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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에서 보낸 한 철(7) - 오래된 친구 다케를 만나다 - 메데진 | 기본 카테고리 2008-08-3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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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를 구분하라면 목적지와 경유지로 구분하겠다. 지도 위에 동그라미를 치고, 정보를 검색하고, 상상하고, 설레는 곳이 목적지다. 그리고 경유지는 그 목적지를 연결해주는 다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경유지에게 예의가 아닌 걸 알지만 어차피 모든 것을 다 볼 수는 없다. 가고 싶은 곳과 덜 가고 싶은 곳은 구분되어야 한다. 메데진은 나에게 경유지였다.

 


기대가 전혀 없는 곳이 항상 나쁜 건 아니다. 기대 이상의 것들을 만날 확률이 있다는 거니까….


메데진에 온 이유는 다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다케와 나는 멕시코시티에서 만났었다. 나는 저렴하다는 이유로 일본인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렀었다. 모두가 일본인, 나만 한국인. 주인 아주머니는 일본인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멕시코인이었다. 거기에 실무를 맡아 열심히 일하는 일본인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대놓고 나를 싫어했다. 대일본제국의 성지에 왜 왔어? 분명히 그런 식의 적개심이었다. 신경질적이고 공격적이었다. 신선했다. 예절바른 일본인들의 평균치를 감안해 보면, 더욱 놀라운 싸가지였다. 더럽고 치사했지만, 돈을 아끼기 위해서라면 더 더럽고 치사해도 참을 것이다. 비굴함의 정석이 뭔지 몸소 보여주며 나는 버텼다. 서럽고 외로웠다. 그 때 나를 지켜준 정의의 기사는 다케였다. 나보다 2주 먼저 내가 묵는 방에 한 자리 차지하고, 나름 꽤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일종의 터줏대감이었다. 워낙 키도 크고 강렬한 눈빛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사람들은 다케를 좀 어려워했다. 그렇다고 말이 없거나 심각한 친구는 아니었다.

 



“지하철 공연 보러 갈래?”

당시에 나는 잡지 연재를 하고 있었다. 그녀석은 좋은 기사 거리가 될 거라며 나를 꼬드겼다. 왕따의 설움에 눈치만 보느라 앙상해진 내 마음에 그는 단비처럼 다가왔다. 그리고는 그는 깡통을 들었다. 오키나와 민속 의상이라며 얇은 개량한복 같은 걸 입고, 수건을 질끈 동여맨 다케는 같이 다니기에 약간 쪽팔렸다. 그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나는 일본거지가 된 듯 했다. 그는 지하철에 들어서자마자 일본말로 떠들기 시작했다. 누가 알아듣기나 한다고 일본말로 지껄이는 거야? 저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거지? 어쨌건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그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는 오키나와 민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누가 봐도 그와 일행이었다. 내가 아무리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도, 사람들은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래서 괜히 내 얼굴이 더 화끈 거렸다. 저 녀석이 노래하면, ‘와뚜와리와리’ 코러스라도 넣어야 하나? 깡통은 내가 들고 있었다면 더 악착같이 돈을 거뒀으리라. 그가 노래를 시작했다. 그 더럽고 시끄런 멕시코시티 지하철에서 마이크도 없이 목청을 돋운다. 심란하고 불쌍해 보였다. 나도 낯 두껍기로는 반경 1km 내에 적수가 없을 정도인데, 그의 뻔뻔함은 급이 달랐다. 내가 닭살이 돋아서 차마 계속 들어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끄럽던 지하철은 고요해지고, 사람들은 모두 다케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단지 다케가 동양인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부르는 오키나와 민요는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부드러운 리듬 속에 팥죽처럼 감미로운 멜로디가 이어졌다. 슬픔을 초콜렛처럼 감미롭게 녹여 사람의 애를 태우는 목소리. 승객들은 더 이상 나를 보지 않았다. 오로지 다케와 다케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너나할 것 없이 동전을 깡통에 던졌고, 나도 감동에 복받쳐 지폐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건 훌륭한 가수를 위한 당연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우린 급격히 친해졌다. 우리 방엔 두 명의 투숙객이 더 있었다. 한 명은 에로영화 배우 싱고(그의 이름을 기억하다니…)였고, 또 한 명은 화가였다. 싱고는 에로 영화제(핑크무비) 신인상까지 거머쥔 나름 명사라고 했다. 지금 사인을 받아두는 편이 좋을 거라고 하도 성화를 해서, 그의 사인을 억지로 하나 받기까지 했다. 하나같이 껄렁해 보였고, 나도 어울리기 위해 건방져 보이려 애썼다. 은근히 껄렁한 잠재력이 상당했는지 나중엔 내가 더 양아치스러웠다.

