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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잎 독서 in Canada]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김하나 황선우 저 서평 | Yes 24 북클러버 서평 2022-08-31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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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서사음 에디션)

김하나,황선우 공저
위즈덤하우스 | 2019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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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자의 동거가 영화나 드라마처럼 마냥 아름답지는 않지만 계속 보고싶은 현실 다큐멘터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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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김하나 황선우 저
서평

 

내가 혼자 살기 시작한 건 대학교 2학년 때 자취를 시작하면서부터다. 대학교 내내 자취를 하다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도 나는 1인실을 고집했다. 이유는 가족이 아닌 타인과 함께 사는 것은 불편하다, 결국 안좋게 끝날 수도 있다, 사소한 일로 자주 다투고 마음이 상할 것이다, 라는 온갖 부정적인 조언들 때문이었다. 안그래도 겁이 많은 나는 직접 겪어보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고는 '무조건 1인실!' 만 고집했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현재도, 나는 아직 혼자다. 주위 친구들이 집을 구할 때마다 나도 같이 살아볼까 기웃기웃 거리긴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그래, 불편할거야. 그냥 혼자 살자' 하고 마음을 접고 만다. 하지만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읽고 나서 다른 생활동반자와 함께 사는 삶이 꼭 나쁘지만은 않겠구나 생각했다. 

 

책 속 두 여자의 동거생활은 영화나 드라마처럼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들도 서로 다른 생활습관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고, 말다툼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그 스트레스와 다툼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그 과정을 외국을 여행하며 그 나라를 알아가는 것에 비유하고,

사람들도 저마다 다른 온도와 습도의 기후대와 문화를 품은 다른 나라 같아서,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외국을 여행하는 것처럼 흥미로움 경험을 준다.

 '다름' 자체를 부정적인 개념으로 보지 않고 서로를 채워줄 수 있는,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게 도와주는 긍정적인 요소로 바라본다. 

비슷한 점이 사람을 서로 끌어당긴다면, 다른 점을 둘 사이의 빈 곳을 채워준다.

항상 부정적인 말만 들어오던 나에게 이런 긍정적인 말들은 꽤나 큰 충격을 줬다. 특히 '싸움의 기술' 챕터를 읽을 때 나는 황선우 작가님에게 깊이 공감을 했는데 작가님의 성향이 나와 매우 비슷했기 때문이다.

실망하기 싫어서 기대하지 않은 척하고, 부딪치기 싫어서 크게 중요하지 않은 척하는, 인격이 성숙해서 잘 안싸우는 사람이 전혀 아니라, 오히려 미숙해서 잘 못 싸우는 사람에 가까웠던 거다. 

잘 싸우는 법을 알아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데, 나는 항상 싸움을 피하기에 급급하고 혼자 마음정리를 해 관계를 끊곤 했다. 피하지 않고 마주해야 내 싸움의 기술이 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 한 번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보는 것이 내게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싸움의 기술은 내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오히려 더 끈끈하게 만들어줄 수 있겠지.

 

30대에 접어든 현재, 나는 '내 집 마련'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는데 이 생각은 곧 '혼자서는 힘들겠지?' -> '그럼 파트너를 구해야 하나?' -> '결혼?' -> '혼자선 안되는 걸까?' 로 이어지며 결국 낙담을 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김하나 황선우 작가님들처럼 혹 마음에 맞는 친구를 찾는다면, '분자가족'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하는 '내집 마련'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방향을 찾았다. 친구와 함께 산다는 건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꺼렸는데 생각해보면 결혼은 정말 '안정적'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세상에 절대안정적인 관계는 존재하지 않고, 특히나 '결혼'으로 묶이면 마음이 안맞을 때 오히려 헤어지기 어려운 경우가 생겨 관계를 끊을 자유가 오히려 제한될 지도 모른다. 

