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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에서 온 건반 위의 시인 | yes24 서평단 리뷰 2021-07-0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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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쇼팽

김주영 저
arte(아르테) | 2021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피아노를 통해 모든 열정을 불살랐던 피아노의 시인 쇼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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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하면 피아노 시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녹턴, 프렐류드, 폴로네즈, 즉흥곡, 왈츠 등 수많은 피아노곡을 떠올리게 된다. 세계 3대 음악콩쿠르 중 하나인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쇼팽을 기리기 위해 1927년에 시작해 5년 주기로 열리는데 2015년 제17회 콩쿠르에서 조성진이 21살의 나이로 우승을 차지했다. 사실 쇼팽의 많은 곡을 접했으나 오히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은 친숙하지 않았던 내게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우승한 조성진 덕분에 좀 잊고 지냈던 쇼팽의 음악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클래식 클라우드가 안내하는 쇼팽의 발자취를 따라 폴란드,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 스페인, 영국으로의 여행을 통해 전해질 쇼팽의 일생은 어떨지 읽기 전부터 설렜다. 지은이 김주영은 현재 피아니스트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KBS 클래식 FM, KBS 음악실을 진행 중이며, 대중 강연과 칼럼 집필 등을 부지런히 하고 있다. 피아노를 전공한 작가가 전해주는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쇼팽의 일생

1810년 프레데리크 쇼팽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서쪽으로 약 46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마을인 젤라조바볼라에서 프랑스인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 둘째로 태어나 생후 7개월쯤 바르사뱌로 이사를 하게 된다.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던 쇼팽이 천재성을 드러내자 음악 전문가에 개인지도를 받게 되었고 7살에 첫 작품을 발표한다. 아버지는 아들이 전문 음악가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나 아들이 음악가의 길을 가겠다고 결정이 난 후로는 적극적인 지지를 해주었다. 아버지가 프랑스어 교사로 상류층 자제들을 가르쳤기에 쇼팽도 상류층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고 그 친구들을 통해 시골 영지를 드나들며 시골의 춤과 노래를 접하게 되는데 이때 받았던 깊은 인상이 그가 훗날 타향에서 조국 폴란드에 대한 애착의 하나로 폴로네즈나 마주르카 등을 작곡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바르샤바 음악원을 졸업하기 전 친구들과 빈을 방문하고 데뷔 연주회를 열어 성공한 그는 졸업 후 오스트리아 빈에 자리 잡으려 했지만 1931년 빈에서 열린 연주회에서 호응을 얻지 못해 빈을 떠나 다시 폴란드로 돌아가고자 했다. 하지만 바르샤바가 러시아에 의해 함락당하며 그는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프랑스 파리로 향했고 죽기 전까지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 파리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1832년 첫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1835년 파리음악원 무대에 올라 연주자로 정점을 찍는다. 독일 드레스덴에서 친구의 여동생 마리아 보진스카를 만나 청혼을 하지만 그의 건강이 걸림돌이 되어 마리아의 부모님 반대로 결국 이 두 사람의 사랑은 결실을 보지 못한다. 이후 쇼팽의 아픔 몸과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연상의 여인 상드와 세기적인 연애를 시작하게 된다. 쇼팽을 만나기 전 많은 남자와 염문을 뿌렸던 상드는 쇼팽과 사귀던 9년간 동안에는 어머니처럼 쇼팽을 보살펴 주었다. 쇼팽의 좋지 않은 건강상태가 수시로 그의 발목을 붙잡았지만,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유지하며 작곡을 했으며 1940년대엔 피아니스트로서도 작곡가로서도 완벽하게 인정을 받는다. 프랑스와 영국을 제외하고 전 세계에 걸친 판권 계약도 하며 자신의 음악을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마련한다. 1847년 상드의 딸 솔랑주의 결혼문제가 얽히면서 상드는 쇼팽이 솔랑주의 편을 들어준 거로 생각하며 그 둘의 9년간의 연애는 종지부를 찍게 된다. 쇼팽은 주변 지인들의 도움으로 생활을 해나가고 영국에서도 인정을 받게 되지만 결국 그가 앓고 있던 폐결핵의 악화로 18491017파리에서 서른아홉 살의 나이로 사망한다. 그의 유언대로 심장은 조국 폴란드에 묻히고 심장이 적출된 시신은 생마들렌성당 지하 납골당으로 옮겨졌다.

