 것을 보면서 그냥 두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아내가 말하기를 옛날에는 땔감 준비를 위해 산에 가서 '갈비'를 주웠다고 했다. '갈비'란 소갈비, 돼지 갈비가 아니라, 말라서 땅에 떨어져 쌓인 솔잎인 '솔가리'를 경상도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갈비는 매우 중요한 땔감이다. 하지만 농촌도 더 이상 갈비가 필요없다. 갈비를 땔감으로 준비하는 겨울 풍습은 사라졌다. 갈비를 주워서 지고 왔떤 '지게'도 사라졌다.


 


가만히 생각하면 사라진 옛 것들이 많다. 서인영씨 <100년 동안 사라진 100가지 이야기>들은 사라진 옛것들을 다시 기억나게 하는 재미있는 책이다. 한 가지 한 가지씩 읽어가다 보면 가슴 한 편이 아스라이 다가온다.



요즘은 결혼을 끝내고 자가용과 비행기로 신혼여행을 간다. 옛날에는 무엇을 탔을까? '가마'다. 30년 전에 딱 한 번 가마를 보았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시집오면서 가마를 타고 왔는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이제 가마타고 시집오는 신부는 없다. 자가용, 비행기도 좋지만 가마 타고 결혼하는 신부가 되어 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 아닐까? 독특한 결혼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신랑은 말 타고, 신부는 가마 타는 결혼식 한 번 계획해보시기를.



'골목놀이'는 빼놓을 수 없는 옛 추억이다. 자치기, 팽이놀이, 공기놀이, 칼싸움, 땅따먹기, 구슬치기,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얼음땡 어디 못하는 놀이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골목놀이는 사라져버렸다. 골목놀이는 땅에서 해야지, 아스팔트, 콘크리트에서 할 수 있는 놀이가 아니다. 골목놀이는 놀이를 통하여 작은 공동체가 만들어졌다.



"어린이들은 많은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놀면서 다른 사람과 자연스럽게 한데 섞이는 것을 익힐 수가 있었어요. 서로 생각을 모아서 새로운 규칙을 정하고,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이 바로 놀이 속에 있었거든요."(본문 25쪽)



'맷돌'로 콩을 갈아 만든 두부 맛을 잊을 수 없다. 설과 한가위만 되면 어머니가 맷돌을 돌려 콩을 갈아 두부 만드는 일을 하셨다. 맷돌을 돌리다보면 한 번씩 손잡이가 빠져버린다. 정확한 것인지 모르지만 '어처구니'가 맷돌 손잡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맷돌에 손잡이가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믹서기와 블랜더가 맷돌을 대신하고, 집에서 두부를 만들어 먹는 풍경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맷돌에 갈아 만든 두부는 지엠오(GMO) 식품이라는 불안감도 없었는데 가슴이 아프다.



우물에서 '두레박'을 가지고 물을 마셔본 적이 있는가? 지금도 시골집에 가면 우물에 두레박이 있다. 옛날처럼 우물물을 마시지는 않지만 두레박을 볼 때마다 옛 생각이 난다. 우물과 두레박은 자기만 사용할 수 없다. 마을 가운데 있는 우물과 두레박은 욕심을 부리면 마을 공동체가 깨어진다.



"우물과 두레박은 마을 사람들이 함께 쓰는 것이라서 서로서로 양보하며 물을 길었답니다. 물이 담긴 무거운 두레박을 끌어 올릴 때도 서로 힘을 빌려 주고는 했지요. 한번씩 날을 잡아 하는 우물 청소도 마을 사람 모두의 일이었답니다."(155쪽)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는 요즘은 나 홀로다. 함께 어우러지는 세상이 아니다. 여인들이 우물가에 모여 앉아, 온갖 이야기들을 쏟아내던 풍경은 사라졌다. 사실 우물가는 정보창고였다. 시어머니, 며느리, 남편, 아이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였다. 이제 그 우물과 두레박은 사라졌다.



미국이 쇠고기 시장을 개방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가 우리 식탁을 완전히 지배하면 한우는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사라져버린 소가 있으니 '일하는 소'다. 쟁기로 농사지을 때, 앞에서 서서 소를 끌어당긴 일이 생각난다. 이랴 자랴 하면서 일하던 생각이 새록새록 난다. 이랴 자랴 하는 소리도 사라졌고, 일하는 소도 사라졌다. 경운기, 트랙터가 차지했다.



