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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연재소설 <조드> 매일 오전 10시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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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드' 출간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 공지 2011-12-24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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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조드' 출간이 늦어져서 얼마나 죄송한지 모르겠어요. 표지 문제로 자꾸 꼬이다 보니 설을 목전에 두고 말았네요. 도서시장의 특성상 설도 피해야 되어서 2월10일에 출간하기로 했습니다. 한 학기 동안 너무나 바쁘다보니 블로그 방문도 못하고 인사말도 남기지 못했네요. 이 죄송한 마음을, 염치없이 크리스마스 인사로 대신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참, 소설 내용은 연재물을 보고 조언하신 분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다소 손질하였습니다. 특히 블로거들이 조금 지루해하던 2장은 전혀 다른 느낌이 들 수 있을 거예요.

 

  책이 나오면 게재되어 있을 <책을 내면서>를 미리 소개합니다.

--------------------------------

 

<책을 내면서>

 

 

 

  <조드>를 쓰게 된 동기 및 경위를 밝혀두고자 한다.

 

  1.

 

  인류가 근대를 환멸하기 시작한지는 오래되었다. 서울도 20세기의 틀을 21세기의 방식으로 바꾸느라 상당히 소란한 세월을 보냈다. 그 일각에서 문학도 ‘탈근대’ ‘탈냉전’ ‘탈이데올로기’ 공사로 얼마나 바빴는지 모른다. 나는 그 방향이 조금 자폐적이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탈’이라는 글자는 우리를 대지로 돌려보내는 게 아니라 이상하게 유럽 정신의 골짜기 속으로 더욱 밀어 넣는다. 그래서 과거사와 단절되고, 자연에서 멀어지며, 목적지의 반대편으로 걷게 되는, 이 답답한 사변적 회로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때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하자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에 값할 ‘인류사 상’을 얻기는 어렵다. 낡은 역사관을 대체할 그림이 있어야 새로운 역사관이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보다 바른 세계사 상(像)’을 찾으려는 노력에 나도 동참하고 싶었다. 소재가 국경을 벗어난 점도, 시대적 배경이 먼 것도 개의치 않았다. 가톨릭과 비(非)가톨릭 정신이 각축하는 성곽의 중세가 아닌, 이동문명과 정착문명, 농경민과 유목민의 충돌을 야기한 광야의 중세를 그리려는 의지는 21세기 정신의 산물이다. 특히 근대적 가치관이 주목하지 못한, 보다 광활한 세계에 부합하는 인간형을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2.

 

  오리엔탈리즘은 오리엔트의 외부에서 태어난다. 오리엔탈리즘이 문제가 되는 것은 상대방을 미적으로 섬기면서 실존적으로는 깔보는 이중성 때문이다. 정착문명의 사람들이 초원의 역사를 먼발치로 보면서 쏟아내는 낭만적인 감정들도 그런 혐의를 받을 수 있다. 실제로 12세기의 역사에서 지상의 삶에 대한 생태학적 고민을 읽지 못하는 디지털 도시의 ‘노마디즘’은 옛 오리엔탈리즘의 현대판 유령이 될지 모른다. 글자도 몰랐던 야만적인 인물(칭기스칸)이 거대 정착문명을 하나씩 접수한다는 ‘스펙터클’은 매혹적일지 모르지만 실재했던 현실과는 많이 다른 것이다. 수많은 전쟁영웅서사들이 인류에게 가장 광범한 영향을 미친 한 인간의 ‘모럴’을 그런 오락적 호기심 속에 파묻어 버렸다.

  12세기, 13세기 지구사를 흔든 전무후무한 역사 의지는 ‘조드’에서 잉태되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조드’란 쓰나미의 반대편에서 생기는 자연재앙의 하나이다. 지구가 힘들면 물만 화를 내는 게 아니라 가뭄과 추위도 화를 낸다. 그것이 대지를 정화하고 사막화를 막으며 지상의 생명체들로 하여금 새로운 내성을 갖도록 촉구한다. 인간은 문명을 강화하여 그런 시련과 대면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자연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12세기의 초원에 버려진 한 소년이 파란만장한 생존투쟁을 통해 당대 정착민들이 꿈꾸던 ‘가공된 유토피아’를 뒤집어버린 사실을 인류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사람 테무진의 가치관이 ‘칭기스칸제국의 체제정신’과 다르다는 확신이 들어 소설을 썼다. 팍스몽골리카는 가장 유목민적으로 살다 간 한 영혼의 파장이 얼마만한 권능을 만들어내는가를 증명하는 대신에 그의 고독하고 우울한 실존적 세계를 암장(暗葬)시킨 무덤이 된 듯이 보인다.

 

  3.

