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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Appassionata), 레인코트와 초록바지와의 뜨거운 사랑과 차가운 이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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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베토벤 소나타 23번 열정을 모티브로한 뜨거운 사랑과 차가운 이별 이야기, 사랑의 승리자와 사람의 운명에 관한 비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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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마치며 | '열정'연재 2014-04-13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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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7일 <열정>을 연재하기 시작하여 오늘로 3달여만에 연재를 마쳤다. 소설 <열정>은 베토벤 소나타 23번 열정소나타를 모티브로 하였다. 베토벤은 한 때 두여자를 사랑한 적이 있었다. 정적인 여자와 관능적인 여자와의 사이를 오가며 사랑을 불태웠다. 그러나 이 두 귀족 여인들과의 사랑은 이루어 지지 못했다.  

 

 

아마 세상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사랑에 빠진 젊은 날이 있을 것이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청산 역시 대학시절 정숙한 초록바지와 동적이고 관능적인 레인코트와의 사랑 사이를 오가며 갈등을 지어야 했다. 그리고 가지 말아야 할 인생의 길을 선택함으로 인해 생의 파멸을 가져왔다.   

 

 

나는 한 사람이 사랑했던 두 여인과의 사랑을 이야기 함으로써 젊은 날 사랑을 쫒던 우리들의 초상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는 모든 면에서 달랐고 사랑을 하는 방법도 달랐다. 그리고 사랑에서 추구하는 것도 다 달랐다. 나는 사랑을 통해 인생을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

 

아울러 사랑도 좋지만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도 그 비밀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인간의 피조물로서의 노력은 눈물겨운 사투에 가까운 노력을 기울이는 여정이지만 결국 허망한 것이었다. 인생을 주관하는 주관자와 일을 성취하는 섭리는 인간의 의지와는 달리 존재한다고 하는 세상의 이치를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얼마만큼 잘 전달되었는지 모르겠다. 

 

 

 

이 소설을 연재하면서 고마운 몇 사람이 떠오른다. 매일 수백명의 사람들이 사이트를 찾아와 소설을 읽어 준 것을 감사드린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댓글을 통해 연재를 응원해주고 이끌어 준 슈퍼블로거로 활동하는 <아자아자>님께 감사드린다. 소설을 쓰는데 한 사람의 진정한 원군만 있어도 방향을 잃지 않는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나는 감히 <아자아자>님이 그런 역활을 성공적으로 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감사드린다.    

 

    

아울러 연재를 허락해 준 <예스 24>에 감사드리며 연재의 실무적인 어려움들에 성실히 답변해 주어 끝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게 해 준 예쓰 24의 <열정>의 담당 대리님에게도 감사드린다. 많은 이메일이 오고가며 여러가지 면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나는 이 소설 연재를 마치고 이어서 짦은 문구로 우리들의 삶을 성찰케 하는 청어(淸語)들을 연재하게 될 것이다. 짦은 문장들이지만 마음을 힐링하는 그런 구절들을 소개하게 된다. 원래 시를 쓰기 위해 수첩에 메모된 시의 소재를 위한 몇 줄의 간략한 단상들의 모음글이다. 나는 이러한 단문의 문장이 삶의 성찰과 반성, 그리고 결단과 기도를 위해 필요한 글이며 성공적인 인생을 인도하게 되리라고 믿는다. 이 글들은 <시인수첩, 실패는 필수고 성공은 운이다>라는 제목으로 연재하게 될 것인데 많은 성원을 부탁드린다.        

 

 

이제 봄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들을 보람차게 보내시기 바란다. 그래서 2014년 올해가 여러분들의 생애 최고의 해가 되고 또 되시기를 기원한다.

 

                                                                   2014. 4. 13

 

                                                 어둠이 내린 파주공릉천변에서   김 용 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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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오열(嗚咽)(최종회) | '열정'연재 2014-04-1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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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나는 결심을 하고 있었다.

