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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굿이 나무를 톺아보면 들리는 사람살이 | 마흔의 서재(수리중) 2020-02-26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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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무를 심은 사람들

고규홍 저
휴머니스트 | 2020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수굿이 나무를 톺아보면 사람살이가 보이고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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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굿이 나무를 톺아보면 들리는 사람살이

<나무를 심은 사람들>을 읽고

 

 

[들어가며] '나무'라는 단어를 마주할 때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책으로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잠언으로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유행가로는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이 그러하다. 여기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나무의 이미지는 '한결같음'이라고 생각한다. 한 아이가 자라서 노인이 되어서도, 불확실한 내일이지만 오늘도 묵묵히 살아가는, 오래도록 사랑한 연인을 그리는 그 누군가의 곁을 지키며 그들의 삶을 기억해주는 존재의 한결같음을 나무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나무 인문학자' 고규홍은 이러한 나무의 가치를 알아보고 20년 넘게 나무와 대화하며 그들에게 담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슈베르트와 나무>, <고규홍의 한국의 나무 특강> 등 나무에 관한 여러 책에서 '나무'를 매개로 다양한 인문학적 성찰을 보여준 그가 신작 <나무를 심은 사람들>을 통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역사의 현장을 지켜본 나무와 그 나무를 심고 돌보며 살아간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무를 찾아 나무 앞에 머물던 시간에 나를 찾아온 것은 나무보다 먼저 그 나무를 심은 혹은 나무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나무를 찾아갔지만 나무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났다.(6쪽)

 

    <나무를 심은 사람들>에 소개된 나무와 나무를 심은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나무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이 땅에 자리잡는다. 하나는 말 그대로 사람이 나무를 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의미 있는 장소에 꽂으면 거기서 나무가 자라나는 식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민간에서 전해지는 설화나 전설에 나오는 이야기다보니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여겨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작가는 말한다. 나무와 그 이야기에는 상징과 은유로 표현된 사람살이의 중요한 가르침이 담겨져 있다고. 그래서 과학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나무의 전설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인다.

 

[나무를 심은 사람들1-선비]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즐겨 심었던 나무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은행나무라고 한다. 유학의 대명사이자 아이콘이기도 한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며 학문을 설파하던 자리를 '행단(杏壇)'이라고 불렀던 유래에서 알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오래된 향교나 서원에서도 은행나무를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같은 까닭이라고 한다.

 

    사라져가는 하나의 생명을 포근히 품어 안은 소수서원 솔숲은 그래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사람살이의 평범하면서도 깊은 철학을 고스란히 담아낸 철학의 숲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73쪽)

    개인과 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듯 소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모여 솔숲을 이룬다. 그 군집 속에서 줄기를 뻗어나가는 묘목이 있는가 하면, 수명을 다한 고사목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나무가 서로 연대하며 삶과 죽음을 마주하는 법을 가르치고 터득하는 것처럼 사람이 사는 세상도 나무와 다를 바가 없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소수서원의 솔숲에는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과 더불어 이루어진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소수서원 솔숲

 

    나무는 앞에 나서서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지만 오래된 문화재 안팎에서 옛사람들의 숨결을 고스란히 지켜주는 참으로 소중한 자연문화재다. 물론 그 깊은 속내를 들춰내는 것은 사람에게 주어진 몫이다.(85쪽)

    저자는 오죽헌에 있는 율곡매와 배롱나무가 신사임당과 율곡의 자취와 숨결을 고스란히 지켜주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문득 떠올랐다.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에 자리한 문화유산에 켜켜이 쌓여있는 이야기를 읽고 나면 당장이라도 그 곳으로 달려가 문화유산의 숨결과 그들이 주는 감동을 흠뻑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일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과의 만남도 좋지만 같은 공간에서 우리와 같이 살아 숨쉬는 나무와도 대화를 해보고 싶어진 것이다.

 

    평범한 백성들이 심은 나무에는 백성의 살림살이가, 학자들이 심은 나무에는 그들의 철학이, 종교인이 심은 나무에는 종교적 신앙이, 정치가들이 심은 나무에는 정치의 역사가 담겨 있다.(101쪽)

    나무에게 곁을 내어준 사람의 '사람살이'를 나무가 묵언으로서 증언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아꼈던 백송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어 중국 밖에서는 자라기 힘든 백송이 왜 우리나라에서 자랐으며, 또 굳이 이 나무를 이 자리에 심고 애지중지 키운 이유는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건 나무 안에서 우리의 역사를 찾아보는 일이 된다고 강조한다.

