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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세계의 불화, 그리고 불가능한 열망 | 소설,시 2020-09-30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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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

오라시오 키로가 저/엄지영 역
문학동네 | 2020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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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친 상태로 태어나 양심을 발전시키고, 불행해진다. 그러고는 죽는다."

- Adam Philips, Going Sane에서


아담 필립스의 이 문장이 진실이라면 인간의 본질은 미친 상태, 곧 광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양심, 윤리라는 것, 광기의 억압을 습득함으로써 획득한 것 때문에 불행과 고통으로 살다 죽을 뿐이라고 한다. 인간 삶에서 마주치는 모든 문제는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이 의문은 내게 광기라는 단어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한다. 은폐된 진실의 상징어 같기도 하고, 이를 이겨낸 자들의 기만책략 같기도 하고, 어떤 교만한 지성을 느끼게 된다.

 

죽음이 합리적인가? 사랑은 이성적인가? 결코 합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은 세계를 질서정연한 체계라고, 마치 모두 아는 것처럼 기만하는 데서 인간의 고통은 시작되는 것만 같다.  현실은 비합리적인 것들이 무수히 일어나 인간을 구석구석 에워싸는, 세계는 그 자체로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내게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읽기는 여기서 시작되었다고 해야겠다. 이 세계의 불합리함, 죽음이라는 절망적 유한성에 맞서 삶의 어떤 명확함을 찾아 헤매는 열망간의 대결, 인간 가장 깊은 내면에 울려 퍼지고 있는 이 불가능한 열망의 호소로서.

 

작품 엘 솔리타리오(El solitario)는 세계와 인간 개인 사이의 이러한 균열과 충돌을 강렬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그는 못을 박듯이 수직으로 핀을 아내의 심장 속으로 끝까지 힘 있게 찔러 넣었다. (...)

그녀의 살갗에 오롯이 남은 다이아몬드가 신경 경련으로 인해 한동안 불규칙하게 떨렸다."

- 56, 엘 솔리타리오(El solitario)중에서

 

섬세한 보석 가공으로 신뢰를 받는, 그러나 사업 추진력은 부족한 남자 '카심'과 미모를 무기 삼아 상류계급으로 신분 상승을 꿈꾸지만 현실에 굴복한 여자인 아내 '마리아'와의 엇갈린 행복이 빚어내는 비극을 보여준다 위탁 받은 고가의 커다란 외 알 다이아몬드는 마리아의 소유 욕망을 부추기고 두 사람은 깊은 갈등에 빠진다.

 

남자는 잠자는 아내의 가슴 깊이 다이아몬드를 밀어 넣는다. 결코 끝나지 않을 욕망, 그 물질의 욕구를 영원히 잠재운다. 남자는 인간 삶의 한계, 죽음의 평화가 의미하는 바를 알았을 것이다. 세계와의 불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결핍된 욕망의 화신에게 죽음이라는 잔혹한 운명적 진실을 선사한다. 아찔한 현기증이 나는 이 행위가 결코 잔인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지 않을까? 카심의 살해 행위보다 마리아의 번뜩이는 눈 속에서 빛나는 그 갈망, 나는 이 광기가 더 공포로 다가온다.

 

단어 광기에서 의심을 불러내기에는 키로가가 삭제했던 세 편의 단편 중 그 마지막 작품인 광견병에 걸린 개가 제격인 듯싶다.

 

", 또 시작되었다! 저들은 내가 정말 광견병에 걸리기를 바라기라도 하는지 (...)

정말이지 이건 사는 게 아니다!" - 316, 광견병에 걸린 개중에서

 

마을을 휩쓸던 광견병에 걸린 개들의 울부짖음, 마침내 집에 들어 온 미친개를 몰아내다 다리에 물린 남자의 시간 경과에 따른 아내와 어머니의 반응, 그리고 그 반응에 반발하며 미쳐가는 과정의 이야기다. 이 광기에는 정치적 도덕률인 정신건강이 만들어 낸 재앙, 그 인위적 습관의 세계가 발하는 분리, 죽음의 음습한 냄새가 솔솔 풍겨 나온다. 그리곤 가족, 세계와 맺은 관계의 약속이 허물어 질 때 남자가 절망하며 부르짖는다. 독사들과 거미가 우글거리는 낯선 세계의 두려움. 그가 총을 난사하는 것은 어쩌면 납득할 수 없는 비이성, 불합리의 화해 불가능한 세계를 향한 것이 아니었을까?