 

명희와 함께 서울로 올라가서 레인코트를 만나야 겠다고 말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집에서도 몰랐고, 초록바지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군 법무관으로 들어가기 까지는 두어 달 정도 시간이 남아 있어 설악산과 강원도 일대를 돌아보면서 머리를 좀 식히고 오겠다고 말했다. 레인코트를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지금쯤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한 때는 내 모든 것이었던 그녀가 나와 헤어져 믿었던 남편에 치이고 세파에 쓰러져 흐느적거린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내 아이는 아니지만 어린 것을 데리고 남편으로 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남이라고 하더라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었다. 레인코트를 만나야겠다고 결심을 했을 때 온갖 생각이 머리에 다 떠올랐다. 마음이 급해졌다. 아침에 서울로 가려고 마음을 먹고 집을 나서자 아버지가 길을 막아섰다.

 

 

 

 

- 너 오늘 꼭 가야하냐? 꿈자리가 하도 이상해서 그런다

- 무슨 꿈인데 그러세요?

- 어제 밤 이빨이 한 개도 남기지 않고 모두 다 빠지더구나, 참 희한안 일이지...

- 꿈하고 현실은 반대라고 하잖아요

- 한 개도 남지 않고 몽땅 빠지는 건 처음이야, 하도 생생해 서리...

- 아버지, 다녀올께요

- 오늘 안가도 되면 내일 가거라, 하도 수상해서 그런다

- 오늘 가봐야 해요, 꿈인데 별일 있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

- 애비가 하는 말을 들어! 내가 가지 말라고 하는 것도 아니구...

 

 

 

 

아버지의 우려와 충고에도 불구하고 나는 집을 나섰다. 막상 집을 나섰지만 뒷머리가 땡기는 기분이었다. 요즘 기분이 이상했다. 오늘은 아버지의 충고도 있었을 뿐만아니라 한동안 소식이 없던 명희의 전화가 오던 날 유리잔을 방바닥에 깨트리던 일도 불길했다.

 

 

 

지난 세월을 생각해 볼 때 내가 지금 레인코트를 만나러 서울로 올라가는 것은 초록바지를 두 번이나 배신하는 일이었다. 더우기 초록바지와는 4월에 결혼을 하게 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정조의 의무는 이런 것도 포함이 되리라. 결혼할 상대 이외에 이성을 만나 살을 섞고 마음을 주는 것만이 부정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다 끝난 옛 애인을 찾아가 그녀의 불행을 동정 한답시며 설쳐대는 것도 불륜이라면 불륜이었다.

 

 

 

 

나는 명희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서고 있었다. 내 차로 서울로 올라가기로 했기에 나는 차에 올라타 전철역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집을 나올 때까지 고민이 되었으나 굴러가는 차에 올라타자 방향을 거스를 수 없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구서동 전철역 앞에 도착했다. 시간을 보니 9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명희는 나를 보고 손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 여기예요!, 여기!

 

 

 

 

명희는 노란색 바탕에 분홍 땡땡이 무늬가 들어간 블라우스와 넓은 주름치마를 입고 나왔다. 선글라스를 걸치고 창이 넓은 모자를 쓴 폼이 완전히 신혼여행을 다녀오는 공항패션이나 바캉스 패션이었다. 나는 명희 앞에 차를 세우며 물었다.

 

 

 

 

- 어, 명희씨!, 오래 기다렸어요?

- 아니, 저도 조금 전에 도착했어요

- 어서 타요! 뒷좌석에 타세요.

- 아, 와 주셨군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차는 톨게이트를 지나 경부고속도로로 들어서고 있었다. 우리는 아침에 떠나 서울에 도착해서 레인코트와 함께 점심을 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명희도 나를 데려다 준 뒤 점심만 먹고 남편과의 약속장소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평소에도 나는 속도광이었다. 속도계는 시속 150을 가르치고 있었다. 슬쩍 180까지 밟아 보았다. 핸들이 조금 더 떨리는 외에는 별 이상이 없었으며 차는 미끄러지면서 서울을 향해 쏜살 같이 날아가고 있었다.