 

[나무를 심은 사람들2-민중]

     "아가야! 살아서 입으로 먹지 못한 쌀밥, 죽어서 영혼이 되어 눈으로라도 실컷 먹으라!"(156쪽)

    아기 무덤을 지켜주던, 쌀밥을 닮은 꽃이 피어나는 이팝나무에는 보릿고개로 인해 아이를 떠나 보내야만 했던 아비의 가슴 깊이 맺힌 한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저자는 진안 평지리 이팝나무를 바라보며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이팝나무 꽃처럼 풍성하게 피어날 수 있도록 부모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기를 권한다.

 

    지친 나무들을 사람처럼 여기고, 사람에게 힘이 되는 막걸리를 나무에게 나눠주며 더불어 살아가려는 사람의 정성으로 생각하면 아름다운 풍습이라 할 수 있겠다.(214쪽)

    30여 년 전 경북 청도 운문사에 있는 처진소나무(천연기념물 제180호)의 악화된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막걸리 공양'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막걸리가 나무의 생장과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알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그 영향을 입증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도 더불어 사는 멋을 아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나무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해마다 봄이면 맛난 막걸리를 흠뻑 마시고 겨우내 지친 몸을 추스르는 장한 나무다. -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

 

[지팡이를 꽂은 사람들-스님]

    '세상사 모든 일이 마음먹기 달렸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로 유명한 원효대사의 인생 나무는 비자나무라고 한다. 특히 비자나무의 쓰임이 꽤 흥미로운데, 비자나무의 열매인 비자는 구충제로 쓰이며 비자나무는 귀한 목재로서 바둑판으로 더없이 좋은 재료라고 한다.

 

    나무를 심는 건 분명 스스로를 위한 일이 아니다. 아무리 빨리 자라는 속성수(速成樹)라 하더라도 나무로부터 얻을 수 있는 혜택을 제대로 누리려면 나무를 심는 사람의 수명보다는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하다.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는 나무를 심을 수 없는 일이다.(193쪽)

    저자는 후손들에 대한 사랑과 배려심이 있어야만 한그루의 나무를 심을 수 있다고 덧붙인다. 이를 몸소 실천한 사람으로 풍수지리설의 연관 검색어라고 할 수 있는 도선국사가 있다. 나무를 심는 것과 마찬가지로 풍수지리도 한 사람의 삶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자자손손에게까지 영향을 준다는 점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도선국사가 전국을 누비며 풍수가 좋은 곳을 표시하는 방법이 바로 좋은 나무를 심는 것이었다고 한다. 경기도 이천 도립리에 남아있는 반룡송으로 불리는 소나무는 도선국사가 나무를 심으며 장차 이곳에서 큰 인물이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여기서 저자는 고단한 삶을 살아내던 당시의 민중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기 위한 도선대사의 배려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어느 누구에게라도 한 가지의 소원은 꼭 이루어준다는 전설이 함께 전한다. -이천 도립리 반룡송

 

    반면에 보조국사 지눌의 인생나무로 불리는 고향수(枯香樹)는 고사목(枯死木), 즉 말라 죽은 나무라고 한다. 스님의 발이 되었다가 다시 스님에 의해 생명을 되찾은 이 나무는 현재 우리나라 삼보(三寶) 사찰의 하나로 알려진 송광사에 있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은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냥 스쳐 지나기 십상일만큼 앙상한 줄기의 모습으로 남아있지만 그 옛날 중생을 위해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던 지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나무를 심은 사람들3-항일운동가]

    이제 고작 100년을 채 못 살았지만 앞으로 이 나무가 살아갈 세월은 그 몇 배가 넘을 것이다. 풀어내는 만큼 자신의 결 안에 담아야 할 사람들의 이야기도 그만큼 클 것이다.(357쪽)

