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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링과 스파링하다. | 기본 카테고리 2017-01-1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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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스파링

도선우 저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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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없는 줄 알았다. 이물(異物). 보육원 아이. 그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 번의 주먹질로 존재를 각인시키기까지 아무도 그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않았다. 그도 이상하게 생각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태어나 바로 버려진 아이. 그에게 주어진 이름이었다. 이름이 불리면서 그의 삶은 변화한다. 환경에 의해서, 주변 사람들에 의해서.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간다. 이물은 그 속에서 파괴되고 깨지며 괴물이 된다. 하지만 자신을 찾는, 살아있는 이물이 된다.

 

재미있다. 참 재미있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묵직함이 마음 속 깊이 가라앉는다. 무언가를 써보려 하지만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날것 그대로의 생생함이 우리 곁에 실재하는 모습들 속을 날카롭게 파고들며 헤집는다. 관자놀이에 큰 펀치를 맞아 잠시 휘청거리고 머리가 띵한 기분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시작(분명히 보았다. 고속터미널 화장실의 이야기에서), 그렇게 세상에 나온 아이가 거쳐가는 삶의 길, 그가 얽히는 사건들, 만남과 성취와 이별 등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아직 젊은 이의 삶의 이야기는 쉽게 넘길 수 없을 만큼 크고, 많으면서 정말로 무겁다. 그의 이야기 속에 존재하면서도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고 손가락질하는 많은 사람들처럼 내가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장태주. 그의 이름이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이름이다. 그가 이름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이겨내지 못하면 깨질 수 밖에 없는 세상과의 한 판에 거는 이름이다. 미스터 티라는 닉네임이 미스터 개새끼 티, 미스터 몬스터 티 등 여러 가지로 바뀌는 모습은 아프면서 슬프게 한다. 겉모습만 보고 지적하는 세상에 안타까움을 갖게 한다. 한 인간을 그리 쉽게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 수 있는 힘에 분노하고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감내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좌절한다.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든다. 여러 체급을 석권한 세계 챔피언. 꼭 그래야 했을까? 빠른 성공과 대비되는 좌절을 보여주기 위하여 너무 급한 그래프를 그려낸 것은 아닐까? 사람 냄새를 제대로 맡을 시간을 너무 빨리 지나가게 한 것은 아닐까? 장태주는 그러한 것도 누릴 수 없는 존재였을까? 여러 생각들이 뒤섞인다. 장태주 곁의 사람들을 그렇게 보낼 수 밖에 없게 한 사건들은 잠시 멈칫거리게 만든다. 한 사람이 기대고 있던 존재들을 인정사정 없이 그렇게 쉽게 보낼 수 밖에 없던 것은 장태주의 운명 때문이었다고 가볍게 넘길 수 있을까? 그러한 상황에서 대중이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그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감쌀 수 있는 것인가? 사각의 링 위이라는 공간이 아닌 외부 공간에서 휘두르는 주먹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장태주의 응징이라고 하기에 그는 너무 나약한 존재이다. 자신의 분노를 나타낸 것이라고 하기에는 그가 너무 불쌍하다. 이 많은 질문들에 답하는 것은 짧은 시간에 될 것 같지는 않다.

 

장태주의 주먹은 정직하고 묵직하다. 승부를 위한 주먹은 묵직하다. 옳지 못한 일에 대한 주먹은 정직하다. 과할 정도로 정직해서 탈이지만 말이다. 정직한 주먹질 후에 따르는 무력감은 오롯이 태주의 몫이다. 스스로 이겨내야 할 짐이다. 많은 것을 얻었지만 귀중한 존재들을 잃어버린 태주의 주먹은 슬픈 주먹이다. 상실감에 휘두르는 주먹질 속에 태주의 모든 아픔이 담긴다. 우리는 그의 상대가 주먹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만을 볼 뿐이다. 주먹질 속에 담겨있는 깊은 고통과 슬픔을 헤아리지 못한다.

 

소설의 앞부분은 저돌적인 힘을 보이는 인파이터의 모습이다. 피하지 않고 날것을 그대로 들이미는 전진뿐이다. 후반부의 사건들은 전반부만큼이나 강렬한 사건들의 연속이다. 하지만 전반부와 달리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아웃복싱을 생각나게 한다. 핵심을 찌르며 여러 상황을 만나는 아웃복싱. 너무도 견고한 세상의 여러 면에 대응하는 아웃복싱. 인파이팅이나 아웃복싱이나 세상을 마주하는 형태이다. 오늘도 세상과 단 한 번 밖에 없는 스파링을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정해진 답은 없다. 하지만 생각한다는 것사랑을 찾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권리이자 의무일 것이다. 답을 찾아가는 방법이다

