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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에 동참하라! | 인문학으로 놀자! 2021-11-18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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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마녀

모나 숄레 저/유정애 역
마음서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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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녀란 말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대부분의 머릿속엔 분명 로알드 달이 '마녀를 잡아라'에서 묘사했던 그런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심한 메부리코에 아랫턱은 앞으로 툭 튀어나왔으며 이빨은 날카롭고 듬성듬성한. 그런데 이런 마녀가 지금의 여성해방운동에선 아주 중요한 존재로 대우받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말한다 여성들이여, WITCH(마녀)가 되라고! 마녀하면 얼른 떠오르는 것은 중세 시대에 자행되었다고 하는 마녀사냥이다. 대부분 그 때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했던 여성들은 경계 밖에 있던 존재들이었다. 남성중심사회에 잘 길들여지지 않는 강한 독립성은 그 사회에 의해 광기로 치부되어 마을 밖에 살도록 추방되었다. 그런 이들이 마녀라는 혐의를 자주 받았고 이미 자백밖에는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형장의 재로 사라졌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마녀가 긍정적인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자신의 강한 자아로 사회와의 대립을 기꺼이 감행해서라도 그 무엇도 대체불가능한 고유한 자신을 관철하는 이미지니까 말이다. 아마도 뮤지컬까지 만들어진 위니 홀츠만의 '위키드'가 누렸던 성공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마녀에 매혹되었다면서 마녀와 현재의 페미니즘 운동을 연결지어 한 권의 책을 쓴 작가가 있다. 바로 현재 프랑스의 유명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전문기자로 있는 모나 숄레다. 제목은 '마녀'.

 

 

 그녀가 이 책을 집필한 것이 꼭 마녀라는 존재에 어릴 때부터 매혹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는 마녀 사냥이 중세 시대를 마지막으로 끝났다고 여기지 않는다. 사실 역사적으로 마녀 사냥은 중세 보다 르네상스 시대에 더 많이 일어났다. 카톨릭 보다 프로테스탄트, 즉 개신교가 세력을 넓혀갈 때 더 증가했던 것이 마녀사냥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저자에 따르면 또 다른 양상의 마녀사냥이 되어 오늘날ㄹ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그러한 마녀사냥의 모습들을 주로 네 가지 양상을 주축으로 하여 기술하는데, 그 중 하나는 독신녀나 미망인 같은 남셩에 종속되지 않는 독립적인 여성들에 대한 마녀사냥식 공격이다. 또 다른 하나는 모성을 거부하여 아이를 낳으려 하지 않는, 자발적으로 불임하는 여성들에 대한 공격이며 세번 째는 특히나 여성의 노화는 남성의 노화에 비해 더 추하고 수치스럽고 위험하다고 묘사하는, 이처럼 늙은 여성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쌓기의 공격이다. 마지막으로 여성을 자연 또는 비이성과 연결시켜 행하는 공격이다. 여성은 자주 비합리와 감성, 히스테리의 존재로 그려져서 자연에 비유된다. 문명에게 자연이 비이성적이로 위협과 정복의 대상이듯, 현재도 여성들은 주로 과학과 의학 분야에서 자주 그렇게 규정된다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상황을 마지막 장에 설명한다.

 

 이 글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인용을 참 많이 하기 때문에 더욱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앞서 네 장에 대한 기술만으로도 이 책이 어떤 곳을 지향하고 있는지는 대략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마녀 이미지의 적극적 차용은 이러한 네 가지 방면의 공격에서 결코 스스로 주눅 들 필요가 없다는 선언이다. 그들이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것들을 오히려 긍정적인 면모로 당당히 받아들이고 내세우기까지 하자는 게 바로 '마녀에 동참하라!'는 이 책의 전언이기도 하다. 아무튼 저자에 따르면 이 책은, '축적된 이미지와 담론의 층에서 우리가 불변의 진리로 여기던 것을 몰아내고, 부지불식간에 우리를 가두는 표현들에서 임의적이고 중요하지 않은 면을 명백히 밝히고, 이 표현들을 우리를 충만하게 살도록 만들어주고 우리에게 동의를 보내는 표현들로 바꾸는 것(p.67)'을 목적으로 썼다고 한다. 적어도 '마녀'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히 성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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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날 함부로 쓸모없다 판단하는가! | 영미 미스터리로 GO! 2021-11-18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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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잔류 인구

