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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제가 왜 참아야 하죠?>등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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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신령 | 기냥 소설 2021-08-1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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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돼지신령

김동식 등저
북크루 |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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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크루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김동식 작가와 초단편소설 출판하기> 클라스 수강생들의 작품집이다. 1기 수강생들의 작품집 <하늘에서 하리보가 내려와>에 이어 이번 2기는 울산 상북중학교 학생들이 참여했다.

 

8주 동안 김동식 작가에게 작법을 배우고 각자 1편씩 짧은 분량의 소설을 완성하여 이 작품집에 실었다는데, 표제작인 ‘돼지신령’만 지도하는 김동식 작가와 수강생들이 함께 완성한 공동창작물이다.  그외는 수강생들의 작품들. 각각의 소설을 읽다보면, 10대 중학생들이 자신의 삶과 관심사에서 소재를 가져와서 구성을 하고,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이 보여서 흥미롭다.  

 

김동식 작가의 <회색인간>을 전에 읽었기에 이 수강생들의 작품도 비슷할 것같다고 예상했다. 내 편견이었다. 작품들은 다 다른 방향으로 개성적이었다. 단편 소설치고도 굉장히 짧은 분량이라 아무래도 구성과 반전에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 같고, 그런 방향으로 역량을 발휘한 작품이 눈에 띄는 것은 사실이긴 하다. 그러나 어떤 작품은 이야기를 끌어가는 상상력이 뛰어나고 어떤 작품은 심리 묘사가 섬세하고 어떤 작품은 교훈적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초단편 스타일이 아니라도, 각 작가들은 이번 경험을 계기로 앞으로 자신에게 맞은 쟝르를 찾아서 능력을 펼칠 것 같다. 기대된다.  

 

책에는 작가별로 소설뿐만이 아니라 작가의 말, 동료 작가의 추천글도 함께 실려 있다. 본인은 물론 다른 학생들도 서로를 작가로 인정하고 작가로서 평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학급 문집같은 성격이 아니다.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이름을 걸고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종종 수식은 너무 많으나 정작 주어와 서술어 일치도 안 되는 비문을 쓴 부분이 보인다. 이런 문장이 그대로 실렸다는 것이 잠시 의아했다. 아마 이 부분은 출판사에서 작가를 존중해서 그냥 살려서 실은 것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이렇게 책 전체에는 출판사와 글쓰기 클라스에 참여한 중학생 글쓴이들 모두 서로를 작가로 진지하게 대우하고 존중하고 있는 티가 많이 난다. 인상적이었다.  

 

'작가(作家)'는 한자로 '지을 작'에 '집 가'를 쓴다. 家는 이 쓰임에서 '집'이 아니라 '전문가'다. 앞으로 이 작가들이 자기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길 기원한다. 이들은 '강민서 김다겸 김미성 김민주 양지은 양하진 진예빈 이주하 이찬형 한겨레'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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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를 | 추천 7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 다닐까]중국 번역본 출간 | 껌작가 책 소식 2021-08-12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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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박신영 저
바틀비 | 2019년 08월

 

오랜만에 소식 전합니다. 

제가 쓴 책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 다닐까>가

지난 3월에 중국에서 간체자본으로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사진이 잘 올려지지 않네요. 아래 링크로 가면 중국본 책을 볼 수 있습니다. 

동화 속 숨겨진 세계사([한] 박신영 지음; 채페준) [소개_서평_온라인 읽기] - 책이 될 때 (dangdang.com)

 

2019년 1월에 번체자로 번역 출간된 대만본도 스테디셀러로 잘 버티고 있습니다. 

덕분입니다. 예스의 오랜 글벗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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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트를 | 추천 9        
한국일보 젠더살롱 1회 | [한국일보 젠더살롱] 연재 중 2021-01-1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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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한국일보 토요판 <젠더살롱>에 격주로 연재합니다.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 등을 소재 삼아, 우리 주변의 성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쓸 예정입니다. 진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술술 읽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응원해 주실거죠? ^^

"백마 탄 왕자 이야기의 주제는 공동체의 정의 회복이다. 우리에게는 젠더 정의를 위해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다." - 본문 중에서

https://news.v.daum.net/v/20210109044002154 <= 원문링크입니다.

