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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 기본 카테고리 2022-03-21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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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박영서 저
들녘 |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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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이란 말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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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속의 조선 정치인들은 드라마틱한 정치사가 아닌

일반 백성들의 삶, 즉 민생문제의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환과고독과 장애인은 국가가 돌보아야한다"라는 태조 이성계의 선언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건국초부터 각지에 파견된 지방관은 수시로 환과고독(과부,홀아비,고아,독신노인)과

장애인의 수를 파악하고 관리했으며 진휼과 환곡을 대비해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었다.

중앙정부의 고위직 관리들 역시 각지의 지방관들이 올리는 복지 예산신청을 들어주기 위해 밤낮으로 궁리를 했으며 지방관의 보고를 통해 올라오는 백성들의 탄원 해결, 복지정책의

건전한 집행을 위한 감시 및 제도 마련 등의 사안을 놓고 끊임없이 고민한다.


물론 상공업을 천시하고 농업만 권장하는 조선의 기본 경제기조를 바꾸지 않은 채 매년

국가예산의 대부분을 복지에 쏟아붓는 이런 예산 불균형정책이 조선을 다른 국가규모의

사업을 시행할 여력은커녕 분식회계와 허위장부 상의 종이호랑이로 만들어버렸고,

이에 더해 행정적-기술적 한계는 결국 지방관과 아전, 향촌 사대부 계층의 야합이라는 부패 카르텔의 형성과 함께 그들이 복지정책을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수단으로 악용하게 만들어 조선말 각종 봉기와 민란의 원인인 '삼정의 문란'을 야기했다는 점에서 분명한 문제점을 보이기도 하지만, 민주주의라는 개념도 없던 군주정의 시기에도 '굶어죽는 백성이 없도록 한다'라는 달성 불가능한 목표를 위해 500여년의 긴 역사 내내 고민을 거듭한 조선 정치인들의 노력은 그저 '어리석다'라는 한마디로 결론짓기 어렵게 만드는 울림이 있다.

 

허나 우리가 알다시피 조선은 결국 실패했다. 그렇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


이 책의 저자는 조선이 시도했던 다양한 복지정책의 변천을 따라가며 각 정책의 문제점에

대한 당시 조선인들의 인식을 기록과 함께 소개한다. 국무회의에서 오고간 대화나 지방관의 보고서 혹은 개인의 일기 등 각개각층의 사람들이 어떤 문제점을 인식했고 어떤 해결책을 제안했는지를 보다보면 지금도 복지정책을 놓고 벌어지는 논쟁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속가능한 복지가 증세없이도 가능한가? 자력갱생을 위한 도움이 아니라 생계를 위한

보조금만 지급하는 복지정책이 대상자들에게 정말 유익하다고 할 수 있는가? 과연 퍼주기식 복지가 능사라 할 수 있는가?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어떤 정책이 모든 문제를 말끔히 해소할 수 있다는 믿음은 순진하다'라고 일갈한다.

복지문제는 결국 해당 시기의 인구수, 경제규모 및 불평등지수의 수준에 따라 '저부담-저복지'와 '고부담-다복지'의 사이 어딘가에서 표류할 수 밖에 없으며 다만 '불공정/불평등을 최소화 한다'라는 복지의 존재이유에 맞게 정책에 유동성을 갖고 국민들의 관심과 의견을 수렴하며 계속 시도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500여년 동안 정책을 놓고 밤을 샌 조선인의 정책입안자들, 현장의 최일선에서 밤을 샌 집행자들, 복지정책에 울고웃은 대상자들의 이야기들 그리고 혈연,지연,학연을 동원해 부정수급을 일삼는 자들의 이야기들은 우리가 지금의 대한민국과는 모든 면에서 다른 조선의 역사를 거울삼아 돌아볼 이유로 충분하다.

 

 

******


나름 역사 애호가를 자처하면서도 내가 조선에 대해

이렇게도 몰랐었구나하는 자책감에 책을 보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생각해보면 내가 아는 조선의 역사란 당파싸움의 긴 갈등 사이에서 벌어진 굵직한

사건들이나 왕가의 스캔들 따위가 전부인 '조선 정치사'였고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조선 전체 인구의 1%에 불과한 최고위층이었다. 나머지 99%의 삶을 하나도 알지 못하면서 지금까지 잘도 조선에 대해 떠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 [시시콜콜한 조선복지실록]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당파싸움'이나 '상공업천시'

등 조선왕조 500년에 대해 부정적인 면만 갖고 있던 내 의식이 크게 변했다는 점이다.


