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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듯 하지만 크게 구애받지 않으면 즐거운 패치워크 형태의... 방랑자들 | 해외소설 2020-09-25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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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방랑자들

올가 토카르추크 저/최성은 역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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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듯 하지만 크게 구애받지 않으면 즐거운 패치워크 형태의... 올가 토카르추크, 《방랑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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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저녁은 세상의 경계선이었고, 나는 혼자 놀다가 그만 우연히 그것을 건드리고 말았다. 그들이 잠시 동안 나를 홀로 남겨두었기에 그것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덫에 걸려 빠져나갈 수 없게 된 게 분명하다. 나는 서너 살이다. 창틀에 앉아 차갑게 식어가는 정원을 내다보고 있다. 학교 주방의 불빛이 꺼졌고 모두 떠났다. 정원의 시멘트 바닥이 어둠에 잡아먹혀 자취를 감추었다. 굳게 닫힌 출입문, 잠긴 쪽문, 가려진 블라인드. 빠져나가고 싶지만 갈 곳이 없었다. 요동치며 선명한 윤곽을 만들어 내는 건 오로지 나의 현존뿐. 그래서 고통스러웠다. 한순간 깨달았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나는 그저 여기 있을 뿐이다.” (p.12)


  소설을 읽으면서 이야기의 즐거움에 빠지지 못하고 있었다. 나를 사로잡는 이야기의 부족에서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자꾸 이야기를 비껴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럴 때 다행스럽게 올가 토카르추크의 《방랑자들》을 발견했다. 나는 어느 시점 이후로 소설보다 산문을 더 많이 읽고 있다. 나는 이야기를 읽기도 하지만 문장을 읽기도 한다. 문장을 읽을 때는 머리 속에 작은 공간만 있어도 된다.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번이라도 소설 쓰기를 시도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 안다. 그건 아마도 스스로에게 부과할 수 있는 가장 고약한 업무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홀로 두고, 좁은 1인용 방에 가두고, 완전한 고독 속에 빠져들어야만 하니까. 그것은 통제할 수 있는 정신병이고, 스스로에게 작업의 족쇄를 채우는 강박적인 편집증이며, 그것도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만년필이나 버슬, 베네치아의 가면 따위는 모두 버리고, 정육점 도살업자의 앞치마를 입고, 고무 장화를 신고, 손에는 내장을 제거하는 칼을 들어야만 하는 일이다...” (p.27)


  600여 페이지로 꽤 두껍지만 소설은 백이십 개의 소제목으로 파편화되어 있다. 첫 번째 챕터에 서너 살의 내가 나오고 이후로 몇 개의 챕터에서 내가 등장하지만 자전적은 소설은 아니다. 전체적인 형식과 진행에서 나는 파스칼 키냐르의 ‘마지막 왕국 시리즈’를 떠올렸다. 동서고금을 막론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어떤 예고도 없이 불쑥 등장하고 또 그렇게 홀연히 퇴장하는 것이 그렇다. 


  “이르쿠츠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기. 아침 8시에 이르쿠츠크에서 출발하면 정확히 같은 시간, 그러니까 같은 날 오전 8시에 모스크바에 도착한다. 마침 해가 떠오르는 시각이기에 우리는 계속되는 여명 속에서 비행하게 된다. 시베리아 대륙만큼이나 거대하고 고요하며 평화로운 지금의 이 순간이 이어지고 있다.

  이 순간이야말로 자신의 전 생애에 대해 고해 성사를 해야 할 시간이다. 기내에서는 쉼 없이 흐르고 있지만, 그 바깥으로는 절대 흘러가지 않는 시간.” (p.342)


  그런가 하면 알랭 드 보통의 《공항에서 일주일을》을 떠올리기도 했다. 《방랑자들》은 제목 그대로 떠도는 이야기가 적지 않게 등장한다. 여행자들 심리에 대한 분석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공항이나 호텔과 같은 공간을 주인공으로 삼기도 한다. 알 수 없는 지도가 불쑥 튀어 나오기도 하고 위의 이야기처럼 시간의 흐름을 거역하기도 한다. 물론 그러한 거역이 동시에 어쩔 수 없이 시간의 흐름에 대한 부역이기도 하다.


  “언젠가 통증과 가려움이 그를 거의 광란 상태로 몰아넣었을 때, 그리하여 떨리는 손으로 촛불을 밝혔다. 그리고 한 발로 깡충거리면서 절단된 다리가 담긴 유리 용기를 탁자로 가져갔다... 필립은 절단된 다리를 꺼내어 불빛에 비춰 보며, 통증의 원인을 알아내려고 애썼다... 그는 마룻바닥에 주저앉아서 다리를 앞으로 뻗고, 왼쪽 무릎 아래 뭉툭하게 잘려 나간 부위에 절단된 다리를 갖다 댔다. 그리고 두 눈을 감고는 통증이 느껴지는 부위를 찾기 위해 손을 더듬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 닿는 건, 차가운 고깃덩어리뿐, 아픈 부위에는 결코 이르지 못했다.” (p.310)


  어쩌면 작가가 여행이라는 주제만큼이나 사체와 장기의 보존을 위한 방부 처리라는 주제를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인지 모른다. 시간의 흐름을 거역하는 육체 혹은 장기에 대한 이야기는 집요할 정도로 등장한다. 방부 처리된 제 아비의 사체를 돌려달라는 딸의 간곡한 편지는 한 번에 끝나지 않고, 방부 처리의 과정이 자세하게 소개되기도 하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등장하기도 한다. 


  “... 그녀는 생각했다. 지금껏 그 누구도 우리에게 늙는 법을 가르쳐 준 적이 없다고. 그래서 우리는 노화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른다. 젊을 때는 병들고 아프다는 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은 영원히 청춘일 거라는 정체 모를 확신을 품는다. 또한 우리는 고령자를 대할 때, 노화가 마치 그들의 잘못인 양 취급한다. 당뇨병이나 동맥 경화증처럼 그들 자신이 원인을 제공했다고 치부하기 일쑤다. 하지만 노화라는 질병은 무고하고 결백한 사람들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온다...” (p.584)


  파스칼 키냐르의 소설(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하지만 소설이라고 불러야 할지 알 수 없는)을 읽을 때와 비슷한, 즐거움과 곤혹스러움이 동시에 기능하는 읽기였다. 물론 파스칼 키냐르의 파편들에 비해 올가 토가르추크의 파편들은 때때로 커다랗고 때때로 집요하게 엮여 있다. 형식과 내용이라는 양 측면에서 패치워크를 지향하는 것 같다. 복잡한 듯하지만 크게 구애받지 않으면 즐거운 독서가 가능하다. 


  『나는 진보했다. 처음에 낯선 장소에서 눈을 뜨면 ‘나는 지금 집에 있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몇 분쯤 지나고 나면 생경한 광경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고, 햇빛이 스며들면 날이 밝았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다 결국 나는 여행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다음 단계, 그러니까 ‘모르겠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의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한동안 공간 감각을 상실한 채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다음은 세 번째 단계다. 여행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이것이야말로 핵심적이고 궁극적인 최상의 단계다. 목적지가 어디건 간에, 우리는 항상 이런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어디에 있든 중요치 않다.” 어디에 있는지 상관없다. 여기 내가 있으므로.“ (pp.589~590)


올가 토카르추크 Olga Tokarczuk / 방랑자들 (Bieguni) / 민음사 / 615쪽 / 201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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