댓글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ㅋㅋ

 

한국일보

[젠더살롱] 백마 탄 왕자가 공주를 구한 건, 놀고 먹기 위해서였다

입력 2021. 01. 09. 04:40 수정 2021. 01. 11. 11:03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하미나 작가는 과학사 전공자답게 2030 여성의 건강문제, 덜 눈에 띄는 여성의 산업재해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파울로 우체로(1396-1475)가 1460년경에 그린 '용을 퇴치하는 성 조지'. 런던 내셔널 갤러리 홈페이지

파울로 우체로(1396-1475)가 1460년경에 그린 '용을 퇴치하는 성 조지'. 런던 내셔널 갤러리 홈페이지

‘여자들은 이래서 문제다.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지 말고 능력을 키워라.’ 어릴 적에 공주가 나오는 동화책이나 순정 만화를 보면 듣던 말이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나와 내 친구들을 야단쳤다. ‘여학생들은 얼굴 꾸며서 시집간 후 놀고 먹을 생각만 한다. 거울 볼 시간에 공부해라.’ 집에서 부모님은 오빠와 남동생을 우대하며 말했다. ‘딸들은 시집가면 그만이니 투자하면 부모 손해다. 그래서 차별하는 거다’라고. 과연 그런가? 우리 여자애들이 차별받는 이유는 공부 안 하고 남자에게 빌붙어 놀고 먹으려고 하기 때문인가? 무언가 억울했지만 당시 우리에게는 새로운 이야기가 없었다. 20세기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남녀 공학 중학교로 배정받았다. 출석부의 1번에서 32번까지는 남학생이었고 41번에서 62번까지는 여학생이었다. 여자애들은 늘 뒷전이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상위권 남학생들은 당연한 듯 인문계로 진학했다. 대학에 가기 위해서였다. 상위권 여학생들은 달랐다. 절반 정도는 실업계 고등학교로 원서를 넣었다. 딸이니까 얼른 취업하여 오빠와 남동생의 학비를 벌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거울을 볼 시간에 영어 단어장을 보고, 헤어롤을 말 시간에 수학 문제를 풀었건만. 백마 탄 왕자나 기다리는 한심한 계집애들이라고 혼내면서도 세상은 우리에게 능력을 키울 기회를 주지도 않았다. 여전히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를 찾지 못했다.

남편은 왕자가 아니라 용이었다

20대가 되어 합법적으로 ‘연애계’에 진출했다. 이성애자 친구들은 사귀는 남자들의 말에 휘둘렸다. 그들이 말하는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골빈 된장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 말이 옳아서가 아니라, 단지 상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사랑받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몇 명의 남자와 만나고 헤어졌다. 데이트 폭력을 행사하던 '구남친'은 불을 뿜어 위협하던 '구남용'이었다.

나름 왕자를 골라 결혼했지만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자 집은 왕년의 공주가 갇힌 성이 되었다. 용 한 쌍이 효도를 빙자한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 감정 노동을 강요할 때 왕자는 구해 주지 않았다. 알고 보니 남편은 왕자가 아니라 부엌에 들어가기 무서워 소파 위에 앉아 있는 용이었다. 차별하며 키웠어도 노쇠해지자 딸의 다정한 돌봄을 원하는 친부모님도 다시 보니 용 한 쌍이었다. 아아, 용 내려 온다. 용 내려 온다.

어쩌면 왕자는 용과 한통속일지 모른다

어찌된 일인가. 백마 탄 왕자만 기다리지도 않았건만, 놀고 먹지 않고 유급 무급 노동을 해 왔건만, 어디에서 이 많은 용들이 내려오는 것인가. 대학 진학률은 같아졌는데 왜 우리 여자들은 다양한 용의 감시를 받으며 계속 차별의 성에 갇혀 있는 것일까. 안다. 용 아닌 좋은 연인과 남편, 친부모와 시부모를 만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건 랜덤 아닌가. 타인의 선의에 인생의 행복과 불행이 달려 있는 것도 갇힌 삶이다.

