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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사색하는 시간 | 서평단 서평 2020-12-05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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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죽음을 사색하는 시간

이창익 저
인간사랑 | 2020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종교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죽음에 대한 고찰을 통해 우리가 처한 문제를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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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사색하는 시간

이창익

인간사랑/2020.11.20.

sanbaram

 

우리는 다른 존재의 몸을 먹어 우리의 몸을 만든다. 더 이상 죽음을 먹을 수 없을 때 우리는 스스로 죽음이 되어 세상의 먹이가 된다.(p.12)”고 말하는 것처럼 인간은 동물이나 식물의 죽음을 먹어야만 생명을 유지한다. 그래서 우리의 시간은 죽음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음을 사색하는 시간>에서는 죽음은 시간을 만들고, 시간은 죽음을 지운다고 한다. 저자 이창익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조선 후기 역서의 우조론적 복합성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을 쓰고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여러 대학교에서 연구교수로 있었으며 현재 한신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사람들은 왜 종교를 믿을까?>, <조선시대 달력의 변천과 세시의례> 등이 있고, 몇 권의 번역서가 있다.

 

<죽음을 사색하는 시간>1살아 있는 죽음<월간 미술>201712월호와 20103<역사와 문화>19호에 발표한 것을 새로 고쳐 쓴 것이라고 한다. 2죽음의 해부도3죽음 너머의 시간19982월에 발표한 석사학위논문을 물음만 남겨둔 채 모두 새로 다시 쓴 것이다. 4사라지는 죽음20139<종교문화비평>에 발표한 글을 새로 고쳐 쓴 것이라고 한다. 결국 전에 발표한 것을 지금의 시점에서 전면적인 수정을 가하여 주제를 뺀 나머지 것을 새롭게 고쳤다고 한다. 종교학자인 저자의 시각에서 보는 죽음을 세계 여러 민족이나 종족들의 장례문화나 제례의식을 통해 예전부터 죽음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살펴본다. 뿐만 아니라 고대와 플라톤 시대의 종교, 그리고 기독교와 불교를 비롯한 여타 널리 알려진 종교에서 죽음을 어떻게 다루고 생각하는지 하는 것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는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면을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바우만에 따르면, 이제 인간은 죽는 것이 아니라 사라질 뿐이다.(p.25)” 어제까지는 살아 있던 누군가가 갑자기 삶의 공간에서 소멸하는 현상, 이것이 지금 우리가 죽음이라 부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자연사를 겪지 않으며, 모두가 충분히 늙기 전에 죽는다. 죽음은 더 이상 과거에 우리 조상들이 경험하던 그런 죽음이 아니다. 장례식은 질병이라는 작은 죽음에 허망하게 쓰러진 자들을 향한 애도일 뿐이다. 이제 누구도 천국에 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저 매 순간 행복하기만을 바란다. 불멸이 사라진 시대는 신이 사라진 시대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는 신조차도 죽는 시대, 신이 죽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각자의 죽음은 나의 죽음으로부터 측정되는 실존적 거리에 따라 그 의미의 무게를 달리한다.(p.108)” 나의 죽음을 중심으로 할 때, 수많은 너의 죽음들이 각 거리를 달리하며 중심 주변에 포진하고, ‘너의 죽음의 경계 너머에 역시 수많은 그들의 죽음이 포진한다. 그러므로 나의 죽음을 중심으로 삼으면서 배치되는 서로 다른 질량의 수많은 죽음들 전체가 형성하는 죽음의 지형도같은 것을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나의 시간을 지운다. 그러나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는 책 속에 문자로 고착되어 있는 타인의 시간’, 그렇게 정지된 생각의 시간 속에 빠져든다.(p.122)” 게다가 죽은 인간조차도 타인의 시간 속에 잠입하여 타인의 기억 안에서 연명할 수 있다. ‘나의 시간도 타인의 기억에 스며들어 생존한다. 그렇지만 나의 죽음과 무관하게 타인은 계속해서 살아가기 때문에, 타인은 내 죽음의 단독성을 여실히 증명해 주는 내 몸의 차디찬 경계선이다. 또한 나의 생명은 그저 내 몸 안에 갇혀 있고, 내 몸의 경계선 너머로 뿌리를 뻗지 못하고, 타인의 몸속으로 스며들지 못한다는 점에서, 타인은 항상 내 생명의 한계선을 표시한다.

