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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지만 우울한 뒤끝의 정치 우화 | 소설,시 2021-11-26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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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바퀴벌레

이언 매큐언 저/민승남 역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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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시작하기 전에  '이언 매큐언'은 능청맞게 다음의 문장을 썼다. 순전한 상상과 우연일뿐 결코 특정 존재를 겨냥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  존재들을 '바퀴벌레'란다.   포퓰리즘, 빈곤한 지식을 지닌 대다수의 시민과 여론을 이용하여 불의한 정치 리더가 이끄는 일종의 중우정치(衆愚政治)가 사회를 지배할 때 그 반동성은 가히 혐오스럽고 분노를 야기했을 터이다.  

 

"이 소설은 허구다.  이름과 인물들은 작가가 상상한 것이며, 현존하거나 세상을 떠난 바퀴벌레와 유사점이 있다면 전적으로 우연이다."

 

사실 소설 속 인물들과 상황은 2016년의  영국의 브렉시트(Brexit)와 관련하여 진행되었던 사건과 정치인들을 직접적으로 떠올릴 만큼 유사하다. 문장의 천연덕스러움이 더욱 조롱과 야유의 강렬함을 더한다.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나 벌레로 변한 자신을 발견하는 '카프카'의  「변신」 속 '그레고르 잠자'의 모티프를 그대로 차용한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그날 아침 영리하지만 심오하지 않은 짐 샘스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거대 생물체로 변신해 있었다."   -13쪽

 

그런데 카프카의 벌레와 매큐언의 바퀴벌레는 변신의 외형(신체)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카프카의 변신은 외형 자체가 바뀐 완전한 변신이지만 매큐언의 바퀴벌레는 인간의 몸을 빌린 바퀴벌레다. 즉 내적으로만 바퀴벌레라는 설정이다. 잠에서 깨어난 짐 샘스는 영국의 총리다. 다시 말해 바퀴벌레인 인간이란 얘기다.  바퀴벌레의 라틴명 '블라토레아'는 "빛을 피하는 생물"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어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종(種),  어둠이 지배할 때마다 번성(123쪽)"하는 족속이란 흉물스런 속성을 주인공과 그 집단에게 씌운 것이다. 

 

 

소설의 제재는 '시계방향주의''역방향주의'라는 황당한 관념간의 갈등과 싸움이다.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지만 짐 샘스가 이끄는 보수당이 밀어부치는 역방향주의는 수구보다 더한 그야말로 반동적 행태의 이름이랄 수 있다.  돈(화폐)의 흐름을 완전히 역전 시키는 체제로의 전환,  현존하는 경제 개념을 완전히 거꾸로 뒤집는 해괴한 정체이다. 소비자가 백화점에서 상품을 구입하면 백화점은 소비자에게 상품가격을 지불하여야 한다.  넘쳐나는 돈으로 파운드화의 가치는 곤두박질 칠 것이지만 강력한 수출을 통해 파운드를 타국에 무더기로 안길 수 있으니 화폐가치는 안정화 될 것이란다.  역방향주의, 하나의 국가만이 실천해서 바뀔 수 없으니 동조하는 국가를 확보하고 확대해야 한다. EU(유럽연합)의 수장국인 독일의 여성 수상은 짐에게 반문한다. 바룸(Warum)? 왜? 왜 그래야 하는데?

 

영국인의 국수주의와 고립주의적 발상이 품고있는 섬나라 근성의 오래되고 터무니없는 자만심을 희화(戱化)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우스꽝스런 개념이 이처럼 한 국가의 정체성이 될 때,  이 어리석고 우매하며 고집센 대중의 심리에 영합하여 권력을 차지하고 유지하려는 어둠의 세력들은 환호작약(歡呼雀躍)하기 마련이다. 우리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섬나라, 극우화된 일본의 대중과 정치 생리가 너무도 닮아 있음에 한 문장 한 문장을 예사롭게 넘기지 못한다. 

 


【어둠을 지향하는 수구 무리가 오염시키는 장소라는 점에서 어둡게 찍었다.】

 

한창 역방향주의를 관철하려 장관들을 단속, 규합하고 있을 때 프랑스 해역에서 프랑스 호위함과 영국 어선의 충돌로 어선의 침몰과 함께 선원 모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호위함의 각종 첨단 장치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사건이지만 짐 샘스는 이 사건을 정치적 어려움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어려운 시기에 국가는 확실한 적을 필요(74쪽)"로 한다면서 프랑스 군함의 잔인한 살상 행위로 몰고간다. 왜인(倭人) '아베'를 비롯한 극우화된 일본 자민당 정권의 행태와 똑같다.  짐 샘스는 "대중의 비이성적 분노를 자극해 국수주의 물결의 폭풍(73쪽)"으로 역방향주의로의 전환 무드를 다진다.

 

트위터, 유튜브, 페이스북 등에는 "페로몬적 무의식의 원시형태"가 지배하게 되고, 민심에 정교하게 맞춰진 짐의 더듬이가 교활한 성공을 거둔다. 마치  2021년 11월 지금, 한국 사회를 장악한 수구화된 언론과 정치 검찰의 촉수가 대중에  영합하는 모양새와 한 치의 차이도 없는 판박이인 것 같다. 역방향주의는 한 국가만이 할 수 있는 체계가 아니다. 짐 샘스는 미국의 포퓰리스트 대통령에게 넌지시 역방향주의가 당신의 주머니를 천문학적 규모의 화폐로 두둑하게 채워줄 수 있음을 제안한다.