 

수록된 소설들은 이처럼 인간의 빈번하게 제어되지 않는 충동에 자신의 의지를 부여하는 비인간화, 개인적 절망과 가족적 비극으로 이끄는 집착을 통해 세계와 인간 영혼의 끝나지 않는 갈등, 그 불화의 실체를 탐사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광기의 진실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그 물질적 정신세계를 거닐고 있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는 게 사실이다. 끊임없이 존재적 결핍의 허기로 내몰리는 환상으로서 욕망의 세계 말이다.

 

아직 아버지 품에서 벗어나지 못한 애송이로군요. (...)

그 많은 재산이 어디에서 났는지 (...) 손님들 주머니에서 훔쳐간 주제에...”

25, 사랑의 계절중에서

 

이를테면 소설집의 첫 번째 작품인 사육제 축제 장면으로 시작되는 사랑의 계절"삶에서 순수한 추억보다 아름답고, 우리를 단단하게 단련시켜 주는 것은 없다." 는 도스토엡스키의 인용 문장처럼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어린 두 연인 '네벨''리디아'의 끓는 듯한, 애달픈 사랑은 어른들, 이미 부와 신분 등 욕망의 질서에 편입된 이들의 방해로 중지된다. 열네 살과 열여덟 살 소녀 소년의 사랑이라는 광기의 첫 대면이 이렇게 지나가지만 이것을 곧 좌절, 결핍의 욕망으로 변질시켜버린다. 즉 자본주의적 욕망의 근원지로서. 진실의 실패, 광기, 그 열정을 잃어버린 세계는 그야말로 삭막함 아니겠는가? 만 페소짜리 수표를 여자의 손에 쥐며 "날 너무 나쁘게 생각지 말아요."라고 이별을 외치는 장면은 정말 씁쓸함의 결정판이다.

 

이졸데의 죽음역시 사랑의 장애물은 신분과 재산이라는 합리주의의 가면을 쓴 자본주의적 가치가 내재화된 인간의 추억담으로 읽힌다. "당신도 같은 장면이 되풀이되는 서막을 봤을 거예요.", 이 반복의 사슬, 여기에 얽매이는 순간 살아있음은 곧 죽음 아닌가? 사랑, 그 광포한 생산에의 열망이 물적 교환의 대상으로 변질되는 순간 결핍의 욕망으로 추락하고 만다. 키로가는 이렇게 어둠에 잠긴 욕망의 세계를 들여다봄으로써 다른 삶의 가능성, 새로운 삶의 방식을 꿈꾸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외에도 강에서 나무를 건져 올리는 이들이란 작품 또한 연장선에서 읽게 된다. 백인이 틀어 놓은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의 선율에 매혹된 원주민 '칸디유' 강으로 떠내려 오는 자단(紫檀)목을 건져 올려 축음기와 교환하는 과정의 이야기다.

 

"혼신의 힘을 다해 쉴 새 없이 노를 저으면서 소리 없는 투쟁을 시작한다. (...)

그의 머릿속은 온통 축음기 생각뿐이었다."

- 198, 강에서 나무를 건져 올리는 이들중에서

 

백인에 의해 교환의 세계, 자본주의적 믿음이 이미 내면화 된 인물은 그 소유의 욕망에 생명을 건, 죽음의 항전에 나서는 것인데, 이 욕망의 광기야말로 자본주의의 본성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천연 꿀 "평범한 삶에 좋은 추억거리를 남기고 싶어" 삼촌의 벌목장이 있는 정글을 찾는 공인회계사 '베닌카사'가 벌집을 발견하곤 게걸스레 꿀을 마시고, 멘수들(Los mensu)의 계약직 벌목 노동자 '카예''포델레이'의 술과 여자와 향수를 자신들의 자유의 갈망과 교환하곤 처참한 중노동의 현장, 죽음의 세계로 향하는 것이야말로 자발적인 복종이라는 자본 순환 고리에 순응한 인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실 광기는 억압하고 억제해서 획득한 것, 결핍의 욕망, 그 오만한 규율이 덧씌운 것 바로 그 자체라고.

 

아마 이 모든 문제의식이 집대성된, 이 소설집의 제목인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종합 세트는 목이 잘리고 선홍색 피가 낭자하게 흐르는 목 잘린 닭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불행이 닥치자 고통스러운 사랑의 불길이 새롭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고결한

사랑의 결실을 단 번에 되찾고 싶은 광적인 욕망에 사로잡혔다."

