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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작가의 고민과 일상이 궁금하다면 - [나의 작은 화판]을 읽고 | 마흔의 서재(수리중) 2020-06-19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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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의 작은 화판

권윤덕 저
돌베개 | 2020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25년 동안 작가가 세상에 선보인 열 권의 그림책에 관한 작가노트이자 작가의 현재까지의 삶과 그림책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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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책 작가의 고민과 일상이 궁금하다면

<나의 작은 화판>을 읽고

 

 

 

[책을 열며] 그림책을 좋아한다. 시작은 아이 때문이었지만 어쩌면 지금은 아이보다 더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주 주말이면 어린이 도서관에서 그림책 열 권씩 빌려오는 습관이 생겼다. 어떤 날은 한 작가의 여러 작품들을, 또 어떤 날은 비슷한 주제의 여러 작가들의 그림책을 펼쳐본다. 아이를 통해 그림책 세상의 사각지대에 숨어있던 요소들을 새롭게 감각하는 즐거움은 덤이다. 그동안 직접 고르거나 여러 경로를 통해 추천 받은 그림책들을 봐오면서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하나 있다. 날마다 아이와 나에게 유익한 그림책이 어떤 것이 있을까만 고민했지, 그림책을 짓고 그린 작가의 개인적 고민과 일상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것이다.

    이번에 권윤덕 작가의 그림책 작업 과정과 일상의 이야기를 담은 책, <나의 작은 화판>을 집어든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먼저 이 책을 통해 권윤덕 작가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우리나라 창작 그림책 1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를 알게 된 기쁨과 이제서야 작가를 알게 된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낀다. 올해 <구름빵>의 백희나 작가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에 앞서 권윤덕 작가는 두 차례 이 상의 후보로 올랐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의 작은 화판>은 지난 25년 동안 작가가 세상에 선보인 열 권의 그림책에 관한 작가노트이자 작가의 현재까지의 삶과 그림책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작고 하얀 화판을 가지고 태어난다. 화판에 무엇을 담아 어떻게 그려 갈지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수없이 많은 탐색선을 그을 수밖에 없고, 대부분이 삐뚤고 망친 선투성이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지지 않을까. 거기서 다시 그려 나갈 실마리 하나쯤은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8쪽)

 

[책 속으로-개인과 일상에 대해] 오래된 가정집과 그 공간에 자리한 집보다 더 오래된 물건들의 이야기를 담은 「만희네 집」이 1995년 처음 발표되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일본 그림책 몇 권이 눈이 띌 정도였으나 지금은 고르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은 그림책을 만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당시 작가의 아들 만희가 어린 시절 특히 좋아했던 <이슬이의 첫 심부름>과 <도깨비를 빨아 버린 우리 엄마>를 지금의 딸아이도 좋아하는 걸 보면서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고전의 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아이가 그림을 읽어 내는 모습을 보며 그림책이 어린이와 어떻게 소통하는지, 어린이에게 어떤 상상을 불러일으키는지에 대해 자연스레 배울 수 있었다는 작가의 말도 공감이 간다.

 

    아마도 그건 매일매일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 돌보고 살아가는 일상 속에 내가 가장 깊숙이 들어가 있었고, 그 시간을 의미있는 것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바람이 그림으로 발현됐기 때문이 아닐까.(36~37쪽)

 

    이어서 나온 「엄마, 난 이옷이 좋아요」는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을 떠올리며 책 속의 여자아이가 되었다가 또 화판 앞의 화가가 되었다가 하면서 그림책과 현실 속 공간을 넘나들며 만든 책이라고 작가는 회고한다. 평소 옷장 서랍을 열어 옷가지를 꺼내 입고 벗기를 좋아하는 아이와 함께 이 그림책을 보았다. 저자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아이는 그림책 속 알록달록한 색감의 옷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짚어가며  자신이 최애하는 핑크색 옷들을 골라내고 내게도 어느 옷이 마음에 드는지 물었다. 훗날 이 그림책을 어른이 된 아이와 손주들이 함께 보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나는 내가 어린 시절에 느꼈던 행복을 어린이들도 느끼고 스스로 행복하기를 바랐다. 책장을 넘기다가 자기 옷에 담긴 이야기를 옷장에서 하나씩 꺼낼 수 있기를 바랐다. 표지를 넘겨 자잘한 액세서리 그리으로 가득한 면지를 마주하고는, "엄마는 이 중에서 어느 것이 제일 예뻐?"라고 물어봐 주기를 기대했다.(57~60쪽)