 

2016년이 무대이니 도널드 트럼프가 모델임은 삼척동자도 알아 볼 수 있다. 미국 대통령 '아치 터퍼'는 유치찬란하고 기억에 남는 적절한 단음절어로 조합된 트윗을 남긴다.  "꼬맹이 실비 라루스, 영국 함선을 침몰시키다. 나빠 BAD!",    프랑스 대통령을 조롱하며 어선을 함선으로 둔갑시키고  BAD에 느낌표를 달아 어린아이의 지능정도에도 침투 가능한 어휘로 선동적 문장을 쓰는 인간이 그 밖에 누가 있을까? 세계가 중우정치의 혼돈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결국 지성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인간을 대중이 사랑하게 될 때 그 사회, 국가, 세계는 문명의 후퇴와 정치적 퇴락이 만들어 내는 고통이 어리석은 대중의 몫으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원자로가 스스로 열을 만들어 내듯 신문 지면이라는 틀에 갇혀 진실을 생성해냈다."   -100쪽

 

짐 샘스는 자신의 이익의 터전이 될 정책과 권력을 공고하게 하기 위해  정치적 적을 제거할 음모를 실행한다. 청부 살인을 떠올려보지만 보다 '순화된 형태의 살인 전략'을 생각해낸다.  촘촘히 짜인 연속적 거짓말은 진실이 된다.  조중동을 비롯한 황색 미디어들, 하다못해 담론가라 자칭하는 기회주의자들의 블로그와 각종 소셜 미디어가 앞장서서 행동하는 작금의 한국사회 여론 몰이 방식이 지속해서 성취하는 진실의 실체일 것이다. 짐 샘스의 측근 각료인 여성 장관인 '제인'은 역방향주의를 거부하는 외교장관을 살해하기로 합의한다.  15년전 외교장관의 비서 시절 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거짓 고백을 언론에 흘려 특종 기사로 만들어내고 언론사들은 뒤질세라  퍼 날라 진실로 둔갑시키고 유망한 정치인의 생명을 끊어놓는다.  "사악하고 무자비하며 냉혹한 거짓말"이  대중사회의 인식을 지배할 때 그 사회는 어둠 속에서 맥을 추지 못한다.  오늘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희롱과 괴롭힘, 외설적 놀림, 언어 폭력으로 이어진 부적절한 신체 접촉(99쪽)"에 시달렸으나 당시의 위계적 질서 상태에서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고 거짓 고백의 문서를 <가디언>지에 넘기는 것이다. 그리곤 진실의 울림을 보다 크게 조장하기 위해서  "실제 강간은 없었다,"고 굳이 애처로움을 더하는 문장을 써넣기까지 한다 "실제 일어났건 아니건, 당연히 일어날 만 했고, 쉽게 일어날 수 있으며, 그래서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었다(101쪽)."고 대중, 언론, 검찰은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된다. 정치 생명은 끝났다. 대중이 바퀴벌레와 영합하여 대의 민주주의의 가장 끔찍한 실체를 만들어 낸다. 

 

짐 샘스를 비롯한 수구집단, 즉 인간의 몸을 빌려 쓴 바퀴벌레들은 역방향주의가 추구하는 바를 지극히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일반 대중을 더 가난하게 만들면 자신들은 번성할 것!(123쪽)"이라는 점이다. 바퀴벌레는 인간 파멸에 필요한 전제 조건들을 그 어떤 존재보다 많이 알고 있다. 3억년 전부터 지구를 지배해 왔으니 말이다.  "전쟁, 지구 온난화, 고착화된 계급, 부의 집중, 뿌리깊은 미신, 루머, 분열, 과학과 지성과 낯선 이들과 사회적 연결에 대한 불신(123쪽)"을 지속적으로 야기하면 되는 것이다. 오물과 불결함을 포용하는 곳에서 힘을 키우는 바퀴벌레의 구역질나는 체질과 생태가 정치를 장악할 때 그 귀결은 너무도 명확하다.

 

영국의 브렉시트를 빗대 정치 세력의 보수 반동화와 이기적 탐욕에 더욱 극악하게 집착하는 자본주의의 충동, 그리고 갈수록 우민화되는 대중에 대한 신랄한 풍자이다.  이언 매큐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정치적 환경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대한 삶의 행위 자체인지를 드러내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삶의 환경에 변질이 오기 시작하면 동시에 우리네 대중의 삶 또한 변화를 강요 받게 될 것이다.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언론에 길들어 자기 삶의 주체성을 망각하면 어느 순간 그렇게 권력을 획득한 집단이 목에 칼을 들이밀 것이다. 네 자유를 내놔라!  네 입을 닫아라!  권력을 참지 못하면 너희들에게는 가난과 핍박과 죽음만이 기다리리!라고 말이다. 누구의 몸 속에 바퀴벌레가 들어있는지 혜안을 갖출 때이다. 재미와 예리한 통찰을 함께 선사하는, 유쾌하지만 우울한 뒷맛을 남기는 위대한 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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