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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저/이한중 역
한겨레출판 | 201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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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학교 다닐 때가 아니었나 싶다. [동물농장]이나 [1984]와 같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을 언제 처음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내가 아는 작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다 오래전에 자신이 살았던 시대 광부들의 삶과 사회상을 보고 들은 대로 기록한 르포르타주 [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읽으며 조지 오웰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그래서 양차대전 기간 중 당시 사회를 위협하던 전체주의 풍토를 비판한 [동물농장]과 [1984]를 다시 읽었다. 그리곤 잊어버렸던 것 같다. 그런 조지 오웰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난 것은 얼마 전에 읽은 [더 저널리스트 : 조지 오웰]을 통해서였다. 저널리스트로써 오웰이 작성한 기사와 칼럼, 기고문 등을 묶어 엮었던 그 책을 읽으면서 오웰의 다른 글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웰이 살았던 시대는 파시즘과 자본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뒤섞여 요동치던 시대였고,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조국인 영국의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자본주의를 경계하는 글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대표적인 산문 7편을 묶은 [코끼리를 쏘다], 식민지 인도에서 경험한 경찰간부생활을 토대로 제국주의를 비판한 [버마시절]을 읽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거기서 멈추어야 했지 싶다.

 

이 책 [나는 왜 쓰는가]는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 살았던 오웰이 쓴 수많은 글 중에서 29편의 산문을 선별하여 엮은 책이다. 특히 표제작인 <나는 왜 쓰는가>는 조지 오웰의 대표적인 산문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통찰을 주었던 글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 외의 산문들 또한 오웰의 삶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도와주고,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렇게 볼 때 오웰의 작품들을 읽기 전에 이 산문집을 먼저 읽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기 전에 멈추어야 좋았다고 생각한 것은, 최근에 나온 산문집 [코끼리를 쏘다]를 먼저 읽어서이지 싶다. 이 책에 실려 있는 29편의 산문 중 5편이 그 책에 실려 있다. 그래서인지 산문들을 읽어가면서도 중복된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런 느낌은 책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였다. 물론 이 책을 먼저 읽었더라면 오웰의 대표적인 산문을 다시금 읽는 재미를 느꼈을 수도 있었겠지만, 결과론적으로는 밋밋하게 이 책을 읽었다.

 

오웰은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나는 왜 쓰는가>에서 글을 쓰는 동기를 허영심과 같은 순전한 이기심,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미학적 열정, 후대를 위해 현재를 기록한다는 역사적 충동, 그리고 정치적 목적이라는 네 가지로 구분한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동기는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사회적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정치적 목적에 있다고 규정했다. 그는 글의 주제는 작가가 사는 시대에 따라 결정되며, 그래서 작가는 글쓰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특정한 정치적 태도를 갖게 되고 거기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예비학교에서 맛보았던 상류층아이들과의 차별, 이튼스쿨에서 실감한 계급차이,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 등을 통해 갖게 된 제국주의나 전체주의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이 오웰로 하여금 정치적 목적을 가진 글쓰기를 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다며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인 태도’(294쪽)라고 말하는 그는, ‘내 작업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300쪽)라고 고백한다. 이는 그가 저널리스트였을 때 기사나 기고문을 쓰는 이유가 ‘어딘가 존재하는 거짓말을 폭로하고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사실을 조명하기 위해’서였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만큼 글쓰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고, 불편한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말로 읽힌다. 오웰은 자신이 정치적 목적으로 책을 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사회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사회주의 정당에 가입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무조건적으로 좌파를 옹호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모든 형태의 전체주의에 반대했다. 피압제자의 편에 서는 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사회주의라고 믿었기에, 당시 지식인 계급이 지지했던 러시아식 공산주의에 비판적 시선을 보낸다.

 

오웰의 글을 읽다보면 흔히 비평가들이 말하는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사회주의를 지지했다’는 그의 사상을 찾으려는 생각이 글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때때로 강박관념이 되어 책읽기를 방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비평가들의 말은 어떤 작품을 읽고서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먼저 오웰이 살아온 시대와 그의 삶을 이해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작가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에 대한 이해가 먼저여야 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오웰의 자전적인 산문들을 모아놓은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이 조금은 넓어짐을 느낀다. 그럼에도 당분간은 오웰읽기를 멈추어야겠다. 급하게 먹은 밥이 체하기 싶다는 말처럼 한 번에 많은 것을 알려하다가 흥미 자체를 잃을 것 같아서이다.