 

 

 

명희 집은 동래 쪽이었다. 고모의 소개로 지금 신랑을 만났는데 신랑은 군인이었다. 자기는 자유분방하게 사는 타입인데 아무래도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되면 절도 있는 군인이 책임감 있게 가정을 잘 꾸려 나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남편은 발령이 잦았는데 곧 임지가 진해로 내려가게 되어 있어 그 때가서 두 사람은 합치기로 하고 지금은 혼자 부산 처가에서 명희 혼자 살고 있었다. 남편을 만나거나 레인코트를 볼 일이 있으면 가끔씩 서울로 가서 레인코트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지낸다고 했다. 나는 명희가 신혼이나 다름없는 새댁인데 신랑은 경기도에 두고 자기는 천리 길 부산에 떨어져 사는 것이 안 되어 보였다.

 

 

 

나는 마음이 급했다. 그리고 내가 마치 전능자라도 된 듯 했다. 서울로 가서 레인코트를 만나기만 하면 레인코트가 겪고 있는 얄궂은 운명과 생의 아픔을 모두 해결해 줄 수 있는 해결사라도 된 것처럼 들떠 있었다. 무조건 빨리 올라가서 레인코트를 만나고 싶었다. 명희를 태운 차는 마치 아우토반을 질주하는 것처럼 앞 차들을 수없이 추월하며 곡예를 하면서 레인코트가 있는 서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도 급했을까? 경부고속도로 경주 인터체인지 부근을 지나 서울 방향을 향하는 중이었다. 이곳에서는 상행선과 하행선의 찻길이 나란히 붙어 있었고 정작 있어야 할 중앙분리대는 없었다. 차가 차선을 벗어나 앞차를 추월하여 앞으로 쭉 달려 나가는 찰나였다. 순간 맞은편에서 산처럼 육중한 그림자가 차장을 덮쳐왔다. 눈 깜짝할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 뻐~어~ 어~어~엉!!!

 

 

 

 

청산의 차는 갑자기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11톤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해 버렸다. 트럭에는 호주에서 수입해온 쇠 절구통을 산더미같이 실려 있었다. 과적을 한 11Ton 트럭과 시속 150키로 이상을 달리던 청산의 차가 서로 반대방향에서 받았으니 승용차는 휴지조각처럼 구겨져 버렸다. 금새 짜고 비릿한 피 냄새가 사방에 번졌고 부서진 헤드라이트의 조명등 잔해와 흘러내린 기름으로 현장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저 멀리 여러 대의 앰뷸런스와 경찰 순찰차의 경광등이 급히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그날 신문과 방송에서 시간마다 경부고속도로 상에서의 충돌사고를 일제히 보도해서 항간에 그 사건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현장에서 승용차에 탔던 두 남녀가 모두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충돌 때의 충격이 심해서 시신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이 되었다. 누가 중앙선을 넘어 들어왔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모든 책임은 죽은 청산의 일행에게 전가되었다. 죽은 자는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사라져야 했으며 아직 이 땅에 산 사람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살아야할 의무가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뉴스를 본 사람들은 수근 거리며 이 사건을 이상한 방향으로 몰고 갔다.

 

 

 

우스운 일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가당치도 않는 말들을 만들어 내고 옮기기에 바빴다. 세상 사람들이 뜨거운 밥을 먹고 한다는 짓거리들이 모두 이와 같았다. 살아 있는 자들은 살았다는 특권으로 죽은 지 만 하루도 안 된 사자들을 마음대로 난도질 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 사실을 밝히고 반론해야 할 당사자는 죽어 말이 없었다. 사람들은 불륜을 저지른 젊은 예비법조인과 미모인 현역장교 아내의 성 모럴을 이야기하며 나름대로 입방아를 찧어대며 열들을 올렸다.