'석유곤로'를 아는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자취생활을 했다. 30년 전이다. 그 때 석유곤로로 밥해먹고, 국 끓여먹었다. 석유를 사기 위하여 3킬로미터 이상을 걸어간 일이 기억난다. 한 번씩 심지를 갈아주어야 하는데 시기를 놓지만 그을음이 많이 나 냄비 밑이 까맣게 되었다. 이제 가스레인지, 전자레인지가 석유곤로를 대신하고 있다. 사라진 석유곤로를 생각하니 20년 동안 자취생활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정말 그리운 석유곤로다.



<100년 동안 사라진 100가지 이야기>는 옛 생각을 하게 한다. 굴뚝 청소부, 통행금지, 절구, 토큰과 회수권, 요강, 펜팔, 조개탄 난로 등등. 옛것들을 마음에 다시 새겨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한 번 만나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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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 그 섬세함의 뒷면 | 문화 2007-11-0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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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일본 문화 그 섬세함의 뒷면

박현수
책세상 | 200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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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양면성'이다. 우리가 일본을 생각할 때도 양면성이다. 식민지배국으로서 일본에 대한 감정은 극단적이다. 하지만 일본 공산품에 대한 생각은 선망이다. 일본 문화는 아직 나에게 생소하다. <철도원>이라는 영화를 보고서 '사무라이' '천황제' 국가 문화 속에서도 저런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놀라기도 했다. 그만큼 나는 일본 문화를 접하지 못했다. 


 


박현수의 <일본 문화 그 섬세함의 뒷면>을 읽고서 일본 문화에 대한 접근을 새롭게 시도할 수 있었다. 제목을 보면 약간 놀랍다. 일본 문화가 섬세하다면 국수주의·천황주의·극우주의가 번창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박현수는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장르를 소설이라고 한다. 근대 일본 소설은 '사소설'이다. 쉽게 말해서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소설이다.


 


박현수는 일본의 '사소설'이 일본 정신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말함으로써 우리가 일본의 현재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일본의 사소설은 지극히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그 심리의 변주나 일상의 경험등을 세밀하게 그려낸 소설임을 말하고 있다. 그중에 <이불>이 대표적이다. 인용한 <이불>의 내용을 보면서 일본 근대문학의 수준을 알 수 있었다. 항당과 유치함이다.


 


뜬구름과 파계. 파계는 새 시대에 각성한 개인을 통해 옛 사상과 충돌에서 생기는 고민을 그려낸 작품으로 묘사하고 있다. 즉 섬세하지만 너무나 개인적인 구도이다. 인간은 사회라는 공동의 장에서 일탈하여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개인의 문제는 사회의 문제이다. 사회문제에 대한 의식,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없는 일본 문학의 참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박현수는 사소설을 일본의 국가주의적 팽창과 연결하고 있다. 개인과 국가는 동반자가 아니라 상반된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는가? 지극히 개인적 소설이 국가주의와 연결된 일본 사회를 사실 이해하기 힘들었다. 전혀 무관하다. <이불>이 나올 당시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국가주의가 태동했다. 국가는 개인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일본은 서구사회에 대한 지나친 동경과 열등감으로 스스로 존중하는 길을 잃어버렸다.


 


"서구를 보편으로 보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서구의 근대가 흔히 생각하는 본연적, 긍정적 모습을 갖춘 것은 서구 자체의 현실에도 거의 없다. 단지 서구의 근대를 보편자로 여기는 사고가 있을 뿐이다. 서구 근대 기획은 그 내재적 계기로 비서구에 대한 식민지화를 요구하고 있었으며, 이를 위해 서구는 그 자신과 근대, 보편주의와 오만한 삼위일체를 통해 서구 외의 세계를 조련하거나 배제해야 할 타자로 간주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논리 자체가 서구와 비서구를 우월/열등, 문명/야만, 원본/복사이라는 대립항의 설정과 연결시켜 식민지와 제국주의의 관계를 합리화하고 공고화하는 논리로 작용했다." (124쪽)


 


일본은 이 논리에 갇혔다. 자신들의 현실은 열등하고 서구는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서구가 되기 위하여 노력했다. 일본 메이지 유신은 이를 위한 유신이었다. 그리고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하여 강력한 국가를 건설한다. 일본은 위대하지만 그 외에 아시아는 모멸한다. 그 중심에 조선이 있었다. 후쿠자와 유기치는 그 중심 인물이다. 조선은 열등하다. 더럽다. 그럼 조선은 정복의 대상이며, 모멸을 받아도 당연한 나라가 아닌가?