 

같은 산문을 두고서 역자들마다 어떻게 번역했는지를 비교하며 읽어가는 것은, 역자를 달리해서 책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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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삶을 음미해본다. | 기타 2020-09-14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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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예스리커버]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정재찬 저
인플루엔셜 | 202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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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시란 어렵기만 한 장르이다. 시를 읽으면 우선은 시어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시인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나도 모르게 분석하려고만 한다. 아마 시란 것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학교 다니면서 입시를 위해 시를 읽었기 때문이라 핑계를 대보지만 그럼에도 찝찝한 마음은 영 가시지를 않는다. 그런 나에게 누군가가 시를 소개해주고 그 시에 대한 해석을 덧붙여준다면 고맙기(?)조차 하다. 그래서 시집보다는 시에세이나 시강의집을 더 선호하는 편이지 싶다.

 

이 책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은 말 그대로 시강의집이다. 밥벌이, 돌봄, 건강, 배움, 사랑, 관계, 소유와 같이 우리가 삶이라 부르는 것들을 다시 각각 두 가지로 세분하여 모두 열네 번의 강의를 엮은 책이다. 저자는 각각의 주제어에 맞는 시를 소개하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시를 통해 자신의 인생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표지판은 시뿐만이 아니다. 대부분 시가 주를 이루지만 때때로 영화나 소설, 그리고 흘러간 옛 노래 등 대중문화도 기꺼이 소환하고 있다. 저자의 강의를 읽어가면서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새로운 시를 알아가는 것도 괜찮았지만, 그보다는 시를 읽는다는 핑계로 지나온 나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책에 나오는 시들은 대부분이 생소한 시들이다. 알고 있던 몇 편 안되는 시 중에서 눈에 쏙 들어오는 시는 안도현 시인의 <퇴근길>이다. 저자는 밥벌이의 생업 편에서 이 시를 소개하고 있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 없다면

아 이것마저 없다면         (‘퇴근길’ 전문)

 

오래전에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에서 김훈은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하는 것이 밥이기에 진저리나지만, 그럼에도 우리들의 목표는 밥벌이가 아님을 잊지 말고 또 다시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고 했다. 어쩌면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 선택한 노동(밥벌이)이었는데, 마치 그 일을 하기 위해 먹고사는 것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를 두고 일과 삶의 조화를 강조한다. 쉬는 것에 대해서는 배워본 적도, 개척해본 적도 없기에 쉴 줄을 모른다며, 그래서 쉬는 것도 소비를 통해서 구하려 하기에 경제적, 시간적으로 부담이 되고 노동이 지겨운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일은 점점 단순화되고 그런 일마저도 구하기 어렵다면 일과 삶의 조화라는 것이 가능할까? 오히려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말이 더 와 닿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은 퇴근길에 삼겹살에 소주를 찾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김훈이 말한 목표고 뭐고 내팽개치고 꾸역꾸역 밥을 벌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열네 개의 여정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때로는 선배로써, 때로는 선생으로써, 그리고 때로는 동료로써 하는 그의 삶의 언어를 시와 함께 읽다보면 그의 말처럼 ‘가끔씩 고개를 끄덕이고, 슬쩍 미소 짓다가 혹은 눈물도 훔쳐보며, 때론 마음을 스스로 다지고 때론 평화롭게 마음을 내려놓’기도 한다. 또한 열네 개의 여정이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죽는 그날까지 거쳐야만 하는 여정이기에 살아온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살아갈 시간들을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런 와중에 만나는 시들이 때로는 가슴속에 파문을 일으킨다.

 

얼마 전부터 시집이란 것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동안 시집을 전혀 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젊었을 때의 관성대로 참여시나 목적시만을 읽던 것에서 벗어나 순수시도 읽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아직 제대로 읽고 감상하기에는 서투르고 미숙하지만 ‘시란 활자화되면 시인의 것이 아니라 읽는 독자의 것이다’라는 누군가의 말 마냥 내 맘대로 읽고 있다. 지금도 책상위에는 한 시인의 따끈한 신간이 놓여있다. 하지만 시집을 읽고서 내 맘대로나마 읽을 수 있는 시 한 편을 만나기도 힘들다. 그렇지만 우여곡절 끝에 그런 시 한 편을 만난다면 내 삶을 음미해보고 관조할 수 있기에 난 오늘도 시집을 읽으려 한다. 이 책에서 다시 만난 안도현 시인의 <퇴근길>이 또 한 번의 계기를 만들어 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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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가네요. | 주절..주절.. 2020-09-1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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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엔 잔뜩 흐려있던 날씨가 오후가 되면서 햇빛이 들었던 하루였습니다.

