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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찾아야 할 비상구 | 사회 2020-07-2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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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마지막 비상구

제정임 편
오월의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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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사, 저 아줌마들 월급 얼만 줄 알아? 너보다 많이 받을걸?”

 

강 부장님은 한수원 본사에서 승강기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1회 승강기 정기점검 시 대구에서 경주로 지원을 갔었다. 점심을 먹고 건물로 들어가려는데 청소업무를 하시는 분들 열댓 명이 모여 왁자지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강 부장에게 전해 들은 그분들의 월급은 나보다 훨씬 많았다. 오후 4시 칼퇴근이라는 것까지. 지역주민이 1순위이고, 혹시나 그만두는 사람이 있으면 들어오기 위해서 줄을 서 있는 사람이 엄청나다고 했다.

공기업이라 돈이 많은가 보다.’ 싶었다.

    

원자력 산업의 이해 당사자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마치 일반 주민의 의견인 듯 언론에 글을 싣는 건 대중 여론을 호도하겠다는 것. 언론을 통해 조금씩 실상이 드러나고 있지만, 이러한 일들은 지금껏 계속 반복돼왔다.” (p.249)

 

이 책을 읽고 왜 그렇게 한수원 본사 건물 청소노동자나 청원경찰들의 월급이 많은지, 강 부장님의 월급이 왜 나보다 2배나 많은지 알게 되었다. “진보언론이라 불리는 <경향신문>, <한겨레> 역시 각각 3,600만원, 2,300만원의 협찬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p.237)

철두철미한 계획하에 뿌려진 돈은 원자력은 안전하고 효율적이며 지역 발전과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는 최고의 수단이라는 인식을 심었다. 그들의 철두철미한 계획에 우리는 무차별적으로 노출되고 세뇌되어 온 것이다.

처음 한수원 본사로 승강기 점검 지원을 가라고 했을 때,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원전? 위험한 거 아냐? 생각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가 본 한수원 본사는 전혀 위험한 곳이 아니었다. 경주에서도 토함산 방향으로 한참을 들어가야 나오는 본사 건물은 멀리서 보면 우주선처럼 생겼다. 크고 현대적이며 깔끔하다. 내부는 두말할 것 없다. 한수원 본사라는 간판을 모르고 간다면 흡사 대형 박물관이나 과학관 같은 모습이다. 우리에게 착시를 일으킨다.

강 부장님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얘기가 새삼 부끄럽다.

청원경찰이든, 청소든 자리 나면 꼭 얘기해 주세요. 당장 경주로 주소지 옮기게요. 하하

 

정부가 월성원전과 주변의 단층이 어떻게 분포돼 있고 어떤 위험성이 있으며, 위험성 대비 원전의 안전성은 어떤지 설명해야 하는데, 단층 분포에 대한 조사 자체가 없다.” (p.64)

정부·연구원·규제기관·학계가 똘똘 뭉쳐 있다. 이런 마피아도 없을 거다.” (p.219)

부품을 100퍼센트 주문 생산하고, 수요도 한수원으로 제한돼 있는 핵 산업은 담합하기 굉장히 좋은 구조” (p.226)

 

무시로 겪는 착시는 노골적인 담합과 그들만의 비밀주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견제를 하고 감시를 해야 하는지, 정말 원전을 대체할 수단은 없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게 만들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제대로 된 수습이 되지 않는 위중한 상황임에도 똘똘 뭉쳐진 그들의 카르텔은 원전의 속살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차츰 잊는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7번째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고, 1인당 플라스틱 사용량은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화석연료 남용과 에너지 과소비는 세계 최악 수준의 미세먼지로 돌아와 국민에게 고통을 안긴다.” (p.12)

한국의 국토 면적 대비 석탄발전용량은 이미 OECD회원국 중 가장 크다.” (p.166)

    

중국 탓만 할 게 아니다. 이번에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확신하게 된 것이다. 차량운행이 현저히 줄자 대기 자체가 달라지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세계4대 깡패국가에서 벗어나려면 바짝 긴장하고 더 늦기 전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책에는 석탄과 원전을 대체하는 유럽의 사례를 소개한다.

 

프라이부르크가 이렇게 태양광을 활용한 생태도시 건설에 앞장설 수 있었던 것은 독일 내 다른 도시들에 비해 일조량이 풍부하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중략) 놀라운 것은 이것이 한국의 일조량보다는 적다는 것이다. 태양광이 절대량보다 어떻게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p.335)

 

70년대 오일쇼크를 겪은 이후 유럽은 발 빠르게 대처했다. 석탄과 원자력이 아닌 것에 주목했고 성과를 이루어 냈다. 반가운 것은 한국의 일조량보다 적은 도시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는 것이다.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한국이 기후 깡패국가가 맞았구나! 자각하게 되었지만, 한국만큼 코로나에 잘 대응하고 있는 국가가 없는 것을 전 세계가 알게 되었다.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

 

제주도의 풍력 제도는 풍력 자원의 공공적 관리 기반을 구축하고 개발 이익의 공유를 제도화한 소중한 경험” (p.403)

일반 시민이 자유롭게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사고팔 수 있는 시스템과 이익 공유 체계를 갖추면 태양광, 풍력 등이 훨씬 빨리 확산될 것이다.” (p.509)

 

절친한 친구가 서귀포 대정읍에 살고 있다. 그 덕에 지난 2년 동안 6차례 제주도에 갔었다. 친구 집 동네에 바람이 정말 많이 분다. 내륙에서 그 바람을 맞았다면 분명 태풍이 온 줄 알았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제주도를 여행할 때 풍력발전기를 많이 봤던 것 같다.

