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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을 찾아가는 과정 | 기본 카테고리 2021-03-21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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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BTS 오디세이

김송연 저
살림출판사 | 2021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깊은 사색을 불러오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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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오디세이>  김송연 , 살림, 2021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 지인의 책을 어제 배달받았다. 단숨에 읽은 것은 결코 책이 가벼워서는 아니다. 꽤나 깊은 생각을 해야하는 어려운 대목들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었지만, 저자의 열정이 뜨거운 김을 뿜어내어 한번에 완독할 있었다

지금 나는 무척 망설이고 있다. 독후감을 ? 서평을 ? 어쨌든 글의 성격을 확실히 하지 못한 시작한다.

<BTS오디세이> 설명하는 글은 "김송연 고통과 치유의 이야기"이다.

부드럽게 피어오른 설화 속의 스메랄도를 손에 잡고 위로 오르는 사람이 표지를 장식한다. 무척 인상적인 그림이다. 스메랄도에 매달려 대기속을 비행하는 것일까, 스메랄도의 뿌리가 사람일까, 책을 읽어봐야 것같다. 방탄소년단의 상징색인 보라빛이 곱다.

 

저자 김송연은 1976 은하수가 봄밤에 태어났다고 한다.

"가슴 뛰지 않던 제도교육과 돈벌이에 묻힌 청춘을 지나며 시를 " 저자는 프랑스 남자와 국제결혼으로 삶의 터전을 프랑스로 옮겼다. "이국살이의 고독 속에서 불교 철학을 공부하며 융을 만나 마음의 우주를 탐험한다."

저자는 탐험중에 BTS 만나고 열렬한 사람의 아미(BTS), 아미집단 속의 아미가 되어 글을 썼다.

 

프랑스의 굳은 전통문화속에 파묻혀 그대로 굳어버린 시집과, 문화 우월주의에 빠진 프랑스인들 속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던 저자의 고난, 고치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저자가 나비가 되어 있게된 과정을 섬세하게 그렸다.

분석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의 '원형',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 둘의 개념을 구현한 BTS, 이들 셋과 하나가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굵고 짙은 가로 획을 그으며 연결된 글이다.

나는 책을 조금 읽자마자 '원형' '연금술' 더해 '현상'이라는 개념을 추가하게 됐다. 저자의 중에 많이 등장하는 어휘가 바로 '현상'이다. 현상, BTS 현상. 계속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어휘를 그냥 무시하고 넘기기가 서운했다. 어떤 곳에서는 현상(現狀/present, current, state, situation)으로, 다른 곳에서는 현상(現象/ phenomenon) 뜻으로 쓰였다. 메를로 퐁티의 '현상학' 다시 돌아보게 하였다. 저자는 알고있는가, 자신이 얼마나 많이 '현상'이란 단어를 불러냈는지. 

"BTS현상은 그대로 취향이 아닌 현상이다."25. "BTS 현재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고 현상이다."28. (pp,23, 25, 28, 39, 52, 89, 95, 106, 110,111, 141, 148, 177, 178 ... ...) 이쯤되면 당연히 메를로 퐁티의 현상학을 새삼 소환해내지 않을 있겠는가.

 

저자는 융을 만나면서 스스로 문제를 있는 길을 찾았다. "대극의 통합"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정신의 나침반의 극점에 서있는 사고와 감정과 감각과 직관이 통합되어야 자신의 원형을 찾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융을 통하여. 그리곤 꿈을 상기하며 꿈을 설명했고, 책의 말미에 이야기는 현실과 조우한다.

융과의 만남은 하나의 귀한 만남, 저자의 '원형' '신성' 찾아가는 여정에서 BTS 만나게 된다. 저자는 BTS '아이돌'이나 '예술가' 칭하지 않는다. 범주에 가둘 없는, 범주를 벗어난 '신성' 자체라고 한다. 바흐를 좋아하는 저자, K-팝이나 대중음악에 관심이 없었던 저자의 눈에 BTS 것은 융을 통하여 저자의 눈이 순해졌기 때문이다. BTS "순한 눈으로 보아야만 보이는 보석"42  것이다.

독자로서 나는 생각한다.

저자 김송연의 마음 속에 생의 불씨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불씨가 없다면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점화되지 않는다. 저자는 그의 '원형' 비밀리에 지켜왔고, 소중한 불씨를 파묻어두었었기 때문에 순한 눈을 회복하게 되었고, 빛나는 것을 보게 것이다.

 

BTS 상징색은 보라색이다. 저자는 보라색을 "따뜻한 보라색"이라고 한다. 물론 나도 ' 보라색' 알고는 있다. 그러나 생각은 저자와 달랐다. 따뜻한 색으로 분류하지 않고 파란색처럼 색깔로 정의하고 있었다. 때문에 책의 짙푸른 파란(보라색이지만)색을 보고는 약간 걱정도 했다. , 사람, 아직도 블루 피리어드(Blue Period) 벗어나지 못했나? 이런 기우였다. 막상 책을 펼쳐서 읽기 시작하니 그런 생각은 정말 기우였을 뿐이다. 저자는 이미 핑크 피리어드(Pink Period) 편안히 안착했는데 말이다.

 

저자는 BTS 자신의 길을 찾을 있는 영혼의 지도를 가져왔다고 적었다. 영혼의 지도는 국내에서도 번역출판된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융의 영혼의 지도> 머리 스타인, 문예출판사, 2015. 또한 BTS 앨범 타이틀이기도 하다. <Map of the soul : Persona>. 저자에게 '영혼의 지도' 깊은 곳에 있는 자신의 원형을 찾아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거듭 '영혼의 지도' 언급된다. (pp63, 73, 78, 89, 154, 155......)

 

책장을 넘기며 읽은 쪽이 점점 두꺼워지는데 어찌나 BTS 예찬을 하는지 슬쩍 심술이 지경이었다. “BTS 좋아하는 사람은 사람으로 치지도 않겠구나."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저자에게, 아미들에게 BTS 종교다.

2020 1월초 런던에서 BTS국제 회의가 있었다. ~~~ 어느 신학대학교 교수의 발제문 제목은 ~"내가 BTS교로 개종한 이유".77

기사를 뒷받침하는 국제뉴스를 살펴본다.

2020 1 4-5, 런던에서 열린  <BTS: A Global Interdisciplinary Conference Project>에서는 BTS 종교적 개념으로 발제한 타이틀이 눈에 띠었다. The Religion of BTS- Rev Rita Powell, Practicing K-pop: A New Religion called BTS and ARMY- Sun Yong Lee.

맞다. BTS 종교다. 새로운 종교다.

세계 수많은 팬들의 간증이 수도 없이 올라와 있다.99.

저자는 '간증'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간증이란 종교적 체험을 고백하는 일이다. BTS팬들이 간증을 것이다. BTS 종교이고 경전임을 거듭 밝히고 있다. (pp.106, 141)

종교적 기쁨은 '신명'으로 나타나고, BTS 신명을 불러일으킨다. 스스로의 어두운 감옥에 갇혀있던 저자는 융을 만나고, BTS 만나 신명을 얻고 우울의 감옥에서 해방이 되었다. 그리고 신바람나게 붓을 휘둘러 신명에 대한 설명을 기록했다.

신명이란 융이 말한 집단 무의식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상태다. ~~ 원형이라 부르는 인류의 오랜 집단 무의식과의 접속을 일컫는다. ~~~ 일곱 소년들의 선한 의지와 신명을 만났기에, 강력한 치유라는 신바람 태풍이 것이다.107, 108

융이 말한 자기실현이란 나를 회복하는 , 신명을 만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114

신명 자체가 공동체의 번영과 구성원 간의 상생을 위한 것이었기에 많은 역사적 아픔에도 우리는 함께 노래했고 춤추며 헤어나올 있지 않았을까, 119-120

 

책의 중반쯤에 이르러 저자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 이야기를 꺼낸다. 코엘료가 BTS 팬임을 그의 트윗을 통해 밝혔었다는 기록도 빠뜨리지 않았다. ‘연금술' BTS, BTS 자체가 바로 연금술사임을 서술한다.

