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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칼럼니스트가 되는 요건 | 도서 리뷰 2020-09-29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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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피은경의 톡톡 칼럼

피은경 저
해드림출판사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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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려면 칼럼을 읽으라는 말이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같은 블로그를 쓰는 관계로 블로그에서 저자의 글을 읽는다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는 처음 블로그 활동을 할 때부터 칼럼을 계속 올리고 있다. 그것도 생활 칼럼을.


오랫동안 저자의 글을 봐 와서일까? 물론 난 아직도 칼럼을 쓸 자신은 없지만 이렇게 쓰는 걸 칼럼이라고 하는구나 싶다. 무엇보다 저자의 글은 자칫 일상에서 흘려버릴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게 만들고 일상의 아름다움을 잘 포착해 전달해 준다. 그것도 매번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수필은 비교적 좀 사적이고 감정에 호소한다면, 칼럼은 우리가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나 자칫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는 사고에 과연 그런가 하며 좀 다르게 생각해 보기를 유도하기도 한다. 그것은 이성적이며 논리적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안정적인 사고와 저자 특유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래서 저자는 생활 칼럼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생활 수필이란 장르가 있었는데 그것이 생활 칼럼으로 바뀐지도 모르겠다.) 


이런 저자의 글이 언젠가 책으로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드디어 나오게 돼서 기뻤다.

솔직히 같은 글이라도 인터넷에서 읽는 것과 책으로 읽는 맛이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인터넷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파편화된 느낌이지만 책은 그 여러 편의 글을 모아 다듬어 저자의 생각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나는 저자의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글을 보면서 저자가 글쓰기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가를 느끼곤 한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는 글 쓰기를 위해 많은 공부를 해 왔으며 지금도 그 노력을 늦추지 않고 있다. 물론 그건 저자뿐만 아니라 글쟁이라면 평생 감당해야 할 업보는 아닐까 싶다. 또한 저자의 특징 중 하나는 칼럼에 문학 작품을 녹여 칼럼으로서의 품격을 높이기도 한다. 그런 것을 보면 저자가 한 편의 칼럼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글 쓰기도 여러 장르가 있지만 저자는 언젠가 칼럼을 가장 잘 쓸 수 있을 것 같아 쓴다고 했다. 물론 작가가 다방면으로 글을 잘 쓰면 좋지만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장르를 골라 전문이 되는 것도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활 칼럼은 보다 많은 독자들을 포용할 수 있어 좋다고 생각한다. 신비주의 작가도 나름 나쁘진 않겠지만 블로그 활동을 열심히 하다 작가가 되는 경우가 많아진 만큼 독자 같은 작가, 작가 같은 독자가 더 중요해졌고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니 문득 생활 칼럼니스트가 되는 몇 가지 요건이 발견됐다. 그걸 정리해 보면, 먼저 생활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는 걷는 것을 좋아하고 (지금은 코로나로 좀 어려워지긴 했지만) 발레로 꾸준히 몸을 다진다. 저자는 몸이 안 좋아 시작했다고 전하기도 하지만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생각이 깃드는 법이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삶에서 늘 긍정적인 요소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정말 생활이 문란하다던가 어딘가 건강하지 못하서야 그런 글을 쓸 수 없다. 또한 '우정은 정이오'란 제목에선 마음이 훈훈해지는 것을 느꼈는데 이 '우정은 정이오'란 저자가 절친과 건배할 때 하는 건배사라고 한다. (건배사가 참 그럴듯하다.) 마음을 나눌 친구 둘, 셋만 있어도 그 사람은 평생 외롭지 않다고 하지 않는가. 이것이야 말로 좋은 칼럼니스트가 되는 요건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책이 빠지면 안 된다. 저자는 책에 대하여 이런 말을 썼다. 