 

새로운 가족의 형태가 많아지는 요즘, 그들 모두를 다 아우르고 보호해줄 수 있는 많은 법들이 책에서 소개된 '생활동반자'법과 함께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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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잎 독서 in Canada] 모모, 미하엘 엔데, 서평 | Yes 24 북클러버 서평 2022-07-30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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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모모

미하엘 엔데 저/한미희 역
비룡소 | 1999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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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간은 안녕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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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미하엘 엔데,  서평

 

저번 달부터 독서모임 멤버 두 분과 함께하는 Yes24 북클러버 도서로 이번 7월은 '모모'가 선정되었다. 가벼운 책을 읽고 싶기도 했고, 최근에 문득 어릴 적 읽은 이 책의 내용을 다시 어른이 되어서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책을 다시 읽기 전, 내가 기억하는 내용이라고는 '모모'라는 여자아이, 그리고 '시간'을 주제로 다루는 책 이라는 것 뿐이었다. 책을 읽어내려감과 동시에 매번 새롭게 느껴지는 스토리에 이정도로 내가 이 책을 까먹고 있었다니 충격을 받았다. 과연 이 <모모>를 어릴 적에 '읽은 책' 이라고 말해도 되나 싶었다. 그러다 마지막에 독자들에게만 보이는 '카시오페이아' 등 뒤에 적힌 글씨 '끝' 이라는 일러스트레이션은 다시금 나를 어릴 적 이 책을 읽던 그 때로 끌고 들어갔다. 드문 드문 기억이 나는 이 책, 어른이 된 후 다시 느낀 내 감상평은...?

 

감상평을 말하기 앞서 이 책의 줄거리를 요약한다면, 어느날 갑자기 어디에선가 나타난 부모도, 친척도, 아무도 없는 꼬마 여자아이 '모모'는 마을에 있는 원형극장에서 마을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마을에 자리잡아 마을 사람들의 보살핌 아래 살게 된 모모가 행운이라고 할 수 도 있겠지만, 후에는 오히려 마을 사람들이 모모를 곁에 두게 된 것이 행운이 되어버린다. 모모는 마을사람들의 고민과 걱정을 열심히 들어주었고, 모모의 경청으로 그들의 문제거리들이 저절로 해결되는 신기한 현상들이 일어났다. 모모의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재주'는 그 아이의 충분한 시간 덕이었다. 어느새 마을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모모한테 가보게!"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마을사람들에게 회색신사들이 다른 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접근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사람들이 낭비하는 시간을 미래를 위해 저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 수록 회색신사들은 점점 많아지고 그런 회색신사를 만난 마을 사람들의 시간은 갑자기 사라져버린다. 그들의 하루는 점점 빨라지고 삭막해져갔다. 어느새 회색신사와의 계약도 잊고 그들은 시간을 아껴 일을 하는데 집중했다. 그들이 미래를 위해 저축하고 있다 생각한 시간은 사실은 더이상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회색신사들의 이런 계획을 알아낸 모모는 가장 친한 친구인 베포와 기기,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어른들을 지켜내려 하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가버리고, 어느날 모모를 찾아온 거북이 '카시오페이아'를 따라 어디론가 떠나게 되는데... 모모가 떠나고 흘러버린 1년의 시간. 과연 모모는 마을 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을까?

 

 

어른이 되어 다시 본 이 동화의 첫 느낌은 허무함이었다. 뭔가 대단한 서사가 펼쳐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는데 회색신사를 물리치는 모모의 모험은 생각보다 허무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회색신사의 자멸은 그들의 이기심으로부터 비롯되었고, 아이들에게 명확한 '권선징악'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동화로써는 좋은 결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는 단순했지만, 나는 과연 '시간'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나에게는 나도 모르는 사이 '회색신사'가 다가오지 않았을까, 나는 그걸 잊고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껴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려고 기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특히나 2주 전부터 바로 전주까지 출근을 매일 하는 상황에서 일하고 퇴근하고 자고 일어나고 일하고 퇴근하고 자고 일어나고, 를 반복하고 나니 에너지는 하나도 없고 시간은 어느새 2주나 지나있었다는 걸 느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내 2주의 시간동안 나는 불행했다. 아는 언니가 회색신사가 나에게 다녀간 거라고 했다. 오...! 그런가?