 


일본천왕제는 일본 사회가 아직 국가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반증한다. 그 반대편에는 신민, 거룩하신 천황을 위하여 존재하는 신민. 천황의 신민이 된 것 만해도 감사할 따름다. 거기에는 인간이 존재할 수 없다. 일본은 '서구'에 경의를 표하는 것 같다. 자신들을 아서구라 하지 않았던가? 이런 일본 사회구조는 일본문학이 가지는 태생적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문학 자체가 담아야 할 개인과 보편성이 아니라 국가가 개인을 지배하는 것은 문학이 담아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문학은) 감성의 미묘한 뒤얽힘과 세밀한 음영의 묘사, 인물의 배치나 성격 등에 대한 형식적 기법척 천작이다."(134쪽)


 


지금도 일본은 망언 중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문학이 담고 있는 이런 내면성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일본 문학에 섬세하지만 이런 내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을 가져야 한다. 요즘 일본 소설이 많이 읽히고 있다. 일본 소설이 지극히 개인적이라 말하지만 일본 소설 역사가 이렇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본 소설을 읽기 전에 이 책을 한 번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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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짬뽕이 제일이다. | 문화 2007-10-20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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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중국, 중국인, 중국음식

주영하
책세상 | 200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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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짬뽕~!'


 


1990년대 초반 <유머 1번지>가 한창 유행할 때 '떴던' 말이다. 난 중국음식 중 짬뽕을 제일 좋아한다. 날 닮았는지 아이 셋도 짬뽕을 자장면보다 더 좋아한다. 짬뽕과 자장면이 중국음식이 아니라는 말이 많지만 우리는 중화반점에서 먹는다. 즉, 중국집, 중국음식으로 이해하고 먹는다. 갑자가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왕 짬뽕과 자장면이 나왔으니 중국음식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고 싶은 생각 말이다.


 


1962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중국 소수민족에 관심을 가졌고, 음식과 문화의 관계에 관심을 가진 주영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가 지은 <중국, 중국인, 중국음식>을 통하여 중국인과 음식에 대한 이해를 넓혀갈 수있다. 그는 '자장면'을 통하여 재미있는 설명을 하고 있다. 






 


중국에는 '자장면'이 없다. 정말일까? 주영하에 따르면 한국식 자장면은 없지만 베이징에는 오랜 역사를 가진 중국식 자장면이 있다. '왕전하아'라는 분이 중국식 자장면을 소개하는데, 들어가 재료는 로스용 돼지고기, 마늘 다진 것, 파, 설탕, 고기국물, 밀가루로 만든 면 등이다. 베이징 토박이들은 자장면을 먹고 있다. 중국에는 자장면이 없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과연 우리에게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 1950년 전까지만 해도 매우 가까운 나라였지만 한국전쟁 이후부터 1992년 국교정상화가 전까지는 적대적 관계였다. 중국 수교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중국을 '중공'으로 불렀다. '중화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홍콩,''중화인민공화국-마카오,' '중화민국' 정말 중국은 나라 이름 하나 가지고도 복잡하다. 격변의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중국을 우리는 음식 소비를 통하여 새로운 이해의 장을 열어줄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중국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가장 힘든 것은 중국음식이 없다는 것이다.


