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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보다 좋은 엄마의 말은 없습니다]를 읽고 | 마흔의 서재(수리중) 2021-11-28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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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시보다 좋은 엄마의 말은 없습니다

김종원 저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아이라는 세계를 이해하고 아이의 세계관을 확장시켜줄 '언어로 지어진 시'를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읽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아이는 물론, 부모도 성장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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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보다 좋은 엄마의 말은 없습니다>를 읽고

 

 

  하루하루 아이가 자란다는 증거는 일상생활 곳곳에서 발견된다. 아이의 옷을 개다가도, 혹은 언제부턴가 까치발을 들지 않고 물건을 집어내리거나 그림책을 혼자서 읽어내는 아이를 보다가도 종종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평소 엄마와 아빠가 쓰는 말이나 말투를 그대로 따라하는 아이를 볼 때면 신통방통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뒷골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부모의 말(언어)이 아이라는 리트머스 종이에 닿을 때 어떠한 색이 나올지는 오롯이 부모의 언어 수준에 달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듯하다. <시보다 좋은 엄마의 말은 없습니다>는 아이의 언어 수준과도 직결되는 부모의 언어력을 높여주는 데 '시를 통한 질문과 대화'를 제안하는 책이다.

 

시는 '언어'라는 재료로 지은 집입니다. 시를 읽고 분해하는 시간을 통해, 아이는 자신 안에 존재하는 언어의 크기와 범위를 넓혀 아직 배우지 않은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고요. 더 나아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저절로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5쪽, 프롤로그)

 

  <아이를 위한 하루 한 줄 인문학>을 통해 다양한 자녀교육법을 제시하며 많은 부모들의 호응을 이끌어낸 김종원 작가는 "부모는 아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부터 아이를 사랑한, 이 세상의 유일한 사람으로 아이를 위한 시를 평생 써온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이와 함께하며 기쁨, 슬픔, 분노, 후회, 사랑의 롤러코스터를 날마다 타면서 그것들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시를 써내려가는 시인(詩人)이 부모라면, 나도 부인하지는 않겠지만 쉬이 시인(是認)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진정한 시인처럼 제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방법을 익혀 아이와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을 집어들었다. '용기, 지혜, 통찰, 사랑'에 관한 언어로 지어진 스물여덟 편의 시를 놓고 부모와 아이가 서로 대화를 나누며 시를 해체하고 변주하는 과정을 거듭하다 보면, 아이 스스로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사랑하는 태도를 가질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삼학년

                              박성우

 

미숫가루를 실컷 먹고 싶었다

부엌 찬장에서 미숫가루통 훔쳐다가 

동네 우물에 부었다

사카린이랑 슈거도 몽땅 털어넣었다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미숫가루 저었다

 

뺨따귀를 첨으로 맞았다

 

  "만일 네가 좋아하는 매실액을 물통 한가득 넣어서 물이 매실차로 바뀐다면 정말 기분 좋겠지? 그게 저 친구의 마음이야." 먼저 아이가 시의 주인공인 삼학년 친구의 마음과 연결될 수 있는 접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아이가 좋아하는 상황으로 대화를 시작하면 친구가 어떤 마음을 가졌을지 상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

  "네가 만약 저 친구라면 엄마, 아빠에게 어떤 말을 들으면 아픈 네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통해 평소 아이가 부모에게 원하는 위로의 표현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점이 놀라운데, 좀 더 확장해보면 시를 통해 아이 마음 속 언어를 꺼낼 수 있다는 사실이 퍽 흥미롭다.

  "저 친구는 왜 우물에 미숫가루를 넣는 무리한 방법을 선택했을까?", "너도 무언가를 빠르게 갖고 싶을 때 어떤 마음이 드니? 저 친구처럼 실수하지 않으려면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까?" 친구의 행동이 올바른 선택은 아니라는 점을 환기시킨 뒤 욕심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아이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대화를 이끌어 나간다. 그러면 시를 통해 일상에서 지혜롭게 자신의 욕심을 제어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여유를 배우게 된다.

 

 

                              호피촉

 

답이 없다는 것도 하나의 답이다.

소박하게 먹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아무에게도 상처 주지 마라.

 

  "네가 좋아하는 반찬을 친구도 좋아할까?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사람 입맛이 모두 다른 것처럼 생각의 모양과 크기도 모두 다르지 않을까?" 이 질문을 통해 세상에 모두에게 맞는 답이 있을지, 나아가 답이 없다는 것도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줄 수 있다.

  "왜 호피촉은 우리들에게 소박하게 먹고 조심스럽게 말하라고 했을까?" 라는 물음에 욕심 내지 말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즉답을 피해야 한다. 대신 아이가 천천히 '소박하다'와 '조심스럽다'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줌으로써 아이가 자연스레 그 이유를 깨닫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네가 찾은 그 답이 너에게 맞는 건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생각한 것을 실천하면서 너에게 더 잘 맞는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의 답이 아닌 자신만의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부모가 늘 곁에 있을 거라는 마음을 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느리지만 배움의 과정을 성실히 실천해 나가는 아이를 격려하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게 부모의 몫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작별

                                 이시영

 

민들레는 마지막으로

자기의 가장 아끼던 씨앗을

바람에게 건네주며,

아주 멀리 데려가

단단한 땅에 심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 민들레는 어디에서 날아온 걸까? 얼마나 멀리 날아갈 수 있을까?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간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일상에서 늘 마주치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거나 사소하게 여겼던 존재들을 아이가 한 번 더 돌아보며 깊이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질문을 통해 아이가 생각한 것을 말로 표현하는 데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다.

