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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이탈리아로 돌아올 수 있을까 | 예술 2013-07-20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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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모나리자는 왜 루브르에 있는가

사토고조 저/황세정 역
미래의창 | 2013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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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는 과학과 예술분야 모두에서 탐욕스러울 정도로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맸던 사람이다. 미술분야에서 그가 처음으로 시도한 것은 모두 서양미술사에 기록될 만한 기념비적인 것들이다. 그는 성서 속 인물들을 그릴 때 머리 뒤에 후광을 그리지 않은 최초의 화가였다."(존 캐리가 쓴 <지식의 원전> 중)

존 캐리 주장이 아니더라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1452~1519)가 남긴 <최후의 만찬> <그리스도의 세례> <모나리자> <세례자 요한> 따위 작품만으로도 그의 위대성은 영원할 것이다.

다 빈치는 이탈리아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남긴 <모나리자>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 궁금하다. 이것만 아니라 다 빈치 남긴 작품 탄생 배경과 밝혀지지 않는 숨은 이야기들도 궁금하다.

책 <모나리자는 왜 루브르에 있는가>(미래의창)은 우리들 궁금증을 풀어준다. <피렌체 미술산보> <르네상스에 살았던 여성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만능의 천재를 찾아서> 같은 작품을 남긴 사토 고조는 <모나리자는 왜 루브르에 있는가>를 통해 <모나리자> 실제 주인공은 누구이고, <최후의 만찬>은 몇 번이나 복원됐으며 <세례자 요한> 속 숨은 메시지는 무엇인지를 밝혀주는 '다 빈치를 찾아 떠나는 이탈리아 예술 기행문'이다.

우리 옛말에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는 말처럼 다 빈치는 어릴적부터 천재성을 드러냈다. 14살 때 안드레아 베르키오 공방에 들어갔고, 메데치 가문 의뢰를 받아 피에로 묘비 제작에 참여하고, 스무 살에는 스승 베로키오 작품인 <그리스도의 세례>에 조수로 참여했다. 이때 독립해 <수태고지> <동방박사의 경배> 등을 그렸다. 다 빈치는 그림에만 천재성을 보인 것이 아니라 건축설계도 특출함을 드러냈다. 대표 작품이 밀라노 나빌리오지구 운하다. 교황 아들은 그를 인정해 기술 감독으로 불렀다.

"1499년 9월, 루이 12세가 이끄는 프랑스 군대가 밀라노 공국을 점령했을 때, 지휘관들 중에는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아들 체사레 보르자도 있었다. 그는 밀라노에서 다 빈치가 설계·계량한 운하를 보고 크게 감탄하여 훗날 다 빈치를 '건축 기술 총감독'으로 불러들이기도 했다."(본문 21쪽)

다 빈치가 죽은지 20년 후 프랑수아 1세를 섬겼던 피렌체 조각가 벤베누토 첼리니는 <예술론>에서 왕이 다 빈치를 "나는 조각·회화·건축 어느 분야든지 레오나르도만큼 많이 알고 있는 자는 이 세상에 없으며, 또한 그가 위대한 철학자였다고 믿는다"고 했다. 조각·회화·건축을 넘어 철학자 반열까지 오른 다 빈치를 찾아나서는 <모나리자는 왜 루브르에 있는가>는 읽는 이들로 하여금 존경심을 이끌어낸다.

<모나리자>와 함께 다 빈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최후의 만찬>은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 성당 수도원에서 그렸다. 크기는 무려 가로 8.8미터, 세로 5.5미터로 대작이다. <최후의 만찬>은 1494년 수도원 식당 벽에 예수가 최후의 만찬을 나누던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라고 말한 것을 극적으로 그리라는 의뢰를 받고 그렸다.

"레오나르도는 처음 구상한 것처럼 누가 주님을 배신할지 궁금해 하는 사도들에게 덮친 불안과 걱정, 두려움을 훌륭하게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사도들의 얼굴에는 사랑·공포·분노 그리고 예수의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큰 슬픔이 감돌고 있다. 또한 이에 버금가게 유다의 완고한 태도·증오·예수를 배신하는 모습이 대조적으로 잘 표현되었다. 작품 속의 인물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그려져 있고 식탁보 원단의 질감까지도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어 실제 린넨 천보다도 훨씬 실물에 가까워 보였다."(본문 64쪽)

이렇게 위대한 작품은 탄생했다. 하지만 다 빈치가 죽고나서 123년이 지나자 습기와 침식때문에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이후 복원 작업이 이뤄졌는데 1726년, 1770년, 1946년, 1979년이다. 1999년 20년 복원 작업끝에 현재 모습을 갖췄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주목할 점은 2차대전 때인 1943년 8월 16일 연합군이 밀라노를 대공습했을 때 수도원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후의 만찬>만 남았다.