 

해가 진 그늘 속에 홀로 핀 해바라기처럼 빛이 사라진 곳으로부터 고개를 돌리지 못한 채 어느 곳을 봐야 할지 알지 못했다. 어느 곳을 바라봐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스파링>과 한바탕 스파링을 하고 녹초가 된 기분이다. 지금은 알 수 없었겠지만 반드시 바라볼 곳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야 한다. 현실 속에서 견디며 사는 또 다른 장태주인 우리 자신을 위로하고 믿을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되어야 한다. 장태주가 바라보는 곳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그가 홀로 남겨지지 않았으며 결코 외로운 괴물이 아님을 알았으면 한다. 이 세상을 사는 우리들 또한 모두 이물이며 괴물일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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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피, 그 뜨거움과 쓸쓸함 | 기본 카테고리 2016-09-30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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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뜨거운 피

김언수 저
문학동네 | 201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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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다를 떠올린다. 바다는 많은 일을 알고 있지만 아무런 티를 내지 않는다. 많은 이들의 꿈과 좌절을 보았지만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그저 온몸으로 받아들여 조용히 간직할 뿐이다. 이미 사라진 이들에 관한 기억을 묻어가고 새로운 이들의 추억을 담아갈 뿐이다.

 

다시 보는 김언수 작가의 글이 반갑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과 떨어져 있는 듯하지만 그 어느 것보다 더 가까이 있는 삶을 무심한 듯 하면서도 묵직하게 그려낸다. 한없이 무겁고 축 늘어지고 피곤하기만 한 삶 속의 인물들이 내뱉는 막말과 농담 속에 진심을 담는다. 그저 유쾌하고 발랄한 삶을 지향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삶, 그 누군가의 삶을 그답게 그려낸다. 툭툭 던지는 말 속에 담긴 그 가벼움 속의 묵직함과 날카로움이 무척이나 좋다. 그저 흘려 보낼 수 없게끔 잡아 끄는 묘한 매력이 좋다.

 

사내들의 피 튀기는 이야기다. 폭력과 속임수와 야합과 배신이 난무하는 이야기다. 그 속에 서있는 한 인물의 이야기다. 한 구역 내의, 그 구역 속의 작은 구역 내에서 두 발을 굳게 딛고 버티어내기 위해 피 튀기게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다. 조직과 조직을 구성하는 이들의 목숨을 건 치열한 싸움은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고,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는 싸움이다. 철저한 계획과 전략에 따르는 무시무시한 싸움이다. 살아 남는 자 만이 얻을 수 있는 것들을 걸고 하는 싸움이다. 그렇다고 이긴 자가 영원한 승자로 남지 못한다. 누군가가 끊임없이 그 자리를 넘보기 때문이다. 그들의 참모습을 알지 못한다. 작가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따라갈 뿐이다. 인물과 사건들의 팽팽한 긴장감은 읽는 속도를 늦춘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대치하는 모습에서 역설적으로 안도감을 느낀다. 서로 웃고 떠드는 모습에서 그 속에 숨겨진 욕망이 분출되는 시간이 가까워짐을 느낀다. 그렇게 조임과 풀어짐이 반복되며 한 사내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는 전개된다.

 

작가의 전작 속 캔 맥주들과 산 속의 소각로에서 느꼈던 고독과 허무함을 다양한 종류의 술들과 다른 장소와 소재들 속에서도 여전히 느낀다. 시공간을 넘으며 수 없이 얽힌 관계는 그러한 고독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한다. 자신이 딛고 서 있는 장소와 시간은 오롯이 자신 만의 것이기를 바라지만 결코 그러하지 못하다. 그것이 한 사내의 행동을 정당화 시키지는 않는다. 그 또한 정당함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더욱 쓸쓸하다.

 

살아있는 동안의 피는 뜨겁다. 차가워짐은 죽음을 의미한다. 뜨거운 세상은 뜨거운 피의 존재들로 가득하다. 뜨거운 존재들이 뜨거운 세상에서 지지고 볶아댄다. 자신이 볶음의 재료가 되는지도 모르고 볶아댄다. 그러면서 살아간다. 자신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는 순간은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다. 그 조차 느끼지 못하고 떠나는 생도 많다. 사내는 밀려드는 사건 속에서 끊임없이 자문한다. 반전을 거듭하는 가운데 맺어지는 결과는 옳고 그름을 떠나 그러한 생각의 산물이다. 이에 대한 평가는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다. 사내의 방식임을 인정하여야 한다.

