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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음'은 다른 세계의 문을 여는 열쇠 | 기본 카테고리 2021-12-03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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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저
문학동네 |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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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치킨을 시켰다. 자연스레 맥주 캔도 땄다. 세로로 적힌 ‘작별하지 않는다’는 표지를 넘기고 책을 넘긴다. 몇 장 읽지 못 했는데,치킨과 맥주가 목으로 넘어가지 않는다.‘이것 참’이라는 생각과 함께 책을 덮는다. 식탁을 치우고 다시 책을 든다.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는 작가의 말을 읽으며 책을 덮는다. 새벽 3시다. 숨 막히는 정적, 해연의 가장자리에 서있는 듯 하다. 마치 아마가 부리로 가슴을 찌르는 것처럼.

이 책은 과거와 현재가, 현실과 꿈이, 경하?인선?정심의 이야기가 뒤섞여 진행된다. 이 책은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에게 마치 배음처럼 언제나 깔려있는 무엇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내 옆의 누군가에게는 ‘무엇’이 아닌, 피 같은 뜨거운 ‘어떤 것’이리라.

우리가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와 함께 걷는 고통도 느껴야 한다. 고통이라는 것은 사랑 뒤에 숨은 그림자 같아서, 어지간해서는 마주하기 힘들다. 손가락 신경을 살리기 위해 3분에 1번씩 바늘에 찔려야 하는 인선처럼 우리 스스로 한겨울, 눈 내리는 고통의 강을 건너야 한다. 그 추위와 물보라에 몸을 부들부들 떨어야,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몸소 느낄 수 있다.

그간 상처 위에는 딱지가 생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딱지 없이, 계속 피가 흘러야 할 수도 있겠다. 통증 없는 상처가 상처겠는가,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넘어선 사랑을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고통이 되고, 고통은 전염된다. 하지만, 인선을 통해 정심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지독한 고통과 지극한 사랑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결국, 사랑도 전염되는 것이다.

고통의 강을 건너면, 이 전에 봤던 사랑보다 더욱 지극한 사랑을 마주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사라지지 않고 순환하는 물처럼, 경하가 맞은 눈송이, 인선이 맞은 눈송이, 그리고 정심이 맞았던 눈송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연결되어 있다.

영겁의 순환하는 눈보라 속에서 경하를 일으킨 것은 인선이 부탁한 앵무새다. 앵무새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울다가도 빛이 없으면 즉시 잠들어버린다. 국가, 사회, 또는 누군가의 이름으로 벌어졌던 절멸과 혐오의 메커니즘도 마찬가지이다. 끝까지 고개를 들고 횃대에 매달려 있다가, 떨어지면 이미 죽는다는 앵무새처럼, 상처에 딱지가 앉고,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금방 잊혀 진다. 고통을 직접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고, 그 기억들은 녹아내리는 눈처럼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폭력, 차별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코발트 광산에 누워있는 오빠와 작별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정심. 하지만, 국가폭력이 두려워 34년 동안 신문 스크랩을 하지 못했던 정심. 결국 뼈 한 조각도 찾지 못한 정심. 인선의 말처럼 엄마는 실패한 것인가?
아니다. 정심은 한 순간도 작별하지 않았다. 작별의 주체를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누군가는 인간이 아니라고 하지만, 아직 인간인 것, 살아있는 것을 위해 영겁의 순환하는 눈송이를 맞으며,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정심의 모습을 보며,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칼질을 하다 손가락에서 피가 날 때마다, 손톱을 깊이 깎아 상처가 날 때마다, 덜 아문 자리에 실수로 소금이 닿을 때마다 아픈 것이 사랑이다.

우리 대부분은 고통의 한 가운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구도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설령 강요한다고 해도, 복종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서 볼 것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문을 여는 열쇠로서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 사람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이는 주변에 전파된다. 이런 과정이 순환된다면, 이 사회가 조금 더 고통에 민감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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