"벽화가 살아남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공습이 있기 며칠 전,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신부들이 만약 공습이 발생하더라도 <최후의 만찬> 만큼은 지켜내야 한다며 벽화의 앞뒤 벽에 천장까지 흙 포대를 쌓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최후의 만찬>을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이러한 성당의 신부들의 노력 덕분이다."(본문 69쪽)

위대한 작품은 그리거나, 만든 이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할 때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음을 <최후의 만찬>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모나리자>를 보자. 모나리자는 세가지 이름이 있다. 이탈리아는 '라 조콘다', 영어는 '모나리자', 프랑스어는 '라 조콩드'다. 과연 모나리자는 누구일까? '모나'는 유부녀 이름 앞에 붙이는 이탈리아어 경칭이고, '리자'는 초상화 모델 이름이다. 우리 이름으로 하면 '리자 여사'"쯤 된다.

그럼 모델은 누구일까? 피렌체 유력자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아내인 리자라는 주장이 많다. 2008년 1월 14일,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도서관 측은 다 빈치 <모나리자> 모델이 피렌체 어느 거상의 부인이라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1530년 10월에 피렌체 시 관리가 고서적의 여백에 "다 빈치는 세 장의 그림을 제작 중이며, 그 가운데 하나는 리사 델 조콘도의 초상화다"라고 적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모델이 누구인지 몰라도 이탈리아 고고학자인 카시아노 달 포초가 1625년 <모나리자>를 본 소감은 지금도 똑 같은 느낌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그림이었다. 그림이 스스로 말을 하지 않는 것만 빼고는, 그 밖의 모든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보는 이는 누구나 그 마력에 빨려들고 만다."(본문 120쪽)

그럼 <모나리자>는 어떻게 이탈리아가 아닌 프랑스에 갔을까? 다 빈치가 1516년 프랑스로 이사가면서 모나리자를 가져갔다. 이후 프랑스 귀족과 루이 14세·16세 그리고 나폴레옹을 거치면서 루브르까지 가게 된다.

"<모나리자>는 1700년대 초 '태양왕'이라 불린 루이 14세 거처인 베르사유 궁전 살롱을 옮겨졌다. 루이 15세는 <모나리자> 미소를 싫어했고, 그림을 수행원 방으로 옮겼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모나리자>는 왕가 재산들과 함께 오랑주리의 지하 왕실 창고에 숨겨졌다고 한다. 그후 나폴레옹이 궁전 안에 박물관을 설립하자 그곳으로 옮겨져 공개 전시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루브르 박물관의 시초가 되었다."(본문 중에서)

<모나리자>는 한 때 이탈리아로 다시 돌아갔다. 지난 1911년 도난됐다가 2년 뒤 루브르 박물관에서 일한 적이 있던 이탈리아인의 피렌체 집에서 발견돼 우피치 미술관과 로마에서 잠시 전시된 뒤 루브르 박물관으로 반환되는 우여곡절을 겪는다.

한편, 지난해 8월 이탈리아 역사·문화·환경유산 국가위원회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보관된 모나리자를 이탈리아로 반환하기 위한 서명운동에 15만여 명이 참여했다"며 오렐리 필리페티 프랑스 문화장관에게 모나리자 반환을 공식 요청했다. 하지만 루브르 박물관측은 이탈리아 요청을 거부했다. <모나리자>는 이탈리아로 돌아갈 수 있을까? <모나리자> 가치를 아는 루브르 박물관이 되돌려 줄리는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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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욕망하는 것들 | 예술 2007-11-24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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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영화가 욕망하는 것들

김영진 저
책세상 | 200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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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닐 때 매주 영화를 두 편씩 본 적이 있다. 두 편 동시 상영을 비롯하여 '예술영화'라는 것까지 닥치는대로 보았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보니 일년 100편 정도였다. 나이를 먹어면서 영화 보는 편수도 조금씩 줄어 요즘은 일년에 한 두편이다. 올해는 '화려한 휴가' 한편 밖에 보지 못했다. 영화를 깊이 알기 위해서 영화를 많이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화'가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이들을 만나보는 것도 매우 좋은 일이다.


 


김영진은 <영화가 욕망하는 것들>을 통하여 여러 장르 영화를 말한다. 영화는 매우 친숙하지만 각자 취향에 따라 좋은 영화, 나쁜 영화로 설명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좋은 영화 기준은 영화 자체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취향에 따라 다르게 영화를 비평하는 기준도 다르다.


 


'에로티시즘, 포르노'를 맨 앞에 두었다. 에로티시즘은 이제 영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한국영화도 포르노에 버금가는 에로티시즘 영화가 만들어지고 상영되며, 본다. 2000년 벽두 장정일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영화한 <거짓말>은 장선우 감독이 포르노그라픽 형식으로 위장해 사회를 고발한 영화다.


