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밀린 업무 정리하느라
매주 주말 출근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한동안 그럴 일이 없다가 새로운 업무가 밀려들어
다시 혼자 사무실을 독채로 쓰는 호사를 누립니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환한 대낮에 남산을 한바퀴 돌고 내려왔습니다.
늘 어둠을 배경으로 움직이던 공간이고,
사람들 마주칠 일이 없는 시간이고,
그나마 지나치는 사람들도 목적은 하나인데,
주말 낮 시간엔 같은 길이 딴 세상이 됩니다.
풍경은 다르지만, 몸을 움직이려 올라간 길에서
내게 오는 생각은 아침에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에 대한 생각, 관계에 대한 생각.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고 있는 사람인지.
시간을 들여도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들 때문에 살짝 힘이 듭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 때문에 생기는 고민들.
나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고, 그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나와 사람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가 됩니다.
살며 경험하며 알게 된 것들이 지금을 사는 데 도움이 될 거란 믿음은 착각일 뿐입니다.
남산 꼭대기를 돌고 내려오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됩니다.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됩니다.
어디가 아픈지 모르겠지만 조금 나아질까 하는 기대가
남산으로 발길을 옮기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