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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의 말들
여행의 말들 | 타자의 말들 2021-08-17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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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말들

 

 

  삶은 해야 하는 일로 가득 차 있다. 하고 싶은지 여부를 매 순간 자신에게 물으며 한 발씩 걷다가는 하루도 못 살고 지쳐 나가 떨어질 것이다. 그렇게 쳇바퀴를 돌다 보면 쳇바퀴 바깥에 뭐가 있는지 상상하는 법을 잊어버린다. 그 감각을 되살리는 일이 내게는 여행이다. 필연적으로, 무엇을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무엇도 하지 않기 위해 떠난다. 나는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9~10쪽, 들어가는 말 中)

 

003 우리는 낯선 사람들이 재채기를 해대는 호텔에서 묵는다.

데이비드 쾀 멘,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中

  데믹을 정통으로 경험한 세대가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지리라. 그리고 여행 방식도. 이 책을 쓰는 동안 나는 여행하는 방식을 바꾸었고, 독서는 더 즐거운 여행의 체험을 제공하게 되었다. 장소보다 '보는 눈'을 키우는 여행 패턴. 방 안에 앉아서 화성보다 먼 곳까지 여행하는 책 읽기의 기쁨.(21쪽)

 

024 나는 그리스어에서 위안을 얻었고 그 덕분에 나의 모국어에서,

또 모국어와 함께하는 삶에서 벗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메리 노리스, 『그리스는 교열 중』中

  메리 노리스는 40년 넘게 「뉴요커」에서 '원고를 인쇄 직전까지 다듬는 사람'인 오케이어(OK'er)로 일했다. 노리스가 그리스어를 배우기로 한 이유는 그리스 여행을 가기 위해서였는데,(중략) 언어를 업으로 삼은 사람이 도피와 자유를 경험하는 것은 외국어를 경유하지 않고는 불가능했던 셈이다.(63쪽)

 

043 평생 천식을 앓았던 이 작가는 여행 중 여관에 투숙했을 때

침대에 누워 바다 빛깔의 벽을 보다가 공기 속에서 소금기를 느낀다.

위화,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中

  위화는 '체호프의 기다림'이라는 장에서 프루스트를 언급한다. 프루스트는 바다에서 멀어졌을 때도 바다의 기운을 생생하게 되살려 내고 감상하고 즐길 줄 알았다.(중략) 일상을 재발명하는 일. 내가 원하는 공간과 장소를 언제 어디서든 불러올 수 있는 경험을 쌓아 가는 일. 여행은 떠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끝없이 재해석되고 재생산된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그랬던 것처럼.(101쪽)

 

061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여행은 꼭 선 여행만이 아니라 점 여행이기도 하리라.

이도우,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中

  여하튼 명리학에 따르면 내팔자(여덟 글자라는 뜻이다) 중에서 역마가 세 글자였다(최대 네 글자). 심지어 세 글자는 붙어 있고, 그중 두 글자가 나란히 붙은 불이라 주변을 활활 불사르는 형세였다. 나는 선생님에게 "지금이라도 외국에 가서 살아야 할까요?" 물었고, 선생님의 해석인즉 "이렇게 불기운의 역마 둘이 붙어서 그 위의 불과 상승작용을 일으킬 정도면 활동성이 극대화된 역마로, 이런 것은 사람이 아니라 생각이 움직이는 것이다. 앉은 자리에서 지구를 한 바퀴 돈다는 뜻이다. 상상하는 힘으로 산다는 뜻이다."였다.(137쪽)

 

093 여행을 하다 보면 때로는 산도 넘어야 하듯,

이런 일도 체념하고 순응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소.

물론 산이 없다면 길이 훨씬 더 편안하고 짧을 것이오.