 


"감독의 표현대로라면 '미추와 선악과 분별의 경계를 넘어선 놀이'인 영화 <거짓말>은 변화하지 않는 사회를 조롱하면서 퇴행적인 즐거움에 빠져버린 후에 진흙 속에서 연꽃을 보자는, 부처의 가르침 뒤에 숨어버리는 영화일지도 모른다."(18-19쪽)


 


장선우 감독은 인간 누구나 가지고 있는 관음증을 겉으로는 깨끗한척 음란성을 초월한 인간내면을 그대로 고발하고 있다. 사회 어떤 구성원들이 <거짓말>를 음란영화로 매도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포르노그라피적인 영화가 우리 사회에 내재한 문제를 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영화만이 참된 영화로 생각하는 이들을 향한 일갈이라고 할 수 있다.


 


포르노! 사실 말만 들어도 이상한 생각이 들게 한다. 정의를 다 다르게 내릴 수 있지만 30쪽 움베르트 에코가 내린 정의 "포르노의 특징은 지져분한다는 것이 아니라 지겹다는 데 있다." 동의하고 싶다. 나를 자극하고 성에 대한 감흥과 감동이 아니라 지겹다는 것을 느낄 때 그를 포르노라 부른다. 에코 다운 정의이다.


 


포르노 여성을 비하고 남성보다 못한 존재로 낙인찍는 것이라 여성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상한 것은 도덕적 순결주의와 이들이 함께 포르노 반대를 외치게 되었다는 저자의 글 앞에 웃음이 나왔다. 어떻게 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가?


 


'예술 영화', 과연 예술과 영화는 무엇인가? 둘의 관계는 무엇일까 짧은 기록을 남겨야 하는 이유가 있었겠지만 김영진이 예술과 영화의 관계를 조금은 설명하고 예술 영화를 말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영화만 '예술영화'라 하는 것인가? '예술미술, 예술음악, 예술 문학' 이런 단어가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왜 영화만 '예술'을 자기 이름 앞에 넣을 수 있는 것일까? 물론 "고다르의 <사랑과 경멸>을 통하여 영화가 예술이 될 수 없다는 통찰을 담은 영화가 예술이 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말하고 있지만.


 


김영진은 홍상수 감독을 말하는데 일상에서 되풀이되는 세부도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원도의 힘>은 우리 영화에 많은 도전을 준다. <강원도의 힘>에서 대학 교수는 여자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아픈 여자에게 오럴 섹스를 강요한다. 홍상수 영화는 성교할 때만에 극적인 순간이다. 앞뒤가 맞진 않는 부분도 많다.


 


"홍상수 영화는 조각난 이야기를 퍼줄 풀듯이 관객으로 하여금 손수 재조립하게 만드는 이야기의 스타일을 통해 그렇게 꿰어맞추어도 결국은 되돌아볼 수밖에 없는 일상, 빙 둘러 순화되는 일상의 감옥을 말하고 있다."(81쪽)


 


우리 일상을 조각난 퍼즐과 같다. 퍼즐을 맞춰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홍상수 영화를 보면 상당히 혁신적이라 느낄 수  있지만 홍상수 영화가 혁신적이기보다는 우리 인생이 혁신적이지 않을까? 예술영화, B급영화 따위의 장르 구별이 있지만 이는 구별하고자는 주장일 뿐 영화는 그 자체로 우리 일상을 말하고, 인간을 말하고 있다.



영화는 근대 예술이 나은 선물이다. 영화는 사람을 말한다.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말한다. 한 영화가 어떤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는지, 주연배우가 어떤 상을 받았는지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통하여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자기를 말하는 배우와 영화를 보고 만족할 수 있다면 그 영화가 어떤 장르이든지 영화는 좋은 영화이다. 영화가 이것을 담지 못하면 우리는 영화를 외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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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주술이 만나다 | 예술 2007-10-29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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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예술, 세계와의 주술적 소통

김융희 저
책세상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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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치는 것'을 좋아하는가? 첨단 시대에도 점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미신이라 무시하지만 사람들은 과학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점치는 일에 관심이 높아진다. 나는 딱 한 번 길거리 점을 쳐보았다. 그 후로는 아예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과학과 주술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럴지라도 과학시대에 주술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과학과 주술의 만남이 변함없을진대 예술과 주술은 어떨까? '천지창조' '만종'이 점집에 걸려 있으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예술을 모욕한 것이라 비난할까? 새로운 점집이 등장했다고 호응을 할까? 인터넷 시대에 사람들의 다양성을 고려할 때 비판과 옹호가 있을 것이다.