이미 제주도에는 풍력 자원의 비율이 상당하다는 소개가 반가웠다. 그리고 에너지 전환과 재생에너지산업의 발전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개발 이익의 공유와 전기를 사고팔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이다. 나도 저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전기를 사고판다고?’, ‘전기는 한전에서만 관리하는 거 아니었어?’ 우리 동네에서 태양광과 풍력으로 생산한 전기를 직접 사용하고, 남은 전기를 팔 수 있다는 것. 에너지 전환을 위한 가장 중요한 생각의 전환이다.

 

공신력 있는 정부 기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태양광의 유해성에 대한 허위 정보가 퍼지는 것은 친 원전 세력이 의도적으로 유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 (p.430)

 

하지만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한전과 한수원은 아주 오래되고 아주 큰 조직이다. 노련하고 야비하게 계속해서 착시를 심을 것이다. 멋지게 포장하고 간사하게 설득할 것이다. 그래서 나같은 사람이 한수원에서 월급 많이 받는 노동자들을 보며 부러워하게 만들 것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적어도 후세대에는 지금보다 조금 더 안전한 세상, 깨끗한 환경을 물려주어야 한다. 이 책 마지막 비상구와 같은 책이 많이 읽혀야 할 텐데, 괜한 걱정이 앞선다.

제주도에 내려가 사는 친구를 보며 우리 가족도 제주도 이주를 계획 중이다. 그것을 위해 올 초 이직도 했다. 이직한 직장에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해서 제주도로 향할 계획인데, 자격증이 하나 더 필요할 것 같다.

신재생에너지 관련 자격증.

한수원 외주 건물 관리직을 하며 돈을 버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강 부장님께 다시 전화해야겠다. 자리 알아보지 않으셔도 된다고.

 

좋은 책을 읽게 되어 감사하다. 학생 기자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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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 속솜허지 않아야 한다 | 역사/문화 2020-07-2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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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주 4.3을 묻는 너에게

허영선 저
서해문집 | 2014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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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광역시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나의 절친한 친구가 사는 곳이다. 그의 제주 이주는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10년간의 직장생활을 갑자기 그만두고 내게 통보했다. 몇 개월 여행하다 돌아오려니 했는데, 4년이 흘렀다. 농사도 짓고 직장생활도 하면서 지낸다. 덕분에 우리는 휴가만 생기면 제주도로 날아간다. 8번 다녀왔다. 가기 전에는 비싸고 복잡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번 갔다가 오니, 다시 안 갈 수가 없는 곳이다. 매력적인 곳이다.

 

제주도의 매혹적인 풍광에 사로잡혔다 하는 이들, 제주도의 상처를 느끼지 못하였다면 어찌 제주도를 다 본 것이라고 말하겠느냐” (p.21),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 허영선, 서해문집

제주경찰의 3·1절 대민발포는 천 프로, 만 프로 경찰이라는 국가권력의 잘못이다. 변명한 여지는 0.000001프로도 없다.” (p.220),우린 너무 몰랐다, 김용옥, 통나무

 

나는 제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지지하고 존경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사과한 것이 제주 4·3을 알게 된 계기다. 그리고 친구의 제주 이주가 없었더라면 그전처럼 잊고 지냈을 거다. 몰라도 내가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영향이 없으니까.

 

이탈리아의 역사철학자 베네데토 크로체가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 All history is contemporary history.’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p.45), 우린 너무 몰랐다, 김용옥, 통나무

걸어 다니거나, 기어 다니는 것은 살려두지 않았다. 세 살, 네 살 난 아이가 기어서 도망가는 것도 쏘았다. 이 밭에도 저 밭에도 냇가에도 죽은 사람뿐이었다.” (p.192),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 허영선, 서해문집

 

역사는 반드시 반복된다. 청산하지 않은 잘못된 역사는 현대를 망가뜨린다. 우리는 지난 현대사를 통해 이것을 체험했다. 독재자와 그가 남긴 독재의 파편을 말끔히 제거하지 못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분명히 경험했다. 대통령이라는 허수아비를 세워둔 채 마스터 오브 퍼펫이 국가를 경영했고, 생때같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생방송으로 지켜봤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반드시 되돌아오고, 그렇기에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

 

언젠가, 서귀포 사계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친구가 이야기했다.

제주, 여기도 진짜 적응하기 힘들다.”섬이니까 그런가 보다 했다.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다고 했다. 밭을 분양받아 농사를 조금 지었는데, 도시 출신이 아는 게 뭐가 있었으랴. 좋지 않은 작황에 임대료도 제때 지불하지 못했는데, 땅 주인인 제주 도박이 할머니가 그렇게 매몰찰 수 없었다면서 연거푸 술을 속으로 밀어 넣었다.

 

조병옥은 제주도민은 이미 70%가 좌익정당에 동조적이거나 가입되어 있다고 선전하면서, 제주도는 좌익의 본거지라고 규정했다.” (p.222), 우린 너무 몰랐다, 김용옥, 통나무

“20세기 끄트머리 199912월에 제주4·3특별법이 통과되었을 때 허영성 시인은 이제는 마음 놓고 울 수 있느냐며 울먹이던 희생자 유족들의 눈물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p.10)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 허영선, 서해문집

 

책을 읽고 친구와 다시 통화했다. 여전히 그 제주 토박이 할머니 밭을 분양받아 농사를 짓고 있다. 책을 읽은 겸, 넌지시 물었다.

