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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통해 알아가는 트라우마의 모든 것. | 에세이/심리/여행 2021-03-01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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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영화로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

김준기 저
수오서재 | 2021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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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우리는 일상에서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쉽게 접하고 있다. 본래 신체적, 정신적 외상을 뜻하는 이 단어는 현대에 접어들면서 주로 정신적인 외상, 즉 시간이 지나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트라우마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트라우마의 종류나 증상, 치유방법은 고사하고 트라우마에 대한 정의부터 헷갈리기 일쑤다. 말로는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왜 일어나는지 묻는다면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 ‘트라우마는 매우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며 또한 비밀스러운 경험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상처가 뚜렷하지 않아 주변 사람들이 눈치채기 어렵고, 당사자도 자신이 겪는 아픔을 말로 정확히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6쪽)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트라우마가 아닌 다른 질병 혹은 요인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닐런지 모르겠다.

 

이 책 [영화로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은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가 들려주는 트라우마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트라우마란 무엇인가로부터 시작하여 종류와 증상, 그리고 치유방법에 이르기까지를 영화를 소재로 하여 소개한다. 저자는 트라우마의 모든 과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영화 25편을 선택하여 설명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일반인인 우리가 그 영화를 보고서 트라우마에 대한 것을 콕 집어내기란 쉽지가 않다. 전문가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그것이 트라우마임에 분명하지만, 우리는 단지 하나의 서사로써 이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이 설명하는 영화 속 트라우마에 대해 읽고서 그 영화를 다시한번 보기를 권하고 있을게다. 알고서 본다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고 우리는 그 영화에서 미처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감동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영화 속 서사의 흐름이나 주인공의 행동을 통해 트라우마를 설명하고, 자신의 상담실을 찾아온 내담자들의 사례를 통해 트라우마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물론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놓치기 쉬운 트라우마의 초기 형성과정과 증상까지도 소개한다. 저자의 설명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얼마나 많은 트라우마에 노출되고, 또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고통에 직면하게 되는지를 비로소 알게 된다.

 

먼저, 1부 ‘트라우마란 무엇인가’에서 저자는 7편의 영화를 통해 우리의 기억이 가지고 있는 속성과 그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기는 이유, 트라우마에 대한 우리의 편견 혹은 오해, 그리고 그런 트라우마의 특징 등을 다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대부분 흐릿해진다. 그리고 희미해진 부분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짜깁기된다. 그러나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직까지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는 뇌의 정보처리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려 전혀 가공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트라우마의 기억을 자꾸 덮으려 하지만, 그럴수록 트라우마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무의식 속에 자리 잡아 더 은밀하고 집요하게 의식에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또 똑같은 트라우마라 할지라도 사람에 따라 고통의 정도가 달라진다. 저자는 사람에게서 받은 트라우마, 그것도 아는 사람에게 받은 배신감 같은 트라우마가 더 심각하고, 어린아이나, 빈곤층, 그리고 여성과 같이 사회적 소외계층이 트라우마에 보다 취약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수치심은 안전과 생존을 위해 진화론적으로 발달해온 감정이지만 지나칠 경우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명백해 보이는 학대보다 은근하게 일어나는 무관심이 독성 강한 수치심을 더 자주 일으키며, 트라우마가 수치심을 강화하고 강화된 수치심은 또 다른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악순환으로 빠져든다. 그렇게 볼 때 트라우마는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로부터 출발했지만 오히려 당사자를 고통과 공포라는 위험에 빠뜨리게 되는 외상이 되지 않았나 싶다. 우리가 트라우마에 대해 알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라 할 수 있겠다.