엘리자베스 문 저/강선재 역
푸른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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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만에 듣는 이름인가? 엘리자베스 문이라는 이름은. 나는 그 이름을 '어둠의 속도'란 책으로 처음 만났다. 그러니까 2002년에 발간 되었을 때. SF 팬덤 사이에서 신선하면서도 깊이 있는 작품이 하나 나왔다고 떠들썩해서 만나게 된 작품이었다. 벌써 거의 20년 전에 읽은 것이라 이제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지만 그래도 자폐아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서 그들이 어떤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만나고 있는지 살짝 엿보는 것 같았던 기분은 떠오른다. 엘리자베스 문은 그런 작가였다. 자폐가 정말 꼭 치료되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갖도록 이끌었듯이,타자의 입장에서 타자의 내면과 동조하도록 이끌어줄 수 있는 작가. 그렇게 하여 기존의 나라는 한계에 갇혀 전혀 보지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거기서 훌쩌 벗어나 보고 헤아리게 만들어 더 넓은 범주에서 나와 타자를 가늠하도록 하는 것으로 내적인 성장을 가져다 주는 작가였다. 그런 작가이기에 그녀의 새로운 소설이 이번에 출간되었다고 하니 손에 잡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작품의 제목은 '잔류 인구'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이다. 노년의 여성, '오필리아'는 '심프스 뱅코프 콜로니'라는 한 식민지 행성에서 회사 소속이지만 단 한 푼의 임금도 받지 못한 채 개척민으로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구에서 막 도착한 함대가 정체 불명의 외계인들에게 알 수 없는 이유로 살해당하자 컴퍼니는 식민지를 버리기로 결정한다. 다들 함선에 올라 극저온 수면 장치에 들어가 동면한 채로 이주할 것을 명렴 받았지만 할머니 오필리어는 그 장치에서 살아남을지 확신할 수 없어서 떠나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모두가 떠나버린 그 곳에서 자의로 '잔류 인구'가 된다. 하지만 그 별에 존재하는 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잔류 인구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 별에서 원래 살았던 원주민들. 그녀는 그들과 만나고 그들에게 자신의 언어와 문화를 가르쳐 유대 관계를 형성한다. 오필리아는 마침내 그들에게 존경 받는 자리까지 오르게 되는데, 그러다 다시 지구에서 다시 사람들이 온다. 그들은 원주민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접촉하려 하는데, 군인과 과학자인 그들은 오필리아의 말에 전혀 귀기 울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오필리아는 단지 쓸모없는 할머니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필리아는 원래 햄릿에 나오는 이름이다. 그녀는 햄릿의 연인이었지만 햄릿이 만든 사건 앞에서 주체적으로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속절없이 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그러나 이 소설 속 오필리아는 다르다. 결말은 그들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가르쳐 주니까 말이다.

 

(초판본 표지}

 

 노년은 효용성을 점점 더 중요하게 따지는 지금 사회에서 가장 그 의미를 잃어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령화 사회를 부정적인 것으로만 보는 게 가장 뚜렷한 증거다. 예전엔 노년이 그 때까지 살면서 체득한 지식과 정보를 아주 중요한 정보로 간주했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경로사상은 바로 그것의 흔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경험과 지식은 '꼰대'로 취급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게 옛것은 쉽게 도태되고 새것은 과장되게 환영받는 세태에서 '잔류 인구'는 참으로 여러가지 것들을 생각나게 만든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쳐든다'를 썼던 리베카 솔닛은 할머니의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여성들의 기록은 남성중심사회에서 자주 보존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규정되어 그것들 대부분은 살아있는 할머니의 기억에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그렇게 무시되고 버려져서 기록할 수 없었던 기억의 태피스트리를 짜는 것이 오늘날 여성 운동의 목표 중 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잔류 인구' 또한 그 흐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쓸모'는 전혀 객관적이지 않다. 그건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관점에서 바라 본, 그것도 잠정적인 결과일 뿐이다. 그런데도 요즘은 사람을 쉽게 규정하고 가치 또한 함부로 판단하는 것이 점점 더 횡행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문의 '잔류 인구'는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경향인지 아주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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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영웅 서사시를 만나다! | 아직 옮겨지지 못한 리뷰들 2021-10-31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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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길가메시 서사시

앤드류 조지 편역/공경희 역
현대지성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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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를 좋아한다. 그리스 신화와 북유럽 신화는 이것저것 많이 봤는데, 메소포타미아 신화는 여지껏 접해보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영국의 런던대학교에서 수메르 언어를 가르치는 앤드류 조지가 편역한 '길가메시 서사시'의 번역판이 나왔다. 수메르어 전공 학자(길가메시 서사시를 처음으로 모아서 편찬한 이들이 바로 수메르 인들이다.)가 번역했고 2019년에 나온 개정판(이 책의 초판은 20년 전에 나왔다고 한다.)을 번역한 것이라 지금 읽기에 가장 좋을 듯하여 이번에 본격적으로 메소포타미아 신화를 파보려고 손에 잡았다. 사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인류 최초의 영웅 서사시라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의 영웅 서사시 '일리아스'보다 무려 1,500년이 앞섰다고 하니 말 다했다. 신화는 종종 태고의 인류들이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그들이 자연과 세상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확대경인 것이다. 앤드류 조지가 편역한 길가메시 판본은 '심연을 본 사람'이라 불리는 판본으로 기원전 10세기에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에서 가장 널리 읽혔다고 한다. 그만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만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내면의 동조 지수가 높다는 뜻일테고 그렇기에 더욱 그들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하여 한껏 부푼 기대감으로 읽었다.