 


호기심이 생기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사람이 있다. 김융희다. 그는 <예술, 세계와의 주술적 소통>에서 점치는 일에 관심이 많다고 밝혔다. 어느 날 타로(Tarot) 카드를 만나면서 점치는 일이 재미를 넘어 무엇인가가 존재함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타로 52장의 그림을 계속 보면서 이상한 힘을 방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예술은 과연 영성을 가지고 있을까? 있는 그대로, 이미지만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만 인가? 예술은 과연 무엇일까? 궁금해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예술을 규정하는 데에는 두 가지 태도가 있다. 하나는 예술을 세계와 자연을 재현하는 잘 훈련된 기술로 자리매김 하는 태도이고, 또 하나는 평범한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여주는 신비한 현현으로 보는 태도다." (본문 10쪽)


 


예술에 대한 두 갈래 의견 중 앞의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예술세계이며, 뒤의 것은 무당과 같다. 전자는 르포 작가처럼 일상에서 치열한 고민과 삶, 취재를 통해 진실을 찾아가는 길이며, 후자는 현실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진실을 찾아가는 사람이다. 과연 오늘은 어떤가. 후자와 같은 예술에 대한 갈래를 인정할 수 있을까? 비판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김융희 생각이다.


 


사람이 삶을 영위하면서 경험하는 일들은 분명 합리성과 논리성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부분이 많다. 어떤 신비와 영적 실체가 존재함을 경험한다. 김융희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밤의 어두움과 모호함 그리고 침묵 세계가 밝은 낮 세계의 자양분이라 말하고 싶다. 세계에는 합리적으로 질서를 이루는 경험 과학적 담론들이 채 다 퍼올리지 못한 신비가 숨쉬고 있으며 그 수맥을 탐사하고 드러내는 통로는 이미지에 있을 것만 같다. 말과 논리는 조금만 더 가면 금방이라도 세계의 진상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손을 뻗지만 실제는 어느새 저만치 달아나 보이지 않는 곳으로 몸을 숨긴다. 그 잡히지 않는 여분의 것, 그러나 잡히는 세계 모태이기도 한 세계의 또 하나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예술 몫이다." (11쪽)


 


예술을 통하여 그 잡히지 않는 여분 캐내기를 시도하는 것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 있지만 역사 속에서 인간이 남긴 각종 예술 작품은 분명 신비한 무엇을 말하고 있다. 절에 가면 '산신도'가 있다. 절에서 보는 산신도는 영성과 신비함을 경험한다. 그렇다면 미술관에 걸려 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미술관에 걸려 있는 산신도와 절에 있는 산신도를 달리 보는 경향이 있다. 미술관 산신도는 예술이고, 절에 있는 산신도는 종교라는 이중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김용희는 이런 이중적 태도를 비판한다. 그림이 주체가 아니라 장소가 주체가 되는 현실을.


 


김융희는 말한다. "예술은 주술에서 시작되었다." 라스코의 동굴벽화와 빌렌도르츠의 비너스는 분명 예술이지만 당시 그들에게는 주술적 상징이라고. 이런 주장은 물론 비판 받을 수 있다. 우리가 지금 보기에는 '예술적' 요소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들은 그냥 그들의 들소 사냥이 잘될 수 있도록 신에게 제사지낸 것이지 예술작품으로 그린 것은 아닐 수 있기 때문에.


 


고대에 등장하는 것 중 '뱀과 새'가 있다. 아마 거의 모든 나라와 민족의 신화에 등장할 것이다. 성상 - 예수, 성모 마리아, 성인. 불상 이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들의 얼굴을 항상 기억하기 위하여 만들었을까?


 


아닐 것이다. 상징과 영성, 숭배의 의미가 있다. 인간이 남긴 많은 작품들 속에 담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무조건 미신이라 비판하지 말고 관심을 갖는 것은, 예술을 더 깊은 상상 세계 속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김융희는 말한다.


 


예술 속에서 영성을 찾는 작업.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예술 모두를 상징, 이미지, 영성으로 이해하고자 함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은 예술일 뿐, 어떤 상징과 의미도 없다고 말하는 것 역시 문제다. 예술은 박물관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 밖으로 나와 인간과 함께 하며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예술품을 보고 그들 나름대로 이해하고 의미를 찾아야 하리라.


 


"예술이 태고적에 지니고 있던 하나의 역할, 다시 말해 인간과 우주와의 간극을 매개하여 행복한 화해에 이르게 한다는 주술적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일은 그래서 필요하다."(127쪽)


 


예술이 돈벌이로 전락한 시대다. 미술관 안에만 고이 모셔 놓은 미술작품(예술품)은 예술을 도외시 하는 일이다. 감상과 미술만을 위한 장소, 평안한 안치소에만 존재하게 하는 일은 예술을 비하하는 일이다.