 

2부 ‘트라우마의 종류와 증상’에서는 8편의 영화 속에 나타나는 트라우마를 전쟁 트라우마, 스몰 트라우마와 빅 트라우마, 아동기 트라우마로 나누어 그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빅 트라우마는 대부분의 인간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평범한 일상의 경험 범주를 넘어서는 끔찍하고 충격적인 사건으로, 대표적인 것이 전쟁 트라우마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스몰 트라우마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사건들이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축적된 부정적인 영향들로, 자신감이나 자존감 상실과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전쟁이나 자연재해와 같은 빅 트라우마를 경험했을 때 사람들은 사건과 관련된 고통을 잊기 위해 감정을 마취시키는 감정인지 불능증이나 해리성 기억상실로 현실을 부정한다. 하지만 그런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며 과거의 트라우마를 떠오르게 하는 어떤 사소한 자극에도 뇌가 과도하게 흥분양상을 보인다고 한다. 이처럼 과도한 흥분 혹은 과도한 둔감이라는 극단적인 두 가지 양상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은 우리 뇌의 신경생리학적 변화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가 하면 아동기 트라우마는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 스몰 트라우마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성폭행과 같이 개인에게 있어 빅 트라우마가 되기도 하지만 생애 초기 양육자로부터 어떤 돌봄을 받는지에 따라 아이는 커가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내면의 비난에 시달리거나, 공격적인 자아상태, 자해하는 자아상태, 공감능력의 결핍, 감정조절의 어려움, 발달상의 트라우마 장애 등이 이에 속한다. 이들 모두는 무관심이나 방임처럼 알게 모르게 겪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동기에 양육자와의 안정적인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3부 ‘트라우마의 치유’는 트라우마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치유의 방법들을 10편의 영화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분명 두렵고 힘든 상황에 처했는데 무조건 괜찮다고 하는 것, 즉 외면당하는 것은 당사자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사람에게 몰이해와 무관심은 2차 가해나 다름없다. 저자는 충격적인 사건으로부터 오는 고통과 두려움을 극복해내고, 오히려 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성장하는 ‘외상 후 성장’은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회복을 통해 일어난다고 강조한다. 즉 트라우마의 치유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 더 많이, 더 자주 일어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당사자는 무엇보다도 내면의 두려움과 공포에 직면하는 용기가 필요하며, 주위에서는 이해와 관심을 가지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형성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 트라우마가 있는지, 그리고 아무런 의식 없이 말하거나 행하는 사소한 언어나 몸짓 하나도 반복되면 상대에게는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솔직히 놀랬다. 그만큼 말로는 많이 들어왔지만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트라우마 기억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도 우리 뇌의 기억회로 어딘가에 고스란히 남아 여전히 우리의 삶에 깊은 영향을 계속해서 미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많은 취향과 선택은 트라우마의 기억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든 못 하든 말이다.’(301쪽)라는 저자의 말은, 내 주위에 혼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나로 인해 누군가가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일상을 살아가면서 주변사람들과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를 맺는 것이 모두에게 중요함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저자는 이처럼 영화의 서사나 주인공의 행동을 통해 트라우마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설명 말미에는 PS를 통해 가장 핵심이 되는 사항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코멘트하고, 이어서 의학적인 사실을 설명함으로써 트라우마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돕는다. 우리 내면의 상처를 마주하고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용기를 주면서도, 어려운 의학적 지식을 쉬운 언어로 알려준다. 그래서 트라우마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이 책은 충분히 길잡이가 될 것 같다.

  

참, 저자가 소개하는 25편의 영화중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영화는 <엔딩 노트>이다. 영화는 정년퇴임을 한 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스나다 씨와 그의 가족들이 겪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스나다 씨는 죽기 전에 한번은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그것을 하나하나 실천해간다. 말기 암을 진단받고 치료를 받으며 죽어가는 과정은 당사자나 가족 모두에게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고통을 표현하는 방법, 그리고 누가 가장 소중한 사람인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며 주제곡이 흐를 때 소중한 사람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을 동시에 느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책을 읽은 후 수록된 영화를 꼭 한 번은 보도록 권유했다. 그의 말대로 이 영화를 찾아서 한번 보아야겠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무엇을 느끼게 될 지, 또 트라우마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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