자아의 신화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하나의 진정한 임무지. <연금술사> 주제인 문장은, 융이 말한 개성화 과정과 완벽히 일치한다. BTS 하고 있는 것이다. 131.

몰론 저자는 '자아의 신화' 놓치지 않는다. 이미 마음 속에 존재하고 있는 '현자의 ' 끄집어내어 자유롭게 하고 억눌린 의식을 해방시키는 , 연금술, '개성화 과정에 이르는 작업'으로 작가는 자아의 신화를 이룬다. 연금술사 BTS 통하여 자신도 연금술사가 것이다. 그리고 자아의 신화를 이루지 못한 사람들에게 치유의 손길을 뻗는다.

각자가 '자아의 신화' 살지 못하고 고유성을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142

 

자아를 찾은 작가는 BTS <등골 브레이커> 그늘없이 마냥 즐긴다. 이미 치유되고 빛나는 작가를 만나는 독자로서 감동적인 일이다. 경직되고 긴장되어있던 가슴이 부드럽게 풀리는 느낌이다.

사람들은 안에서 위로를 받고 웃음을 되찾고 때로는 삶의 변용 경험한다. 147

여기에 '변용'이란 말이 나온다. 바뀐다는 뜻의 '변용(變容)'이지만 나에겐 '변용(?踊)’으로 읽힌다. 기뻐서 손뼉치며 덩실덩실 춤을 춘다는 의미로. 어둠에서 해방된 작가, 원형을 찾은 작가가 변용(?踊)하는 모습을 보고있다. 그의 춤사위에 얼쑤! 추임새를 더한다.

뒤에 다시 등장하는 변용은 변용(變容)으로 사용된 글이다.

원형적 존재와의 만남이라는 외부적 사건과 함께, 자기변용이라는 정신적 결과가 집단으로 일어난 현상, 이것이 BTS 현상이고 융이 말한 동시성이다. 179

마음을 다해 외치면, 반드시 다른 별에 닿고, 별을 움직이고, 별을 바꿉니다. 269 여기서 '바꿉니' 변용(變容)  변용(?踊), 가지 의미가 것이다. 바뀌면 기뻐할테니까.

 

고치를 터뜨리고 나온 작가는 자신이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고치'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 등장하는 ''이야기가 연상된다. 유명한 구절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말이 생각남은 단순한 연상작용은 아니다.

헤르만 헤세가 분석심리학에 의해서 가장 먼저 발표한 작품이 바로 <데미안>이다. 개성화 과정에서 필수적인 기본조건은 의식과 무의식의 대극 문제, 개성화, 그림자 작업이다. 헤세는 융의 분석심리학을 완전히 이해했고 그의 작품으로 구현했다.

저자는 자신이 갇혀있던 곳을 '고치' 하였고, BTS <Black Swan> 이야기할 때는 ''이라 했다.

알을 깨고 나올 준비를 하는 백조의 모든 아픔과 슬픔이 담긴 처연함. 166.

 

<BTS오디세이> 쓰윽 훑어볼 있는 간단한 책이 아니다. 저자는 책의 부제처럼 "고통과 치유의 이야기" 집중하며 융의 이론들에 대한 기술을 간략하게 드러내기만 하였다. 깊이있는 이론들의 표면만 맛보는 것이 안타깝다

BTS 마치 비틀즈(B.T.S) 약자처럼 보인다.178

저자는 여기서 융의 '동시성' 이론을 발견한다. BTS B.T.S로부터 출발한 저자의 융에 대한 해박한 지식의 향연이 펼쳐진다. '동시성' '자연의 비인과적 질서' '양자역학' '관찰자 효과'.

융은 무의식의 자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자유는 동시 현상의 비예측성에 나타난다." (the freedom appears in the non-predictability of synchronistic phenomena. Carl Jung, Letters Vol. II, Page 447.)

, 환상, 예감같은 내부적 정신이 현실(외부적) 나타난 그것을 동시현상이라고 한다. 같은 생각이 여러 곳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을 무의식에서의 원형적 과정이라고 한다

아인슈타인의 공동 연구자, '블랙홀'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아치볼드 휠러는 우주가 시작된 이래로 우리는 우주의 진화에 참여하게 된다고 했다. 우리는 "참여 우주"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들을 저자는 전세계에 흩어져 았는 BTS 아미들을 통하여, BTS에게서 치유받은 자들을 통하여 중명하는 같다.

원형적 존재와의 만남이라는 외부적 사건과 함께, 자기 변용이라는 정신적 결과가 집단으로 일어난 현상.이것이 BTS현상이고 융이 말한 동시성이다. BTS현상은 이렇듯 동시성이라는 커다란 원형으로 묶여있다. 179-180. 문장은 이론들의 집약적인 글이다.

 

책을 읽다보면 밑줄을 긋고싶은 문장이 나온다.  <BTS오디세이> 저자는 친절하다. 저자 스스로 밑줄을 그어 독자에게 제공한다. 밑줄이 아닌 BTS 상징색의 굵은 글자체로. 밑줄을 그으려고 보면 모두 굵은 글자로 되어있다. 리뷰를 쓰는 나역시도 책의 인용구들은 짙은 보라색의 굵은 글씨를 사용한다. 이런 것도 BTS팬의 동시성이라 있을가?

 

저자가 돌출시킨 글자들을 따라가보자.

언제나 마음을 움직이는 존재 그대로의 힘이다. 189

저자는 융의 이론들을 꿰뚫고 있다. 겉핥기로 융을 맛본 나로서는 따라가기가 힘들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저자 덕분에 카를구스타프 융에게 걸음 다가서는 계기가 것이다.

융은 말했다. "자연, 정신 그리고 생명은 신성이 펼쳐진 것처럼 나에게 나타난다. ~~~ 나에게 존재의 최고의 의미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로만 구성될 있다.( Nature, the psyche, and life appear to me like divinity unfolded ~~~ To me the supreme meaning of Being can consist only in the fact that it is, not that it is not or is no longer. Carl Jung <Memories Dreams and Reflections> page 276.)

 

계속 저자가 강조한 문장들을 따라간다.

어떠한 외부의 것도 나를 본질적으로 자유롭게 해줄 없었다. 242.

내가 찾은 답은 어디 다른 곳이 아닌 안에 있었다는 , 그것 하나를 알기 위해. 244.

고통의 씨앗, 그것은 다른 어떤 곳이 아닌 바로 마음 안에 있었다. 나만이 찾을 있는 곳에. 251.

책의 후반부엔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한 저자의 지혜와, 이미 상처가 치유된 저자의 파리 일상 이야기들이 편안하게 펼쳐진다. 책을 통해 쏟아낸 자전적 고백이 더이상 아프지 않다. 제자리를 찾아 앉은 편안함을 안겨준다.  

은하수가 흐르는 밤에 태어난 저자는 별이 되고싶어했고, 별이 되었고, 가슴에 별을 품었고, 2021 봄에 자기를 닮은 <BTS오디세이> 세상에 내놓았다. 여정이었다. 험로였다. 그러나 결론이 이미 나있는 일이었다. 그림자를 쫓아내고 가면을 벗겨줄 융을 친구삼아, 묻어두었던 현자의 돌을 찾아줄 코엘료와 손을 잡고, BTS 선물해준 영혼의 지도를 따라 걸었으니 이미 정해진 결론 아니었는가!

하나의 별자리로 완성된 일곱개의 , 하늘에 빛으로 배열된 별들을 바라보며 딸과 함께 신명나는 춤을 추는 저자를 그려본다. 이제 BTS 없어도 숨쉴 있고, 새로운 무언가에 퍼부을 있는 에너지가 솟구치는 저자의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보기만해도 사랑 사랑 사랑이 넘쳐흐를 같은 핑크빛 커버, 저자의 핑크 피리어드(Pink Period) 보고서를 기대한다

 

끝까지 마음에 남아있는 .