 책을 보면 참 잘생겼다고 느낀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바라보면 또는 방바닥에 쌓여 있는 책들을 보면 그것의 잘 생긴 외양에 감탄하곤 한다. 이보다 더 잘 생길 수는 없을 듯싶다. 아무리 전자책의 출현으로 인해 종이책이 종말을 고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한 장 한 장 넘기는 종이의 결감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92p)

읽고 좀 놀랐다. 나도 내내 책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책이 잘 생겨서일까? 책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고 때로 이 잘 생긴 녀석들 언제 다 읽을까 고민도 하며, 손때 한 번이라도 더 타게 해 줘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러다 보면 가끔은 서글플 때가 있다. 책은 이리도 잘 생겼는데 내가 죽기 전에 몇 권이나 읽을 수 있을까 또한 내가 죽고 나서는 어떤 책들이 세상에 나올까 그 책을 읽을 수 없음이 아쉬워서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잠시도 지루하다던가 우울할 새가 없다. 글을 쓰는 사람이 책에 감탄하지 않고 아무런 감흥이 없다면 저자가 될 수 없다.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건강한 몸과 마음. 긍정적 사고, 좋은 친구와 평생 읽어도 다 못 읽을 책을 사랑하고 건강한 마음으로 쓸 글감이 있다는 건 정말 최적의 생활 칼럼니스트가 될 요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생활 칼럼니스트에게만 요구되는 요건은 아닐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삶을 견지한다면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런 사람이라면 생활 칼럼니스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저자의 글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넉넉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 원래 저자의 글을 생각하면 별 다섯 개도 아깝지 않지만 책 정장이 참 많이 아쉬웠다. 출판사는 분발하라는 의미에서 하나를 뺐다. 저자의 양해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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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삼대를 읽고... | 도서 리뷰 2020-08-19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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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철도원 삼대

황석영 저
창비 |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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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이란 책이 떠올랐다. 물론 그것과 이것은 내용도 결도 다르다. 더구나 뒤에 '삼대'가 붙었다. 그러니 또 염상섭의 소설이 생각났다. 어쨌든 철도원과 삼대라는 조합이 근사하게 느껴졌다. 책 표지도 마음에 든다. 무슨 책인가 했더니 전에 예스 24 무가지 잡지인 예스채널에 '마터 2-10'이란 작가의 소설 연재를 단행본으로 내면서 제목이 그렇게 바뀐 것이다. 어떻게 해서 처음에 그런 제목을 정하고 그것이 뜻하는 바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마터 2-10'라니 무슨 SF물 같기도 하고 영 낯설었다. 역시 책은 제목이 반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무려 30년 동안 묵히고 어르고 달래서 나온 작품이라고 한다. 처음 생각한 게 1989년 방북을 했을 때였다고 하는데 물론 30년 동안 이 작품만 붙들었다는 얘기는 아닐 테다. 작가는 그 이름이 주는 무게감만큼이나 왕성한 글을 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쓴 작품만 해도 결코 만만치 않고 짬짬이(?) 근대 작가들의 작품을 편집도 했다. 언제 그 많은 작업들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는 중에 이 작품도 썼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근대 문학작품을 보면서 일제 시대 노동사를 다룬 작품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이 작품에 착수했다고 한다. 


이해가 전혀 안 가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는 노동운동을 한다고 하면 무조건 빨갱이로 보는 경향이 있고 이것은 꽤 오랫동안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해 왔다. 지금도 여전하고. 그러니 노동사 자체를 다루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것을 문학으로 녹여낸 작품은 더더욱 기대할 수가 없다. 모르지. 북한 문학엔 우리 남한보다 많이 있을지. 솔직히 우리나라 근대 문학이라는 것도 한정적이란 느낌이 들긴 하다. 근대에 활동했던 작가들의 작품이든, 근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쓰는 요즘 작가든지 간에 말이다. 그런 점에서 황석영 작가의 이 작품은 남다른 의미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별히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를 배경으로 했다. 흔치 않은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내가 최근에 읽었던 안재성의 <경성 트로이카> (조선희 작가의 <세 여자>도 포함)와도 맥락을 같이해 뭐 이런 우연이 있나 반갑기도 했지만 우리나라 근대를 들여다보면 어느 지점에서든 만날만한 인물들이란 생각이 든다. 게다가 작가 특유의 작품을 엮는 재주는 거의 신기에 가까워서 읽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그려진다. 누가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 주면 좋겠다 싶다. 한동안 역사 드라마가 붐이었는데 요즘엔 좀 뜸한 편이라 좀 아쉽다.


특히 이 작품은 현대와 근대를 교차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첫 장면부터 나오는 노동자의 크레인 고공 농성을 사실적으로 그려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난 몇 년 전 뉴스나 신문에서 고공 농성 소식을 접하면서 그들이 허공에 매달려서 뭘 하는가에 대해 지금까지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만큼 내가 우리나라 노동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었구나 뜨끔했다. 


