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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사람들, 동네 '바보형' | 사회 2021-09-07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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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냥, 사람

홍은전 저
봄날의책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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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에는 밖에 나가 노는 것이 일상이었다. 동네 아이들이 한데 어울려 공터나, 놀이터, 뒷산 같은 곳에서 놀았다. 몸으로 부대껴 가며 해가 질 때까지 놀았다.

함께 노는 무리 중 꼭 바보형이 있었다. 놀다가 다른 동네 아이들을 만나면 그 무리에도 꼭 바보형이 있었다. 우리끼리 있을 때만 바보형이라 불렀을 뿐, 같이 놀 때는 이름을 불렀다. 바보형이라고 놀리거나 무시하거나 따돌리지 않았다. 그냥 같이 놀았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그 시절 ‘바보형’은 자폐성 장애나 지적 장애를 가졌었던 것 같다. 그때는 그런 용어도 몰랐을뿐더러 같이 노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기에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른들도 꼭 “OO하고도 친하게 잘 지내야 해.”라고 하셨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동네 ‘바보형’이 사라졌다. 상급 학교에 진학하면서 자연히 동네에서 어울려 놀 시간도 없었지만, 성인이 되고 한 후에도 동네에서 ‘바보형’은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가 아니라 코호트가, 바이러스가 아니라 대책 없는 거리두기가 누군가에겐 더 큰 재난임을 알린 것 말이다.” (p.251)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중증 장애가 있는 분들의 입장을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TV에서도 본 적이 없다. 오늘 몇 명이 추가로 확진되었는지, 백신 접종은 어떻게 될 것인지, 이런 것들에만 집중되어 있다. 중증장애인의 백신 접종은 어떻게 되는지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검색을 해봤다. 이 독후감을 작성하는 8월 28일 현재까지 별다른 대책이 없다고 한다.

 

 

“특수안경을 쓰면 보이는 가상현실처럼 자녀가 장애를 입는 순간 그녀들 앞에 놀라운 지옥도가 펼쳐진다. 도처에서 엄마의 무릎을 꿇린다.”

“장애인 다 싫어하잖아. 왜 우리한테만 그래!” (p.109)

 

 

 TV를 통해 본 낯뜨거운 장면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장면이라 뇌리에 박혀 있었다. 2017년,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 충격적이었다. ‘집값 떨어진다.’라는 이유가 가장 컸을 것이다. 그들의 야만과 무자비함보다 더 소스라치게 놀란 것은 나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자각을 한순간이었다. 경제는 발전하고 국가와 정부의 복지는 개선되었지만, 오히려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우리와 뒹굴던 동네 ‘바보형’들을 주변부로 내몰고 있었다. 장애를 격리하고 분리하며 특별한 시혜의 대상으로 인식하여 정책을 펼쳤을 때, 딱 지금과 같은 한국의 현실에 직면하는 것이다. 지금도 장애인은 숨어야 하는 존재다. 특수학교·복지기관·요양병원 등으로 내몰린 것이다.

 

 

“‘손 벌리는 자’이 마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손잡아주는 자’의 자부심으로 살아왔던 시간이 부끄러워서 펑펑 울었다.” (p.124)

 

 

 물론, 나의 어린 시절보다 장애에 대한 인식과 복지 정책 자체는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룬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평생을 장애인의 인권과 복지 증진을 위해 살아 온 저자의 고백 앞에서는 한낱 공수표에 불과하다.

 

 

“나는 장애인이 불쌍하다고 생각했어. 그랬던 내가 그 불쌍한 장애인들 속으로 떨어졌으니 인생이 비참해 죽을 것 같았는데, 그때 태수가 왔지. 그런데 그 장애인이 사람으로 보이는 거야. 불쌍한 장애인이 아니라 그냥 사람.” (p.216)

 

 

 성인이 된 후 사고로 장애인이 된 경석 씨의 고백은 함축적이다. ‘불쌍한 장애인들’이라는 인식이 ‘그냥 사람’이 되려면, 같은 장애인이 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부러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허투루 손을 내밀거나 금방 말라버릴 동정심을 남발하지 않아야 한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 가장 잘 알 것이다. 동네 ‘바보형’도 우리에겐 ‘그냥 사람’이었다.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밀어내지 않았다. 함께 노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돈을 모으고 있어. 시설 나온 지 10년 되는 날까지 2천만 원을 모으는 게 목표야. 그걸 야학에 줄게. 시설에 있는 사람들 한 사람이라도 더 데리고 나와.” (p.242)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어려운 중증장애인 꽃님씨가 저자의 야학에 기부했다. 그녀가 바라는 건 자신처럼 시설에 있는 사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와 달라.’라는 것이었다. 아직도 그들을 제대로 지원할 수 있는 정책과 서비스가 미비하지만, 갇힌 채로 밀려난 사람이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 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토록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사회 주요 이슈로 만들어 내기 위해 서울 광화문역 지하 보도에서 이어가는 노숙 농성, 최저생계비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한겨울에 길바닥으로 나온 뇌성마비 장애 여성, 2017년 현재, 전국의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를 통틀어 휠체어 승강설비를 갖춘 차량은 단 한 대도 없던 현실 등.

 

 애써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며 겨우 알게 된 사실이다. 죄다 몰랐던 터라 부끄러워할 겨를조차 없었다.