모든 것이 가리키는 것은 하나였다. 나만의 우주를 발견하는 . 나만의 신화를 찾아가는 . 254.

나를 비롯한 책의 모든 독자들이 자신의 우주, 자신의 신화를 찾기를 바란다

 

덧붙이고 싶은 .

저자는 방송인 Drew Garabo 말을 통해 BTS현상을 이해했다고 썼다. 메시지, 가사의 힘에 대한 이야기이다

BTS 노래들에 담긴 엄청난 메시지의 힘이었다. 노래 가사를 알지 못한 채로 들을 때는 닿지 않았던 감동이 그를 흔든 것이었다. 87.

왜냐하면 그들은 메시지를 가지고 있어요. 90

메시지와 노랫말에 감동했고 거기서 힘을 얻었다고. 역시 그랬다. 91

BTS 랩에는 분노와 증로, 조롱이 아닌 성찰과 반성, 사유와 사랑이 담겨 있다. 자신과 삶과 세상을 사유하는 자의 . BTS 깊고 아름다운 메시지의 힘은 거기서 나온다. 92

어느 노래든지 가사의 힘은 크다. BTS 노래의 가사들도 우리에게 전달되는 메시지의 힘이 대단하다. 그러나 BTS 세계적 공용어가 아닌 한국어 가사로도 노래를 불렀고 노래가 외면받지 않았다. 전세계 모든 언어권의 사람들이 한국어 노래를 부르는 BTS에게 열광했다. 마음, 같은 모습으로 열광한다. 이건 어떤 해석이 필요할까?

BTS, 존재 자체에 열광하는 것이다. 해석과 이해보다 앞서는 몸의 느낌, 이것이 BTS현상이다. 메를로 퐁티가 말했던가. 몸의 현상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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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예수 4 닫힌 문 | 기본 카테고리 2021-01-29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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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설 예수 4

윤석철 저
나남 | 2020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기독교가 얼마나 예수의 가르침으로부터 멀어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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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스님이 땡중 소리를 듣는 것은 부처님의 잘못이 아니다.

어린 양들의 목자인 목사님이 먹사 소리를 듣는 것은 예수님의 잘못이 아니다.

사랑의 기독교가 개독교로 불리우는 것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다.

 

종교집단은 어쩌다 코로나의 온상이 되었을까? 지금 교회는 왜 증오의 대상으로 꼽힐까? 크리스쳔들은 어쩌다가 예수쟁이로 불리우게 되었을까?

코비드19 펜데믹 시대를 살고있는 지금, 사람들은 “교회”라는 말만 들어도 진저리를 친다. 덩달아 “예수”까지도 외면당한다. 이 상황이 “예수”의 책임은 분명히 아니다. 예수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교회, 하늘의 뜻과는 다른 길로 인도하는 목자들, 예수를 잘 알지 못하는 왜곡된 신앙에 매몰된 교인들의 책임이지 예수의 책임은 아니다.

 

<소설 예수>를 통하여 도대체 예수는 어떤 존재였나를 살펴본다. 경전이 두레박없는 깊은 우물이라 목을 축일 수 없었다면, <소설 예수>는 두 손을 모아 떠 마실수 있는 옹달샘처럼 친절하다. 물맛도 달다. 갈증을 달래준다.

 

니산월11일이 시작된 밤, 베다니 마르다네 여인숙에서 제자들이 강력하게 불만을 터뜨린다. 예수를 따라야 한다는 사람과 빵을 못받을까봐 걱정하는 사람의 갈등이 드러난다.

 “이번 유월절과 무교절 명절 기간 내내, 성전에서 특별히 우리를 불러 일을 시킬 때까지는 누구도 성안으로 들어오지 말고 여기 산자락에 그냥 머물러 있으라고 했지.” ~~~

“~ 예수 그 사람 따라 우르르 들어간 사람들 때문에 우리 모두 빵을 못 받게 생겼다고!” 17쪽

“말만 앞세우는 선생을 따를 겁니까? 그냥 엎드려 있으면서 성전에서 내려주는 빵을 며칠이나마 받아먹으며 지내겠습니까?” 19쪽

제자란 누구입니까? 말씀을 듣고 깨닫고 그 일을 따르는 사람이 제자 아니겠습니까?” 25쪽

사람들은 예수가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내 쫓은 것은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경건한 모든 유대인을 적으로 돌려 놓고 이룰 수 있는 하느님 나라는 환상이라고 말한다. 사전에 상의하지 않고 선생이 모든 제자들을 위험에 빠뜨렸다고 따진다.

 

 예수는 왜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내쫓았을까? 레위는 예수를 이렇게 이해했다.

“~ 성전이 자기들 본본이라고 붙잡고 있는 성전 제사와 성전을 운영하기 위해 걷는 성전세를 거부한다는 표시, 바로 성전이라는 체제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신 것으로 저는 생각했습니다.” 24쪽

 

 예수는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이해하고 걱정했다. 그러나 억압으로부터 해방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해방은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다. 해방은 로마의 압제로부터 벗어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 “달 아래, 해 아래 있는 모든 사람! ~ 모든 생명이 겪는 억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제 몫대로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살아가는 것!”29쪽

이 대목에서 독자들은 <소설 예수> 저자가 강조하는 큰 줄거리를 뚜렷이 볼 수 있다. 예수는 모든 생명의 해방을 생각한다. ‘모든 생명’의 일은 메시아 한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한 순간에 마법처럼 해결되지 않는다. ‘모든 생명들’이 함께 하느님 나라를 이루어나간다는 의미이다.

 

<소설 예수>4권 닫힌 문 전체 줄거리

히스기야는성전 지하감옥에서 위수대 감옥으로 옮겨진다.

유다는 히스기야를 구출하는 일보다 계획된 거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라바에 반발하여 혼자라도 히스기야 구출에 나서겠다고 마음을 굳힌다.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 다시 모여든 성전 지도자들은 유월절 준비하는 날(니산월 14일)까지 예수를 처형하기로 계획을 세운다. 니고데모는 예수가 정당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동지를 모으기 시작한다.

 

성전에서 예수는 훗날 <랍비 유대교>를 시작한 <자카이의 아들 요하난>을 만난다. 성전 솔로몬의 주랑건물 안에서 두 사람은 토라를 포함한 모든 압제에서 해방하고 하느님 나라를 이루는 일에 대하여 토의한다.

 

베다니 마르다네 여인숙에서 그날 밤 막달라 마리아가 향유병을 열어 예수 머리에 기름을 붓는다. 그건 메시아를 세우는 의식이다.

 

대제사장 가야바(안나스 가문), 다음 대제사장 자리를 노리는 시몬 칸데라스(바이투스 가문), 자리를 유지하려면 이번 유월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는 빌라도 총독, 이들 틈에서 제사장 야손은 자신의 득실을 저울질한다. 소설 초반부에 묘사한 이들의 권력을 위한 암투는 예수당시의 ㅑㅅ이야기가 아니라 현상황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지금과 일치한다.

 

야손은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손에 쥐고 있다.

“어떤 사람은 너무 재물을 밝히고, 어떤 사람은평판과 달리 여자를 너무 탐하고, 어떤 사람은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답게 경건하게 살았다.” 32쪽.

정보를 손에 쥔 자는 그 정보를 노출시키지 않는다. 필요할때마다 이번엔 어느것을 꺼내면 좋을까를 궁리하고 결정되면 슬쩍 꺼낸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그렇치 않은가.

 

예수는 성전뜰에서 모여든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가르치며 자신의 길을 지키고, 히스기야가 붙잡혀있는 상황에서 바라바는 거사의 중요성을 장황하게 하얀리본 동지들에게 설명한다.

