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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저
문학동네 | 2021년 09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약자의 역사를 재건하는, 적나라하지만 우아한 문장들. 힘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서 어떻게 그런 치열한 불꽃이 솟을 수 있는지, 혹은 어떤 고통이기에 그런 불꽃을 품게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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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중간중간 역겨운 장면도 있었으나, 기득권의 향취에 무뎌진 목소리를 화자로 둔 것은 날것의 역함을 직접 느끼고 그것이 얼마나 현실과 맞닿아 있는지를 확인하라는 작가의 의도로 여겨 견딜 만했다. 그러나 그의 문체와 글의 짜임은 어딘가 무겁고 우울한 느낌을 내뿜었고, 책을 읽는 동안 삭아버린 분노로 인한 깊이 없는 무력함에 빠져들어 힘들었다. 그럼에도 그의 다른 책인 <작별하지 않는다>를 집어 든 것은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깨어지기 쉬운 것들이 나의 호기심을 미약하게나마 잡아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나는 작가가 쓰는 이야기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다. 약자의 편에 서서 권력자들이 지워간 역사를 다시 써 내려가는 일보다 글을 쓰는 사람이 온 힘을 다해 몰두할 수 있는 일이 있기나 할까. 그렇게 잊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한 명의 자취가 여러 명의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감화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힌 역사가 다시 조각조각 맞추어진다면, 그것보다 의미 있는 일이 어디 있을까. 약자들은 언제나 목소리가 잊히는 것을 두려워하니, 제목에서부터 외치고 들어가는 망각의 거부는 얼마나 큰 힘이 될까.

 

  부끄럽지만,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 아는 것이 단어 한 톨만큼도 없었기에, 처음에는 이 책을 완독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강 작가가 이끌어내는 서사의 힘이 너무나 강해서 평소 책을 보다가 휴대폰을 들어 사건의 전말이나 단어의 의미를 찾아보는 일이 드문 나조차도 관성을 거스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읽은 간단한 사건의 기록은 제주 4·3 평화 재단인데, 당시 혼란스러웠던 시대상을 잘 압축해놓았으므로 사건의 면모를 간단히 확인하고 싶다면 추천한다. 어쨌든, 이렇게 일방적으로 잔인한 학살이 같은 피와 살의 총과 칼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 비참했다. 끝없는 죽음을 반복하는 기억이 살아남은 사람들을 옥죄었다는 것이 너무나도 비참했다.

 

  그래도 분노란 것이 마냥 삶을 갉아먹는 것은 아니다. 분노가 식어 넘쳐흐르던 용암이 검은색 딱지로 덮인 대지가 되면, 그 땅을 딛고 우뚝 서 훨씬 단단해진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 속에는 여전히 붉고 노란빛을 머금은 용암이 주룩주룩 열을 토해내겠지만, 차갑게 식은 땅은 생명이 살아갈 터지가 되리라.

 

  한강 작가는 고통을 견디는 사람들의 고통을 과하리만치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재주가 있다. 그리고 그런 고통은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이 보통은 경험하지 못하는 부류의 것들이기에, 적나라하게 파헤쳐 진 아픔과 핏물은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의 속을 뒤집어놓고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게 한다. 내게는 그러한 첫 고비가 1부의 인선의 봉합 수술 부분이었다. 동시에 감탄하게 되고 마는 첫 부분도 동일했다. "봉합 부위에 딱지가 앉으면 안 된대. 계속 피가 흐르고 내가 통증을 느껴야 한대. 안 그러면 잘린 신경 위쪽이 죽어버린다고 했어(40p)." 이야기의 심부를 꿰뚫는 문장이어서, 주제를 감싸는 핵심을 표현하는 방식이 우아해서, 그리고 앞으로 책을 읽으며 다가올 고통의 힘겨움을 미리 맛볼 수 있어서.

 

  결국,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제주 4·3 사건과 작별할 수 없게 된다. 작별이란 얼마나 편리한 회피인가. 맞서 싸울 용기가 없어서 상대를 위한답시고 돌아서서 잊는다면 정말 편안할까. 살아가는 이유마저 잊어버리고 죽은 자와 다를 바 없게 되진 않을까. 그래서 산송장이 되기 전에, 기억하리라 외침으로써 악몽의 숲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혼자가 아님을 알린다. 작별하지 않는다고 선언함으로써 우리는 감히 공감할 수 없는 고통이 조금이나마 식을 수 있도록 돕는다. 떠나보내는 것을 포기하고 두 눈을 부릅뜨는 순간, 우리가 느끼는 것은 차갑지만 온기를 머금은, 사람을 얼려 죽이는 눈과는 다른 종류의 눈송이 결정들이 이루어낸 함박눈일 것이다. 그 눈은 땅 아래 묻힌 억울한 혼들을 어루만지고, 검게 칠해진, 사람 키를 훌쩍 넘은 나무들을 뒤덮고 이 땅에 새로운 시작을 가져다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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