  "민들레 씨앗은 무슨 색일까?" 대부분 노란색이라고 알고 있으나 민들레 씨앗은 옅은 녹색과 붉은색도 있다. 이어서 묻는다. "뱀의 혓바닥을 그려볼까?" 대개 붉은색이라고 답하는데, 실제로는 검은색이 주를 이룬다. 이런 식으로 지레 짐작하기보다는 아이가 자문하며 실제로 대상에게 다가가 관찰하는 습관을 가지면 타자를 이해하고 상상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너는 바람에게 무엇을 맡기고 싶니?" 아이가 능동적이고 주도적으로 일상을 보낼 수 있도록 곳곳에서 사물의 가치를 찾아내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묻되, 아이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게 중요하다.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릴케

 

마음속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하여

인내를 가지고 바라보자.

먼저,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겠다는 생각을 버려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지는 게 아니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봐야 안다는 것이다.

지금 당신의 문제를 살아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 줄 테니까.

 

  릴케의 시를 모르지 않으나, 다시 마주하게 되면서 '젊은 시인'이 비단 릴케의 직속 후배들만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앞서 부모는 평생 아이를 위한 시를 쓰는 시인이라고 했던 저자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오늘도 자녀 교육에 골몰하는 부모라면, 먼저 '아이' 그 자체를 사랑하고, 당장 자신의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다고 조급해할 것이 아니라 인내를 가지고 아이와 함께 살아가라는 조언으로 여겨지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이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동심과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아직 배우지 않은 것을 스스로 깨우치고, 모르는 것을 저절로 알게 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라는 저자의 말을 곱씹게 된다. 시를 함께 읽는 부모는 아이가 내놓은 답변의 수준을 평가하기보다는 좋은 마음으로 감탄과 공감을 해주고, 아이가 생각에 열중하며 한껏 진지한 그 순간, 곧 '말의 공간'을 놓치지 말고 공유함으로서 시 읽기의 기쁨도 나누길 권한다.

  마지막으로 아이를 둘러싼 여러 세계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주고 싶은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책(속에 시들)을 읽는 내내, 아이는 물론, 부모 역시 같이 성장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아이에 관한 시를 쓰고 있을 시인들에게 아이라는 세계를 이해하고 아이의 세계관을 확장시켜줄 '언어로 지은 시'를 띄워 보낸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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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에 만난 사람들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다시 읽고 | 마흔의 서재(수리중) 2021-11-24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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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저/공경희 역
살림출판사 | 201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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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에 만난 사람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다시 읽고

 

 

"나는 20년간 사회심리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이 강의를 들으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을 해야겠습니다. 왜냐면 나는 지금 죽을 병을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전 이번 학기 강의를 마무리짓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걱정된다면, 교과목을 변경해도 좋습니다."

(23쪽, 「생애 마지막 프로젝트」中)

 

 

  대학 새내기 시절, 읽든 안 읽든 책제목만은 모리는('모르는'을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 학생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책이 있었다. 이제 막 십대를 지나 이십대를 여는 청춘들에게 낭만으로 치환된 삶에 가려져 있던 죽음이 삶과 맞닿아 있음을 어렴풋이나마 일깨워준 책이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고 자연스레 이 책을 집어들었는데, 사십대를 맞아 다시 만난 모리 교수의 수업은 이십 년전과 사뭇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천천히 쇠락하는 데 가장 두려운 게 뭡니까?"

"테드,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내 엉덩이를 닦아줘야만 된다는 사실이 가장 두렵소."

(41쪽, 「코펠의 첫번째 인터뷰」中)

 

 

  대학 졸업 후 앞만 보고 달리던 제자 미치는 우연히 TV토크쇼에서 흘러나온 옛 스승 모리  교수의 목소리를 듣고 16년 전의 약속을 떠올린다. 죽음을 앞둔 코치(미치가 모리 교수를 부르는 애칭)를 다시 만난 선수, 아니 미치는 매주 화요일마다 코치의 서가에서 인생의 의미에 대한 주제로 마지막 수업이자 마지막 논문을 함께 한다. 나도 화요일의 사람들 중 하나가 되어 그들의 수업을 지켜보았다.

 

 

"그러니까 다음 화요일에 다시 온단 말이지?"

