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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 개인 리뷰 2022-01-23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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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은희경 저
문학동네 | 1998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더 이상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던 12살 진희는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어린 시절의 동굴에 갇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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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 이후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한 진희가 성인이 되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를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진희를 데려가려고 찾아온 아버지를 따라 새어머니와 이룰 가정에서 자란 진희는 어떻게 성장했을지 궁금했다. 더 이상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라고 했지만 삶의 희망을 품고 살지 않을까란 나의 실낱같은 기대가 무색하게 역시나 진희의 마음엔 온기란 것이 없었다.

 

삶을 불신하기 때문에 늘 불행에 대한 예상을 하고 그 긴장을 잃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이 겉으로는 강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나타날지 몰라도 실은 나의 가장 비겁한 면이다. 어떤 일에 자기의 전부를 바친다면 그것만으로 그의 삶은 광채를 얻는다. 하지만 나는 내 전부를 바친 일, 그 끝에 잠복하고 있을지도 모를 파탄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언제나 나 자신의 삶까지도 관객처럼 거리 밖에서 볼 수 있게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p.44~45)

 

지방 신설 전문대학교 교수인 30대의 진희는 이혼 후 여러 애인을 동시에 사귀며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연애를 하고 있다. 애인이 셋 정도는 되어야 사랑에 대한 냉소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이야기의 시점에서 만나고 있는 남자는 두 명이다. 한 명은 동갑에 대학 동문이며 독신주의자인 대학교수 현석이고 다른 한 명은 연하의 유부남 기자 종태이다. 현석은 이복동생이 지독히 짝사랑했다가 마음을 접기 위해 프랑스로 떠났었기에 동생의 첫사랑을 몰래 만나는 모양새를 갖추고, 종태는 결혼 전 진희를 만났었지만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와 결국 결혼하고 지금까지 만남을 유지한다. 진희가 임신을 하게 되면서 독신주의자인 현석은 진희와 결혼을 생각하지만 결혼을 원하지 않는 진희는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른 아이를 낳아 홀로 키우는 것은 자신이 없어 임신 중절 수술을 받는다. 이런 결정을 혼자 한 진희에게 실망하면서도 현석은 진희와 결혼을 원하지만 진희는 거절하며 그와의 관계를 정리한다.

 

운명적 사랑이나 특별한 존재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은 현실을 쉽게 받아들인다. 최상의 것을 찾아내려는 희망이나 적극성이 없기 때문에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다. 단지 가능한 것에 대한 성실함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내게 허락되지 않았음이 분명한 행복을 추구하다가 절망하기보다는, 아예 그 행복에 의미를 두지 않는 쪽으로 생각해버리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p.142)

 

『새의 선물에서도 정상적인 남자는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의 냉혹함을 잘 표현했다면 이 책에서도 진희를 둘러싼 남자들 중 정상축에 속하는 남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나마 현석이 가장 정상에 가깝지만 출생의 아픔이 있고 자신을 홀로 키운 어머니와 평범하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독신을 고집했었다. 진희와 결혼을 원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결혼해서 정말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의문이다. 종태라는 인물도 진희에게 진정한 사랑은 너 하나라며 말하지만 또 다른 여성들과도 꾸준히 외도를 한다. 남편이었던 상현도 진희에게 폭력을 행사했기에 임신 당시 폭행으로 아이를 잃었었다. 신 자창이란 인물은 진희에게 관심이 있었지만 진희의 친구인 유부녀 윤선에게 어설픈 외도의 경험을 선사한다.

 

안 좋은 일을 한꺼번에 들이닥치는지 임신 중절을 선택하고, 학교에는 진희를 겨냥해 사생활이 문란한 교수라는 투서가 들어오고, 종태의 부인이 다른 외도녀가 남긴 흔적들이 진희의 짓이라 생각하고, 자신을 위해 주는 척하던 교수 박지영이 교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투서를 쓴 당사자임을 알게 되고, 현석의 청혼을 거절하고 헤어진다. 하지만 진희는 추락하고 있지만 아직은 추락지점에 도달하지 않았기에 괜찮다고 생각한다.

 

어느 영화의 시작에서 내레이션이 나온다.

-오십층 건물에서 사람이 떨어지고 있다. 그는 말한다. 아직은 괜찮아. 라고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착륙이다. 하지만 어쨌든, 아직은 괜찮다. 떨어지는 동안은

서랍을 열고 깨끗한 에이포 용지를 한 장 꺼낸다. 약간 큰 글씨로 사직서라고 쓴다. (p.248)

 

새의 선물만큼 강렬한 느낌은 없었고 오히려 진희의 어두운 면을 더 많이 봐서인지 그냥 12살 소녀 진희의 이야기에서 멈췄던 게 더 좋지 않았을까? 성인이 된 진희의 모습에 여전히 안쓰럽고 그녀가 쌓아놓은 장벽을 좀 허물었으면 좋겠다는 안타까움도 느꼈다. 정신병으로 자살한 엄마의 자식이라는 것부터 자신의 인생이 호의적이지 않을 거라 예감하며 사랑도 배신과 반칙으로 이루어지고 삶의 희망에 기대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갈망하는 마음을 애써 쿨하게 넘기고 행여 만나게 될 실패가 더 두려운 진희라 생각된다. 타인에게 당당하고 지적이고 매력적인 여성이지만 내면의 상처받고 싶지 않은 12살에 갇혀버린 진희는 여전히 외롭다.

 

 

누구나 마지막 춤 상대가 되기를 원한다. 마지막 사랑이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마지막이 언제 오는지 아는 사람이 누구인가. 음악이 언제 끊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마지막 춤의 대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상대와의 춤을 즐기는 것이 마지막 춤을 추는 방법이다. 마지막 춤을 추자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대답하면 된다. 사랑은 배신에 의해 완성된다고. (p.273)

 


 

어젯밤 인북클럽의 줌모임을 2시간 반 가량하면서 새의 선물의 이야기를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모든 책이 호불호가 갈리듯 새의 선물도 나처럼 너무 좋았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 반면에 그렇게 와닿지는 않았다는 분들도 있었다. 나는 상상력이 부족해서인지 환타지물이나 세상을 너무 아름답게만 표현하거나 맹목적인 사랑만을 다룬 이야기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의 심리를 잘 표현하고, 세상을 좀 더 현실감 있게 다루고, 사회문제를 좀 냉철하게 다루는 이야기들이 내 취향이라는 걸 새의 선물을 통해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는 점 또한 이 책에서 얻은 점이다. 은희경 작가를 더 많이 알고 싶어졌다는 점 또한 1월의 수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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