다윗왕이 나라를 세울 때까지 어려움을 겪으며 도망도 나녔듯 우리도 어려움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다윗의 칼에 피가 묻었듯 우리도 손에 피를 묻히는 일에 주저하지 말고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 거사만 생각합시다! 73쪽

거사보다는 구금되어있는 히스기야를 구출해야한다는 동지들의 의견도 거세다. 히스기야, 그가 누구인지를 상기시킨다.

"~~~히스기야 동지의 아버지는 약탈당하던 농민들의 한을 풀기 위해 일어섰던 갈릴리 세포리스의 유다 농민군이었습니다. 로마에 의해 십자가 처형을 받고 시체도 들짐승 날짐승에 다 뜯겨 사라진 사람, 그의 아들이 바로 히스기야 동지입니다." 75쪽 "~~~우리는 한 목숨으로 연결돼 있어서 그렇습니다. 히스기야 동지만 죽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모두 죽는 겁니다." 76쪽

 

작가는 예수를 혁명가로 묘사하고 "하느님 나라의 실현"이라는 묵직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소설의 문장들이 무겁고 굳어있지만은 않다. 굶주림에서 벗어날 길 없는 사람들과, 부모자식 형제자매의 관계를 묘사하는 부분을 읽으면 마치 한국전쟁 전후의 우리나라 정서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착각이 일어날 정도로 촉촉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예수가 거닐었던 마을들을 그림처럼 펼쳐보여주므로 독자들은 그 시대 그 장소로 끌려들어가 예수와 함께 나란히 길을 가게 된다. 그리고 예수의 생각이 곧 독자의 생각이 된다.

사람들은 세상의 배꼽(2권의 제목으로 쓰였슴)이라는 예루살렘을 가기 위해 그 험하고 가파른 길을 걸어오른다. 그러나 하느님은 배꼽 따로, 머리 따로, 발 따로 세상을 나누지 않았음을 예수는 믿는다. 하느님은 예루살렘이라는 배꼽에서만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고 그는 믿었다. 87쪽

 

예수는 빵 한 덩어리 때문에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 사람들의 눈물에 가슴이 아팠다. 예수가 생각하는 하느님 나라는 추상적인 나라가 아니다. 예수가 꿈꾸는 하느님 나라는 이렇다.

그 고픈 배를 먼저 채워주지 않고 하느님 나라를 말로 가르치는 일은 그들에게 가해지는 가장 잔인한 고문이다. ~~~ 하늘에서 만나가 떨어지고 메추라기가 천막으로 날아 들어와 먹이가 되는 그런 놀라운 세상 말고, 자기 먹을 것 자기 손으로 만들고, 힘들어 못 만드는 사람이 있으면 옆에 있는 사람이 도와 함께 빵을 나눠먹는 세상! 93쪽

하느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 이루는 나라입니다.  ~~~ 이루며 살아가는 나라입니다. ~~~이루어지리라고 믿고 기다리고, 하느님이 보내주신 메시아가 번뜩 나타나 이 땅위에 세우리라고 생각했던 그런 하느님 나라 아닙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세상입니다. 여러분이 사는 세상입니다. 112-115쪽

하느님 나라는 제국이 아닙니다. 특별히 사랑해서 어떤 나무를 크고 강하게 우뚝 세우는 나라가 아니고, 겨자풀도 살아가는 세상을 말하는 겁니다. 119쪽

예수의 관점은 늘 억압하는 지배자 세력과 억압당하는 사람에 있었다. 이방제국과 이스라엘에 머무르지 않았다. 하느님은 세상을 심판하여 파멸시키시는 분이 아니라고 믿었다. 억압받는 자들을 해방시키시는 하느님이라고 믿었다. 그 일에는 때가 있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가장 큰 줄기가 시간이었다. 시간이라는 줄 위에 세상을 걸어 놓으셨다. 182쪽

 

사람들은 예언자들이 말한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잘못으로 인해 하느님이 로마를 통하여 이스라엘에 벌을 내리시는 거라고 생각했다. 예수는 하느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라고 강조한다.

하느님은 여러분이 고통받는 것을 두고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언약을 맺은 그날부터 하느님은 고통에서, 억압에서, 세상 끝날을 맞은 것처럼 캄캄한 절망에서 여러분을 끌어올리고 일으켜 세우는 분입니다. 221쪽

하느님은 떠난 자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분이지, 끝까지 쫓아가 벌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 하느님을 무서운 분처럼, 분노하는 분처럼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건 지배자들이 파놓은 함정입니다. 225쪽

하느님은 어디 높은 곳에 앉아서 사람들이 잘하는지 못하는지 그 옆에 분노의 불화로를 끼고 내려다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 눈을 뜨면 내 옆사람도, 내가 이를 갈며 미워하던 사람도 나와 똑같이 하느님께서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230-231쪽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불리는 바리새파 학자 요하난 벤 자카이와 예수는 제국, 성전, 예언, 하느님 나라, 예수 이후의 미래에 대한 여러 주제들을 문답으로 이어간다. 요하난은 예수가 성전에서는 하느님 모독으로, 로마총독은 로마에 대한 반란 선동과 포고령 위반으로 십자가 처형을 받게 되리라고 예상한다.

요하난은 예수가 처형되고 나면 사회변혁과 해방을 이룰 수 있는 수단을 갖지 못했고, 그 방법을 알지 못하는 제자들이 예수가 추구했던 외부지향(outward)의 사회변혁 운동을 포기한다고 보았다. 하느님 나라를 이룬다는 명분으로 내부운동(inward)으로 전환하고,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대신 예수에 대한 가르침으로 변질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예수운동은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메시아 운동으로, 그리고 하느님의 개입에 의한 세상의 종말과 우주적 구원(Cosmic salvation)으로 성격이 바뀔 것이 분명하다면서 지금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 대신 논리를 갖춘 유대인 학자가 제자들을 이끌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조직의 변화 과정을 들어 설명하면서 예수에게 갈릴리로 물러나 다시 준비하라고 권한다.(234 - 296쪽 요약)

 

성전 경비대는 예수를 잡아들이기로 하였으나 뜻밖에 요하난이 나타나 원할히 처리되지 못했다.

성전 경비대를 투입하려던 순간에 뜻밖에 요하난 선생님이 성전에 올라와 예수 그자를 찾았습니다. ~~ 그랬다. 요하난이 예수를 만난 그 무렵 성전 경비대에서는 예수의 제자들을 덮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382쪽

바이투스 가문의 수장 칸데라스, 안나스 가문의 대제사장 가야바, 총독 빌라도, 이들은 각자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예수를 어떻게 처리할 지 갖은 꾀를 다 내고 있었다.

예수가 일으킬 소란을 통하여 권력을 강화하려는 사람, 권력의 둑에 어떻게 하든 구멍을 내보려는 사람, 유대에서 가장 강력한 두 정치권력이 가야바의 집 접견실에서 불꽃도 연기도 없이 은근히 불붙고 있었다. 387쪽

 

책의 후반부에서 작가는 헤롯에 대해 서술한다. 예루살렘의 건축은 유대 고유의 양식이 아닌 로마식 건축이었고, 성전 정문에는 황금독수리를 세웠다.

헤롯왕은 야훼 하느님의 백성을 헤롯왕의 백성으로, 이스라엘을 헤롯의 나라로 바꾼 사람이다. ~~~ 로마라는 신전과 황제라는 새로운 신을 이스라엘에 모셔온 사람이 헤롯이다. 407쪽

정식으로 왕위에 올라 통치한 33년의 재위기간 동안 그가 이룩한 일들은 지난 1천년 동안 이스라엘 남북왕조와 제국들이 남긴 상처를 씻어내고도 남는다고,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송했다. 유대의 왕으로 헤롯이 이룬 공로는 그가 저질렀던 숱한 잔혹행위와 폭정을 덮고도 남는다고 사람들은 믿었다. 409쪽.

