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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0 | 일반 서평 2023-01-3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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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0 : 서울편 2

유홍준 저
창비 | 2017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서울의 한양도성의 축성과 보수공사, 창의문 밖세검정 부근의 역사적 변천과 문화재, 덕수궁과 경희궁의 근현대사, 종묘와 성균관에 대해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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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0

서울편 2

유홍준

창비/2022.12.7.

sanbaram

 

서울 시내가 고층 빌딩숲으로 변한 요즘은 남대문을 지날 때도 예전처럼 우람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0>에서는 먼저 조선이 한양도성으로 천도하게 된 사연부터 도성을 어떻게 짧은 시간에 쌓고 개축하였으며 관리하였는지를 설명한다. 북한 무장공비의 1.21사태로 인해 북악산 구역이 출입금지 되었다가 개방이 되기까지의 과정도 설명한다. 이어서 자문밖으로 불리던 서북문인 창의문밖의 골짜기 옛별서지역의 시대적 변천과 의미도 짚어본다. 그리고 근대화시기의 우리 역사를 덕수궁을 중심으로 하여 되돌아보며 유명무실해진 경희궁의 역사적 변천과정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이어서 동대문밖에 있는 동묘로 알려진 동관왕묘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성균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저자 유홍준은 서울대 미학과, 홍대 미술사학과 석사,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박사를 졸업했다. 미술평론가와 영남대 교수 및 박물관장, 문화재청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나의문화유산답사기>, <화인열전>, <추사 김정희>등 다수가 있다.

 

서울의 자랑은 이처럼 자연과 인공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는 탁월한 로케이션에 있다. (p.18)”고 말하며 산과 강 그리고 도시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어우러진 서울이 조선의 도성으로 정해진 사연과 그 변화에 대해 고찰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조선왕조의 신도읍 건설이라는 대역사에 필요한 인력을 농번기를 피해 동원했으며, 전국의 승려들을 동원해 핵심 기술자를 충당하였다. 한양 도성은 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을 잇는 총 길이 59,500(18.6킬로미터)에 평지는 토성, 산지는 석성으로 축조하기로 계획되었다. 한양도성의 성곽 축조 공사는 600(180미터)씩 모두 97구역으로 나누어 진행했다. 성곽 전체를 600척으로 나누면 97구역하고 1,300척이 남는데 이는 인왕산 자락의 자연 암반과 절벽을 성곽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각 구역을 지방별로 배정하고 책임자를 성벽의 돌에 새겨 실명제를 통해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여 짧은 공기에도 불구하고 튼튼한 도성이 되도록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도성은 전쟁을 위한 성이 아니라 평상시 도읍의 울타리 역할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해자와 같은 방어시설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종 4, 세종대왕은 한양도성에 대한 전면적인 보수공사를 단행했다. 이때 세종대왕은 토성을 없애고 성곽 전체를 석성으로 수축하는 대역사를 다시 벌였다.(p.41)” 인력은 역시 농번기를 피해 1월과 2월 농한기 두 달 동안 집중적으로 동원했다. 이때 전국에서 동원된 인부는 1차 공사 때의 3배에 달하는 약 32만 명이었고, 기술자만 2,200명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한양도성의 북쪽문인 숙정문은 본래 사람들의 출입을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도성 동서남북에 사대문의 격식을 갖추면서 비상시 사용할 목적으로 세운 것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굳게 닫아두었다. 그 때문에 숙정문을 통과하는 큰길은 조성되어 있지 않았다. 북소문에 해당하는 창의문도 마찬가지여서 조선 초에는 일반인 출입이 금지되어 문루도 없었으며 숙종 때 당춘대성이 축조된 뒤에야 총융청 등 군부대가 주둔하게 되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성가퀴의 기본 구조는 낮은 맞배지붕에 3개의 총구멍을 낸 것이다. 하나의 성가퀴를 1타라 부르며 1타에는 3개의 총 쏘는 구멍이 있다.(p.74)” 가까운 곳을 쏘는 근총안 1개가 한 가운데 있고, 양옆에는 먼 데를 쏘는 원총안 2개가 설치되어 있다. 원총안은 대개 구멍을 수평으로 뚫은 반면 근총안은 비스듬히 아래쪽을 향하고 있다고 설명하여 그냥 지나치기 쉬운 것도 알기 쉽게 소개한다. 우리나라 성곽과 문루는 전란에 대비한 것이라기보다 도성의 울타리다. 이 점은 중국이나 일본과 전혀 다르다. 만약 전쟁을 고려했다면 벽체를 높이 쌓고 성곽 둘레에 해자를 깊게 파놓아 탄탄한 방어시설을 구축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본격적으로 실록 편찬 작업에 들어가면 초초, 중초, 정초 세 단계를 거쳐 실록이 완성되었다. 이렇데 완성된 실록은 사고에 봉안하고 실록의 초본인 초초와 중초, 그리고 사관이 개인적으로 제출한 사초는 기밀 누설을 방지하기 위하여 종이를 물로 흔적 없이 씻어냈다, 이를 세초라고 했다.(p.133)” 태우지 않고 물로 씻어낸 것은 종이를 재생하기 위한 조처였다. 그 세초가 세검정 계곡에서 이루어졌다. 조지서가 가까이 있는 데다 계곡의 물이 맑고 수량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암동이라는 동네 이름은 부침바위라 불리는 부암(付岩)에서 비롯되었다. 이 부침바위는 소원을 빌면서 돌을 붙였던 기복신앙의 대상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잔 자갈돌을 계속 비비면 마찰 효과로 돌이 얹힐 수 없었을 것 같은 가파른 면에 달라붙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민간에서 전해오는 풍습이나 동 이름이 생겨나게 된 배경을 친절히 설명하고 있다.