 


알고 있듯이 요리 천국 중국이다. 음식-마시고 먹는 행위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남북의 음식의 종류. 차와 술. 중국인에게 차는 주영하의 글을 읽어보니 마누라보다 더 중요한 것처럼 느껴졌다. 약이면서 동시에 음료이지만. 북방인들은 홍차, 남방인들은 녹차를 주로 마신다. 중국사람은 사람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도 약물 요법보다는 식이요법을 중시한 모양이다. '사람은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다민족 문화의 결정체 중국음식. 우리는 단일민족이지만 다양한 음식이 있다. 그럼 중국은 어떨까? 생각만해도 감격 그 자체이다. 그런데 중국음식은 '융화'이다. 한족과 다양한 민족 사이에 조화를 이룬 것일까? 대표적 음식이 '만한석'이라 주영하는 말한다.


 


"한족 문화가 지닌 융합력과 동화력은 중국 문화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기제이다. 한족의 음식으로 대표되는 중국음식과 한족으로 대표되는 중국인의 음식 습관 역시 주변 민족과의 융합과 동화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중국인, 중국 문화 그리고 중국음식이 지닌 유연력과  적응력은 자신들의 음식 세계를 또 다른 세계로 만들어가는 데 결정적인 속성으로 작용된다."(본문 68쪽)


 


중국이 다양한 민족 결집체이지만 하나의 통일 국가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문화를 수용하면서 동시와 동화하는 능력을 그들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음식문화가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의미있다. 그 중에 한 방법은 음식을 아는 것이다. 주영하는 이에 주목하고 <중국, 중국인, 중국음식>을 글로 나타내었다.


 


중국도 서구화 바람을 맞고 있다. 맥도널드가 베이징, 상하이에 들어갔다. 전통과 변화가 중국을 혼란스럽게 한다. 하지만 아직 중국은 거대한 음식문화다. 음식문화가 있는 곳인 중국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어떤 중국음식보다 짬뽕이 좋다. 짬뽕이 중국음식이 아닐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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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읽는 역사 | 문화 2007-10-17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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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

조한욱 저
책세상 | 200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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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자기가 좋아하는 과목이 있다. 역사를 정말 좋아했다. 지금도 역사분야 책들을 많이 읽는다. 역사학을 전공한 것은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한 번씩 해 본적이 있다. 과연 지금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진짜일까? 그리고 그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은 어떤 학문일까? '역사학'이란 무엇일까? 모든 학문은 시대와 공간에 따라 달라 진다. 인간의 학문 중에 불변은 없다. 기록된 역사는 '위(上)의' 역사이다. 그리고 다분히 '정치적'이다. 이런 논리가 20세기 전반까지 역사학을 지배하였다. 이 때 '밑으로부터 역사', 경제적, 문화적 즉 다양한 역사 읽기를 원하는 무리들이 등장한다. 마르크시즘, 아날학파이다. 계급과 지리적 결정론이 입각한 두 역사학의 '역사'를 보는 눈은 역사학에 새로운 장이 열렸음을 보여준다.





 


조한욱은 <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로 역사학 일깨우기, 역사를 조금 더 풍부하게 보고자 한다. 영웅과 지배자 중심의 정치사를 비판하면서 등장한 사회사는 밑으로부터 역사다. 정치사는 지배자 중심이지만 사회사는 인민과 민중 역사다. 사회사는 마르크스주의 이념이 가장 잘 대변해준다. <공산당 선언>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 이는 곧 '평등'을 향한 인민과 민중이 지배자를 향한 투쟁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한 학파가 있으니 '아날학파'다. 아날학파는 정치적, 사회적 역사는 변하지만 지리와 자연은 변함 없다는 관점에서 역사를 이해하는 학파다.


 


"대단히 장기간에 걸쳐 생각할 때 인간의 생활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정치인가, 지리인가? 아날학파는 이런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아마도 역사에서 우리가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지 않고 지속되는 지리나 풍토와 같은 구조일 것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본문 30쪽)


 


기존 역사가 담고 있는 정치 전쟁 등과 같은 변한다. 하지만 지리와 기후는 장기적으로 변화지 않는다. 이런 관점은 인간생활에까지 역사학이 영역을 확대하게 한다. 하지만 기후와 지리는 엄밀하게 보면 변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도 변하고, 정치, 경제, 사회 모든 것이 다 변화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으로 역사학을 구분하는 방법 역시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역사학을 절대가 아니라 상대적인 관점으로 이해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럼 문화로 보는 역사는 어떤 역사일까? '두껍게' '다르게' '작게' 읽는 역사가 문화로 보는 역사임을 조한욱은 말하고 있다.