 유튜브를 검색하다 보면 사회실험을 하는 채널들이 있다. 장애인을 돕는 일반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유튜브 채널이라는 것을 밝히고 왜 도왔냐는 인터뷰를 하면 대답은 거의 비슷하다. “그냥요.”, “당연하니까요.”, “제가 가까이 있어서요.”, “도와드려야 할 거 같아서요.”

 

 “그냥 사람”이라서 돕는 것이다. 그냥 같이 노는 ‘동네 형’이니까. 동네 ‘바보형’이라 부르며 놀아도 그것이 전혀 차별이나 따돌림이 아닌 사회가 진짜 건강한 사회라 생각한다. 장애가 있는 사람과 그냥, 어울려 같이 사는 사회. 너무 먼 미래인 것 같아 아득하기는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홍은전님과 같은 분들이 많을 것이다. 실제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연구하고 부딪히며 사는 분들 말이다.

 

 

온 마음을 담아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져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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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 진짜 착각인지 모르겠다 | 사회 2021-08-26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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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마이클 셸런버거 저/노정태 역
부키 |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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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아내 과제를 도와주기 위해 자료를 찾아서 출력했다. 해상풍력 발전과 미세플라스틱에 관한 내용이었다. 자료를 찾아 취합하고 출력해 주제별로 분류하면서 계속 생각했다.

맞아, 맞아. 미세 플라스틱, 문제야 문제.’, ‘해상풍력 발전, 이거 완전 대박인데?’

자료를 찾아 분류하는 것만으로 환경과 지구를 지키기 위해 한 몸을 내던진 투사가 된 듯했다.

그런데, 이 책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을 읽으며 나는 혼란에 빠졌다.

 

매년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900만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 중 0.03퍼센트만이 빨대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p.117)

과학자들은 스스로 발견한 사실에 놀라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전 세계 해수면에 떠 있는 모든 크기의 플라스틱 쓰레기 총량은 매년 생산되는 플라스틱의 0.1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미세플라스틱은 애처 예상했던 것보다 100분의 1수준으로 적었다.” (p.125)

 

뭐라고? 뉴스에서는 죽은 고래의 뱃속에서 현대문명에서 쏟아낸 플라스틱이 가득하다고 했었는데? 심지어 거북이 뱃속에서도 비닐과 플라스틱이 발견됐다고 했었는데?

그러면서 머지않아 인간들이 쏟아낸 분해되지 않는 폐기물로 가득 찬 바다가 될 거라고 했었는데?

책에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한다. 실제로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플라스틱이 있기는 하지만, 미세하다는 것이다. 충분히 관리 가능하다는 것이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80페이지가 넘는 각주와 참고문헌이 모두 거짓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저자가 책을 위해 본인이 원하는 자료만 취합했다 하더라도, 실제로 통계와 실험은 바꿀 수 없는 것이다.

6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는 내내 놀라움은 계속됐다.

 

전 세계적으로 지난 35년간 사라진 것보다 더 많은 숲이 새로 생겼다. 그 면적을 합치면 텍사스와 알래스카를 합친 정도가 된다.” (p.92)

놀랍지만 사실이다. 사고 발생 이후에도 후쿠시마는 방사능 청정지역이다. 미국 콜로라도 평원의 자연 방사선량보다 방사선량이 낮다.” (p.343)

 

숲이 사라진다. 후쿠시마는 체르노빌보다 더 심각하다.

그런데, 이것도 아니란다. 더 많은 숲이 생기고 있고, 후쿠시마는 방사능 청정지역이란다. 이쯤 되면 나는 의심할 수밖에 없다.

책 쓴 사람, 일본 원자력 쪽이나 대기업 같은 데서 돈 받은 거 아니야?’

너무 다른 이야기를 하니까 말이다.

 

 

진보가 환경주의자라고?

 

미국 민주당에는 진보의 가면을 쓴 채 자기네 이해관계에 따라 원자력을 몰아내야 하는 인사가 두루 포진해 있다. 환경주의로 화석 연료를 포장하는 그린 워싱green washing’인 셈이다. 미국의 진보 진영은 화석 연료 업계가 저지르는 그린 워싱의 방조자 또는 공범이다.” (p.568)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부시와는 다를 줄 알았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또 부시와는 다를 줄 알았다. 도긴개긴이었다.

미국 민주당도 엉망진창이라는 것에 위로를 받아야 하나? 일약 환경주의자로 탈바꿈했던 엘 고어 같은 유명한 사람도 이해관계의 촘촘한 그물망에 얽혀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마찬가지다 싶었다.

 

브라워는 석유와 천연가스 기업들 및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받아 신재생 에너지를 옹호하면서 원자력 발전소 폐쇄가 환경에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녹색 씻김굿을 해 주는, 이후 수많은 환경 단체들이 걷게 된 길을 선구적으로 개척하고 있었던 것이다.” (p.412)

언론은 수십여 년에 걸쳐 엑손모빌, 코크 형제, 기후 변화 회의론자들을 악마로 묘사해 왔다. 하지만 스타이어나 블룸버그 같은 화석 연료 억만장자들과 그들의 돈을 받는 환경주의자들에게는 거의 무제한으로 면죄부를 발급해 왔다.” (p.440)

 

석유와 천연가스 기업,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받아 신재생 에너지를 옹호한다! 대단한 머리다. 자신은 돈 하나 들이지 않고, 생색내고 돈까지 벌게 되었다. 좋은 롤모델이 생기니, 너도나도 그 길을 따라간다. 유튜브 채널 하나 대박 나면, 너도나도 따라 하기 바쁜 것처럼 말이다.

진보가 환경주의자라고? 웃기지 마. 도긴개긴이야.

