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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 마지막 날 | 여행 2019-05-27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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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일 목요일

 

투어 마지막 날

930분 마지막 바르셀로나 시내 투어를 위해 호텔을 출발했다. 1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이 카사밀라(밀라의 집)’. 가우디의 팬이었던 페드로 밀라 이캄프스가 카사바트요을 보고 의뢰한 연립주택이다. 거대한 돌덩이처럼 생긴 외관과 미역줄기를 닮은 철제 발코니는 주변 건물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는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가 되었다. 옥상은 투구를 쓰고 있는 로마병사와 타일로 만든 십자가 등 독특한 디자인의 굴뚝이 인상적이라는데 건물의 바로 밑에서는 보이지 않아 아쉬울 뿐이었다.

 


복잡한 시내 거리에 있는 건물의 외관이 독특하기로 유명하다. 차를 정차 할 수가 없어 우리만 잠깐 내리고 차는 그 동안 시내를 크게 한 불럭 돌아온다고 한다. 얼른 내려 사진을 찍었지만 시간제약이 있고, 거리 조절이 쉽지 않아 입구만 겨우 포착할 수 있었다.

 

다음에 도착한 곳은 바로셀로나 올림픽 경기가 열렸던 몬주익 경기장이다. 우리에게 바로셀로나 올림픽은 특별하다. 서울 올림픽 다음에 열린 올림픽이기도 하지만 몬주익 언덕 경기장에서 황영조가 마라톤에서 우승을 하면서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몬주익 언덕의 올림픽 공원에는 황영조 부조상이 서있다. 몬주익 주경기장을 한 바퀴 돌아 차에서 내린 우리는 경기장 안을 둘러보고 황영조 부조상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내 나라 선수가 외국의 경기장 공원에 부조상으로 세워져 있다는 것에 긍지를 느끼게 한다.

 

마지막 일정으로 람불라거리가 가까운 곳인 까딸루냐광장에서 자유시간을 주었다. 각자 원하는 활동을 하고 3시까지 광장으로 집결하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이 3시간이다. 이 시간에 점심도 각자 해결하는 것이다. 그래서 팀원들은 각자 또는 삼삼오오 모여서 헤어졌다. 우리는 까르푸에 먼저 들렸다. 필요한 물건을 약간 구입하고 람불라거리를 걷다가 재래시장을 탐방하러 갔다. 재래시장 입구에는 사람들이 많아 발디딜틈이 없었다. 사람들은 주로 외지에서 온 관광객으로 보였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니 사정은 조금 나았다. 과일과 채소가게 전문점이 늘어서 있고 조금 더 가자 생선가게들이 있었다. 고기집과 잡다한 기념품 가게도 있고 여러 가지 먹거리가 빠지지 않고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었다. 하몽을 깎아 파는 곳도 있었다. 우리는 스페인 전통요리를 파는 식당들이 있는 시장 가장자리로 갔다. 그리고 해물을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에 자리를 잡고 요리를 주문했다.

 

요리는 전채 본식 후식으로 되어 있었다. 전식으로 샐러드 두 가지를 시켰다. 본식으로는 생선모둠 요리와 오징어 먹물 요리 등을 시키고 후식으로는 와인이나 맥주, 탄산음료 등을 각자의 취향대로 시켰다. 나중에 계산서를 보니 적지 않은 금액이 나왔다. 5명 식사 대금이 26만원 돈이었다. 그러나 호화스러운 요리를 맛있게 먹었으니 만족스러웠다.

 

오후 3시에 카탈루냐 광장에서 모여 바로셀로나 공항으로 이동하였다. 그동안 정들었던 버스 기사와도 이별이다. 우리는 공항에서 짐을 정리했다. 그리고 짐을 붙이는데 터키항공은 캐리어 하나의 무게를 20kg으로 정해 초과하면 덜어 내야 했다. 몇 몇은 무게 초과로 인해 기내에 들고 들어가는 가방으로 일부 짐을 옮겨야 했다.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다. 그러나 창구에서 받아주는 사람에 따라 1kg 내외는 봐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엄격한 사람이 있으니 그날 재수라 할 수 있기도 하다.

 

짐을 부친 후 검색대를 통과하여 면세점을 둘러보다가 비행기 탑승 시간이 임박해서야 게이트 앞으로 모였다. 19:00 바로셀로나를 출발하였다. 창가에 앉았는데 이륙하자마자 바다쪽으로 비행하여 바닷물만 보였다. 22:30 이스탄불 신공항에 도착하였다. 간단히 휴대한 짐검사 후에 환승할 게이트로 이동하는데, 신공항이 커서 오랫동안 걸어야 했다.