그 땅 주인 할머니 가족 중에 4·3 피해자 있으셔?”

, 오빠도 있고 친척 중에 여러분 있으시대

반 백 년이 훨씬 지나서도 마음껏 울먹일 수 없었던 그들의 고통과 한을 나는 단 한 치도 가늠할 수 없다. 건방지게 판단할 수도 없다. 친구의 답답함과 서운함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직접 겪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다.

군대에서 만난 전라도 광주 출신 동기에게 들었던 5·18은 생생한 것이었다. 삼촌이 5·18 때 희생돼 매년 518일이 되면 제사를 지낸다는 동기의 말은 차라리 꿈 같았다.

지난 총선 직전, 통합당 후보의 세월호 관련 막말도 같은 맥락이다. 여전히 역사는 유효하다. 100년 전이든, 4년 전이든 그 역사는 오롯이 현대사다. 반복되고 재현되며 구체화된다.

 

그땐 사람들이 다 이레도 붙고 저래도 붙고 했어요. 그 모양으로 약하게 흐름 따라다니던 사람들입니다. 바람 부는 양, 이쪽으로 세게 불면 이쪽으로 붙고, 저리로 세게 불면 저쪽으로 붙고 했습니다. 산에서 말을 하면 그것도 옳아 보이고, 또 아래서 오는 말 그것도 옳아 보이고. 어느 쪽에 붙어야 좋을지 몰랐어요.” (p.118),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 허영선, 서해문집

 

결국, 피해는 양민이다. 그저 땅을 일구고 거친 바다를 맨몸으로 들어가던 사람들. 사계리 친구 집 거실에서 산방산이 정면으로 보인다. 반대쪽 사계 해변을 따라 해안도로를 가다 보면 송악산이 나오고 섯알오름이 나온다. 대표적인 학살 장소다.

4살 된 딸아이와 처음 간 송악산에서 맞는 바닷바람은 상쾌하고 달콤했다. 송악산 초입에서부터 시작되는 오르막길은 차라리 신선했다. 군데군데 일본군이 파놓은 벙커와 땅굴을 보기 전까지는. 많은 사람이 죽었다. 아무런 죄가 없는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좌익이라고, 빨갱이라고. 수십 년이 지나도 쉬쉬했다고 한다. 여러 차례 반복할 수밖에 없는데, 나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친구 덕에 여러 번 가본 제주에서 만난 제주 사람들은, 적어도 내 눈에는 신기하고 반가울 따름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사투리, 거친 듯하지만 정겨운 그들의 행동.

사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기껏 제주 몇 번 가봤다고 제주와 제주 사람들을 쉽게 판단하고 있었다. 가소로운 짓이다.

이런 책, 두 권 읽었다고 제주와 4·3을 이해 했다 하는 것도 가소로운 짓이다. 그저 먼지가 켜켜이 덮인 첫 장을 겨우 넘겼을 뿐이다.

제주의 숲, 바람, , 바다, 모래, 오름, 하나하나에 박힌 제주 사람들의 한과 슬픔, 눈물과 탄식, 아픔과 설움을 나는 1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더 제주에 가고 싶다. 언젠가는 이주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기가 당겨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냥 제주에 가서 살고 싶다. 제주의 숲을 거닐고, 바람을 맞고, 돌을 만지고 바다에 발을 담그고, 모래를 쓰다듬고 오름에 기대고 싶다.

    

제주4·3민중항쟁 지도부의 몇 사람이 남로당에 헌신하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허구적인 정체성이었고 실제 제주민중항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제주민중항쟁은 오직 핍박받는 제주민중이 피압박의 막다른 골목에서 분노를 표출한 사건일 뿐이다.” (p.234), 우린 너무 몰랐다, 김용옥, 통나무

    

요즘 들어 제주 이주에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도가 많이 되고 있다. 높은 부동산 가격, 배타적인 원주민, 부족한 일자리 등. 갖다 붙인 이유가 많았다. 이주민이든, 언론이든 제주를 이용하려고 한 경우가 더 많았다. 좋은 소재, 흥미로운 주제니까. 반드시 검증하고 짚어내어 재평가해야 할 제주4·3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아직도 빨갱이, 빨치산 반란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제대로 평가하고 처벌한 경험이 없다 보니 왜곡된 역사가 고스란히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현대사의 굴곡은 대부분 그렇다. 제대로 된 역사 청산이나 재평가가 없다 보니 이념의 가면을 쓴 갈등이 산재한 것이다. 오죽하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국정교과서조차 이념 갈등으로 인해 한바탕 난리가 나기도 했다. 국가의 역사려면 어느 정도 동의가 된 방향이 필요할 텐데, 한국의 현대사는 그렇지 못하다. 슬픈 현실이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양민 학살, 5·18, 군부독재에 의한 의문사, 세월호 참사 등등 제주4·3을 포함한 미완의 역사가 산재해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와 당신들은 최소한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동생들에게, 전해야 한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아직도 제대로 진상규명조차 하지 못한 역사가 너무 많다고, 잊지 않아야 한다고.