이런 문장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헤롯왕 시대의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의 어리석은 우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로부터 2천년이 지난 지금은 무엇이 달라진 게 있단 말인가.  

헤롯은 성전을 약탈하려는 로마군을 가로막고 나서는 담대한 왕이었다. 이스라엘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는 이집트에서 쌀을 들여오는데 왕의 군대가 호위하도록 했고, 예루살렘 형제들에게 그 쌀을 나눠주어 헤롯을 칭송하는 함성이 기드론 골짜기를 쩌렁쩌렁 울렸다. 이렇게 위기 대처 능력이 뛰어난 헤롯이기에 그의 잔인함은 슬그머니 가려지고 파묻혔다. 헤롯은 로마 황제에게 충성하면서 이스라엘을 안전하게 보호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이스라엘의 해방을 꿈꿨다.

 

<소설예수> 4권의 마지막은 예수에게 기름붓는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로 맺는다. 작가는 기름의 향기는 섬세하게 묘사한다.

향기는 부드러우면서도 깊었다. 박하 냄새도 나고, 아주 잘 익은 올리브에서 조심스럽게 짠 품질 좋은 기름 냄새도 나고, 아라비아 사람들이 세상 끝 산속에서 캐낸 엷은 분홍색의 값비싼 향료석을 태울 때 나는 냄새도 섞여있다. 444쪽

마리아는 하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예수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다고 말했다. ~~~ 본 사람, 듣는 사람마다 각자 그들 마음 속에 어떻게 받아들였든 그건 니산월 12일이 시작된 밤, 베다니 여인숙에서 일어난 일이다. 446쪽.

예수를 일컫는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예수를 하느님으로 여기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스도를 한자로 음역하여 '기독'이라고 한 것이다. 그리스도교, 예수교, 기독교, 다 같은 뜻이다.

기름부음은 또 다른 의미가 있는데 바로 장레의 절차를 뜻하기도 한다.

사람이 죽으면 사흘 후에 몸에 향유를 바르고 장사를 치른다. 469쪽 마지막 쪽

 

마리아가 예수의 머리에 기름을 부은 것은 몸에 향유룰 바른 의식이기도 하니 다음 5권에서 예수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사뭇 궁금하다. 책은 7권까지 나오기로 예고되어있으니 다음 권에서 예수를 장사지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들려줄 작가의 이야기는 무엇일지...

신약성경은 예수가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예수를 만났던 사람들을 통하여 예수의 행적을 알린다. 그러나 이 책 <소설예수>는 예수가 직접 등장한다. 이미 팩트가 된 역사 속으로 들어가 그 시대에 예수가 걷던 길을 되짚어보는 이야기이다. 예수가 생각하는 하느님 나라, 예수가 무리들에게 가르치는 하느님 나라는 지금 기독교 교회에서 선포되는 하느님 나라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그 다름을 모른 채, 지금 이 시대에 행하여지는 기독교의 잘못된 행태가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사는 것 같다.

이 책은 예수의 행적을 역사적 고증과 함께 소설의 형태로 그려낸다. 이 책에서 예수를 만나게 된다면 적어도 현실에서 벌어지는 기독교의 잘못들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기독교, 하느님 나라의 핵심은 사랑이다. 코비드 19 펜데믹 시대에 감염의 온상이 된 교회들을 향하여 사람들은 외친다. 당신들 행동은 사랑이 아니라고. 우리는 예수를 믿지도 않고 예수를 알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예수라면 지금 당신들처럼 이렇게 처신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대중들은 교회를 향하여 외쳐댄다.

안타깝다. 사람들이 성경이 아니더라도 <소설 예수>에서라도 예수를 바로 알게되면 좋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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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예수 3 새로운 약속 | 기본 카테고리 2020-12-15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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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설 예수 3

윤석철 저
나남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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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가르침을 새롭게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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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예수 3 새로운 약속

윤석철 지음, 나남출판사, 2020, 12, 05.  446쪽


올해 4월 1,2 권 출간에 이어 이번에 3,4 권이 나왔다. 작가는 이 책이 생애 첫 소설이다. 무명작가가 일년에 4권의 소설책을 썼다는 것이 놀랍다. 글 저장고에 가득 채워 두었던 글들이 창고 문을 열자마자 쏟아져나온 모양이다.


리뷰는 문자 그대로 "리뷰", 책 내용을 전체적으로 훑어보려고 한다. 옮기고싶은 구절들이 많음이다.  따라서 책의 문장 인용이 많아지고, 일종의 <리더스 다이제스트 Reader's digest> 형식이 될 것이다.



책 내용에는 카인과 아벨, 성전 정화, 희년, 요셉, 주인에게 달란트를 위임받은 종들, 광야 이야기가 들어있다.


니산월 10일 아침 예수와 무리를 이룬 사람들이 성전 뜰에 모였다. 예수를 성전과 로마군의 압제에서 구해줄 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움막마을 사람들과 예루살렘 아랫구역 사람들이다.

하얀리본 결사대는 성전을 더럽힌 대제사장과 지도부를 처단하려고 거사 계획을 세우고, 예수는 제지들에게조차 계획을 말하지 않고 성전에 들어선다.


도성 예루살렘 이곳저곳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세상을 뒤엎겠다는 사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사람, 현재 누리고 사는 것을 지키겠다는 사람, 자기가 가진 것을 몇 배로 키우겠다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하면, 다음 아침 끼니거리 때문에 어린 자식의 머리통을 끌어안고 누워 한숨쉬는 사람도 있다. 60쪽


무리들과 길을 가던 예수는 무화과 나무를 들여다본다. 그리곤 무화과 나무가 성전과 같다고 말한다.

“열매도 그렇고 나무도 그렇고.... 배고픈 사람은 한시도 더 기다릴 수 없는데...” 87쪽

성전이야말로 배고픈 사람 사정 모르고 덜 익은 채 매달린 무화과 열매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135쪽


하느님에 대한 예수의 설명은 항상 지금 여기 우리들 안에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과 하느님 말씀은 따로따로 떨어진 일이 아닙니다. ~ 하느님은 따로 어디 멀리 높은 곳에 계신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여러분 속에 계십니다. 92쪽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동안 우리가 생각하던 하느님은 어떤 분이셨나? 소설은 예수의 입을 통해 하느님은 이런 분이라고 차근차근 설명한다.

"~~사람 사는 일이란 한가운데에 커다란 선을 하나 죽 그어놓고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쫙 갈라 나눌 수는 없습니다. ~~~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그 기준에 따라야 한다고 강제하면 그건 하느님의 이름을 빌려 행하는 억압이라는 말입니다. ~~~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골고루 빛을 비춰주시는 하늘 아버지, " 139쪽

하느님이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모두 햇빛도 비도 똑같이 내려준다면,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하느님이 내린 벌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은 깨달았다. 140쪽

"무서운 심판자, 벌을 주고 호령하고 꾸짖는 아버지가 아닙니다. ~~ 여러분이 집 앞에 이르기도 전에 내다보고 또 내다보다가 맨발로 쫓아 나오시는 분입니다." 150쪽

"서로 사랑하고 한 가족이 되면, 그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이고, 여러분이 즐기며 누리고 살아야 할 세상이 이뤄진다는 말입니다." 151쪽.