 

덕수궁이라 불리기 훨씬 전에 이미 이곳엔 경운궁이라는 궁궐이 있었고 경운궁의 역사는 임진왜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p.195)” 1910년 국권을 강탈한 일제는 조선왕조의 상징인 궁궐을 철저히 파괴하기 시작해 경복궁에 총독부 건물을 짓고, 덕수궁은 궁궐이 아니라 공원으로 꾸몄다. 훗날 경기여고와 덕수초등학교가 들어선 선원전 구역을 매각하고 덕수궁과 오늘날의 미국대사관저 사이에 길을 만들면서 궁궐의 일부 영역이 도로 서쪽으로 떨어져 나갔다. 광해군은 선조와 마찬가지로 석어당에 기거하고 즉조당에서 청정(聽政)’했다. 청정이란 조선시대 임금이 정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라한 것은 재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경덕궁은 서궐로 이궁 역할을 단단히 했다. 숙종은 경덕궁에서 태어나 재위 19년에는 궁궐을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궁궐지>를 편찬했으며, 영조는 재위 36년 이곳으로 이어한 뒤 16년 가까이 기거했다. 그때 영조는 궁궐 이름인 경덕이 원종의 시호인 경덕과 음이 같다며 경희궁(慶熙宮)’으로 고쳤고 이곳 집경당에서 세상을 떠났다.

 

현재의 덕수궁은 18천 평을 둘러싼 돌담 안에 10여 채의 전각들이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서양식 건물들이 모인 석조전 구역이고 또 하나는 정전인 중화전, 침전인 함녕전 등이 있는 전통 궁궐 구역이다.(p.259)” 그러나 원래의 덕수궁은 현재보다 3배 이상 넓어 돌담 밖 북쪽의 옛 경기여고 터에는 역대 임금의 초상을 모신 선원전 구역이 있었고, 서족 정동 극장과 예원학교 자리에는 황실의 생활공간인 수옥헌 구역이 있었다. 대한제국이 불과 13년 만에 막을 내리고 일제강점기로 넘어갔기 때문에 사람들은 조선왕조의 쓸쓸한 마지막만 떠올릴 뿐 대한제국의 실체를 역사의 기억으로 거의 간직하지 못한 채 흔히 구한말이라고 칭하면서 조선왕조는 1910년 일제의 국권 침탈로 막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조선왕조는 1897년 대한제국의 선포와 함께 끝났고 그때부터 대한제국의 13년 역사가 이어졌다고 저자는 첨언한다.