 

대한민국 국민이었으나 국민이 아니었던 그 시절, 수 없는 꽃 목숨이 참혹하게 떠났습니다. 잊어라, 지워라, 속솜허라(조용히 해라) 강요당한 망각의 역사가 마침내 왜곡의 무덤을 뚫고 나와 파도처럼 솟구칩니다.” (p.4),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 허영선, 서해문집

 

속솜허라,

이제는 제주 사람도, 대구 사람도, 서울 사람도 속솜허지 않아야 한다. 떠들고 외쳐야 한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청산하고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87년 대선을 앞두고 추락한 KAL858기 동체를 미얀마 바닷속에서 확인했다고 한다. 공중폭발해 잔해를 찾을 수 없다던 당시 정부의 조사 발표와는 180도 다른 증거가 30년이 지나 드러나고 있다. 속솜한 채 살아온 유가족의 한을 반드시 풀어야 한다. 그것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정확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것이다. 비극의 현대사를 숨기지 않고,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다. 다시는 이런 역사가 반복되어 또 다른 비극의 현대사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와 당신, 우리 모두 속솜허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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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야 함께 산다. | 사회 2020-07-2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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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진천규 저
타커스 | 2018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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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야 산다. 알아야 산다.

 

화생방 교관이 땀에 찌든 나를 포함한 교육생들에게 한 첫마디다. 이론 교육을 끝내고 실기 교장으로 구보로 이동하는 중에도 계속 왼발 구령에 맞춰 알아야 산다.”를 외쳤다. 육군 화학병과의 모토이기도 하다. 십수 년 전, 무시무시한 화생방 훈련을 앞두고 수백 번 외친 말이다. 정말 맞는 말이다. 화학전이 발생할 경우 방독면을 쓸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생사가 달라진다. 방독면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쓰는지 알고만 있어도 생명을 건질 수 있다.

남과 북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정말 알아야 산다.”

 

얼마 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죽었다가 살아 돌아왔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뉴욕타임즈조차 가짜뉴스에 넘어갔다. 북한 이탈 주민 출신으로 국회의원이 된 두 사람은 확신했다. 모두 잘못된 정보였다. 한국 정부와 정보기관은 처음 그런 보도가 나왔을 때부터 줄곧 특이 사항이 없다고 말했다. 북한을 이탈한 지 수년이 지나거나 북한에서의 위치가 VIP의 신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말을 단지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보도했다. 한심하기 그지없다. 가짜뉴스를 가지고 일주일 넘게 난리를 치고 나서도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조차 없다.

알아야 하는 것이다. 알아야 살고, 알아야 거짓에 넘어가지 않는다.

 

이런 일상적인 느낌이 진짜 현실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아직 나는 북녘을 잘 모르고 있었다.” (p.37)

“‘석유 한 방울, 나사못 하나 들어오지 못하는물 샐 틈 없는 제대 국면에 이렇게 자동차가 많이 보일 줄 몰랐다.” (p.139)

 

이 책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는 기자가 쓴 책이다. 눈앞의 장면을 그대로 기록하는 카메라를 든 기자다. 적어도 카메라에 저장된 이미지는 반드시 사실이다. 그런 기자가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하는 말이다.

몰랐다.”, “모르고 있었다.”

가장 기자다운 표현이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해야 한다. 확실하지 않은 것은 보도하지 않아야 한다. 충분하지 않은 정보를 사실로 포장해 전달하는 것은 일반 대중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가짜뉴스에 불과하다.

“2017년 가을, 하루하루 위기로 치닫는 국제 정세와는 동떨어진 대동강 변의 모습은 며칠 전까지 내가 있었던 서울과 다르지 않았다. 핵미사일을 쏘는 날에도 서울에서는 주식시장이 서고, 학교에서 수업하고, 프로야구가 열리고 (중략) 이곳 대동강 강가에서도 평양시민들의 일상은 변함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p.71)

 

더군다나 이 책은 남북 관계가 극에 치달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시기가 배경이다. 2010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제재 조치 이후 줄곧 평행선만 달라던 남과 북이었다. 북은 북대로 남은 남대로 서로를 비난하고 비판하기에 바빴다. 그런 와중에 북한으로 들어간 최초의 민간인이 있었다. 참 대단하다. 함께 방북하기로 한 미국 기자들은 입국 허가가 나지 않아 홀로 북한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실을 기록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통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내가 17년 만에 평양을 다시 방문하게 되었을 때 이곳 사람들이 제대로 먹고 살아가고 있는지 걱정이 앞섰다.” (p.169)

우리는 70년 동안 제재를 받아왔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어느 한순간 제재를 받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준비해왔습니다.” (p. 225)

 

10여 년 전만 해도 이런 표현은 위험했다. 북한과 그 체제를 옹호하거나 찬양·고무하는 표현이 될 수 있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김일성이 죽었다.” 교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며 교사가 외쳤다. 모두 기겁했다. 학교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고, 평소 EBS 강의 말고는 틀어본 적이 없던 교실 내 TV를 교사가 직접 틀었다. 뉴스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잠시 후, 교내 방송이 나오고 우리는 모두 하교했다. 자전거로 하는 하굣길에는 중고등학교 몇 개가 걸쳐 있었는데, 모든 학교에서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집에 도착하자 어머니는 짐을 챙기고 있었고, 아버지도 회사에서 곧 오신다고 하셨다. 우리 모두 그랬다. 김일성이 죽으면 당장 전쟁이 일어나는 줄만 알았다. 선거를 앞두고 돈을 건네주며 휴전선 인근에서 총을 쏴달라고 했다. 이후에 사실로 드러나기 전에는 진짜 북한에서 전쟁을 위해 총을 쏜 줄 알았다.