 

 

환경 식민주의?

무엇보다 우리는 환경 식민주의(environmental colonialism)를 물리쳐야 한다. 또한, 오래된 원시림을 가진 국가의 경제 발전을 지지해야 한다.” (p.94)

 

환경 식민주의(environmental colonialism)’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되었다. 식민지배를 받았던 우리에게는 뇌리에 단번에 꽂히는 단어와 개념이다. ‘환경을 볼모로 식민지배를 한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브라질은 인구 중 4분의 1이 빈곤에 허덕이는 나라다. 내가 콩고에서 만난 여성 베르나데테와 다를 바 없는 가난 속에서 산다. 그런 사람들의 고통을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환경주의자들은 간과하거나, 때로는 아예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p.98)

 

이미 자기네 나라에서는 모든 숲을 몽땅 파괴해놓고, 아주 고상하고 그럴싸한 조약을 들이밀려 아마존 삼림 파괴를 막자고 웅변을 늘어놓는다고 했던 브라질 전직 대통령 룰라의 연설이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아마존 산림 파괴에 대한 분석을 소개하면서, 실제로 아마존 숲이 언론에서 떠들어 댄 것처럼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조금 더 잘 살기 위해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나무를 베어 돈을 얻는 것이다.

 

부유한 나라의 환경주의자들이 콩고 같은 나라의 가난을 초래하는 근본 원인은 아니지만, 최소한 책임은 있다. 가난하고 낙후된 지역 사람들이 산업화와 개발의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그 길에 들어서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p.449)

부유한 국가의 NGO들과 정치인들이 자기네 나라는 절대 걷지 않았던 길을 가라고 가난한 국가들을 부추기는 것을 나는 무수히 목격해 왔다.” (p.457)

 

젊은 시절부터 누구보다 강경한 환경주의자였던 저자가 달라진 원인이다. 환경과 지구, 자연과 후손을 위한다고 하면서 저지르는 욕망 덩어리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회의를 느낀 것이다. 잘못된 것인데, 분명 틀린 것인데, 돈과 이해관계의 그물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환경주의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인도와 중국에 대해 좋지 않은 뉴스가 나오면 댓글 분위기는 뻔하다. 역시 후진국, 세계와 글로벌한 생각은 하지 못하는 후진국 등. 중국과 인도의 대기 미세먼지가 그렇게 심한 이유를 그들에게서만 찾았다. 선진국에서 입고 먹고 사용하는 물품과 음식, 제조품 등의 상당수가 인도와 중국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어린 딸아이를 키우며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매번 서쪽 바다 건너를 원망했다. 하늘까지 닿은 벽을 세우거나 대륙 전체를 거대한 밀폐 용기에 집어넣고 싶었다. 책을 읽고 나서, 집에 메이드인차이나가 얼마나 될까 싶어 잠시 찾아봤다.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많이 찾았다. 나도 어느새 선진국 국민 흉내 내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서구는 콩고에 막대한 빚을 지고 있다. 콩고에서 나온 팜유 덕분에 고래는 멸종을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콩고인들은 여전히 고통에 시달린다. 벨기에는 식민지를 건설한 후 국가를 세웠지만 1960년대 초 아무런 대책 없이 떠나 버렸다. 그 이후로 콩고는 길고 끔찍한 방황의 길을 걸었다.” (p.543)

고릴라와 다른 야생 동물들을 진정 위협하는 건 석유 회사나 경제성장이 아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나무를 연료로 쓰는 것이 진정한 문제였다.” (p.158)

 

환경과 자연,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람이 피해를 보고 있다. 식민지배를 하며 좋은 거, 필요한 거 쏙쏙 빼먹고 난 뒤 모른 채 해버렸다. 본인들은 온갖 지하자원과 석탄, 석유 사용하며 잘살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보니,

? 콩고가 있었네. 맞아, 아름다운 초원과 야생 동물, 고릴라? 고릴라! 맞다. 고릴라를 살려야 해.’

고릴라를 살리기 위해서 사람들이 죽어난다. 콩고사람들이.

 

모든 전문가가 동의하는 그 해법은 콩고강에 그랜드잉가댐을 건설하는 것이다. (중략) 잉가댐을 건설하면 10만 메가와트급 발전이 가능합니다. 아프리카 전체 전력 수요를 충당할 수 있죠.” (p.188)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값싼 전기와 LPG를 공급하기 위해, 또 유럽 연합과 미국 자선 사업가의 원조금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 콩고는 치안과 평화 그리고 무엇보다 산업화를 이루어야 한다. 수많은 나라가 과거에 그런 방식으로 가난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p.188)

 

댐과 원자력 발전소는 없애는 추세다. 선진국들이 그러하다. 자기들만 하면 되는데, 오지랖이 넓으신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과 제3세계 가난한 국가들도 그러길 강요한다. 폭력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저자가 소개한 환경 식민주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본인들은 쓸 거 다 쓰고, 할 거 다 해서 먹고 살기 좋아져 놓고, 이제 가난한 나라들이 뭘 좀 하려고 하면 모조리 딴지를 거는 것이다. 그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환경 식민주의! 어이가 없네. 말 그대로 내로남불.

 

 

충분히 관리 가능함.

 

근본적으로 신재생 에너지의 문제는 기술로 해결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는 게 문제다.” (p.373)

 

앞서 밝힌바, 아내의 과제 자료를 찾으며 알게 된 부분이다. 풍력 발전이라는 것의 장단점을 찾아보면서 그때는 생각했다.