오랫만에 일도 잊어버리고, 책 읽는 것도 잊어버리고 빈둥거리며 보냈습니다.

밤나무 옆을 지나다가 문득 밤송이에 눈이 갑니다.

아침까지도 보지 못햇는데, 밤이 익어가고 있네요.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밤을 올해 처음 보았습니다.

장마가, 태풍이, 코로나가 난리를 치지만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궁금한 마음에 대추나무도 살펴보았습니다.

아니나다를까, 대추도 누가볼까봐 수줍은듯 숨어서 익어가고 있네요.

예년보다 빠르게 느껴집니다.

지난 장마 때 천둥과 번개가 요란하더니, 장마가 지나고 땡볕이 기를 죽이더니,  그리고 태풍이 가슴을 조이게 만들더니 아마 대추가 익을때가 되었음을 알려줄려고 그런 모양입니다.

 

자연은 시간을 거스르지 않으며, 때가 되면 제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인간만이  조급해하며 시간을 역주행하고, 건너뛰려 하고,

훗날 돌아보면 아무일도 아닌 일에 아등바등 하는 것은 아닐런지요.

모처럼 마음마저도 한가한 시간을 보내면서, 매일 보면서도 미처 보지 못했던 벌어진 밤과 익어가는 대추를 보면서

조급했던 마음을 시간의 흐름에 맡겨보리라 생각해 봅니다.

코로나 또한 지나가겠지요.

그 후에 도래할 새로운 일상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보며 오늘 하루를 마감합니다.

 

휴일의 밤(夜)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블친님들, 남은시간 행복하게 보내시고 새로운 한 주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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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장자 철학 우화1] | 역사/동양고전 2020-09-11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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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장자 1

윤재근 저
나들목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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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는 어려운 고전이지만 우리에게 친숙하기도 하다. [장자]의 철학은 잘 알지 못하더라도 소요유(逍遙遊)와 호접몽(胡蝶夢)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쯤 들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붕이라는 새와 건이라는 물고기의 이야기를 알고 있거나, 장자가 꿈속에서 나비를 희롱한 이야기를 알고 있다 해서 소요유와 호접몽이 전하는 참뜻을 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장자]의 철학은 어렵게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는 동양고전을 전공한 사람들이 쓴 [장자]의 해설서들을 찾아 읽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 책은 부제가 인상 깊게 다가와 읽은 책이다.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라는 부제가 [장자] 철학을 제대로 은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권의 [장자]해설서를 더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가 들기도 했지만, 어쩌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장자]읽기를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 책을 읽었다.

 