지금은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이제는 수구세력이 만들어 낸 북풍을 믿지 않는다. 더 정확한 정보를 손안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그래서 얼마 전 김정은 위원장의 가짜뉴스를 두고도 수구세력과 수구 언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세상은 이렇게 바뀌고 있고, 더 많이 알아가고 있다. 모르던 때는 시키는 대로 해야만 했다. 지금은 아니다. 그래서 강조할 수밖에 없다.

진짜 알아야 산다.” 화생방 훈련에서도, 남북 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진 선생에게 우리의 체제를 무턱대고 선전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보편타당하게 기자로서 양식을 가지고 충실하게 보도해달라는 겁니다.” (p.111)

평양에서는 집의 크기를 평수가 아니라 방의 개수로 계산한다고 한다. 2개짜리 집, 3개짜리 집, 4개짜리 집 등으로 집의 크기를 짐작하는 것이다. 국가에서 집을 배정해주기 때문에 방이 몇 개인지만 알면 되는 것이다. 방의 개수는 집주인의 권력 관계나 사회적 지위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양가족의 숫자로 결정한다고 한다.” (p.258)

 

북한의 아파트에 대한 정보는 처음이다. 전혀 알지 못했다. 어쩌면 관심도 없던 부분이다. 한국의 수구 언론은 진짜 평양과 평양사람들의 모습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상한 모습, 경직된 이미지, 부족한 상태, 이질적인 움직임에 집중했다. 그러니 사실은 필요 없었다. 이 책의 저자가 북한에 머무르는 동안 동행한 안내원의 요구는 무척 단순한 것이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보편타당하게보도해 달라는 것. 기자라면 당연할 텐데, 그러지 않았었다.

책의 저자가 아닌 수구 언론 기자가 같은 아파트를 취재했다면 기사 제목부터 달라졌을 것이다.

연봉 차, 3배에도 같은 평수에 사는 처지

뭐 이런 제목을 달았을 것이다. 북한은 아파트가 재산 증식의 수단이 아니라 단순한 주거의 수단이기에 평수에 대한 개념이 없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부양가족의 숫자에 따라 방의 개수가 달라진다고 한다. 우리와는 참 다른 부분이다. 저자가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처럼 평양에 새롭게 지어진 아파트만의 사례라 일반화시킬 수 없다. 평양과 지방 도시와의 편차도 우리의 그것보다 훨씬 클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주거에 대한 개념과 접근이 우리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또 다른 걱정이 생겼다. 길지 않은 시간 안에 통일이 될 텐데, 이미 포화 상태인 부동산 시장에 신물이 난 남쪽의 업자들과 부자들이 얼마나 단기간에 북한의 부동산 시장을 망쳐 놓을지에 대해서다. 통일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시작되는 즉시 참고해야 할 사항일 것이다. 남과 북이 매우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북측이 201855일 날짜로 표준시를 변경했다. 2015년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맞선다는 명분으로 일본에 맞춰진 표준시를 30분 당겨 우리보다 30분 빨리 가게 했던 시간을 다시 늦춰 서울 시간과 맞춘 것이다.” (p.10)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우리와 북한의 표준시가 달랐다는 사실. 같은 시간을 살아간다는 상징적 의미만으로 충분하다. 비록 남북정상회담 이후, 기대했던 것만큼의 관계 진전이나 뚜렷한 발전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표준시 변경, 여러 차례의 정상회담, 도보다리 회담 등 함께 만들어 가는 하나하나가 새로운 역사가 되고 있다. 함께 만들어 가는 상징이 되고 있다. 이번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를 둘러싼 가짜뉴스의 팽배에도 지속적으로 같은 메시지를 내보낸 문재인 정부의 일관됨도 북한은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분명, 예전처럼 그렇게 단번에 모든 것이 수포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없어야 한다.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다.”는 유명한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을 기억한다. 5000년에 비해서는 짧은 70년이지만 불과 2-3년 안에 콩 볶듯이 간단히 뛰어넘을 수는 없는 기간이다. 7년도 아닌, 70년이다. 지속해서 노력하고 꾸준하고 일관된 모습을 서로 확인하면서 신뢰를 쌓아야 한다. 민간 차원에서도 끊임없이 교류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지난 10여 년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내 꿈은 평양 상주 특파원이 되는 것이다.” (p.45)

나는 통일TV’를 준비하고 있다. 통일TV는 어떠한 체제나 주의·주장과는 무관한 남과 북이 모두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역사물, 자연 다큐멘터리, 음식 관련 프로그램 등을 제작·방영하는 케이블채널 전문 방송사이다. 이러한 영상물을 함께 보면서 동질감을 느끼고, 다름을 인정하면서 점차 거리를 좁혀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남과 북이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p.291)

 

저자인 진천규 기자와 같은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평양 상주 특파원”. 분명 진기자님이 최초가 될 것 같다. 통일TV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바, 70년을 헤어져 지냈지만, 함께 한 5000년이라는 시간은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유산이다. 공유하고 있는 정서나 역사가 분명 존재한다. 서로 다른 것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도 급한 일이지만 같은 것을 하나씩 확인하는 일은 분명 우선되어야 할 일이다. 북한 이탈 주민이 여러 명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도 좋지만 남과 북이 함께 공유하고 교감할 수 주제를 담은 프로그램도 분명 만들어 낼 수 있다. 시청률이 아닌 통일을 준비하는 채널 말이다.

