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I Have α ⓓⓡⓔⓐⓜ
http://blog.yes24.com/kmyhome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kmyhome
나의 눈은 입이요^나의 머리는 소장이며^나의 마음은 말타아제이다^책을OO何=(오성투/萬用)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11월 스타지수 : 별515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기본 카테고리
나의 리뷰
↘『ⓓⓡⓔⓐⓜ★』
↘『독서일기』
↘『독서후기』
↘『글짓기』
↘『불국사탐구』
↘『반지의 제왕』
↘『English Cafe』
↘『영재수학/정보』
↘『그래픽/플래시』
↘『여행사진』
나의 리뷰
기본 카테고리
나의 메모
기본 카테고리
태그
내용이 없습니다.
2018 / 1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월별보기
나의 친구
나의 친구들
최근 댓글
박창범교수의 하늘에 .. 
이게 법화전터구나~~ 
오랜만이네요- 담아가.. 
저도 역사스페셜을 세.. 
쓰시려면 다운받아서 .. 
새로운 글
오늘 20 | 전체 101702
2004-12-30 개설

↘『글짓기』
새로운 관점의 수학 | ↘『글짓기』 2006-05-11 00:31
http://blog.yes24.com/document/544878 복사 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보는 복잡한 공식

기계적으로 풀고 넘기고 풀고 넘기고 했던 수학 문제집들

5~6번 계산하면 하얗던 A4용지가 검어지는 긴 계산 문제 이것들은 수학이 아니었습니다.

수학으로 증명해낸 공식들로 계산하고 푸는 산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수학의 전부인 듯 여겨왔고 믿어왔습니다.

지금에 와서 그 환상이 깨어졌지만 말입니다.

감히 손대지 못할 것으로 여겨졌던 증명을 하는 방법을 배우고 적용하고 나서 진정한 수학을 알게 해준 영재교육원 선생님들께 편지에 앞서 감사를 드립니다.

 

 -영재교육원 선생님들께-

안녕하세요?

지금도 이번 주 토요일 과학 창의 캠프 준비에 분주하실 영재교육원 선생님들께 중등수학 A반 김만용 인사드립니다.

제가 처음 영재교육원 선생님들을 가까이 뵈었을 때가 임해수련원에 갔을 때입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늦게 합류하는 바람에 여러 가지 혼란스러우셨을 텐데 모든 사항을 확인해주시고 도와주신 선생님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이런 선생님들과 수업은 수학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나에게 주리라하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고요.

첫 수업. 낯이 익지 않은 친구들과 수업을 한다는 자체가 떨렸고 문제가 주어졌을 때 나만 틀리면 어떡하지 라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전병룡 선생님의 집합 수업이 계속되면서 점점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배워 가물가물해진 기본 집합 성질을 상기시켜주시고 점점 어려운 부분으로 가는 수업은 이해가 잘 되었습니다.

더욱이 중간에 한 수학의 성질을 이용한 놀이로 긴장도 풀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몇 번의 집합 수업 뒤 새로운 선생님의 수업.

이번에는 과연 어느 분야를 배울까? 어렵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와 두려움에 차 있을 때 들어오신 이명희 선생님.

이명희 선생님께서 처음 1교시에 피타고라스, 페르마 등 수학자들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들을 해주시면서 긴장이 자연스럽게 풀어졌습니다.

그리고 부등식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스스로 수학에 대한 개념을 알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이 저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새로운 수학, 진정한 수학에 드디어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산수가 아닌 수학을 알게 된 저는 그 계기를 마련해주신 전병룡 선생님, 이명희 선생님, 그리고 앞으로 가르침을 받게 될 다른 선생님들을 잊지 않게 될 것이다.

앞으로 부족한 저에게 수학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새로운 분야를 가르쳐주실 것이라 믿으면서 끝 인사드립니다.

안녕히 계세요.

======================

p.s. 이명희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신 천재 수학자들의 영광과 좌절이라는 책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천재 수학자들의 영광과 좌절’을 읽으면서 우리 일반인들이 수학은 잘할 수 있어도 천재 수학자가 될 수 없는 이?깨달았습니다.

천재 수학자가 되려면 수학을 위해 다른 것들은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는 결단력과 필요할 때는 수학에 미칠 수 있는 결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2006.5.10. 김만용 올림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저 구름을 향한, 가이 없어라 | ↘『글짓기』 2006-04-29 14:07
http://blog.yes24.com/document/542762 복사 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저 구름을 향한, 가이 없어라.

                                                                                                             천안오성중2 김만용

눈이 아릴듯이 푸른 하늘의 새하얀 구름.

온 세상을 덮는 잿빛 하늘의 구름.

품 안으로 맞아드리려 해도 도망가 버리는 구름.

정말 우리의 구름, 북은 품을 수는 없더라도 다가설 수 조차 없는 것일까.


 7·4 남북 공동 성명, 평화 통일 외교 정책 선언, 7.7 선언 등을 통해서도 북은 멀게만 느껴졌다. 드디어 2000년 남북 최초로 정상 회담이 열리게 되면서 북은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곳까지 다가온 듯 했다. 허나 가까워졌다가도 떠나버리는 것이 구름인지 북도 다시 저만치 떠나버렸다. 2004년 서해교전을 계기로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악화되기도 하였다.

 우리는 새정부가 들어서도 여전히 북측에 지원을 蠻斂?있다. 쌀이며, 가축이며, 경제적 熾坪見?온갖 지원을 해주고 있는데 거리감이 줄어들기는커녕 더 멀어지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곤 하는 것은 왜일까? 설마 우리가 잘못 된 날개를 달고 구름을 좇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먼저 지금까지 해왔던 날개 설계의 오류를 고쳐야 한다.

 가장 큰 오류는 바로 우리들의 이중적 태도이다.