우와 돈 많이 든다. 단점도 진짜 많네? 근데, 이러면 바다 생물들도 피해를 보는 거 아냐? 그래도! 환경과 후손을 위해서라면 이쪽으로 가야지.’라고. 근데, 저자 말이 진짜 맞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는 게 문제다. 지속할 수 있고, 어떤 변수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발전을 담보할 수 있는 에너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비용도 많이 들고, 위험 부담도 있다. 풍력 발전을 포함한 신재생 에너지 산업에 대한 광고나 홍보에서는 대체로 단점은 없다. 화석 연료와 원자력 에너지의 단점을 더욱 부각해 비교할 뿐이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다는 당연한 진리가 새삼스러울 만큼 일방의 주장에 호도됐던 것일 수도 있다.

 

내 목표는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보편적 풍요를 누리게끔 하는 것이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는 이 책을 썼다.” (p.28)

우리가 직면한 환경 문제는 중요하지만, 관리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세계의 종말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p.29)

 

저자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 충분히 관리 가능하다는 것이다. 수십 년 전부터 서구에서는 세계의 종말로 묘사해 왔고, 우리나라에서도 중국발 미세먼지가 심해지면서부터 급속도로 신재생 에너지 산업으로 정책 기조가 바뀌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환경주의자는 아니지만 대체로 진보적 어젠다에 관심을 기울이고 동의를 했던 터라, 원전 폐쇄는 당연한 것이었다. 진리처럼 받아들였었다. 원자력 에너지가 가장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라고 한다. 솔직히, 이 책 한 권을 읽고 내 생각이 모두 바뀌지는 않았지만, 충격을 받은 건 사실이다. 원자력이 그만큼 위험하지 않다는 객관적 주장 앞에 나는 아직 갈팡질팡한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유럽에서 가장 경제 규모가 큰 국가에서 탄소 배출량이 1970년대 정점을 찍고 내려오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석탄에서 천연가스와 원자력으로 에너지 전환을 이룬 덕분이다. 빌 매키번, 그레타 툰베리 등 많은 기후 활동가들이 맹목적으로 반대하는 기술의 힘으로 우리는 기후 변화를 막아 내고 있다.” (p.79)

 

이미 기후 변화를 막아 내고 있었고, 그것은 충분히 관리 가능하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8살 딸아이에게 편하게 말했다. 지구를 지켜내기 위해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배워오는 것을 같이 이야기하고, 할 수 있는 간단한 것은 같이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쉽게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저자의 주장과 인용한 자료가 거짓이라면 차라리 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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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직 노가다 노동자들께 추천. | 사회 2021-03-30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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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노가다 칸타빌레

송주홍 저
시대의창 |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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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사, 나 따라다녀~”

 

 오전 내내 수십 미터 상공에서 곤돌라를 타고 용접을 하고 산소 질을 하고 내려오니, 어김없이 목수 사장님이 한마디 한다. 주차타워 설치작업이 워낙 위험하고 자재 자체가 크다 보니 현장에서 일하는 다른 노가다 아저씨들에게는 호기심 거리였다. 참도 안 먹고 오전 내내 공중에서 고생이 많다며, 레쓰비 캔커피를 건네주기도 했다. 돌아가신 아버지 연배쯤 되는 목수 사장님은 특히, 내게 관심이 많았다.

젊은 나이에 기술 배우면 좋아, 좋지. 잘 생각했어.”

근데, 이거 너무 위험해. 목수일 배워~ 우리가 뭐 곤돌라를 타기를 하나~ 빔을 타기를 하나~ 못질하면 끝이야.~”

김기사 지금 배워서 10년만 지나 봐, 제일 젊은 오야지 되는 거야~ 잘 생각해봐~”

아직도 퇴근 안 해? 으이구, 소장새끼가 악덕이구만. 고생해~”

 

 처음엔 관심이 부담스럽고 귀찮았다. 매일 말을 걸고 관심을 가져주니, 하루걸러 목수 사장님이 안 보이면 궁금해 졌다.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 작은 키에 다부진 체격, 장정 수십 명을 한마디 호통으로 긴장시키는 카리스마. 여튼, 내게는 참 잘 해주셨다.

 목수 사장님과 겹쳐 일한 기간이 대략 보름 정도. 모든 공정이 끝나고 인사를 하시고는 본인의 BMW7시리즈 트렁크를 멋지게 열었다. 작업복을 갈아입고선 다시 우리 작업장으로 오셨다.

진짜, 목수일 배워볼 생각 없어?”

우물거리는 내게 무심한 듯, 명함을 주고 BMW7 시리즈는 떠났다.

 주차타워 설치일을 생각보다 빨리 그만두지 않았다면, 나는 목수 사장님께 전화했을 것이다. 210개월 전국의 노가다판을 돌아다니며 만난 노가다꾼들 중 가장 젠틀하고, 멋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노가다꾼들은 기본적으로 화가 많다. 별거 아닌 일에도 불같이 화를 내곤 한다. 무언가 모르거나 못하면, 한마디로 어버버하고 있으면 쌍욕부터 날아온다.” (p.49)

 

 쌍욕, 참 많이 먹었다. 책상에 앉아 있는 일만 하다가, 정년 넘어서도 일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다. 답은 기술밖에 없었다. 대학 때 3개월 정도 지하철 공사판 철근 보조공으로 일해 본 게 기술직(?) 경험은 전부였다. 잘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도전해 보고 싶었다. 당시 가장 월급을 많이 주는 곳이 기계식주차장(주차타워) 설치직이었다. 월급을 많이 주는 곳이 많이 힘든 곳이라는 걸 일을 시작하고 이틀 만에 알았다. 6개월까지는 온몸이 아팠다. 30년 동안 안 써본 근육들이 놀라, 적응하는데 걸린 기간이다. 30년 동안 들어본 적 없던 고밀도의 쌍욕도 6개월 정도 먹으니 적응되었다.

