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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으려고 했던 심리학자입니다 / 제시 베링 [밑줄긋기] | 명언명구 2021-02-28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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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이상적인 삶의 환경이 사실은 자살 위험성을 높인다고 주장한다. 행복의 기준을 얼토당토않게 높이기 때문이다. 힘든 상황이 되면 특권을 누리며 산 이들(사회의 눈으로 볼 때 성공한 사람들이) 실패에 더 적응하지 못한다.

 

-자살 성향자라고 다 격하게 화내거나 극도로 불안정하지 않다. 심지어 겉보기에 우울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정신 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 DSM-5]는 자살을 이렇게 정의 한다. <치명적 결과에 대한 지식이나 기대를 갖고 의도적으로 시작하고 실행하여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 행위>

 

-부정적인 자기 평가, 자기 비하, 수치심과 죄책감과 무력감 같은 감정을 낳는 자신을 반추하는 능력이 정신질환자를 자살 위험에 처하게 한다. 

 

-...자신의 망상이 망상임을 아는 환자들이 자살 위험이 높다...

 

-"목을 베면서 동시에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상태가 전형적인 자살 상태이며, 행위의 양면 모두 진짜다." 죽기를 원하면서도 구제되고 싶은 양가감정은 자살자의 절망을 강하게 만든다.

 

-내가 보기에 가장 큰 모순 하나는, 자살하려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살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 상황에서만 살고 싶지 않을 뿐이다. 누구보다도 삶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다만 이 삶만 아닐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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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자신을 탓하기

-여기 아이러니가 있다. 어릴 때부터 침울한 성격이라 늘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실제로 자살 방지 완충제를 구비한 셈이다. 이들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한편 나머지 사람들도 비슷하게 낮춰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타입을 안다. 염세주의자들. 

대조적으로 자살성향자는 자신을 미워하지만, 남들을 아주 좋게 보고 자기만 나쁘게 보는 허상에 시달린다. 2장에서 봤듯이 자살 충동은 자신에 대한 타인의 판단을 못견디는 것이다. 

 

-자아상은 태생적으로 삐딱하다. 대부분 자신을 남들이 보는 것보다 육체적으로 매력있고 똑똑하고, 호감가고 재미있다고 본다. 하지만 앞 장에서 봤듯이 우울증은 이런 자기 이미지를 더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보게 만든다. 

우울증이 사회의 거부 신호에 더 예민해지게 하므로, 타인들이 내 단점에 더 많이 신경 쓴다고 느낀다. 물론 타인들에게 평가 받는 때가 많다. 다만 타인들은 내 짐작만큼 내 결점과 단점에 관심 없다. 그들 역시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걱정하느라 바쁘니까. 그럼에도 피치 못할 실패나 큰 과실이 우울감이 키운 '타인이 날 낮게 평가한다'는 의식과 맞물리면 위태로워진다.

늘 연약한 거울 자아, 즉 무가치, 수치, 죄책감, 자격지심이나 수모당하고 노출되고 거부당한다는 감정이 반영된 이미지는 자살성향자를 자기혐오에 빠지게 한다. 자신이 세상에 살 가치가 없다고 느끼게 만든다.

 

-사실이 아니지만, 자살자들은 자기 사정이 극히 견디기 힘들다고 느낀다. 역사상 아무도 이런 이례적인 괴물을 견딘 적이 없었을 거라고.

 

3단계 고도의 자기의식

-로이의 이론에서 핵심은, 자살은 불쾌하게 예리한 자기의식을 피하려는 욕구에 자극된다는 개념이다. 자기파괴적인 정신상태에 빠지면 자기본위가 되고 다른 사람들은 극히 멀어 보인다. 이것은 흔히 나르시시스트가 연상되는 헛된 자기 중심성이 아니다. 이것은 자기 단점에 부득이 몰입하는 것이다. 즉 자신을 개인 기준과 계속 비교한 결과, 의식이 자신을 속속들이 잠식해 무척 고통스럽다. 깨어 있는 모든 순간에 자신이 얼마나 경멸스러운지, 밉상이거나 쓸모없는지만 생각한다면 의식은 몹시 괴로울 수밖에 없다. 

 

-진짜 유서에는 '나는' '나를' 같은 1인칭 단수 대명사가 많다. 심리언어학자들은 이것이 고도의 자기의식을 나타낸다고 믿는다. 또 사형수 같은 비자발적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유서와는 달리, 자살자들은 유서에서 '우리를' '우리는' 같은 포괄적인 어휘를 쓰지 않는다.