 

 

 

 어쩌면 첫 페이지부터 좀 높은 허들을 느낄 수 있다. 그냥 산문이 아니라 제목에 나와 있듯이 서사시인 것이다. '일리아스'를 처음 만났을 때의 난감함을 이 책에서도 느꼈다. 그러나 서사시라서 페이지가 참 안 넘어가겠다는 예상은 몇 페이지 읽자마자 여지없이 깨어지고 말았다. 번역이 우리말로 참 맛깔스럽게 잘 되어 서사시인데도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길가메시는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영웅과 좀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서 이채롭다. 그는 자기가 가진 힘에 취하여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의 혼인 첫날밤을 자기가 먼저 치르는 만행을 부릴 정도로 교만한 독재자다. 그런 그가 백성들의 간구로 형벌을 받아 갖은 고행 끝에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이 '길가메시 서사시'의 본말이라 할 만하다. 이것을 통헤 그 당시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조금은 다가갈 수 있었다. 그들 역시 죽음 앞에서 유한한 자신의 삶과 그런 가운데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고민했다는 것을. 사는 형편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어디나 다 비슷한 것이다. 어쨌든 이것으로 오랫동안 빠진 고리로 남아 있었던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내겐 값진 독서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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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틸과 고커와의 대결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 인문학으로 놀자! 2021-10-29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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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컨스피러시

라이언 홀리데이 저/박홍경 역
책세상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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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틸이란 이름은 다소 생소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일론 머스크와 더불어 페이팔 회사를 만들었고 마크 주커버그가 페이스북을 만들었을 때 최초의 외부 투자자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이름이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프로레슬러인 헐크 호건이 자신의 섹스 비디오를 유츌한 미국의 가쉽 전문 미디어인 고커에게 소송을 걸었는데, 그걸 권유하고 뒤에서 지원했던 이가 바로 피터 틸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한 언론사를 대상으로 한 소송은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아무리 헐크 호건이라고 해도 승산이 희박한 싸움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수는 없다. 그걸 가능하게 만든 이가 피터 틸이었다. 그에겐 충분한 재산과 힘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왜 헐크 호건에게 고커와의 싸움을 종용했을까? 그건 고커가 피터 틸이 동성애자라는 걸 밝혔기 때문이다. 피터 틸은 고커로 인해 강제 커밍아웃을 당하여 그렇지 않아도 고커에게 원한이 깊었다. 그러던 차에, 헐크 호건 사건이 터졌고 피터 틸은 그걸 빌미로 고커를 끝장내고 싶었던 것이다. 10년에 걸쳐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피터 틸의 존재는 가리워져 있었다. 그는 자신이 드러나지 않게 헐크 호건을 도왔다. 호건의 그만한 싸움을 두고 의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호건 뒤에 누군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호건의 소송전에 음모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고 생각했고 그 뒤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 찾으려 했다. 그리고 피터 틸의 존재가 알려졌을 때 경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저 원한이 있다는 이유로 자신이 가진 돈과 힘을 사용하여 아무리 황색 언론이라고 하지만 한 언론사를 패망으로 이끄는 것이 정당한 일인가? 이건 언론 자유를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미국의 민주주의에게 꽤나 충격을 주었고 피터 틸은 공공연히 트럼프 행정부를 지지한 자이기도 해서 매서운 비난을 받았다. 피터 힐과 고커의 싸움은 결국 승자 없는 싸움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걸 미국의 저널리스트 라이언 홀리데이는 한 권의 책으로 담아냈다. 제목은 음모를 뜻하는 '컨스피러시'다. 단편적인 보도만으로 접했던 사건을 너무나 생생하고 상세하게 묘사하여 아주 깊이있게 헤아릴 수 있었다. 피터 힐의 막대한 자본은 언론사로 하여금 고커를 공격하는데 쓰이기도 했는데, 그걸 보면 요즘 한국 언론도 그렇지만, 지금의 언론은 더이상 국민이 아니라 돈을 위해서만 펜을 드는 것 같다. 사상과 출판의 자유를 위해 헌신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사상과 출판의 자유를 억압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철저하게 그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는 사람에게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그 반대에 있는 자들에겐 여지없이 냉혹하게 굴고 무시하는 언론. 언제까지 이 역겨운 행태를 보고 있어야 할까? 컨스피러시를 읽으면서 뒷맛이 개운하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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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왜 다시 계몽주의를 소환해야 하는가? | 인문학으로 놀자! 2021-10-13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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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금 다시 계몽

스티븐 핑커 저/김한영 역
사이언스북스 |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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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서판'과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읽었다면 도저히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으며 현재 가장 읽을만한 과학책을 쓴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스티븐 핑커의 새로운 책이 나왔다. 제목은 '지금 다시 계몽'. 