 

 

  마지막까지 스승이길 바랐던 모리 교수는 교단에 서기 전,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을 관찰하고 치료하는 과정을 기록하는 일을 하면서 그들이 자기가 거기 있다는 것을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 된다. 바꿔 말하면 그들에게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가 잊혀지지 않고 계속 기억되길 원하는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욕망을 읽어낸 것이다. 병원에서 대학으로 자리만 바뀌었을 뿐,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반응하는 그만의 공감력은 사그라들기는커녕 횃불처럼 활활 타오르며 주위 사람들에게 빛이 되어준다. 어느 날 신경을 녹여 몸에 밀납이 쌓이는 듯한 루게릭병이 그를 덮쳤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이 사그라드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지켜보고 더불어 죽음을 배우라고 말하면서 기꺼이 삶과 죽음을 잇는 마지막 다리가 되기로 결심한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겠네. 들어주겠나?"

"누군가 그런 방향으로 이끌어줄 사람이 필요하네.

혼자선 그런 생각을 하며 살기는 힘든 법이거든."

"나한테 뭐든 물어보라구."

 

 

  누구에게나 작별 인사를 나눌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는 게 아님을 깨달은 그는 가까운 친구들과 가족들을 모아 '살아 있는 장례식'을 치르고, 자신의 고통과 아픔만으로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듣고 그들에게 답장하는 일에 진심을 다한다. 또한 화요일마다 미치가 그를 도와주기 위해 몸을 숙여 마이크를 바로잡아주거나 몸에 손을 대면, 그는 어른으로서 나눠주고 아기로서 받는 일의 즐거움을 만끽하기도 한다. 그렇게 그가 날마다 죽음의 그림자를 껴안고 살아가는 삶에 대하여 써내려간 단상들에서 미치가(어쩌면 우리 모두가) 살아가면서 궁금한 것들, 즉 '죽음, 가족, 두려움, 나이듦, 탐욕, 용서, 의미있는 삶'에 관한 혜답을 다시 찾아볼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 어깨 위에 있는 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즉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지금처럼 야망이 넘치지 않게 될 테니까."

(114~115쪽, 「죽음(네 번째 화요일)中」

 

"타인에 대한 완벽한 책임감을 경험하고 싶다면, 그리고 사랑하는 법과 가장 깊이 서로 엮이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자식을 가져야 하네."

(125쪽, 「가족(다섯 번째 화요일)」中)

 

"경험하라고 하면서 또 벗어나라고 하는 말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고통, 사랑, 슬픔 등) 이런 감정들에 온전히 자신을 던지면, 그래서 스스로 그 안에 빠져들도록 내버려두면, 그래서 온몸이 쑥 빠져들어가 버리면, 그때는 온전하게 그 감정들을 경험할 수 있네. (중략) '좋아. 난 지금껏 그 감정을 충분히 경험했어. 이젠 그 감정을 너무도 잘 알아. 그럼 이젠 잠시 그 감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겠군'이라고 말이야."

(138~139쪽, 「감정(여섯 번째 화요일)」中)

 

"늙어가는 것이 두렵지 않으셨어요?"

"사람은 성장하면서 점점 많은 것을 배우지. 22살에 머물러 있다면, 언제나 22살만큼 무지할 거야. 나이 드는 것은 단순히 쇠락만은 아니네. 그것은 성장이야. 그것은 곧 죽게 되리라는 부정적인 사실 그 이상이야. 그것은 죽게 될 거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 때문에 더 좋은 삶을 살게 되는 긍정적인 면도 지니고 있다구."

(155쪽,  「나이드는 두려움(일곱 번째 화요일)」中)

 

"이 사람들은 사랑에 너무 굶주려서 그 대용품을 받아들이고 있구나. 저들은 물질을 껴안으면서 일종의 포옹 같은 것을 기대하고 있구나.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해서 될 리가 있나. 물질이 사랑이나 용서, 다정함, 동료애 같은 것을 대신할 수는 없는데···."

(162쪽, 「돈(여덟 번째 화요일)」中)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가 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 용서해야 하네. 했어야 했는데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일이 이러저러하게 되지 않았다고 탓할 수만은 없지. 나 같은 상황에 빠지면 그런 태도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되네."

(213쪽, 「용서(열두 번째 화요일」中)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네."

(222쪽, 「완벽한 하루(열세 번째 화요일)」中)


 

  책을 덮으며 오랫동안 오해하고 있었던 한 가지, 즉 모리 교수가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비단 죽음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는 삶에 의미를 더해줄 가치들에 대해 자신이 경험한 바를 아낌없이 나누면서 어떻게 죽을 것인지에 대해 알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 수 있다고 일깨워준 것이다. 생명의 불씨가 점차 사그라들 때쯤 미치가 코치에게 24시간만 건강해지면 어떤 일을 하고 싶냐고 묻는 대목에서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마침내 장례식과 함께 모리의 수업은 끝이 났지만, 여전히 이 책을 찾는 많은 화요일의 사람들에게 그의 작은 이야기 속 큰 울림이 계속 전해지고 있다고 믿는다. 나 역시 매일이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삶 속의 죽음 혹은 죽음 곁에 삶'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일일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나가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하고, 빵과 차로 아침을 먹고, 수영하고,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산책하면서 자연을 보고, 저녁은 스파게티나 오리 고기를 먹고, 실컷 춤을 추고, 집에 돌아와 깊고 달콤한 잠을 자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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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를 좋아하세요 - [아무튼, 바이크]를 읽고 | 마흔의 서재(수리중) 2021-11-23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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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무튼, 바이크