노동 문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지난 8월 14일은 우리나라 택배 역사 28년 만에 처음으로 택배 없는 날이었다고 한다. 난 아직도 그게 이해가 가질 않는다. 당연히 택배 기사들도 남들 쉴 때 쉬는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난 공휴일에 택배를 받아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그들이 28년 역사 동안 한 번도 제대로 쉰 적이 없어서 그런 특별한 날을 지정했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왜 기본적인 게 어떤 사람에 이처럼 특별해야 하는 것일까. 마침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그날 하루를 쉰 택배 노동자들은 그만큼 밀린 일을 그다음 주에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일단 하루 쉴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고 한다. 그건 내가 고공 농성 때 농성자는 크레인에 매달려 뭘 하고 지내는지를 전혀 모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말 우리나라 노동 문제는 양파 같아서 까도 까도 새롭다. 도대체 우리나라는 빨갱이란 이름 아래 노동자의 문제를 얼마나 많이 숨겨 놓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우리나라 노동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386 세대 언저리쯤 노동 문학이 나왔던 것을 감안해 얼핏 그 무렵부터를 생각하면 큰일 난다.


이런 작품은 황석영 같은 걸출한 작가가 쓰는 것이 맞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아직 황석영 작가에게 매료당하지 못했다. 본문만 600쪽이다. 유장한 문체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권할만하다. 독서는 내가 소화해 낼 수 있는 분량만 읽는 것이 아니라 가끔 미친 척하고 읽을 수 없을 것 같은 책에 도전해 봐야 는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난 이 책을 훗날 다시 한번 읽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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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회색분자의 인생 고백 | 도서 리뷰 2020-08-02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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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 살아남은 자의 증언

김정옥 저
늘봄출판사 |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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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패러디한 거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뭔가의 흥미를 유발한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가 연극 연출을 했다고 한다. 일반인들에겐 잘 안 알려져 있지만 이 방면으론 거의 대통령급 되시겠다.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며 한때는 회장까지 역임하셨다니 말이다.


이 책은 저자의 자전 에세이인데 스스로를 회색분자라며 젊은 시절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역시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떠나 얘기할 수 없구나 싶다. 더구나 저자는 자본주의 인텔리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한 삶을 살았다. 예술을 사랑해서 중앙대학을 거쳐 서울 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전쟁 중 프랑스 유학을 할 정도니 대단하다 싶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그는 프랑스에 도착하자 비로소 자유를 만끽했고 그 나라의 높은 예술 수준에 푹 빠져 공부했다. 그 점은 독자인 나도 부럽긴 하다. 무엇보다 비슷한 또래의 프랑스인들이 자신은 파시스트니 공산주의니하며 서슴없이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데 놀랐다고 한다. 저자는 좌우익 어디에도 설 수 없는데 말이다. 좌도 우도 선택할 수 없지만 설혹 선택했다 해도 그것을 드러내기엔 우리나라는 얼마나 위험하며 용기가 필요한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지금은 우리나라 교육 수준이 높아져 외국에서 유학을 오기도 하지만 역시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 교육 개방의 기회는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또 학생 때 구맥회 멤버이기도 했는데 그것은 그 유명한 구인회에서 따 온 것이라고 하니 지적 허영과 호기로움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세대인 한국전쟁에 대해 많은 회의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로 인해 그가 아는 적지 않은 사람이 죽거나 사상 때문에 북으로 갔다. 그러면서 전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려고 했다.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의문스러운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어찌 보면 그건 당연하다.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일인데 거기에 어찌 명백하고 타당한 이유만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아직도 찾지 못한 희생자의 뼈골이 얼만데. 그 숫자만큼이나 규명되지 않은 진실이 숨어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한국전쟁에 대해 묻고 있다. 하지만 마땅한 답을 구하지 못한 채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특히 맥아더와 트루먼의 관계 그 사이에서 낀 우리나라의 운명을 조명한 부분은 개인의 에세이로만 다룰 건 아니라고 본다. 어찌 보면 이 책은 개인은 역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조망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역사학자의 것 마는 아닐 뿐만 아니라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이런 증언을 더 많이 들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나의 역사 지식은 일천하다 못해 통탄할 정도니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


저자는 이 책을 내기 전 가까운 지인들에게 보이고 조언을 듣고자 했다. 그러자 지인들은 좀 산만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는데 잘 쓰고자 하는 욕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책을 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저자가 연극계에 종사를 해서 그런지 글이 간결하고 이 자체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저자가 살아온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많이 짧지 않나 싶다.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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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어디에 이런 내용이 나와 있니? | 도서 리뷰 2020-07-1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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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성경에 정말 이런 내용이 있어?