 

캐나다에 살고 취업을 하면서 나는 삶과 일을 분리하는데에 노력을 많이 했다. 퇴근 후 일에 대한 생각을 그냥 수도꼭지 잠그듯 꽉 잠글 수 있게 까지 되는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일을 하며 느낀 부정적인 감정들을 집에까지 가져오는 일, 꿈까지 꿔가며 스트레스를 받는 일. 지금도 완벽하게 분리를 해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휴무날, 일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휴무를 즐기기 시작했다. 집에서 푹 쉴 때도 있고, 내 취미활동으로 가득 채우기도 하고, 가끔은 친구들과 놀러나가는 계획을 세우는 등 나의 행복과 연계된 일들을 하려고 계획한다. 하지만 파워 J라 그런가,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꼼꼼히 계획을 세워내려가다보면 또 여유없이 바쁘게 사는 나를 발견하고 만다. '시간'을 다루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책에서는 아이들을 회색신사들의 천적이라고 한다. 아이들을 포섭해 그들의 시간을 아끼게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사회를 떠올려보면, 학교에서 하교하자마자 바쁘게 여러 학원들을 다니며 밤늦게 집에 돌아오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책에서는 어른들이 그들의 시간을 아끼기 위해 아이들을 보육원에 보내고, 현실에서 어른들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다며 그들을 학원에 보낸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다는 어른들의 욕심으로 아이들의 시간을 빼앗는 이 상황이 과연 옳은 것인지 많은 생각이 든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실수는 어른들 혼자 하는 걸로는 부족한 것일까. 다신 돌아오지 않을 아이들의 시간이 학교와 학원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이 안타깝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의 얼굴은 점차 시간을 아끼는 꼬마 어른처럼 되어갔다. 아이들은 짜증스럽게, 지루해하며, 적의를 품고서, 어른들이 요구하는 것을 했다. 하지만 막상 혼자 있게 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p.350 <모모> 미하엘 엔데

 

 

이 책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모든 일이 이미 일어난 일인 듯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 일이 앞으로 일어날 일인 듯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내게는 그래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p.506 <모모> 미하엘 엔데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이 책의 '시간'에 대한 내용이 계속 공감가는 것을 보면 '시간'에 대한 인간들의 고찰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고, 미래에도 계속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다루는 방법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들의 경험을 통해 '시간'을 계속해서 배워 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 동화는 계속해서 회자되어 미래에도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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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어떻게 우리의 삶을 망가트리는가 | 개인 리뷰 2022-06-3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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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노 본스

애나 번스 저/홍한별 역
창비 |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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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일반인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을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간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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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한글번역으로 출간이 될 오늘의 책, <노 본스>는 북아일랜드 분쟁 '트러블' 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에 북아일랜드 분쟁에 대한 이해 없이 책을 읽는다면 잘 읽히지 않아 금방 흥미를 잃을 지도 모른다. 책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북아일랜드 분쟁 '트러블'을 설명하자면 1968년 부터 1998년, 30년 동안 이어진 분쟁으로 아일랜드 공화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일부 지역은 영국의 소속으로 남겨짐으로써 발생하였다. 이 때 대부분의 가톨릭교인들은 아일랜드 공화국의 완전한 독립을 주장했고 개신교 사람들은 북아일랜드가 영국에 계속 남기를 원함으로써 종교적인 차원의 분쟁으로 넓혀졌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의 한 도시 '아도인'이 배경이며 이 곳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톨릭계로 친아일랜드계이다.

 

이 책은 챕터마다 중심이 되는 인물들이 다르고 시점도 다양한 인물들로 넘나들어 마치 단편소설집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하지만 알고보면 가장 큰 중심축이 되는 가족은 바로 러빗 가족이다. 아빠 토미 러빗과 엄마 머라이어 러빗, 그리고 세 남매 - 첫 째 믹 러빗, 둘 째 리지 러빗, 그리고 마지막 막내 어밀리아 러빗.