 

그래야 우리는 북한을 알 수 있고, 북한은 우리를 알 수 있다.

알아야 산다. 자꾸 반복하게 된다.

이념과 체제를 비판하고 견제하기 위한 잣대로 걸러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알아야 한다. 알기 위해서 봐야 하고, 서로의 모습을 진실과 사실의 잣대로 봐야 한다.

 

알아야 함께 산다.

통일된 한 나라에서 함께, 또 다른 5001년을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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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우주로 출장을 갈 수 있을까? | 자연/과학 2020-07-2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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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엄마는 북극 출장 중

이유경 저
에코리브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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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 A플러스 받았어!

심각한 표정으로 노트북 화면을 쳐다보던 아내가 뛸 듯 기뻐한다. 방송통신대학교 학기 과정 과제 결과였다. 코로나로 인해 학기 전 과정이 과제로 대체되었다. 2달 정도 아내는 끙끙거리며 과제를 해냈다.

 

계획에도 없던 임신을 했다. 젠장!” (p.157)

돈을 빌릴 곳도 없었다. 이제 과학자로서 생은 마감하고 엄마로 변신해야 하나, 하며 내 처지를 불평했다.” (p.157)

 

아내도 경단녀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과정 중, 당연하게 경력은 포기했다. 기를 쓰고 이어가려고 해도 할 수 없는 구조다.

엄마는 북극 출장 중의 저자는 과학자다. 여성 과학자. 과학자라는 단어도 생소한 사회에서 여성이 하나 더 붙으니 더 낯설다. 국내 유수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여성 과학자도 계획에도 없는 임신을 하면 경력단절을 걱정해야 하는 사회다. 지극히 비정상적이다. 하물며, 내 아내와 같은 일반 직장인은 더하다. 가장 보호하고 지원해야 할 계층에게 가장 잔인하고 냉정하게 잘라낸다.

집에서 애나 키우시죠.” 라며.

여성과학자조차도 경력단절을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라니.

 

큰애에게 이런 것을 배우냐고 물어보았더니 배운 적이 없다고 했다. 도대체 배운 적도 없는 실험 보고서를 어떻게 쓰라는 것인지 답답했다. 이러면 결국 아이들은 수행 평가를 위해 학원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p.199)

 

어쩌면 우리 사회는 기초 학문에 아예 관심을 둘 수 없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입시 위주로 돌아간다. 아이가 7살 인데, 또래 학부모를 만나면 학원 이야기부터 한다. 7살 아이들이 평균적으로 2곳 정도 학원에 다니는 것 같다. 아직 7살인데도 중학교 걱정을 한다. 조금 더 좋은 학군의 동네로 이사를 가야 한다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다. 학부모들의 의식이 문제냐 정부의 교육 정책이 문제냐. 단기간에는 절대 해결되지 않을 듯하다.

우리는 좀 다른 교육을 하자. 시대의 흐름에 떠밀려 다니지 말자. 라고 결혼 전부터 아내와 합의를 했던 터라, 주위의 야단법석쯤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우리만의 교육을 위해 아내와 나, 둘 중 한 명은 집에서 아이 교육에만 매진하고 싶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결단이 쉽지 않다. 딜레마다.

 

심지어 그중에는 산소 없이도 살아가는 혐기성 미생물도 있었다. 춥고 얼어붙은 데다 햇빛도, 산소도 부족한 곳. 바로 화성이다. 지구의 동토에 미생물이 있다면 화성의 동토에도 혐기성 미생물이 살 수 있지 않을까? 북극에서 외계 생명체를 향한 강한 호기심에 불이 붙었다.” (p.151)

 

7살인 딸아이는 과학에 문외한인 엄마 아빠와는 달리 과학에 관심이 많다. 길을 가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발과 손이 먼저 간다. 공부를 잘할지는 모르겠지만 호기심은 엄청나다. 묻고 또 묻는다. 꿈이 우주비행사다. 명왕성이 왜 태양계 행성에서 사라졌는지 직접 가보고 싶다고 한다. 남들은 대단하다 하지만 딸아이의 저런 호기심을 얼마큼 지켜주고 발전시킬 수 있을까 고민이다.

과학자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인 건 분명한 것 같다. 북극에서 외계 생명체를 향한 강한 호기심이 생겼다니. 나 같은 과학 문외한은 꼭 북극까지 가서 힘들게 연구해야 하나?’싶다.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도 그렇다.

 

책의 저자는 학창시절 끊임없는 질문에 친절하고 일관되게 답을 해준 선생님이 있었다고 한다. 만약 그런 건 대학입시에 중요하지 않아!”라고 했다면 극지를 연구하는 중요한 여성과학자 한 명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대여섯 살 정도가 지나면 엄마 왜? 아빠 이건 뭐야? 라는 질문은 조금씩 줄어든다고 하는데, 딸아이는 그 정도가 더 심해지고 있다. 온종일 대답해야 할 때도 있다. 귀찮기도 하고 잘 모르는 걸 묻는 경우도 많았는데, 명왕성의 자취를 연구한 최초의 한국 여성 과학자의 길을 막을 수도 있으니 최선을 다해 대답하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아직은 우스개에 불과하지만.