 지난 몇 년간 뉴스에서 잊어버리려고 하면 나오는 것이 바로 북의 식량난, 북 주민들의 비참한 생활상, 탈북자들이다. 조선시대에서 뼈빠지게 일하고 결국 뼈도 남지 않은 몸으로 생을 마치는 백성들과 같은 북 주민들의 생활은 탈북으로 이어져왔다. 중국의 외국 공(영)사관으로 도망친 탈북자들을 보도해줄 때 우리는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여론으로 표출시키며 동정해왔다. “얼른 평화적 통일을 해서 같은 민족인 북 주민들을 돕자.”며 말이다.

 하지만 2004년 서해교전, 이산가족 상봉장에서조차 기자가 반공산적인 질문을 하였다고 모든 기자단을 좇아낸 일, 북한 경수로 건설 중단 비용 5억달러 전액을 남에 부담시킨일 을 보면서 우리는 무슨 말을 해왔는지 기억해보아야 한다. 여러가지 잡다한 마찰이 있을 때는 북을 비난해왔고 서해교전 당시에는 전쟁까지 불사했었다. 이런 우리들의 이중적태도는 북의 변덕만큼이나 심하다. 당연히 이런 편협한 마음가짐으로는 북과의 거리를 줄일 수 없다.

 이 오류의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면서 어렵다. 우리 개개인의 북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의 관점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북의 변덕이 심해도 여러 나라들의 속에서 궁핍한 처지를 고려해 이해해주고 북이 도발해 오더라도 비난하기에 앞서 그 원인을 찾아내려는 태도를 갖으면서 말이다.

 이제 드디어 날개 설계의 오류를 찾아 해결책을 찾았으니 구름을 좇아가 품을 수 있는가? 아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있다. 날개를 달고 구름에게 다가가도 구름이 원하지 않으면 품을 수 없다. 오히려 구름은 가까이 온 우리를 천둥과 번개로 공격해 올지 모른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전부터 많은 노력을 해오고 있다. 대기업 현대의 가축 지원부터 쌀지원, 옥수수지원, 경제 자본 지원 등 식량과 경제를 넘나들며 꾸준한 지원을 해주고 있는 것 말이다. 물론 같은 민족인 북의 어려운 문제점들을 도와준다는 면에서 훌륭한 정책이다. 개인적인 생각일지는 몰라도 북한에 대한 일방적 지원은 평화통일로 가는 길에서의 부차적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지원을 해줄 때 ‘퍼주기 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니 북 지원 방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 적지만 확실한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현재 대북지원을 반대하는 이유가 거의 대부분의 식량 지원이나 경제 지원을 북이 모두 군비를 충당하는데 쓰기 때문이다. 이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의 의도와 정반대로 전개가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적은 물자를 지원하더라도 그 사용 방법 및 지원 대상, 효과 등을 알아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둘째로 첫번째 식으로의 지원을 계속할 수는 없으므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현재 북은 광복 후부터 국가 수입 대부분을 군비, 중화학 공업 발달에 사용하고 있다. 당연히 북 주민들의 생활에 필요한 경공업 발달은 미비하고 농업 발달도 저조한 편이다. 더군다나 농경지 부족으로 산을 깎아 다락논을 만드는 까닭에 자연재해도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정된 곳에서 높은 수확을 얻을 수 있도록 집약적 농업 발달을 위해 기술 전달을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개성공단에서 냄비 등 경공업 제품을 생산하는 것처럼 북한 곳곳에 경공업 공단을 세우도록 장려해주어야 할 것이다.


 되었다. 지난 50여년 동안 우리와 구름을 막아왔던 물리적 장벽을 해소하기 위한 시간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그 시간이다. 그 시간은 어쩌면 10년이 될 수 있고 100년이 될 수도 있다. 왜 우리는 50여년의 세월을 견뎌왔는데 또 그만큼의 세월을 견뎌내야하는 것인가? 그 이유는 지난 50여년 세월을 헛되히 보낸 벌이라고 간단히 설명될 수 있다. 서독과 동독의 주민들은 서로의 상황을 잘 알았으므로 절대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 오히려 동독 주민들이 민주주의의 서독으로 22만명이 넘게 도망쳐올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는 분단과 전쟁이 맞물리게 되면서 빠른 시간내의 통일은 물 건너가 버렸고 그동안 사이의 골이 메워지려고 하면 다시 파는 식을 계속해왔으므로 당연한 결과이다.

 가이 없는 구름을 향한 마음. 구름을 좇아 품으로 맞아드릴 수 있건만 시간의 강 앞에서 피눈물이 흐를 뿐이다. //김만용//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체험학습 소감문 | ↘『글짓기』 2006-04-29 00:14
http://blog.yes24.com/document/542687 복사 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체험학습 소감문

중등수학 A반 김만용


 이번 체험학습을 다녀온 뒤 나는 한 마디로 꼭 ‘마르코 폴로’가 되어버린 것 같은 상상에 빠졌다. 마르코 폴로가 말로만 듣던 동방의 세계를 여행하면서 느낀 감정과 똑같은 감정을 느꼈으니 말이다. 사실 화석 채취, 큐브로, 천체 망원경 조립 및 분해는 이런 기회가 아니면 해보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첫날 화석박물관 이후의 순서로 화석 채취를 할 수 있는 성주산으로 갈 때만 해도 설마 진짜 화석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강한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 평상복에 2명당 망치 한 개씩 들고 돌로 덮인 길을 걸어갈 때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10분 뒤 그 의심이 180도 변하게 되었다. 한참 검은 돌을 깨다가 식물 잎 화석을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쉽게 찾을 수 있는 화석이라고 하지만 내 손으로 찾은 트라이아스기의 식물 화석이라는 것에 큰 의의를 두고 싶었다. 이에 탄력을 받아 엄청난 식물 화석을 발견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외진 곳을 관찰해보고 깨어보았지만 당연히 희귀한 화석을 발견할 수 없었다. 비록 식물 잎 화석, 고사리 화석, 대나무 화석 등 밖에 보지는 못했지만 위에서 말 했듯이 내 손으로 찾은 화석이라는 데에 큰 의의를 두고 유익한 활동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곤충 화석 채취장에 도착하였는데 시간 부족으로 돌 하나 만져보지 못하고 임해수련원에 입소한 것이다.