 


원래 있던 그 자리에서 혼을 담아 구현했던 그 시대, 그 작가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주술과 신비함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며 그 노력을 미신으로만 취급해 비하하는 것은 예술을 더 깊이 이해하는데 방해된다는 것이 김융희의 생각이다. 과연 독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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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짝은 하위가 아니다. | 예술 2007-10-17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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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가요, 어떻게 읽을 것인가

박애경
책세상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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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는 일상이 되었다. 가곡과 클래식을 불리워지는 '고급'(?) 음악은 아직 일반 대중에게는 낯설다. 하루 종일 사람들을 가요를 듣는다. mp3가 등장하기 전부터 젊은이들이 '마이마이'에 정신을 내놓을 정도로 가요는 사람들을 사로 잡았다. 너무 익숙하면, 본질이 무엇인지 망각한다 했는가?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가요가 무엇인지 우리는 진지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 가요란 '광범위한 대중이 즐기는 음악'이라 정의할 수 있겠다.


 


가요는 '부르는' 것일까? '읽는' 것일까?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이런 뜬금없는 질문을 한 이가 있으니 박애경이다.


 


박애경은 <가요,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매우 당돌한 질문으로 책을 쓰고 있다. 어느 누가 노래를 부른다고 하지 읽는다 할 것인가? 또 '대중가요'라는 말을 시큰둥하게 생각하는 우리 자신들. 클래식보다는 못한 노래로 그저 생각하는 우리들을 향하여 이것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 잘 지적하고 있다. 나는 음악이란 사람과 호흡하고 정서에 맞는다면 그 음악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자신과 호흡하고 정서에 맞는 음악은 각자에 따라 달라진다. 가요는 이런 면에서 가장 사람과 호흡할 수 있는 음악 영역이다.


 


"하나의 가요가 우리 귀에 들리기까지는 여러 차례 테크놀로지 개입을 받지만 정작 우리에게 최종적으로 전해지는 것은 사운드 힘과 이를 가시적으로 드러낸 언어의 반복 뿐이다. '감정의 울림'이라는 대전제 아레 테크놀로지라는 것은 부차적인 영역으로 축소되고 만다. 실은 이것이 정서적 효과를 교묘하게 조작해낼지라도 그 전제는 변하지 않는다. 가장 손쉬운 '동조'를 이끌어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요는 지니고 있다. 가요의 힘은 가장 손쉽게 또는 의도에 상관없이 접근할 수 있으면서 정서적 파급력은 만만치 않다는 데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본문 14쪽)


 


어느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수백만원짜리 오디오에 만날 듣는 노래가 트로트였다. 그럼 사람들이 얼마나 손가락질 할 것인가. 그럼 어떤 노래를 들어야 하는가? 물론 고전음악이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박애경의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가요는 왜색이라는 개념이 자리잡고 있지만 이는 과거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말임을 박애경은 반박하고 있다. 대중 음악은 예술이다. 예술은 고급(?) 음악인 클래식과 가곡만이 점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시대의 노래꾼들이여. 대중가요, 대중음악, 고전음악의 구별하여 상위, 하위 음악이라 단정하지 말고. 스스로 자기 확신에 찬 노래꾼이 되어. 예술로 승화시키는 노래를 부르기를 원한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가수보다 뮤지션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경우를 종종본다. '가요'라는 단어가 풍기는 하위문화 개념이 녹아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왜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일까? 가수와 뮤지션이라는 어감상 거리는 연예인과 아티스트 사이의 거리와 비슷한 것이다. 딴따라에서 아티스트로 격상하는 의미이다. 물론 이런 평가와 노력이 모두 그릇된 것은 아니다.  


 


"뮤지션이란 한 분야에서 탁월한 전문성을 발휘하는 자본주의적 대중예술인보다는 교양과 기량과 자의식을 두루 갖춘 보편적 예인상에 접근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뮤지션이란 말은 시대가 검증한 예인에게 붙여준 자랑스러운 칭호일 수도 있고 음악에 종사한 자들이 스스로 긴장을 유지하기 위한 자기 다짐과 자각의 또다른 표현일 수 있다."(본문 56쪽)


 


하지만 이런 말이 자본주의 시대 자본을 앞세우기보다는 교묘히 자본을 위한 전략일 수 있다. 딴따라로 불리우는 자들이 오히려 더 나은 예인일 수 있다. 뮤지션 이름으로 교양과 기량, 자의식을 강조하지만 실상은 자본에 더 접근하고 자본에 더 강한 애착을 지닌 무리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난 알아요'의 충격을 아는가? 사실 나는 그렇게 충격 받은 것도 아니다. 그럼 충격 받지 않았다고 그 노래가 별 볼 일 없는 노래인가? 아니다. 힙합, 록 다들 정신을 가지고 있다. 록은 저항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포크는 가슴을 아련하게 한다. 그렇게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지라도. 뽕짝은 가장 하위의 장르인가? 아니다. 클래식보다 더 인간 영혼을 뒤흔들 수 있다. 듣는 이에 따라. 그렇다. 가요은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다. 내가 말이다.