 

140분 비행기가 20분 딜레이 되어 2시 출발하였다. 문제는 환승비행시간을 기다려 탑승하는데 버스로 한참을 이동하여 이동식 탑승구를 이용해야 하는 것이었다. 새로 지은 공항이고 자국적기인데도 게이트에 연결된 탑승구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오랜 비행시간에도 피로하긴 한데 잠이 크게 오지 않았다. 밤하늘을 쳐다봐도 별이 지난번만큼 잘 보이지도 않았다. 다만 새벽에 동이 트고 해가 뜰 때 구름 사이로 일출이 이루어지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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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엘공원 | 여행 2019-05-26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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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엘 공원

마지막 투어로 구엘 공원 탐방이 계획되어 있었다. 차로 이동하여 구엘 공원의 입구에서 하차했다. 구엘 공원은 파밀리아(성가족) 성당과 함께 가우디의 최대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곳은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구엘 백작이 평소 동경하던 영국의 전원도시를 모델로 하여 바르셀로나의 부유층을 위한 전원주택단지를 만들고자 계획했던 곳이라고 한다. 모두 60채의 주택을 지으려 했지만 3채만 분양이 되고 미완성인 상태에서 구엘이 사망하자 중단되어 미완성인 채로 남은 곳이다.

 

구엘 공원 안에는 가우디가 그의 아버지와 함께 20년간 살던 집이 있는데 현재 이곳은 가우디 박물관으로 되어 있어 가우디가 생전 사용했던 유물들과 직접 디자인한 독특한 가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데, 우리의 일정에는 박물관 입장 계획이 없어 겉모습만 보았다.

 

입장 시간이 되기까지 대기시간에 우리에게 산책로를 탐방할 시간이 주어졌다. 산책로는 경사진 언덕의 한쪽을 깎아 언덕의 기울기에 맞춰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만들어 원래의 경사진 언덕 모양을 유지하게 만들어 졌는데 그 양식이 다양했다. 그리고 철근 콘크리트로 단단하게 기둥을 만들고 그 기둥에 자연석을 자연스럽게 붙여 마치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을 연상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이런 길은 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기저기 적제 적소에 만들어져 있었으며, 자연스럽게 골짜기의 물길을 이용하여 산책로를 조성하여 인공적인 느낌이 적게 나도록 설계되어 있었고 이 산책로에서 바로셀로나 시내가 잘 내려다 보였다


산책로 주변에는 쉴 수 있는 벤취도 자연 친화적으로 만들어졌고, 다양한 수종의 나무와 꽃들을 식재하여 산책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루하지 않게 꾸며져 있었으며 비가와도 바로 대피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이렇게 자연친화적으로 꾸며진 산책길이 아직도 미완성인 것이 아쉬웠다.

 

구엘 공원의 입구에는 관리실과 경비들의 숙소로 사용될 예정이었던 두 채의 집이 있는데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집처럼 생겼다. 알록달록한 타일 조각으로 꾸며진 도마뱀 분수와 그리스 신전을 모티브로 삼은 시장이 있다. 언덕으로 되어 있는 지형을 이용하여 한쪽을 깎아내어 2층으로 만들어져 있다. 80여 개의 기둥을 만들어 아래에는 시장을 만들고 위층은 운동장을 만들었다.

 

빗물을 모으기 위한 집수장치를 만들어 기둥을 통해 물을 모아 재사용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시장에도 기둥 4개를 빼어 넓은 공간을 연출하는 세심함을 보이고 있다. 시장의 지붕 위에는 구엘 공원의 꽃이라 불리는 타일 벤치가 있는데 마치 누워 있는 용이나 바다의 파도처럼 구불구불한 모습으로 되어 있다. 이 벤치를 설계할 때도 실제 모델들을 앉혀 편안한 자세로 앉을 수 있는 벤치의 높이를 정했다고 한다.

 

시장 옆에는 구엘이 이 지역을 사들일 때부터 있었던 저택이 남아 있다. 이곳을 지금은 초등학교로 사용하고 있다. 담장 밖으로는 산책길이 만들어지고 산책길과 초등학교 담장 사이에는 갖가지 식물들이 심어진 화단이 가꾸어져 있었다. 곡선으로 휘어진 산책길에 경사진 자연에 어울리는 기둥이 있고 그 기둥에는 자연석으로 꾸며져 있어 자연스런 모습을 연출하고 있기에 많은 관광객들이 기둥을 사이에 두고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였다.