 임해수련원에 입소하여 거의 초면인 얼굴들과 맞대며 밥을 먹고 칠교놀이 등의 활동을 하다 보니 가장 기대했던 천체 관측 시간이 다가왔다. 그런데 불행히도 날씨가 흐린 까닭에 천체 망원경을 조립 및 분해 해보는 활동으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천체 망원경 조립 및 분해도 흥미 있게 볼 수 있는 활동이었지만 무엇인가가 부족하여 허전한 느낌이었다. 숟가락, 젓가락은 있지만 밥을 먹을 수 없는 상황이랄까?

 드디어 마지막 날 오전 활동인 큐브로 시간이 왔다. 처음에 나는 시간표에 나와 있는 대로 큐브를 맞추는 활동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6층에 가보니 웬걸 어린이집에서나 볼 수 있던 나무토막들이 있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평범한 나무토막은 아니었다. 재미를 만들어내는 나무토막들이었던 것이다. 구멍 또는 홈이 파여진 나무토막들을 이어놓고 구슬들을 통과시킨 다는 것, 처음해 보는 만큼 기대도 컸다. 설명서에 있는 활동들을 해본 뒤 본 경기인 조별 창의적 작품 대회가 시작되었다. 痢?조는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미끄럼틀을 만들어 검사를 맡았다. 그런데 다른 조들을 구경하고 나니 우리 조 작품이 너무 초라해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금 더 쌓아보고 몇 개의 블록을 바꾸어보니 구슬이 회전하면서 돌기까지 하였다. 허나 어찌하리. 이미 검사를 맡은 작품인 것을.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쉬운 부분이었다.

 이런 활동 외에도 칠교놀이 등 많은 활동을 더 했다. 이런 활동들을 통해 창의력이 생겼음은 물론 단체 생활을 하면서 사교성도 길러지고 자주성도 조금 생긴 듯하다. 마지막으로 이런 멋진 기회를 만들어주신 여러 관련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김만용//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새터민<기조발언> | ↘『글짓기』 2006-04-28 23:40
http://blog.yes24.com/document/542681 복사 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제목 : 영원한 좌절을 안기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소속학교 : 천안오성중학교

학년 : 1학년

성명 : 김만용

 

  안녕하세요? 저는 천안오성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김만용이라고 합니다. 옛날 조상들은 이맘때 쯤 냉기와 온기를 같이 품고 안겨오는 바람을 맞으며 마음을 비우고 학문에 열중하셨지요. 지금 저는 이 조상들처럼 바람을 맞으며 마음을 비우고 열심히 토론에 임하겠습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끝난 뒤 정조를 잃고 돌아와 화냥년이라는 욕을 들으며 차례차례 목을 매달고 물에 뛰어들은 환향녀[화냥년]. 일본에 끌려갔다가 천신만고 끝에 돌아왔지만 왜놈이라는 누명을 쓰고 죽어간 포로들. 요즘 이들의 현대판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오천 명을 넘어 만 명을 향해가는 새터민들이 바로 그들이다. 과연 우리는 매년 수백억 원 씩을 들여가면서 지원해줘야 하는 것일까?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의 이야기이다. 남해도에 살고 있던 ‘나적응(가명)’과 ‘나몰라(가명)’는 항우와 유방처럼 대결을 벌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오성과 한음 같은 우 나누기도 하는 친구였다. 그런데 이들이 임진왜란 개전과 동시에 일본의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다. 여러 고문에도 용케 종전까지 살아남았다. 종전 뒤 포로협상에 끼어서 돌아온 이들은 걱정이 앞섰다. 고향에 돌아오기는 했지만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막막했던 것이다. 장장 7년 동안 일본에서 살던 턱에 조선의 생활 적응이 쉽지 않았다. 임진왜란 전 남해도에서의 삶도 작은 섬에서의 외로운 삶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적응’은 ‘나몰라’와 헤어져 예전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돈이 될만한 일을 배우러 다녔다. 그러나 결단력이 부족해 거리를 전전하던 ‘나몰라’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람은 바로 도성에 살던 그의 할아버지였다. 전쟁 후 큰 부자가 된 그들의 할아버지는 작은 집 한 채를 마련해 주고 생활에 필요한 돈들을 대주었다. 한동안은 그 도움으로 잘 먹고 살았지만 불행히도 할아버지가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돈줄마저 끊기게 된 ‘나몰라’는 남은 돈들을 노름에 탕진한 뒤 울화병으로 죽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사냥꾼이 되어 근근이 살아가던 ‘나적응’의 옆에서 임종을 맞이했다.

  여기서 똑같이 일본 생활에 물들었지만 살아남은 ‘나적응’과 죽은 ‘나몰라’의 차이점을 알 수 있다. 물고기를 잡아서 먹여준 사람과 물고기를 잡을 방법을 가르쳐준 사람의 차이점 말이다.

  지금 우리는 새터민들이 하나원을 퇴소하면 정착금으로 먼저 2천만 원이란 돈을 받게 된다. 만약 하나원에서 새터민들이 충분히 사회적응 훈련을 받았다면 이 돈을 기반으로 직장을 구하거나 잘만 하면 소규모 창업도 고려해 볼 수 있다. TV를 보면 불과 몇 백만 원으로 시작하는 창업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공장들이 밀집된 지역에서는 3D직종이라도 초봉 100만 원 이상을 주는 곳이 많다. 결국 새터민들이 자립을 하지 못하는 근본적 원인은 사회적응 훈련의 부족과 우리들의 인식에 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매년 몇 백억의 정착금을 더 지원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대신 사회적응 훈련 기간을 늘리고 그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바꾸어야할 것이다.