 

동묘는 동관왕묘의 준말이다. <삼국지>의 영웅인 관우가 사후에 점점 신격화되어 관왕으로 받들어지면서 사당보다 격이 높은 묘가 된 것이다.(p.308)” 본래 조선왕조엔 관왕묘가 없었다. 그러다 임진왜란이 끝나갈 무렵 조선에 파병 온 명나라 장수들이 주둔지에 관왕묘를 세우면서 등장했다. 관왕묘에 있는 <일월오봉도>는 같은 문화권이라 해도 중국, 일본, 베트남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조선의 독창적인 그림으로, 경복궁과 창덕궁 등 궁궐 경전의 어좌 뒤에 장식되어 있고, 옥외 행사 때도 임금의 자리 뒤에 반드시 놓였다. 관우도 왕으로 승격하여 관왕이 되었기 때문에 <일월오봉도>를 배경으로 세운 것이다.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는 염색을 하면서 궁핍하게 살면서도 세조가 내려주는 그 무엇도 받지 않았고 예종, 성종, 연산군, 중종까지 다섯 임금의 시대를 더 살다 중종 16년에 세상을 떠났다. 중종은 단종의 묘소를 찾게 하면서 서서히 복권을 시도했던바 정순왕후의 장례 또한 대군부인격으로 치르도록 각별히 배려했다. 왕비가 살았던 정업원 터에는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웠다는 청룡사가 들어서 있다. 청룡사는 비구니 사찰로 아주 깔끔하다고 한다.

 

성균관의 기본 구조는 강학 공간인 성균관(명륜당)과 향사 공간인 문묘(대성전)를 양대 축으로 이루어졌다. 교학이 분리되지 않아 유학이면서 동시에 유교였다. 대성전에는 공자와 역대 성현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p.382)” 우리나라 성현은 모두 열여덟 분이어서 동국 문묘 18이라고 하는데 조선 국초 까지는 설총, 최치원, 안향 세 분의 위패만 동무와 서무에 모셔져 있었다. 한편 유생들의 학교생활에 대해서는 무명자 윤기라는 분이 성균관 유생들의 생활상을 무려 220수로 읊은 <반중잡영>이라는 장편시가 근래에 알려지면서 비로소 소상히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현재 대성전 안에는 공자를 정위로 해 가운데에 모시고 좌우로 첫째 줄에는 4대 성인, 둘째 줄에는 공문 10철과 송조 6, 셋째 줄에는 동국 18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4대 성인은 안자, 증자, 자사, 맹자이고, 공문 10철은 공자의 10대 제자이며, 송조 6현은 송나라 때 성리학을 완성한 주돈이, 정호, 정이, 소옹, 장재, 주희 등 6인이고 동국 18현은 우리나라의 신라, 고려, 조선의 명현 18인이라고 설명한다.

 

탕평채의 유래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영조의 탕평책 이후에 쓰인 <송남잡지>, <경도잡지>, <동국세시기> 등 세시풍속에 관한 책에 나오는 공통된 요리가 삼짇날의 계절 음식 중 하나로 대래 늦봄에서 여름 사이에 먹는 녹두묵무침이다.(p.478)”라고 소개하면서 탕평채에 들어가는 재료의 색은 각 붕당을 상징했는데, 청포묵의 흰색은 서인을, 쇠고기의 붉은색은 남인을, 미나리의 푸른색은 동인을, 김의 검은색은 북인을 각각 뜻했다고 한다. 다른 색깔과 향의 재료들이 서로 섞여 조화로운 맛을 내는 요리가 탕평채라고 소개한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문화 융성기를 일으켰던 영, 정조 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소개하면서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8세기 3분기 석굴암, 불국사, 에밀레종으로 상징되는 신라 경덕왕 때, 12세기 2분기 고려청자의 전성기인 고려 인종 때, 15세기 2분기 한글을 창제하고 종묘제례악을 정비한 세종대왕 때, 그리고 18세기 후반기 영, 정조 시대가 문예부흥기였다고 부언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제대로 알지 못했던 여러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으며 우리의 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되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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