 


가요 앞에 놓인 '통속적인'이라는 말은 버스 안에서 마구 흔들는 뽕짝을 의미할 수 있다. 질적으로 조악한 음악이라는 느낌도 준다. 가요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의미가 이럴지라도 나는 뽕짝에서도 예술적 감흥을 경험하고, 록과 포크에서도 예술성을 경험한다. 물론 가곡과 클래식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이 평가하는 음악에 대한 질적 평가는 뽕짝이 가곡과 클래식보다 하위일 수 있다. 하지만 음악을 접하는 사람들이 어떤 장르이든지 그 장르에서 예술적 감흥을 얻고, 음악을 통하여 예술과 통한다면 장르는 문제될 것이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가요는 '저질과 하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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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을 담은 조각과 건축물 | 예술 2007-09-30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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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2

문명대,김동현 등저
돌베개 | 2007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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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이 회화와 공예에 관한 우리 최고의 미술품에 관한 책이라면 <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2>는 조각과 건축이다.


 


중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만났던 작품이 많다. '서산마애삼존불' '국보 제 83호 반가사유상' '석굴암 본존여래좌상' '석가탑' '다보탑' '부석사 무량수전'을 비롯한 20가지 우리나라 조각과 건축물을 상세히 설명하고 중국과 일본에서 비슷한 조각물과 건축물을 비교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 만났던 작품들이지만 불교 신자가 아니기에 조각품은 대부분 불교작품이라 생소했다. 각 작품을 소개한 교수들의 설명과 눈으로 만난 서산마애삼존불,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석굴암, 석가탑, 다보탑을 더 깊이 만나지 못해 안타까웠다. 조각품을 만났을 때도 미술사적 가치만 아니라 종교심도 큰 역활을 한다는 것을 새삼느꼈다.

 


깊은 만남을 하지는 못했지만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을 설명한 임남수 영남대학교 교수다음 말은 이 조각상 풍기는 멋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국보 제 83호 반가사유상은 소년의 통통하면서도 둥근 얼굴, 양손과 발의 자연스러운 살집과 마디 등을 보여주고 있으며, 옷자락에도 천이 만들어내는 질감과 주름 등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국보 제 83호 반가사유상의 상승하는 오른쪽 무릎은, 뚝섬 출토상이나 연가7년명 상에서 신체를 구속하고 있던 좌우대칭이나 이등변삼각형 구도를 시원스럽게 깨뜨리고, 새로운 조형예술의 세계를 열어 보이고 있다. 깨달음의 미소는 작가로서의 성취를 이룬 불사의 희열을 나타낸 것으로도 해석하고 싶다."(본문 51쪽)


 


작가는 반가사유상을 만들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부처를 만들고자 함이 아니라 이미 자신이 부처가 되지 않으면 이런 묘사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종교심은 이론과 설명보다는 자기가 믿는 종교와 자신이 일치할 때 온전한 신자라 할 수 있다. 반가사유상을 제작한 작가 역시 그 자신이 부처와 하나되었고, 부처로 성불함으로써 깨달음 미소를 조각품에 나타냈을 것이다.


 


스무 가지 조각과 건축물 중에서 나를 가장 이끌었던 것은 '도산서원 도산서당'이었다. 도산서당은 도산서원 내 아래쪽 동편에 있는 작은 건물이다. 퇴계는 도산서당에서 사람을 길렀다.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사람'을 알고 성리학을 집대성하였다. 도산서당은 작은 건물이다. 3칸 기본 구조에 우측으로 익첨 1칸을 덧대는, 8평 남짓하다. 8평 공간에서 퇴계는 성리학을 이루었다. 이 시대 학문을 이루기 위하여 집을 크게 짓고, 화려한 것만 추구하는 우리에게 퇴계는 묻고 있는 듯하다. 건물로 학문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퇴계가 도산서당 동쪽 대청 한 칸을 암서헌(巖棲軒), 자신이 거처한 중앙 방 한 칸을 '완락재(玩樂齋)라 했다. 김지민 목포대학교 교수 말을 들어보자.