이 책의 저자는 먼저 우리가 [장자]를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한다. 장자는 영리한 사람보다 어리석은 사람을, 유식한 사람보다 무식한 사람을, 강자보다 약자를 좋아했고, 문화를 싫어하고 자연을 좋아했다고 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지름길의 유혹을 탐하지 않고, 무식한 사람은 사람을 이용하려는 잔꾀를 부리지 않고, 약자는 언제나 무엇을 해쳐야 한다는 용심을 부리지 않으며, 문화는 자유를 약탈하지만 자연은 자유를 남김없이 주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한다. 즉, 우리가 [장자]를 읽어야 하는 까닭은 [장자]가 언제나 사람을 편하게 하고 자유를 누리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장자]를 사상으로 읽게 되면 심오한 속뜻을 헤아려야 하기에 어려워지지만, 이야기로 읽으면 재미있고 즐겁게 만든다고 그는 말한다. ‘본래 제대로 된 이야기는 무엇인가를 들려줄 뿐 언제나 해답은 이야기 밖에 맡겨두는 법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기의 분수에 걸맞게 나름대로 이야기를 듣고는 이것이 정답인지 저것이 정답인지 하면서 토를 단다.’(16쪽) 이렇게 [장자]를 이야기로 읽게 되면 그 의뜸의 가치는 [장자]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라고 한다. [장자]에는 편마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여 대화를 전개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장자]와 친해지는 비법은 바로 그런 우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친해지는 것이고, 그것은 [장자]를 이야기로 읽으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장자] 33편 중 내편 7편을 소개하고 있다. 내편은 진나라 곽상이 전해오던 [장자] 52편을 교정하여 33편으로 편집을 하면서도 전해오던 7편 모두를 남긴 것으로, 이는 내편이 본래 장자의 사상과 가장 가깝다고 여긴 까닭이다.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 장자의 인물’은 말 그대로 [장자]의 각 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이고, ‘2부 내편의 장자어록’은 [장자] 내편 7편의 각 편마다 장자의 사상을 나타내주는 글들이 실려 있다. 내편 7편의 편명은 차례로 소요유, 제물론(齊物論), 양생주(養生主), 인간세(人間世), 덕충부(德充符), 대종사(大宗師), 응제왕(應帝王)이다.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는 모두 우화형식을 띠고 있다. 이는 이성적인 논리를 앞세우지 않고 상상 속에 노니는 이성으로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며, 그래서 우리는 [장자]를 이야기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장자]의 우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부분 장자가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들이다. 그들을 통해 장자는 자연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연은 스스로 있는 것이며, 이 세상의 무엇이든 있는 것이면 스스로 있는 것이라고 장자는 말한다. 즉 자연은 어떠한 조건을 전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으므로 있는 것이 자연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자연을 장자는 자유(自遊)라고 정의한다. 자유란 스스로 노니는 것이다. 장자는 매 편마다 바로 그런 자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법이 보장하는 자유가 아니라 존재의 자유가 무엇인지를 들려주며 아무것도 걸림 없이 노니는 것이 바로 소요유이다.(소요유) 자연은 변화하지만 우리 마음속에 있는 구별과 편견을 꿰뚫어보고 집착에서 벗어난다면 자연은 한결같다.(제물론) 이런 자유는 비겁하지 않고 당당하게 감출 것 없이 떳떳하게 사는 법을 헤아리게 하여 참된 삶을 누리게 만든다.(양생주) 그런가 하면 제 분수에 맞게 그리고 쓸모없다지만 쓸모 있게 제 삶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것임을 알려주기도 한다.(인간세) 또한 덕은 마음의 자유를 나타낸다.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참다운 자유인 까닭에 덕이란 사람의 마음을 자연이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덕이 있는 사람은 남을 무조건 편하게 만든다. 이처럼 아무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를 돕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를 자유롭게 하면 마음에 일어나는 욕망마저도 투명해진다.(덕충부) 분별이 없다면 죽음과 삶은 하나가 된다. 무위(無爲)가 무심(無心)의 경지에 이른다. 그러나 그 무심이란 마음을 비워내어야 가능해진다. 마음을 비우고 만물의 변화에 순응하는 사람을 장자는 지인(至人)이라 칭한다. 장자의 철학은 바로 지인을 찾아가는 길이고 방향이다.(대종사) 다시 말해 무심과 무위가 이루어진다 함은 스스로를 잊는 것이며, 이것은 자연을 따름으로써 이루어진다.(응제왕)

 