  먼저 하나원에서의 교육 기간을 늘리고 부산 YWCA 새터민지원센터 같은 곳들을 다른 지역에도 신설해야할 것이다. 모 신문사 설문조사에 의하면 언어의 이질성이나 사회주의적 생각에 의해 취업이나 창업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30%에 이르고 있었다. 수십 년을 겪은 사회주의 문화를 단 일 년 만에 바꾸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남한 사회에 동화가 잘 되지 않는 새터민들은 몇 년의 시간을 정해두고 그 기간 동안은 충분히 동화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또한 사회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제도적으로 새터민창업지원을 도와줄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겠다.

  실제로 새터민지원센터의 도움으로 취직을 하거나 창업을 하는 새터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 첫 주자는 김혜영 씨였다. 탈북 3년차인 김혜영 씨는 이 곳의 도움으로 부산에 고기 음식점 창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 손으로 꼽아도 남을 정도의 지원센터들로 모든 새터민들을 도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더더욱 지원센터의 부재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결정적으로 우리의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충격적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인 노동자들보다 새터민들을 더 깔본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사회적 편견 때문에 취직을 못한다는 응답이 40%(복수응답 설문조사였다.) 가까이 나왔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의 인식 속에는 서로가 피를 나눈 한 민적이라는 생각보다는 6․25전쟁을 통해 민족상잔의 비극을 일으킨 주모자, 공산주의자 등이 더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사회에서 불만을 느끼고 자유세계를 찾아 목숨을 걸고 내려온 그들을 또 한번 좌절하게 만드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돈’이 아닌 우리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의 부재가 아닐까 한다.

  나는 위의 글을 쓰며 여러 자료들을 조사하면서 한 가지 씁쓸한 점을 느꼈다. 그들을 위한다는 사람들이 내놓은 것이 겨우 취업을 위한 더 많은 정착금뿐인지 말이다. 물질만능주의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새터민들이 『감자』의 주인공 복녀 같이 타락의 길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임시방편으로 정착금만을 주려는 생각을 버려야한다.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아야 한다. 근본적인 생활능력이 없이 정착금만으로 생활한다면 얼마 못가 그 돈을 다 잃고 생활하게 될 새터민들의 모습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들도 아직 모르고 있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몇 달을 살아갈 수 있는 돈이 아닌 몇 십 년을 걱정 없이 살아가게 하는 일자리와 우리의 따뜻한 배려라는 것을. //김만용//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새터민<최종발언> | ↘『글짓기』 2006-04-28 23:35
http://blog.yes24.com/document/542680 복사 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소속학교 : 천안오성중학교

학년 : 1학년

성명 : 김만용


  안녕하세요? 천안오성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김만용입니다. 약 일주일 전만해도 저의 글은 작은 소금물 한 방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여러분들의 비와 햇빛을 맞으며 작은 생각들이 응결되기도 하고 증발해 버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질량보존의 법칙처럼 그 안의 소금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생각들을 내보내기도 하고 받아들이기도 했지만 변하지 않은 그 핵을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 한 가족이 황무지에 서있었다.

  그들의 뒤에는, 수많은 고난의 강들 뒤에는

  억압의 땅이 펼쳐져있다.

  그들의 앞에는, 수많은 고난의 산맥들 앞에는

  자유의 땅이 펼쳐져있다.

  그들은 전진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희망의 땅도 자유의 땅도 배려의 땅도 아니었다.

  그들이 찾아온 곳은

  빙하기의 가나안이었다.


  과연 새터민들은 왜 사선을 넘어가며 죽음을 무릅쓰며 이 곳, 한국에 오려한 것일까요? 위의 글처럼 새터민들은 자유와 희망을 갖고 배려를 받으며 살고 싶어 합니다. 불행히 한국에서도 그들에게 자유를 보장해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희망도 줄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자본주의 사회의 필수 구성요소인 충분한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그들이 자립할 때까지 정착금을 지원해주어야 합니까? 정신적 고통, 물질적 고통에서 벗어날 때까지 수많은 정착금을 추가로 지원해주어야 합니까? 같은 민족으로서의 의무이기는 하여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왜 불가능한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평범하게 생각한다면 우리나라 예산에 상당한 부분을 차지해 압박할 수도 있고 그 정착금을 노리고 온 새터민들이 생겨날 텐데 그에 따른 북한의 반발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정착금을 몇 천만 원을 더 올려준다고 해서 평생 새터민들의 생활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인 의식주와 자본주의 사회에 필요한 돈들을 갖고 계산해보면 2년 안에 6천만 원 정도의 돈이 사라집니다. 결국 정착금을 추가로 지원하는 것으로는 새터민들을 평생 동안 살아가는 수단이 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착금을 더 지원하는 대신 다른 대책이 필요한 것입니다.


  첫째로 정부에서는 새터민들에게 돈만 던져주고 뒷짐만 지는 태도를 탈피해야합니다. 그들이 그 돈을 벌 수 있도록 일자리를 만들고 또한 알선해주어야 합니다. 실업률이 늘어나는 실정이어도 3D 직종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평생직장은 아니지만 그런 곳에서라도 임시직장으로서 생활비를 벌고 한국 사회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얼마큼 적응했다고 생각되는 새터민들에게 국가가 담보를 서서 대출 형식으로 창업 자금을 지원해주며 창업을 권장하는 태도를 취해야합니다.