 

대체로 종교에서는 오로지 죽음을 통해서만 더 이상 죽지 않는 불멸의 영역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p.128)” 이것이 바로 죽음이 지닌 기본적인 역설이다. 죽어야만 죽음이 사라지는 것이고, 죽어야만 비로소 죽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의 상상력에서, 죽음 이후에 인간은 두 번째 죽음을 통해 완전히 절멸할 수도 있고, ‘두 번째 죽음을 피해 신처럼 존재할 수도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죽음은 진짜 죽음이 아니다. 최종적인 죽음은 죽음 이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음 이후의 죽음이 죽음 문제의 골자가 된다. 장례문화의 모든 노력은 죽음 이후의 죽음이 죽음을 극복하는데 쏟아진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죽음을 받아들였던 것처럼 죽음에서 도망치지 않는 것을 신앙의 핵심으로 삼았다.(p.225)” 순교와 자살은 다르다. 란츠베르크에 의하면,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이 현재까지 대부분 기독교 문헌에서 반복되고 있다. 그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자신을 살해하는 것은 인간을 살해하는 것이므로 자살은 살인이다. 십계명에서 살인은 용서할 수 없는 것으로서 금지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살은 결국 살인이기 때문에 기독교인은 악을 피하려고 자살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영지주의자는 세계 종말이 오면 인간이 구원받을 거라고 주장한다.(p.440)” 그러나 그는 살아 있는 동안 미리 세계 종말을 내면화 한다. 예컨대 세계를 통해 인간은 세계 종말을 미리 맛본다. 신화적인 세계 종말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의례 안에서 압축적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이후 영지주의자는 역사가 아니라 신화 안에서 살아간다. 그노시스는 세상을 보는 다른 눈이다. 이 눈을 획득하면 모든 고통이 환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환영의 속임수에 놀아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영지주의에서는 시간과 영원,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 무너진다. 그래서 언제라도 시간은 영원이 되고, 삶은 죽음 너머의 부활이 된다. 반대로 영원은 타락하여 시간이 되고, 빛은 어둠에 갇히고, 신은 인간이 되어 지상으로 추락한다.

 

마즈다교에서 인간은 본래 천사였고, 다시 천사가 될 것이다.(p.452)”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지연된 천사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악과의 투쟁이 끝나면 지상의 시간은 언젠가 영원으로 복귀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의 시간도 지연된 영원성일 뿐이다. 마즈다교(조르아스타교)는 천사 개념을 통해 영혼의 개별성 보존이라는 문제를 독특한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결국 불멸성의 획득은 천상의 수호천사를 다시 만날 수 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이스마일파의 우주론에서도 잠재적인 천하인 인간들은 최종적인 부활을 위해 이블리스, 아리만의 후예인 악마들과 싸워야 한다.(p.458)” 부활은 일거에 이루어지지 않고 단계별로 실현된다. 그러므로 연속적인 부활에 의해 각각의 인간은 점차적으로 자신의 영원한 인격, 즉 천사성을 완성할 수 있다. 결국 지상의 삶은 타락한 천사들이 천사의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 벌이는 전투로서 이해된다. 존재 자체가 전투이다. 인간의 모든 종교적인 목표도 천사 되기로 수렴한다.

 

우리는 항상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가 더불어 형성하는 공동체 안에서 살고 있으며, 죽음의 간섭을 받지 않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p.476)” 우리는 내 주변의 가까운 죽음에서 시작하여 나와 무관한 듯 보이는 먼 죽음에 이르기까지 차츰 인간의 죽음을 공유하면서 살아간다. 어차피 언젠가 죽을 것이라면, 사는 동안 행복하게 잘 사는 것,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가 죽는 것이 사람들의 관심사가 된다. 죽음은 모든 것의 무화이기 때문에 현재의 순간을 잘 즐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주장이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답변을 대신하기도 한다. 웰다잉은 자연적인 죽음이 사라지고 인공적인 죽음이 넘쳐나는 시대가 낳은 위기의식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유언장이나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는 환자의 죽음의 시기를 결정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부터 의사들을 해방시켜 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여러 가지 각도에서 볼 수 있으며 현재 우리가 처한 문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예스24를 통해 인간사랑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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