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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멈춤의 위로 | 기본 카테고리 2022-01-22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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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속도를 가진 것들은 슬프다

오성은 글,사진
오도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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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멈춤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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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변화를 만들어 준, 그 계기를 마련해준, 선배와 스승들은 무수히 많다. 오늘 그 중 한 분이 입적하셨다. 한 삶이 사라지면 그에 상응하는 우주가 하나 닫히는 기분이다. 처음의 조우로 기억은 빠른 속도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제목처럼 속도를 가진 모든 것이 슬프다.

 

나는 본래 슬픔을 잘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더더욱 슬픔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걸 깨닫는 중이다. 슬픔도 잘 씻길 수 있도록 속도를 잠시 버려둔 채 오래 들여다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20대였고 무지하고 건방지고 말은 분명하고 똑똑하게 하는 거라 믿었다. 모를 뿐 세상만사 다 이유와 논리와 답이 있다고 믿었다. 모두 다 다른 우리들이 같고 다른 고민을 하며 같고 다른 역할을 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만들었다는 것도 몰랐다. 그러면서 학위도 있는 과학 전공자였다.

 

이제는 그 시절을 사진처럼 필름처럼 다시 열어보아도 심하게 부끄럽진 않다. 여전히 그런 태도라면 문제였겠지만 보고 싶지 않아도 알고 싶지 않아도 살다보니 절감하게 되는 것들이 적지는 않다. 가장 생생한 기억 중 하나는 4대 생불 중 한 분이라는 분께 대든(?) 순간이다.

 

명상이니 참선이니 내가 가진 가치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무가치한 혹은 그릇된 사기가 아닌가 해서 분명한 공격성을 띈 질문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참 잘한 일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명상법이 있고 내가 가진 이미지만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가장 마음이 가는 명상법은 걷기 명상과 먹기 명상이었다. 발을 딛는 땅을 느끼며 걸어가는 시간에 그 길에 존재하는 모든 다른 존재들을 가능한 많이 느끼는 일. 그래서 친구도 생기고 이웃들도 만났다.

 

빛과 빛 사이로 주름진 세월이 가득 녹아 있다. 세상 풍파에 휩쓸리기 쉬운 지형이지만 눈앞의 드넓은 바다가 마을을 버티게 한다. (...) 그곳에는 누군가의 유년이, 과거가, 시간이 숨어 있다. (...) 사람은 오가고, 마을은 변하고, 아이는 자라고, 바다는 여전히 버티고 있다.”

 

내게는 프랑스 플럼 빌리지의 승려이고 내 학교에서 연이 닿은 영국에서 만난 스승이셨다. 어떻게 지내시는 지 안부를 종종 찾아 보다, 2018년 베트남으로 영구 귀국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래 전 그를 추방한 세력은 스러지고 사라졌다. 고향으로 돌아 가셔서’ ‘돌아 가셨다.’

 

이 책의 저자는 특수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자신의 고향을 가득 담아 놓았다. 골목이며, 기차역이며, 배들, 바다 그리고 책들. 오래 된 귀한 것들, 애정을 쏟고 추억을 담지한 것들을 사진으로 글로 기록하는 일이 부럽다.

 

나와 동생은 호떡 냄새를 귀신같이 알아맞혔고, 어머니는 뜨거운 호떡을 손으로 북북 찢어줬다. 설탕물이 뚝뚝 떨어지면 단박에 입가에 침이 고였고, 나는 입천장이 델 것도 모르고 덥석 물기 바빴다. 아스라함이란 제법 뜨거운 단어다.”

 

나는 매일 짐정리를 할 궁리를 한다. 예전엔 큰 가방 하나 만큼의 꼭 필요한 물건만 갖고 살다 죽으면 좋겠다 했는데, 한 집 가득 내 물건들이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책들을 덜어내고 사지도 않았는데 점점 늘어가는 굿즈들을 일단 작은 상자 안에 모아본다. 메모지, 공책, 엽서, 책갈피, 필기도구들이 대부분이니 무선별로 누군가들에게 선물로 보내고 싶다.

 

내가 부르지 않아도, 간절히 바라지 않아도 그 소리가 어딘가를 통과해 우연히 내게 도착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바람이 나를 스쳐 갔고, 해는 저만치 기울어버렸다. 누구도 응답하지 않을 것만 같은 오후가 흐르고 있었다. 오야, 오야. 내 부름에 답하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었다.”

 

다정한 표정, 차분한 목소리, 작고 확실한 방법을 알려 주시던 그 방이다. 그날 이후로 어떻게 삶이 바뀔지 전혀 모르던 내가 여전히 단단한 얼굴로 그래도 잘 알아듣고 있다. 육신 밖으로 나가신 스승은 무엇이 되실까, 어디로 가실까. 천천히 쉬엄쉬엄 걸어가시길.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다시 만나 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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