 노가다꾼들은 화가 많을 수밖에 없다. 현장은 전쟁터니까. ~무 시끄럽다. 2, 30년 되신 노가다꾼들은 대게 가는귀가 먹었다. ‘너무 소리 지르는 거 아니야?’싶을 정도로 소리쳐야 겨우 듣는다.

 노가다 현장 용어가 거의 일본 용어다. 정확히 말해, 일본어가 이상하게 변형된 것들이 많다. 책에서 재미있게 묘사되고 설명된다. 처음에 가면 당연히 모른다. , 저기 바라시 해~! 뭐래는 건지 알 수 없다. 욕을 먹으며 용어를 배운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노가다 칸타빌레연재를 딴지일보에서 접했다. 한 번씩 올라올 때마다 재미있게 읽었다. 40년 넘게 살면서 노가다 현장 경험을 해본 건 3년 정도가 전부지만, 참 많은 일을 겪었다. 그래서, 작가의 글에 공감하고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망치로 자기 손 때려보았는가.”

~무 아픈데 누굴 탓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는 순도 100퍼센트 내 잘못이라, 화풀이할 곳이 없다는 사실 탓에 더 아픈 기분에 사로잡혀야 하는 고통이랄까.” (p.137)

 

 때려봤다. 많이.

 빔에 매달려 볼트를 체결하고 용접을 하고 산소질을 하다 보면 자세가 안 나온다. 안정된 자세가 아닌 채로 망치질을 하니 내 손 때리기 일쑤였다. 진짜 탓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는 기분 잘 안다. 더군다나 나는 고공 작업을 하는 중이니, 아프다고 내려올 수도 없었다. 일단, 하던 작업을 마무리하고 장갑을 벗어 상처를 확인해야 했다.

 사장이 용접한다고 잡으라고 해서 잡았더니 내 손 위로 용접 불똥이 우수수 떨어졌다. 양쪽 손등에 아직 화상 자국이 선명하다. 거길 잡고 있으면 어떻게 하냐고 욕먹었다. 다치고 욕먹고. 1년쯤 지나 기공이 되고 나서 조공과 같이 용접을 할 때면, 꼭 내 상처를 보여줬다이렇게 되기 싫으면 내가 말하는 위치를 잡으라고. 나도 말해주고 잡으라고 했으면 안 다쳤을 텐데, 썩을 사장 놈.

    

 

땀 뻘뻘 흘리며 종일 몸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무념무상에 든다. 그런 날,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씻고 침대에 누우면 뭐랄까. 침대에서 5센티미터쯤 둥둥 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가볍고 산뜻하고 유쾌해지는 기분이랄까.” (p.165)

 

 이런 적도 있다. 두 개 현장이 겹쳐져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공기를 맞추기 위해 야간작업까지 해야 했다. 자재가 크고 다루는 공구도 무거워 쉬면서 하지 않으면 효율이 떨어진다. 하지만, 효율 따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하루종일 일하고 나니, 저녁밥도 일에 안 들어갔다. 일부러 술만 먹고 씻었다. 화려하게(?) 장식된 모텔방 천장을 보고 누워 있는데, 유체이탈이 되는 것 같았다. 몸이 붕 뜨면서 머리가 개운해지고 완전한 잠의 세계로 빠져들기 직전의 기분. 물론, 다음 날 아침 일어나는 건 너무 힘들었지만.

    

 

선입견 품고 바라봐서도 안 될 일이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고상하게 볼 필요도 없다. 그냥,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아저씨들의 평범한 밥벌이 현장이다.” (p.305)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나의 노가다 경험이 그대로 투영되었던 영향이 크다. 일했던 현장, 목수 사장님, 매일 만진 철제 빔과 공구들, 노가다 현장의 소음과 먼지, 가득한 쌍욕들과 노가다 용어들.

 선입견은 많이 사라진 듯하다. 노가다가 돈이 된다는 건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다만, 힘든 일이라 많은 사람이 할 수 없을 뿐이다. 주변에 노가다를 하며 나보다 3배 넘는 월급을 버는 사람도 있다. 아무도 선입견으로 그 사람을 보지 않는다. 그저 나와 다른 밥벌이 현장에서 살아가는 보통 아저씨일 뿐이다.

 가끔 생각난다. 내게 명함을 쥐어주던 목수 사장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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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쇄를 읽는 안도감이란... | 문학 2021-03-30 12:34
테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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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내가 죽고 싶다고 하자 삶이 농담을 시작했다

김현진 저
프시케의숲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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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진의 신간을 반갑게 구입했다.

“2라는 글자에 안도했다. 좋아하고 기다리는 작가가 몇 있는데, 김현진 작가도 그중 한 명이다. 다른 작가들은 대부분 유명한 사람들이라 몇 쇄이런 건 잘 확인하지 않는데, 김현진 작가의 책은 확인하고 싶었다. 1쇄가 몇 부나 출간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1쇄를 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출판시장이야 옛날부터 어렵다고 했었고, 이런 어려운 여건에서 2쇄를 구입했다는 것이 기분 좋았다.