 

투어를 마치고 숙소를 향해 출발 했다. 하루 동안 수고한 바르셀로나 가이드와 헤어지고 우리는 차로 1시간을 달려 SUMMER 호텔에 투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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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셀로나와 성가족 성당 | 여행 2019-05-25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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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로 이동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가이드는 이동하는 동안 카탈루냐와 바르셀로나에 대해 설명을 했다. 카탈루냐의 북쪽에는 프랑스와 국경을 이루는 피레네 산맥이 있고, 동쪽은 지중해에 접하여 해안을 이루고 있으며, 스페인 제1의 항구도시라고 한다. 인구 또한 마드리드에 이어 제2의 도시이기도 하단다. 카탈루니아의 인구는 750800만명 정도이고 면적은 스페인의 6.5%를 차지한다고 한다. 언어도 스페인 언어와 다른 카탈루냐 지방어가 따로 있어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지방은 스페인에서 가장 잘 사는 고장이다.

 

독재자 시절 차별을 많이 받아 독립의지가 강하여 두 번에 걸쳐 독립운동을 벌였고 주민투표에서 압도적인 분리독립 찬성을 얻었지만 중앙정부에서 지도자들을 감금하였다고 한다. 일부는 다른 나라로 망명하여 분리독립 운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시민들은 그들을 지지하고 기리기 위해 노란 리본을 건물이나 간판 등에 달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세월호 때에 노란 리본을 달게 된 것도 이곳에서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 교민은 약 1,500여 명이 살고 있고, 이민 1세들은 대부분 태권도 사범이나 병아리 감별사, 요식업, 관광업, 침술 등에 종사하고 있지만 대부분 은퇴했거나 은퇴할 나이가 되었고, 그의 자손들은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소개하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바로셀로나 시내에 접어들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성가족 성당)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 큰 감명을 받고 돌아온 바르셀로나의 한 출판업자가 바르셀로나만의 대성당을 짓자는 운동을 벌여 시민 모금이 시작되어 1882년 가우디의 스승이었던 비야르가 좋은 뜻에 동참하여 무보수로 성당 건설을 시작했다. 그러나 무조건 싸게 지으려고만 하는 교구에 질려 1년 만에 포기하고 자신의 제자였던 가우디를 후임자로 추천하여 31세의 가우디가 공사를 맡게 되었다. 그는 스승 비야르가 설계한 초기의 디자인을 폐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여 43년간 이 공사에 남은 인생을 바쳤다. 그는 공사 인부들과 함께 숙식하며 성당 건축에 몰입했다고 한다. 그러다 1926년 교통사고로 성당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가우디가 설계하고 짓기 시작하여 아직도 공사 중인 성가족성당 앞에 도착했다. 먼저 외부가 잘 보이는 공원에 들려 사진을 찍고 내부 관람을 한다고 했다. 가이드가 일기예보에서 4시에서 6시 사이에 비가 조금 내릴 것이라고 했다고 하더니 정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성가족성당 외부는 사진을 통하여 자주 접했던 모습과 같기에 크게 새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비가 오는데 사진을 찍으려니 쉽지 않았다.

 

바람 기운이 약간 있어서 우산관리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좋은 자리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있어 차례를 기다려 사진 찍기가 쉽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가이드는 주변에 가방을 노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가방을 조심하라는 주의를 주고 있기에 여러 가지로 신경이 쓰였다. 역시 세계적인 건축 디자인이라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한다는 말이 실감되었다.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외관이기 때문이다. 저런 건축물이 과연 실용적인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내부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판단은 이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오기 때문에 성당 안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화장실을 다녀와 한 곳에 모이자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성당으로 입장 했다. 밖에서 본 것과 또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자연주의자였던 가우디의 생각대로 많은 빛을 받아들이도록 설계되어 밝았다. 그리고 내부의 기둥은 나무기둥과 가지를 연상할 수 있게 설계되어 마치 숲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되었다.

 

창문은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연상하게 만들어져 있다. 창문이나 제단 등에는 밑그림만 되어 있고 채색이 되지 않은 곳도 많았다. 그러나 완성된 곳에서는 비가 내리는 날인데도 아름다운 빛이 내부를 향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여러 가지 설명을 하였지만 인상 깊었던 것은 정문쪽의 벽에 가톨릭 신자들이 많은 50여개 나라의 글자들이 양각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 우리나라 한글로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라는 기도문이 되어 있는 것과, 김대건 신부의 이니셜이 창문에 표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곳만의 독특한 예수 상도 또한 특별한 느낌을 갖게 하였다.