조선이 대한민국에 대한 자조적인 멸칭으로 쓰인 '헬조선'이라는 말이 별 거부감없이

널리 퍼진 것처럼 대다수가 조선에 대해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는 지금, 이 책이 많이 읽혀

사람들이 나처럼 조선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조금이라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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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의 재정의 | 기본 카테고리 2022-01-02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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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둠 재앙의 정치학

니얼 퍼거슨 저/홍기빈 역
21세기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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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재난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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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현재 우리는 재앙의 시대를 살고있다.


세계는 코로나19라는 혼돈의 터널 속 어딘가에 머물러있으며

언제쯤에야 그 끝에 다다르게 될지, 그리고 그 너머엔 어떤 풍경이 펼쳐지고

있을지 가늠조차 못한 채로 그저 웅크리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그렇기에 바로 지금이 재앙 그 자체를 진지하게 고찰해볼 적절한 시기라고

말한다.

 

재앙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재앙을 예측할 수 있는가? 재앙을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그리고 재앙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할 것은 무엇인가?


우선 저자는 '재앙'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을 부정한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할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인류종말급의 대재앙이

아니라'어쩌면 우리의 노력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피해를 줄일 수도 있었으나' 대응의 실패로 인해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모는 재난이며 이런 관점에서 볼때 이미 21세기만 놓고 보아도 코로나19 이전의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세계적 금융위기, 국가의 실패, 이민 흐름의 폭증 민주주의의 후퇴 메르스 조류독감 등 이런 재난은 줄줄이 이어져왔고 코로나19는 그저 가장

최근의 사태에 불과하다고 한다.


즉 코로나19에 대한 실존이상의 공포에서 벗어나 의연히 바라보는 환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지진이나 홍수, 역병, 기상이변으로 인한 기근 등 우리가 천재지변이라 생각하는 재앙들 역시 그 자체로는

불가항력적이고 예측불가한 자연재해이나 그 피해의 규모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 우리의

대응이었고 실제로 역사상의 수많은 재난들은 그 시대의 사회구조 및 의식/기술수준에

따라 인명피해의 수가 달라져왔음을 사료와 통계에 기반한 근거로 내세운다.

 

이처럼 재난은 비록 예측불가하고 불가항력적이지만 우리의 노력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피해를 줄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위기를 극복한 결과 더욱 단단해지는 '안티 프래질antifragile'상태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그렇다면 어째서 재난이

발생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최초의 징후를 발견했을 때, 이 것이 회색코뿔소에 불과할지 검은 백조급의 사태로

발전할지 아니면 드래곤 킹급 대재앙의 서막을 열지를 판단하고 대응 정도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며 체르노빌 방사능 유출/ 챌리저호 폭발/

1957-1958 아시아독감 유행의 억제 등 비슷한 시기에 발생했던 세 재난의 인과 비교를

통해 정책결정권을 가진 집단의 의식과 단합에 따라 사태의 향방은 얼마든지

바뀔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재앙에 관한 재정의 및 고찰에 이어 이를 기반으로 현재 코로나 19의 확산과 미국/유럽 등

선진국들의 처참한 방역실패 원인을 분석하는 저자는 지난 역사를 통해 재난은 언제나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폭력적인 사회적 갈등이나 전쟁 등의 2차적 피해를 수반해왔다는

분석에 따라 코로나19사태 이후의 세계에 일어날 수 있는 국제적인 사회 혼란에 대한

여러 가능성을 경고한다.


코로나19라는 재앙의 진정한 위험은 그 살상력 자체가 아니다. 사실 코로나19로 인한

인명피해의 규모는 1947-48년의 아시아독감수준이며 이는 지금까지 발생했던 팬데믹

중에는 경미한 편이다.

 

허나 세계화라는 네트워크로 전세계가 역사상 그 어느때보다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는

지금은 재난의 2차 파급력이 그 어느때보다 강력하게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이며 실제로

전세계는 삽시간에 퍼지는 가짜뉴스들이 전염시키는 과장되고 허황된 공포에 요동치고 있다.