고종석씨의 책을 읽다 알게 된 김현진 작가의 글은 재미있다. 진짜 재미있다. 안타깝고 마음 아프고 일견, 공감되고 때론 답답하기도 하다. 하지만 읽다 보면 재미있다. 김현진 작가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2019년 봄에 나의 살들은 최고점에 다다랐는데, 대중교통에 탑승하면 사람들이 자꾸만 자리를 양보해주었다. 처음에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저 임신 안 했어요하고 사양했지만, 나중에 정 피곤할 때는 임산부인 척 그냥 앉아버릴 때도 한두 번 있었다.” (p.31)

 

임산부인 척 그냥 앉아버릴 때도 한두 번 있었단다. 나는 한참 웃었다. 한두 번이 아닐 거라는 짐작을 하니, 더 웃겼다.

날씨가 갑자기 더워져 얇은 근무복을 입었다가 화들짝 놀랐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완전 아저씨였다.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당연한 아저씨지만 배는 저 정도는 아니었다. 적어도 작년까지는 말이다. 근무복이 별로 타이트하지 않는데도 불룩 나온 앞 배와 옆구리가 도드라졌다. 겨드랑이 부분도 끼는 것 같고, 팔을 뻗으면 유독 손목 위로 옷이 올라왔다. ... 운동 할 때가 된 것이다. 임산부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 더 날씬한 아저씨가 되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다.

 

 , 이런 노래를 부르며 아직까지는 육중한 몸집으로 물소처럼 트랙을 돌진하는 내 꼴이 우습긴 하다...(중략) 한 마디로 매일 아침 달리는 것은 그날그날 마음의 때를 이태리 타월로 벗겨내는 것 같은 기분이다.” (p.36)

 

투쟁가를 들으며 운동을 한다는 작가의 소식이 반가웠다. 나는 아무것도 듣지 않고 달린다. 이태리 타월로 벗겨내는 정도는 아니지만, 새벽공기를 가르며 달리면 행복하다. 물론,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이지만.

 

그들은 여성이 날씬하면 손을 대고, 뚱뚱하면 막 대한다.” (p.40)

 

작가의 글은 내게 화두가 된다. 딸아이를 키우는 처지에서는 더욱 그렇다. 100% 동의한다. 예전보다는 나아졌다는 말들을 하는데, 정말 그럴까 싶다.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소유물로 간주하는 남성이 많다. 애인, 아내, 자식들에게도 그렇다.

 

우리 집은 아버지의 오랜 실직 등으로 쭉 가난했다. 엄마가 내 저금통을 살짝 가져다가 생활비에 보태 쓴 뒤 도둑이 훔쳐 간 거라고 둘러댈 정도로 가정 형편이 최악이었다.” (p.180)

잔뜩 화가 난 아버지는 나에게 손찌검을 하다 말고 마루에 놓여 있던 케이크 상자를 가져와 안방 바닥에 집어 던지고는 아예 발로 밟아 뭉개 버렸다. 어떤 모양이고 어떤 맛일지 궁금해 살짝살짝 엿보던 내 인생의 첫 번째 생일 케이크는 그렇게 엉망으로 짓눌려 북구 불가의 상태가 되고 말았다.” (p.182)

 

지난 책에서는 자세하게 소개하지 않아서 몰랐다. 어떤 기분으로 저 내용을 책에 실었는지 가늠할 수 없다. 작가를 응원하는 팬의 마음은 단 하나다. 그저 과거의 상처에서 조금이나마 치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원룸 한 칸에 둘이 사는 젊은 부부 사이에 끼어 살겠다고 내가 거기로 간 건 정말 도른자였다.” (p.210)

처제, 그래요. 뭔지 몰라도 씁시다. 쓸게요. , 내가 나중에 벽에 똥칠하면 처제가 간호라도 해주겠지? 내가 신장 아프면 혹시 하나 떼줄지도 모르고...” (p.218)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다른 이들에게는 도른자였을 지라도, 가족이 된 식구들끼리는 도른자가 아니다. 작가를 진정으로 아끼고 감싸준 사람들이 있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작가의 2쇄를 구입할 수 있어서 다행이고, 작가에게 진정한 가족이 생겨 다행이다.

    

내가 세상에 호된 어퍼컷을 맞아 쓰러져 있는 동안 우리 가족은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할 태세로 나를 기다려 주었다. 이 나이를 먹고도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고 부레옥잠처럼 둥둥 떠다니는 인생이지만, 이 빚을 꼭 일부라도 갚고 싶다. 부디 기다려 주세요. 나의 사랑하는 채권자들이여.” (p.222)

 

진정한 가족의 품 안에서 편하고 안정된 부레옥잠이 되었으면 좋겠다. 천적도 없고, 날씨도 궂지 않아 한참을 둥둥 떠다녀도 아무도 간섭하지 않고 방해하지 않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작가의 과거얘기가 그만 등장하는 글을 많이 써주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가족들과 겪는 소소한 일상만으로 나와 같은 독자에게는 충분하다.

둥둥 떠 있는 부레옥잠이 훅 하고 가라앉지만 앉는다면 기꺼이 기다릴 수 있다. 빚은 갚지 않아도 되니, 부디 놓지는 않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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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람 | 인물 2021-03-22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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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나리!

김동진 저
참좋은친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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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스터션샤인에 푹 빠져 있다. 방영 당시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다. 탄탄한 각본과 보석 같은 배우들의 연기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빠져들게 한다.