 

    다음으로 「만희네 글자벌레」는 어린 시절 만희의 낙서장과 아이들이 즐겨했던 게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글자벌레들이 책 속에 살면서 인간의 부조리와 한계, 가능성을 읽고 배우면서 인간보다 더 진화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이야기라는 작가의 설명을 듣고나니 어른이 먼저 보고 읽어야할 작품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사회 적응을 절대적인 가치로 삼아 어린이들의 본성을 억누르고 싶지 않았다. 어린이는 나름 나름의 기질과 재주를 가지고 태어난다. 각자 그것을 밑천 삼아 사회 안에서 서로 보완하고 어울어지면서 저마다의 행복과 의미를 찾아간다. 사회의 기존 가치나 질서와 끊임없이 갈등하고 화해해 가면서, 새롭고 다양한 삶의 형태가 만들어진다. 글자벌레가 그런 지혜를 가진 존재라 믿고 싶다.(96쪽)

 

    또한 작가가 고양이 '진주'의 집사로 함께 보냈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그린 「고양이는 나만 따라해」는 정서적으로 움츠린 아이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불러일으켜주는 책일 것 같아 조만간 함께 볼 계획이다. 그 밖에 제주도 해녀의 삶을 그린 「시리동동 거미동동」과 일과 도구의 관계 속에서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진리를 일깨워주는 「일과 도구」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화가의 눈으로 시대를 기록함으로써 다음 세대가 역사를 반추하는 데 소중한 자료가 되는 기록화로서의 기능도 할 수 있다는 작가의 말을 통해 그림책의 또 다른 면모를 알 수 있었다.

 

「고양이는 나만 따라해」 드로잉

 

 「시리동동 거미동동」 드로잉

 

「일과 도구」 드로잉

 

[책 속으로-사회와 역사에 대해] 권윤덕 작가는 사회와 역사에 대해 목소리 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생대 캄브리아기에 살았던 동물로 대부분의 동물이 멸종한 시기를 견디고 살아남아 진화하면서 척추동물의 조상이 되었다는 '피카이아'를 처음 알게 되었다. 「피카이아」는 상처를 안고 있는 여섯 명의 어린이들이 가정, 학교, 사회에서 피카이아처럼 버티고 살아남아 새로운 가능성을 펼쳐 보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새롭고 낯선 단어만큼이나 형식면에서도 독특한 그림책인 것 같다. 작가는 「만희네 글자벌레」가 그림에 대한 고민을 낳게 한 책이라면, 「피카이아」는 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 책이었다고 말한다. 어린이와 사회구조에 대한 메시지도 담겨있어 아이가 좀 더 크면 함께 읽어봐야겠다.

 

 

  「피카이아」 드로잉

 

    「꽃할머니」는 위안부 문제를 다룬 첫 그림책으로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길 바라는 작가의 염원이 담겨져 있는 작품이다. 특히 그림책 속 이미지를 표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폭력을 직접 묘사하지 않고 폭력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는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다. 요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와도 겹쳐보여 시간을 두고 꼭 읽어볼 생각이다.