  둘째로 새터민들에 대한 사회적응 훈련을 더 현실적으로 실시해야 합니다. 벗어난 이야기 일지 몰라도 요즘 대학교 교육이 나중 취업을 위해 전혀 도움이 안 되어 실전 훈련을 한다고 합니다. 새터민들에게 대학교나 다름없는 하나원에서 이론적인 훈련보다는 실제로 밖에 나가 우리들 하나하나와 같이 대화도 나누어 보고 행동하면서 익히는 실전 훈련을 실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나중에 정부에서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창업을 도와주어도 잘 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변해야만 새터민들이 한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새터민들이 우리 사회 형식에 적응하고 일자리를 얻어도 또 하나의 장벽을 만나게 된다. 바로 빙하기가 된 우리의 마음이다. 6·25전쟁이 일어난지 벌써 50여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우리들의 머릿속에는 북한에 대한 반대 의식이 뿌리 깊이 박혀있다. 이것을 없애지 못한다면 우리는 새터민들을 자유를 찾아온 사람이 아닌 일명 빨갱이로 밖에 보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간신히 사회에 적응한 새터민들을 좌절시키지 않기 위하여 ‘사랑’과 ‘관심’의 부재를 해결하여만 합니다. 제발 새터민들을 잠시 떠나있었던 가족이라 여기시고 돈만 주고 그들에게서 회피하려는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진정 원한 것은 돈보다도 자유니까요.


  다시한번 말하지만 새터민들에게 지원하는 정착금은 지금의 수준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하며, 새터민 개인에게 지급되는 더 이상의 추가 정착금 지원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저의 발언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만용//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나 자신’이 아닌 ‘너’ | ↘『글짓기』 2006-04-28 23:30
http://blog.yes24.com/document/542678 복사 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저/조경숙 역
아름드리미디어 | 2003년 06월

구매하기

  ‘나 자신’이 아닌 ‘너’ (독서논술)


  오랜 세월을 거쳐, 마음이란 돌 위에 ‘너’를 새겨 넣은 이들을 쫓아내고 그 돌 위에 다시 ‘나 자신’을 새겨 넣은 사람들.


 ‘나 자신’을 새겨 넣은 이들의 인생은 ‘나 자신만이 꾸려나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루어 낸 것은 자기 발전과 자아실현으로 인한 행복’이다. 하지만 ‘너’를 새겨 넣었던 이들이 이루어 내었던 것은 ‘비가 내릴 때 피할 수 있는 곳, 외로울 때 읽을 책 한 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통한 행복’이었다.


 과거에는 ‘너’를 새겨 넣었지만 현재에는 ‘나 자신’을 새긴 우리들은 과연 미래에 새겨 넣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너’인가, ‘나 자신’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그 실마리를 작고 평범하지만 상대에 대한 이해심을 가진 체로키족 아이의 짧은 유년기가 제공해주고 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면서 ‘작은나무’는 혼자가 되고 만다. 하지만 ‘작은나무’에게는 성공의 스승이 아닌 인생의 스승이 기다리고 있었.慕?체로키족 할머니와 혼혈 체로키족인 할아버지였다.


 다정하고 전통적인 인디언인 할머니와 과묵하지만 다정하고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할아버지 사이에서 ‘작은나무’는 ‘너’라는 개념을 배우게 된다. 감사를 바라지 않고 사랑을 줄 때 좁은 의미의 ‘너’를, 필요한 것만 자연으로부터 빌려갈 때 넓은 의미의 ‘너’를 말이다. 그래서 ‘작은나무’는 처음에 자신을 제외한 것들을 모두 ‘너’라는 개념으로 보아 자기 자신과 같은 격으로 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를 따라 여러 사람들을 겪고 거래를 해보면서 ‘나 자신’만 생각하고 사는 백인들을 알게 된다. 한번은 자신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열심히 도와서 자신에게는 많은 돈인 50센트를 모으게 된다. 그런데 이 돈을, 자기 자신을 아주 착한 기독교인으로 소개한 사람의 먹지도 못하는 병든 송아지와 바꾸게 되면서 잃게 되었다. 비록 경험은 해보지 않았지만 할아버지의 어렸을 때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치인들이 세금을 더 걷기 위해 작은 몇 에이커 땅에 온 가족의 희망을 걸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땅을 총으로 빼앗은 일도 알게 된다. 선량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겉으로는 위선을 행하고 나 자신의 부귀영화만 꾀하는 정치인들도 보게 된다.


  잠깐 우리 주위를 살펴보더라도 많은 경우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돈을 뺏기는 아이들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즐거움만 추구하는 한 무리의 아이들. 나 역시 대중교통 이용 시에 노약자분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준 적이 없다. 그대로 앉아서 내 할 일을 할 뿐이었다. 이것들도 ‘너’를 고려하지 않아서 생긴 경우들이다.


  그러나 ‘작은나무’는 이런 백인들을 보면서 마음속에 더더욱 ‘너’를 새기게 되었다. ‘너’를 도와서 얻은 돈 50센트가 ‘너’를 속여서 얻은 돈 50센트보다 값진 것을 알았고 자신과 함께 걸어온 개들을 대하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부가설명을 하자면 지금의 우리들처럼 개를 관상용이나 다른 용도로 사용하면서 다정하게 대해주는 것이 아니고 옆에 항상 있는 ‘너’로서 생각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미래에 ‘나 자신’이 아닌 ‘너’를 새겨 넣어야 한다. 불행히, 요즘 시대에 다른 상대를 생각한다면 손가락질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나 자신’을 중요시 할 때 한 사람만이라도 ‘너’를 중요시 해준다면 우리의 사회는 많이 변모할 것이다. 사회문제점으로 대두되는 교통사고나 범죄 등의 발생률이 낮아질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혼에게 비를 막아주는 처마가 되어 행복을 줄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만용//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욕심도 적당히 부리면 약이 되고 지나치게 부리면 독이 된다. | ↘『글짓기』 2006-04-28 23:20
http://blog.yes24.com/document/542676 복사 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논제 : 욕심도 적당히 부리면 약이 되고 지나치게 부리면 독이 된다.