 

건달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조용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이를 짓밟으며 나의 이익을 추구한다. 결코 그러한 행동이 건달들의 행동과 같지 않다고 강변한다. 그들은 나와 다른 부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칼을 휘두르고 주먹을 쓰지는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무언의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누구도 배신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속이지 않았다고 스스로 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눈 앞에 닥친 상황에 바로 몸으로 반응하지는 않더라도 음흉하게 무슨 꼼수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언가를 손에 쥐었지만 소중한 존재를 잃은 한 사내의 쓸쓸한 뒷모습에 가만히 나의 마음을 겹쳐본다. 뜨겁다. 여전히 뜨겁다. 그의 피는 여전히 뜨겁다. 과연 이 사내가 좋은가 이 사내의 삶이 좋은가. 작가가 묻는다. 싫다. 사내의 뜨거운 피 속의 쓸쓸함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사내가 잘못된 삶을 살고 있다고 하지는 못한다. 나 또한 이제까지의 삶이 그들의 이야기와 별로 다르지 않았음을 자각한다. 삶이 그러하다. 자신 만이 진실되고 깨끗하다고 자랑할 것도 아니다. 자신 만이 치사하고 더럽다고 스스로를 낮출 것도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들이 그들의 세계에서 생각하고 겪는 일이나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생각하고 겪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명제는 영원히 지속된다. 정답은 없다. 자신 만의 해석, 자신 만의 방식으로 그 명제에 접근하고 풀어갈 뿐이다.

 

손바닥으로 표지를 가만히 쓸어본다. 말라서 엉겨 붙은 핏덩이의 느낌이다. 뜨거운 피를 가졌던 이들의 기구한 이야기를 품은 핏덩이다. 우리가 쉽게 마주하지 못한 곳, 의식적으로라도 거리를 두고자 했던 곳에서 나름대로의 꿈과 야망을 이루려 했던 이들의 뜨거운 핏덩이다. 그 뜨거움이 쓸쓸함과 함께 손바닥을 통해 가슴 속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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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그 속의 연(戀) | 기본 카테고리 2015-08-19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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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가짜 팔로 하는 포옹

김중혁 저
문학동네 | 2015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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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연애소설집? 다른 의견도 있을 수 있고, 저자는 상술이라 했으나 이 소설집은 내게는 연애소설집이 맞다. 연분을 나타내는 실과 말과 마음이 모여있는 연()을 나름대로 해석해본다. 매이고 얽힌 이들의 관계 속에서 잊고 있던 감정을 들추며 새로운 감정의 흐름을 느낄 수 있기에 내게는 연애소설집이다. 황당할 수 있는 기발함과 유쾌함 속에서 마음으로 연결하는 진지함을 본다. 단순히 남녀 간의 사모하는 마음을 그려내는 연애 소설이 아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슬픔 속에서도 서로 어루만지는 사랑의 마음을 느끼는, 관계가 주는 희망의 연애 소설이다.

 

저자의 상상력에는 항상 두 손을 든다. 많은 관심과 지식에 기반을 둔 기발함이 곳곳에서 어김없이 발휘된다. 소설의 제목보다 강의 제목으로 어울릴 듯한 단어들을 제목으로 사용한다. 헌데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제목이 말하는 것 이상의 비율과 힘을 보여준다. 이런 기발함 속에서도 진지함을 담아낸다. 흔들리는 땅 위에서, 곳곳에 구멍이 뚫리는 급박함 속에서,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헛된 꿈인 것처럼 펼쳐지는 사건들 속에서 자신을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내면서 누군가의 손을 구하고 누군가에게 손을 내민다.

 

첫 작품부터 뒤통수를 친다. 포르노 영화라니. 그 속에서 상황과 비율이라니. 16:9 화면으로만 보아야 할 것 같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어 데이터가 필요한 것이다. 외로워서 그럴 것이다. 다들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상황과 비율, 41)

 

무수히 만들어지는 비정형 데이터들로부터 의미 있는 정보를 찾아내는 빅데이터라는 용어가 어느 사이에 우리 곁에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데이터를 외로움과 서로의 위치 확인으로 연결한 생각에 무릎을 친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데이터는 정말 외로움을 숨기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데이터가 누군가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데 사용된다는 것은 현재를 살고 있는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답답한 방을 벗어나 시원한 바다가 있는 도시로 향하는가 했더니 여전히 방 안이다. 한 가수의 실종과 이를 찾아나선 이들의 무작정 여행. 우리가 관계를 맺는 대상이 서로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뒤집는다. 매체를 이용한 관계 또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매체 속의 주인공은 뜻밖의 말을 한다.

