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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문서1 | 리뷰 2010-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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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그의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듯이, 나도 나의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폭풍처럼 몰아치며 단지 한달 반만에 쓴 글이라 했다. 처음 이 책의 광고를 접했을 때 ‘뭐 얼마나 대단하기에? 얼마나 특별하기에?’하는 생각으로 반신반의 하며 읽어 나갔었다. 읽은지 며칠이 지나도 ‘은교’는 여전히 소녀를 탐하는 노인의 애욕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는 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랬기에 이책을 보고 존재론적이라느니 하는 평론가들과 서평을 쓰는 독자들의 반응은 내게 너무나 호들갑스럽게 느껴졌다.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은 후에야 사람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나 평론가들이 존재론적 물음을 던지는 소설이라 평했던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가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이런 글을 단숨에 썼다는 것, 그것이다. 어떻게 단숨에 이런 통찰력을 가지고 글을 완성한단 말인가. 아마도 글을 쓰기 이전에 무수한 고뇌의 시간이 있었으리라 짐작 해 본다.

 

텅 빈것 하나 없이 가득 차 있는 이야기였다. 인간의 본성으로 가득 차있었고 가식으로 가득 차 있었고 주요 인물들의 서로를 향한 애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가득 찬 이야기를 읽으며 쓰는 나의 서평의 제목은 ‘빈 문서 1’이었다. 가득 차 있었지만 텅 빈 것 같았던 소설의 느낌이 강했던 탓이리라.

 

소설의 주인공 이적요는 모두에게 존경받는 시인이었다. 스스로도 자신의 천재성을 알고 있었고 철저히 시장과 평단을 의식하며 자신의 모습을 포장 해 간다. 은교를 만나고 그 후에야 알게 된다. 자신의 시는 모두 쓰레기 같은 것들이었고 자신이 추구했던 명예, 고고한 이미지 따위는 허상이었음을 깨닫는다. 나는 적요에게서 나다니엘 호손의 딤즈데일을 읽었다.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씨의 주인공 딤즈데일 역시 존경받는 목사였지만 실은 불륜을 저지른 사람이었다. 그는 스스로 괴로워하며 겸손한 모습을 보이고, 그 모습에 오히려 대중들은 그를 더욱 성화하고 존경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다. 적요는 딤즈데일과는 달리 그 스스로가 자신의 고결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이용했다는 점에서 많이 다르지만, 대중들이 존경하는 자신의 모습과 실제 자기가 알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일치하지 않기에 느끼는 두사람의 괴리감과 괴로움은 비슷해 보였다. 자신을 끝없이 미화하는 대중들을 멸시하면서도 그 역시 은교를 성화해 마지 않았다는 점도 재미있게 볼 만한 부분이다. 오히려 변호사의 시선으로 객관적으로 읽어 낸 은교의 모습은 평범하고 젊은 여성에 불과했다. 그러나 적요의 시선을 거쳐 그녀는 다시 없을 예술적인 뮤즈로 거듭난다. 적요에게는 여신이었고 서지우에게는 욕망과 사랑의 경계를 넘나드는 애정의 대상이었던 은교. 그리고 스승을 은교에게 뺏기고 싶지 않아 하면서 은교를 스승에게 뺏기고 싶지 않아 했던 서지우. 그 둘 사이에 전혀 낄수 없었다고 고백하는 은교. 그들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는 존재론적 욕망을 찾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세상은 늙은이더러 사라지라 한다. 늙은이들은 그저 잠자코 있으라고, 점잖이나 빼고 뒷자리에 물러나 있으라 한다. 이제 더는 당신들이 필요없다 한다. 그러나 적요는 이 세상에 일침을 놓는다. 아마도 은교에 대한 그의 욕망도 이런 부분을 잘 반영하지 않았나 싶다. 인간은 누구나 살고자 한다. 적요 또한 인간이었고, 그는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은교에 대한 열망을 더욱 더 크게 키워나갔다. 삶에 대한 본능, 살고자 하는 치열한 욕망, 죽기 직전의 가장 찬란했던 감정. 그것이 성적인 욕망으로 표출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또한 동시대를 살아가는 노인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이리라.

 

서지우의 욕정은 스승에게 인정받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분노였고 스승에 대한 분노였다. 스승에 대한 분노를 스승이 하지 못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해소했고 그러면서도 은교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동시에 키워나갔다. 그의 욕망 역시 존재론적이었다. 그는 인정 받고 싶어 했고 존재하고 싶어 했다. 사랑하는 스승의 자랑스러운 제자, 실력 있는 문인이 되고 싶어 했다. 그 이루지 못한 꿈을 은교에 대한 욕망으로 불태우다 결국 그 불이 스승에게 옮겨 붙었고, 마침내 사랑하는 스승과 제자는 그렇게 욕망으로 화(火)해버렸다.

 

이 세사람의 애증을 통해 동시대의 노년기를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또한 우리의 모습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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