 

 

 

청산이 아쉬워 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청산은 모든 것을 다 성취하고 맛보았다. 시험에 합격하여 명예에 대한 갈증도 해소하였고 이런 저런 결혼 제의로 부유함을 보장받을 수도 있었다. 레인코트와 초록바지 같은 여자들의 자궁에 들어가 재미도 보았으나 이 모든 것들은 꺾인 나무 가지가 불살라져서 재가 되는 것처럼 헛되고 헛된 것들이었다. 사람들이 하는 짓들은 모두 이처럼 허접했다. 하지만 그들이 오래 살고 싶어 하는 간절한 바램 만큼은 수긍이 갔다. 피조물이 이 세상에서 한들거리는 바람을 맞고 온갖 색색으로 물들어 가는 단풍을 바라보며 한 철이라도 더 살고 싶어하는 그 바램 만큼은 누가 보더라도 경청해 줄만 했다.

 

 

이 땅은 푸른 모래톱이 끝없이 이어진 아름다운 곳이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들 말했지만 이곳에는 정작 그리움만 잔뜩 있었다. 다만 눈부신 모래톱을 찾아 나서는 그 길의 여정만이 아름다웠다. 모든 것이 환상이었다. 나이가 들어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기력을 잃고 쓰러져 갔다.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일들을 계획하였지만 그 일을 성취하는 것은 그들의 몫이 아니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듯 장례식이 치러지는 동안 간간히 땅을 적시는 가랑비가 흩날렸다.

 

 

 

 

 

- 오빠야!~아, 일어나서 나하고 집에 가자~, 오빠야!~, 왜 여기 이러고 있어어!, 왜에!?

 

 

 

평소 청산을 잘 따랐던 여동생이 오열했다.

 

 

 

화장장 직원들이 청산의 시신이 든 관을 불구덩이 가마 속으로 밀어 넣으려고 하는 순간 그 앞을 막아서면 청산의 어미가 다시 울부짖었다.

 

 

 

- 청산아, 가지마라!~ 썰어도 아픈 줄 모르고오오, 태워도 뜨거운 줄 모르는데에, 그 불구덩이를 왜, 들어가려구 그래! 안 된다아! 청산아~아, 안 돼. 가지마라, 가지마아~아!

 

 

 

 

청산은 서울로 레인코트를 만나기 위해 올라가지 말았어야 했다. 운명을 다한 사랑을 그리워하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인간은 주제넘게도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끊임없이 넘보았다.

 

 

 

화장장 굴뚝을 통해 그의 살과 뼈를 태운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와 하늘로 올라갔다. 사람들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말없이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살아서 내일의 빵과 오늘의 슬픔을 추억하며 흔들리며 죽은 자의 몫까지 살아가야 할 일이 아득하기만 했다. 그 때 하늘에서는 준엄한 목소리가 땅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 너희들은 이 땅에서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을 쉬지 않고 맞으리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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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은총 | '열정'연재 2014-04-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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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초록바지에게 시험에 합격한 사실을 알려 준 이후 둘 사이에는 한 순간 침묵이 흘렀다. 내가 고시에 합격했으면 초록바지가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해야하는 것이 정상인데 그렇지 못했다. 설마? 하던 고시합격이 눈앞에서 이루어지니까 남자 쪽인 내가 어떻게 나올지 아무소리하지 말고 기다려보자는 심사였다. 하루에 두 번 오던 연락도 한 번으로 줄고 이제는 그것마저도 끊어지고 말았다.

 

 

내쪽에서 전화를 하지 않으면 이러다가 둘은 헤어질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아마 장모자리의 계책이었을 것이다. 내가 초록바지에게 마음에 있으면 연락을 할 것이고 합격했다고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면 다른 사람을 염두해 두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납작 엎드려 기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사정이 변한 후에 우리쪽의 태도를 시험해 보기로 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초록바지나 장모될 자리는 평소 내가 시험을 준비한다면서 자기 딸과 만나는 것을 줄이며 애를 태우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해 오던 터였다. 오랫동안 시장 통에서 장사를 해와서 그런지 분수에 넘치는 일은 아예 꿈도 꾸지않는 사람들이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 자기 집의 가훈이라는 말을 초록바지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쓸 것 안 쓰고 아끼며 한푼 두푼 노력하여 성실하게 모아서 자기 분수껏 사는 것을 제일로 쳤으며 남의 떡을 크게 보거나 올라가지 못할 나무를 쳐다 보아야 상처만 입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가정교육은 초록바지에게도 대물림 된 듯 했다.