 

모든 창문에는 비밀이 있다. 그 비밀이 늘 부러웠다. 비밀을 가질 수만 있다면 누군가 바깥에서 자신의 창문으로 돌을 던져도 상관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벽을 쌓는 것보다 창문을 만들기가 훨씬 어려웠다. (픽포켓, 87)

 

그 또한 사람이었다. 그리운 추억을 회상하는 사람이었다. 이미 모두에게 까발려져 자신의 것을 갖지 못한다는 의식이 창문 안의 비밀을 생각하게 한 것이 아닐까? 조용히 창문을 닫아 그 만의 비밀을 지킬 수 있게 하고 싶다.

 

소설집의 제목인 소설이 뒤따른다. 제목 만으로 어떤 내용인지 상상해본다. 가짜 팔, 포옹. 다른 이를 감싸는, 혹은 다른 이가 나를 감쌀 때 감은 팔이 가짜라니. 섬뜩하기까지 하다. 소중한 순간에 나를 감싼 존재조차 없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아찔하다. 알코올에 의지하여 타인의 이야기를 빌려 자신을 이야기 하는 이에게서 혼자인 존재로 느끼는 우리를 비추어 본다.

 

고통 같은 것은 말입니다. 절대 얼굴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게 다 어디 붙는지 아십니까? (117)

여기에 왜 맺히는지 압니까? 온도 차이 때문입니다. 나는 차가운데, 바깥은 차갑지 않아서. 나는 아픈데, 바깥은 하나도 아프질 않아서, 그래서 이렇게 맺히는 겁니다.(가짜 팔로 하는 포옹, 117)

 

그를 감싼 고통을 알아채는 것은 쉽지 않다. 내면의 아픔까지 느낄 수 있으려면 진짜 팔로 꼬옥 껴안아야 한다. 맺힌 것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뜨겁게 안아야 한다. 그래야 그가 더 이상 악몽에 시달리지 않게 될 것 같다. 나 또한 맺힘을 감추지 않을 것 같다.

 

땅 속에서 뱀들이 꿈틀거린다. 뱀들의 움직임은 땅 위의 모든 것들을 뒤흔든다. 건물뿐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전부를 뒤흔든다. 이 속에서 나는 잊고 있던, 아니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진실을 보게 된다.

 

정민철은 말문이 막혔다. 자신의 눈에서 뭔가 발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친구들에 대한 걱정이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보다 이상한 호기심과 설명할 수 없는 쾌감 때문에 여기에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인지도 몰랐다. (뱀들이 있어, 149)

 

그랬다.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그렇게 보았다. 내 자신이 위선적인 모습을 보였던 것이 틀림없다. 아프다. 뱀들의 꿈틀거림 위에서 나를 다시 발견하는 모습은 불안하다. 그래도 믿음과 기댐 속에 다시 잠시나마 평온의 시간을 생각한다.

 

명사 분실증. 심각한 질병이다. 병의 원인은 모른다. 다만 현상이 있을 뿐이다. 나이가 듦에 따라 생기는 건망증과는 다르다. 단지 명사 만을 기억하기 어려워할 뿐이다. 과연 이런 병이 있을까? 저자가 만든 병이다. 명사 대신 다른 단어를 넣어본다. 의욕, 감정, 시간 등등.

 

깎지 낀 손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시간이 보이질 않아요. (종이 위의 욕조, 189)

 

명사를 빼고 읽어본다아무리 들여다봐도 보이질 않아요.

무엇이 보이질 않는 걸까? 무엇을 보려고 했던 것일까? 여러 작품들을 전시 공간에 배치하는 주인공은 그 공간 속에서 자신 만의 시간을 만들어내려 한다. 관객들이 관람 동선을 따르면서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을 찾기를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언가 잊은 듯한, 무언가 모자란 듯한, 마음 한 구석의 빈 공간은 여전하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그 공간을 함께 할 수 있는 이가 주위에 있으니.

 

보트가 가는 곳이라는 제목의 소설에서는 여러 영화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하늘에 무수히 떠있는 비행물체, 그들의 공격, 땅에 생기는 많은 구멍들과 그 속에 빠지는 사람들, 안전한 곳을 찾아 피난하는 사람들, 모두 뒤섞이면서 혼돈스런 장면이 연상된다. 그 속에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크게 확대되어 들린다.

 

며칠째 모든 삶의 마지막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나는 가끔 개인의 종말에 대해 생각해보곤 했다. 그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딱히 생각하고 말 것도 없었다.

바닷물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 바닷물의 일부가 되는 물의 심정, 그런 게 한 개인의 종말일 것이다. (보트가 가는 곳, 222)

 

이처럼 무심하게 종말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모든 것을 포기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바로 삶 속에서 만남이 주는,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설렘이 주는 기대감으로 이러한 무력감을 날려버린다. 다행이다. 바나나와 보트라는 단어에서 물 위에서 힘차게 전진하는 바나나 보트가 생각난다.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며 붙어 있지만 기어이 떨어지고야 마는, 그리고 즐겁게 웃어대던 바로 그 바나나 보트이다. 떨어짐은 언젠가는 맞게 되는 것이지만 보트를 타기 전에는, 보트 위에 있는 한은 즐거운 그런 마음을 기억해본다.