 


"암서헌이란 '(학문에 대한) 자신감을 오래도록 가지지 못했다가 이제 바위에 깃들여 조그만 효험이라도 바란다'는 주자의 운곡시에서, 완락재란 역시 주자의 <명당실기>에서 나오는 '좋아서 구경하는 것을 즐ㄹ기는 족히 여기서 평생토록 지내도 싫지 않겠다'는 글에서 취해 지은 이름이다. 결론적으로 이 서당은 자연에 최소한만 개입함으로써 큰 우주를 그려낸 퇴계의 맑고 깨끗한 정신이 서려 있는 곳이라 하겠다."(본문 230쪽)


 


건축물 자체는 화려하지 않다. 3칸이 화려하면 얼마나 화려하겠으며, 크면 얼마나 클까? 3칸 작은 집에서 '학문'을 이룬 그가 부러울 수 밖에 없다. 큰 것만, 화려한 것만 좋은 것으로 여기는 범인(凡人)이 깨닫기는 퇴계가 크다. 하지만 퇴계가 크다는 것만 존경할 것이 아니라 작은 3칸 8평 남짓한 좁은 집에서도 성리학 최고 학자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름만 존경하는 것은 퇴계에게 무례한 일인지 모른다. 도산서당이 나에게 답한 귀한 가르침이었다.


 


그 외에 석가탑, 다보탑, 경회루, 담양 소쇄원은 건축 기술이 발달한 오늘도 그 아름다움과 경외스러움을 담지 못할 것이다. 이 시대는 '기술'(技術)은 있지만 '혼'(魂)은 없지 않은가? 옛 시대와 옛 사람이 남긴 조각과 건축물이 오늘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모든 것을 만들을 혼을 담았기 때문이다. 혼을 담은 건축과 조각이 많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2>를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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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화에 마음이 더 가는 이유 | 예술 2007-09-2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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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

안휘준,정양모 등저
돌베개 | 2007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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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이후로 미술 시간, 음악 시간은 고역이었다. 예술적 재능은 천부적이라 했는데 부모님께서 나에게 예술적인 재능은 전혀 물려주지 않았던 것 같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이런 재능은 물려주지 못했다. 물론 그림과 예술품을 읽는 재능도 별로 없다. 고흐, 피카소, 바흐, 모짜르트, 김정희, 안평대군, 한석봉의 그림과 음악, 서예를 아무리 보고도 왜 그 작품이 위대한 예술품인지 잘 몰라 예술작품들을 설명한 책들을 한 번씩 사본다. 하지만 그들의 설명도 알쏭달쏭하다. 그리고 너무 어렵다. 이런 와중에 '돌베게'에서 나온 강경숙 외 17명이 지은 <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를 만났다.


 

<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에는 한국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 40점을 소개하면서 중국과 일본의 미술품과 비교한다. '회화'는 김홍도, 정선, 윤두서, 김정희, 조속, 안견과 고구려 고분 벽화, 민화, 궁중장병화, 불화 등이다. '공예'는 도기, 청자, 백자 등 도자 공예품, 목공예, 금속 공예, 문양전 등이다. '불교조각'은 석조불, 금동불, 철불, 소조불, 마애불, 목각탱, 목불 등이다. '건축'은 궁궐건축, 사원 건축, 서원건축, 사원건축, 조경문화, 석탑, 석교 등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나라 미술사에 최고의 작품을 선정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학자에 따라 의견을 달리할 수 있지만 이 책에 선별된 작품을 폄하할 수 없다. 40개 작품 중에서 몇 작품을 소개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논란이 되면서 고구려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 우리는 고구려 역사와 문화에 문외하다. 민족주의에 바탕한 감정주의는 역사를 바로 이해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중국 지린성 지안현에 소재한 고구려 벽화 '무용총 수렵도'를 통하여 고구려를 알아보자. 전호태 울산대학교 교수는 무용총 벽화를 이렇게 설명한다.


 


"5세기 전반경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무용총의 <수렵도>는, 당시까지도 고구려에서는 새로운 예술 장르로 여겨지던 벽화 형식으로 드러난 고구려식 회화의 걸작 가운데 하나이다. 무용총 벽화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얼굴 선이 깔끔하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고구려인 특유의 얼굴을 지녔으며, 왼쪽 여밈과 가장자리 선을 특징으로 하는 고유의 옷차림을 했다. 자연스러우면서 강하게 뻗어나가는 필선, 제한된 표현 대상을 중심으로 화면을 짜임새 있게 구성하는 방식."(본문 29쪽 인용)


 


군사력만 강했다고 생각한 우리 의식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수렵도>에 대한 평가다. 고구려는 예술 세계에서도 중국에 뒤쳐지지 않았다. 그들만의 색체와 필력, 예술성을 바탕으로 죽음 이후의 세계, 내세를 믿었고, 그것을 벽화에 담았다. 고구려는 벽화를 통하여 자신들의 문화와 사회 전반을 담았다.