 

 

쇼팽과 상드

그의 음악 인생에서 상드와의 연애는 단연코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고 지금도 그 둘의 사랑이 회자되고 있다. 쇼팽이 처음 상드를 봤을 때는 호감을 느끼지 않았지만 상드는 쇼팽을 자신의 남자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고 한다. 쇼팽이 마리아 보진스카와 결혼하지 못해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던 그의 외로움을 틈타 상드가 그의 마음을 얻게 되고 그 둘의 사랑의 도피 여행이자 쇼팽의 요양을 위해 스페인의 마주르카 섬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보수적인 사람들이 모인 그곳에서 그 둘의 관계에 대해 기이하게 비춰지며 쇼팽이 결핵이라는 진단을 받자마자 쫓겨나듯이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자 그곳에서의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심리적 불안과 육체의 고통 속에서도 그의 음악적 영감과 창작력은 더 빛을 발하는데 쇼팽의 대표작 <프렐류드, OP.28>도 이 당시 작곡한 것이다. 24개의 소품들중 가장 유명한 15빗방울은 전곡중에 가장 길고 이 프렐류드 감상의 전환점이자 중심곡이다. 잔잔한 논턴풍이나 처음부터 끝까지 중단 없이 반복해서 울리는 8분음표가 마치 비오는 낙수처럼 들리는 곡이다. 자신들에게 음식을 팔지 않아 18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장을 보러 간 상드와 그의 아들 모리스가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는 않고 폭우가 쏟아지자 쇼팽은 이들이 혹시나 폭우에 잘못된 것은 아닌지 아니면 자신을 버리고 멀리 떠나 돌아오지 않는 것이지 불안해하며 이 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p.145~146)
피아니스트 한스 폰 뷜로(리스트의 둘째딸 코지마와 결혼했으나 코지마가 바그너와 외도를 하며 이혼을 한 인물)와 알프레드 코르토가 이 프렐류드 전곡에 표제를 붙였다. 전곡을 모두 감상하는데 참고를 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4, 15번을 좋아하고 가장 많이 들었었는데 이번에 이 쇼팽과 함께 여행하면서 이 프렐류드 전곡에 대해 이 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동을 할 수 있었다. 피아노 하나로 모든 감성을 끌어낼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폴란드 출신의 미국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쇼팽은 프렐류드 하나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고 해도 불멸의 존재가 되었을 것이라 확신한다라고 했으며, 소설가 앙드레 지드는 가장 작은 소품이라고 해도 그 안에 아름다움의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를 지니고 있다라고 평했다. (P.143) 

상드가 유산으로 물려받은 저택이 있는 노앙과 파리를 오가며 쇼팽은 많은 작품을 작곡했다. 상드는 예측 불가능한 초봄 날씨 같은 성격에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웠던 쇼팽을 병든 아들을 돌봐주는 어머니처럼 정성으로 보듬었다. 상드에게 이미 자식이 둘이나 있었고 많은 남성과 사귀었고 남장을 하고 담배를 피웠던 상드와 연약한 연하였던 쇼팽의 연애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파리에서 그들은 각기 다른 집을 구해 생활했다. 그들에게도 사랑이 식어가는 것은 피해갈 수 없었는지 상드가 발표한 소설에서 이미 그들의 끝을 알리는 신호탄이 쏘아졌다. 결국, 상드 가족간의 불화에 대해 정확한 사정을 몰랐던 쇼팽이 그녀의 딸 솔랑주의 부탁을 들어준 것에 크게 실망한 상드가 선택한 이별로 둘 사이는 끝이 나버린다. 우연히 한 번 만난 것 외에는 쇼팽이 죽는 날까지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상드가 떠난 자리에 쇼팽을 짝사랑하던 제인 스털링이 대신해 그의 마지막까지 함께 했으나 쇼팽의 사랑을 얻지는 못했다.

 

들라크루아가 그린 쇼팽의 초상화(왼쪽), 오귀스트 샤르팡티에가 그린 샹드의 초상화(오른쪽)

 

쇼팽의 경쟁자 리스트

파리에서는 낮에는 귀족 자제들의 피아노 개인지도를 하고 밤에는 파티를 즐겼다. 경제적으로도 아직 완벽한 성공을 이루지 못했지만, 쇼팽은 최신 유행의 옷을 사 입고 최고급 향수를 뿌리는 등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렸다. 그런 어느 날 쇼팽의 최고의 맞수인 리스트의 연주회가 대성공을 거두며 경제적인 이유에서든 경쟁의 의미에서든 상드는 쇼팽의 연주회를 기획한다. 워낙 둘의 음악적 스타일이 달랐기에 리스트의 존재가 주목받자 쇼팽이 설 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워낙에 예민한 성격의 쇼팽은 사실 연주회로 사람들 앞에 서는 것에 대해 신경질적으로 예민해지곤 했지만, 쇼팽의 곡들로만 구성한 1841년의 이 연주회는 대성공을 거두며 프랑스 뮈지칼확신을 가지고 진실된 작품을 통해 빚어내는 경쾌함과 달콤함의 피아니즘이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독창성을 지녔다는 평을 내놓았다. 리스트는 쇼팽의 음악과 연주에 대해 많은 미사여구를 동원해 평가했지만 정작 쇼팽은 그런 리스트를 좋게 평가하지 않았었다. 리스트는 쇼팽의 전기를 처음으로 쓴 사람이기도 하.