 

다음은 돈을 위해 차량으로 뛰어드는 무지막지한 이들의 무서운 이야기다. 그들은 힘과 가속도를 정확히 계산하고 행동하여야 좋은(?) 결과를 얻는다. 그런데 그 결과라는 것이 참 슬프다.

 

좋았던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함과 하루라도 빨리 다음 생으로 넘어가고 싶다는 조급함 사이의 균형 속에서 텅 비어 있는 한 가운데 마음 (힘과 가속도의 법칙, 235)

 

불안정한 마음 상태의 표현이다. 한 가운데가 비어있다. 과연 어떤 것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할까? 삶의 중심이 되는 것이 분명할 텐데 그것이 무엇일까? 간절함은 간절함으로 그칠 뿐 남는 것은 조급함이다. 조급함이 가져오는 결과는 무의미해질 수 있다. 모든 것을 잃었다 하더라도 조급함의 결과는 또 다른 간절함을 바랄 뿐이다.

 

소설집의 마지막 소설은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요요는 한 번쯤은 가지고 놀았을 법한 놀이기구이다. 줄을 따라 바퀴가 이동하는데 요요는 다시 돌아온다는 필리핀 언어라고 한다. 다시 돌아옴의 의미가 새롭다.

 

나는 관계를 부수는 사람이다. 고리를 끊는 사람이다. (요요, 265)

 

관계를 부수는 것은 모든 것을 깨뜨린다는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을 파괴하고 만다는 것이 아닐까? 아니다. 주인공은 오히려 관계를 찾아 맞추고 끈질기게 고리를 잇는 사람이다 시계를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계는 부품들의 관계 속에 동작한다. 초침, 분침, 시침이 있는 경우 그들 사이의 고리를 유지하며 시간을 나타낸다. 그것들이 원하지 않았어도 시계는 시간을 보여준다. 그런데 왜 관계를 부순다고 했을까? 세상에 깔려있는 기존의 생각을 부순다는 의미는 아닐까? 그러나 부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것이 그 자리를 차고 들어가야 한다. 주인공이 만들어내는 시계가 그러하다. 같은 시간을 보여주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준다. 부서진 관계 속에서 또 다른 관계가 생김을 보여준다.

 

마음의 상처를 가진 여러 사람들이 각 장을 차지한다. 대부분 이런 경우 슈퍼맨 같은 이가 나타나 이들을 구원하는 것이 극적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또 다른 상처를 가진 이들을 함께 놓는다. 서로의 상처를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희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이들을 함께 하게 한다. 서로에게 말을 걸거나 손을 내밀거나 아니면 조용히 마음 속에 담으면서 서로의 상처를 지켜볼 수 있게 한다. 상처를 치유한답시고 나대지 않는다. 다만 바라볼 뿐이다. 그것 또한 치유의 방법이다. 그들이 함께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그 시간 속에서 공감의 깊이는 더욱 깊어간다.

 

빈틈이 많이 느껴진다. 글의 짜임에 빈틈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읽는 이가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뜻이다. 툭툭 던지는 대화 속에서, 때로는 말도 안 되는 듯한 상황 속에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글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비어 있는 마음을 가진 이들이다. 이성과의 만남과 헤어짐 때문이건 다른 이유 때문이건 마음 속에 빈 공간을 크게 느끼는 이들이다. 이러한 그들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뜻밖의 상황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보며 마음의 공간을 채워가는 시간을 느낀다. 상실의 아픔을 한 구석에 담고 있는 이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들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상처까지도 어루만진다는 것을 모르는 채.

 