 

  몽골을 찾아다니기 시작한 것이 10년이 넘지만 다시 집필도구를 챙겨서 현지에 닿아보니 전혀 낯선 세상처럼 보였다. 그때의 실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고원의 바람을 되도록 많이 쐬고 다녔다. 1년간의 작업이 끝났을 때 친구들의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아직도 중세의 유목민들이 뛰어다닌다. 한국의 독자들이 체험해온 상식세계와 다른 것들이 많아서 각주를 붙여볼 생각도 했지만 호들갑스러울까봐 그만두었다. 그래도 지명, 인명 등에 대해서는 언급해두겠다. 고유명사 표기에 일관된 원칙을 두지 않았다. 칭기스칸의 한국어 표기법이 어떤 맥락에서 ‘칭기즈칸’이 되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머지 인명들도 한국어로 읽을 때 독자에게 닿는 뉘앙스가 내 것과 비슷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조금씩 각색하였다. 번역본에서는 12세기 몽골 발음을 살렸으면 좋겠다.

  몽골 일간지에 연재하자는 제안을 받았는데 한국에서 시간을 지키지 못했다. 약속이 늦어졌지만 실제 유목민들이 읽고 난 소감을 꼭 들어봤으면 좋겠다. 예스24에서 연재할 때 응원해준 블로거들에게도 시간을 못 지켜 얼마나 미안한지 모른다. 응원해준 분들에게 엎드려 절하고 싶다.

 

  * 추신 : 두 권으로 내는 이 책 <조드 - 가난한 성자들>은 테무진이 고원을 평정할 때까지의 시간을 그리고 있다. 이후 테무진이 대칸에 올라 죽음을 맞을 때까지의 이야기도 꼭 전하고 싶다. 아무쪼록 기회가 빨리 오기를 빈다.

 

 

                                                                                                     2011년이 저물어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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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마치면서 | 조드 2011-08-10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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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작은 이야기들을 해도 우스워 보이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조드>를 쓰겠다고 몽골로 떠난 것이 작년 82일이었습니다. 꼽아보니 9개월 동안 현지에 체류했고, 9개월 동안 연재했네요. 몽골에서 도와주신 분들이 글을 읽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여기에 이름을 남겨두고 싶습니다. 제가 몽골인 중에서 유일하게 동생이라 부르는 비지아, 또 몽골작가회의 회장 뭉흐체첵, 유명한 가요 작사자 남바프레브 시인, 몽골 국립도서관 관장 칠라자브, 몽골 울란바타르대학교 총장님께 감사드립니다.

  한국의 작가가 12세기의 유목민 이야기를 취재하느라 초원을 누비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현지 신문과 TV방송에서도 인터뷰를 해갔어요. 처음에는 외롭고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언론에 소개된 덕을 보았습니다. 원고가 끝나는 대로 현지 신문에서 연재를 하자는 제안도 있었는데, 한국에서 출간되는 시점과 현지에서 번역, 연재되는 시점이 같을지 몰라요.

 

  본론으로 들어가, 난생 처음으로 글 쓰는 일에만 매달려서인지 아직은 거리두기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두 가지 이야기를 꼭 하고 싶어요.

  하나는, ‘조드를 손질하면서 듣고 싶은 도움말입니다. 장편은 대개 첫 페이지에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문장의 순서대로 집필되는 게 아니라 창작의 동기를 크게 주었던 장면을 먼저 쓰고, 점점 남은 페이지를 채워가게 됩니다. 연재소설의 어려움이 여기에 있는데, 미리 써두고 발표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매일매일 쫓기느라 전체를 조율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에요. 결국, 미흡한 부분을 연재가 끝난 후에 고칠 수밖에 없는데, 저와 친한 작가들은 대부분 큰 폭에서 손을 대어 연재물은 초고에 불과하다는 말까지도 합니다. 종이책이 나왔을 때 더 세련되어 보이는 까닭이 이렇게 까치발을 딛기 때문이에요.

  하여튼, 그때 작가는 곁에서 읽어주고 반응할 사람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사실은 그들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창작의 주체라고 볼 수 있을 거예요. 인터넷 연재의 매력이 여기에 있는데, 글을 쓰는 동안 몽골에 있으면서도 한국에서 읽고 반응해주는 놀라운 행운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연재하는 동안 그 분들은 본문을 읽고, 저는 답글을 독서한 셈이에요. 아마도 그러지 않았다면 가족이나 친구의 반응을 구했을 텐데 예스블로그 덕분에 굉장한 독서가들과 호흡을 나눌 수 있었네요. 매일 답글을 올리시는 분들이 제게 균형감을 찾아주는 창작 코치를 하신 겁니다. 한국의 인터넷문화는 이렇게 장편 창작에 놀라운 기여를 하고 있나 봐요.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제 그날그날의 소감이 아니라 전체에 대한 느낌을 얻고 싶습니다. 가령, 그간의 답글 덕분에 저는 다음과 같은 점들에 대해 자문을 구하게 됐어요.

  첫째, 제목. ‘조드라 하는 게 어울리는가요?