갇힌 사람에게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동화책과 만화책을 보던 여자애들은 자라서 소설책과 드라마, 영화, 웹툰을 본다. 새로운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원하기 때문이다. 흠, 어떤 드라마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친구와 짜고 짝사랑하는 여성을 괴롭히게 한 후 구해주기도 하던데, 어쩌면 왕자와 용은 한통속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부모님도 선생님도 세상도 우리 편이 아니라 용과 짠 왕자의 편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백마 탄 왕자’ 이야기를 통해 결혼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는 한편, 차별하고 후려쳐서 용 앞으로 떠밀어 준 것은 아니었을까.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백마 탄 왕자’ 이야기는 왜 생겼을까? 처음부터 성차별적인 이야기였을까? 왕자, 공주, 용은 원래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왕자들은 조건 좋은 공주를 찾았다

괴물을 물리치고 여성을 구하는 영웅의 모험담은 전 세계에 많이 있다. 고전설화 분류 체계인 아르네-톰슨 분류 체계(Aarne?Thompson classification systems)에 의하면 AT 300번 '용 퇴치자(dragonslayer)' 유형이다. 성 게오르기우스(Georgius) 전설이 대표적이다. 군인 출신인 그는 4세기 초에 순교했다. 공주를 용에게서 구한 후 그 나라 사람들을 기독교인으로 개종시켰다. 기독교 포교 과정의 역사를 반영한 이야기이기에 공주와 결혼하지는 않는다.

성 게오르기우스는 군인이어서 임무 수행 중에 지나가다가 공주를 구했다지만, 이야기 속의 그 많은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공주를 구하고 나서, 가던 길 가지 않고 왜 공주와 결혼할까? 근대 이전 유럽에는 작은 나라들이 많았다. 안 그래도 작은 나라를 자녀들에게 분할 상속해주면 국력이 약해진다. 영주 부모들은 첫째 왕자에게 작위와 영토를 상속해주고 다른 왕자들은 성직자나 용병대장 등이 되어 스스로 알아서 살도록 했다.

장남으로 태어나지 않았지만 왕이 되는 방법도 있다. 여왕이 될 외동 공주나 왕자가 없는 왕가의 첫째 공주와 결혼하면 된다. 그러기에 장남이 아닌 왕자들은 조건이 좋은 공주를 찾아 떠돌아다녔다. '잠자는 공주'에서 그렇게나 많은 왕자들이 공주를 구하기 위해 몰려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0년 동안이나 이를 닦지 않은 100살 연상인 여자에게 왕자가 뜬금없이 반해서 키스했던 이유도, 다 부잣집에 장가들어 편히 놀고 먹기 위해서였다. 이상이 중세 유럽사를 통해 알아낸 백마 탄 왕자의 역사적 실체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Sleeping Beauty) 1959년 작. 한국에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란 제목으로 나왔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잠자는 숲속의 미녀 (Sleeping Beauty) 1959년 작. 한국에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란 제목으로 나왔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백마 탄 왕자, 실은 '여성 숭배'였다

고대의 ‘용 퇴치자’로는 페르세우스가 유명하다. 최고신 제우스의 아들인 그는 에티오피아를 날아서 지나가다가 바다 괴물인 용에게서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해주고 결혼한다. 페르세우스 신화는 백마 탄 왕자가 용을 무찌르고 공주를 구해 결혼하는 유럽 민담의 조상이다. 낭만적 이야기로 보이지만 역사적 배경을 보면 그리스 해양 세력이 지중해 지역을 침략한 후 강제로 결혼 동맹을 맺는 과정이 보인다.

페르세우스가 무찌른 용은 그리스 인들이 침략한 지역의 원래 지배 세력이나 토착민들이 숭배하던 신을 상징한다. 승자의 신화는 패배한 쪽을 사악한 괴물로, 정복당한 민족이 믿던 신을 하급 신으로 기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주는 왕자의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국제 역학과 정략 결혼에 희생당한 것인데,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겨우 이 정도인가. 아니다. 오랜 세월 구비 전승된 이야기에는 집단 무의식이 담겨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인류가 ‘백마 탄 왕자’ 이야기를 즐겨 왔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청동기 시대에 지중해 지역에는 동지 즈음에 땅 속에 갇혀 있던 태양을 구출하는 의례가 있었다.