다시 한 번 읽으면 또 다른 생각을 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를 감싼 포옹에서 허전함을 느낀다는 것은 나 또한 그들을 제대로 껴안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아픈 이들이 서로 감싸는 이야기 속에서 관계의 의미를 다시 새겨볼 수 있던 멋진 연애소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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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과 음악이 함께 하며 삶의 가치를 찾는 여정 | 기본 카테고리 2013-08-0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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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억관 역
민음사 | 2013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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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느낌이 온 몸을 감싼다.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에 꽉 사로잡히는 느낌이다. 한 젊은이의 삶에 대한 것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이 외면하였던 것들에 대한 지적 때문이다. ‘자신과 세계와의 균형이라는 문구로 표현되는 삶의 자세에 대한 각성 때문이다. 다자키 쓰쿠루라는 젊은이와 그를 둘러싼 이들의 삶, 그 속에 담겨있는 상실의 아픔과 고민, 꿈과 이해와 화해에 대한 이야기, 지나온 과거 속 역사를 바로 봄으로써 현실을 올바로 지탱해나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제목만으로는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예측을 할 수 없었다. ‘한 사람의 그저 밋밋한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하지만 몇 장을 넘기자마자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색의 이야기와 바탕에 깔리는 음악의 소리에 몸과 마음을 맡길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이름에 색을 나타내는 것이 없는 것에 신경 쓰며 자신이 아무런 색을 나타내지도 못하며 자신의 존재조차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다자키 쓰쿠루. 그런 사람의 곁에 있는 색깔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색이라는 고리는 그들 사이를 엮기도 하고 해체시키기도 한다. 그들을 연결하던 색은 그대로 남으면서도 분리와 혼합을 반복하며 또 다른 발전을 한다.

 

다자키 쓰쿠루, 철도역사 설계를 하는 36, 미혼 남성. 언제까지나 함께 할 것 같았던 고등학교 친구들로부터 이유도 모른 채 따돌림 당한 후 그의 생활은 완전히 달라진다. 심각하게 죽음과 마주하기도 한다. 어느 순간 죽음의 유혹에서 벗어나 학교를 마치고 견실한 사회 생활을 하고 있으나 가슴 속 한 귀퉁이에는 여전히 풀지 못한 과거가 자리잡고 있다. 과거로부터의 무의식적인 회피는 쓰쿠루의 존재감을 희석시키고 새로움으로 나아감을 방해한다. 쓰쿠루는 여자 친구 사라의 도움으로 과거의 일을 풀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친구들과 만나며 하나씩 밝혀지는 비밀, 핀란드까지 찾아가 만난 마지막 친구 구로. 그녀는 색이 들어있는 성이 아니라 이름으로 불리우기를 원한다. 그들도 색으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고 싶어했음이다. 서로의 마음들을 알며 서로 안는다. 그 동안 불명확하고 엉켜있던 것들을 모두 밝히고 풀어내듯. 쓰쿠루는 자신을 누르며 자신 속에 담겨있던 것들을 바로 볼 수 있는 힘을 찾으며 되돌아보게 된다.

 

읽는 내내 몸이 제자리에 있지 못한 느낌을 받는다. 자신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깊이 생각하는가 하면 어느 새 자신의 세계를 벗어나 다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쓰쿠루의 행동에 내 몸이 실렸다. 어찌할 바 모르며 당황하는 모습, 자신의 실제 모습을 찾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자꾸만 되돌아보는 모습도 보았다. 자신의 흘러간 과거 속에 자신을 그렇게 만든 원인이 있으리라는 생각에도 과거 속으로 과감히 뛰어들어 열어 보지 못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이미 여러 해가 지난 후까지도 그를 붙잡고 있는 것을 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조바심도 보았다. 이것이 어찌 쓰쿠루에게만 해당될 것인가? 쓰쿠루의 곁에 있던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서로의 상처를 알면서도 보듬어주지 못하며 지냈던 그들의 과거, 그들은 그것을 지나간 채로 인정하면서도 풀어낼 기회를 찾고 있었다.

 

색과 음악. 음악이 색과 함께 한다. 색이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고정적 관념이라 하면 음악은 연주하는 이에 따라 달라지는 유동적 관념이다. 색이 삶의 바탕에 뿌려져 있었다면 음악은 삶을 운반한다. 색채는 세상의 온갖 것들을 표현한다. 빨강과 파랑으로 대변되는 세상살이, 흰색과 검은색으로 표현되는 삶, 하이다를 통하여 만나는 회색과 녹색, 사라진 흰색과 다른 장소에 존재하는 검은색, 검은색은 흰색을 그리워한다. 흰색과 검은색은 서로 섞여 회색이 되고 배합 농도에 따라 수 많은 색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이는 다양함과 어울림이다. 삶은 이러한 다양함 속에 존재한다. 깊게 고민하는 사이에서도 유지해가는 다양함의 삶이다.

 

음악 또한 그들 사이를 이어준다. ‘순례의 해는 만남을 위한 떠남이다. 이 소곡집의 제1년 스위스에 들어있는 곡, ‘르 말 뒤 페이’. 향수 또는 멜랑콜리라는 의미이지만 전원 풍경이 사람의 마음에 불러 일으키는 영문 모를 슬픔 또는 우울이라고 표현한다. 시로의 연주, 하이다의 LP를 통하여 르 말 뒤 페이는 쓰쿠루의 마음 속에 자리한다. 쓰쿠루는 하이다를 통하여 색과 음악의 조화를 만난다. 슬픔과 우울이 주는 어두움의 느낌은 흰색과 검은색이 농도를 바꾸어 녹아 드는 수많은 단계의 어둠과 맞닿는다. 색과 음악의 완벽한 조화이다.