마크 러셀 저/새넌 휠러 그림/김태령 역
책이있는마을 |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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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번에 처음 나온 건 아니다. 전에 <하나님은 당신에게 실망하셨다>란 제목으로 나왔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제목을 바꾸고 다시 나왔다. 역시 뭐든지 제목이나 이름을 잘 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먼저 제목은 왠지 거부감이 들어 읽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제목을 이렇게 바꾸고 나오니 좀 읽어 볼 생각이 든다. 물론 이전 제목이 더 낫다고 할 독자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난 이 제목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이건 원제가 아니다. 원제는 먼저 쓴 제목이 맞다. 그렇다면 원제를 쓰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작가가 왜 그런 제목을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작가가 정한 것을 존중해 줄 필요는 있지 않을까. 물론 원작자와 충분한 상의 끝에 정해진 거라면 이의를 달 필요는 없겠지만 말이다.


독자로서 결론부터 얘기하 지면 이 책은 어떤 제목으로 나왔던 나와는 너무 안 맞는 책이다. 무엇보다 저자가 과연 기독교인일까 의문스럽다. 가끔 아니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비기독교인들도 성경에 관한 책을 쓰는 것 같긴 하다. 그것이 성경의 권위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상관이 없겠는데 그러기는 쉽지 않다. 또한 난 그런 책에 내 시간과 여력을 바칠 생각이 전혀 없다. 세상에 읽어야 할 책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책까지 읽는단 말인가. 사실 내가 이 책을 읽어 볼 생각이 있었던 건 이 책은 그런 류의 책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뭔가 성경을 좀 더 새롭게 볼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것 아는가? 4, 5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성경은 <성경젼서>라고도 했으며 세로로 쓰였다는 사실을. 말에 의하면 한자어 성경을 한국말로 옮겼다고도 했다. 그러니 얼마나 딱딱하고 어려웠겠는가. 거의 고어 수준의 문어체를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신앙의 선배들은 성경을 읽고 마음이 뜨거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읽으면 읽을수록 더 읽고 싶다고도 했다. 또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성경을 읽고 회심한 사람의 이야기가 곳곳에 넘쳐난다. 고어 수준의 딱딱하고 재미없는 책이라면 잊히는 책이 되어야 할 텐데 그 책은 오늘도 새로운 버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적어도 지난 30년 동안 우리나라에 번역된 새로운 성경의 종류만 해도 꽤 여러 종류가 나왔다. 당장 나만해도 3, 4 종류의 버전을 가지고 있으니. 그런 걸 보면 성경이 얼마나 쉽게 독자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는지 알 것도 같다. 그뿐인가, 저명하고 신뢰할만한 학자나 기타 저자들이 성경을 이해시키고자 각종 연구서와 강해집, 에세이들을 얼마나 쏟아 놓는지 알 수가 없다. 그들의 노력은 가히 눈물겹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권위는 인정받았을지 모르지만 대중성을 얻는 데는 실패한 듯하다.       


어쨌든 그런 것을 볼 때 성경은 꼭 그렇게 권위 있는 학자나 저술가들에 의해서만 새롭게 쓰일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회의가 없지 않다. 일반인들도 자신만의 성경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난 그런 시도를 하기도 했다. 물론 하다가 중단하긴 했지만. 그건 순전히 나의 게으름 때문이다. 어쨌든 바로 이런 관점에서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저자는 어떻게 자신만의 성경을 썼을까.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당황스럽다 못해 화가 났다. 난 정말 저자에게 묻고 싶다. 저자가 바뀐 책 제목에 동의를 했던 안 했던 "성경에 정말 이런 내용이 있어?"라고 묻는다는 건 있다는 동의를 구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난 "성경 어디에 그런 내용이 있냐?"라고 묻고 싶다. 비근한 예로 저자는 아브라함이 득남을 기념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무료로 할례를 주었다고 썼다. 정말...? 그거 하나 진짜인지 아닌지 찾아보는 건 그러니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언제 사라가 아브라함을 시켜 그의 첩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을 없애라고 시켰는지 모르겠다. 내가 알기론 하갈이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다는 이유로 자기 주인인 사라에게 버르장머리 없이 굴어 쫓겨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인다. 게다가 구약의 요셉이 농무성 장관이라고? 언제 총리대신에서 그렇게 강등된 것일까?  