어젯밤에는 13회를 봤다. 요셉이라는 선교사가 나왔다. 주인공인 이병헌이 연기하는 주한 미 공사대리 최유진 대위는 노비 출신으로 미국인 선교사에 의해 미국으로 건너가 미군이 된 후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를 살려주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해준 이가 요셉이라는 선교사다. 조선으로 돌아온 최유진 대위는 여전히 조선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 은인인 요셉 선교사에게 편지를 보낸다. 속히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던 차에 갑자기 요셉 선교사가 살해당한다. 요셉 선교사는 고종 황제의 특사로 청나라에 밀서를 전하려다 이를 미리 눈치챈 친일파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놀랐다.

마침, 이 책 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나라!를 다 읽은 차였기 때문이다.

 

헐버트는 총칼로 일본과 싸운 군사적 영웅은 아니다. 세력을 이끄는 결사체의 지도자도 아니다. 그러나 헐버트는 1895년 을미사면 직후 고종 침전에서 불침번을 선 이래 필봉으로, 민권운동으로, 밀사 활동으로, 언론 회견과 기고로, 집회와 강연으로 반세기에 걸쳐 일본 침략주의에 맞서 싸운 한국 독립운동의 횃불이자, 어떤 결사체 못지않은 대일항쟁의 화력이었다.” (p.363)

 

미스터션샤인의 각본을 쓴 김은숙 작가는 분명 헐버트라는 독립운동가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몰랐다. 전혀 몰랐다.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다고 자부하는 나도 헐버트라는 이름조차 몰랐다. 책을 읽는 내내 부끄러웠다.

 

 

조선을 사랑한 사람

 

헌사에 이은 머리말에서 이 책은 악의에 찬 외세에 의해 시달림만 받을 뿐 올바른 평가를 받아 본 적이 없는 한 국가와 민족에 대해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쓴 사랑의 열매(a labor of love).’라고 하였다.” (p.224)

 

헐버트는 누구보다 조선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1905년 을사늑약 직후, <대한제국의 종말>이라는 책을 국외에서 출간한다. 국외 출간의 이유는 한민족의 역사,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을사늑약의 억울함을 국제사회에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p.222) 그는 어떻게든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겪는 불의함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 혼자서 동분서주했다. 책을 출간하고 강연을 다니고 기고를 했다. 일본의 침탈에 분노하여 분연히 일어선 조선인이야 내 나라니까라는 이유를 댈 수도 있다. 하지만 헐버트는 이방인이다. 고종의 청으로 학교를 만들어 신식교육을 하러 온 교사였다. 교사 생활만 하고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아무도 그에게 왜 조선을 위해 힘쓰지 않느냐고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그는 조선을 너무 사랑했다.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전심을 다 하고 모든 것을 내어놓는 것 말고는 헐버트의 생애를 이해할 수 없다.

그의 조선 사랑은 조선인과 조선 문화 조선의 글자인 한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했다.

 

헐버트는 학생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자신의 조선어 공부는 의무라고 여겼다.” (p.50)

조선 사대부들은 한자를 많이 안다는 우월감에 취해 한글 쓰기를 거부하였다. 실학의 대가로 지칭되는 박지원, 정약용도 한글 서적을 한 권도 남기지 않았다.” (p.72)

 

한국의 영어학원에서 일하는 원어민 강사가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영어만 써도 불편한 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100여 년 전 헐버트는 그러지 않았다. 한글 공부를 당연시했다. 스스로 한글을 깨우치는 데 힘썼다. 또한, 최초로 <훈민정음> 서문을 영어로 번역해 발표했다. 나아가 한국어와 태평양 국가 언어·대만 토착어와의 유사성을 비교 연구하여 발표하고 한글 소설·희곡도 직접 쓰기에 이르렀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제외하고 헐버트의 조선과 조선의 글, 조선의 문화에 대한 헌신을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포레스트 검프를 생각나게 하는 사람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 검프는 미국의 굵직한 역사에 매번 등장한다. 우연히 발을 들여놓게 된 사건이 매번 역사적인 사건이 된 것이다.

 

한철호 교수는 서재필이 단시일 내에 한글과 영문으로 <독립신문>을 창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헐버트의 삼문출판사 시설을 이용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p.134)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주시경은 삼문출판사에서 밤에까지 일하며 학비를 보탰다.” (p.160)

 

헐버트가 운영했던 삼문출판사를 통해 역사적인 <독립신문>이 창간되었다. 비록 주권은 일본 제국주의에 침탈당했지만, 우리 글로 된 신문을 창간해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밑거름이 된 것이다. 또한, 삼문출판사에서 학비를 벌어 공부한 주시경은 역사적인 국어학자가 되었다.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주시경을 국어학자가 만들어 내기 위해 출판사를 운영한 건 아니겠지만 결국 헐버트의 출판사를 통해 역사의 한 페이지가 완성된 것이다.

 

 

신앙을 행동으로 옮긴 사람

 

“1905년 을사늑약을 전후하여 미국의 선교본부는 한국에 파송한 선교사들에게 정치와 종교는 불리해야 한다는 원칙을 시달하였다. (중략) 헐버트는 미국 선교본부에 친일 성향의 선교사들을 비난하는 서신을 보내 개신교의 침묵은 한국인들을 고통에 빠트리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p.234)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에서도 자주 나오는 장면인데, 구한말 열강은 조선의 편이 아무도 없었다. 그저 이권을 챙기기에 급급했다. 손쉬운 먹잇감을 가운데 두고 게걸스러운 침을 흘리며 서로 눈치만 볼 뿐이었다. 특히, 미국은 일본을 통해 중국 대륙으로의 진출을 꿈꿨다. 일본의 조선 침탈은 어쩌면 제 손에 피 묻히지 않고 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선교를 위해 조선에 와 있던 선교사들과 미국 본토의 선교본부는 동상이몽이었을 테다.