 

저자는 여러 사람을 통하여 삶의 가치와 삶의 자리에 대해 말한다. ‘논리의 실을 활용하여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자기 몸에 잘 맞춰 바느질로 붙여가는 거야(116)’ 미도리카와의 입을 통하여 삶에는 살 만한 가치가 있음을 확실히 선언한다. 이는 하이다의 아버지, 하이다를 통하여 쓰쿠루에게 전해진다.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상황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곁에 왔다가 아무 말 없이 떠난 하이다는 쓰쿠루의 또 다른 면으로 보여진다. 하이다가 떠남으로써 쓰쿠루는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함을 느낀다. 아무 색이 없는 듯하지만 많은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여백을 가졌음을 미처 깨닫지 못함을 깨우쳐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들어감과 나옴, 밀림과 당김, 조임과 풀림이 몸에 그대로 느껴지는 소설이다. 죽음을 말하고, 죽음에서 벗어나고, 또 세상에서 힘겹게 지내면서도 자신의 길을 찾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바심을 내기도 하고 옛 친구를 만나 서로 꼭 껴안는 모습에서는 화해와 희망의 강렬한 메시지도 읽는다. 옛 친구들의 연락처를 알아내며 쓰쿠루가 현실을 충실히 살 수 있도록 하는 과거의 열쇠를 건네주는 사라에게서 우리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도움의 손길을 보기도 한다.

 

쓰쿠루는 아직 망설인다. 자신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의 입구에서 망설인다. 그러나 그 위로 부는 자작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 속에서 허리를 곧게 하고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는 쓰쿠루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쓰쿠루가 설계한 멋진 역을 만나 그 공간에서 자유로이 순례를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 내가 있던 자리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자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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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속에서 찾는 내 일, 그리고 내일 | 기본 카테고리 2013-07-1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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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김난도의 내일

김난도,이재혁 공저
오우아 | 2013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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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들의 아픔을 이야기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주었던 힐링 전도사 김난도 교수의 새 글이다. 이전의 메시지들이 공허한 메아리로 남게 하지 않을 것을 마음 속에 담아 두었던 저자가 일자리 찾기라는 항해를 향한 키를 잡았다. 청춘들을 좌절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 일에 대하여 반드시 알아야 할 메시지를 전한다. ‘청춘은 희망적이다,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들은 눈 앞의 오늘을 걱정하는 이들에게 언제까지 긍정적으로 희망만 가져야 하는가라는 의문과 공허한 울림 만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걱정하면서도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도는 이들에게는 새로움에 대한 생각이 떠오를 리 없고 신세계에 대한 눈이 열릴 수 없다. 저자는 새로움과 다름에 대한 길을 보여준다. ‘이라는 큰 명제를 붙들고 하나씩 살펴나간다. 물론 저자가 일자리를 직접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KBS 이재혁 PD와 함께 한 일자리에 관한 탐사를 통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치밀하게 관찰하고 이해하며 이를 바탕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접근 전략을 제시한다. 일자리를 구하는 이들이나, 일자리 창출을 고민하는 정책입안자들 모두 흥미롭게 보아야 할 내용이다.

 

어떻게 지내?’ ‘무슨 일 해?’ 직업을 가진 이들은 바쁘다’ ‘이런 일을 하고 있는데 별로야등의 답을 한다. 직업을 가지지 않은 이들은 곤혹스런 표정으로 얼버무린다. 일이 무엇이길래 이런 차이를 보이게 할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밥벌이는 하냐라는 경제적인 생존 수단으로서의 일이다. 밥벌이로의 일은 한 사람을 외형적으로나마 버티게 하는 존재 의미가 되기도 한다. 일이 없다는 것은 생존 수단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고 자신의 존재 의미를 잃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단순히 생존 수단으로서의 좋은일은 그저 돈을 잘 벌고, 오랫동안 자리를 보존할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때의 일은 극히 작은 의미를 가질 뿐이다. 일은 있지만 자신은 존재하지 않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부분을 주의 깊게 살펴본다. 급격히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기존의 좋은일자리, 단순히 경제적인 생존 수단으로의 일자리가 아닌 자신이 즐기고 만족하며 더 나아가 주위를 바꿀 수 있는 나의일자리를 살펴본다.