"하느님의 형상은 생김새가 아니고 하느님의 본성, 사랑입니다. ~~ 하느님의 본성을 따라 지음받았으니 여러분이나 나나 바로 우리 안에 하느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153쪽


한 사건에 대하여 여럿이 듣고 보고 겪은 사람이 있는 내용은 쉽게 파악할 수 있으나, 왜 그랬는지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예수는 "왜 그랬냐" 이유를 묻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왜 그런가를 묻는 것은 근원을 묻는 일이기 때문이다. 왜 그러는지 궁금하면 성전에도 묻고, 제사장에게도 묻고, 로마군에게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왜 그런지 질문하는 것을 가로막는 일이 억압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깨닫게 될 것입니다. 묻지도 말고, 의심도 하지 말고 오직 정해진 대로 따르라고 가르치는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 억압자입니다." 158쪽


사람들은 예수를 메시아라고 믿었다. 자신들을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줄 메시아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마침내 그 메시아로 예수가 온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가 누구든지 우리 고통받으며 살아가는 삶을 좀 어루만져주고 위로해 주었으면 좋겠어.” “그래! 맨날 우리더러 뭐 잘못했다, 뭐 고쳐라, 무슨 죄를 지었으니 회개하라,,,, 그런 말은 좀 그만 하고, 좋은 세상 온다고 희망을 주었으면...” 269쪽

시대를 보면 예언으로 전해져 내려온 종말의 날에 가깝고, 예수는 예언을 실현하는 사람 바로 메시아로 보인다. 아무리 여러번 메시아가 아니라고 예수 스스로 거듭거듭 부인했지만 제자들은 그에게서 예언된 메시아의 징표만 보았다. ~~ 메시아를 요구하는 시대에 예수가 서있기 때문이다. 353쪽


나는 여러분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아닙니다. 들으십시오! 하느님은 메시아 한 사람을 내세워 세상을 바꾸시는 분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모두 함께 손잡고 아뤄야하는 나라가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160쪽


유월절 명절에 성전에서는 빵을 나눠주면서 아랫구역 사람들은 성전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예수를 따라 성전에 따라 들어갔고, 빵을 주는 성전과 말씀을 주는 예수 사이에서 그들은 갈등한다.

예수가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끌어안으려던 사람들, 움막마을 사람들이 제일 먼저 등을 돌렸다. 새 세상이 오기를 가장 절실하게 기다리는 사람들이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당장 먹어야 하고, 마셔야 하고, 졸리면 드러누워 눈 붙이고 잠을 자야 한다. 207쪽


유대인들은 목숨을 걸고 지키려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한 분 야훼 하느님을 섬긴다. 둘째, 그 하느님이 내려준 토라를 지킨다. 셋째, 하느님을 섬기되 오로지 예루살렘 성전에 나와서 제사드리며 섬긴다.~~

 ~~ 그런데 사실상 황제 폐하를 섬기고, 로마의 법을 따르고... 225쪽

성전은 그냥 제사만 드리는 신전이 아니고 로마가 유대를 통치하는 공식 기구이기 때문이다. 정치와 종교가 하나로 통합된 기구였다. 241쪽


백성을 따라 이동하던 장막의 하느님이 땅 위에 고정 거처를 정한 곳이다. 사람들은 유대 땅 예루살렘 성전산 위에 세워진 성전은 움직일 수 없는 성소로 섬겼다. 무너지고 불타고 다시 세우기는 했지만 이스라엘의 심장이 됐다. 하느님과 세상이 연결된 배꼽으로 믿었다. 249쪽


<희년>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가 선포하는 하느님 나라의 가장 큰 부분이다.

하늘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이방인 뜰의 하늘과 이스라엘 뜰의 하늘을 나누는 구획도 없고, 높은 곳 낮은 곳도 없고, 누구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290쪽


"희년은 사람이 넘어졌을 때 손 내밀어 일으켜 세워주는 일입니다. 희년은 굴러 떨어진 바위에 깔려 숨이 넘어가게 생겼을 때 바위를 밀어 치워주는 일입니다. 희년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밧줄을 던져주는 일입니다. 그것이 희년을 시행하는 일입니다. 밧줄을 든 사람이 그걸 던지지 않으니 '내가 던지마!' 하느님이 나서신 겁니다. 바위에 깔린 사람에게 '언제부터 깔렸냐, 무슨 짓 하다가 깔렸나, 바위를 치워줄테니 앞으로 어찌어찌 살아라' 묻고 다짐받는 것보다, 우선 바위 아래 깔린 사람을 구해내는 일입니다. 결국, 세상에 세워진 어떤 가치나 제도보다 생명이 우선이라는 선언입니다." 293쪽


예수의 가르침 중에 거듭거듭 강조하는 부분은 하느님은 모두의 하느님이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 예지몽을 꾼 요셉의 예를 들면서 모두의 하느님임을 이야기한다.

~~ 하느님은 모든 생명의 하느님이다. 모든 존재의 근원이다. 이스라엘 민족 안에 가둘 수 없는 하느님이다. ~~ 하느님을 내 하느님, 우리 하느님, 이스라엘의 하느님이라고 편협하게 섬기는 사람들을 일깨워야 한다. 316-317쪽


왕이 꾼 꿈을 해석하여 하느님이 계시한 풍년과 흉년을 미리 알게된 요셉이 결국 이집트 백성을 모두 왕의 노예로 삼아서 왕은 아주 부유해졌고, 왕의 사랑을 받아 요셉은 높은 자리에 올랐습니다. ~~ 흉년에 백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그 기회를 틈타 백성을 모두 왕의 노예로 삼았습니다.

~~ 하느님은, 이스라엘이 섬긴 하느님은, 히브리만의 하느님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경전을 떠나, 토라를 떠나, 성전을 떠나 이제부터 그는 오로지 하느님을 향해 걸어간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 어떤 생명이든 생명을 위협하는 일은 하느님께 대적하는 일입니다. ~~ 하느님이 허락한 지혜를 이용해서 백성을 노예 삼는다면 그건 하느님의 뜻을 이용한 사람입니다. 사람을 종으로 삼는 일에 하느님은 언제나 반대하십니다. 321-325쪽


포도원 주인이 종에게 돈을 맡기고 멀리 출타하였다가 돌아와서 그 돈을 어떻게 운용했는지 묻고 돈을 불리지 못한 종을 게으른 종이라고 꾸짖으며 내쫓는 이야기가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예수는 이 이야기를 예로들어 하느님의 뜻을 설파한다.

첫번째 종은 추수 때 그 돈으로 밀을 사두었다가 식량이 떨어질 때쯤 곱절의 값으로 팔아서 원금이 2배가 되었다. 두번째 종은 빚놀이로 역시 원금의 2배를 만들었다. 그러나 세번째 종은 돈을 땅에 파묻었다가 그대로 주인에게 가져왔다.

"저는 그 돈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마땅한 일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걸 해보려면 저게 걸리고, 저걸 해보려면 차마 못하겠고... "

~~만약 자기가 그런 경우라면 어찌할 것인가? 첫번째, 두번째 종처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착같이 돈을 늘려 주인에게 칭찬받을 것인가? ~~ 세번째 종처럼 가난한 사람을 울리지 못해서, 배고픈 사람 차마 등쳐 먹지 못해서 받은 돈 그대로 돌려주고 쫒겨날 것인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세 번째 종이 되는 겁니다. 세 번째 종의 마음으로 새 세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부유한 사람을 변화시켜 가난한 사람에게 채워 주는 세상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것이 하늘 아버지의 뜻입니다. 332 - 336쪽


우월절 명절에 성전으로 몰려드는 인파, 그들은 왜 성전에 나왔나?

그들이 믿고 섬기는 하느님은 축복도 내리지만 저주도 내리고 벌도 내리는 하느님이기 때문이었다. 하느님의 축복을 받으면 농사도 잘되고, 양도 건강하게 새끼를 잘 낳아서 금방 숫자가 불어나고, ~~

이번 유월절에 성전에 올라 제사드리지 않으면 당장 닥칠 저주의 벌이 무서워 나왔고,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생활형편이 나아지기를 기원하기 위해 나왔다. 341 - 342쪽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어떻게 섬겨야 하나?

"하느님을 섬긴다는 말은 나 한 사람, 개인이 하느님과 맺는 관계가 아닙니다. 나와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겁니다. 하느님을 섬긴다는 일은 세상 모두에게, 모든 생명에게 좋은 일이어야 합니다. 나 혼자 생명을 누리는 것이 아니고, 세상 모든 생명이 각 생명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누리고 살아가는 일입니다. 375쪽


예수는 성전의 무너짐을 예언한다.

