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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동등하고 싶을 뿐이다! | 에세이 2017-09-10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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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리베카 솔닛 저/김명남 역
창비 | 2017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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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문득 얼마전 가부장을 뒤집은 가모장 발언 으로 모든 여성들에게 통쾌함을 심어준 숙 크러쉬 김숙 언니가 생각났다. "어디 남자가 아침부터 인상을 쓰고 있어!" , "남자가 집에서 살림만 잘하면 되지." , "그 깟 돈이야 내가 벌면 돼." , "남자 목소리가 담장을 넘으면 패가 망신한다는 얘기가 있어." 같은 주옥같은 그녀의 어록을 듣고 있으면 통쾌함이 절로 밀려옴과 동시에, 단지 예전부터 여자들이 수도 없이 듣던 소리를 성별만 반대로 바꿨을 뿐인데 사람들에게 신선하고 큰 충격을 줬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왜 그동안 거꾸로 생각해 볼 생각은 못했을까. 그리고 상황을 거꾸로 뒤집어 봄으로써 여자들에게 쏟아지던 이 말들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것이었는지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그래도 요즘엔 시대가 바껴서 여자가 능력이 있어 돈을 잘 벌면 집에서 애 키우고 살림만 하겠다는 남자들도 늘고 있다고는 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어디 집에서 살림만 하는 남편이 목소리를 높여?" 라는 말을 들으면 과연 가만히 있을 남자가 있을까? 사실 여자한테 저런 말해도 가만히 있을 여자는 없겠지. 지금이 때가 어느 땐데. 

그렇다. 세상이 점점 바껴가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페미니즘 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고, 책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나만 해도 최근들어 페미니즘 도서를 여러 권 연달아 읽으며 점점 좁았던 생각을 레벨업 해 나가는 중이다. 페미니스트 의 리더격이라 할 수 있는 리베카 솔닛 의 첫 페미니즘 책 <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 가 출간 된 이후 <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 가 출간되기 까지 우리사회에서도 많은 일이 있었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메갈리아 , 문단계 성폭력 등등 수많은 사건들이 터지면서 우리도 비로소 여성차별, 여성 혐오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토론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이 책은 리베카 솔닛 이 각종 매체에 투고했던 다양한 주제의 페미니즘 관련 칼럼 들을 모아서 묶은 책이다. 각각의 칼럼이 다른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에 흥미로운 주제도 있었고, 때로는 '진짜 이정도일까? 이건 너무 과한데' 라는 느낌이 드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하지만 살면서 염두해 두어야 할 것들, 최소한 차별 받을 때는 '이것이 차별이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미리 예방주사를 맞는 기분으로 열심히 읽었다. 말하고 싶은 건 페미니즘은 여성 우월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남성이 받는 대우 만큼만 동등하게 받고 싶다는 당연한 권리인 것이다. 

십년 전, 내가 쓴 정치 관련 책에 관해 이야기하기로 되어있던 자리에서, 나를 인터뷰하던 영국 남자는 내 정신의 산물을 논하는 대신 내 육체의 산물을, 혹은 그 결핍을 논하자고 고집을 부렸다. 그는 무대에서 내게 아이를 갖지 않은 이유를 캐물었다. 내가 어떤 답을 내놓아도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의 입장은 내가 반드시 아이를 가져야 하고 그러지 않은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에, 내가 실제로 낳은 책들을 논하는 대신 내가 아이를 낳지 않은 이유를 논해야만 한다는 것인 듯 했다. 
내가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스코틀랜드에서 내 책을 낸 출판사의 홍보담당자는 열받아서 잔뜩 찌푸린 얼굴이었다. 
" 저 사람은 남자한테는 절대로 그런 걸 안 물을걸요." 홍보 담당자가 내뱉었다. 
옳은 말이었다. ( 나는 요즘 저 말을 질문으로 바꾸어 질문자들의 의도를 좌절시키는 데 사용하곤 한다. "남자한테도 그런 걸 물으시나요?") 
<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p. 15 ~ 16 >

책의 첫 부분에서 이 부분을 보고 '진짜 그러네!' 했다. 직업적인 일로 남성을 인터뷰 할 때 공개적으로 "왜 자녀를 안가지시나요?" 이런 류의 질문을 하는 장면은 본 기억이 없다. 작가의 직업적 성취에 대해서 공개적인 인터뷰를 하는 자리에서 개인의 사생활에 해당하는 아이 낳는 부분에 대해서 질문하는 저의는 대체 뭘까? '여성의 소명은 아이를 낳는 일이야, 그걸 기억해!' 이런 걸 말하고 싶었던 걸까. 다행히 리베카 솔닛 이 저 질문을 받았던 시점이 10년 전이었다고 하니, 지금은 많이 바꼈을 거라 믿고싶다. 

책을 쭈욱 읽으며 잊고 있었던 어릴 적 일화가 하나 생각 났다. 초등학생 시절에 신도시 아파트로 이사 가기 전, 살던 집이 생각보다 빨리 팔리는 바람에 1년의 붕뜬 시간을 신도시 주변의 낡은 주택가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그 곳에서 살면서 가장 크고 많은 바퀴벌레와 쥐를 목격했다. 그리고 어찌보면 별거 아니지만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걸 보면 꽤 충격적이고 찝찝한 기억도 함께. 