 

저자는 매년 말, 다음 해에 예상되는 트렌드를 단어로 풀어내는 일을 해왔다. 항상 기발함과 시의성에 놀라곤 했다. 일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그 기법을 적용한다. 내일과 내 일의 의미를 한 단어에 담으면서 트렌드와 대응 전략을 풀어낸다. 대표되는 의미들은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열거해본다. 몇 개의 단어로 모든 것을 정의하는 것은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큰 흐름을 보고 그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꼭 기억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FUTURE MY JOB

F: From White-Collar to 'Brown-Collar' (브라운칼라 청년들이 몰려온다)

U: Utopia for 'Nomad-Workers' (당신은 노마드 워커입니까?)

T: Towards Social Good (착한 일 전성시대, 소셜 사업을 주목하라)

U: Unbelievable Power of Fun (여유경영의 힘, 적게 일하고 많이 번다)

R: Return to Local Places (컨트리보이스의 시대가 온다)

E: Entrepreneurship for Micro-Startups (마이크로창업이 뜬다)

 

M: Mismatch, Good-bye! (굿바이, 미스매칭! 구인구직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Y: Your Brand is Your Power (당신만의 브랜드는 무엇입니까?)

J: Joy of Learning (배움은 계속돼야 한다, 쭈욱 !) 

O: Over the Global Border (일자리 혁명, 글로벌 잡마켓을 잡아라)

B: Business for Happiness (돈을 위해 일하지 말라, 행복을 위해 일하라) 

 

 ‘FUTURE’로 보여지는 트렌드들 속에서 우리는 맘껏 상상의 날개를 펼 수 있다. 자신이 관심 있어 했던 것이 있다면 더욱 눈길이 갈 것이다. ‘좋은 일이라는 관념 속에 있던 짐을 벗고 자신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온갖 일을 생각해보며 ‘MY JOB’을 만나볼 수 있다. 글로벌 세상으로 뛰어 들건 노마드 워커가 되건 개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건 아니면 직장 생활을 하건 나만의 일을 찾으면서 방향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방향성 없는 움직임은 자신을 바로 알지 못하게 한다. 이후 중요한 것은 행동이다. 세계 곳곳에서 우리와 같은 고민거리를 안고 있는 이들은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여러 사례들을 통하여 보여준다.

 

여러 나라, 여러 젊은이들, 여러 기관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많은 사람을 만난다. 많은 일들을 본다.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모두 일에 관하여 고민하는 이들이고, 고민하는 이들이 하는 일들이고, 고민하는 이들의 이야기들이다. 그들이라고 일자리에 관한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이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가려고 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들이 처한 현실에 따라 접근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보다 쉽게 일자리에 대한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이들도 있다. 그런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가는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들이 사회의 트렌드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고 일하는 사람을 구하는 곳이나 일자리를 구하는 이들이나 반드시 인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일자리에 대한 고민들이 어느 누구 한 사람의 힘으로만 해결될 수는 없다. 관습, 제도, 사회 그리고 각 개인의 행동들이 함께 역동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자신을 다시 되돌아보고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자 노력하고 실천하는 이들을 만난다. 비록 미미한 시작일 뿐이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어 나가는 데서 얻는 기쁨을 표현하고 열정적으로 몸을 던지는 이들을 만난다. 그들만의 이야기로 넘기기에는 너무도 치열하게 일을 만들고 찾고 있다. 단순히 자신의 안락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사회를 움직이는 조그만 힘이 되기 위한 일을 만들고 있다. 내가 그 나이에 과연 저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그들은 보장받은 앞날을 위한 자리를 박차고 자신이 즐기고 만족할 수 있는 일들을 찾는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 가는 세상에 만족하며 기대를 한다. 단시일 내에 결과를 얻을 수 없는 일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열정을 바치며 한걸음씩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

 

크리스 길아보가 말하는 진짜 사업의 가치에 대한 정의를 되새긴다.

 

간단히 말해 가치 있는 일이란 사람들을 돕는 일, 특정 집단의 사람들을 위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뭔가를 하는 일, 누군가의 삶을 더 쉽고 좋게 만드는 일, 그리고 그들의 삶에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일을 의미해요. (234)

 

자신을 위해서도 일을 하지만 세상을 위해서도 일을 한다. 좁은 시각으로는 세상을 볼 수 없다. 변화 속의 다양함을 바로 볼 때 자신의 일을 찾을 수 있다. 변화의 핵심과 이에 대응하는 적절한 전략을 제시한 점에서 <김난도의 내:>은 일자리 만들기의 새로운 막을 올렸다고 볼 수도 있다. 저자는 청춘의 사명과 우리 사회의 의무를 함께 말한다. 이미 청년 시대를 훨씬 넘긴 한 독자이지만 새롭고 강한 힘을 주는 저자의 끝 말을 반복하며 내일을 그려본다.

 

청년들이여, 내 일이 이끄는 삶, 내일이 이끄는 삶을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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