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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고궁의 옛 물건

주용 저/신정현 역
나무발전소 | 2020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잠들어 있던 중국 고궁박물원 옛 물건을 깨워 오늘날의 우리에게 지적 호기심과 문화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일깨워주는 저자의 필력이 돋보이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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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

<고궁의 옛 물건>을 읽고

 

  장자는 아침 버섯이 그믐과 초하루를 모르고, 매미가 봄과 가을을 모른다고 했다. 궁전도 같은 가르침을 준다. 한 사람이 600년의 궁전, 7천 년의 문명으로 들어오면 모래 한 알이 사막에 파묻히듯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고궁에 들어가면 젊은 시절의 광기가 가라앉고 진지하게 보고 열심히 듣게 된다.(7쪽)

 

  2005년 중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일 년간 생활했다. 중국사를 다룬 책이나 전공수업에서 글과 사진으로만 접했던 자금성(고궁)을 직접 가볼 수 있었다. 성내로 들어서자마자 그 규모에 한 번 놀라고, 그곳의 인파에 또 한 번 놀랐던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 영화 <마지막 황제>의 무대였던 공간을 실제로 마주했을 때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고궁에서 내 젊은 시절의 광기는 가라앉기는커녕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찍기에만 급급했던 것 같다. 이후에도 북경을 몇 차례 간 적이 있지만 더는 자금성과 인연이 닿지 않았다.

  자금성이 세워진 지 600년이 되었던 2020년도 막 지났다. 고궁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이며, 오랜 세월만큼이나 이곳에 소장된 '옛 물건'도 186만 점이 넘는다고 한다. 고궁박물원 시청각연구소 소장인 주용(祝勇)은 이 가운데 상나라와 주나라의 청동기, 진나라의 병마용, 한나라의 죽간, 당나라의 삼채, 송나라의 자기, 명나라의 가구, 청나라의 의복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물건을 가려 뽑아 그속에 서려 있는 역사를 <고궁의 옛 물건>이라는 책을 통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고궁의 소장품을 '유물'이나 '명품'이라 부르지 않고 '옛 물건(고물古物)'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모든 소장품에는 방대한 중국문화사를 이끌었던 시간의 힘이 응축되어 있는 까닭이다. 

 

 

  하나라의 9개 솥은 이미 역사의 깊은 밤 속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4천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어쩌면 그 솥들은 우리 발 아래, 깊이를 알 수 없는 곳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9개 솥은 가장 깊이 묻어둔 씨앗 같다. 훗날 역사라고 부르는 모든 사건은 그 씨앗이 자라서 지상에 맺은 꽃과 열매에 불과하다.(28쪽)

 

  책을 읽기 전에 예상했던 것과 달리 이 책에 소개된 옛 물건들은 화려하거나 사치스럽지 않다. 물론 당시로서는 최고의 장인이 창의성과 기술력을 집약시켜 만들었겠으나, 오늘날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오히려 낯익은 친근함과 실용성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중국 고대사를 여는 하, 상, 주 시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물건이 바로 청동으로 만든 솥, 술그릇, 주전자다. 도성에 웅장한 궁전은 없어도 왕조의 부와 권력, 정통성을 상징하는 청동솥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또한 '주지육림(酒池肉林)'이라는 고사성어처럼 술의 부작용이 한 나라(상나라)를 넘어뜨리기도 하고,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새로운 나라(주나라)를 일으켜 세우기도 했음을 모르지 않는다.

 

 

  저자는 역사에도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있다고 믿는다. 모든 원소가 시간이 빚는 술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땅속에 묻혀 쉬지 않고 발효되고 있다고 말이다. 후세 사람들이 그 흙을 걷어낼 때 역사의 냄새가 흘러나오고 잠들어 있던 사물들이 깨어날 것이라는 덧붙인다. 특히 춘추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연꽃 위의 학 주전자'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박물관에서 해설사의 안내를 들으며 전시품을 보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무심코 넘어 가거나 무엇을 어떻게 봐야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에게 저자의 세세한 묘사는 옛 물건을 감상하는 안목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준다.