지난 주말 아이를 데리고 경주에 다녀왔다. 첨성대, 천마총, 경주박물관을 들렀다. 2년 만이었다. 이전에는 그저 뛰어다니기 바빴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미리 공부해 놓지 않으니 대답을 절반도 못 해줬다.

공부만 잘해서는 좋은 과학자가 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사례는 책에서도 충분하다. 더군다나 성평등 지수에 있어서는 다른 선진국들보다 한참 아래에 있는 한국의 현실은 암울하다. 그저 젠더 갈등으로 치부하는 성의 없는 미디어의 무책임함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이것저것 생각하면 머리만 아프다. 좋은 학교 나와 안정적인 직장이나 공무원이 되는 게 최선인 구조가 언제 바뀔 수 있을지 가늠조차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유경 박사가 걸었던 길 보다는 평탄하다는 것이다. 그녀가 그 이전 선배들이 닦아 놓은 길을 뒤따라 걸었던 것처럼, 또 다른 여성 과학자들이 선배들의 뒤를 따라갈 것이다. 느리고 험하고 가파르다 하더라도, 조금씩 평탄해지고 낮아지고 넓어질 것을 기대한다. 과학 문외한인 부모 사이에서도 우주를 연구하는 여성 과학자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후과학자들은 빠르면 2050년 여름에 북극해에서 얼음을 볼 수 없을 거라고 한다. 늦어도 2100년에는 얼음 없는 북극해를 볼 거로 예측한다. 여름철 얼음이 완전히 사라지고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북극 대기로 흘러 들어가면 과연 우리나라 날씨는 어떻게 변할까.” (p.258)

 

책 일부분인데, 딸아이에게 그대로 읽어줬다. 무척 신기해하며 되물었다.

아빠! 그럼 북극 얼음부터 연구해 봐야겠어.”

그래, 그러렴.

 

지금, 이 순간에도 연구실 한켠과 현장에서 지난한 실험과 난해한 논문, 끝이 없는 샘플링 등에 매달려 있을 모든 여성 과학자들과 과학도들에게 아낌없는 찬사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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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한 재미있는 과학 책 | 자연/과학 2020-07-2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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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리고 당신이 죽는다면

코디 캐시디,폴 도허티 저/조은영 역
시공사 | 2018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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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참으로 기기묘묘하다.

주로 찾아보는 채널과 관심사에 대한 영상을 한참 둘러보다 보면 어느새 나와는 전혀 다르고, 그 분야에 관심조차 없었던 채널에 다다르게 된다. 그렇게 빠진 채널이 과학 관련 된 채널 몇 개다. 양자역학, 상대성이론 등, 단어만 봐도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리는 썸네일로 가득하다. 그런데, 재미있다. 정말 쉽게 설명하고 재미있게 편집해 놓았다. 물론, 내가 관심 있는 채널을 한참 동안 찾아보다가 지루할 때면 한 번 들어가 보는 수준이지만 과학이라 하면 과의 자도 관심이 없었던 내게 이것은 장족의 발전이다.

    

 

그리고 당신이 죽는다면은 과학책이다. 내가 절대 읽지 않았을 과학책. 하지만 이 책은 재미 있다. 흥미롭다. 키득거리며 책장을 넘긴 과학책이라니. 나와 같은 과학 문외한에게는 딱이다.

    

 

마이클 스미스가 꿀을 따려고 벌집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모험심 강한 꿀벌 1마리가 스미스의 바지 안으로 들어가 그의 고환을 쏘아버렸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생각했던 것만큼 아프지 않았습니다. 스미스는 궁금해졌습니다. ‘고환에 쏘인 게 최악이 아니라면, 어디에 벌이 쏘였을 때 가장 아플까?’” (p. 41)

    

 

마지막으로 벌에 쏘인 게 언제일까? 기억이 맞다면 중학교 1학년 추석 연휴, 코스모스가 흐드러진 시골 신작로에서 사촌들과 정신없이 놀다 쏘였을 때다. 뒤통수에 쏘였는데, 할머니가 진짜 시골된장을 발라 주셨었다. 엄청 아팠던 기억이다.

만약 다시한번 고환에 쏘였다면, 내 인생 최악의 기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이클 스미스라는 양반은 어디에 벌이 쏘였을 때 가장 아플까?’라는 기상천외한 발상을 했단다. 한참을 웃었다. 역시 나는 과학자가 될 팔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매일 아침 9시에서 10시 사이에 스미스는 조심스럽게 핀셋으로 꿀벌을 집어 피부에 댄 후 침을 쏠 때까지 눌러 자극을 했습니다. 이렇게 스미스는 매일 5번씩 벌에 쏘였습니다.” (p.42)

벌에 쏘였을 때 가장 덜 아픔 부위는 두개골, 가운뎃발가락, 팔뚝위쪽이었습니다. 스미스의 통증 지수에 따르면 겨우 2.3을 기록했지요. 반대로 통증이 심한 부분은 얼굴과 음경, 콧속이었습니다.” (p.42)

    

 

음경이라니. 일부러 침에 쏘이다니. 활자를 읽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찡그려졌다.

    

 

슈미트의 통증 지수에 따르면 벌에 쏘이는 고통은 4점 만점에 고작 2점입니다. 슈미트가 감히 이렇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직접 150종 이상의 곤충에게 물려보았기 때문입니다.” (p.44)

    

 

그런데 슈미트라는 양반은 더하다.