 


두껍게 읽는 역사를 설명하면서 윙크를 예로 든다. 윙크를 잘할 수 있는가?  윙크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윙크를 한다는 것은 1)의도적으로 2)특정인에게 3)특정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4)사회학적으로 인정된 코드에 의하여 5) 같이 있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다."(본문 47쪽)


 


조건반사적인 눈깜박거림과 윙크는 다르다. 음모와 조롱과 연습이 가미된 윙크는 각기 다른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각기 다른 코드에서 의미를 부여하기에 이를 두껍게 읽기라고 한다. 1730년대 파리 생세브랭 가의 한 인쇄소에서 고양이를 폭동적으로 학살한 일이 있었다. 이유는 무엇일까? 마법, 주술, 여성비하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두껍게 읽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다. 견습공들은 고양이를 죽임으로서 당시 법과 질서 전체를 조롱하려 했다는 것이 고양이 살해가 담은 상징성이다.


 


기록된 사실로서의 역사만을 강조하고 이해한다면 우리는 역사를 너무 얇게 읽는 것이다. 고양이가 죽어야 한 이유, 고양이는 나쁜놈, 자기를 핍박한 주인의 형상일 수 있다. 하지만 고양이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역사를 다르게 읽어 보면 어떨까? 학살자 인간이 아니라 학살 당한 고양이 관점에서. 여성 비하가 강하게 남은 여성 입장에서보면 어떨까? 고양이 입방에서 보면 고양이가 마법과 주술의 주범이라는 생각은 미신일 뿐이다. 여성 입장에서 보면 고양이가 성적 욕망가 강한 여성을 나타내는 것은 그릇되었다. 남성중심이다. 다르기 읽기가 중요한 이유다.


 


"다르기 읽기의 중요성은 역사를 서술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서 갖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언제나 이기적일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나약함을 성찰하게 만들어, 더 건강하고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전제 중 하나를 제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본문 68쪽)


 


조한욱은 <문화로 보면 역사사 달라진다>를 통하여 기존의 역사학이 지극히 강자와 남성중심이라 비판한다. 여성의 시각에서 볼 수 있다. 그럼 역사를 다르게 읽을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한다. 아주 작은 것을 통하여 역사를 보는 눈도 필요하다. 설탕과 대구. 설탕은 강자가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럼 설탕을 제조하는 자는 바로 흑인노예이다. 그들의 양식이 바로 대구이다. 문화로 역사를 보자. 그럼 역사는 오늘 나에게 분명 다른 의미로 다가 올 것이다. 다르게, 두껍게, 작은 것을 통하여 읽어보자.


 


역사를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한다. 그 작은 출발이 여기에 기록되어 있다. 기존 남성중심, 인간중심, 지배자, 정치, 사회, 경제 역사관에서 벗어나 다르기, 작게, 두껍게 보는 역사를 통하여 기존 관념을 깨뜨려야 한다. 역사가 달리 보일 것이며, 역사는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진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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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 문화재를 자기 문화재인양 자랑하는 제국주의 | 문화 2007-10-10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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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잊혀진 이집트를 찾아서

장 베르쿠테 저/송숙자 역
시공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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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6월 13일 이집트 '기제 피라미드' 앞에 섰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과연 지금의 인간이 4000년 전의 인간보다 더 과학의 발전을 이루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20세기 최첨단 과학문명, 최고의 건축기술을 가졌다고 자랑하지만 피라미드를 건축한 이들에 비하여 우리 시대 사람들이 그들보다 낫다고 자랑할 수 있을까?'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기제 피라미드'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다. 한 변이 230미터, 넓이가 5만평방미터다. 사용된 돌 개수는 260만개 총중량은 700만톤에 이른다. 이런 규모는 현대 건축물에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그 화려한 이면은 내면을 들여다 보는 순간, 인간이 만든 위대한 문화를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완악하게 파괴했는지 알게 되는 순간, 분노할 수밖에 없다. 시공사에서 시리즈로 내놓은 시공디스커버리총서 002 <잊혀진 이집트를 찾아서>는 인간탐욕을 고발하고 있다.