뭐 또 그것까지도 그렇다고 치자. 알다시피 요셉은 형제들에 의해 노예로 팔렸지만 나중에 그렇게 이 책에 표현한 대로 농무선 장관이 되었다. 그러나 요셉 이야기는 꿈을 가진 인간이 하나님께 어떻게 단련을 받고 훗날 그 같은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는가를 드라마틱하게 잘 보여 준다. 거기엔 요셉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다루시는지, 어떻게 화해하고 용서를 하게 하시는지도 더불어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단순히 이미 너무 크게 성공해 버린 요셉에게 상대적으로 보잘것없는 신세로 전락해버린 형제들을 동정하고 싶었는지 살아남으려면 그 앞에서 아무리 굴욕적이더라도 머리를 조아려야지 별 수 있냐는 식으로 마무리하고 만다.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그러기엔 이 이야기는 스케일이 제법 크다는 생각은 안 해 본 걸까. 독일의 문호 토마스 만은 이 이야기만으로 여섯 권짜리 장대한 드라마를 쓰기도 했다. 창세기에는 2장인가 2장 반 정도밖에 안 되는 분량인데 말이다. 그런 걸 생각할 때 단 몇 줄의 조크를 시도했다는 건 오히려 자신의 무지함을 드러내 준 꼴 밖에 더 되겠는가. 


문제는 또 있다. 입다와 그의 딸에 관한 이야기다. 입다가 영토 전쟁에서 이기고 개선했을 때 제일 첫 번째로 자신을 맞아주는 사람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한 장면이다. 그런데 하필 딸이 자신을 맞이해 줄 건 뭐란 말인가.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드리는 수밖에. 그런데 성경 어디에 저자가 제시한 딸을 불에 태워 바쳤던가? 성경엔 아버지께 두 달의 말미를 달라고 하곤 친구들과 함께 산속에 들어가 시집도 못 갈 자신의 운명에 실컷 울고 그 후 평생 독신으로 하나님만 섬기고 살았다고 전해지는데 말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서 동물을 태워 바치기는 해도 사람을 산 채로 태워 바친다는 건 들어 본 적이 없다. 그건 당시의 이방신들이 그렇게 했고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혐오하셨다. 요는 저자는 여호와와 이방신을 아무런 확인이나 거리낌 없이 동격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그들은 꽤 오랫동안 아이를 낳지 못했다. 또 그것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은 아이를 낳지 못한 부부라면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양 하나의 우스개 소리로 치부한다. 즉 아브라함이 90살이 될 때까지 고령으로 사라와 무수한 섹스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골반 탈구와 부은 발목 말고는 아무것도 잉태하지 못했다(22p)고 쓰고 있다. 도대체 말인지 방귀인지 알 수가 없다. 저자는 아직 90 노인은 아닌 줄 아는데, 자식이 없는 90 노인을 그런 식으로 대놓고 비아냥거려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저자 같으면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다는 얘긴가? 저자의 인격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 밖에도 문제 되는 표현과 내용은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다. 아무리 성경 에세이고, 유머와 독설의 카타르시스라고 하지만 성경이 이렇게까지 웃음거리로 전락시켜도 좋을지 의문스럽다.


물론 이 유머와 독설과 카타르시스를 위해 저자가 얼마나 웃기려고 눈물겹게 노력했는지 알 것 같긴 하다. 실제로 미국 독자들이라면 많이 웃었을 것 같긴 하다. 그들은 조금만 웃겨도 깔깔대고 웃지 않는가. 웃음의 포인트도 좀 다른 것 같긴 하다. 오래전 미국 시트콤을 보면 별 웃기지도 않은 장면에서도 관객들이 박장대소하고 하는 걸 보면서 상대적으로 우리나라 사람은 너무 안 웃는다고 비판하곤 했다. 웃는 것조차도 비교와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래저래 경직된 것 같긴 하다. 그 덕분에 모든 것을 할 수만 있으면 희화시키려고 하는 것엔 비판할 생각은 없는지 묻고 싶다.