초등학교 6학년 어느 날 밤, 내 방에서 자고 있는데 누군가의 낯선 인기척이 들려 뒤를 돌아보니 왠 낯선 아저씨가 방에 들어와 나를 건드리려다가 후다닥 뒤로 물러나더니 나와보라며 손짓을 했다. 처음보는 아저씨였고, 잠결에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언뜻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그래서 옆방을 향해 "엄마~~" 하고 불렀더니 놀라며 "에잇~" 하면서 나가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천만 다행이었던게 그 아저씨는 전형적인 범죄자는 아니었던 듯 하고, 그 때 엄마는 잠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고 없었다고 한다. 큰일 날뻔 했지만 별일 없어 다행이라 여기며 자고 일어난 아침, 옆집에 살던 어떤 여자아이가 어젯밤 찾아왔던 그 아저씨는 우리 옆집에 살던 주인집 아저씨이며, 난 그 아저씨한테 당했기 때문에 수치스럽고 부끄러워야 한다는 듯이 내뱉는 소리를 들었다. 그 아이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리고 난 당한게 없으며 잘못은 그 아저씨가 했는데 왜 내가 부끄러워야 될까. 하지만 난 정말로 이유모를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꼈고, 그 날부터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 잤으며, 그 아저씨와 비슷하게 생긴 어른들을 지금까지도 경멸하게 됐다. 이 글을 쓰면서도 뭔가 작은 수치심이 생긴다. 

보통 성폭행을 당하면 수치심 때문에 신고를 하지 않고 혼자 끙끙 앓거나, 혹은 신고를 하더라도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이 너무 수치스럽고 힘들어 2차 피해를 당하는 느낌이 들만큼 힘들어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심지어 그렇게 힘든 과정을 진행하고 나서도 피의자에게 유죄가 선고되는 일은 극히 적다고 한다. 피해를 당했다는 것 자체가 여성에게 수치라고 생각되는 사회 분위기와, 그런 일을 당하는데는 여자에게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는 사회의 시선 때문인데 이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강간은 강간범이 저지른다는 것이다. 여자가 어떤 옷을 입었고 무엇을 마셨든, 어디를 갔든, 그런 게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 강간은 고의적 행위고, 행위자는 강간범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특히 대학 캠퍼스의 젊은 여자들이 스스로 강간하는 것처럼 상상하게 되는데, 이처럼 강간을 신비화하는 이야기 속에는 캠퍼스의 젊은 남자들이 아예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일종의 날씨처럼, 주변에 감도는 자연력처럼, 우리가 다스리거나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불가피한 무언가처럼 추상화 된다. 이런 이야기에서 남자들 개개인은 사라지고, 강간과 폭행과 임신은 여자들이 적응할 수 밖에 딴 도리가 없는 날씨가 된다. 여자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건 여자 자신의 잘못이다. 
<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p. 267>


성폭행이나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여자가 원인을 제공했다느니, 그러게 왜 밤늦게 돌아다녔냐느니 하는 말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물론 조심할수록 더 좋긴 하겠지만, 그렇다면 남자는 이성적인 판단력이 없단 말인가,  스스로 본능에만 이끌리는 짐승이라고 증명하는 것이란 말인가.  

인류에게 왜, 언제부터 남녀차별 이란 것이 생겨나게 된 것일까에 대해 남자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혹시 수렵과 채집 시절에 남자가 주로 밖에 돌아다니며 짐승을 잡아오고, 여성은 안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DNA가 남아있어서 여성의 사회참여 같은 부분에 아직도 편견이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책을 읽다가 리베카 솔닛 이 그 부분에 대해 정면 반박하는 내용이 있어 흥미롭게 읽었는데, 수렵과 채집에 있어 남성은 짐승을 잡아오고, 여성은 남성에게만 의존하며 집에서 가만히 있었다는 얘기는 거짓이라는 주장이었다. 남성과 여성은 분명 자신의 역할에 따라 상호 의존적으로 살아왔고, 현재까지 원시부족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부족들을 살펴봐도 그렇다는 것이다. 

여자를 의존적이라고 부를 순 있겠지만, 그것은 남자에게도 기꺼이 똑같은 표현을 쓸 때만이다. 의존성은 썩 유용한 척도가 아니다. 그보다는 상호의존성이 더 나을 것이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쓸모없고 의존적인 존재가 아니었고, 지금도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렇지 않다. 남자는 주고 여자는 받는다는 생각, 남자는 일하고 여자는 논다는 생각이 담긴 사냥꾼 남자 이야기는 현재의 정치적 위치를 정당화 하는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p. 202>

페미니즘 을 주장하며 남녀 간의 불화를 조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는 오히려 서로의 다른 점을 존중하고 인정하며 함께 성장하고 싶다. 어차피 남녀는 함께 살 수 밖에 없고, 가족을 이루거나 함께 자손을 낳고 기른다.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가정'이 남녀의 결합을 기반으로 하기에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몇몇 사람들은 페미니스트가 드세고 괜한 것에 깐깐하게 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 듯 하다. 그러면서 김치녀, 맘충 등 여성혐오 단어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기도 한다. 자신의 아내, 자신의 딸은 모든 여성혐오 대상에서 예외 인 것처럼... 

남녀 차별, 인종차별, 소수인 차별, 장애인 차별 이런 모든 인권 문제들이 조금씩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미래를 상상해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알아야 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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