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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자연의 작가, 선총원의 가식 없는 생명의 글을 읽으며 | 에세이,평론 2023-01-23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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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

선총원 저/이권홍 역
어문학사 | 2015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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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총원의 글을 읽게 된 동기는 출판사 첵세상에서 간행된 동북아, 니체를 만나다에 수록된 루쉰과 선총원의 니체 해석이라는 수원가오지안후이(高建惠)’교수의 논문 덕분이다, 중국 문예비평가 주광첸(朱光潛)’중국을 대표하는 작가는 루쉰과 선총원 밖에 없다.”며 중국현대문학 최고의 작가라 칭송하기도 했다.

 

1, 선총원(沈從文)은 누구인가?

 

1988년 노벨문학상 최종 심사에 올랐으나 그의 사망으로 수상자가 되지 못했음을 밝힌 노벨문학상 심사위원 고란 말름크비스트의 발표는 뒤로하더라도 루쉰과 나란히 거론되는 대작가가 왜 대중에게 그토록 알려지지 않았던가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해 보자. 그는 문학의 정치와 상업의 종속에 반대함으로써 중국공산당 정권에 의해 기녀 작가로 매도되고, ‘반동 작가로 분류됨으로써 1978년 복권될 때 까지 그의 이름과 작품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금지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한편 그의 생애 80여 편의 작품집을 남겼으나, 복권 이후 그는 필()을 꺾고 역사연구원으로 1988년 생()을 마감했다. 그의 사망 이후인 1990년대 되어서 비로소 작품 평가가 새롭게 이뤄지고 잠깐의 열풍이 불긴 했으나 그의 중국현대문학에 대한 업적과 영향, 나아가 그에 대한 연구는 미흡한 채로 남게 된  실상임이 안타깝게 전해지고 있다.

 

가오지안후이는 선총원을 “1920년대 후반 중국에서 1차 니체 붐이 퇴조하던 시기에 새로운 시각에서 니체에 진입한 현대 문학의 대가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루쉰의 냉철한 문학 스타일과 판이한 시적 자연의 작가로서 니체의 초인(超人)을 고립주의와 개인 중심주의로 수용하였으며, 고독주의에 대한 긍정적 관점을 유지했다고 해석한다. 실제 10년여에 이르는 대학(칭다오와 베이징)교수 생활을 제외하곤 체제 밖에서 살며, 고향 샹시(湘西) 지역을 비롯한 원시 자연의 생명력과 자유로움을 가식 없이 원초적으로 유지하는 현대문명에 물들지 않은 자연의 변방지역을 심미적 예술의 근거지로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로부터의 도주와는 다른 것이었다. 선총원은 적당한 외로움을 유지해야만 독립적인 사고와 깊은 인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 고독주의에 대한 긍정으로부터 초인을 발견할 수 있다는 신념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되고 있다. 본질은 생명을 긍정하는 데 있으며, 생명의 본질은 강력한 의지이며 강력한 의지는 디오니스 정신이 개조된 생명의지다.”라는 비극의 탄생에 기초한 그의 문장이나, 아침놀을 연상케 하는 말인(末人)들의 우매함에 대한 비판은 그가 중국인들의 정신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으며,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 가에 고뇌의 투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총원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집으로 변성(邊城), 장하(長河)가 있다고 하지만 국내에는 그의 작품집이 소개된 것이 없다. 변성은 문명의 오물에 오염되지 않은 샹시(湘西) 땅에 사는 사람들의 얽매이지 않은 생명력을 말인(末人)과 대조적인 초인(超人)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고독한 캐릭터들이 끊임없이 순환하는 운명의 반복과 순환을 거듭 묘사함으로써 영원회귀를 반영하는 니체적 작품의 전형이라 얘기되고 있다. 아무튼 선총원은 루신의 니체 수용과는 달리 미적 예술의 문인으로 니체를 해석함으로써 중국화한 대표적 문인이라 한다. 그의 문학 세계를 폭넓게 대할 수 없는 내 언어능력이 아쉽기만 할 따름이다.

 

 

 

2.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 선총원 단편집으로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를 표제로 한글 번역된 이 책은 선총원이 어머니의 병환 위급 소식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병문안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마주하는 샹시(湘西)지역의 변화를 아내 장쟈오러(張兆和)’에게 그 변모를 알려주겠다는 약조에 따라 쓴 편지글을 모아 1936년에 출간한 샹시(湘西)행 잡기를 옮긴 것이라고 역자는 설명하고 있다.

 

기행문 같기도 하고 편지글 같기도 하며, 문학적 향취 짙은 에세이이기도 한, 그런가하면 단편 소설이자 비평적 르포기사이기도 한 1936년에 작품집으로 발간된 이 글들에는 향토색이 짙게 배어있으며, 칠백 리 뱃길을 따라 마주하는 자연과 마을의 풍광과 인간들에 대한 그의 시선은 문명에 물들지 않은 자연미와 인간미, 바로 그것인 것만 같다.