아마존에서 5점 만점에 4.5를 받았다는 건 무슨 기준일까. 아마존엔 유머 도서 코너가 따로 있는 걸까? 그래서 유머 지수가 높아서 그런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건가? 어쨌든 그 기준이 의문스럽고 더구나 우리나라 집계는 아니다. 그런 것에 혹해서 책 구입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실제로 이 책에 대한 리뷰 점수가 대체로 높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성경은 너무 어려워 읽다가 포기했는데 이 책은 너무 재밌어 끝까지 읽었다는 식의 평가가 높다. 이해할 수가 없다. 의도했든 안 했던 저자는 너무 유머와 독설에 치중하다 보니 성경을 거의 날조하다시피 했는데도 그것에 대해 분노는커녕 문제제기도 할 생각이 없는가 보다. 좋은 게 좋은 거다.  그렇다면 성경을 재미있는 유머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겠다는 것인가.


사실 성경이 쉽지는 않다. 성경뿐만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경전은 하나 같이 어렵다. 불경은 쉬운가? 코란은? 그래서 못 읽겠다면 그건 독자의 선택이지 그것을 어렵게 전해 내려온 경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종교가 됐는 그 신을 믿기로 작정했다면 그 신에 대해 말한 책에 도전해 보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다. 어떠한 경우에도 성경은 하나님의 뜻과 계시를 알고자 함에 있지 깔깔대고 웃고자 있는 것이 아니다. 앞서도 예기했지만 성경을 알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학자들이 노력을 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지 않는다면 그건 줘도 못 먹는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도대체 우리나라 기독교 저서들은 얼마나 번역되어 있을까 새삼 궁금해졌다. 나는 최근 한 성서 출판사에서 성경을 스토리텔링으로 푼 책을 한동안 재밌게 읽은 적이 있다. 그건 순 우리나라 저자들로만 구성해서 쓴 책인데 경탄할 정도였다. 그러면서 이 책들은 얼마나 다른 언어로 번역되었을까 궁금했던 것이다. 모든 면에서 K가 거의 독점을 하다시피 했다. 하다못해 방역도 K 방역이라지 않는가. K 크리스천 출판물도 못지않을 텐데 잘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과연 이 책을 읽었다고 성경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까. 물론 관심을 가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정말로 성경 읽기가 부담스럽다면 어느 정도 그 권위를 인정받은 다른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이를테면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이나 앞서 말한 <스토리텔링 성경>, <쉬운 말 성경> 같은 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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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책만 보면 할 말이 많아진다 | 도서 리뷰 2020-06-26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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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

이주윤 저
드렁큰에디터 |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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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0쪽 내외. 보통의 다이어리만 한 크기. 이런 책을 읽고 뭐 할 말이 많을까 싶기도 한데 의외로 할 말이 많아 무엇부터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알아주는 작가의 글 쓰기 담론이 아니다. 격식을 차리지 않은 '글쟁이 언니의 솔직 토크' 뭐 그런 느낌이다. 특이하게도 이건 기획물이다. 뭔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먼슬리 에세이'란 시리즈물의 2탄으로 나왔다. 그것도 앞으로 한 달에 한 권씩 펴낼 거란다. 와, 요즘 출판 기획과 작가의 활동이 여기까지 왔구나. 새삼 놀라기도 했다. 모르긴 하지만 우리나라는 문인 협회는 있어도 작가 협동조합 같은 건 공식적으론 없는 것 같던데 뜻 맞는 사람끼리 모여 책을 내고 원고료를 n분의 1로 나누고, 서로 으샤 으샤 하는 뭐 그런 활동이 좀 많아졌으면 좋겠다. 하긴 그 코 묻은 원고료를 n분의 1로 나눠봤자 얼마나 돌아가겠냐만. 어쨌든 말이 되거나 말거나 작가들의 활동은 진화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먼슬리가 됐건 뭔 소리가 됐건 작가는 자꾸 떠들고 판을 깔아줘야 한다.


