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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멍 위키와 나: 그동안 우리는 서로를 잘 길러주었다 | 비문학소설 2021-09-22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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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귀농멍 위키와 나

한태훈,한위키 공저
마리앤미 | 2021년 09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여전히 한위키는 그의 기억에 남아 그를 잘 길러주고, 한태훈 작가는 행동으로 위키에게 응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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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도덕책에 나오는 돈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는 뻔하고 거짓말 같은 가치. 누구나 행복해야 한다는 가치. 나는 위키를 통해서 배웠다. 누군가는 한없이 나를 사랑해준다는 것도 위키가 가르쳐줬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2018.11.5 한태훈-

 

그럴듯하게 힘이 들어간 글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글의 가장 큰 차이는 '순수성'인 것 같다. 글도 사람에서 생산되는 부호이니 쓰는 이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단어와 문체, 서술방식과 분위기가 달라진다. 복잡한 사회관계망 속에서 살 길을 찾다 보면 나의 글은 민낯을 감추기 위해 기교를 부린다. 나의 안위를 위해 타인의 고통을 이용하기도 하고, 대중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글로 나를 포장하는 식이다.

 

물론 '보이는 것'보다 '보는 것'이 중심이 되는 글도 있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세상이 추구하는 사람, 삶의 방식, 행복의 기준에서 벗어나 보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일지 걱정하기보다 "난 이렇게 할래"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삶의 주체가 '나'인 사람이다. 남들과 비슷하게 살려는 노력으로 청춘을 보내는 사람들 속에서 이런 사람의 글을 만나는 경험은 귀하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작가의 글을 통해 배우기 때문이다.

 

< 귀농멍 위키와 나>는 택배원이던 한태훈 작가가 학대받던 이웃집 강아지 '위키'를 구출하고 귀농하게 된 에세이집이다. 작가는 위키를 때리고 맞는 소리에 도저히 쉴 수 없어서 우발적으로 위키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다고 고백한다. 오지랖이었다고 문제 삼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관심이다.

 

늦은 밤 아파트 단지 내에서 술 취한 일가족이 고성방가 하며 다투는 걸 목격한 적이 있다. 서로를 밀치며 분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가족을 탓하기만 했다. 반면에 신랑은 곧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되짚어 보면 나는 그들과 얽힐까 봐 귀찮았고, 신랑은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끝내려고 행동했다. 상황은 다르지만 문제 해결로 이어지는 길은 같다. 관심 말이다.

 

나는 <귀농멍 위키와 나> 곳곳에서 저자가 (겸손에 가깝게) 자신을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소개하는 것을 느꼈다. 배운 것이 없으니 취직을 못하고 택배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매일 '을'의 입장으로 만나는 사람들과 그들이 보내는 다양한 무게의 물건을 배달하는 청년은 확실히 그렇게 보인다. 한창인 나이에 고된 일로 감정의 곡간이 바닥나고 등만 붙이면 밀려오는 잠에 생각할 겨를도 없는 청년. 택배기사 조끼를 입는 것이 유일하게 생존하는 방법, 살아갈 방향, 사는 이유로 보인다.

 

그럼에도 나는 이웃에 관심을 기울이는 따뜻한 그의 됨됨이가 그를 더 나은 삶 쪽으로 이끌어왔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학대받는 동물을 보면서 외면하는 사람도 있다. 반려동물을 낯선 동네에 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는 위키를 구했고 당당히 가족으로 맞이하지 않았나.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고, 취직에 도움이 되는 행동도 아니었다. 동물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정도는 우기고 싶다. 좋은 사람이라서 좋은 강아지가 찾아온 것이라고.

 

택배일 말고는 달리 설명할 특징이 없는 청년. 작은 원룸 외에 다른 터전을 생각해 본 적 없던 강아지. 둘이 만나자 지금까지 와 다른 삶을 그려보는 일이 가능해진다. 택배 일을 그만두고 귀농해서 꽃과 사과를 재배하며 하루하루 선물 상자를 여는 맘으로 사는 것이다. 물론 인간 세상에서 물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모두 한태훈 작가의 몫이다. 그러나 동력이 되어주는 것은 그의 아들 '한위키'였다. 둘은 주체적으로 살기 시작한다.

 

그래서인지 위키와 함께 했던 지난 날을 돌아보는 작가의 글은 망설임이 없다. 위키와 살며 선택하는 매순간 망설임은 있었으나 후회는 없었던 사람의 글이다. 오히려 위키와 있었던 일에 허구를 붙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기록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보인다. '부끄러움'까지도 왜곡하지 않고 소중히 기억하려는 글이라서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선명했다.

 

한태훈이라는 사람과 한위키라는 강아지가 서로에게 무엇이 될지 짐작케 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하루아침에 중증근무력증에 걸린 위키가 걸을 수 없게 된다. 영영 걷지 못할 확률을 고려해야 하는 병이다. 위키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열흘째, 병원비를 벌기 위해 열심히 택배일을 하는 한태훈에게 전화가 온다.

 

"아버님! 위키가 지금 잠깐이지만 걸었어요."

"네? 걸었다고요?"

"네! 위키가 잠깐이지만 걸었어요. 그리고 위키가 계속해서 걸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오늘 일 끝나고 위키 보러 오실 거죠? 그때까지 위키가 더 잘 걷게 되면 좋겠어요."

 

'계속해서 걸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통화를 끊은 뒤에도 작가는 이 말을 곱씹는다.

'...... 그러니까 아빠도 포기하지 말아요.'

소리 없는 위키의 목소리를 듣고자함이 아니었을까.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귀농멍 위키와 나>를 읽은 지 한참이 지난날이다. 그러나 여전히 노란색 표지에 손을 얹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다. 내 품에 안기고 떠났던 동물들과 나누었던 꿈같은 이야기가 두 사람의 모습과 겹쳐 떠오르기 때문이다. 나에게 오직 위로와 사랑만 주고 간 친구들이 보고 싶다. 그러나 내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

 

작가는 한 생명을 끝까지 돌보고 하늘로 보낸 뒤에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 사과와 꽃을 판매한 수익금으로 유기견을 후원하고 있다. 여전히 한위키는 그의 기억에 남아 그를 잘 길러주고, 한태훈 작가는 행동으로 위키에게 응답하는 것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동물 같기도 한 사람과 사람 같기도 한 동물이 내 안에 심은 사과 씨앗이 뿌리를 내리는지 아프고 설렌다. 나도 나를 잘 길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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