 

5단계 인지의 붕괴

-한 연구에서 대조군과 비교할 때 자살 성향 피조사자들은 실험을 위해 두었던 시간 간격의 흐름을 과하게 느리게 느꼈다.

 

-로이는 이런 일시적인 모면 방식을 과거의 실패와 괴롭고 희망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을 멈추는 방어기제로 본다. 삶이 '천천히 한 방울씩 떨어지는' 현재의 달콤함 속에 숨는 것이다. 이 무의미한 순간에 젖어 생각을 해체한 결과, 이전 단계의 부정 감정은 어느 정도 완화된다. 자살 전에 감정 격발이나 분노에 휩싸일 것 같지만, 오히려 권태롭고... 무덤덤한 맥 풀린 상태인 경우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진짜 유서에서 긍정 감정이 발견되기도 해서 사람들은 놀란다. 로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자살을 준비할 때 마침내 미래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지요. 미래는 없다고 결정을 내렸으니까. 과거 역시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아요. 거의 끝났고 더는 슬픔이나 근심, 불안이 생기지 않을 테니까. 임박한 죽음이 정신을 현재에 오롯이 집중하도록 도와줄 겁니다."

 

6단계 탈억제 

-미 질병통제 예방센터는 2014년 총기에 의한 자살은 총 2만 1,334건, 살인사건은 1만 945건이라고 발표했다.

 

-정상일 때는 고통의 숨은 의미를 찾는 생각이나 영적인 생각을 낳는 추상적 사고를 한다. 그런데 자살 앞에서는 이런 사고가 놀랍도록 사라진다. 슈나이드먼은 "자살학에서 가장 위험한 어휘는 네 글자로 된 단어 (FUCK)뿐이다"라고 말했다. 달리 말해 자살 의향자는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에 젖는다. 상황이 흑백이 되었고, 은유적 미묘함 따윈 없이 죽기 아니면 살기밖에 없다.

 

-자살하려면 자살 욕망과 함께 '자살을 위한 후천적 능력'이 필요하다. 즉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적고 신체 고통을 참는 힘이 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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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8월 메릴린 먼로 자살 추정 사망으로 같은 달 자살률이 평균치보다 12퍼센트 상승했다.

 

-자살전염은 아니더라도 1997년 8월 31일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교통사고 이후 상당한 통계가 나타났다. 다은 달에 남녀 공히 자살률이 치솟았지만 여성의 경우 34퍼센트 증가했다.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가공의 자살 보다 현실의 자살에 더 공감한다..... 그렇다고 해나 베이커나 괴테의 베르테르 같은 자살이 모방 자살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게 아니고, 확실히 그럴 수 있으나 전반적인 효과가 덜하다는 뜻이다. 

 

-자살 전염 증거에 '완수된' 자살만이 아니라 '시도된' 자살 비율을 포함하여 본다면, 언론의 자살 보도가 모방을 유도하는 것은 분명하다. 달리 말해 자살 보도가 늘 실제 자살을 증가시키지는 않지만, 자살 행위를 크게 증가시킨다.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에 속하는 대한민국에서 (2015년 인구 10만 명 중 24.1명) 동반자살은 전체 자살의 3분의 1 가량을 차지 한다.

 

-오스트리아의 자살학자 토마스 니데르크로텐탈러는 2010년 [영국정신 의학 저널]에서 미디어(소셜미디어든 다른 종류든)가 자살 방지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파파게노 효과"로 명명했다. 베르테르 효과와 정반대로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의 정면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사랑에 번민하는 파파게노는 자살하려다가 만류하는 세 소년 정령들에게 설득 당한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종교와 자살의 관계는 복잡하다. 사후에 대한 믿음이 자살 결정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와 아니라는 증거가 다 있다. 통계는 종교가 자살 방지 완충제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연이은 연구에서 신자들은 비신자들보다 자살할 확률이나 자살할 생각이 현저히 낮았다.

 

-성서에 자살에 대한 뚜렷한 언급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몇몇 명석한 신학자들은 이 독특한 빈자리를 발견했다. 예를 들어 1637년 스코틀랜드 출신 존 심이라는 열렬한 칼뱅파 사제는, "인간은 본래 자기 보존을 최우선으로 삼기에 자살은 너무도 끔찍한 일인지라, 그 행위 자체를 불가능하다고 봤는지 금지하는 법조차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드물게 성서 속 인물이 목숨을 끊는 경우 그런 짓을 했다고 심판받은 흔적은 없다. 예를 들면 유다(수치심과 예수를 배반한 후회로), 사울 왕(적에게 잡혀 강제로 다른 신을 섬기는 꼴을 피하려고), 삼손(그 과정에서 복수하느라 피리스티아 인들을 죽인) 등인데, 오히려 그들의 자살은 담담하게 묘사되고 죽는 방법은 일화의 교훈과 무관한 듯하다.