    근대사로 넘어오면서 조금 더 현실감 있는 인물과 나무를 만날 수 있다. 그 가운데 백범 김구 선생과 <상록수>를 지은 심훈 작가 모두가 애지중지한 나무가 향나무로 똑같다는 점이 흥미롭다. 특히 베를린 올림픽의 영웅, 마라토너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과 함께 부상으로 받았던 작은 화분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인상깊었다. 그가 화분 속 작은 나무의 나무잎으로 가슴에 붙여진 일장기를 가렸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역사의 치욕을 가려준 나무가 대왕참나무였으며 당시 독일 베를린 지역에서 월계수를 구할 수 없어 참나무(오크, Oak)로 대신했다는 일화도 알 수 있었다.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당시 올림픽 시상식의 흑백 사진을 수도 없이 봐왔으면서도 미처 눈여겨 보지 않았던 그 자리에 바로 나무가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이 사진을 볼때마다 나무가 전하는 역사에 귀 기울여보기로 다짐해본다.

 

손기정 선수와 역사의 치욕을 가려준 대왕참나무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나무를 심은 사람들4-이색적인(異色的人)]

    한 그루 소나무의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전통 혼례를 치르고, 그 후계목을 키워나가려 애면글면한 정성은 우리 민족이 얼마나 소나무를 아끼는 민족인지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사례라 할 만하다.(339쪽)

    정이품송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소나무에게 정이품의 벼슬을 내린 것도 신기하고 이 소나무를 보존하기 위해 전통 혼례식을 치뤄 후계목까지 키워냈다는 이야기가 무척 흥미롭다. 특히 혼례의 주례는 산림청장, 신랑과 신부의 혼주는 각각 보은 군수와 삼척 시장이 맡았다는 저자의 말에 절로 웃음이 났다.

 

    천리포수목원은 마이클 폴란의 말대로 사람과 자연 혹은 자연과 문화의 중간지대에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창조적 지혜'를 실현시킨 대표적 숲이라 할 수 있다.(383쪽)

    천리포수목원은 책이나 언론 기사를 통해 이따금씩 접했지만 수목원의 전반에 관한 이야기는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파란 눈의 나무 할아버지로 불리는 칼 페리스 밀러, 민병갈(한글 이름)이 평생에 걸쳐 충남 태안반도에 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식물을 심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수목원이라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 곳은 1만8천 종류의 토종식물과 외래식물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있으며

인공미와 자연미의 절묘한 조화로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는 수목원이라고 한다. 책을 일고 천리포수목원 관련 사진과 영상을 찾아보면서 더욱 현장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꼭 함께 가서 저자가 말했던 감상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 

 

민병갈 흉상과 완도호랑가시나무 -사진 출처: 천리포수목원 홈페이지

 

    세상이 열리고 그 안에 나무가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무를 베어내고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무를 심어야 했다.(383쪽)

 

[나오며] 작년에 읽었던 나무의사 우종영의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에서 '실제로 나무는 성장하는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를 마치 자서전처럼 나이테에 고스란히 남긴다'는 문장을 보면서 나무의 나이테는 그 나무의 일기와도 같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 이번에 <나무를 심은 사람들>을 읽으면서 나무는 자신의 삶, 즉 나무살이를 나이테라는 일기장 또는 자서전에 써내려감과 동시에, 자신의 곁을 내어준 이의 사람살이를 마치 사관이 역사를 기록하듯이 나이테에 한 글자 한 글자 기록하는 존재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만일 그렇다면, 현재를 살아내고 있는 우리의 일상과 삶을 우리가 매일같이 지나치는 가로수가, 혹은 숲과 산 속의 나무들이 기록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하루하루를 결코 허투루 보내서는 안될 것이며 나아가 오늘을 어제보다 더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을 읽는 내내 입 안과 머리 속에 맴돌았던, 나무라는 존재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두 단어를 다른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바로 '수굿하다''톺아보다'이다. 지금까지 말해보거나 들어보지 못했던 터라 처음에는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계속 책을 읽어나가면서 어느덧 '수굿이' 나무와 나무를 심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톺아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개 숙여 찬찬히 나무가 전하는 '나무를 심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리가 왜 나무와 끊임없는 대화를 나눠야 하는지 조금씩 알게 될 것이다.

 

 

 

=====서평단 리뷰어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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