 

그는 수없이 다채로운 뉘앙스로 뭉친 사람이었다. 그 뉘앙스들은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 서로를 은폐하기도 하기 때문에 한 번에 해독하기 불가능했다

- 프란츠 리스트, <내 친구 쇼팽>

 

리스트는 폴란드로 연주회를 가서 쇼팽의 아버지를 만났었고, 아버지의 장례식이 초정받지 않았음에도 찾아와 애도를 표했다고 하니 어쩌면 쇼팽보다 더 인간적으로 경쟁자에 대한 예의를 갖춘 성숙한 인물이었다고 여겨진다.

 

마주르카

쇼팽하면 폴란드 민속춤의 리듬을 담은 마주루카를 빼놓을 수 없다. 쇼팽의 마주루카는 단순한 민속 음악의 원형에서 벗어난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모습을 매력적인 화성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놀라운 것은 피아노 하나로 듣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범위가 경이적이라는 사실이다. 적절한 반음계와 교묘하게 쓰이는 템포루바토를 보여주는 동시에 유대인들이 두드리는 타악기와 종소리를 연상하게 만드는 기술은 쇼팽의 작품들 가운데도 보기 드물 만큼 탁월하다 (P.191)

사실 민속음악이라는 생각에 나 또한 마주르카 곡들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책을 읽으며 듣게 된 마주르카는 춤 곡이라 정의 내릴 수 없을 정도의 묘한 느낌을 얻었다.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실황과 호로비츠의 연주를 비교해 들어보니 같은 곡의 연주가 색다른 두 곡으로 다가와 비교하며 감상했던 것 또한 기억에 남는 명연주 장면이었다. 이 책을 통해 나에게 주어진 숙제가 있다면 그동안 선입견으로 듣지 않았던 쇼팽의 마주루카 곡들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자는 다짐도 해보았다.

 


 

클래식 클라우드가 전하는 쇼팽은 비록 몸도 마음도 건강하지 못했지만, 그가 피아노를 통해 자신의 모든 감정을 쏟아내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살랐음을 알게 되었다.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 더 열정을 불태우면 좋은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그런 고통을 그냥 고통으로 끝내지 않고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그는 진정한 예술인이었다. 그의 현실에서 이성에 대한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거나 큰 상처를 남겼다면 그의 음악은 그의 사랑을 배신하지 않았다. 그의 생전에도 사후에도 그의 음악을 이토록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는 음악 사랑은 성공했다고 말하고 싶다. 젊은 나이였긴 하지만 그의 죽음의 순간에도 그를 아끼던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으니 그 또한 어쩌면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결코 버림받은 사람이 아니었다.

 

피아노를 취미로 배우던지 전공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도 사실 쇼팽의 피아노곡은 쉽지 않은 곡이다.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울 당시 내 손도 그렇게 작지 않은 손이라 여겼는데 손가락이 좀 더 길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쇼팽의 곡들도 한몫했던 기억이 있다. 뭐 손가락만 길어진다고 실력이 좋아지는 건 아니지만 그 당시는 긴 손가락에 대한 소망을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어린 시절의 추억도 떠올리며 쇼팽과 함께한 시간이 오래도록 가슴속에 머물 듯하다. 역시 클래식 클라우드가 안내하는 쇼팽의 일생을 따라간 이 여행은 실망을 주지 않았다. 이러니 다음엔 어떤 인물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이다.

지금 이 리뷰를 쓰는 동안에도 나는 쇼팽의 음악을 함께 한다. 아마도 귀에 익숙했지만 제목을 몰랐거나 작곡가가 누구였을지 몰랐던 피아노곡에서 쇼팽의 이름을 무수히 많이 발견하게 되더라도 그리 놀라지 말길 바란다. 그만큼 쇼팽은 우리와 오래도록 함께 해 왔다. 매일 짧은 시간이나마 쇼팽의 건반 위의 시와 함께 커피 한 잔의 시간을 가지며 마음의 위로를 받는 분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리뷰를 마친다.

*yes24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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