그렇지만 산이 일단 가로막은 이상, 넘을 수밖에 없지 않겠소!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中

  여행의 장점은 여행이 의도된 일시적 비일상 상태라는 데 있다. 여행할 때 산을 넘는 일은 모험이지만(심지어 일부러 산을 오르기 위해 여행하기도 한다) 삶의 전망이 가로막힌 산뿐이라면 어떨까. 같은 사건이 벌어져도 받아들이는 태도는 다르다. 매일의 현실에서 겪는 일은 대체로 반복적이며 끝이 보이지 않는다.(중략) 여행 마지막 날 아침에 눈뜨면서 늘 하는 생각이 있다. 벌써 마지막 날이네. 왜 여행에는 끝이 있을까. 끝이 없으면 여행은 방랑이 되고 일상이 된다. 그러면 아름다움을 잃겠지, 여행도.(201쪽)

 

097 좋아하는 대상을 정교하게 좁혀나가는 데는 특별한 즐거움이 있다는 걸 알았다.

정세랑,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中

  자신의 경험과 판단을 시험하고 신뢰하는 연습으로 여행은 쓸 만한 방법이다. 비슷한 것들 사이에서 '내 것'을 알아보는 눈이 점점 밝아진다. 계속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곳에서 새로운 해결책이 생겨난다. 좋아하는 대상을 정교하게 좁혀 나가면, 결국은 더 큰 세계로 가는 문이 열린다.(209쪽)

 

여행의 말들

이다혜 저
유유 |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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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 아닌 선의의 말들 | 타자의 말들 2021-07-06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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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 아닌 선의의 말들

 

 

  '선의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거나 선함의 효용을 설파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어떤 찰나들을 포착하고 기록하여,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나의 결점을 통해 타인의 빈틈을 알아보고 다정한 이해의 눈길을 보냈던 저 순간과 같은. 그런 알아봄의 경험은 정의를 구현하고 세상을 바꾸는 데 하등 쓸모를 갖지 못하겠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서로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응답하는 가장 작은 방법이 되어줄 순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채 그럼에도 매일의 발걸음을 떼어놓는 우리를 지탱해주는 것은 어쩌면 아주 사소한, 별것 아닌 것들일지도 모른다.(8쪽, 「프롤로그」中)

 

 

  고통스럽던 순간들, 스스로의 강박적인 생존 본능을 미워했던 그 시간들조차 타인의 아픔을 헤아리는 데 밀알만 한 크기의 쓰임새를 갖는 셈이비다. 이 또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무엇이면 좋겠다.(39쪽, 「밀알만 한 쓰임새라도」中)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만 고유한 의미를 갖는, 내가 살아 있음을 충만히 느끼게 해준 어떤 선율, 어떤 장면, 어떤 냄새나 맛을. 생을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찾아들 때 그 기억이 수호천사처럼 그대에게 깃들어 다음 걸음을 떼어 놓게 해주기를 빈다.(62쪽, 「내가 나여서 좋았던」中)

 

  이기적인 데다 신과의 거래 혐의마저 짙은 봉사심. 그래서 부끄러웠으나 그렇다고 그 시간들을 후회하진 않았다. 때 묻은 마음으로나마 창틀 말씀히 닦고 식기를 가지런히 담아둔다면, 적어도 그만큼은 진심 어린 봉사자들의 일을 덜어준 셈이 되니까. 이 경우는 선의조차 아닌 위선일 테지만, 착한 척한다고 비난하면 달게 받겠다. 나는 냉소보다는 차라리 위선을 택하려 한다.(104쪽, 「찰나의 선의」中)

 

  돌이켜보면 늘 그랬던 것 같다. 사람을 막연히 동경하는 것은 상대의 매력과 장점 때문일지라도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우연히 보게 된 빈틈을 통해서였다. 누군가의 세련된 매너에서 어색함을 감추려는 몸짓을 읽었을 때, 냉소 이면에서 뜨겁고 서투른 열정을 보았을 때, 강인해 보였던 이가 실은 심약한 '새가슴'임을 느꼈을 때.(182쪽, 「빈틈」中)

 