<공공의 후원자이자 심판관>


 GNP 80달러의 나라를 세계 경제 12위로 만들고 첨단제품 선두권을 형성하게 만들었지만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에 원인을 제공한 것은 무엇일까. 이 모든 사건의 내면에는 욕심이 있다.

 황우석 교수 사건이후 AP통신에서는 한국인의 ‘빨리 빨리’ 문화가 한국을 경제 대국으로 만들었지만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같은 문제점을 낳았다고 했다. 이 ‘빨리 빨리’문화도 성취하고자 하는 것을 빨리 얻으려는 욕심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 영화 aliens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미래에 우주를 개척할 때 나타날 생명체들에 대한 경고? 아니면 진보된 우주과학기술의 유용성? 모두 아니다. 바로 인간의 욕심이 부른 화를 보여준다. 버크가 자신의 회사를 위해서 행성 폭발을 반대하고 리플리와 뉴트를 숙주로 삼아 alien을 지구로 들여오려고 하며 교전 중 연구실로 가는 문을 막음으로서 대원들의 생명을 위협했다. 돈과 명예에 대한 욕심 대신 동료들에 대한 동료애가 있었다면 일찍 후퇴하고 빨리 실험실로 퇴각하여 많은 대원의 목숨을 살렸을 것이다. 결국에는 혼자 도망치다가 alien에게 당했지만 말이다. 여기서 욕심은 버크에게 어떤 영향을 준 것일까? 처음에 버크는 회사의 미래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승진하였고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적당한 욕심이 버크에게는 약이 되었다. 그러나 이 욕심이 너무 강하다 보니 다른 동료들에게도 화를 미치게 되었고 결국 자신에게도 독이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는 이 욕심을 과연 어떻게, 어느 정도까지 가져야 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선 적당한 욕심이 어떻게 약이 되는지 알아보자.

 ‘나는 세계 최고의 ○○을 만드는 사람이 될 거야.’, ‘나는 ○○을 만들기 위해서 잠도 안 자야지.’, ‘○○을 달성하기 위해서 ○○와 경쟁해야지.’ 이런 다짐들이 모두 자기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되는 욕심들이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한국인들은 민족주의와 이런 욕심들을 가지고 있었기에 짧은 기간에 큰 발전을 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욕심을 부리다 보면 자기희생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냥 지금의 위치에 만족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욕심이 없이 지금의 위치에 있는 나에 만족한다면 결코 그 자리조차 유지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일본의 반도체 회사들을 보자. 80, 90년대만 해도 일본의 반도체는 세계에서 알아주는 최고의 상품이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만족하고 발전을 도모하지 않다보니 큰돈을 투자하면서 반도체 제 1인자를 꿈꾼 삼성에게 지고 말았다. 또 한 가지 예가 있다. 원나라와 명나라의 교체기에 장사성이란 사람이 있었다. 장사성은 꽤 많은 지역을 복속시키고 나라를 세운 뒤 호위호식하며 편한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봉기를 일으키고 지금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은 주원장에게 망하고 만다. 결국 부리기 싫은 사람도 자신을 위해서 부려야 하는 것이 바로 욕심이다.

 그리고 욕심은 목표를 향해 나아갈 힘을 주고 의무를 안겨줄 정도로 부려야 한다. 자신의 목표가 아닌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부리거나 남들에게 큰 피해가 갈 정도로 부리게 된다면 독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욕심을 다루는 방법을 어느 정도는 습득했을 것이다. 이제 실천에 옮기는 일만 남았다. 욕심에 대한 부정적 의미를 버리고 지나친 욕심을 버릴 때 우리 모두 최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김만용//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상류의 물과 하류의 물 | ↘『글짓기』 2006-04-21 00:31
http://blog.yes24.com/document/541136 복사 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상류의 물과 하류의 물

천안오성중학교  김만용

         ‘침묵의 계약’

 『흘러가는 시간은 한 가닥의 빗줄기다.

 초원 한 가운데에 한 남자가 서있다.

 그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계약이 요구된다.

 빗줄기는 그에게서 뜨거운 열정과 패기를 앗아가는 대신

 시간이 없으면 얻을 수 없는 연륜, 그리고 경험의 지혜를 준다.

 하지만 그는 울부짖었다.

 그는 알았던 것이다.

 월이 흘러가면서 그는 완벽한 계획을 세우게 되겠지만

 젊음의 패기로 그 일을 실천할 수 없게 되었다.

 때문에 그의 계획은 말없이 지하 깊은 곳으로 끌려들어가고

 그의 혼은 침묵으로 제 무덤 위의 풀들을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사라지기전 시간을 역행하려던 울부짖음만이

 공허히 울려 퍼질 뿐이다.』


  우리는 열정과 패기의 황금기인 청소년 시절에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100년 전 유관순을 비롯한 학생들이 한반도의 격동을 몰고 온 나이에 우리는 집에 틀어박혀 컴퓨터를 바라보고 있다. 집에서 서투른 손놀림으로 바쁘게 태극기를 그리던 나이에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이곳저곳에 끼적끼적 낙서나 하고 있다. 그리고 학생들이 나라와 문화를 외세로부터 지키려 부르짖던 시기에 우리는 생활의 모든 것을 외세문명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이 것이 바로 풍요로움이 안겨준 숨겨진 비수이다. 과연 비수에 찔린 상처를 누구를 본보기로 치료해야 하는 것일까? 아래 이야기가 그 해답을 말해주고 있다.