- 76, 목 잘린 닭중에서

 

이 문장처럼 사랑의 결실은 광적인 욕망에 기초한다. 그런데 이 욕망, 광기의 속성이 변질된다. 첫 째 아이, 둘째 아이 ...그리고 네째 아이까지 그 충만하고 아름다운 생산의 결과가 모두 백치다. 아이들은 짐승처럼 방치된다. 부부의 상대에 대한 태도도 변한다. 생산으로서의 욕망이 결핍의 욕망으로 바뀌는 것이다 다섯 번째 아이는 이렇게 변질된, 즉 결핍 충족의 수단으로서 욕망된 것이다. 백치인 네 아이가 그들에게 하찮은 사물 덩어리가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것이 다행인가? 아니면 불행인가? 네 아이는 부모로부터 해방됨으로써 욕망에 충실한 인간들, 아니 존재가 된다. 태양을 바라보며 짐승처럼 즐거워하는 존재, "닭의 목을 자르고 피를 뽑아내는 장면을 넋을 잃고 바라보는, 시뻘게...시뻘게...."

 

"닭털이라도 되는 양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 닭의 피가 여전히 고여 있는 부엌에서

아이들은 베르티타를 꽉 붙잡은 채, 몸에서 서서히 생명의 기운을 빼냈다."

- 83, 목 잘린 닭중에서

 

달성될 수 없는 프로이트식 욕망이 실천되는 방법은 살해뿐임을 증명하려는 듯한 이 장면은 끔찍함과 당혹감, 어떤 비현실적 느낌에 몸을 떨게 하지만 인간 욕망의 실체, 극복되지 못한 그 퇴행적 진실을 마주했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게 한다. 이처럼 모든 대상적 욕망이 폐기되고 네 아이들이 온종일 바라보는 붉은 벽돌담처럼 하나의 대상에 집중케 하는 편집증적인 욕망은 작품 표류사람들을 자살하게 만드는 배의 우주적 대자연에 몸을 맡긴 채 자기라는 망상적 주체를 놓아버린 인간들의 그 무한한 호흡에 이르러 광기의 도착점으로서의 죽음, 그 생생한 삶의 역동성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 주는 것 같다.

 

"서쪽 하늘은 완연히 금빛으로 빛나고 (...) 황혼녘의 상쾌한 바람이 달콤한 오렌지 꽃향기와..."

- 111, 표류중에서

 

"나는 이내 내 존재가 사라진 것처럼 최면 상태로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 92, 사람들을 자살하게 만드는 배중에서

 

눈과 빛이 만나고 코는 꽃향기와 짝짓는 무수한 육신의 모든 부분들이 저마다 생산적 욕구를 실현하고 있는 표류의 이 장면은 독사에 물려 강을 떠내려가는 한 남자의 다가오는 죽음의 여정이다. 한편 사람들을 자살하게 만드는 배의 유일한 생존자가 들려주는 위의 문장은 이와 조응한다. 불안과 두려움, 결여의 획득을 위한 광기의 결과물로서 죽음이 아닌, 나라는 환상, 거짓 결핍의 환각에서 해방되는 것, 존재 그대로, 수많은 타자, 바깥과의 무한한 교류에 맡겨졌을 때, 죽음은 역설적으로 삶이란 생명성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무엇임을 알려주려는 것만 같다.

 

광기는 존재적 진실에 덧칠해진 위선일지도 모른다. 사랑을 지우고 죽음을 망각케 하는, 이것을 촉발하는 생명의 근원임을 은폐함으로서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혹독한 도덕률의 내면화로서. 그러나 양심의 발전이 고통인 것은 억압된 욕망, 그 결핍으로부터 이지 않은가? 집착과 부단한 욕망 반복의 사슬, 그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은 다시금 사랑과 죽음을 삶의 일상에 복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열정적인 부분대상들이 서로의 흐름 속으로 마구 뒤섞이는 짝짓기의 세계, 역동적 세계로의 회귀로


이 소설집이 내게 결코 잔인함과 공포의 이야기로 읽혀지지 않은 이유이다. 자신들을 짓누르는 것을 신격화하고, 자신의 것을 빼앗아간 것들 속에서 희망의 이유를 발견하려는 이 어처구니없음, 세계에 합리적 이성의 질서를 부여하려는 어리석음의 발견인 것만 같다. 아니, 어쩌면 열망하는 정신과 이 열망을 저버리는 세계 사이의 분리, 그리고 둘을 서로 묶어 놓으려는 모순의 탐사인지도.  삶을 온통 움켜 쥔 욕망의 진실, 인간과 세계의 그 간극의 원인들을 찾으려는, 한편은 무모해 보이는 키로가 자신의 처절한 자기 탐색의 글쓰기 인 것 같기만 하다. (終)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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