  둘째, 2장을 쓸 때 서술 시점을 등장인물의 중요도와 상관없이 자유자재로 넘나들려고 생각했는데, 시간적 거리감, 공간적 거리감, 유목민의 일상에 대한 정보부재, 고유명사들이 낯설어서 오는 문제들을 극복할 수 없음을 깨달았어요. 3장부터 곧장 노선을 전환하여 정통 서술 기법을 쓰기로 했습니다. 2장은 당연히 재구성을 할 겁니다.

  셋째, 몽골에서 한국으로 집필 장소를 옮겨 다니느라 감정의 흐름을 놓쳤어요. 대표적으로 자무카가 변할 때 내면묘사를 충족시킬 만한 사유 시간을 얻지 못해 쓰다가 접은 꼭지가 서너 회쯤 됩니다.

  넷째, 좋은 대목과 나쁜 대목에 대해 듣고 싶어요.

  여기에 도움을 주어도 사례할 것이 저자의 증정본을 발송해드리는 것밖에 없지만, 답글, 쪽지, 방명록 등을 활용해서 의견을 주시면 제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지요. 조금 과도한 부탁이지만 숙제는 아니니 가볍게 받아주시면 좋겠어요.

 

  다음으로, 저는 인터넷을 자주 사용하지만 성격상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등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여기에 연재를 하면서 난생처음 블로거로 살아봤어요. 그래서 얼굴은 모르지만 이웃이자 친구라 할 닉네임을 많이 얻었나 봅니다.

  우선, 제 닉네임 millemi(밀래미라고 읽어요)는 제가 태어난 고향의 옛 지명입니다. ‘매미 날개 고개 아랫녘이라 밀래미라 부르던 것을 일제 강점기에 한자어로 교체하게 되었지요. 연재를 시작할 때 블로그에 가입할 줄을 몰라 대신해주는 분이 닉네임이 뭐냐고 물어서 얼떨결에 답한 것이 그만 이름이 되고 말았네요.

  그럼, 이제 너무 고마워서 생략하고 가면 안 될 이웃들을 거명해볼까 합니다.

  둘로 나누어야겠어요.

  먼저, 작품을 쓰는데 지치지 않도록 날마다 답글을 남겨서 응원하신 분들입니다.

  나날이, 아자아자, 유정맘, 놀자. 이 네 분은 하루도 빼지 않고 의견을 달아주신 분들입니다. 특히, 후반부에 지쳐있을 때는 일부러 힘을 담아서 응원 글을 남겼으니, 마음의 빚을 어찌 갚아야 할까요? 너무나 고맙습니다. 이어서, 사르니, 동그라미, 시랑, 두리안 님들은 문장의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줄기차게 내용을 지켜주었어요. ‘조드로 시험을 본다면 아마도 1등을 하실 분들이 아닌가 합니다. , 생명은 소중해, 껌정 드레스 님 등은 유목민의 역사에 대해 매우 깊은 인식을 얻으면서 불끈불끈 힘을 얻도록 해주셨네요. , 그리고도 셀 수 없이 많은 분들이 있는데, 당장에는 잘 생각나지 않아요.

  다음으로, 저를 보이지 않는 독자로 얻은 분들도 많아요. 프로팜 님의 에세이, 꽃들에게 희망을 님의 문화단상, 바보천사 님의 시적 아포리즘, 하루 님의 유럽 교양, 굿정 님의 직장 풍경, 인디아맨 님의 리뷰, 마루 님의 그림과 사진 이야기 등은 거의 고정난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따라 읽었어요. 그밖에도 추천을 받은 횟수보다 추천을 한 횟수가 더 많았는데, 저의 독서습관이 독특하여 리뷰보다는 생활 잡감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안 그러려고 해도 본문보다 답글이 재미있어서, 연재소설을 읽는 게 얼마나 피곤할지 아프게 반성하곤 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방문자 숫자로 존재해준 분들, 또 친구로 등록해두고 글 쓰는 분위기가 잡힐 때까지 들락거리는 자유를 누리게 해준 문턱 낮은 분들에게도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고마워할 만한 영역을 토탈 장르로모듬해서 종합예술적으로 보여준 이가 허니칸입니다. 친한 후배인데다가 초원에 대한 순정을 공유하고 있어서 글을 쓰는 내내 이웃이 아니라 주최 측으로 여겼어요. 그에 대한 인사로 모든 이야기를 접을까 합니다. 허니칸,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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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회 | 조드 2011-08-09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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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무카와 함께, 언젠가 나코 어른이 메르키드에서 발견한, 자무카가 그토록 사랑했던 백마도 묻혔다. 코르코낙에서 세번째로 의형제를 맺을 때 테무진이 선물한 말이었다. 백마는 모든 사연을 안다는 듯이, 자신이 묻히는 줄 알면서도 삽으로 흙을 메우는 동안에도 소리를 지르거나 뛰쳐나오지 않고 자무카의 옆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 고인의 시신은 관에 담기고 무덤은 흙에 덮여 작은 언덕으로 변했지만, 사람들은 그의 영혼이 편안하게 하늘로 올라갔다고 믿었다. 그가 사용했던 모든 물건에도 혼이 깃들어 있다고 여겨 고인이 쓰던 옷과 물건, 가벼운 장식품들도 태워서 하늘로 보냈는데, 이는 고인의 손자국에 묻은 혼을 연기에 실어서 주인 곁으로 올려 보내는 의식이었다. 하지만 끝까지 자무카를 따라가지 못한 한 사람, 처여는 뒤에 남아서 나무 그릇이 넘치도록 술을 채워 남쪽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세 번 절을 하고 술로 세 번 고수레를 했다. 불의 신에게 바치는 고수레였다. 그리고 울음 섞인 소리로 자무카의 시를 외워 허공으로 날린다.