"내가 얘기합니다. 여러분이 감탄하는 저 성전,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모두 무너지는 날이 올 것입니다." 383쪽

"~~성문은 구분과 차별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고 동시에 끝나는 지점이 됩니다."

"그런데요, 선생님! 어제까지는 성전이 경비대가 그 성문을 지켰는데, 오늘 아침에 보니 로마군으로 바뀌었습니다."

"맞아요! 사람들 살아가는 일을 통제하는 권력이 성문을 지킵니다. 거룩과 권력이 한 몸이 된 셈입니다. 386쪽


광야는 어디인가? 광야란 무엇인가?

작가는 예수의 광야 시험에 대하여 '수련'과 '수행'을 구분한다. 시험자들은 수련이라 말하고 예수는 수행이라 말한다. 수련은 한시적으로 단련하는 것이고, 수행은 일생을 통하여 삶으로 행하는 것을 뜻한다.

광야는 스스로 찾아 들어가야 할 장소다. 광야는 눈을 뜨는 자리다. 자기를 보는 자리다. ~~

"사람이 어찌 한 번 고통을 겪었다고 세상 모든 고통을 다 겪었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광야는 매일 들어가고 매일 머물고 매일 다시 걸어 나오는 곳입니다." 410쪽

광야는 오로지 혼자서 하늘과 땅과 바람 속에서,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 아래에서 자기를 찾는 곳이요. ~~

시험이 있고, 시험자가 있고, 겪어야 할 당혹이 있고, 하늘로 불어 올라가는 바람이 있고, 결국 지나야 할 '때'가 있는 광야,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 되지요. 445쪽


예수는 시험을 다 이겼다. 시험을 이기고 통과했다기 보다는 스스로 시험에 대하여 깨달았다. 하느님의 참뜻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으로 광야에서 사람들 속으로 걸어들어왔다.

태초부터 있었던 하느님을 광야에서 만나려고 굶주리며 찾았다. 예수가 태어날 때부터 말 걸고 지켜보던 그 분, 새삼 그 말씀을 듣겠다고 쉰 날이 넘고 예순 날이 넘도록 광야에서 기다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하느님은 사람이 먹어야 살 수 있도록 만드셨다. 하느님을 섬기고 따른다고 먹지 않고도 배부르지는 않다. 그런데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지 않는가? 말씀으로 먹여주신다는 얘기지.

무언가 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에게 빵 대신 말씀만 내세워 어디로 끌고 가시는 하느님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땅은 기적 대신 땅으로 먹을 것을 내는 품이었다.

~~씨앗과 사람의 땀, 땅과 물과 햇빛, 슬쩍 흔들고 지나가는 살랑 바람과, 기다리는 시간과, 싹트고 자라는 신비, 바로 하느님이 개입해야 농사를 지을 수 있다.

~~한 사람이 모두 먹어치우면 하느님도 배고프시다.

~~하느님은 세상을 이리 뒤집고 저리 뒤엎을 만한 큰 일에만 관계하시는 분이 아니라, 사람 살아가는 매일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분이었다. ~~사람들과 함께, 처음부터 함께 계셨던 분이었다. 432 - 437쪽


메시아든 왕이든 그건 하느님이 역사하시는 방법이 아니다. 하느님은 제일 힘센 사람을 뽑아 씨름판에 내세우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혼자 나서서 세상을 구하고, 혼자 나서서 이스라엘을 압제에서 해방하고, 혼자 나서서 세상을 바꾸는 일은 하느님의 방식이 아니다. 439쪽


책의 내용중에 발췌해서 알려주고 싶은 구절이 아주 많다. 그 욕심대로 리뷰를 쓰자면 책을 거의 반쯤은 옮길 지경이다. 주마간산격으로 인용문을 나열했다. 앞으로 예수는 어떤 길로 발걸음을 내디딜까? 작가는 예수의 입을 통하여 무슨 이야기를 이어갈 것인가? 자못 다음 호가 기다려진다. 다행히 다음호 4권도 동시 출간되었으니 나의 다음 북리뷰는 <소설 예수> 4권이 될 것이다.



읽다가 멈춰서 긴 시간동안 나 자신을 성찰한 부분이 있다. 내 삶 속에 기둥으로 삼아도 좋을만한 구절이다. 이투레아 산 속에서 히스기야에게 준 현인의 가르침이다.

"창끝에 저항하면 그곳에 단단함이 생기고, 결국 상처를 입게 된다. 그러나, 한없는 부드러움이라면, 마치 창끝으로 물을 찌르듯 허공을 찌르듯, 작은 자국 하나도 생기지 않는다." 162쪽.

내 가슴엔 얼마나 굳은 살이 많이 박혀있는가, 수 십년 전에 찔린 굳은 살이 아직도 무르지 않고 단단히 박혀있다. 이제 그 굳은 살을 녹여햐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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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부드러운, 흔들림없이 강한 예수 | 기본 카테고리 2020-05-20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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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설 예수 2

윤석철 저
나남 | 202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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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도 공감가는 이야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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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배꼽이라고 부르는 예루살렘이 변하면 세상이 변할 수 있다.”(122)

지리적으로 중국 러시아 일본 사이에, 지정학적으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패권 다툼의 한 가운데 있는 우리의 현실이 슬쩍 비쳐진다.

로마제국의 폭력적인 억압과 수탈, 그에 앞장선 간악한 군림자 예루살렘 성전의 행태를 읽으며 식민지시대를 겪은 우리들의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그 뿐인가, 예수 시대로부터 2천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우리에겐 2천년 전의 로마제국과 같은 제국의 힘이 우리를 억누르고 있지 않은가. 그 때의 예루살렘 성전은 2020년에도 우리 곁에 모습을 바꾸어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시리즈로 나오기 때문에 1권에서 던져졌던 이야기뭉치를 조금씩 풀어내고 있다.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가 누구인지에 관심을 가진다.

그들에게는 --- 사람들이 예수를 누구라고 믿고 따르는지 그것이 더 중요했다. 예수가 하는 일, 가르치는 내용보다 --- 그 존재가 더 중요했다.”(84쪽 중간)

89족에서부터는 여러 장에 걸쳐 예수와 아버지가 토라에 대해 서로 묻고 답하는 장면을 그린다. 여기서 작가는 예수의 아버지 입을 빌려 이렇게 토라를 말한다.

토라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사람이 사람과 더불어 어떻게 하느님을 모시고 잘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지. ---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라는 말보다 더 중요한 말이 있겠니? (94쪽 아래)

아버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예수의 말이 이어진다.

근본 내용으로 보면 서로 돕고 아끼고 귀하게 여기며 살라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결국 서로 사랑하며 살라는 말 아니었어요?” (95쪽 위)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든 안다니는 사람이든, 그러니까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그동안 많이 들어왔고 알고 있었던 기독교적인 사랑의 개념을 발견하게된다.

남이 너에게 대해주기를 원하는 것처럼 너도 남을 대하라. --- 너에게 싫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 (94쪽 아래)

공사장에 오가며 늘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던 어린 예수는 아버지를 통해 하늘 아버지의 말씀을, 땅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삭이고 그 말씀이 체화된 사람이다. 목수, 석수 요셉(예수의 아버지)이 예수에게 던지는 일상의 말들은 큰 가르침이 되었고 예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나무에는 나무의 결, 돌에는 돌의 결이 있다. / 돌에게도 생명이 있고, 숨결이 있고, 돌마다 각각 간직하고 있는 얘기가 있단다.” (357)

1권에서는 예수와 아래웃집에 살던 히스기아와 예수의 길이 다름을 이야기했는데, 2권에서는 요한과 예수의 길이 다름을 이야기한다.

세례자 요한은 새로운 가치를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고, 역사를 회복하자는,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자는 운동을 --- 예수와 요한은 다른 길을 걷는 사람이었다.”(128쪽 아래)

예수는 분봉왕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러면 예수의 주장은 무엇일까?