 

한 편에선 고립주의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반대편에선 코로나19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강력한 범국제적 단일 지휘체계라는 전체주의체제를 요구하고 있으며

사실상의 전제국가인 중국은 자국의 체제의 유용성을 선전하며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비방하고 있다.


저자는 현재의 이러한 분위기가 이미 코로나19 이전부터 격화되고 있던 미국과 중국의

대결구도를 본격적인  2차냉전시대라는 파국으로 끌고갈 위험이 있으며 현재 미국의

대내외적 상황을 놓고 볼 때 이번 냉전에서도 미국이 승리할 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경고로 책을 마친다.

 

 

[둠:재앙의 정치학]은 저자의 말마따라 시의적절한 때에 나온 책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정치학'이라는 표제답게 이 책의 내용들은 일반시민이 아니라 정책결정권자들에게

더 즉시즉효를 줄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내용 자체에서 저자만의 참신한 주장이나

놀랄만한 정보는 없었지만 코로나 19가 이미 일상의 깊숙한 부분까지 침투해 그 추이와

방역대책에만 천착하여 지금 현재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가를 객관화시켜 볼

여력이 없던 요즘 같은 시기에 [둠 : 재앙의 정치학]을 읽는 것은 재앙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가 진정으로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등 보다 거시적 시각에서 현 상황을

환기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기후위기, 인구증가, AI나 유전공학의 위험하리만치 급속한 기술발전 등 우리가

'미증유의 재앙'을 두려워 할만한 요인들은 많이 있지만 우리가 지난 과오 속에서

무엇인가를 배우고 그 각성을 활용할 수 있다면 그 위기의 터널 끝에 기다리는 것이

인류종말이 아닌 안티 프래질 상태 일 수 있다는 말에 가벼운 위안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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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증편향이 가져온 비극 | 기본 카테고리 2021-10-24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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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

줄리아 보이드 저/이종인 역
페이퍼로드 |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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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증편향이 가져온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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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와 나치가 벌인 만행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전혀 새로운 충격과 몰입감을 주었다.

그 때 당시의 바로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이 들려주는 목격담들은 그 자체로 영상이 

담지못하는당시 현장의 분위기를 전해주는 훌륭한 기록문학인데, 특히 어째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나치의 유례없는 억압 정책에도 일반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를 열광적으로 지지하였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책을 통해 알게 된 가장 놀라웠던 점은, 이미 1차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이라는 

과오를 가졌음에도 독일은 내내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는 점이었다.

 

유럽과 미국의 식자층들은 독일이 배출했고 유럽문명에 이바지했던 위대한 예술가와 철학자들,아름다운 자연, 향수를 부르는 고즈넉한 중세풍의 마을에 더해 독일인들의 근면함과 소박함 등 그야말로 독일의 모든 것들을 사랑했고 그 것들을 향유하고자 했는데 마침 1차세계대전 후의 경제난으로 독일 마르크화의 환율이 '아주 좋은 조건'이기도 했기에 수많은 유럽인들이 독일을 여행하고 자식들을 유학보내기까지 했다.

 

독일에 대한 이런 선망과 애정은 히틀러와 나치에 경계심을 가진 사람들조차 인정할 정도로 

사회 전반에 퍼져있었기 때문에 독일을 방문한 많은 유럽인들은 1933년 히틀러가 수상에 

취임한 즉시부터 시작된 군국주의체제로의 전환과정의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었음에도 

독일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를 내릴 수가 없었는데 심지어 일부는 히틀러가 2차세계대전을 

일으킨 후에도 끝까지 독일에 대한 평가를 바꾸지 않으려 할 정도였다.

 

그들은 그저 독일의 훌륭한 정신문화와 독일인들의 높은 의식수준이 결국 나치의 광기에 

제동을 걸 것이고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히틀러도 차분하게 유화정책을 펼 것이라는 

낙관으로만 독일을 바라볼 뿐이었다.