 

-5세기 초 아우구스티누스.. 그는 성서에 나온 제 6계명, 즉 '살인하지 말라'를 지목해 살인 대상에 타인만이 아니라 본인도 적용된다고 말했다. 1485년 자살 담론이 가열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 대전]에서 이 문제를 논했고, 이 책이 출판되면서 교회의 엄격한 자살 무관용 주의가 신앙의 상징이 되었다.

 

-영국에서 자살자의 재산은 왕에게 귀속되었다. 하지만 아퀴나스 시대에도 검시관이 non compos mentis(정신 이상) 상태라는 지옥 탈출 진단서를 주면 이 수모를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1487년에서 1660년까지 자살자들은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했다. 이 기간에 총 1.6퍼센트만 '논 콤포스 멘티스' 판결을 받았고 나머지는 '펠로 데 세'(자살)였다.

 

-할라카(유대교 율법서)는 자살한 유대인은 유대식으로 매장할 자격이 없다고 규정한다.

 

-유대교와 기독교 경전들처럼 코란에 자살과 관련된 명료한 설명은 없지만, "불 켜진 초는 날이 밝을 때까지 타야 한다" 같은 시적인 암시가 나온다.

 

-전반적으로 종교는 자살을 방지한다. 부인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구멍이 있다. 그것도 큼직한 구멍이. 몇몇 연구 결과를 보면, 신자들은 종교적 부담, 예를 들면 너무 큰 죄를 지어 용서받을 수 없다고 믿는 것 때문에 또래 비신자들보다 더 많이 자살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스토아 학파는 자살을 진보된 사상가의 빼어난 행위로 보았다. 세네카는 [줄에서 떨어질 적절한 때에 관하여]라는 담담한 제목의 글에서 "현자는 살 수 있는 만큼이 아니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만큼 산다"라고 썼다.

 

-1500년 이상 지나 프라니우스는 자살이 '최상의 혜택'이며 신들도 해내지 못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대조적으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이 주제에 반감을 가졌던 듯, 자살이 인간을 동물 밑에 놓는 유일한 행위라고 말했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기원전 20년 경 로마의 역사가, 도덕주의자)의 [기념할 만한 업적과 기록]에 나오는 구절... 마실리아인들(현 남프랑스 지역의 1세기 당시 주민들)이 완벽한 정신으로 생을 마감는 관습을 묘사... 아직 건강이 양호한 연로자들은 원로원에 생을 마감할 수 있는 허가를 요청해 황폐한 노화를 모면할 수 있었다.... 주로 독미나리가 혼합된 독극물이 주어졌다. 이 경우가 아니면 유의해서 보관하는 약물이었다.

 

-수많은 연구가 사회의 자살 수용과 자살률의 상관 관계를 파헤쳤다. 즉 신앙을 감안하더라도 자살을 개인의 권리나 선택으로 지지하는 국가에서 자살을 용납하지 않는 국가들보다 연간 자살 건수가 더 많다.

 

-수십 년 전 선동적인 반 정신의학자 토머스 사즈는 저서 [정신병의 신화]에서 자살 방지에, 혹은 자살하려는 이들을 강제 입원시켜 간섭하는 미국 전통에 반대하는 주장을 했다. 자살이 나쁘고 충동적인 결정이라 해도 "근본적으로 옳다"고 사즈는 말했다. 또 상담하고 오류를 깨닫게 도울 뿐, 우리의 의지를 자살하려는 이에게 강요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사즈는 1986년 [미국 심리학자]에 게재한 글에 이렇게 썼다. "'자살 방지'라는 표현 자체가 치료 만능 시대의 착오적인 표어다(...) 방지라는 표현은 특히 자살과 짝지어지면 강압을 의미한다."

 

-도덕론자라면 자살을 본래 잘못으로 인식해 무슨 수를 쓰든 막아야 한다고 느낀다. 자유론자는 정반대다. 사람은 살아야 할 사회적 의무가 없으며, 자유의사를 가진 인간으로서 선택지를 가늠해서 죽기로 결정한 사람을 강제로 살게 해선 안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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