고환이든, 음경이든 벌에 쏘였다고? ! 그까짓 벌에 쏘인 걸 가지고!”

150종 이상의 곤충에게 물려보았단다. . 과학의 세계는 실로 오묘하다.

    

 

오티스가 제동장치를 발명하기 전에는 엘리베이터가 별로 인기가 없는 기구였습니다. 아무리 굵은 케이블이라도 사람들은 줄 하나에 목숨을 맡겨야 하는 상자 안에 몸을 싣고 싶어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오티스가 제동장치를 개발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p.78)

    

 

엘리베이터 보수 업을 하는 내게는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이었다. 특정한 이유로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사람이 갇히면, 가능한 한 빨리 현장으로 이동해 갇힌 사람을 꺼낸다. 갇혀 있던 대부분 사람이 하는 말이 있다.

엘리베이터가 추락할 뻔했어요.”

절대로 그럴 일이 없다고, 영화와는 다르다고, 안전장치가 23중으로 되어 있어 떨어질 일은 없다고 설명해도 잘 듣지 않는다. 처음 엘리베이터가 발명될 당시 제동장치가 없었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나 같아도 그런 엘리베이터에는 근처도 가지 않을 거다. 영화나 TV에서 극적인 효과를 위해 연출하는 엘리베이터 추락 장면은 대부분 가짜다.

    

 

 이 책은 죽음에 대한 과학적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벌에 쏘이고 곤충에 물리고 엘리베이터에 갇혀도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 인간이 어느 정도의 가속도를 견딜 수 있는지에 대한 썰매 실험에서도 눈의 실핏줄이 터지고 갈비뼈가 바스러졌으며 발목이 모두 부러졌지만 살아남았다. ‘존 스탭이라는 사람 덕분에 인간은 40g이상의 감속도를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일반인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들에 대한 과학적 호기심과 접근이 생소하고 재미있다.

    

 

실제 그렇게 죽은 사람이 있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2008, 영국의 한 엔지니어가 프랑스로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종이에 팔뚝을 베이는 바람에 0.6센티미터의 상처가 났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보였고, 몹시 피곤을 느끼며 쇠약해졌습니다. 이후 의식까지 혼미해졌지요. 그는 결국 괴사성 근막염으로 6일 뒤에 병원에서 사망했습니다.” (p.147)

    

 

 반대로 전혀 죽을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어처구니없이 죽는 사람들도 있다. A4용지를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 봤을 종이에 베이는 경험. 피부에 살짝 상처가 남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영국의 한 엔지니어는 종이에 팔뚝을 베어 죽게 되었다. 고작 0.6센티미터의 상처로 말이다. ‘괴사성 근막염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겁이 나는 병으로.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앞에서 계속 얘기하다가 갑자기, 이렇게도 죽을 수 있다니. , 운명이라거나 팔자가 사나워서가 아니라 과학적인 논리로 종이에 베이는 것만으로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뒤통수가 쭈뼛했다.

    

 

 삶과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과학적 접근은 인류 역사를 통해 계속됐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있으니 말이다. 누구도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전 대륙을 이 잡듯 뒤져 불로초를 구하려 한 진시황제도 결국 죽었다. 진시황의 그것과는 다른 형태이지만 현대에는 첨단의 과학이 불로초를 대신하고 있다. 과학을 통해 병을 치료하고 조금 더 오래 살고 조금 더 건강하게 살 방법을 찾아내려 한다. 과연, 불로(늙지 않는)와 불사(죽지 않는)는 가능할까? 언제 닿을지 모를 미래의 과학에서는 가능한 일 일까?

요즘 자주 들여다보는 과학 유튜브 채널에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내용이 있었다. 채널 운영자 입장에서는 최대한 쉽게 설명한다고 했겠지만 내게는 난해했다. 결론은,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다면 과거와 미래로의 시간 이동이 가능하고,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제대로 이해되지 않지만, 추정일 뿐이었다. ‘언젠가는 과학적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정도?

    

 

  작년 초, 아버지의 임종 전·후로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었다. 10년의 투병과 남은 가족의 10년의 간병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래 묵은 감정과 경험의 집합체여서 존재하는 어떤 단어와 문장으로 간단히 표현할 수 없다. 그런데, 그것과는 별개로 아버지의 죽음은 단번에 찾아왔다. 아내와 아들이 지켜보는 눈앞에서. 그것은 지극히 초자연적이고 비과학적이었다. 온갖 의료장치를 몸에 달고 있었지만 우리 이야기를 듣고 눈꺼풀을 바르르 떨기도 했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단지 심장 박동을 기록하는 그래프가 평행선이 되었을 뿐인데. 정신없이 상을 치르고 나니,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시공간을 초월할 과학적 시도가 존재하고, 종이에 살짝 베이는 것만으로도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과학적 증거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과학으로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 눈 앞에서 생과 사가 갈라졌던 비현실, 꿈에 나오신 아버지의 또렷한 음성과 모습. 이것들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 과학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 있고, 증명하고 탐험하여 밝혀내야 할 것들이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앞서도 언급한바, 이 책은 재미있다. 과학이라는 것에 1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 펼쳐 들어도 완독할 수 있을 만큼 재미있다. 아무리 쉽게 써도 재미가 1도 없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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