 

  받침대는 꼬리를 말고 있는 두 마리 호랑이로 형상화되었다. 호랑이들은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혀를 내밀고 몸을 길게 늘려 주전자의 무게를 받치고 있다. 주전자 배에 네 마리 비룡이 기어올라가고 있다. 주전자 목에 붙은 양쪽의 귀는 벽에 붙어서 고개를 돌린 용 모양의 괴수다. 가장 절묘한 부분은 주전자 뚜껑인데, 두 겹의 연꽃잎이 차례로 피어나며 두 개의 동심원으 이루고 있다. 그 동심원 안 겹겹의 연꽃잎에 둘러싸인 원 안에 학이 서 있다. 학의 가벼운 자태가 지구의 중력에 저항하며 주전자를 하늘로 끌어올리는 듯하다.

작은 학 한 마리가 주전자의 무게를 허무로 만들었다.(51쪽) 

   

 

  건축가 라이트(Frank Lloyd Wright)는 피츠버그 외곽의 폭포 위에 집을 지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폭포의 집(Fallingwater House)'이다. 중국인이 흐르는 물을 가구에 담은 것에 비하면 대단한 일이 아니다. 이 가구는 침착하고 자연스럽고 완벽하다. 이런 식의 상상력과 창조력은 중국인에게만 있다. 물이 흐르는 의자는 늦어도 명나라 때는 만들어졌다.(262쪽)

 

  바로 '황화리목 물결무늬 손잡이 장미 의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의자는 단순히 앉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와 세상을 연결하는 쐐기이자 이음매로서, 의자가 없으면 사람들은 교류, 학습, 명상을 하지 못하며 기댈 곳마저 잃어버린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중국 문화에 대한 긍정적 표현이 조금 과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어느 광고 카피가 연상될 만큼 가구에 대한 저자의 확고한 철학을 통해 어떤 면에서는 근거 있는 자신감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구는 축소된 우주다. 가구가 우주의 모형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중국의 목재 가구는 오행(五行)에서 나무에 속하지만 물을 담고 (물결무늬 디자인), 흙을 머금고 (모든 나무는 흙에서 자란다.), 금속을 품고 (목재가구는 일반적으로 짜맞춤 구조라 못을 사용하지 않지만 금속 장식, 금박, 은상감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것도 있다.) 불과도 떨어질 수 없다. (옻칠, 아교 등은 모두 불로 정련한다.) 그래서 세계의 가장 기본적인 원소들이 하나로 녹아 있다.

  세상이 가구 위에 있고, 가구는 나무배처럼 우리를 태운다. 나무 의자에 앉는 것은 세계의 중앙에 앉는 것이다. 천지와 내가 나란하고 만물과 내가 하나가 된다.(265쪽)

 

  중국인들은 거의 모든 생활용품에 옻을 칠하여 사용했다고 한다. 고궁박물원이 소장한 1만 7천여 점의 칠기 중 거의 모든 것에 화훼와 식물 도안이 그려져 있다는 사실은 농업문명 속에서 살았던 당시 사람들이 자연과의 교감에 민감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명나라 때 칠기 솜씨가 빛을 발했는데, 이 책의 표지를 장식하는 그림이기도 한 '붉은 옻칠을 하고 모란 무늬를 2단으로 돋을새김한 둥근 접시'를 예로 들 수 있다. 