 


이 책은 서양문명이 이집트 문명을 파괴한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밝힌다. 391년 로마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는 로마 제국 안에 있는 이교도 신전을 모두 폐쇄하라 명령했고, 그 결과 이집트 상형문자는 사라지게 된다. 이유는 무엇일까?


 


B.C 47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침공 때 불타버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장서 70만권이 있었다. 그 중에는 파라오 시대를 기록한 <이집트 역사> 30권도 포함되었다. 이집트 역사를 집대성한 문헌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복사본이 남아 있었는데 테오도시우스 1세의 신전 폐쇄 명령으로 영원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신전을 교회로 개축하는 콥트파 수도사들, 로마와 비잔틴 황제들은 오벨리스크, 스핑크스를 제국 수도의 장식품으로 만들었고, 페르시아 왕들은 고대 이집트 신전에서 빼내온 조상(彫像)들을 페르세폴리스로 실어날랐다. 아랍어로 쓴 도굴 안내서인 <감춰진 진주와 고귀한 신비에 관한 책, 발견된 보물과 숨겨진 보물 위치에 대한 안내서>까지 나왔다. 1900년 카이로 박물관 이집트 관리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전쟁이나 세월의 흐름보다 더 강력히 고대의 유물을 파괴해버렸다."(본문 59쪽)


 


왜 인간은 이런 탐욕을 통하여 파괴했을까? 이유는 단 하나. 현대 문명이 그들보다 더 나은 문화라는 교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가 우수하기 때문에 고대 이집트가 형성했던 문화와 문명을 파괴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이집트라는 거대한 문명 앞에 현재의 사람들은 과학과 문화에서 그들보다 뛰어나다는 교만을 버려야 한다.


 


지금의 인간은 그들이 파괴해버린 문명과 문화재 보호라는 미명하에 루브르, 대영제국박물관에 약탈한 것을 보관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박물관이라 자랑하지만 그들의 문명과 문화재는 찾아볼 수 없고, 제국주의 시대, 제국의 이름, 군대로 파괴하여 약탈한 유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는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운 서구문명을 그대로 보여준다. 오벨리시크, 스핑크스, 석관, 거대한 조상을 약탈했던 벨조니의 <이집트와 누비아 여행>을 통하여 약탈과정을 살펴보자


 


"선박 화물업자와 협상하여 1,800프랑에 배 한 척을 빌리기로 했다. 준비작업을 하는 동안에 벨조니는 여신 세크메트를 상징하는 사자 두상 18점, 세티 2세가 무릎을 꿇은 형상 조각 한 점, 다수의 스핑크스를 카르나크에서 발굴해 흉상과 함께 배에 실었다."(본문 75쪽)


 


이렇게 이집트 유물은 약탈되었고, 서구인들은 약탈 유물을 자신들의 문명인듯 자랑하고 있다. 잊혀진 이집트는 이집트 사람 탓에 잊혀진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유물들이 그저 제자리에 있기를 원했다. 


 


하지만 제국주의는 피라미드, 상형 문자,룩소르 신전, 로제타 석을 우월성을 내세워 도둑질하여 자기들 나라에 고이 모셔놓았을 뿐이다. 룩소르를 발견한 '가스통 마스페로'는 룩소르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탈취한 이문이다. 룩소르는 그저 제자리에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룩소르는 그들의 것이 아니라 이집트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겉으로는 이집트 문명을 찬양하는, 새로운 발견을 하는 것처럼 읽히지만 왠지 심연에서는 그들을 향한 분노를 발한다. 내 서재에는 '로제타 석'을 판본하여 만든 짝퉁 로제타 석이 걸려 있다. 내 방에 걸려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약탈이 만들어낸 짝퉁이라는 것이 마음에 분노를 일으킨다.


 


 우리에게도 빼앗긴 문화재가 많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잊혀진 이집트를 찾아서>를 쓴 저자의 나라는 프랑스이다. 그 프랑스에 있는 <직지심경> 아직 우리에게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집트만 잊힌 것이 아니라 고려와 조선도 잊혔다. 잊혀진 문명이 각자 처음 자리 잡았던 그곳으로 돌아가야만 진짜 문명과 문화 사회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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