 

 

 초록바지는 고시공부를 한다며 내가 힘들어 할 때면 격려를 해 주기 보다는 세상사 세끼 밥 먹고 살면 그만인데 무얼 하러 그렇게 힘든 공부를 하느냐며 못마땅하게 생각을 했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나 이루지 못할 큰일에 힘을 써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라고 했다. 이것은 레인코트와는 정반대였으며 나는 이러한 초록바지의 소극적인 태도가 못마땅했다. 

 

  

어쩌면 내가 초록바지와 사귀고 있을 때 시험에 합격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였다. 하지만 결과가 그런 걸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초록바지도 전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레인코트에게 푹빠져 있을 때에도 나를 나를 기다려 주었으며 레인코트와 헤어지고 나서도 지금까지 내 곁을 지켜 주었다. 초록바지는 내가 레인코트에게 한 눈을 파는 동안 수년 동안 우리 집으로 편지를 보내며 오로지 나를 향한 일심을 보여주었다. 한편으로 그런 그녀가 밉지만 귀한 존재이기도 했다. 

 

 

초록바지의 나를 향한 일심과 인내는 기어코 역사를 한 것이다. 레인코트와 비교할 때 초록바지는 나보다 두 살 아래였고 레인코트는 나보다 오히려 두 살 위였다. 레인코트는 나를 사랑한 여자였고 초록바지는 내가 사랑한 여자였다. 레인코트는 무척 힘이 든 사랑을 하고도 열매를 맺지 못하고 떠나갔지만 초록바지는 이제 내 사랑을 받으며 법조인의 부인이 될 수도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당연지사였지만 초록바지 집에서는 결혼을 하게 된다면 빨리 서둘러 버리려고 했다. 이미 알 것 다 알아버린 상태고 내가 변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에 불안해 했다. 그 쪽에서는 봄에 군법무관으로 입대를 하기 직전에 바로 결혼식을 올리려고 하였다.  

 

 

나는 먼저 부모님과 가족들을 설득해야 했다. 나는 집안의 희망이었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였다. 나는 수험생활동안 초록바지가 수년을 내 곁에서 함께 해 온 일을 상기 시키며 내가 그런 초록바지를 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살아오면서 배신하는 정치인이나 사람들이 잘되는 꼴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는 왜 그런 비유를 이 일에다가 끌어다 대느냐며 불평했다. 이런 기회는 평생 다시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집안이 좋고 내가 앞으로 살아가며 힘이 들 때 나를 밀어 주겠다는 넉넉한 집안에 장가를 가야한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그럴 수 없다고 맞서자 엄마는 화가 났는지 지난번 처럼 '병신같이 못난 놈' 이라고 퍼부었다. 엄마는 당신이 자식을 못되게 하는 줄 알고 그러느냐며 왜 어미 말을 곧이듣지 않느냐고 분개했다.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초록바지 집에서 봄에 결혼을 하기를 원하니 그렇게 하자고 설득하고 나섰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쉽게 만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만들어 아이들 낳고 사는 것 같았는데 내가 이런 입장에 처하고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살아가는 주변의 결혼한 사람들이 존경스러워 보였다. 이런 경우의 결혼은 더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지 입을 가진 사람들은 죄다 한마디씩 했다. 혼수나 예단도 상승한 신분에 상당하는 준비를 해 와야 한다는 훈수들이었다. 살다보면 별 것도 아닌 일들에 목숨을 거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세상이 모두 공평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바램과 노력이 적었다 하더라도 그 이상의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것들은 인간들이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이 아니었다. 조물주가 보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차별해서 내려주는 은혜라는 것이었다. 거기에 왜 그런가 하고 왈가불가 이유를 따져서는 물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노력한 댓가와는 다른 이유로 그냥 이뻐서 주는 것이다.

 

 

 초록바지의 경우가 그러했다. 그녀는 내 출세를 외면하였지만 조물주는 내 고시합격을 그녀에게 선물로 주었다. 조물주는 그녀가 어떤 길로 가더라도 그 분의 장중에 품으면서 초록바지의 출입을 지켜 주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었다. 그것이 진짜 복이었다.