 

    낮에 참새에게 먹힌 메뚜기의 혼이 밤에 독수리의 이마에 뜬다.

    살아 있는 것들의 숨소리로 가득 찬 신령스런 두려움이여

    하늘로 난 창을 가진 유목민 집에 옛날에 잃어버린 발자국들이 한없이 온다.

    내 목소리는 이미 지워진 대낮 속에 놓여 있다.

 

  이렇게 해서 자무카를 구성했던 물질들은 흔적도 없이 흩어졌다.

  장례식을 마치고 칭기스칸은 사흘 동안이나 얼굴을 태양 아래로 내밀지 않았다. 그동안 칸의 게르에 들락거릴 수 있는 사람은 보오르추뿐이었다. 그러나 보오르추 역시 침울한 표정을 하여 아무도 말을 걸 수 없었다.

  그리고 계절이 또 한 번 바뀌었다. 쿠두 아랄은 전례 없는 평화 속에 가축만 살이 오른다. 꽤 오래 두문불출하던 칭기스칸이 다시 얼굴을 보이게 된 것은 막내왕비 홀릉 때문이었다. 그해 늙은 여름의 어느 오후에 두번째 소나기가 지나간 끝에 모처럼 아주 밝고 명랑한 웃음소리가 칸의 게르에서 까르르 까르르 쏟아져 나와 먼 데까지 퍼져 나간다. 보오르추가 무슨 일인가 싶어 덮개문을 열었다가 얼른 닫아버렸다. 칸이 홀릉의 머리를 무릎에 얹고 눈에 입을 맞추고 있었다. 마른 쇠파리가 홀릉의 눈에 들어간 것이다.

  칸은 젖통호수에서 살던 시절에 파리에게 얼마나 시달렸던지, 초원의 마른 쇠파리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마른 쇠파리는 제법 귀엽게 생겼지만 사람이나 가축의 눈에 들어가면 순식간에 알을 수십 개씩 퍼뜨려 시력을 멀게 하는 무서운 날벌레였다. 그래서 흉노 이래의 민간요법에 따라 칭기스칸이 홀릉을 무릎에 얹고 흰자위와 검은 동자를 가리지 않고 눈망울을 혀로 싹싹 핥아서 깨끗이 씻어주었다. 그러다 문 쪽에서 인기척이 있었던 것 같아서 일어서려고 할 때 홀릉의 손에 소매가 걸려서 그만 앉혀지고 말았다.

  에구머니, 죄송합니다.”

  괜찮다.”

  하지만 표정이 몹시 어두웠으므로, 홀릉은 자신의 행동거지가 가벼워서 생긴 문제인 줄 알고 몹시 황송해했다. 그것이 자무카를 잃은 가슴앓이라는 것은 결코 이해하지 못했으니, 그녀는 잔뜩 근심스런 얼굴로 다시 사죄해 올린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마음속으로 칸을 깊이 존경한다는 것은 아실 겁니다.”

  괜찮다는데 그러느냐.”

  제 눈에는 아직도 비가 되어서 내리지 않은 구름이 칸의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칭기스칸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호기를 부려본다.

  눈 덮인 알타이의 열세 봉우리를 거쳐 영원한 슬픔에 젖어서 가는 황금 말을 탄 여신이여. 보르칸 산을 굽이굽이 타고 내려온 오논 강의 남신이 곁에 있으리.”

  칭기스칸이 어머니에게도, 버르테 앞에서도, 보오르추, 젤메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는 애교스런 몸짓을 보인 것이다. 홀릉에게는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 제게 손금 한 번 보여주세요.”

  싫다. 운명은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 법이야.”

  그런데 그런 훌륭한 말들을 다 어디에서 배웠습니까?”

  내게 많은 것을 주고 간 사람이 있었다. 끝없이 굽이치는 바다처럼 넉넉한 초원도 더럽히지 않으려고 조금 일찍 떠났어. 엄청난 대장부가 자신을 이기지 못했단다.”