김꽃비 저
코난북스 |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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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를 좋아하세요

<아무튼, 바이크>를 읽고

 

 

[바이크 도둑] 스무 살 연극영화학과 입시를 준비하던 재수생 시절, 저자는 친구에게 선물로 받은 자전거로 9킬로미터 거리의 연기학원을 통학했던 경험을 통해 바퀴라는 것에 대해 새로이 눈을 뜨게 된다. 안타깝게도 1년만에 자전거 도둑이 자전거는 물론, 새로운 인생의 장이 열리고 세계가 확장되는 듯한 기분마저 훔쳐가면서 바퀴 달린 탈것은 일상에서 잊혀진다. 주기적으로 자전거를 살까 말까 고민만 하다가 서른을 앞둔 어느 날 바이크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갖는다. 감성 친구의 비노(야마하에서 나온 50cc 스쿠터)를 함께 타고 떠났던 여행이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자전거부터 모페드(작은 바이크), 전기자전거까지 고민을 거듭하다 마침내 인생 첫 '바이크'를 결정한다. 

  넘기던 책장을 멈추고, 자전거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갸웃거리며 책표지에 그려진 그림을 다시 본다. (자전거의 기쁨과 즐거움을 기대했던 나에게는) 반전이다. 이 책에서 가르키는 바이크는 모터바이크로 자전거는 사이클이라는 단어도 있으므로 그 이름을 바이크에게 양보하라는 저자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난다. 아무튼, 자전거(를 기대했던 나)에게 바이크(bye~ㅋ)를 날리며 다시 저자의 생애 첫 바이크를 만나러 간다.

 

20대 내내, 몇 년을 거듭한 두 바퀴를 향한 마음이 드디어 결론에 다다른 것 같았다. 그래 일단 지르자. 그 가격이면 잘못된 선택에 치르는 대가라고 해도 그리 비싼 값은 아니니까.

15만 원짜리 97년식 2행정 엔진 50cc 스쿠터*, 택트.(20쪽)

*발판이 있는 탈것(바이크의 형태 중 하나)

 

[바이크는 배우를 싣고] 그런데 그는 면허가 없었다(또 반전이다). 면허를 취득하면서 느꼈던 면접시험 체계에 대한 불합리성과 이륜차에 대한 법적 문제점들이 바이크를 타는 내내 고개를 쳐들며 그로 하여금 왜 바이크는 푸대접을 받아야만 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여기서 잠깐, 반전을 일삼는 그가 혹시 누군지 궁금해할 독자를 위해 밝히자면, 그는 영화계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영화 『똥파리』의 여고생 역을 맡았다는 걸 뒤늦게 알고 놀랐던) 김꽃비 배우다. 각종 영화제 참석을 위해 서울에서 전주, 부산, 정동진까지 바이크를 몰고 다니는 배우로 이미 유명하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수영도 좋아하는 그는 바이크를 타면 수영하는 것과 비슷한, 즉 중력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을 제안 받았을(혹은 했을) 때, <아무튼, 수영(가제)>과 둘 중에 무엇에 대해 쓸까 고민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바이크 여행은 달리는 시간이 내내 여행의 과정이다.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열 시간을 견디는 것이 아니다. 열 시간 동안 여행을 즐기는 것이다. 여행지까지의 길, 모든 순간이 여행이다. 그것이 바이크 여행의 특별한 매력 그리고 내가 바이크를 사랑하는 이유다.(46쪽)

 

  바이크 만화 『로딩』을 그린 이지우 만화가와도 연을 맺고 둘은 함께 바이크를 타고 몇 차례 야영을 떠난다. 바이크와 텐트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전국 여행으로 이어지는데, 그들의 자세한 여정은 웹툰 『100cc』로 만나볼 수 있다. 모토캠핑 라이프에 더욱 심취하면서 대중이 가진 바이크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고 싶어서, 특히 바이크 타는 여자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그리고 싶어서 그는 직접 『캠핑을 좋아하세요』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한다. 『아무튼, 떡볶이』의 저자이자 뮤지션으로 활동중인 요조 배우가 연기와 음악을 만들었다는 사실도 덤으로 알게 되었다.

 