 


“아니, 내일 보자. 지금은 너무 피곤해.”

그는 메데진에서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일본 만화 마징가 제트를 보며 감동을 받았던 몇몇 콜롬비아 뮤지션들과 함께 마징가 제트 주제곡을 녹음하면서 일약 콜롬비아 언더그라운드 세계에서 스타가 되었다고 한다. 순회 공연도 하고, 아르바이트로 거리 공연도 하면서 살고 있다. 나는 그를 만나보고 싶었다. 하지만 야간버스에서 밤새 시달리며 온 나는 당일 저녁에 만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는 당장 보고 싶어했다. 나는 쉬고 싶었다.


특이하게도 메데진의 케이블카는 대중 교통 수단이다. 따로 비싼 돈 주고 타는 것이 아니라 지하철처럼 집에 데려다 주는 대중교통이다. 지하철 티켓만 있으면 멋진 케이블카 관광을 할 수 있다. 시간이 없어도 공짜니까 타야지.


무려 세 개의 정류장을 거친다. 산동네, 가난한 사람이 모여사는 곳.


꼭대기에서 바라본 도시의 풍경은 장관이었지만, 이미 우린 그런 풍경엔 관심이 없었다. 우리를 졸졸졸 따르는 아이들, 삼삼오오 나와서 이야기를 나누는 아줌마, 직업 없이 빈둥거릴 것 같은 백수 아빠들이 엉망진창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은 강렬했다. 값싼 연민으로 가난한 이들을 보며 향수에 젖는 걸로 오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냥 객관적으로 이보다 훌륭한 피사체와 이보다 떠들썩한 즐거움은 쉽게 만나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케를 만나기로 한 약속만 없었다면 나는 그 곳에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었다. 이 곳은 목적지였어야 했다. 어리석은 편견으로 우린 수많은 곳을 경유하기만 한다.


 


 


 


 


“민우!”

그는 여전히 멕시코 지하철에서 봤던 그 복장이다.


그리고 멀리서 나를 발견하자 두 손을 번쩍 쳐들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이내 나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그를 만나는 건 상당한 쪽팔림을 감수해야했다. 그는 2년만에 만났는데도 달라진게 거의 없었다. 다부진 덩치에 자신감 있는 말투까지. 나를 쫓는 카메라 감독님도 다케의 예술가스러운 외모와 행동에 꽤 흥미로워하셨다. 콜롬비아에서 꽤 유명한 가수와 합동 공연까지 하며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다케는,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좀 이상했다. 밤새 술을 퍼마신게 틀림 없다. 여전히 취기에 찌들어서 앞뒤가 안 맞고 횡설수설이다.

“내 연주를 들려줄게.”

그는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다. 꽤 큰 집. 방이 다섯 개인 멀쩡한 집이었다. 물론 실내는 멀쩡하지 않았다. 이제 막 짐을 뺀 텅빈 집처럼 황량했다. 그는 그 곳에서 키보드를 두들기며 아주 어렵지 않고, 그렇다고 뻔하지 않은 연주곡을 들려줬다. 나는 박수를 쳤고, 그는 고맙다고 했다.


 


 


“음악 때문에 메데진에 머물게 된 거야?”

“싱고가 죽었어. 그래서 콜롬비아를 떠날 수가 없어.”

갑자기 싱고의 이야기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그의 집에는 싱고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여행 중 우연히 만난 여행 친구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그 이상이었나 보다. 다케가 콜롬비아에서 음악 활동을 하는게 내심 부러웠는지, 싱고 역시 콜롬비아에서 에로 영화의 꽃을 피우겠다며 일본에서 이 곳으로 날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콜롬비아의 에로 영화 시장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라 방황하다가 카르타헤나(콜롬비아의 대표적인 휴양도시)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정확한 사인은 모르며, 그가 죽은 곳이 콜롬비아라서 오랜시간 동안 떠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꿈을 잃어버린 에로 배우의 죽음.

그는 나와 친하지 않았고

 

신생아 병동에서 아이들이 쉼없이 태어나는 것처럼

죽는 일도 드문 일이 아니다. 와닿지 않는 슬픔이었다.


 

 

다케는 브라질로 떠나고 싶다고 했고

나는 건승을 빈다며 헤어졌다

 

나는 보다 더 예의를 갖추게 된

다케와 나의 관계가 더 아팠다.

 

나는 변해 있었다

당장 만나고 싶어했던 다케와

쉬고 싶었던 나

신곡이라며 열정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다케와

시계를 보며 곡이 끝나기만을 바라던 나

 

늘 진실할 것만 같던 나는

 

변질되었고

시간을 핑계댔다.

서둘러 그 자리를 뜨며 오히려 홀가분했다.

태양은 뜨거웠고

어디에 좀 눕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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