땅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어라 / 모든 빚을 취소해라 / 빚 때문에 종이 된 사람들을 풀어주어라’ (277쪽 위)

이러한 예수의 주장은 지배자가 들어줄 리도 없는 일이다.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나라다. --- 다스리는 사람과 다스림을 받는 사람의 위아래를 뒤바꾸는 일 --- 예수가 이루려는 하나님 나라는 결코 로마가 용납할 수 없는 나라였다.” (291쪽 아래)

지배층에서는 예수를 선동가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예수는 자신이 바라는 하나님 나라를 만들기 위해 어떤 선동을 했는가? 혁명대군을 이끌고 성전으로 쳐들어 갔는가? 작가는 예수의 행적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히스기야가 이끄는 의적 하얀리본이 부자들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는 실질적인 행동을 하는 것과 달리 예수는 하느님 나라를 가르쳤고, 하느님 나라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았다.” (301쪽 아래)

누군가를 통하지 않고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사람, --- 스스로 자유의 땅으로 걸어가도록 인도하는 사람” (409쪽 아래) 이것이 예수의 역할이었다.

예수가 전하는 하느님의 나라는 도대체 어떤 곳이란 말인가?

하늘 아버지께서는 자기가 먹을 만큼만 고기를 잡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라고 부르십니다. --- 농부는 자기가 거둔 밀로 가족이 먹는 빵을 만들어 먹고, 자기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자기가 담근 포도주를 마시고 자기 무화과 열매를 먹는 나라” (444쪽 아래, 445)

하느님 나라에서는 어떻게 살면 될까? 예수의 혁명적인 연설을 들어보자.

땅이, 풀밭이, 호수가 여러분에게 내어주도록 정해진 한계를 넘어서지 마십시오. 힘으로 빼앗아가는 사람을 위해 더 이상 한계를 넘어 일하지 않아도 되는 새 세상---“ (446쪽 위)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여기에서 곱씹어볼 내용이다. 예수, 책 소개에서는 그를 혁명가라고 단언했다. 그 소개처럼 예수의 위험한 발언이 이어진다.

여러분은 내가 선언하는 복음, 하느님 나라는 예루살렘 성전의 가르침이나 바리새파 선생들이 말하는 것과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509쪽 위)

<소설 예수>는 기출간 1,2 권과 출간 예정 3,4,5권으로 예수가 유월절기에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그 시대적 배경과, 예수의 행적을 이야기한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느님의 인도하심으로 이집트의 노예에서 해방된 기념일이다. 그런 유월절에 성전과 로마의 지배하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해방이란? / 압제에서 풀려났다는 얘기지 / 그런데 지금은? / 지금 유월절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595, 596)

혁명가로 칭해진 예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다음 책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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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문학소설 | 기본 카테고리 2020-05-12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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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설 예수 1

윤석철 저
나남 | 2020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한국인의 정서로 그려낸 예수. 매력적인 문장에 홀리다.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많은 작가들이 예수를 이야기해왔다. 신학책으로, 신앙고백으로, 소설로. 예수는 어떤 작가에 의해 신의 아들이 되었고, 또 다른 작가에 의해 사람의 아들이 되기도 했다. 다시 예수의 이야기를 만난다. <소설 예수>. 제법 두꺼운 책이 한꺼번에 2권이나 나왔다. 예수 얘기라면 뻔한 거 아닌가, 기독교인도 아닌데 다른 재미있는 책이나 읽자, 이 두꺼운 책을 언제 다 읽나, 궁금해서 만져보다가 슬그머니 내려 놓는다. 그러다 다시 집어든다. 슬쩍 들춰본 첫 구절이 벌써 뇌리에 각인돼버린 것이다.

 묻은 손을 하늘  자락에  문질러 닦은  저녁노을이 섬뜩했다석양을 정면으로 받은 예루살렘 성전은  달궈져 모루 위에 올려놓은 쇳덩어리처럼 붉게 빛났다. (첫 시작)

종교적인 관심이 아니더라도 문학적인 호기심이 확 달아오른다. 멋진 문장 아닌가! 아하! 이 작가 누구지? 무명작가의 글이라고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섬세하고 감성적인 촉촉함과, 묵직한 힘과 속도감을 잘 안배한 문장들에 사로잡히면 이 두꺼운 책은 빠르게 읽힌다.

한 번 더 아들을 가슴에 깊이 안아주어야 한다. 어미는 안다. 자식에게 위험이 닥치는 순간을., 공연히 가슴이 떨리고 울렁거리기 시작하면, ……..세상 모든 어미는 그 때를 안다. (20쪽 끝부분)

이런 글을 읽는데 종교적 성향이 무슨 역할을 한단 말인가. 예수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누구의 이야기라도 독자는 이 어미의 마음에 가까이 닿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한 가지 답을 얻는다. 예수는 한 어미의 아들이구나. 한 어미의 아들 예수.

어릴 적부터 그랬다. ----- “얘야예수야얘야 아들아….”
정신을 차려보면 얼굴에 떨어지던 어머니 눈물이 뜨거웠었다아들을 끌어안고 어머니는 소리 죽여 울었다갑자기  어머니가 생각나는지   없다돌아보면    걸어왔다이제 되돌아설  없는 문턱을 넘는다.
 (481쪽 윗부분)

어차피 예수의 이야기니까 이 책에서 예수는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찾아본다.

예수는 누구인가? 큰 힘을 가진 사람이다.

 거친 파도에 당당히 맞서는 거대한 힘이 아니라 파도를 잔잔하게 가라앉히는 힘이 예수 안에서 조용히 운동하고 있다.(302쪽 아래)

폭력보다 더 깊고 큰 무엇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이미 폭력으로 꺾을  없는 세상에 들어간 사람폭력보다  깊고  무엇을 가진 사람이다제국이 가진 것이 폭력뿐이라면 제국도 그를 멈출  없으리라고 느껴진다. (317쪽 윗부분)

더러움과 죄의 구분을 넘어선 사람이다.

가족들도 만져주지 않던 상처문둥병이라 부르는 상처를 만져주고 쓰다듬어줄 병자들은 눈물을 흘렸다. …….. 예수가 무릎 꿇고 옆에 앉아 상처를 씻어 주고 싸매 주고 위로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다정한 음성으로 위로하고 기도하는 예수는 더러움과 죄의 구분을 넘어선 사람이다. (416쪽 중간)

고독한 사람이다.

 여러 제자들  오직 마리아만 안다는 말인가? …… 저들은 손에 쥐여 주어도 무엇인지 모르고눈앞에 들어 보여주어도  보고입안에 넣어주어도 삼킬 줄을 몰랐다서로 다른 공간에 정신이 머물러 있고다른 시간 속에 몸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 예수는 그때까지 철저하게 혼자일 수밖에 없다.(534쪽 윗부분)

예수가 누구인지 묻는 말에 예수는 이렇게 답한다. 자신이 누구라는 답이 아닌 자신이 무엇인지를 답하고 있다.

선생님은 누구이십니까?” “들과 밭, 하늘 아래 온 땅에 심어지는 씨앗이요.때로는 씨를 뿌리는 사람이기도 하고…” (549쪽 아래)

이 소설은 두껍지만 한 번 손에 잡으면 내려놓기 힘든 이야기의 힘이 있다. 단단한 서사 구조를 매력적인 문장들이 잘 이끌어가고 있다.  먼 옛날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고, 먼 나라라는 공간이 여기로 다가와 그 시간과 공간이 빚어내는 문화는 어쩌 그리도 우리네 감성을 닮아있는지 놀랍다. 예수, 그가 살던 마을의 정서가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피던 우리 마을의 정서와 똑같다. 이 책을 기독교인들만의 책으로 지레짐작한다면 참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이 나를 끌고 달려가는 참 아름다운 문학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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