땅 속의 신에게서 태양을 구출하는 신화는 점차 괴물에게 잡혀 있는 여성을 구출하는 기사의 이야기로 변해갔다. 태양은 아름다운 여성이, 커다란 뿔로 태양을 운반하던 우주 사슴은 말이 되었다. 말 중에서도 백마인 것에도 이유가 있다. 흰색은 색채가 없기에 백마는 형체가 없어서 하늘과 저승이란 두 세계를 오고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백마 탄 왕자’ 이야기의 근원은 태양 숭배였다. 태양이 없는 상태가 상징하는 공동체의 결손을 원래대로 회복하여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주제였다. 오오, 유레카, 유레카!

너희 왕자들은 왜 공주를 구하지 않는가

유레카를 외치며 용의 탕에서 뛰어나와 둘러보니,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 이들이 보였다. 늘 싸워 온 여성들은 있었다. 21세기 들어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다. 디즈니의 공주 애니메이션도 바뀌기 시작했다. 여성들은 손 잡고 새로운 이야기를 요구하고 써 나갔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생겼다. 이제는 왕자를 꿈꾸지 않는 여성들이 욕 먹기 시작했다. 2016년, "소녀들은 왕자가 필요없다(Girls do not need a prince)"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분노한 남성들이 항의해서 성우가 해고당하기도 했다. 아니, 남성들이 진정으로 여성을 구원하는 왕자가 되길 원한다면 그 많은 성범죄는 누가 저지르는 것인가? 2020년의 n번방 사태는 왜 벌어졌는가? 무려 26만여 명이나 되는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 동조자들은 다 어디에서 내려온 용들인가? 현대의 왕자들은 용에게서 공주를 구하지 않고 용이 범죄를 저지르는 영상이나 공유하고 있는가? 왕자와 용은 한 편인가? 왕자 아닌 용이 되어 ‘낫 올 맨! 모든 남자가 다 그렇지는 않아!’라고 불을 뿜고 있는가? 이 용들이 뿜는 불(火)은 일반화인가?

어릴 때 우리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를 굳이 성별을 나눠서 읽지 않았다. ‘나는 공주가 되어 잠자다 구원받아야지’, ‘나는 왕자가 되어 공주를 구해야지’라고 다짐하지 않았다. 단지 악을 물리치고 선이 승리하는 이야기를 좋아했을 뿐. 그렇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공동체의 정의 회복이다. 우리에게는 젠더 정의를 위해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다. 새해가 밝았다. 21세기도 1/5이나 지났다.

박신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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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오빠를 키웁니다 2회 | [한국노총 월간지 -오늘도 오빠를 키웁니다] 연재 중 2020-12-14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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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오빠를 키웁니다> 2회

월간 한국노총에 연재 중인 시리즈입니다.
이번 이야기는 12월호에 실렸습니다.
 
http://news.inochong.org/detail.php?number=2830
<= 원문 기재 링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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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육간의 정은 기본, 내가 오빠에게 갖는 애정은 일종의 전우애다. 그렇다, 우리 남매는 전우다. 10대에 아버지를 여의고 생활비를 벌러 알바 전선에 나섰기에. 공통의 적에게 같은 전장에서 함께 폭행을 당했기에.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맞았다. 도대체 이 사람이 왜 이럴까. 무릎에 앉히고 귀여워하다가 갑자기 때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리 부모라도 인간적으로 자식에게 이래도 되나. 나는 맞으면서도 이유나 좀 알았으면 싶었다. 밥을 많이 먹지 않는다고 아비를 무시하냐며 때리는 것은 정말 이상했다. 무시했다면 밥을 무시했지 아버지를 무시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요새 애들은 편하게 살고 있어서 문제니 6.25 전쟁이 한 번 더 나야 한다며 때리는 것은 또 뭐람. 겨우 그런 이유로 전쟁이 일어나기를 바라다니,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리움과 안도감, 슬픔과 분노가 뒤섞여 화가 났다. 한편 여전히 궁금했다. 그는 왜 그랬을까.