책에서 이슬아 작가에 대해서 말해서 말인데, 알다시피 이슬아는 구독 작가로 유명하다. 저자는 자신은 필력이 없어 그런 활동은 못한다고 손사래를 치는데 이건 누구든 일단 마음만 있다면 한 번 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오죽하면 나 같은 사람도 해 봤으려고. 누구에 비한다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이슬아도 처음부터 구독자가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저자가 구사하는 문장은 젊은 독자들이 좋아할 만 문장이다. 그들 가운덴 구독을 좋아하기도 하던데 먹힐만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싫으면 말고.


지금 생각해도 내가 대담하긴 했지. 작년에 이슬아 삘 받고 나도 어설프게 구독 활동을 했으니. 처음 시작을 했을 땐 과연 구독하겠다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결론은 많지 않아서 그렇지 아주 없지는 않았다. 또 그런 흔치 않은 독자가 있다는 걸 생각할 때 독자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고, 내 글을 구독해 준 독자들에겐 지금도 고마운 마음이다. 대신 난 그때부터 이슬아를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는 후유증이 생겼다. 그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래도 이슬아는 글 잘 쓰는 작가라는 건 인정! 


2.

독자란 말이 나와서 말인데, 아무리 기고 뛰고 나는 작가가 글을 써도 꼭 글 못 쓴다고 구박하는 독자는 있게 마련이다. 나도 언젠가 책을 내고 모 사이트에서 이것도 글이냐고 구박하는 독자의 리뷰를 보고 기분 상한 적이 있다. 성격상 또 그런 건 못 참는 성격이라 뭐라고 반박하려다 결국 말아버렸다. 이제 난 독자가 아니라 작가다. 체신을 지켜야 한다. 그런 것에 일일이 대응하면 글은 언제 쓰고 이미지에 스크래치만 간다. 


생각해 보면 독자는 그럴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다. 저자가 애정 하는 작가 중 한 명이 김애란인가 본데 어떻게 김애란을...?! 할지 모르겠지만, 몇 년 전 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모 소설을 내 특유의 필봉으로 가차 없이 사시미를 떴다. 그러자 어느 댓글러는 속이 후련하다고 했고, 좋아요도 그때 기준으로 최고점을 찍고, 심지어는 그달의 리뷰에 선정돼 적립금까지 받았다. 그래. 사시미를 뜨려면 이 정돈해 줘야지. 나름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독자는 딱 거기까지다. 그 이전도 그랬지만 그 이후에도 올라오는 리뷰도 칭찬일색이었다. 뻘쭘했다. 잘 썼다는데 내가 더 이상 뭐라고 말하리. 거기까지가 독자의 일인 것이다. 거기에 저자는 악플에 대처하는 작가의 자세에 대해 아주 합리적인 대처법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냥 반사라고 하란다. 그 이유는 책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읽으면 되고, 과연 그러면 되겠다 싶다.


3.

저자는 참 열심히 사는 사람 같다. 계속 쓰는 작가가 되려면 둘 중 하나다. 저자처럼 치열하게 쓰던가 아니면 낮엔 일하고 밤에 쓰거나. 모르는 소리 한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저자는 첫 책을 내고 계속 출판사 사장과 편집자와 케미가 좋아 일을 계속해 오고 있는가 본데 그러기가 쉬운가 싶기도 하다. 내가 알고 있기는 개점휴업이라고 첫 책 내면 각자도생의 길을 가지 않을까. 물론 뜻이 맞아 연이어 낼 수도 있겠지만 그러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첫 책 내고 출판사 사장한테 엄청 깨졌다고도 했는데 과연 그게 작가의 문제인가 싶기도 하다. 난 워낙에 첫 책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서 그런지 오히려 출판사 쪽에서 책 내자고 했을 때 2년이나 튕기다 지난 2016년에야 겨우 냈다. 어느 출판 사건 자기네 출판사에서 책을 내주면 서로 고마운 거지 깨고 깨지고 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냥 재밌으라고 하는 소리 같기도 하다. 