 

 

 

 

  뱀 꼬리--------------------------------------------

  이듬해 봄, 칭기스칸은 대몽골제국을 선포하고 대칸으로 즉위하였다. 그와 함께 초원의 삶도 병영 체제로 유지되던 쿠리엔(집단)식 유목이 해체되고 아일(가정)식 유목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예전에 혈연을 중심으로 폭력을 행사하던 부족, 씨족 공동체는 해체되어 모두 천호제의 구성원으로 재편되었다. 또한 대칸의 역사에 함께 한 평민과 종 출신의 동지들이 초지 사용권을 획득하여 새로운 귀족으로 승격되고, 중앙 권력은 귀족 자녀들과 능력이 뛰어난 지휘관 후보자들로 조직된 친위대의 무장력으로 유지되었다. 뿐만 아니라 칸의 대법령이 선포되어 백성은 법으로 다스려지고, 국가의 대소사는 쿠릴타이라는 유목민대표자회의에서 결정되었다. 이로써 칭기스칸은 자연경제에 손 하나 대지 않고도 강도, 절도, 약탈, 내부 갈등의 위험 비용을 없앰으로써 평민의 가축을 엄청난 양으로 늘려버렸다. 하지만 초원에는 주기적으로 조드가 닥쳐서 초지당 가축 비율이 일정 한도를 넘지 못하도록 수천 마리의 가축을 한순간에 잃는 재앙을 입고는 했다. 초원의 통일만으로는 안정이 확보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유목민으로 하여금 푸른 하늘이 내려준 대지 전체를 바라보게 한 이유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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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드 180회 | 조드 2011-08-08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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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칸은 자무카 앞에 앉아 늦게까지 술을 따랐다. 마음 같아서는 자무카가 코르코낙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그를 끌고 가고 싶지만 다가와주지 않는다.

옛날에 우리 둘은 수레의 양쪽 바퀴처럼 떼어놓을 수 없었네. 헤어져 있는 동안에도 자네가 나를 아낀 걸 알아. 전쟁터에서 마주칠 때 자네의 표정이 언제나 우울해지는 것을 보았어. 다시 말하지만 나이만 전 때 형제가 한 일을 알고 있네. 그들에게 공포의 씨를 뿌렸기 때문에 내가 승리한 거야.”

그 말을 듣고 자무카가 칭기스칸의 눈을 한참 들여다본다.

어찌 아는가?’

그것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일이었다. 나이만 전의 마지막 밤, 타양칸은 군사를 산기슭에 배치시켰다. 푸른 군대는 끌처럼 파고 들어갔지만 적들의 발밑 기슭에 위치하고 말았다선제공격을 했더라면 타양칸이 유리했을 것이다. 참호를 파고 결사 항전을 했더라도 얼마든지 최후 저지선은 방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무카가 얼마나 심하게 공포감을 주었는지 모른다.

이 야밤에 공격해본들 큰 바다에 가라앉은 돌이나 갈대밭에 쏜 화살처럼 나이만은 이내 사라져 없어지고 말 거요.”

양쪽을 잘 안다는 군사고문이 이렇게 말하자 타양칸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져 버렸다. 그리고 포위망을 뚫으려는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채 절벽에서 떨어졌다. 그것도 나이만의 병사들끼리 엉켜서 한꺼번에 떨어지는 바람에 처참하게 으깨지는 모습을 자무카는 탈출하면서 보았다. 마치 쓰러진 나무 위에 또 다른 나무들이 널부러지듯이 용사들은 차곡차곡 쌓여서 죽었다. 헌데, 칭기스칸이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알아주니 고맙네. 나는 천하를 얻는 데 실패했지만, 내가 꿈꾸었던 천하를 나보다 훨씬 가볍게 품어버린 형제를 지상에서 얻었네. 황야와 빈곤을 딛고 서서 푸른 하늘의 마음을 갖게 된 형제여! 이제 와서 나를 살린들 어디에 쓰겠나? 나도 이제 구르칸의 명예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해.”

칭기스칸은 그만 일어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낮에 뜨겁던 태양도 밤에는 식어서 찬 공기를 보낸다. 밖에서 대기해 있던 주치가 소리 나지 않게 천창을 닫았지만 한 곳이라도 허술하게 열려 이슬이 굴러들지 않을까 게르 안을 돌아본다.

새벽에 춥지 않을까? 외롭지 않도록 여인이 도와도 되는가?”

살 만큼 살았나 보네. 형제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여인은 활이요 사내는 화살이네.한 번 시위를 떠난 화살은 돌아가지 않는 법, 나는 여인들을 지켜주지 않았어. 나쁜 수컷이지. 하지만 저 별밭으로 빠르게 날아가 불꽃을 내며 타는 것도 다 사나이의 정기와 행운이 이동하는 과정에 겪는 일들이야. 여인들이 잠들었을 때 별똥별처럼 소리 없이 스러져 가려네.”

자무카는 이미 칭기스칸이 닿을 수 없는 나라에 가 있는 사람 같아서 속수무책으로 헤어지는 것이 한없이 허탈했다.

백 명의 사람에게는 백 개의 하늘이 있지. 천 명의 사람에게는 천 개의 신이 존재할 수밖에.’