[차 세 대 배우] 97년식 택트에 이어 국민배달 바이크인 시티100, 웹툰 『로딩』의 주인공 바이크인 기아혼다의 81년식 CG125(까지는 모두 중고이다), 정식 서비스센터에서 정비 받을 수 있는 SYM의차 울프를 신차로 구입하게 된 그는 그야말로 '차 세 대 배우'가 된다. 지금은 제주에서 가와사키 에스트렐라250 한 대만 타고 있다는 걸 지난 여름 채널예스 기사에서 확인했다. 여기서 바이크 울프의 이름은 당연하게도(?) '버지니아'라고 하는데, 그는 바이크 전도사답게 예비 바이크 입문자들에게 당당하게 외친다. "100년 전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면 지금 우리에게는 자기만의 바이크가 필요하다!" 그래서일까, 책 후반부에는 여성과 글쓰기를 말했던 울프처럼 그도 여성과 바이크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데, 일테면 바이크를 타는 여성(혹은 사람)를 향한 사회의 시선, 바이크 운행과 정비 관련 제도와 법규 등 그동안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바이크 다이어리] <아무튼, 바이크>는 현재진행중인 바이크 라이더의 모터싸이클, 아니 '바이크 다이어리'로 읽혔다. 바이크와의 첫만남에서부터 바이크와 친해지기 위한 공들임, 바이크가 데려다준 자연과의 교감, 바이크가 뚫고 나가야할 사회의 편견, 바이크가 맺어준 인연들까지 바이크를 타고서부터 변화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이 모든 게 바이크 덕분이라고 말한다. 이토록 좋은 바이크를 혼자만 알기엔 너무 아쉽기에, 바이크 위 인생을 사는 그는 오늘도 사람들에게 묻고 또 권한다. "바이크를 좋아하세요?!" 책을 덮으며 (바이크 전도사에게는 미안하지만) 여전히 네 바퀴 달린 탈것을 좋아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오늘부터 거리에서 주행하거나 보행할 때 마주하게 될 바이크가 어제보다는 훨씬 더 좋아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으면 그냥 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게 다 바이크 덕분이다.(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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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 혹은 죽음이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는가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고 | 마흔의 서재(수리중) 2021-11-20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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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지수,이어령 저
열림원 | 2021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삶 속의 죽음, 죽음 곁의 삶에 대한 이어령 선생님의 오랜 영감과 통찰을 통해 어떻게 살고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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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 혹은 죽음이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는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고

 

 


 

 

스승이란 무엇인가. 시인 이성복은 스승은 생사를 건네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죽음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생사를 공부하는 사람이 스승이라고. '죽음의 강을 건널 때 겁먹고 급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이쪽으로 바지만 걷고 오라'고.

(5쪽, 프롤로그 中)

 

 

[수업을 시작하며]

 

  지난 이십 년 동안 발상(發想)과 발성(發聲), 즉 어떤 생각을 하고 그것을 소리내어 말하거나 글로 써내는 일에 대하여 배우고 또 익히는 중이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서부터 <이어령, 80년 생각>까지 이어령 선생님의 책과 언론 인터뷰를 교재로 삼아 (2년 전이 아니라 20년 전부터 나 혼자만의) 비대면 수업을 해오고 있다. 그런데 이번 학기가 마지막 수업이 될 수도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과 함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을 받아든다. 선생님의 수많은 제자 중 한 사람으로 27년간 한 길을 걸어온 김지수 기자가 '삶 속의 죽음' 혹은 '죽음 곁의 삶'이라는 커리큘럼으로 매주 화요일마다 선생님과의 대화 속에서 건져올린 선물과도 같은 그의 지혜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펴낸 책이다. 나 또한 기꺼이 마지막(이 결코 아니길 바라는 바람으로) 수업의 청강생이 되기로 한다.

 

 

[수업중]

 

한밤에 눈 뜨고

죽음과 팔뚝씨름을 한다.

근육이 풀린 야윈 팔로

어둠의 손을 쥐고 힘을 준다.

식은땀이 밤이슬처럼

팔목을 꺾고 넘어뜨리고

그 순간 또 하나의 어둠이

팔뚝을 걷어 올리고 덤빈다.

그 많은 밤의 팔뚝을 넘어뜨려야

겨우 아침 햇살이 이마에 꽂힌다.

심호흡을 하고 야윈 팔뚝에

알통을 만들기 위해

오늘 밤도 눈을 부릅뜨고

내가 넘어뜨려야 할

어둠의 팔뚝을 지켜본다.

(20~21쪽, 「어둠과의 팔씨름」)

 

  밤마다 죽음과 팔씨름을 하는 기분이 어떨지, 또 그가 얼마나 외롭고 지난한 시간을 견뎌냈을지 감히 상상되지 않는다. 그 어둠 속에서 빛이자, 그 싸움에서 전리품과 같은 깨달음을 마지막 수업을 통해 독자와 나누고자 하는데, 옆자리에 죽음과 함께 한밤을 누웠다 다시 눈을 뜨는 그의 글과 말들이 어쩐지 유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도 늘 그랬듯이 자신만의 수사학(레토릭)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며, 독자가 스스로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한다.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은 타인의 죽음이었어. 동물원 철창 속에 있는 호랑이였지. 지금은 아니야. 철창을 나온 호랑이가 나한테 덤벼들어. 바깥에 있던 죽음이 내 살갗을 뚫고 오지. 전혀 다른 거야.'

(30쪽, 퀴블러 로스의 말)



  최초로 죽음학을 강의했던 정신과 의사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설명했다. 정작 자신이 암에 걸려 죽음 앞에 서게 되자 '죽음은 철창을 나온 호랑이가 자기에게 덤벼드는 일'이라 말하며 다른 사람들의 전철을 밟는 모습을 보였다. 언제부턴가 책이나 영화에서 종종 마주하는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말이 그리 낯설지 않다. 이어령 선생님은 여섯 살 때 처음 죽음을 느꼈는데, 대낮에 굴렁쇠를 굴리며 놀다가 그늘까지 다 사라진 정오(가 지나면 다시 모든 사물에 그림자가 생기지만)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고 말한다. 그는 어째서 가장 찬란한 한낮에 그러한 감정을 느꼈던 것일까?