출판사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초보 작가일수록 조금이라도 좋은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싶다는 욕심이 없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어느 출판사에서 책을 낼 것이냐에 대한 저자의 견해에 기본적으로 동의는 하지만, 그래서 내 책이 유명 출판사에선 그냥 하나의 배경 정도밖에 안 되는 취급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것도 스펙이라면 스펙 아닐까. 자신의 책을 소개할 때 "거 유명 작가 000가 낸 출판사에서 냈어. 그러니까 끕이 같다고." 구라 치고 싶지 않을까. 이러고저러고 지간에 어느 출판 사건 내 책을 귀하게 여겨 줄 출판사가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원고료 따박따박 주고.


작가치고 원고료 날려 보지 않은 작가가 있을까. 알아봤더니 우리가 알만한 유명 작가도 무명 때 한 번씩은 다 원고료를 떼인 경험이 있더라. 그 말을 듣는데 어찌나 속이 쓰렸던지.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 그런다. (물론 나 같은 경우는 출판사는 아니다. 어느 단체다.) 작년 말에, 내 책을 내 준 출판사 사람들이랑 오랜만에 만나 게거품 물고 원고료 떼었다고 성토하니까 사장이 듣더니 딱 한 마디 하는데 속이 좀 뚫리는 것 같았다. 양아치라고. 그러자 난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어졌다. 그 말 한마디를 못해 그렇게 게거품을 물었던가 싶었던 것이다. 혹 시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원고료 준다고 해 놓고 안 준 의뢰인 있거든 지금이라도 더 이상 양아치 되지 말고 반드시 지급해 줬으면 한다. 그거 안 준다고 부자로 잘 살 것도 아니지 않은가. 최소한 양심은 지키고 살아야지.


4.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그 많은 글쓰기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이란 쳅터였다. 나는 저자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가급적 접속사 쓰지 말이라. 부사 쓰지 말아라. 단문으로 써야. 기타 등등의 잔소리 솔직히 좀 지긋지긋했다. 중요한 건 문장의 자연스러움과 아름다움이다. 물론 가급적 그런 걸 쓰지 않음으로 해서 자연스럽고, 아름답다면 당연 그래야겠지. 하지만 지나치게 의식해서 꼭 그래야만 하는 줄 알고 강박적이 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신 저자는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를 들어 글이라 생각하지 않고 노래 부르듯 글을 불러 본다고 했는데 그건 정말 참고할만하다. 중요한 건 글의 리듬이라고. 나도 영화 <변산>을 보면서 힙합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말인데 노래도 아닌 것이 리듬은 있다. 우리의 글 쓰기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뮤지컬도 그렇지 않은가.


5.

이러니 저러니 해도 '계속 쓰는 삶을 위해 팔리는 작가가 되고자 한다면' 글은 무조건 써야 한다. 나도 한때는 블로그에 낙서 반, 일기 반 한 글만 쓰는데 무슨 책을 낼까 싶었는지만 결국 책을 냈다. 물론 그것으로 책을 내지는 않았다. 내가 쓴 책은 독서 에세이였다. 문제는 그 이후다. 물론 그 이후에도 난 뭔가를 끄적이긴 했지만 블로그질을 예전만큼 안 하게 되었다. 요는 누가 봐도 되는 글, 누구 보라고 하는 글을 확 줄였다는 것이다. 그러다 '나는 어쩌다 신문 연재 기회를 얻게 되었나'를 읽다 정말 찔렸다. 그 알량한 책을 내니 글 쓰기가 더 불편해졌다. 누가 이런 후진 글만 쓰면서 어떻게 책을 냈지? 흉보는 것 같아 스스로 위축되기도 했다. 사실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데 말이다. 


그것을 깨닫고 좋다. 그럼 오늘부터 다시 1일이다. 했다. 예전에 난 블로그에 100일 동안 뭐라도 쓴다고 하고 그걸 실천한 적이 있다. 물론 그게 또 책을 내게 된 동기는 아니지만 분명한 건 그런 내공이 모여 책을 내게 된 건 아닐까 한다. 그러므로 저자 말마따나 무조건 써야 한다. 어설픈 글로 투고할 생각하지 말고 남이 볼 수 있는 공간에 꾸준히 글을 써 두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그 1일을 아직도 시작도 못하고 난 이렇게 리뷰만 쓰고 있다.ㅠ


6.

이 책은 정말 웃기고, 재밌고, 용기를 주는 책이다. 누구든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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