그래도 다음날 자무카를 한 번 더 찾아갔다. 전날과 달리 몹시 쾌활한 목소리였다.

우리는 서로의 지문을 보여줬네. 지문은 운명의 목소리가 아닌가.”

난 더 이상 형제에게 위협을 느끼지 않아. 설령, 형제가 구르칸의 자리로 되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말이야.”

왜 자네답지 않은 말을 하는가? 해와 달이 부딪치면 누가 이길까? 하나가 이기겠지. 그러나 대지는 불타고 말아. 구르칸을 포로로 잡아서 처형했다는 신화쯤은 있어야 칸의 초원이 별빛의 영광 속에서 빛을 내지.”

부탁할 것은 없는가?”

피를 흘리지 않고 죽게 해줘. 그리고 넋이 이승에서 떠돌아다니지 않게 높은 언덕에 묻혔으면 좋겠네.”

칭기스칸이 오르도에 돌아가 보니 보오르추와 코르치가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살리고 싶은 겁니까?”

자무카는 내게 직접 해를 끼친 적이 없어. 또 그는 세상사를 얼마나 깊이 아는지. 나는 많은 것을 배웠어. 제발 돌아서 오면 좋겠는데, 이미 삶에 지쳐버린 모양이야.”

고맙습니다. 대칸! 신령님의 뜻이라 대칸을 모시면서도 제 마음은 언제나 우리 자다란 족의 수령님께 미안했습니다.”

코르치의 말이 끝나자 보오르추가 묻는다.

형을 집행한다면 죄목을 어떻게 붙여야 할까요?”

타타통가에게 기록해두라고 해. 자무카는 동생이 말을 훔친 죄를 인정하지 않고, 달란발조드에서 전쟁을 일으켜 칸의 칙령을 거부했다. 또한 구르칸에 즉위하여 몽골을 둘로 쪼개어 같은 백성들끼리 피 흘리게 했으며, 이후에도, 타타르, 케레이트, 나이만 등과 연합하여 대적 전선을 만들어서 늘 푸른 군대를 들쑤시고 공격하여 한순간도 긴장을 풀지 못하도록 도왔다. 마지막으로 형제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하여 더불어 살자는 요청을 사양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실행하겠습니다.”

끝으로 부탁할 게 있는데, 죽을 때 피를 쏟지 않고, 그의 육신이 맹수와 새의 먹이가 되지 않도록 곱게 매장하되, 장례식을 칸의 혈육에 맞추어서 예우해주었으면 좋겠어.”

 

당일, 자다란 족에서 많은 사람이 나와 있었다. 영결식이 진행되는 언덕 위에는 다른 부족의 사람들도 많이 나와서 도열하여 애도의 기가 바람에 흐느끼듯이 펄럭이게 했다. 모든 절차는 보오르추의 판단에 의해서 일사천리로 결정되었고, 몽골 최고 귀족의 수준에 맞게 최상의 예우가 갖추어졌다.

언젠가 자무카의 큰 무당이었던 코르치가 정성을 다해 집전하는 모습은 한없이 숙연했으며,유족을 대신하여 나선 처여는 관이 운구될 때 전갈 깃발을 부둥켜안고 얼마나 소리 높여 울었던지 보는 이의 눈시울이 뜨거워서 고개를 똑바로 세울 수가 없었다. 또한, 자무카의 말에는 상복이 입혀지고, 코르치가 북을 두드릴 때 새들이 검은 숲을 잔잔히 흔들고 풀들도 흐느끼듯이 낮게 엎드려 있었다.

유해는 검은 숲에서 가까운 다다르트 산기슭에 묻기로 했다. 코르치가 수리매의 도움을 받아 아침 해가 가장 먼저 비추는 양지바른 곳이며 산의 정상이 한눈에 보이는 곳을 찾아냈다. 살아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그곳에 떨어지면 부정을 탄다 하여 아무도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도록 하고 장지를 썼다.

몸은 곧은 상태로 위로 향하게 눕혔으며 자작나무 껍질로 정성껏 감쌌다. 위대한 군인이었음을 기념하여 자작나무 껍질로 된 활통에는 세 개의 각기 다른 모양의 화살을 담아서 머리맡에 두었다. 머리 오른쪽에는 하늘로 돌아가는 먼 길에 배고프지 않도록 살이 토실토실 오른 두 살박이 양을 먹을거리로 놓아두고 칭기스칸이 직접 나무손잡이칼을 놓아주었다. 머리 왼쪽에는 두 개의 등자와 자무카의 말에 붙어 있던 쇠붙이들을, 그리고 그 아래에는 춥지 않도록 철로 된 화로를 놓았다.

땅에 묻히기 전에 마지막으로 칭기스칸이 몸에 두르고 있던 금띠를 풀어서 시신 위에 놓았다. 여섯 개의 꽃잎에 꽃무늬 장식이 스물여덟 개, 동체의 연결부뿐 아니라 버클 부분까지 순금으로 되어 있고 산수, 산양 뿔 모양으로 장식한 최고의 귀중품이었다.