헐버트는 참지 않는다. 자신의 신앙과 그에 기반 한 정의는 침묵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교육도 그러했다. ‘선교본부에서 명령했으니 따라야지.’가 아니었다. 친일 성향의 선교사들을 비난하는 서신을 보내고 개신교의 침묵을 비판했다.

비판과 회개 없이 양적 성장에만 함몰되어 온 지금의 한국교회에 울리는 경종이 크다.

 

 

일본에는 악몽이었던 사람

 

을사늑약을 전후한 한미일 관계를 오랫동안 연구한 일본 조치대학교 나가타 교수는 일본은 한국인 독립운동가들과는 달리 헐버트의 반일운동에는 손을 쓸 수가 없었다. 헐버트의 특이한 한국을 향한 열정은 일본인들에게는 악몽이었고, 한국인들에게는 희망이었다.’라고 헐버트를 평가했다.” (p.317)

 

일본은 개방 이후 막후에서 외교에 온 힘을 쏟았다. 드넓은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구미 열강의 청나라와 러시아에 대한 견제 야욕이 일본의 욕심과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헐버트의 꾸준한 기고와 서신, 강연에도 미국 본토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어쩌면 귀찮은 존재였을지도 모르겠다. 일본 제국주의는 거칠 것이 없었다. 야금야금 조선을 먹어 들어가며 대륙진출을 꿈꿨다.

다만, 헐버트만은 일본도 어찌할 수 없었다. 이미 국외에 알려진 인사를 드라마에서처럼 쉽게 처단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일본에는 악몽이었던 만큼 조선에는 희망이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람

 

헐버트는 조선 말기 1886년에 내한하여 63년을 한민족과 함께했지만, 그의 유품은 많지 않다. 변변한 사진도 없다. (중략) 그가 남긴 저술이 그의 일생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p.12)

 

수많은 기고와 강연을 한 사람의 유품이 남지 않았다는 것도 의문이다. 사진조차 몇 장 없다니. 안타깝다.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을 하지 못한 탓이 크다.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의열단 단장 김원봉 선생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한 실정이다. 독립운동가의 후손 중 상당수는 선친의 위대한 업적을 입 밖에 꺼내지 못한 채 죄인처럼 궁핍한 삶을 살았고, 반민족행위자들의 후손 중 상당수는 부와 명예를 누리며 아직도 기세등등해 살고 있다. 외국인 독립유공자에 대한 인식과 연구는 더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저자인 김동진 선생은 학창시절 헐버트의 저서 ‘<대한제국의 종말(The Passing of Korea)>을 읽고 헐버트의 한국사랑, 학문적 기품, 가치관적 삶에 매료된 김동진은 국제 금융기관에 근무하면서도 끊임없이 헐버트를 탐구하였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헐버트라는 존재를 알게 되어 읽고 공부하지 않는 이상 제대로 알 길이 없다. 김동진 선생은 ‘1999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를 발족하고,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를 이끌며 헐버트 기념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여 헐버트 알리기에 앞장서 왔다. 1999년 이래 매년 추모식 거행, 후손 초청, 학술회의 개최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한 사람의 헌신적인 노력 없이는 될 수 없는 일이다.

해방 70년이 훌쩍 지나 이제는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한국은 제대로 된 역사를 세우고 국가를 위해 희생한 유공자들에 대해 재평가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아직도 역사의 그늘 아래 감춰져 빛을 보지 못하고 있을 수많은 독립유공자를 찾아내어 제대로 된 감사와 예우를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선진국의 자세다.

더불어 어린 학생들의 교과 과정에도 반드시 헐버트와 같은 외국인 독립유공자들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코로나 팬더믹 시대를 겪으며 역사상 어느 때보다 세계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는 현실이다. 아프리카 어느 국가, 남미의 어느 국가, 동유럽의 어느 국가에서 일어나는 불의와 비리·침탈과 전쟁에 대해서 눈감지 않을 가치관을 가르쳐야 한다.

헐버트가 조선을 위해 한 숭고한 사랑의 생애는 그런 교육에 더욱 적절할 것이다.

 

헐버트의 죽음에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헐버트가 장기간 여행의 여독을 이기지 못하고 내한 7일 만에 서거하여 전혀 증언을 남기지 못한 점이다.” (p.418)

 

해방 후, 이승만은 헐버트를 초청한다. 이미 고령이던 헐버트의 건강을 걱정한 가족들은 만류했지만,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80이 넘은 나이로 태평양을 횡단하는 뱃길은 무리였다. 내한 7일 만에 서거한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굳이 왜 초청을 했나? 라는 의문은 쓸데없다. 헐버트는 해방된 조선의 산과 들, 땅과 공기,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을 것이다. 평생을 사랑하고 아낀 조선을 자신의 생애 끝자락에 온몸으로 새겨 넣고 싶었을 것이다.

 

좋은 책을 통해 훌륭한 독립유공자를 만나 뵙게 되었다. 할 수 있는 한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고 7살 딸아이에게도 알려 줄 것이다. 나도 절대 잊지 않고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 것이다.

 

헐버트 선생님, 마음을 다해 감사드립니다.

계신 곳에서 영면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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