  끝이라 생각해온 어느 지점은 끝이 아니다. 거기에 빛나는 것들이 새로이 채워 넣어질 것이다. 두근거리며 기다릴 무엇이 더는 남아 있지 않을 것만 같은 시기에도 우린 저마다 아름다운 시절을 하나 더 통과하는 중일 수 있다. 어쩌면 오늘도 그럴지 모른다.(241쪽, 「하나 더 통과하는 중」中)

 

  음악과 함께 떠올릴 결정적인 사랑의 기억이나 일생의 연인 같은 것은 없지만, 대신 갖가지 자투리 일상들이 스미고 짜이고 덧대어지는 중이다. 거기에는 글렌 굴드와 필리프 헤레베헤, 유희열과 카멜과 제쓰로 툴이 복원해낸 생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누벼져 있을 것이다. 언젠가 세상 끝 날 그 누빈 이불을 덮고 나는 나의 하느님에게로 가게 될까.(276쪽, 「기억의 이불을 덮고」中)

 

 

별것 아닌 선의

이소영 저
어크로스 |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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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말들 | 타자의 말들 2021-06-26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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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의 말들

 

 

  지난 봄 김훈 작가의 <개>라는 소설을 알게 되었다. 2005년에 쓴 글을 고쳐 써낸 것인데, 개정판을 읽기 전에 첫판을 먼저 만나 보았다. 공교롭게도 아이의 추천(?)으로 이수지 작가의 <강이>라는 그림책을 보고 여운이 가시지 않은 때라 더욱더 <개>가 궁금했다. '보리'라는 개가 견(犬)지적 시점 혹은 전지적 개의 시점으로 견생(犬生)을 풀어낸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

  개정판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저자가 글을 고쳐 쓰면서 '들뜬 기운을 걷어내고, 거칠게 몰아가는 흐름을 가라앉혔다'는 걸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다. 첫작과의 차이를 발견하는 일 역시 책이 가져다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라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보리의 첫사랑인 '흰순이'가 맞게 되는 결말 부분에서 들뜨고 거칠었던 서사가 이번에는 잔잔하고 부드럽게 그려진 게 눈에 띈다. 둘 다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에 우열을 논하고 싶지는 않다.

  보리와의 만남은 그들만의 삶과 세상에 대해 그동안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보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오늘날 반려동물의 시대를 사는 뭇사람들에게 저마다의 깨달음과 울림으로 전해지리라 생각한다.

 

 

  개의 공부는 매우 복잡하다. 개는 우선 세상의 온갖 구석구석을 몸뚱이로 부딪치고 뒹굴면서 그 느낌을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눈, 코, 귀, 입, 혀, 수염, 발바닥, 주둥이, 꼬리, 머리통을 쉴 새 없이 굴리고 돌려가면서 냄새 맡고 보고 듣고 노리고 물고 뜯고 씹고 핥고 빨고 헤치고 덮치고 쑤시고 뒹굴고 구르고 달리고 쫓고 쫓기고 엎어지고 일어나면서 이 세상을 몸으로 받아내는 방법을 익힌다.(28~29쪽)

 

 

  신바람은 개의 몸의 바탕이고 눈치는 개의 마음의 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들은 남의 눈치를 보는 사람을 치사하고 비겁하게 여기지만 그건 아주 잘못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들도 개처럼 남의 눈치를 잘 살펴야 한다. 남들이 슬퍼하고 있는지 분해하고 있는지 배고파하고 있는지 외로워하고 있는지 사랑받고 싶어 하는지 지겨워하고 있는지를 한눈에 척 보고 알아차릴 수 있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말이다.(31쪽)

 

 

  사람들은 개처럼 저 혼자의 몸으로 세상과 맞부딪치면서, 앞다리와 뒷다리와 벌름거리는 콧구멍의 힘만으로는 살아가지를 못한다. 나는 좀 더 자라서 알았다. 그것이 사람들의 아름다움이고 사람들의 불쌍함이고 모든 슬픔의 뿌리라는 것을.(48쪽)

 

 