 

"존재의 정상이잖아. 뭐든지 절정은 슬픈 거야. 프랑스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의 시에도 그런 구절이 있어. 분수는 하늘을 올라가 꿈틀거리다, 정상에서 쏟아져 내린다····· 상승이자 하락인 그 꼭짓점. 그 절정이 정오였어. 정오가 그런 거야. 시인 이상의 『날개』에도 정오의 사이렌이 울려. 그 순간 주인공이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꾸나'라고 속삭이지. 정오가 지나면 모든 사물에 그림자가 생긴다네. 상승과 하락의 숨 막히는 리미트지. 나는 알았던 거야. 생의 절정이 죽음이라는 걸. 그게 대낮이라는 걸."

(55쪽, 「대낮의 눈물, 죽음은 생의 클라이맥스」 中)

 

  글쓰기 영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그는 글 쓰는 사람은 매번 패배하기 마련이라고 말한다. 그가 계속 쓰는 까닭은 계속 실패했기 때문이며, 글을 쓴다는 것은 앞에 쓴 글에 대한 실패를 딛고 다시 시작하는 일이라고 덧붙인다. 육체는 사라질지언정 그의 말과 생각은 책이라는 그릇에 담겨  죽음과 삶에 대한 의미를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우물이 되어주리라. 평생 우물을 파는 사람이었던 그의 마지막 갈증을 채우는 일이 바로 '사람이 어떻게 끝나가는가'를 보고 기록하는 것이다. 그에게 글쓰기는 종교와도 같기에 죽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해보지만, 암세포가 그의 모든 지식과 생각을 지워버리는 지우개로 작용하여 글이 쉬이 써지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그게 바로 죽음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그는 지우개로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 작고 아름다운 것들, 세 줄로 된 글을 써나간다. 

 

발톱 깎다가 / 눈물 한 방울 / 너 거기 있었구나, 멍든 새끼발가락

내 작은 잔디밭 / 날아온 참새 한 마리 / 눈물 한 방울

(65~66쪽, 「쓸 수 없을 때 쓰는 글」 中)

 

  평생 글을 쓸 때 '관심, 관찰, 관계' 라는 세 가지 순서를 반복하며 스토리를 만들어왔다는 그는, 관심을 가지면 관찰하게 되고 관찰을 하면 자신과의 관계가 생긴다고 말한다. 문득 인간극장에서 (나 혼자) 절찬상영중인 내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 지나간 장면들에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관찰했더라면 (나 자신을 포함한) 타자와의 관계 맺음에서 덜 상처받고 더 즐겁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들지만, 이제라도 매 신(scean)을 찍을 때마다 삼관(三關) 정신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한 번밖에 못 만난다······ 그건 상대가 여자든 남자든, 가슴이 저며오는 거야. 지금 이 순간은, 오늘 이 하루는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거지. 내 앞에 연필 한 자루도 바삐 걸어가는 행인 한 사람도 새롭게 보이는 거야. 마치 사형수가 보듯 세상을 보는 거지."

(160~161쪽,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中)

 

  그렇다면 젊은 날의 스승은 어떻게 사랑을 했을까? 대학시절 좋아했던 한 여학생이 전차가 갑자기 서는 통에 균형을 잃고 흐트러진 자세를 보였는데, 마치 고양이나 자벌레 같이 느껴져서 연애 감정이 달아났다는 그의 말에 과연 관찰다답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럼에도 그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선명한 사랑의 두 장면이 남아 있는데,  하나는 교차하는 전차와 전차에서 자신과 어느 여학생의 눈동자가 완벽히 일치했다가 비껴가던 순간이고, 다른 하나는 어릴 적 전동말을 타는데 상대편에서 움직는 말에 놀라 울먹이는 이름 모를 소녀와의 눈맞춤이다. 그는 타자와 내가 하나 되는 흔치 않은 그 순간을 가르켜 '사랑' 혹은 '상호성'이라 부른다.

  당신은 운 좋은 인생을 살았는가? 제자의 이어지는 물음에 스승은 답한다. 태어난 것 자체가 운을 타고난 것이며 운 나쁜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다고.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걸 알았고 운명을 받아들이는 지혜의 출발선으로 여겼다. 죽을힘을 다해 노력해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그리스의 운명론은, 너와 내가 우연히 이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불교의 연기론과도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된다.

 

"나는 상대를 비방하려는 게 아니라 납득이 안 가면 질문을 하는 본능을 따라갔어. 그런데 질문을 받으면, 다들 자기를 무시하고 놀린다고 착각하는 거야. 질문 없는 사회에서 자라는 게 그렇게 무서운 거라네. 그런 문화 속에서 나는 사랑받지 못했네. 존경은 받았으나 사랑은 못 받았어."