 천안시 신방동에 자칭 모험가 ‘나관옥’과 불량배 ‘나관순’이라는 남매가 살고 있었다. 이들은 매일 아침마다 남부오거리를 지나가는 까닭에 그 주변은 언뜻 봐도 모든 위치를 기억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관순’이 갑자기 ‘나관옥’에게

 “오빠, 저기 도로 옆에 유관순 마스코트 동상이 서있네. 와, 귀엽다.”

 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나관옥’은 일부러 어른스러운 흉내를 내며 말했다.

 “어찌하여 저 마음의 웃음 뒤에 감추어진 고통과 고난을 견뎌낸 성인께 웃음을 보이느냐. 다시 예의를 갖추어 말해 보아라.”

 금방 뾰로통해진 동생은

 “저 사람이 무슨 성인이야. 나이도 우리와 비슷할 텐데 아무리 독립운동을 했어도 소극적으로만 나섰겠지.”

 라고 말대꾸를 하는 것이었다. 기가 막혀진 ‘나관옥’은 특유의 설득력으로 혀를 놀리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자세하게 이 성인에 대해서 설명을 해줄게. 우리처럼 천안에서 태어난 유관순은 우리와 비슷한 나이에 서울의 유명한 이화학당이라는 곳에 들어갔어. 그 때 불행히도 한일합방이 일어났던 거야. 우리였다면 물론 분노에 치를 떨었겠지만 일본의 총칼 앞에 설 용기를 낼 학생들이 몇 명이나 있겠니? 그러나 열정과 패기로 이루어진 청소년의 참모습이 다행스럽게도 옛날에는 많이 있었단다. 그 중에 유관순도 포함이 되겠지. 생활을 봐주는 사람이나 물질적 후원자 없이도 독립에 대한 열정과 그 의지만으로 만세운동을 이끌어 내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 하지만 불행히도 제대로 숨지를 못했던 유관순은 헌병대에 잡혀가게 되었어. 그 곳에서 끝까지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결국 고문을 당하다가 옥사를 하고 말았단다. 그런데 유관순은 끝까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니 우리는 우리 자신이 너무 부끄럽게 느껴질 거야. 비록 유관순은 꽃다운 청춘을 채 넘기지 못하고 긴 여행을 떠나버렸지만 이미 성공한 삶을 산 것이나 다름이 없어. 인생의 황금기인 청소년 시절을 자신의 모든 욕구를 뿌리친 채 그 몸 하나만으로 어른 수백 명의 몫을 해냈기 때문이지. 그런데 이렇게 무한한 가능성을 주는 젊은 시절을 우리는 빈둥거리며 먹고 살기를 꿈꾸며 보내고 있으니 어찌 큰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니. 아마 우리나라에 전쟁이 난다면 이스라엘의 유학생 귀환 같은 일을 바랄 것이 아니라 외국으로 도망가는 젊은이들이 없기를 바라게 될지도 몰라.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우리는 나이 들어서 가질 수 없는 젊음의 패기와 열정, 의지로 작은 일부터 도모해 나가자. 여기에는 공부에 대한 도전도 있겠지? 아, 젊음 쪽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유관순의 독립운동에 대해서는 깊이 다루지 않았군.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겠지? 이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얘기하자면 유관순을 비롯한 여러 학생들이 일으킨 3․1운동이 없었다면 아마 독립은 더 늦게 왔을 수도 있어. 이 3․1운동을 기폭제로 해서 여러 현대적 독립운동이 불 같이 일어났기 때문이야.”

 기나긴 ‘나관옥’의 이야기를 듣던 ‘나관순’은 고개를 푹 숙였다.

 “오빠, 그동안 나는 과연 뭘 한 것일까. 지금부터라도 모든 일에 젊음의 패기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야겠어. 그리고 저 마스코트 동상을 다시 보니 내가 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러운 걸.”

 우리는 위 이야기에 나오는 유관순을 비롯한 학생들을 본보기로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 사회의 주가 되는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는 시점에서 젊은 사람들이 그들만의 특권으로 일들을 자신 있게 도모해야 무슨 문제점이던지 쉽게 풀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인생도 강물처럼 상류가 있고, 하류가 있다. 굳이 비유하자면 유관순은 상류이고 다른 경륜이 있는 독립운동가들은 중류, 하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강물을 보면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상류는 질풍노도처럼 달려서 중간에 장애물이 있다면 모두 깎아 버린다. 하지만 중류, 하류는 장애물들을 피해 휘어 다닌다. 상류는 그 정신력과 힘이 넘쳐서 무슨 일을 해내기에 적합하지만 그것들을 자제하지 못하면 자칫 비뚤어 흘러갈 수도 있다. 중류와 하류는 경험과 지혜로 장애물들을 쉽게 피해 다니지만 무엇을 해내기에는 너무 느리고 약해졌다. 모두 장단점이 있지만 나는 상류의 물 쪽에 더 많은 표를 던지고 싶다.

 서두의 시에서 말한 부분이 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그는 완벽한 계획을 세우게 되겠지만 젊음의 패기로 그 일을 실천할 수 없게 되었다.’라는 부분이다. 우리도 평소에 말보다 실천이라는 말을 잘 쓰듯이 아무리 나이가 들어서 제갈량과 같은 계획을 짠다고 해도 그 계획을 실현할 패기나 의지가 없다면 그 것은 모두 허사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100년 전에 생활은 비록 우리보다 못 살았어도 지금보다 훨씬 낳은 생각과 행동을 가졌으며 젊음의 패기와 의지를 가졌던 유관순을 비롯하여 여러 순국학생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김만용//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행복을 담는 그릇 | ↘『글짓기』 2006-04-21 00:30
http://blog.yes24.com/document/541134 복사 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편지글>

행복을 담는 그릇

         천안오성중학교

          1학년 9반

              김만용


  복녀에게

  복녀야, 안녕? 나는 어려움을 모르고 살아온 현대사회의 우물 안 개구리, ‘김만용’이라고 해. 하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사람을 폭력적으로 만들 정도로 덥단다. 현대의 편한 생활이 더 덥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

  그런데 요즘 너에 대해 많은 말이 있단다.과연 너의 행동이 정당한지를 놓고 말이야. 물론 사람을 인생 최대의 갈림길로 몰아넣는 상황에서 이성에 따라 행동하기란 매우 어렵지.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의 뜻을 잘 헤아려보아야 한단다. 한번 밑의 시를 읽어보렴.