 

표제작인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는 뱃길에 오르기 전 샹시 우링(武陵)의 오랜 옛 친구와의 만남, 그 변치 않는 우정의 깊이를 들려준다. 17년만의 귀향에서 만남, 한적하고 정갈한 여관 주인이 되어 서예와 골동품을 애호하는 풍아한 사람이 된 친구가 선총원을 맞이하는 말은 그야말로 인간미란 무엇인지를 대변한다. , 정말로 네가 보고 싶었다고!”, 환하게 팔을 벌려 친구를 껴안는 모습이 그려지는 듯하다.

 

그리고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의 언어들은 격식과 모든 가식을 걷어낸 토속적 속어들로 정감이 물씬 묻어난다. 이런 개같은 경치, 그야말로 그림이군!”, 아취(雅趣)와 속취(俗趣)가 뒤섞인 감탄사를 내뱉는 허식 없이 친구를 맞이하는 친구의 말은 운치가 백출하고 유머와 진지함이 섞여 창강(長江)의 흐르는 물처럼 계속된다. 도시의 부패한 말인들과 달리 초인의 면모란 무엇인지로 글을 여는 작가의 뜻을 읽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어지는 타오위안((桃源)과 위안저우(沅州)에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 일컫는 바로 그곳이다. 신선이 사는 이상향, 그곳은 옛날 진()나라가 쇠락하고 야기된 변란을 피해 은거한 유민들이 일군 마을로서 우링(武陵)의 어부가 발견한 곳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에게 깊은 환상을 준 그곳, 타오위안((桃源)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신선이라 어느 누구도 생각지 않는다며 문장을 연다.

 

그곳에는 뒷강(後江)이라 불리는 기녀들이 줄줄이 늘어서 군정(軍政)각계의 사람들을 위로하고 여행객을 사로잡아 번 돈에 꽃세를 받아 지역 행정과 보안에 보충한다며, 기녀들의 쓸쓸한 일생에 담아 삶의 곤궁함과 피로함에 대한 연민을 잔잔히 풀어 놓는다. 도화원기를 읽은 풍아한 상류 사람들은 아름답고 그윽한 정취를 찾아 타오위안에 찾아들지만, 신중하지 못한 이들은 병원을 찾아들게 된다며 은근히 지배계급의 위선을 슬며시 건네며 뒷강 기녀들이 그들보다 더 도덕적이라고 무산계급의 신산한 삶을 옹호, 위무하기도 한다.

 

칠백 리 장강을 세 사람의 뱃사람이 젓는 작은 배를 타고 그 뱃길과 여울의 난폭함에 따라 정박한 지역의 삶의 형상들을 묘사하며 그는 오물에 오염되지 않은 땅에 사는 사람들의 얽매임 없는 생명력을 찬양한다. 아마 이러한 자연의 생명력, 그 활력을 강하게 묘사하는 글로서 야커웨이의 밤은 그 순수한 인간들에 대한 가장 멋진 관찰이며 깊은 애정의 시선을 가장 잘 녹여낸 글일 것이다.

 

강을 따라 줄지어 산 중턱에 지어진 조각루들, 이 조각루의 삶이 들려주는 격정적 신음 소리와 치밀어 오르는 뱃사람들의 억제하지 못하는 욕망과, 욕을 해대며 강기슭 조각루로 걸어가는 발걸음 소리는 자연 성욕의 자유로움으로 가식 없이 원초적 생명력의 활력이 시적 정취에 묻혀 어떤 추함도 없는 아름다움의 정경으로 마음에 깃든다. 젊은 청년 뱃사공과 조각루 여인과 하루 밤의 운우지정, 그리고 그네들의 사랑의 담화가 작가의 상상력에 기대 문학적 언어가 되어 들려진다. , 이 자연의 활력을 품은, 생명의 문장들로 이루어진 10여 편의 글들을 읽는 것은 지금 도시적 삶의 메마름에 안절부절 하는 우리네에게 다시금 니체의 자유인, 그 초인의 세계로 안내한다.

 

현대 도시인의 노예적 병색에 깊게 물든 인간들의 구경꾼적 관점, 즉 타자에 대한 무감각과 자기편익에 골몰하는 중국인의 자기반성을 촉구하던 그의 소설들, 목이 잘리는 혁명부부의 광경으로부터 동정심이란 인간적 공감은 오간데 없이 고작 망나니의 칼질이 멋져 그 직업의 장래가 유망하리라 생각하는 인물을 그린 신여구(新與舊), 변성(邊城)의 주인공 추이추이를 읽어 볼 수 없음이 계속 아쉽다. 그나마 이권홍 교수의 번역으로 선총원의 일면을 접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지금 어느 누가 익숙하지 않은 중국 문인의 책을 찾을 것인가라는 우리네 독서계에 대한 현실적 자조의 목소리에 십분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현실의 통속을 벗어나 앎에 목말라하는 독자들이 항상 존재하고 있음을 도외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시민의 앎에 대한 희구를 반영하는 출판계의 숙고와 노력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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