 

    국가 폭력이나 사회구조적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고, 그러면서도 커다란 역사의 그물망을 빠져나가는 개인들의 소소한 삶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사회구조와 상호작용하는 개인, 즉 구조로부터 영향을 받지만 그 속에서 고민하고 갈들하며 끝내 구조를 바꾸어 가기도 하는 개인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203~204쪽)

 

    제주 4·3 역사를 주제로 한 「나무도장」은 평화와 인권에 관한 이야기다. 보다 객관적이고 철저한 고증을 위해 작가는 현장답사와 취재, 관련 자료를 찾아 공부하는 등 3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 기간 동안 열 권이 넘는 더미북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더미북'이라는 용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더미북은 그림책을 완성해 가는 단계에서 만드는 가제본이라고 한다. 작가는 더미북을 넘겨 가면서 각 장의 구성뿐 아니라 흐름과 연결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더미북 제작은 작가의 생각을 촘촘히 짜면서 독자와 소통하는 길을 다듬는 과정이라고 덧붙인다.

 

    「나무 도장」의 초반부에 뭍사람들이 차례로 바다를 건너오는 장면이 역사의 뜰채로 건져 올린 굵직한 사실이라면, 시리와 엄마, 외삼촌 같은 제주 사람들은 그 뜰채를 빠져나가는 세세한 개인이다. 양자 관계를 잘 드러낸다면 고착된 이념을 넘어 생명과 인권,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에 새롭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278~279쪽)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씩스틴」은 그림책의 화자가 다름아닌 '씩스틴'(M16)이라 불리는 총이라는 사실이 무척 놀랍다. 작가의 가장 최근의 작품이기도 하고 지난 달에 관련 기념일도 있어서 직접 그림책을 펼쳐보았다.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시선으로 시작되는 전개를 따라 가다보면 씩스틴이 겪게 되는 내면의 갈등과 변화가 당시 역사와 오버랩되는 걸 느낄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씩스틴의 총열 안에 담긴 씨앗망울의 의미를 곱씹게 되기도 한다.

 

    「씩스틴」을 스케치하는 내내 나는 밝고 화사한 그림책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중략) 하얀 화판은 죽음을 넘어서서 밝고 경쾌해지도록 나를 부추겼다. 내게 하얀색은 생명과 희망의 색이었다.(334쪽) 


[책을 닫으며] <나의 작은 화판>을 통해 작가에게는 산고의 고통과도 같은 그림책이 한 권씩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림책과 그림책 작가에 대해 많은 걸 배우고 생각할 수 있었다. 새로운 책을 만들 때마다 그에 맞는 산수화, 불화 등 그림 그리는 기법을 배우고 익히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그림실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작가를 보면서 나의 일을 대하는 자세를 돌아보게 된다. 무엇보다도 자신은 물론 타자, 그리고 독자와의 끊임없는 소통이 작가가 열 권의 그림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소통의 과정에서 매번 힘든 주제를 어떻게 해내느냐는 독자들의 물음에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간절함, 이 사회에서 나가떨어지지 않겠다는 절박함, 내가 세상에 나올 때부터 갖고 있었던 생명의 심지를 발견하고, 쉽게 휘청거리거나 꺾이지 않도록 애쓴 과정이었다."라고. 불현듯 책 띠지에 적혀있는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다른 그림책 작가들의 이야기도 책으로 나와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라고 쓰고 '욕심'이라 읽는다)이 생겼다. 물론 그림책을 보는 사람의 경험과 해석에 따라 저마다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지만, 때로는 작가의 생각과 의도를 이해한 뒤 그림책을 다시 본다면 그림책 보기의 또 다른 재미와 매력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끝으로 '네모난 세계가 가져다준 열 권의 그림책, 막막한 슬픔을 지나 담담한 아름다움에 이르기까지'라는 책 뒷표지의 문구에 시선이 멈춘다. 문득 열 권의 네모난 그림책 속에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삶 속에 켜켜이 쌓인 슬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애쓰고 공을 들였던 작가의 그림책은 작가가 우리에게 보내준 선물이 아닐까. 우리가 앞서 말한 열 권의 그림책에 담아보낸 작가의 바람을 헤아리며 보고 읽는다면 이 또한 작가에게는 작은 위안과 답례가 될 것 같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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