저자의 안내를 따라 [장자]를 이야기로 읽는다. 이야기로 읽으니 무엇인가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이 줄어든다. 아마 저자의 말처럼 내 분수에 맞게 이야기를 읽기 때문일 것이다. 각 편마다 나오는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장자가 말하는 자유(自遊)에 대해 토를 달아본다. 다른 해설서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집착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계산하는 분별심을 줄여나가 마음의 온전함과 단순함을 보전하는 것, 달리 말해 자연을 따르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동양고전을 읽다보면 해설서마다 저자에 따라 드러나는 미묘한 관점의 차이를 느낀다. 원전을 읽고 해석할 수 없기에 주석과 해설서들을 찾아 읽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온전히 읽는 사람의 몫이다. 같은 텍스트를 두고서 여러 해설서를 읽는 까닭은 역자 혹은 저자마다의 관점이 다르기에 매번 읽을 때마다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어서이다. 물론 모든 해설서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독특한 시각과 관점으로 쓴 책을 만나게 되면 책 읽는 즐거움이 배가되고, 그러한 관점들을 통해 나만의 독법을 찾아갈 수 있다. 이 책의 저자가 쓴 [장자] 외편과 잡편에 대한 이야기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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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란 모호함을 벗어나 명료함으로 가는 과정이다. | 인문 2020-09-09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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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저
어크로스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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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는 공부라고 하면 입시공부나 취업공부 등 시험을 위한 공부를 떠올린다. 하긴 학교를 다니는 동안 시험을 위한 공부만 해왔고, 학교를 졸업하고서도 변함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더군다나 국어사전에도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공부라고 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간혹 요즘 무얼 하느냐는 물음에 공부하고 있다고 하면 어김없이 무슨 시험 준비하느냐는 질문이 뒤따라온다. 그럴 때면 더 이상 피곤한 대화를 방지하기 위해 마음공부중이라고 하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농사공부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럴 때면 도대체 공부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사실 이 책의 저자인 김영민 교수는 그의 첫 산문집이라고 하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로 만났다. 그리고 그의 글쓰기에 반하여 논어에세이인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을 읽으면서, 그가 그 책에서 말 한대로 논어에세이가 이어진다면 찾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이 책이 출간되면서 읽을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책 한 권 읽는데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별로 할 말이 없지만, 요즘은 달리 하는 일도 없으면서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함을 느낀다. 아마 게을러진 탓 일게다. 그러다보니 예전 같으면 일단 읽고 보았던 책들도 요즘은 꽤나 망설인다. 내 취향에 맞는 책일까 혹은 읽고서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할까 하는 생각들이 어지럽게 머릿속을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간신히 의문들을 억누르고 책을 읽었지만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는다. 좋았다는 생각도, 괜히 읽었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 것을 보면 내가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죽는 날까지 공부에 힘써야 한다는 옛 성현들의 말을 많이 들어왔다. 이는 공부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성숙한 시민으로써 보다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소양을 쌓는 것이 공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 역시 ‘호기심에서 출발한 지식탐구를 통해 어제의 나보다 나아진 나를 체험하는 것을 기대한다. 공부를 통해 무지했던 과거의 나로부터 도망치는 재미를 기대한다. 남보다 나아지는 것은 그다지 재미있지 않다. 어차피 남이 아닌가. 자기 갱신의 체험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보고 있다는 감각을 주고, 그 감각을 익힌 사람은 예속된 삶을 거부한다.’(82쪽)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이 책에서 자기 갱신의 체험을 위한 공부의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읽고, 쓰고, 말하고, 생각하고, 질문하는 생각의 근육을 기르기 위해 공부의 기초부터 심화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그는 먼저 모순이 없는 글쓰기, 단어의 정확한 개념 등 지적성숙의 과정으로 가기위한 기초에 대해 논하며, 그러한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읽기, 듣기, 질문하기, 그리고 나의 공부를 남에게 전달하는 방법으로써 쓰기, 말하기, 논쟁하기와 같은 표현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질문과 맥락을 만들 수 있으며, 이를 가지고 논쟁에 뛰어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이 책이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들을 위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책의 구성이 교양강의 형태로 되어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공부에 대한 방법론에 대해 많은 비중을 두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공부란 지적변화를 위한 것인 동시에 무용해 보이는 것에 대한 열정을 펼치는 과정이며, 모호함을 벗어나 명료함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강조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또한 저자의 전작에서는 그의 글들이 다소 거칠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이 책에서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은 것도 이유의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그러한 공부의 의미와 방향, 방법은 비단 학생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임을 생각할 때 나의 공부는 어떠한지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될 것도 같다. 그렇다고 책을 읽기 전 들었던 의구심이 명확하게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쩌면 공부라는 주제 자체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글 중에서 눈길이 머물렀던 글이 두 단락 있다.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을 때 충만한 것은 거품 같은 공허뿐이다. 생각할 수 있는 근력이 없기에, 그 공허를 채우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을 대신해 줄 강력한 타자를 갈구한다. 그리하여 진리를 설파하는 사이비 지식인이나 종교지도자나 독재자가 번성하게 된다. 장기적인 것, 공적인 것, 엄정한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단기적인 이익의 추구와 근거 없는 인정욕구가 남발하게 된다.’(13쪽) 최근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떠오르게 만든다. ‘서평은 서평대상이 된 책뿐만이 아니라 서평자 자신의 지력, 매력, 멍청함, 편견 등을 대대적으로 홍보할 좋은 기회이다.’(154쪽) 난 지금 나의 멍청함과 편견을 홍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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