(97쪽, 「아직도 '모르는 게 많다'는 즐거움」 中)

 

  평화롭기보다 지혜롭기를 바랐던 인간 이어령은 여섯 살때부터 끊임없이 질문을 이어오면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소외되고 외로웠다고 고백한다. 남들과 다르게 산다는 이유로 사회성을 의심받기도 하였으나, 그 자발적 외로움이 억압과 관습의 중력으로 가득한 세상으로부터 가벼워지는 힘, 즉 경력으로 변해 생각에 날개를 달아주는 원천이었음을 일깨워준다.

 

"이 컵을 보게. 컵은 컵이고 나는 나지. 달라. 서로 타자야. 그런데 이 컵에 손잡이가 생겨봐. 관계가 생기잖아. 손잡이가 뭔가? 잡으라고 있는 거잖아. 손 내미는 거지. 그러면 손잡이는 컵의 것일까? 나의 것일까?"

"서로의 것이죠."

"컵에 달렸으니 컵의 것이겠지만, 또 컵의 것만은 아니잖아. '나 잡아주세요'라는 신호거든. '손잡이 달린 인간으로 사느냐. 손잡이 없는 인간으로 사느냐.' 그게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 (중략) 이런 생활 속의 생각이 시가 되고 에세이가 되고 소설이 되고 철학이 되는 거라네."

(124~125쪽, 「손잡이가 달린 인간, 손잡이가 없는 인간」 中)

 

  꿈은 이루는 게 아니라 지속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스승은 죽고 나서도 할 말을 남기는 사람이다. 자기와 같은 사람과 죽기 전부터 할 말을 잃은 사람 중 어느 사람이 먼저 죽은 사람인지 되묻는다. 투병중에도 쓸 수 없을 때 쓰는 글 '눈물 한 방울'(늙은이의 세 줄 일기)을 통해 할 말을 전하고 있어서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답한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빌어 아흔아홉 마리 양처럼 제자리에서 풀을 뜯으며 정해진 대로 살기보다는, 돌아온 탕자 같은 길 잃은 한 마리 양이 되어 홀로 낯선 세상과 대면하는 게 훨씬 행복한 삶이라고 덧붙인다.

 

"눈물 한 방울이 내가 전하고 싶은 마지막 말이네."

"아······ 88년 통찰의 결론이 눈물 한 방울이라는 말씀이지요?"

"그래. 이 시대는 핏방울도 땀방울도 아니고 눈물 한 방울이 필요하다네. 지금껏 살아보니 핏방울 땀방울은 너무 흔해. 서로 박터지게 싸우지. 피와 땀이 싸우면 피눈물밖에는 안 나와. 피와 땀을 붙여주는 게 눈물이야. 피와 땀이 하나로 어울려야 천 리를 달리는 한혈마가 나오는 거라네."

(210~211쪽, 「눈물은 언제 방울지는가」 中)

 

  올해 초에 읽었던 <이어령, 80년 생각>에서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것이 바로 '눈물 한 방울'의 힘이라고 말했던 대목이 떠오른다. 대립과 분열로 인해 피눈물을 흘리는 현실에서 자기가 아닌 타인을 위해 눈물 한 방울을 흘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눈물은 곧 관용을 의미한다. 이렇게 진지한 순간에도 스승은 유머를 잊지 않는다. "'홍도야 울지 마라'를 한 글자로 줄이면? 뚝!" 다시 눈물 얘기로 돌아가본다. 눈물만이 우리가 인간이라는 걸 증명해주며 인간을 이해한다는 건 인간이 흘리는 눈물을 이해하는 거라고 힘주어 말한다.

 

 

[수업을 마치며]

 

  배움에 왕도가 없고 배움은 끝이 없다는 말을 모르지 않는다. 아이를 기르고 가르치는 게 육아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아이를 통해 내가 깨우치고 성장할 때가 더 많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남을 가르칠 수도 없고 남에게 배울 수도 없는 존재라고, 그게 바로 실존이라는 스승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수 없다.

  아울러 '지혜를 가진 죽는 자'라는 말도 곱씹어본다. 지혜로운 인간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법을 알법도 하나 언젠가 죽고마는 존재이다. 아이러니하다는 건 알겠으나 그 정확한 의미까지는 간파하지 못하니, '아, 이러니' 난 지혜롭지 못한건가 싶기도 하다. 신은 죽지 않고, 다른 생명체는 죽어도 자기 죽음이 갖는 의미를 모른 채 그냥 살지만, 인간은 죽음의 의미를 알기에 슬퍼하고 또 눈물을 흘리는 것이라는 그의 설명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다.

  수업을 듣는 내내 교실의 맨 앞자리에 앉아 그의 육성을 듣고 기록한 김지수 기자가 부럽기도 했지만, 내게도 그의 지혜를 나눠주고 그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줘서 고마운 마음이 더 크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 점점 더 많은 청강생이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죽음을 겪고 글로 쓴 사람은 (있을 수) 없는 까닭에, 죽어감에 대하여 치열하게 관찰하고 그것을 기록한 이야기가 더욱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게 아닐까 싶다. 자신의 삶 혹은 죽음이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는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그 실마리를 찾아보는 일도 유의미하리라 생각한다.

 

"선생님,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당신의 삶과 죽음을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면 좋겠습니까?"