 

이런저런 분야의 책을 읽으며 오래오래 생각했다. 어느 날, 눈 앞이 환해졌다. , 그는 그냥 자기 이야기를 한 것이었구나. 어릴 때 전쟁을 겪어 무서웠고, 밥 굶고 고생했는데 그 사실이 지금까지도 억울하고 화가 난다는 것이었구나. 어린 자신이 배불리 먹지 못한 쌀밥을, 어른이 된 자신이 돈 벌어와 가족에게 먹여주는 것이 자랑스러운데, 자식이 많이 먹지 않으니 가장으로서 무시당한다고 생각했구나. 쯧쯧. 어리석은 가장이여. 본인의 트라우마 때문에 자녀를 패다니. 결국 이유란 없었다. 때릴 수 있는 권력이 있으니까,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니까 때린 것이다.

 

시대의 폭력이든 가정 폭력이든, 어린 시절 경험한 폭력은 원인과 구조를 제대로 보고 과거사를 청산하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 문제를 일으킨다. 힘이 없기에 아무 저항도 못 하고 당해서 생긴 무기력감이나 모멸감을 극복하는 쉽고도 나쁜 방법은 자신이 가진 힘을 다른 상대에게 행사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이 아니어도 가능하다. 성인 남성들은 모두 나이 권력과 남성이라는 젠더 권력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전통적인 가장으로서의 권력까지도. 이 권력을 가정 내 약자인 아내와 아이들에게 폭력적으로 쓰면, 내 힘에 굴복하고 나를 두려워하는 상대의 모습에서 쾌감을 얻게 된다. 별다른 노력이나 시간, 자원을 들이지 않아도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성공한 남성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가족 구성원의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을 쥐고 있기에, 힘들게 일하여 돈을 벌어다 주지 않아도 전능한 가장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 그리하여 어린 시절에 무너지고 상처입은 약자로서의 자존심을 일으켜 세우고 강자로 거듭날 수 있다.

 

이것이 아버지에게 맞고 자란 아들이 똑같이 폭력 아비가 되어 폭력을 대물림하는 이유다. 학대당했기에 사랑할 줄 모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맞아 봤기에, 때리는 행위가 상대에게 어떤 느낌을 주고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너무도 잘 아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오빠가 조카를 심하게 때린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강력히 비난하고 말리는 한편 나는 물었다. “왜 애를 때려?” 그가 답했다. “얘는 내 맘에 안 들어. 사내자식이 이렇게 작고 약해서 거친 세상에서 어떻게 살겠어!” 맙소사. 본인이 아버지 없이 어린 나이에 가장의 의무를 지고 거친 세상 살아가느라 힘들었다는 말 아닌가. 오빠 역시 자기 인생 한풀이로 어린 아들을 때린 것이다. 예전의 아버지처럼. 아아, 한심한 전우여. 내 어떻게 해야 그대를 선량한 민간인으로 키울 수 있을까.

 

남매애와 전우애가 넘치는 나는 오빠를 볼 때마다 조카를 때리지 말라고 말리면서 이야기했다. 트라우마와 과거사 청산에 대해. 경고했다. 오빠 본인이 가진 권력에 대해. 너의 위치에서 너가 가진 힘을 잘 쓰면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만들어 과거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데 왜 굳이 폭군 아버지의 길을 가려하냐고 말했다. 그러나 오빠는 변함없이 조카를 때렸다. 어느날 조카가 매맞다 웃으며 이렇게 말하기 전까지는.

 

두고 봐요. 이담에 제가 크고 아빠가 늙으면, 그때는 제가 아빠를 때릴 거에요.”

 

 

- 박신영.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 다닐까>,<제가 왜 참아야 하죠?>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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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오빠를 키웁니다 1회 | [한국노총 월간지 -오늘도 오빠를 키웁니다] 연재 중 2020-11-18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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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오빠를 키웁니다> 1회

월간 한국노총에 오빠 이야기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이 글은 11월호에 실렸습니다.
 
http://news.inochong.org/detail.php?number=2770&thread=23r11
<= 원문 기재 링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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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아, 이 빵 먹어. ”
아빠 장례식장에서였다. 오빠는 자꾸 나를 구석으로 데려가서 빵을 먹였다. 벌써 세 번째다. 오빠의 헐렁한 상복 도포 품 안에서는 계속 빵이 나왔다. 이 빵들은 다 어디서 생겼을까. 오빠가 낳는 것인가. 둘 다 10대 나이인데, 나름 오빠랍시고 어린 동생을 챙겨야겠다싶어서 이러는구나. 그 마음이 애틋해 목이 메었다. 입맛은 없었으나 오물오물 빵을 씹어 삼켰다. 내가 먹는 것을 지켜보던 오빠가 갑자기 흐느끼며 말했다. “나는 형이 있었으면 좋겠어.” 올려다 봤다. 눈이 빨갰다. 순간, 나는 결심했다. 평생 오빠의 든든한 동생이 되기로.
 