  나에게는 현재의 주인이 영원한 주인이다. 주인이 가끔 바뀔 수도 있는데, 어떻게 지금의 주인이 영원한 주인일 수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은 개의 마음을 모르는 자들이다. 개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현재일 뿐이다. (중략) '영원'이라는 말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말인데, 개들의 나라에서 '영원'이라는 말은 한 주인 곁에 끝까지 눌어붙어 있다는 뜻이 아니라, 현재의 주인을 향한 마음이 '영원'하다는 뜻이다.(65~66쪽)

 

 

  사람들은 구두가 낡으면 헌 구두를 내버리고 새 구두를 사 신지만 개들은 발바닥 굳은살을 도려내고 새 살을 붙일 수가 없다. 굳은살은 한 벌뿐이다. 등산화도 축구화도 조깅화도 장화도 군화도 없다. 그래서 내 발바닥 굳은살은 이 세상 전체와 맞먹는 것이고 내 몸의 모든 무게와 느낌을 저장하고 있는 것이다. (102쪽)

 

 

 

김훈 저
푸른숲 | 2005년 07월

 

김훈 저
푸른숲 | 2021년 04월

 

강이

이수지 글그림
비룡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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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말들 | 타자의 말들 2021-06-12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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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말들


 

 

  그렇게 앉아서 게르를 바라보다가 나는 아침에 일어나 간밤에 바가지인 줄 알았던 해골을 들고 대오각성하는 원효대사처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 세상에는 본래 골목이라는 게 없었다는 것을. 초원의 게르처럼 허허벌판에 한 가족만 살고 있다면, 거기에는 골목이 있을 수가 없었다. 집과 집이 연결되고, 그 맞은편으로도 그런 집들이 들어서면 그 관계망 사이에 원래 없던 골목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골목은 사람들이 함께 만든 공간이자 길인 셈이다.

 

 

(과테말라, 안티과)

 

멀리 골목이 보인다면, 거기에는 이웃이 있다는 뜻이다.

 

 

  다른 동네의 골목들을 보면서 나는 그 차이를 이해하는 일이 골목에서 이웃을 이해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의 삶을 존중할 것. 그러니까 내 삶이 존중받기를 원하듯이.

 

 

(이란, 마술레)

 

골목은 그 동네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닮아 있었다.

 

 

  이웃에게 하는 일이 자기에게 하는 일이다. 골목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그 사실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세계의 골목들을 바라보며 새삼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소설가 김연수가 쓴 프롤로그 중에서)

 

 

세상의 골목

EBS 저
EBS BOOKS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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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유유 특별 인터뷰 | 타자의 말들 2021-05-27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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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인문 교양 MD 블로그


 

‘이 책이 나를(출판사도) 살렸다’의 여섯 번째 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소감 한 마디.


전부터 이 코너에 들어가고 싶어서 호시탐탐 노렸는데, 선정되니 기쁨을 이길 수 없습니다.  ^^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김정선 저
유유 | 2016년 01월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현재까지 판매 부수가 궁금합니다.


실판매부수를 확인해 보니 9만 7천 부가량이 팔렸네요. 10만 부 고지가 눈앞입니다!
유유 출판사가 지금까지 망하지 않고 유지하도록 해 준 대들보 같은 책이랄까요. 이런 판매 부수가 단숨에 이뤄지지 않고 출간 후 지금까지 꾸준히 팔린 성과라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의 역사에 관해 알려주신다면?  