(291쪽, 「마지막 선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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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는 'ㅁ(네모)'이다 - [아무튼, 메모]를 읽고 | 마흔의 서재(수리중) 2021-10-31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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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무튼, 메모

정혜윤 저
위고 | 202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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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주의자의 메모에서 발견한 일, 알, 꿈, 길, 삶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서 메모로 내 인생이 만들어질 수도 있게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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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는 'ㅁ(네모)'이다

<아무튼, 메모>를 읽고

 

 

  "메모 남겨 드릴까요?" 같은 사무실에 동료가 자리를 비웠을 때 그를 찾는 전화가 걸려오면 으레 하는 말이다. 전화를 받는 사람에게는 해야 할 일이, 전화를 건 사람에게는 중요한 일이 메모지에 남겨진다. 그렇다. 메모는 '일'이다. 일하는 직장생활자로서 날마다 출근하면 컴퓨터를 켜고 (어떤 날은 카톡 메신저 혹은 예스블로그를 가장 먼저 열 때도 있지만) 메모장부터 연다. 퇴근 전까지 수시로 업무 관련 내용을 일지처럼 기록하기 위해서다. 아주 가끔 메모들을 보면서 '내가 이렇게 살고, 아니 살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단어를 읽지만 그 단어를 살아낸다."

-보르헤스 

 

  "아주 좋은 생각(이야기)이에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다가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이 휘발되지 않도록 어딘가에 단단히 붙들어 매고 싶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야기에 홀려 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 메모를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아무튼, 메모>를 쓴 정혜윤 피디는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풍경이 아름다우면 카메라를 꺼내는데 자신은 이미 풍경 속으로 들어가 있기에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마치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히말라야에서 찾아낸 전설의 사진 작가가 눈표범을 보고도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고 오롯이 그 순간 속에 머물렀던 것처럼 말이다.

 

"아침볕이 흐릿하게 사라질 때 해변을 걸으며 상상하는 것이 진실"

-휘트먼

 

  저자 역시 좋은 이야기를 마주할 때면 어디든 메모해둘걸 하는 후회를 한다. 곧이어 상실의 고통이 시작되지만 그는 싫어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즐기며 자신의 하루를 심문한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어디가 어떻게 왜 좋았는지를 복기하면서 마침내 이야기와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예전에 스스로를 문장 수집가로 부르며 자기만의 인생을 담아놓을 가치가 있는 문장들만을 쫓았던 그가 현재는 듣는 자이자 이야기 채집가로 살면서 최고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전달하기 위해 메모를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메모는 관능적인 일이기도 하다. 내 몸에 좋은 이야기를 붙이고 그 이야기에 몸과 마음이 섞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메모는 좋은 쪽과 한편이 되어 치르는 모험 이야기이기도 하고, 하나씩 하나씩 답을 찾고 그 작은 답을 모아 새로운 삶의 이야기를 만들려는 사랑스러운 흔적이기도 하다. 메모는 자기 생각을 가진 채 좋은 것에 계속 영향을 받으려는 삶을 향한 적극적인 노력이다.

(63~64쪽, 「메모는 나를 속인 적이 없다」中)

 

  그에게 메모는 '알'이다. 그 알 속에는 가장 좋은 삶으로 부화될 재료와 준비가 차곡차곡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메모는 '꿈'이기도 하다.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꿈, 누구도 혼자 죽게 내버려두지 않는 꿈에 관한 메모를 수없이 쓰고 지우며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한다. 메모는 나 그리고 우리 모두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각자가 소중히 여기고 싶어하는 가치를 품고 있다고 믿는 저자의 신념은 『새벽 네 시의 궁전』, 『남겨진 이들의 선물』, 『조선인 전범-75년 동안의 고독』 등 여러 편의 라디오 다큐멘터리에서 우리 사회를 향한 고요한 외침이 되어 청취자들에게 울림을 전해준다. 책의 후반부에 '나의 메모'들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아직 노래하지 않은 작은 단어들"

-네루다

 

  에필로그에서 앞으로 삶에서 길을 잃으면 메모장을 펼쳐보겠다고 저자는 말한다. 헨젤과 그레텔이 집으로 돌아가려고 뿌렸던 조약돌과도 같은 메모가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일러주는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메모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덧붙인다. 말 그대로 메모는 '길'이자 '삶'인 것이다. 책을, 아니 메모장을 덮으려는데 문득 오래 전 읽었던, '메모' 하면 퍼뜩 떠오르는 수필 한 편이 생각났다. 어쩌면 <아무튼, 메모>가 메모광의 계보를 잇는 메모주의자의 '메모예찬' 시리즈의 최신작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아직 끝나지 않은 메모에 관한 다음 이야기가 사뭇 궁금해진다.

 

  내 메모는 내 물심 양면(物心兩面)의 전진하는 발자취며, 소멸해 가는 전 생애의 설계도(設計圖)이다. 여기엔 기록되지 않는 어구(語句)의 종류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광범위한 것이니, 말하자면 내 메모는 나를 위주로 한 보잘 것 없는 인생 생활의 축도(縮圖)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하윤作(1958년), 『메모광』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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