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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예쁜 것, 넉넉함 속에서 더욱 빛나는 | 기본 카테고리 2012-11-17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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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상에 예쁜 것

박완서 저
마음산책 | 2012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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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전, 도서전에서 열렸던 작가와의 대화 행사를 기억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책에 사인을 해주고 카메라 앞에서 함께 웃으며 사진을 찍는 모습을 멀리 떨어져서 보았다. 다음 해 어느 작가의 강연 행사장에 조용히 계신 모습을 보았다. 몸이 많이 안 좋으신 지 힘들어 하시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2011년 1월 타계 소식을 들었다. 모든 이가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며 한 시대를 살고, 기록한 작가의 마지막 길에 고개 숙였다.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도 담담히 세상을 바라보고, 또렷이 기록한 이에 대한 추억은 자꾸만 새롭게 떠오른다. 직접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고 단지 작품을 통해서만 만났을 뿐인데 작가에 대한 이런 단편의 기억들이 뒤섞이며 뚜렷이 마음 속에 남는다.

 

지난 5월. 봄이라고는 했지만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는 것은 한 걸음 앞선 계절을 느끼게 했다. 영인문학관에서 ‘엄마의 말뚝’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고 박완서 작가 1주기 전시회를 찾았다. 전시장 안은 난향이 그윽했다. 단순히 난초의 향기가 아니라 전시장 한 가득 채운 박완서 작가의 향기였다. 작가의 원고, 생전의 모습들, 여러 작가들이 회고하는 박완서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넘치고 있었다. 고인의 마음과 남아있는 이들의 추억이 가득했다. 작가가 남긴 자취를 찾으며 사진 속의 해맑은 미소 앞에서 글 속에 담긴 ‘사람’을 생각했다.

 

더 이상 그의 모습은 볼 수 없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기억조차 희미해질 것이다. 그러나 글이 남아 있는 한 우리는 고인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과거에 대한 아련함으로 남을 지라도 작가가 던져 놓은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은 결코 퇴색되지 않을 것이다. 이 책 속에서 이것이 확실함을 다시 보았다.

 

세상에 예쁜 것.

 

예쁜 제목이다. 지인을 병문안 하던 중, 병실에서 포대기 밑으로 보이는 아기의 발을 보고 떠오른 생각이라고 한다. 고목의 뿌리 곁에서 솟아오르는 새싹처럼 생각하니 더욱 예쁘다고 했다. 새로운 생명의 자라남은 언제나 예쁘다. 하지만 내게는 이 책이 ‘세상에 예쁜 것’으로 다가왔다. 이 또한 세상에 없는 작가와 작가가 남긴 자취가 중첩되었기 때문일까? 박완서 작가가 남긴 한 편 한 편의 글들이 딸의 손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여전히 우리 곁에서, 때로는 자상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이야기해주는 어른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작가의 모습, 생활인의 모습, 지인에 대한 추억 들이 공간을 채운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내용들도 있고 새롭게 보는 내용들도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진실되게 담았다. 너무도 솔직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보이는 작가에게 당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당혹스러움이 불편함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간의 글들에서, 그간의 말들에서 작가의 삶이 평범함과 격랑의 파도 사이를 오갔고, 그것을 진솔하게 이야기 해왔던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혼란의 시기에 했던 말들과 행동에서 ‘그 또한 한 인간이구나’를 느낀다. 그렇기에 작가가 준 한 마디 한마디는 내게 생활 속의 깨달음을 준다.

 

순우리말 중 제일 좋아하는 말로 '넉넉하다'라는 단어를 든다. 넉넉지 않은 현실 속에서 삶의 끈을 찾아 알려주던 이가 던지는 ‘넉넉하다’라는 단어는 더욱 실감 있는 단어로 태어난다.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커다란 힘이 된다. 세상에 예쁜 것들이 글 속에 넉넉히 담겨 있다. 작가의 마음이 예쁜 것을 찾아낸다. 바람 한 줄기, 꽃잎 한 잎, 땅을 뚫고 솟아나는 잡초의 모습에서도 작가는 예쁜 것을 찾아낸다. 모습이 예쁜 것이 아니라 예쁜 의미를 찾아내서 그 의미를 그대로 전한다. 박완서 작가의 생활 자세였음에 의문을 갖지 않는다.

 

단편적으로 여기 저기서 들었던 이야기들이 한 곳에 모두 모여 커다란 강을 이루고 있다. 작은 일들 속에서 전체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글들이다. 아무리 작게 나뉜 생각의 조각들이어도 원래의 생각을 잃지 않는다. 그것이 삶의 본질이기 때문일까?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기 때문일까? 다시 한 번 ‘세상에 예쁜 것’이라는 말에 공감할 수 있다. 그만큼 작가로서의 삶, 생활인으로서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자신의 삶 속에 녹아 있던 것을 바탕으로 여러 층의 사람들에게 조언을 준다.

 

어쩌면 이렇게 어느 것 하나 빠뜨릴 수 없는 글을 만들어낼까? 글재주만으로는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것들이다. 작가는 헛된 마음이 있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물에 대한 진실한 마음이 더욱 크기에 가능한 것들이다. 작가의 글은 명치 끝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참아내며 쏟아낸 글이라는 평이 기억이 난다. 그러한 아픔을 나는 경험하지 못했다. 다만 작가와 같은 시대를 조금이나마 공유했다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작가의 눈과 말과 몸짓은 아픔 속에서도 바로 곁에 있는 것처럼 따스한 온기를 지닌 채 나를 감싼다.

 

과연 내게 세상에 가장 예쁜 것은 무엇일까? 과연 예쁜 것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의 마음은 갖고 있는 것일까? 그토록 엄청난 시련 속에서 일어나 또다시 희망의 글을 던져준 작가를 그리워하는 것 만으로 소임을 다한 것일까? 예쁜 것은 생활 속에 있다. 동떨어진 곳에서 찾을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랑의 마음이 사물을 예쁘게 만들고 세상을 예쁘게 바라본다. 그래서 넉넉하다라는 단어를 새롭게 본다. 한참 못 미치지만 그래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련다. 살아 있는 세상 속에서, 웅크리지 않고 세상 어느 곳에라도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낼 수 있는 이가 되리라 다짐해 본다. 책을 다시 펼친다. 세상에 예쁜 것, 내게는 작가의 손이다. 그 손 끝에서 나온 글이다. 글이 모인 바로 이 책이다.

 

이제 그는 이곳에 없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슬프다. 그러나 작가의 글과 소리는 남아 있는 이들이 슬픔 속에 머물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작가의 글로써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렇게 예쁜 글들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속삭여본다. 세상에 예쁜 것. 작가의 글이었고 작가의 마음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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