‘가난은

가난한 사람을 울리지 않는다.

가난하다는 것은

가난하지 않은 사람보다

오직 한 움큼만 덜 가졌다는 뜻이므로

늘 가슴 한쪽이 비어 있어.

거기에

사랑을 채울 자리를 마련해 두었으므로

사랑하는 이들은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시에서처럼 네가 사랑을 채울 곳을 마련해 두었다면 기회와 타락의 길 중 기회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네가 사랑을 채울 공간에 물리적 욕심을 채우려고 했으므로 왕서방의 행동을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다고 봐.

  내가 왕서방이었다면 너의 행동을 아래의 내용들로 비난했을 거야.

  가정교육을 잘 받기는 했지만 송충이 잡기에 나가서 처음으로 몸을 파는 대신 일을 하지 않고 돈을 받는 불건전한 행동을 시작하게 되었지. 그리고 몸을 팔고 돈을 받는 일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하면서 왕서방에게까지 돈을 받고 몸을 팔았지. 물론 중간에라도 그만 둘 수 있었지만 돈 때문에 끝가지 물고 늘어졌으리라 생각되. 비록 가난하지만 끝까지 정조를 지키고 노력을 하여 돈을 벌려고 했어야지.

  복녀야, 다시 말하지만 가난이라는 이유 하에 너의 행동이 정당화 될 수는 없어. 여러 사람으로부터 공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지만 말이야. 외환위기 시절에 한 실업자가 아기에게 먹일 분유 값이 없어서 절도를 한 사건이 있었단다. 이 사건은 모든 사람들에게 동정을 심어주었지만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 옳지 못한 행동이었어.

  그렇기 때문에 내가 왕서방으로서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단다.

  다시 태어나서 불행하게 사회에서 제약을 받는 가난을 가진 사람이 되어도 단 한가지만은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할 거야. 바로 가난은 당하는 사람에 따라 행운의 카드가 될 수도 있고 불행의 카드가 될 수도 있다는 거야.

위 시처럼 행복을 담고 끝없는 노력을 한다면 비록 가난하더라도 보람있는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고 된사람도 될 수 있을거야.

  그러면 너의 분전을 기대하며 이만 줄일게. 또,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 전생의 과오를 말끔히 씻어버리기 바래! 

2005년6월8일

진심으로 -김만용-씀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희망을 먹고 자란 나무 | ↘『글짓기』 2006-04-21 00:27
http://blog.yes24.com/document/541131 복사 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나무를 심은 사람』을 읽고

 

  “희망이 없으면 노력도 없다.”

  과연 우리는 지금 현재 희망과 목표를 갖고 노력하여 행복을 가꾸려고 할까? 아니면, 물질적 목표만을 향해 희망이 없는 허울뿐인 노력만 하여 행복을 얻으려고 할까? 이 문제는 본질을 잃어버린 물질문명 속에서 흐려진 영혼을 가진 우리들이 풀기에는 너무나 엉켰다. 하지만 답의 실마리를 장 지오노는 평범한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에를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얼마 전 TV 교양프로그램에서 산악인 겸 산양연구가인 사람에 대해 다루어 주었다. 이 분은 산양이 있는 곳이면 눈이 덮힌 설악산이든지 비무장지대이든지 어김없이 찾아가 산양의 습성 등을 연구하고 분포지도를 작성하고 있었다. 편한 도시 생활도 마다하고 한끼 한끼를 된장죽으로 끼니를 때워가며 오지만을 찾아다녔다. 이 힘든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렵거나 도중에 그만하고 싶지는 않았느냐?”는 리포터의 질문에 그는 한 마디의 대답으로 일축했다. 말인즉, 훗날 어느 곳에서도 산양을 볼 수 있게 만들어야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코 힘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자꾸 미루다 보면 그 행동이 도미노처럼 이어지게 되어있고 결국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엘제아르 부피에 역시 평범한 양치기로서의 생활에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황폐화된 지방을 되살리기 위해 평생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도토리들을 골라내고 심고 가꾸어 아름다운 숲을 만들어내었다. 결국엔 가난과 증오로 가득한 마을들이 희망과 행복, 그리고 사랑으로 가득찬 마을로 변모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하지만 목표가 달성되는 동안 엘제아르는 자신의 행동이 밝혀지지 않도록 힘썼고 목표가 달성된 뒤에는 한 요양원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그러니 그 누가 이 평범한 양치기가 이런 일을 해내었다고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끈질긴 노력으로 희망과 행복을 부활시킴은 물론 칭찬 받을 행동을 자랑하지 않고 감추어 버리는 겸손한 태도를 가진 엘제아르 부피에야말로 이 시대의 희망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 인간들은 고도의 산업발달과 함께 찾아온 환경문제에서 자연을 배려해 주지 않았다. 발전과 성공이라는 명분 아래 열심히 환경을 파괴하여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행복은 과연 영구적인 것일까? 그보다는 자연을 보호한다는 목표와 자연의 참모습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희망을 먹고 자란 나무는 더 싱싱하고 제 몫을 해낼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2005.7.6           독서감상문 연습         //김만용//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1 2 3 4 5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이벤트 세상
金 / My 독서록
萬 / My 글짓기
用 / My 학습록
情 / My 교양록
報 / My 컴퓨터
학습홈
학교홈
아빠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