 

물론 이런 망상에 가까운 희망만이 히틀러의 횡포를 눈감아주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히틀러가 주장한 인종차별의 기반이 된 우생학은 영국과 미국을 위시한 당대 유럽인들에게 

널리 지지받던 이론이었으며 특히 유대인에 대한 반감과 차별적 선입견 역시 당시

유럽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던 것들 이었기에 히틀러의 아리아인 우월주의와 

유대인차별에 대해 대다수의 교양인들 조차 '대놓고 지지하지는 않지만 뭐라 판단할 수 없다'

는 입장을 보였고 히틀러와 나치가 독일국민들의 삶 깊숙한 곳까지 강요한 엄격한 통제는

그에 속할 필요가 없던 외국인들에겐 '높은 고용율과 안정된 사회 질서'로만 보였기 때문에 

그들은 국가사회주의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일부는 자신이 속한 사회가 지향해야 할 

장점들이라고 찬양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오스트리아가 강제 합병되었을 당시에도 오스트리아의 일반 국민들중 일부는 

이제 히틀러의 나치 덕분에 오스트리아도 독일처럼 실업률이 줄고 경제상황이 호전되어 

삶이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에 기뻐하기도 했다)

 

히틀러가 총통에 오른지 87년이 지난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 모든 희망어린 판단들이 

결국 집단적인 확증편향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과연 나는 저들을 우매하다고 

질타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5~6년 전 우리나라에 느닷없이 중국열풍이 불었다. 대표적인 지상파방송이자 공영방송인 

KBS에서는 [슈퍼차이나] 라는 방송을 통해 중국의 눈부신 경제성장과 엄창난 포부 등을 

자세히 보도하며 중국이 미국과 패권을 다투는 초강대국이 될 것이라고 했고 도올교수는 

방송에서 중국의 지도자 시진핑이 청렴결백의 표본이라고 찬양했다.

경제전문가들 역시 이제 중국에 관심을 가져야 하면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에 참여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들 중 누구도 중국의 심각한 인권침해와 공산당의 일당독재 체제의 

불안정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재미있게도 당시 중국의 찬양하던 많은 사람들 또한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들에 대해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중국도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게 될 거라고 말해왔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은 중국인들의 물질적 삶을 풍요롭게 할 거고 그럼 자연스럽게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커져 공산당도 어쩔 수 없이 물러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나 역시 중국에 대한 찬양을 곧이곧대로 믿어 중국 주식에 투자를 했고 그 후 중국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이 5~6년 동안 내가 지켜본 중국은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눈부신 경제성장은 조작과 압제로 쥐어짠 기만이었으며 민주화에 대해

중국 공산당은 최근 홍콩 시민들에 대한 폭압과 학살로 답변을 대신했다.

거기에 2021년 시진핑의 임기는 최장 2032년까지로 연장되어 사실상의 종신집권체제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현재 중국은 대만과 전쟁분위기를 조성하며 주변국민들에게

염려와 불안감을 심어주고 있다.

 

이 책을 통해 평범한 개인이 진단할 수 있는 대상의 범주가 얼마나 좁은지, 

확증편향의 유혹이 가져오는 결과가 삶에 얼마나 큰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지, 

그리고 정확한 판단은 정확한 근거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다시 깨달았다.

 

아주 평범한 결론이지만 위에 언급한 내 개인적인 경험이 더해져 평생 잊지 않을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이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은 '몰입감'이다.

히틀러의 집권부터 독일의 패망까지 제3제국의 흥망과 함께 연대순으로 담긴 목격담 속의 

분위기도 기쁨과 희망, 불안과 초조, 그리고 탄식과 절망으로 점차 변해하는데 이 과정이 

주는 생동감과 현장감이 뇌리에 깊이 박혀 600페이지가 길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다.

다만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 속의 목격담들은 말그대로 외부인인 여행객들의 

시선이기에 그들이 묘사하는 당시 독일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의 독일은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독일인의 목격담도 함께 읽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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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로드라는 이름이 주는 불편함 | 기본 카테고리 2021-08-16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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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모피로드

윤성학 저
K북스 |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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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시베리아 정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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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로드]

제목이 주는 생경함에 강한 호기심이 일었다.

거시역사의 장구한 흐름 속에서 실크로드나 초원길(스텝로드)이 보여준 그 거대한 존재감과 

웅장한 서사들을 떠올리며 기대감이 부풀기도 했다.

허나 책을 다 읽은 후엔 오직 한가지 생각만 머리속에 가득하다.

이 길을 과연  '모피로드'라고 불러도 되는 것일까?

러시아의 시베리아 진출사는 그 목적과 과정이 스페인의 아메리카대륙 정복과 데칼코마니처럼 닮아있는데, 결국 모피를 얻기 위한 약탈과 살육의 연대기이며 시베리아 원주민에 대한 침탈과 식민화의 역사이다.