 

1969년 '트러블'이 발생하기 전, 여느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친구들과 놀러다니며 걱정따윈 없던 6살 어밀리아가 북아일랜드 분쟁과 함께 자라며 피폐하게 변해가는 과정이 참혹하게 느껴져 읽기가 참 힘들었던 책이다. 잔인하고 기괴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계속 읽고 있자면 나까지 정신병에 걸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불쾌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전쟁'에 대하여 우리가 놓치고 있던 부분을 꼬집어준다.

 

'전쟁'이라고 하면 우린 사람들이 총에 쏘여 죽고 폭탄에 맞아 부상을 당하는 외적인 피해만 생각하는데 이 책은 사람을 죽이는 것 외에도 전쟁이 민간인들을 정신적으로 어떻게 망가트리는 지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30년이라는 긴 시간을 군대가 곳곳에 주둔하고 이유도 없이 서로를 죽이는 환경에 노출되었을 때, 전쟁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일반인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을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간과하고 있다. 특히나 아이들은 어른들의 싸움에 아무것도 모른 채 희생을 당한다.

 

아도인은 매일이 폭력과 죽음이 난무하는 도시로 변했고, 그 안에서 전쟁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은 폭력에 노출되어 매일을 살아간다. 안타까운 죽음들이 매일 생겨나지만, 그 죽음들이 기억될 수 도 없도록 다음날 그들은 또다른 수많은 죽음들을 맞이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성장한 세 남매, 믹, 리지, 그리고 어밀리아가 제대로 자랐을 리가 없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끔찍하리 만큼 망가져있다. 폭력적인 것은 둘째 치고, 변태적이고 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내 눈을 의심케 만든다. 그와중에 마음이 가는 건 막내 어밀리아이다. 사회에서도, 가족 내에서도 가장 최약체인 어밀리아가 (강간당하지 않기 위해 여성성을 없애려) 거식증에 걸리고, 믹과 믹의 부인 미나의 변태적인 폭력에 결국 조현병까지 얻게 되는 그 과정은 정말 마음이 아프다. 어느새 책을 들고 있는 내 표정은 한없이 찡그려져있고, 속이 거북해오는 문장들에 고개를 잠시 돌려 창 밖을 바라보고 크게 숨을 들이 마신다.

 

<노 본스>는 <밀크맨>을 쓴 애나 번스의 첫 번째 장편 소설로 <밀크맨> 보다 먼저 쓰여졌지만 한국에는 이제야 번역이 되어 소개되는 작품이다. 애나 번스는 자신이 자란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의 마을 아도인을 배경으로 이 <노 본스>를 썼고 이 책은 2001년 영국왕립문학회에서 수여하는 위니프리드홀트비 기념상을 받았으며, 2002년 오렌지 소설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출판사 창비 로부터 한국에 소개될 애나 번스의 두 번째 작품 <노 본스>, 기분이 좋아지는 책은 아니지만 '전쟁'에 대해 우리의 일이 아닌 양 가볍게, 혹은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는 우리들에게 '왜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되는 가', '전쟁은 어떻게 우리의 삶을 망가트리는가' 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 글은 창비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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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언제나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 Yes 24 북클러버 서평 2022-06-30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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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저/이재룡 역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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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언제나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어느 게 더 나은 선택일지는 알 수 없다. 인생은 딱 한 번 사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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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서평

 

6월부터 Yes24 북클러버 활동을 시작했고, 모임의 첫 책으로 항상 읽고 싶었지만 계속 미뤄왔던 책,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택했다. 5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네 명의 남녀 주인공들, 토마시와 테레자, 프란츠와 사비나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했던 사랑의 방식은 너무도 달랐고 그 사이에서 그들은 멀어졌다 다시 가까워졌다를 반복한다.