아빠는 오빠의 대학 입시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돌아가셨다. 오빠는 장렬히 시험을 말아먹고 재수도 포기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벌었다. 1,2년 후, 자리에 누워 울기만 하던 엄마가 외출을 시작하셨다. 학교가 끝난 후 돌아와 보면 집에 아무도 없을 때가 많았다. 아빠 돌아가신 집에 혼자 있는 것은 무서웠으나 이해했다. 집에만 계시면 우울하실 테니까.
 
엄마가 여행을 가서 집을 비우면 오빠의 친구들이 집에 몰려 왔다. 군대 가기위해 대기하고 있어서 시간은 많은데 돈은 없고, 결정적으로 늘 배가 고픈 청춘들. 그들이 며칠 합숙을 하면 집에 있던 모든 음식들이 사라졌고, 찬장에 있던 모든 식기들이 동원되었다. 라면은 끓여도 설거지는 절대 하지 않던 1970년생 개띠 남자들. 나는 빈 냉장고와 잔뜩 쌓인 설거지 거리를 목격하고 주기적으로 경악했다. 엄마를 위해 설거지를 해 놓기는 했다. 여행 다녀와 좋아진 기분 망치지 마시라고.
 
그러던 어느 날, 빈집에 들어온 나는 놀라운 물체를 목격하게 된다. 설거지의 산 정상에 얹힌 냄비. 그 냄비에 담긴 라면 국물에 반신욕하고 있던 나무젓가락들. 그 개띠 일당들은 깨끗한 수저가 없어지자, 나무젓가락을 사 와서 쓴 것이었다. 한 번 쓴 쇠젓가락을 설거지해서 쓴 것이 아니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집 앞 가게에 뛰어가 나무젓가락을 사오는 것이 설거지하는 것보다 더 힘들고 돈도 드는데 왜들 이럴까? 그동안 쌓인 분노가 폭발했다. 자신들은 남자라고 설거지를 할 생각을 아예 안 하는 것일까?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밤 11시에 지쳐서 집에 오는 고3 동생에게 일거리를 남겨 두는 것이 오빠는 미안하지도 않나? 오빠를 붙들고 설거지하라고 시켰다. 그는 자기 일이 아니라고, 여자인 니가 하라고 뇌맑게 답했다. 오냐, 한번 혼나봐라. 나는 내가 쓴 수저와 그릇만 설거지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엄마는 매섭게 야단쳤다. 누구를? 나를! 사연을 이야기했으나 엄마는 당연히 여동생인 내가 설거지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역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같은 자식인데 왜 아들은 주인으로 키우고 딸은 아들의 종으로 키우는 걸까? 아들을 이렇게 키우니 오빠가 저 지경이 되었잖은가.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젓가락들 앞에서 나는 또 결심했다. 엄마 대신 내가 오빠를 잘 키우기로. 저렇게 크다가는 늙어서 처자식에게 버림받기 딱 좋지 않겠는가. 나는 오빠를 사랑하는 동생이니 절대 그렇게 놔둘 수 없지. 바탕은 선량하고 마음이 여린 남자니까 키울만 할 것이다.
 
삼십 년이 흘렀다. 나는 결심한 것을 지켰다. 그동안 집안에 큰 돈 드는 일이 생기면 반을 부담했고 엄마 간병을 도왔다. 오빠는 물론 올케언니에게도 든든한 동생 노릇을 했다고 자부한다. 거기에 더해, 오빠 결혼 후 지금까지 하는 일이 있다. 나는 오빠네 부부가 말다툼을 할 때면, 실탄 대신 말을 장전하고 기회를 엿본다. 결정적 순간이 오면 사랑하는 오빠를 위해 지원 사격을 한다.
 
물론, 오빠를 쏜다.
 
- 박신영.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 다닐까>,<제가 왜 참아야 하죠?>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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