 


<김홍도 단원풍속도첩>으로 들어가보자. 위대한 미술품은 어쩌면 인민을 담는 것이 아닐까? 상상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인민 그 자체를 담는 것이 가장 위대한 것이다. 인민의 일상적 삶을 담은 것을 '풍속화'라 한다. 풍속화는 선사시대부터 인간의 삶이 우주와 종말을 다할 때까지 존속하는 유일한 그림으로 남아 있으리라 생각한다.


 


단원 김홍도는 풍속화를 대가다. 그가 그린 작품 중 <빨래터> <타작> <서당> <기와이기>는 우리 눈에 익숙한 작품들이다. 정병모 경주대학교 교수가 설명한 <빨래터와 <타작>을 감상해보자.


 


"<빨래터>를 보면, 점잖은 양반이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바위 뒤에 숨어 빨래하는 아낙들을 훔쳐보고 있다. 까닥하면 망신당하기 십상인 그림 속 양반처럼, 김홍도 역시 천박하다고 비난받을 만한 주제를 자신의 작품 속으로 과감하게 끌어들였다. <타작>에서는 벼 낟알을 털기에 여념이 없는 일꾼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고된 노동을 감내하고 있지만, 이를 감독하는 마름은 술에 취해 아여 비스듬히 누워버렸다. 상류 계층인 마름과 하류 계층인 일꾼들의 불공평한 관계를 유머스럽게 풍자했다."(본문97쪽)


 


<빨래터> 풍경은 천박함을 통하여 인간의 본능을 그대로 표현한다. 양반과 인민이 다르지 않다. 본능에서 신분차이는 없다. 김홍도는 인간의 본능을 그리면서 계급과 신분제를 비판한 것은 아닐까? 섣부른 생각이지만 나는 <빨래터>를 그렇게 읽고, 보고 싶은 마음이다. 인간 본능은 천박하지 않으며, 인민과 양반은 본능 안에서 서로가 하나임을 그는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물론 훔쳐보는 양반이 자신의 허벅다리를 드러내고 빨래하는 아낙보다 어쩌면 신분에서는 상위이지만 본능을 드러내는 입장에서는 하위임을 비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작>은 양반의 천박을 더 강하게 드러낸다. 놀고 먹는 것이 일하는 것보다 더 천박하고, 일하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노동 자체는 고귀하다. 노동을 천박한 것으로 생각하는 자들의 의식이 더 천박한 것임을 <타작>은 말하고 있다. 노동은 가치 있다. 노동이 억압으로 작용하지 않고, 노동 자체를 기뻐하고, 귀하에 여기다면 그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은 이렇게 많은 작품을 통하여 우리를 예술세계로 인도한다. 예술세계는 사람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매우 밀접하다. 사람과 밀접하지 않는 예술품은 결국 사라지고 만다. 사람과 함께 하는, 특히 인민과 함께 하는 예술품인 민속화는 더욱더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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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음악과 대중음악-그 허구적 이분법을 넘어서 | 예술 2007-08-1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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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예술 음악과 대중 음악, 그 허구적 이분법을 넘어서

최유준 저
책세상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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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음악과 대중음악-그 허구적 이분법을 넘어서]. 예술음악이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예술 영화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사실 음악과 미술, 영화에 '예술'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모든 음악이 예술이고 미술이 예술이고 영화이다. 예술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무리들은 어쩌면 자신들을 조금은 더 고상한 무리라 규정하고 싶은 이들이다. 지극히 고상한 이들 말이다.

콩나물 대가리만 조금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 이 책을 읽어면서 느낀 것은 예술이라는 딱지를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고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데카르트의 말이 생각난다. '가장 단순한 것에서 출발하라' 하지만 합리성, 근대성에 목숨을 거는 이들은 이를 복잡함으로 변절시켰다. 그래야 자기들이 계급구조하에서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어니까?

언제가 모임에서 이런 토론을 한 적이 있다. 몇 백만원짜리 오디오에 '뽕작'을 듣는 사람보고 무식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라고 비난했다. 그런 오디오는 고상한 '클래식'을 들어야 한다고. 나는 그 때 말했다. 그런 구별하지 말라고. 그것은 그가 음악을 좋아하는 방법일 뿐, 클랙식은 고상하고 뽕짝은 저급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실용음악과 순수음악. 1980년대 순수문학과 참여문학 논쟁이 있었다. 그런 구별이 무에 중요한가? 문학을 하는 사람 자체가 중요하다. 문학과 글쓰기를 하는 그 사람 자체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순수문학이네 하면서 글쓰면 그 문학은 글이 아니다. 참여문학을 쓴다고 말하는 이도 마찬가지다.

이제 다양한 음악의 장르, 장르에 따라 고귀함은 구별되지 않는다. 음악 자체를 사랑한다면 예술이네 대중이네 말하지 말고 음악 자체를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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