 

 무려 800페이지가 넘는 두터운 책이다. 제목 그대로 스티븐 핑커는 이 책을 통해 다시 계몽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그가 그러는 이유는 지금 우리의 사회가 반계몽주의적 현상을 날이 갈수록 더 많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브렉시트나 서유럽에서 극우주의가 유행하는 것 등등. 트럼프의 미국이나 아베의 일본 그리고 시진핑의 중국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IS나 탈레반의 종교가 잘 보여주듯이 이러한 반계몽주의는 타자에 대한 차별과 배척에 토대를 두고 있다. 정당한 비판은 용납하지 않으며 무조건 자지가 옳으니 그대로 따르라는 무분별한 믿음이 토대가 된 추종만을 강요한다. 합리적 이성으로 헤아리기 보다는 먼저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그걸 또 출처가 불분명한 여러 가짜 뉴스들이 기름을 들이 붇는다. 폭력이 당연시 되고 너가 아니면 내가 죽는다 식의 양자택일적인 갈등이 깊어진다. 18세기에 중세의 어둠을 밝혀주었던 계몽의 빛은 무엇보다 합리적인 이성으로 동등한 차원에서 대화가 가능하도록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중시했다. 하지만 이제 그 자유는 점점 더 위상을 잃고 우리나라 주류 언론들의 행태가 잘 보여주듯 이제는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되어 혹세무민하기 바쁘다. 지금의 검찰과 판사들이 그러하듯, 몇 푼의 돈이라면 기꺼이 명예도 직업적 양심도 던져버릴 수 있는 세상. 이런 흐름의 끝에 뭐가 있을 지는 불보듯 뻔하다. 독일의 나치즘은 그 좋은 예가 아니던가. 그러므로 스티븐 핑커는 다시 계몽주의를 소환하려 한다.

 


지그

 

 이 책에선 특히나 진보에 관심을 집중한다. 그는 현재 가장 무시받는 것이 진보라는 이념이라고 생각하며 그걸 2부의 주제로 삼아서 책의 거의 절반 분량을 할애한다. 저자는 진보가 이토록 무시되는 것이 행동경제학자들이 주장한 '가용성 휴리스틱 편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쉽게 말해 내 판단이 노출의 빈도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는 이론이다. 다시 말해, 어디서 뭔가를 반복적으로 많이 보고 들으면 그것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언론을 통해 경제가 불황이라는 얘기를 자주 그리고 많이 접한다고 하자. 그러면 아무리 경제 전망이 긍정적이라는 자료를 보아도 믿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보다 적은 수로 내게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자동차 사고가 비행기 사고보다 훨씬 많은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자동차 타는 걸 비행기 타는 것만큼이나 겁내지 않는 것 또한 언론에 자동차 사고는 잘 안 언급되지만 비행기 사고는 나기만 하면 대대적으로 보도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왜  오늘날 특정 의도를 지닌 가짜 뉴스들이 오늘날 판을 치는 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한다.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대량으로 뉴스를 살포하면 그렇게 믿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스티븐 핑커는 진보에 대한 무시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언론들은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을 다루기 좋아한다. 그 편이 사람들의 이목을 더 쉽게 끌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에 부정적인 것들이 많이 노출되면 가용성 휴리스틱 편향 때문에 사람들은 세상에 대해 점점 비관적인 믿음을 갖게 된다. 가면 살수록 세상이 전보다 더 불행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어느새 강하게 자리잡는 것이다. 그러면 진보란 이념은 바보같이 여겨진다. 이건 합리적 태도는 아니다. 그러므로 스티븐 핑커는 다른 사고 방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건 바로 수치를 강조하는 '정량적 사고 방식'이다. 정말 세상이 전보다 안 좋아졌는지 확실하게 과학적인 수치를 가지고 대조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해 보았더니 인류가 시간이 지날수록 진보해왔다는 결과가 드러났다. 바로 그걸 정리해 발표한 것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였다. 이러한 정량적 사고 방식은 이 책에서도 여전히 통용된다. 다시 말해, 확실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그는 왜 우리가 여전히 계몽주의의 신념을 유지해야 하는 지 밝히고 있는 것이다. 섣부른 비관과 오류에 기인한 절망에 빠져서 함부로 타자를 배척하고 핍박해선 안되는 이유를 말이다. 

 

 스티븐 핑커의 이 책은 자신의 강의를 들은 한 청중의 질문에서 발아했다. 그 질문이란 바로  '우리가 왜 살아야 하나요?'였다. 그 이유에 대해 '지금 다시 게몽'은 충분히 설득력있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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