 

지하에 있는 박물관에 갔다. 그곳에는 가우디가 제작했던 성당의 모형이 있었고, 또한 박람회에 출품했던 성당 건축의 실제를 보여주는 것을 전시하고 있었다. 잠깐 쉬고 있는 동안에 안식구를 아는 사람을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인데 딸과 함께 이곳으로 관광을 왔다가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 것이다. 관광지를 다니다 보면 2,3팀 많게는 5,6팀까지 한국관광객들을 만나긴 하지만 먼 이국땅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데 그런 우연을 만났으니 그것 또한 인연이라 생각되었다. 지하에 있는 박물관에는 가우디의 관도 있었다. 이런 곳에 묻힌다는 것 또한 영광이라 생각되었다.

 

밖으로 나왔다. 성당의 주된 파사드(출입문)3개인데 각각 예수의 탄생’, ‘예수의 수난’, ‘예수 영광이다. 이 중에 가우디 생전에 완공한 예수 수난파사드에 대해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 3개의 파사드의 꼭대기에는 열두 제자를 상징하는 12개의 종탑이 세워지고 중앙에는 예수를 상징하는 거대한 탑이 세워지고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조각이 있고 그 아래로는 골고다의 언덕을 십자가를 지고 오르는 모습,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모습, 예수의 수의를 누가 가질 것인가 상의 하는 모습 등 다양한 내용을 담은 조각 들이 좌우아래쪽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이 조각을 통해 가우디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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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성모상과 소년 조각상 | 여행 2019-05-24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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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성모상과 소년 조각상

수도원 앞에서 내려 수도원을 향해 걸어가면서 보는 수도원 뒤의 바위가 마치 사람을 조각해 놓은 듯 여러 가지 사람의 형상을 닮아 있었다. 수도원 광장에 도착했을 때 바위에 조성된 <산타 조지 조각상>예술의 수난을 설계한 수비락스에 의해 조각되었다고 한다. 수도원 옆 화단에는 네 종류의 기독교 정신을 상징하는 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야자나무는 종려나무라고도 하는데 고난을 상징하며, 사이프러스 향나무는 생명을, 올리브 나무는 평화를 그리고 월계수나무는 부활을 상징한다고 한다.

 

오늘은 관광객이 크게 많지 않아 검은 성모상과 소년의 조각상을 만날 수 있다는 가이드의 말에 말로만 듣던 검은 성모상을 만나게 된다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실내가 복잡한 관계로 성당 옆으로 줄을 서서 5분쯤 기다려 우리 차례가 되었다. 한 사람씩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2층 높이의 계단을 오르고 돌아가자 검은 성모상이 보였고, 그 아래에는 소년의 조각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조각상의 주인공은 큰 병을 앓고 있었는데 소원이 몬세라토 수도원의 에스콜라니아 성가대에 들어가는 것이었다고 한다. 소년의 사연을 알게 된 수도원에서는 단 하루지만 에스콜라니아 성가대원이 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고 소년은 그토록 원하던 성가대복을 입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년은 얼마 뒤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소년의 부모는 아들의 소원이 영원히 이루어지기 위하는 마음에 에콜라니아 성가복을 입은 아들의 조각상을 만들어 수도원에 기증했다고 한다. 안타까운 사연이 있어서 그런지 소년의 상은 어딘지 모르게 우수가 서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드디어 검은 성모상을 만날 수 있는 차례가 되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성모상은 특이하게도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으며, 치유의 능력이 있다고 전해지는 카탈루냐의 수호성인이다. 성 루카에 의해 만들어지고 50년 성 베드로에 의해 몬세라트로 옮겨져 왔다고 한다. 아랍인들에게 강탈당하거나 파괴될 것을 우려해 동굴 안에 숨겨 두었는데, 880년 목동들에게 밝은 빛과 함께 천상의 음악이 들려 빛이 있는 쪽을 따라가니 동굴 안에 이 검은 성모상이 발견되었다.

 

목동들은 이 사실을 가까운 곳에 거주하던 만레사 주교에게 알렸고 주교가 검은 성모상을 옮기려 하자 꼼짝도 하지 않자, 그곳에 작은 성당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몬세라트 수도원 바실리카 대성당 제단 뒤편 2층에 자리하고 있는 검은 성모상은 유리로 보호되고 있지만 오른손에 들고 있는 공은 오픈되어 있어 관광객들은 이곳을 만지고 기도하거나 소원을 빌기 위해 긴 줄을 서게 되는 것이다.