 

 

  중국(China)은 도자기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일본(Japan)이 칠기를 의미한다는 것을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책에 따르면 일본 사람들이 칠기를 나라 이름으로 삼은 것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문명을 암시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문명이 중국보다 유구하다고 표현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한다. 자기의 역사는 3천여 년이지만 칠기의 역사는 7천여 년 전에 시작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오늘날 칠기와 멀어진 중국 문화에 대한 유감스러움을 나타내면서도 일본 사람들이 욕심이 많다기 보다는 중국 사람들 스스로가 잃어버린 것들이 많다고 한탄한다. 그러면서 '유산'으로 봉인된 문화는 죽은 문화이기에 문화를 일상생활에 돌려주어야 살아 돌아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고등학생 시절 우리나라에서는 『황제의 딸』로 유명한 중국 드라마의 열혈 팬이었다. 어쩌면 그 영향으로 중문학을 전공하게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이 드라마는 청나라 건륭제 시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만주족의 헤어스타일과 복장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데 책을 통해 당시 궁궐에 살았던 사람들의 옷에 숨겨진 비밀을 하나 알게 되었다. 바로 계절이 바뀌면 황제의 어명에 따라 옷을 바꿔입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들 자신이 달력이었기 때문에 달력이 필요 없었다거나, 궁정에서 가장 먼저 피는 꽃이 어화원이 아니라 후비들의 봄옷이었을 것이라는 저자의 표현이 절묘하다.

  복장은 예복, 제사복, 일상복 등 각자의 신분에 맞게 여러 종류로 나위었는데, 중국 역사상 가장 복잡하고 엄격했던 복식 제도가 바로 청나라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일종의 평상복인 '창의(?衣)'는 예외로 계절에 맞는 옷을 입는다는 최소한의 불문율만 지키면 여인들이 자신만의 개성을 살려 옷을 지어 입을 수 있었다. 창의는 궁정에서 태어났지만 권력의 틈새에서 개성 있는 꽃으로 피어났고, 오늘날까지도 '치파오'라고 불리며 세계인들에게 각인된 중국의 대표적인 옷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고궁의 옛 물건>에서는 시안(西安)의 진시황릉 병마용갱에서만 볼 수 있는 줄 알았던 병마용이 고궁박물원에도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과 함께 진시황이 자신의 권위를 부각시킬 수 있는 거대한 자기 조각상을 세우지 않은 이유, 지금의 꽃미남 아이돌과 같은 인기를 누렸던 혜강(?康)을 필두로 한 죽림칠현(竹林七賢)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죽림칠현도, 남북조 시대의 혼란스러웠던 역사를 비추어 준 거울, 전쟁터로부터 조조와 뮬란을 소환시킨 초두(?斗)로 불리는 솥 등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야기들이 서술되어 있다. 

 

  고궁의 옛 물건들을 눈으로 쓰다듬으면 표면에 쌓인 먼지가 일어나듯이 중국의 정치, 역사, 사회, 문화 이야기들도 함께 깨어난다. 대개의 역사책이 인물이나 사상을 중심으로 다뤄졌다면, <고궁의 옛 물건>은 중국의 여러 왕조를 걸쳐 각 시대를 살아냈던 사람들과 같이 그 곁을 지켰던 물건에 주목함으로써 또 다른 시선으로 중국의 연대기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무엇보다 잠들어 있던 옛 물건을 깨워 오늘날의 우리에게 지적 호기심과 문화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일깨워주는 저자의 필력이 돋보이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옛 물건도 당시에는 '쓰이는 것'이었지, 지금처럼 박물관에서 '보여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저자의 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총9권의 고궁 시리즈(원제:故宮的故物之美)  중 1권에 해당하는데, 검색을 해보니 현재 중국에서는 3권까지 출간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또 어떤 옛 물건들과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미지 출처 : www.baidu.com)

 

오래된 칠기 하나로 삶에 대한 무한한 갈망이 생겨난다.

일상도 얼마든지 아름다워질 수 있다.

아름다움은 사치가 아니며 돈과 같은 가치는 없다.

아름다움은 일종의 관념이며 생명에 대한 태도다.

아름다움은 보통사람의 종교이며, 우리가 홍진의  인생에 주는 의미다.

이것을 이해해야 옛 물건의 아름다움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처음 이 책을 쓸 때의 마음이다.(297쪽)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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