다행이야. 몸이 상하지 않았구나!”

칭기스칸이 주검을 만지면서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감정이 북받치는지 입을 다물어버렸다.자무카의 입에서 사나이들의 우정은 산을 강처럼 흐르게 할 수도 있고, 사나이들의 다툼은 해와 달이 부딪쳐 하늘이 깨지고 금이 가게 할 수도 있다라는 말이 울려와 귓전에 쟁쟁거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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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드 179회 | 조드 2011-08-05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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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봄 하늘에서 뿌리는 눈은 가볍고 보슬보슬하다. 하얗게 각이 선 알갱이들이 먼 허공에서 가까이 올수록 둥글어진다. 바람에 희끗희끗 몰려다니는 것들이 공기 방울과 부딪치면서 눌러지고 엉겨 붙어 쌀알처럼 작고 단단한 눈 싸라기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점점 무거워져서 땅에 닿을 때는 얼음처럼 투두둑 소리를 낸다. 마치 하늘이 천 개의 손길로 두드리는 것 같은 버르테의 천창 밑에서 알타니가 다섯 살짜리와 놀고 있었다. 둘째 차가다이가 낳은 아들이 할머니에게 와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내리는 눈을 무슨 눈이라고 해?”

  소나기 눈.”

  살짝 내리는 눈은?”

  살 눈.”

  언젠가 족제비할머니가 어린 테무진을 기르면서 시작한 놀이가, 어느덧 그 집의 문화가 되었다.

  눈과 비가 섞여서 오는 눈은?”

  진눈깨비.”

  게르 안에는 나이 든 여인이 둘이나 있었다. 후엘룬어머니가 오랜만에 버르테를 찾아와 이것저것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버르테가 반가운 표정으로 뒤를 졸졸 따른다.

  어머니! 나무랄 게 있어서 오신 건 아니지요?”

  할망구가 왕비님께 꾸짖을 게 있어야지.”

  곁에서는 알타니의 목소리가 계속 들린다. 보슬보슬한 눈은? 마른 눈은? 하얀 가루 같이 고운 눈은? 잿빛이 도는 눈은? 물기가 많은 눈은?

  후엘룬의 음색도 밝고 버르테의 표정도 청명하지만 어느 구석엔가 엷은 그림자가 없지 않았다. 조상의 제사를 모시는 상에는 조그마한 돌멩이가 놓여 있다. 유목민은 흔히 고향의 흙이나 돌멩이를 가슴에 지니는 것으로 자기의 대지를 가지고 다니는 것처럼 생각하는 풍습이 있었다. 오래전 옹기라트에서 온 돌멩이를 만져보며 후엘룬이 물었다.

  홀릉 때문에 속상한 것은 아니지?”

  칸이 하는 일을 속상해하면 어쩌려고요?”

  그래도 속상한 줄 안다.”

  나도 모르게 아주 조금 어른거리다 만 거예요. 하필 메르키드 여자일까 해서요.”

  그 말을 하고 싶어 왔어. 다른 부족의 여인을 데려왔다면 칸에게 한마디 하려고 했다. 헌데, 원수의 딸을 데려온 걸 보고 고개를 끄덕끄덕했지. 백성을 죽이는 것보다 낫지 않니?”

  버르테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른 부족을 통합하는 과정을 짐작하지 못한 것이다.

  아차, 제 생각이 짧았어요. 이제 마음에 두지 마세요.”

  그래도 부탁하자. 이수겐은 말을 잘 듣지? 홀릉도 바탕이 괜찮은 얘야. 헌데, 주치 표정이 어두워. 속이 깊은 아이라 겉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어미가 슬퍼할까 봐 그러는 거야. 그늘을 걷어줄 사람은 너밖에 없다.”

  버르테는 문득 세상사가 복잡하게 얽힌 데 비해 여자의 소갈머리가 너무 좁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 시어머니가 돌아가자 밖에다 대고 주치를 불러오게 했는데 소식이 없다. 다시 외치자 한참 후 목소리가 되돌아온다.

  칸께서 붙들어두어서 움직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자 버르테는 세상 일이 그토록 치밀한 인과관계에 얽혀 있는 게 너무나 놀라웠다.

  옳아. 칸이 자무카와 술자리를 하면서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심부름도 주치에게만 맡기는 이유가 있었구나!’

  자무카의 게르에서 낳았던 아이가 바로 주치였다.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돌아온다.

 

  그날은 어린 봄으로는 유난히 포근한 날씨였다. 자무카를 데려온 배신자들을 처형한다고 해서 버르테도 나가 게르 뒤에 숨어서 지켜보았다. 틀림없이 자무카도 나올 것이었다. 젊은 날에 그토록 사이가 좋았던 두 사람을 결정적으로 헤어지게 한 사람이 자신이었다. 자무카의 부인이 촐싹대는 게 판단의 근거였는데, 사실은 얼마든지 자신이 틀릴 수도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 한 번은 자무카의 표정을 살펴보고 싶었는데, 끝내 한쪽이 파산하고 나서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역시나 사내들은 하는 짓이 다르다. 그날 칭기스칸은 배신자를 처벌하자 곧 자무카를 부둥켜안았다.