러시아에게 시베리아는 모피라는 고부가가치 재화를 거저 얻을 수 있는 그야말로 화수분 그 자체였는데, 그 땅에 살고 있던 120여개 부족 20여만명의 원주민들은 여전히 동물 뼈와 석기를 사용하는 미개한 노예들일 뿐이었고 이런 원주민들에게는 회유를 위한 가식과 위선의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기에 러시아는 폭력이 가진 효율성에 아무런 망설임없이 기댈 수 있었다.

이 자비없는 폭력은 결국 그 것이 수반하는 파괴의 비효율성이 효율성을 넘어서는 수준에 이르러서야 통제 되기 시작했으나 시베리아 원주민의 운명은 모피를 위해 피부가죽이 벗겨진 채 씨가 마른 검은 담비나 북극여우, 해달 등의 동물들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떨어져버렸다.  

이런 참담한 역사를 품고있는, 피웅덩이와 뼈무더기로 이루어진 그 길을 그저 '모피로드'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되는 것일까? 양방향의 교역로가 아닌 그저 일방향의 약탈로였던 길을 말이다.

만약 우리가 임진왜란전쟁에서 왜에게 정복당했다면 이 또한 일본이 고부가가치 상품이자 위신재인 도자기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개척한 '세라믹 로드'라 불리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착잡해진다. 

모피로드라는 이름은 학계에서 명명법에 따라 지은 가치중립적 명칭이겠지만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수탈과 폭압의 역사가 전혀 느껴지지 않기에 의도 되었건 그렇지 않건 결과적으로 제국주의가 자행했던 가장 거대한 규모의 범죄가 은폐 되었다고 생각한다. 양자간 우열이 모든 것에 우선했던 지난세기의 과오를 딛고 이제 호혜의 미덕을 최선의 가치로 추구하는 21세기 지성의 흐름에 맞게 모피로드라는 이름도 다시 명명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피로드의 역사에 대한 감상과 별개로, 저자는 이 모피로드가 대한민국의 국익에 미칠 이로운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21세기 러시아의 신 모피로드는 두 갈래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북극항로와 시베리아 횡단 철도이다. 러시아는 이 신 모피로드의 동쪽 끝에 닿아있는 아시아-태평양 경제권과 연계해 나날이 쇠퇴해가는 시베리아지역의 부흥과 러시아의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고자 하는 사정이 있으며 모피로드의 종착지에 위치한 우리나라도 이 길을 이용하면 유럽까지의 운송시간이 10여일 정도 단축된다. 허나 저자는 이 신 모피로드가 새로운 물류 네트워크의 한 축을 차지하기엔 아직 불안요소가 많은 점도 지적하며 다만 그 가능성까지 섣불리 경시하지는 말자는 정도의 소개로 마무리 하고 있다. 

책의 단점은 우선 다듬어 지지 않은 문장이 계속, 특히 책의 후반에 갈 수록 눈에 띄게 보인다는 점이다. 어느 책이든 오타나 매끄럽지 않은 문장이 있기 마련이지만 [모피로드]는 후반부로 갈 수록 다른 책에 비해 많이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표지에 좀 더 신경을 썼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요즘 출간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책들도 '리커버 특별판'으로 재출간 될 정도로 커버 디자인이 독자들에게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으며 나 역시 커버 디자인이나 책 제목의 폰트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가곤 하는데

[모피로드]의 커버는 책이 담고 있는 가치를 보여주기에 빈약한 디자인이라 아쉽다. 좀 더 무게있는 표지였다면 어땠을까 싶다.

허나 책 [모피로드]가 담고 있는 내용들은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기에 숙독할 가치가 충분히 높다고 생각한다. 350페이지 정도의 적절한 분량에 시베리아의 역사는 물론 러시아와 한국의 접촉도 빠짐없이 담고 있다. 

 

책의 내용은 크게 1.러시아의 시베리아 정복 2. 러시아와 한국 3. 신 모피로드와 한국 이 세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조선 효종때의 '나선정벌'로 기억하는 한국과 러시아와의 첫 조우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일어났는지, 그리고 조선말 고종과 민비가 의존했던 러시아제국의 입장은 어떠했는지 등에 대한 내용은 특히 굉장히 유익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러시아의 시베리아 진출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에게 추천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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