저자 김정선 선생과 저의 인연부터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하룻강아지로 출판계에 편집자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선생은 제가 담당한 원고의 외주교정자셨습니다. 인품도 좋으시지만 교정솜씨가 천의무봉이셨죠. 모든 출판사가 그렇겠지만 제가 다닌 회사도 제대로 교정교열 업무를 가르치는 시스템이 없었어요. 제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공부하긴 했지만 역시 제가 가장 크게 배우고 익힌 것은 실제로 교정을 본 교정지였고, 이 교정지로 저를 가르쳐 준 분이 김정선 선생이었습니다. 그리고 교정교열을 외주로 맡기다 보면 외주교정자와의 긴밀한 소통이 필요하므로 선생에게 원고의 장단점을 묻기도 하고, 이런저런 책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책 보는 안목도 키우고 시야도 넓힐 수 있었죠. 제가 선생과 함께 일하던 출판사를 그만두고 나서도 선생과는 띄엄띄엄 안부도 묻고 소식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창업한 다음에 선생이 그간 쓴 원고를 모아서 제게 보내주셨어요. 부담은 가지지 말고 혹 쓸 만한 글이 있는지 봐 달라고요.


선생의 글솜씨는 잘 알고 있었고, 저도 창업 초기라 국내 저자를 모시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었기에 주신 원고를 꼼꼼히 읽으며 어떤 책을 만들 수 있을지 궁리했습니다. 주신 여러 글 가운데 동사를 다룬 꼭지가 한 편 있었습니다. 이거다, 싶더군요. 선생께 이 꼭지처럼 동사를 다룬 글을 여러 편 써 주시면 책으로 묶고 싶다고 제안드렸습니다. 요청을 드리고 난 다음에는 일에 치여서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몇 달 후에 문득 메일로 원고를 보내셨더군요. 이게 김정선 선생의 첫 책 『동사의 맛』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요청한 건 그저 동사들을 설명한 교양서였는데, 선생이 지식과 이야기를 절묘하게 결합한 듣도 보도 못한 형식으로 써 보내셨더군요. 이런 형식으로 책을 내도 될지 망설였습니다만 저는 재밌고 필요한 책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아직 세상에 없는 책이라는 확신도 있었고요. 아,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에 대해 질문하셨는데, 엉뚱한 얘기가 너무 길어지고 있나요? ^^;


여튼 이 『동사의 맛』을 여러 독자들께서 읽어 주셨습니다.(누적판매 1만 7천 부가량) 이 덕분으로 용기백배하여 김정선 선생과 계속 책을 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김정선 선생이 쓰실 수 있는 고갱이 같은 콘텐츠가 뭘까 궁리하다가 그건 당신이 평생 해 오신 문장 다듬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걸 정리해서 써 달라고 요청드렸습니다. 원고를 받은 게 2015년 겨울쯤이었을 겁니다. 초고를 읽으며 들떴던 기억이 나네요. 부랴부랴 만들어서 2016년 초에 책이 나왔습니다. 나온 책을 건네드리려고 합정에서 만나 같이 순댓국을 먹으며 책이 잘 됐으면 좋겠다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책이 이렇게 널리 사랑받는 책이 될 줄이야.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TMI입니다만 『동사의 맛』은 한 독자가 재밌게 읽고 이걸 만화로 각색하여 투고해 주시기까지 했답니다. 형식상 원작처럼 동사 지식이 많이 담기진 못했지만 그 자체로 한 편의 훌륭한 완성도 높은 작품이니 혹 기회가 닿으면 꼭 한번 읽어 주세요. 『만화 동사의 맛』이라는  책입니다. 저희가 냈고요. 『동사의 맛』이 잘 돼서 이 책은 더 잘 될 것이다 했는데, 결과가 신통치 못해서 김영화 만화가께는 늘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동사의 맛

김정선 저
유유 | 2015년 04월

 

만화 동사의 맛

김영화 저/김정선 원작
유유 | 2017년 07월

 

 

 

글쓰기 열풍입니다. 글쓰기 책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스테디셀러이자 베스트셀러로 확고한 위신을 지키는 이유를 어떻게 보시나요.