  형제! 이거 얼마만인가?”

  옹칸이 연합군을 만들어서 나이만을 치러 갈 때 보았을 테니 결코 짧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아무 일 없었던 사람들처럼 부둥켜안고 술좌석에 들어가는 걸 보고 여자들 같으면 저런 일이 어찌 가능하랴 싶었던 것이다.

  먼발치에서는 봤지.”

  아니야. 형제의 뒷머리가 희잖아. 그렇게 세월이 얹힌 모습이 보여야지.”

  자무카는 그런 처지에서도 허허 너털웃음을 웃었다.

  흰 게 대순가? 옛말에도 자랄 때는 이가 희고, 늙어서는 머리고 희고, 죽어서는 뼈가 희다고 했네. 허허허.”

  그러면서 둘이 들어가더니 이틀째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술상만 몇 번째 내갔는지 모른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앞으로 어쩔 셈인지 아는 이가 없었다.

  자무카도 칭기스칸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놀랍기만 했다. 쿠두 아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형제에게서 풍겨오는 아늑하고 불가사의한 매력이 예전보다 결코 못하지 않았다. 쿠두 아랄은 여느 쿠리엔과 달리 조금도 황량해 보이지 않고 문란해 보이지 않는다. 햇살에 반사되는 벌판의 허리에는 눈처럼 보드라운 털에 덮인 양들이 대여섯 마리씩 떼를 지어 우글거리는 것이 보이고, 여기저기 낙타도 있었다. 먼 옛날, 늑대에게 공격받을 때 만난 열두 살짜리 테무진에게서도 그런 따뜻함은 있었다. 그런 성정이 마을을 만들면 이렇게 되는구나 싶었던 것이다.

  칭기스칸은 자꾸 옛이야기를 한다.

  형제, 우리가 코르코낙에서 만났던 것처럼 이제 쿠두 아랄에서 다시 만난 거야. 그때 일이 나는 꿈같아. 사람이 드문 넓고 넓은 초원에서, 그것도 긴긴 겨울밤을 같은 이불 속에서 지샌 사람이 진정한 친구이지.”

  남이 된 사내에게 너무 정을 주지 말게.”

  많은 일들이 얽혀서 때로는 숨이 넘어갈 듯이 괴롭게, 때로는 전쟁을 하면서도 배려하면서 어색하게 지내온 가지가지의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기에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답답해서 고통스럽기만 하다.

  무슨 소리? 모든 생명은 다 남과 남이 만나서 잉태한 것이네. 이제 좀 돌아와. 내게도 갚을 기회를 줘야지.”

  낙타가 저녁에 집으로 가는 이유는 둘일세. 하나는 주인이 물을 주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새끼가 기다리기 때문이야.”

  무엇이 걱정인가? 우리가 의형제를 맺던 오논 강의 얼음판은 해마다 돌아올 거야. 그 시절처럼 또 의형제를 맺자고.”

  내가 구르칸이라는 사실을 잊었어? 십삼익 전쟁 때 자네를 달란 발조드까지 추격했던 사실을 잊지 말아.”

  허물은 잊어야지. 선을 행하기는 죽은 자를 살리는 것처럼 어렵고, 악을 행하기는 살아 있는 것을 죽이는 것처럼 쉬워.”

  몽골의 칸은 둘이야. 백성의 마음이 다시는 나뉘지 않도록 칸끼리 합의를 보세.”

  자무카의 귀에 칭기스칸이 꿀꺽 침을 넘기는 소리가 들린다.

  구르칸 자무카는 칭기스 형제 앞에서 무릎을 꿇었어. 내게는 자네와 같은 어머니가 없었고, 자네와 같은 아내가 없었으며, 또 자네와 같은 훌륭한 친구들도 얻지 못했네.”

  무슨 소리! 형제와 나는 한 번도 직접 부딪친 적이 없어. 언제나 한 사람이 피했지. 특히 나이만 전 때는 자네가 도운 걸 내가 알아.”

  그래도 하나는 떠나고 하나는 보내줘야 해. 초원은 넓고, 인간은 약속과 믿음에 의지해서 살아야지. 배신은 어떤 경우에도 용서되지 않는다는 걸 나의 목숨으로 새겨두세. 내가 형제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어. 형제가 원정을 나설 때마다 술을 뿌리고 제사를 지내는 검은 톡 기 위에 나의 넋이 붙어서 지켜줄 걸세.”

  구르칸! 그러지 말고 자무카로 돌아와 줘.”

  계속 호탕하게 굴던 자무카가 거기서 입을 닫아버렸다. 칭기스칸의 볼 밑에 있는 희고 듬성듬성한 수염에 눈물방울이 얹혀 반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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