 

그들이 쫓는 무언가들은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상징되는데 토마시와 사비나는 '가벼움'에 항상 이끌렸고, 프란츠와 테레자는 '무거움'을 원했다. 하지만 토마시와 사비나의 바람대로 그들이 사랑하는 이들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졌을 때, 그들은 다시금 '무거움'을 그리워했고 다시 테레자의 품으로 돌아가거나, 프란츠를 그리워했다. 반대로 안정적이고 무거운 사랑을 원하던 테레자는 토마시의 잦은 바람에 결국 자신 또한 '가벼워지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프란츠 역시 사비나가 떠남으로 잠시 힘들어 했지만, 곧 자신에게 주어진 뜻밖의 자유에 행복해했다. 그들은 보다보면 인생은 언제나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거움도, 가벼움도 어느 게 더 중요한지, 어느 게 더 나은 선택일지는 알 수 없다. 인생은 딱 한 번 사는 것이므로 그런 인생엔 리허설이라는 것이 없으니. 그래서 우린 항상 불확실성을 가지고 가벼움과 무거움의 갈림길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게 아닐까? 

 

개인적으로 7부 카레닌의 미소에서 정말 많이 눈물을 흘렸다. 최근 중학생때무터 함께 했던 강아지를 떠나보내서 더욱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 같다. 테레자의 카레닌을 향한 이해관계가 없는 사랑은 강아지, 고양이들의 반려인이라면 누구나 공감을 하지 않을까? 아픈 와중에서 테레자의 얼굴을 핥으며 마지막까지 미소를 보여준 카레닌, 그리고 아파 힘들어하는 카레닌을 안락사 시킬 수 밖에 없었지만 자꾸 카레닌이 아직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테레자의 모습은, 우리 가족이 강아지를 보내주던 상황과 너무도 닮아있어서 상황의 묘사들이 참 아프게 다가왔다. 아무것도 서로에게 바라지 않는, 서로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그런 사랑이 흔치 않고, 그래서 특별하고 소중함을 알기에, 카레닌의 부재는 너무도 슬펐다.

 

소설은 '키치'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제대로 읽을 수 있다고 한다. 키치는 책에 있는 설명에 따르면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 이며 '인간 존재가 지닌 것 중 본질적으로 수락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배제'하는 '미학적 이상'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가벼운 것들을 숨기고 무거운 것들에만 스포트라이트를 옮길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무거움 뒤에는 항상 숨겨진 가벼움이 있다는 것. 그리고 소설 속 '사비나'는 무거운 것들만 보려하는 '키치'를 처음부터 계속 부정하고 반대했다. 테레자가 그녀의 화실에 방문했을 때 그녀가 그린 그림들은 테레자의 눈에 그당시 유행했던 '사실주의' 기법을 잘 활용한 그림이었지만, 사비나는 말한다. " 이 그림은 망친 거야. 붉은 물감이 캔버스에 흘렀거든. 처음에는 화를 냈는데 점차 그 얼룩이 맘에 들더군. (......) 나는 이 틈을 확대해서 그 뒤에 볼 수 있는 것을 상상하는 놀이를 시작했어." 사비나에게 그 그림은 앞은 완벽한 사실주의 세계(무거움)였고 그 뒤는 이해할 수 없는 진리가 담겨있는 신비롭고 추상적인 무엇(가벼움)이었다. 아마 이 소설 곳곳에 이런 '키치'의 개념들이 숨겨져 있는 것 같은데 그건 재독을 통해 파악해보아야겠다.

 

밀란 쿤데라는 평범한 러브스토리에 '무거움' 과 '가벼움' 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그의 철학적 생각을 글에 녹여냈다. 그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마음과 달리 책에 숨겨진 관점들을 완벽히 이해하기란 힘들었다. 절대 1독으로는 안 될 것을 알기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 천천히 다시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다시 읽으면 읽을 수록 보이지 않고 이해되지 않았던 철학적 개념들이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나 또한 같은 경험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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