첫째, 저자의 포지션이 독자에게 어필한 것 같습니다. 책을 낼 땐 물론 당신도 저자셨습니다만 이 책은 당신이 평생 해온 외주교정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작업을 하셨고, 이 일 자체가 저자와 역자의 글을 다듬는 일이므로 독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둘째, 제목입니다. 출판사에서 뽑은 제목이라고 생각하셨으려나요? 아닙니다. 이 제목은 저자가 처음에 원고를주실 때 붙여 보내신 제목이었어요. 담당편집자가 "이건 제목을 따로 고민하지 않아도 되겠는데요?" 해서 그럼 이걸로 가자 했습니다. 나중에 독자들이 써 주신 평을 보면서 제목에 혹한 분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물론 내용이 충실하지 않았으면 제목이 아무리 좋아도 소용없었겠습니다만.


셋째, 독특한 구성입니다. 저자가 『동사의 맛』처럼 지식과 이야기를 버무린 형식을 채용하셨는데, 글쓰기 지식책임에도 독자가 지루하지 않게 궁금증을 유지하면서 읽을 수 있도록 배치된 점이 주효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넷째, 독자들의 입소문이죠. 직접 읽고 SNS에 솔직하게 올려주신 소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갔고 지금처럼 꾸준히 판매가 이어지고 베스트셀러 역주행도 가능케 했다고 봅니다. 이 기회를 빌려 이 책을 읽고 입소문 내 주신 독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덕분에 유유가 책을 계속 낼 수 있습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누가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학교에서, 직장에서, SNS에서 누구나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글을 쓰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이겠지만 그런 분이 많지 않을 것 같아요. 글을 써야 하는 형편에 놓인 분이라면, 자기 생각을 정확하게 읽는 사람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분이라면 이 책이 분명히 도움이 됩니다. 책에서도, 책이 나온 다음에 여러 인터뷰에서도 정확히 밝혀 두셨지만 저자는 이 세상에 '이상한' 문장은 없다고 말씀하는 분입니다. 다만 글을 쓰고 나서 규칙적으로 일관성 있게 '이상하게' 만들어야 사람들이 '잘' 읽을 수 있다고 하시죠. 자신이 쓴 글을 읽는 사람이 편히 읽을 수 있도록 스스로 다듬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만 이 책은 그 작업을 할 때 확실한 도움을 줍니다. 


그런 도움이 필요한 분이라면 꼭 읽어 주세요.


 

책 속에서 가장 기억나는 대목은? 혹은 좋아하는 부분은? 


101쪽에 보시면 '당신 문장은 이상합니다'라는 소제목이 달린 대목이 있습니다. 거기서 저자는 이 세상에서 이상하지 않은 문장이 없다는 주장을 합니다. 이 부분이 묘하게 설득력이 있어요. 책 제목과도 연결되는 부분인데, 이래서 책 제목이 이렇구나, 하고 무릎을 치게 되실 겁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유유에 어떤 의미를 지닌 책인가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유유의 살림을 꾸리는 데 대들보 역할을 하는 책입니다만 유유의 출간 방향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유유는 쓰기와 읽기 관련된 책들을 꾸준히 펴내고 있는데요.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가 출간하는 글쓰기 관련 도서의 중심을 잡아 준달까요. 이런 책을 낸 출판사니까 독자들께서 다른 읽기와 쓰기 책도 한번 읽어 보자, 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독자의 공부를 돕는 책'을 만들겠다는 유유의 모토를 현실에서 잘 구현하고 있는 책이기도 하고요.

 

유유에서 나올 책을 공개하신다면?


도서평론가 표정훈 선생의 『책의 사전』(가제)이라는 책이 곧 나올 텐데요. 책을 좋아하고 꾸준히 읽는 사람이면 피해 갈 수 없는 책이 될 겁니다.
씨네21 이다혜 기자가 쓰신 『여행의 말들』(가제)도 여름이 되면 선을 보일 겁니다. 저자가 여행을 무척 좋아하고 자주 가는 분인데, 아시다시피 코로나19로 모두 어디에 선뜻 가기 어려운 처지가 되었잖아요. 그러니 이 책을 읽으며 대리만족(?)을 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두 권의 책 말고도 진진한 책들이 줄지어 나올 테니, 관심 가져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김정선 저
유유 | 2016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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