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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8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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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할 수 없는, 그렇지만 생각해보지 않았던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 | 기본 카테고리 2020-10-23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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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만하면 괜찮은 죽음

데이비드 재럿 저/김율희 역
윌북(willbook) | 2020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이만하면 괜찮은 죽음]은 어렵고 두려우면서도 무겁게 느껴졌던, 그래서 더 언급하거나 생각하기를 꺼리게 되었던 ‘죽음’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새로운 생각과 다른 시선을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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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괜찮은 죽음’ 과연 그건 무엇일까?

우아하고, 품위있는 마지막,,,

그런 마지막이 있을까?

그 마지막의 우아함과 품위는 어떤 기준으로 누가 따질 수 있는 것일까?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모두 명확한 답을 생각해 내지는 못했지만

이 질문들이 가리키는 방향과 공통점이 같았다.

결국 ‘죽음’이라는 것은 그 단어를 외면하거나 무시한다고 해서

그것을 마주하지 않게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무겁고 어렵다는 생각으로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아니, 어쩌면 그렇게 외면하면 안 되는 주제가 아닐까.

누군가의 삶에 한 번쯤 마주하게 되는 주제이기에

오히려 더 깊이 있고 진솔하게 생각해야 하는 주제인 것 같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이만하면 괜찮은 죽음’은

돈 많은 사람은 사람에게 해당 되는 말이 아님을 첫 스토리부터 읽을 수 있었다.

‘좋은 죽음’ ,‘나쁜 죽음’ 과연 그런게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좋은 죽음’이라는 제목의 첫 글과 ‘나쁨 죽음’이라는 제목의 두 번째 글을 읽고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앞부분부터 ‘좋은 죽음’과 ‘나쁜 죽음’이라는 두 글을 한 번 읽고 넘어가지 못했다.

처음에는 ‘이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야? 어떤 의미인 거야?’라는 생각이 들면서

생각에 생각을 다시 되짚어 보기도 하고 내용을 다시 확인해 보기도 했다.

‘나쁜 죽음’이 ‘좋은 죽음’보다 더 빨리 이해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 두 내용이 ‘좋다, 나쁘다’로 대비를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좋은 죽음’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느라 앞부분을 많이 읽은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피하거나 외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언젠가 마주쳐야 하는 당연한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좋다’라는 의미와 연결하는 것은 어려웠다.

좋다는 표현보다는 안 좋은 일, 나쁜 일, 속상한 일 등의 표현과 더 잘 연결 되었다.

어쩌면 외면하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만 연결하는 것 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죽음’이라는 것은 외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어떻게 만나게 될지 알 수 있는 거나 미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렇기때문에 오히려 더 그 죽음이라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든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 표지의 ‘우아하고 품위있는 마지막’

그런 마지막은 그리고 나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우리 모두 손에 검을 든 채 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옛 모습이 드리워진 쭈글쭈글한 그림자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방식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죽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언젠가 죽을 거라고 생각하며 매일 두려움 가운데 지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집 안에서도 밖에서도 편할 날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물론 두려움에 잠도 자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적인 생활이라고 말하는 하루 일과에는 항상 잠을 자는 시간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차 또는 대중교통 등 교통수단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렇게 집안에서 나가서 밖에서 생활하는 시간도 있다. 생각해보니 아이러니한 모순이 있는 생활이다.

언젠가 죽을 것임을 알고 있고 죽음이라는 것이 두렵고 무겁게 느껴지면서도

그것을 두려워하며 벌벌 떨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잠도 자고 밖에 나가 생활도 하고 교통수단도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른바 ‘현실을 넘어선 정신적 변이’다.

죽음을 자각하는 행위는 인간 존재의 핵심에서 우리를 좀먹는 벌레와도 같지만,

역설적으로 죽음을 부인하는 행위와 결합되면 낙관주의적 편견을 선사한다.

이 낙관적 편견은 인간의 노력으로 발전을 거듭하며 불안이라는 매듭을 끊어줄 수 있다.

 


또한 이 책에서는 여러 죽음과 함께

그 죽음을 바라보는 그리고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의사의 마음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었다.

소생술에 실패할 때마다. 나도 조금씩 죽는다. 그러나 동시에 뭔가가 자란다.

어쩔 수 없이 경험이 자라나지만, 지혜도 자란다.

인생은 불공평하고 변덕스럽지만,

동시에 소중한 것이며 결코 당연시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요즘 병원에 대한 이야기, 약에 대한 이야기 등의 책도 많이 나오고 각 분야의 의사 에세이들도 많이 보게 된다.

그렇지만 ‘노인 의학’을 전공한 의사의 이야기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다시 한 번 의사의 사명감을 느낄 수 있었다.

환자가 결국 숨쉬기를 멈추었던 그날 밤은

내가 사회에서 가장 나이 많고 가장 연약한 이들을 상대하는

노인 의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한 밤이기도 했다.

물론 많은 이들이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이런 죽음은 긴 삶의 끝에 다가오는 것이며 결국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나이 많고 가장 연약한 이들’을 만나는 ‘노인 의학’을 전공하기로 선택했을 때부터 저자는

목숨을 구하는 것보다 고통 완화가 우선인 의학 분야이며 많은 이들이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죽음을 더 자주 접하고 더 자주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과 생각, 마음들을 이 책에 담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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