성모상을 대면하고 내려오는 통로 옆에는 사람들의 소원을 비는 촛불을 밝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빌 소원이 많은지 아주 많은 촛불이 타고 있었다. 포르투갈의 성모발현 성지인 파티마 언덕에도 수많은 촛불이 밝혀져 있었는데 이곳 또한 그에 못지 않은 많은 초들이 타고 있었다.

 


바실리카 대성당 앞의 광장에는 포토존이 표시되어 있었다. 어떤 이는 그곳의 기가 가장 세다면서 기감 훈련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계속 들락거리며 사진을 찍기 때문에 차례를 기다리기가 쉽지 않았다. 문을 통해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내부는 별반 특이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한쪽 기둥의 장식이 특이한 조각으로 되어 있었다.

 

내려올 때는 케이블카를 타고 이동하였다. 공중에 매달려 내려오면서 보는 주변의 풍경도 바위산과 어우러져 멋있었다. 특히 저 멀리 보이는 작은 마을들이나 골짜기를 흐르는 물과 봄을 맞아 새잎을 피워 올리는 식물들의 싱그러운 표정들이 정다운 느낌을 갖게 했다. 사람들은 아옹다옹하며 다투기 바쁘지만 식물들은 묵묵히 계절에 맞추어 자기의 일을 하고 있는 모습에서 자연의 질서가 아름다움을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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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세라트 수도원 | 여행 2019-05-2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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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 수요일

 

몬세라트 수도원

사라고사 출발하여 두 시간쯤 달리다 휴게소를 들린 후 다시 한 시간여를 달려 소도시에서 현지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소도시라서 그런지 아주 조용했다. 우리나라처럼 길을 오가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거리는 아주 깨끗했다. 역시 선진국의 시민들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휴식을 한 다음 길을 재촉했다. 한 참을 달리다 보니 왼쪽으로 높게 솟은 바위산이 산맥처럼 이어진 것이 나타났다. 인솔자의 설명이 지금 나타난 바위산 너머에 우리가 찾아가는 몬세라트 수도원이 있다고 하였다. 그곳에는 수도원과 바로셀로나 지역을 설명할 현지 가이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몬세라트는 톱니 모양의 산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해발 1236m의 높이를 가진 바위산이다. 바위산은 1km에 걸쳐 길게 톱날처럼 뻗어 있다. 카탈루냐의 수호성인인 검은 마리아상을 보관하고 있는 베네딕토 수도회의 몬세라토 수도원은 해발 725m의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몬세라토에 도착하니 현지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자그마한 키에 나이가 지긋한 가이드는 반갑다는 인사와 함께 수도원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했다. 9세기 처음 알려진 수도원은 이후 증개축 되었지만 1811년 나폴레옹 군대에 의해 파괴되고 수도사들은 죽음을 당했다. 그 후 19세기 중반이 되어 재건하게 되며 수도사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20세기 초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어 지금은 베네딕토 수도회의 수도원으로 약 80명의 수도사들이 거주하고 있다.

 

설명이 끝나자 잠깐 사진 찍을 시간을 주고 바로 예매한 산악기차 시간이 되어 기차를 타고 몬세라토 수도원을 향해 산을 올랐다. 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도 있지만 기차를 타고 차창 밖으로 보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여 선택된 코스다. 더러는 산길을 걸어 올라가는 수행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현대화된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산을 올랐다. 위로 올라갈수록 먼 곳까지 한 눈에 들어와 경치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산악 열차는 지퍼자크 열차라고 한다. 지퍼처럼 한 땀씩 물려가며 올라가기 때문이란다. 산을 오르는데 약 15분이 걸렸다. 산타마리아 광장 한쪽 벽면에 산타 조르디 조각상이 있었다. 얼굴의 음각을 조각해 어느 방향에서 보던 보는 사람과 조각의 눈동자와 마주치게 되는 조각상 이다. 423일이 산타 조르디의 날이라고 한다. 산타 조르디는 이곳의 수호성인인데, 옛날 용에게 성처녀를 바쳐야 했는데 공주를 제물로 바쳐야 하게 되자 조르디라는 용감한 청년이 용을 죽이고 공주에게 장미를 바쳤다고 한다. 그 뒤로 이 날을 산타 조르디의 날이라고 하여 남자가 여자에게 장미를 받치는 풍습이 생겼으며, 여자는 남자에게 책을 선물하는 날이기도 하단다. 그래서 이 날을 책의 날이라고도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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