 

 

나는 진통을 겪은 후 최종적으로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장모자리를 만났다. 나는 그쪽 집에서 원하는 바대로 4월 초 법무관 입대 전에 결혼을 하겠으니 그렇게 알고 날짜를 잡으라는 우리 집의 뜻을 전해주었다. 장모는 감동하는 눈치였다. 이 문제를 놓고 더 이상 시간을 끌어 보아야 사태가 변질될 우려가 있었기에 서두르기로 한 것이다. 모두들 기뻐하였다. 장모 자리를 만나고 늦은 시각 초록바지의 집을 나왔다.

 

 

내가 초록바지에게 완전히 기울은 행보를 보이면서도 남편과 별거 중인 레인코트의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가 올라와 주기를 바라는 레인코트의 환영이 떠올랐다. 초록바지와 결혼을 하기로 해 놓고도 나는 레인코트를 완전히 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가끔씩 만나면서 레인코트의 처지를 헤아려주고 그녀의 편이 되어 주고 싶었다. 나는 초록바지를 내 수중에 넣은 다음 이제는 여유롭게 레인코트에게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는 내일 명희와 함께 서울로 한 번 가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 수 없었다. 과거 아쉽게 헤어진 애인을 그녀가 지금 어려운 처지에서 다시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하는 것을... 이런 행동은 자초해서 복잡한 일을 즐기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행동이었다. 더군다나 타버린 불씨를 다시 피우는 일이어서 더욱 그랬다. 그는 아무 것도 몰랐다. 앞뒤를 따지고 먼 일을 생각할 그런 여유가 없었다. 다만 울고 있는 레인코트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고 싶은 급한 마음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불구덩이 속으로 기름을 지고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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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운명의 손짓 | '열정'연재 2014-04-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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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던 물컵을 떨어뜨려 주방에는 유리파편들이 자욱했다. 발을 한 번 잘못 디디자 날카로운 파편이 발바닥을 찔렀다. 도무지 어디로 걸어가야지 빗자루를 찾을 수 있을 지 난감했다. 그 때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나는 전화를 받으러 한 발자욱도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전화벨 소리를 듣고도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네다섯번 울리면 말 전화벨 소리가 계속 울어대었다. 전화벨 소리가 그치지 않자 그 소리는 119같은데 구급요청을 하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어떡하든 전화를 연결하려는 악착같음이 배어 있었다. 

 

- 여보세요?

 

- 강청산씨 댁이죠, 청산씨 계세요?

 

- 저예요? 누구신지?

 

- 저예요, 민숙이 친구 명희!

 

- 아, 예 명희씨 그런데 웬 일이세요?

 

- 이제는 목소리도 다 까먹으셨군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 아! 예 명희씨 그동안 잘 계시죠?  

 

- 잘 못지냈는데요, 하하. 만나서 드릴 말씀이 좀 있구해서 한 번 뵙죠!

 

- 예, 그러시죠 

 

      

 

명희는 학교 다닐 적 레인코트와는 단짝이었다. 레인코트가 칠색도시락을 싸다준 일과 내가 레인코트의 머리를 감겨 주던 일을 놀림감으로 삼아 나에게 장난을 쳐 대던 바로 그 명희였다. 명희는 얼마전 군인인 신랑과 결혼했는데 발령관계로 인해 잠시 각자 살림을 하고 있었다. 군인은 발령이 문제였다. 신랑의 잦은 발령으로 인해 전국 팔도를 떠돌다시피 해서 아직 아이 낳을 계획은 엄두도 못냈다고 했다. 누구보다도 명희는 레인코트와 내가 연애하던 시절부터 우리의 관계가 잘되기를 바랬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헤어진 것을 가장 마음 아파해 준 것도 바로 명희였다. 레인코트가 졸업을 하고 서울로 올라가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전해 준 것도 명희였다. 그것이 명희를 통해 들은 레인코트에 관한 마지막 소식이었다. 우리는 시내 커피숍에서 다시 만났다. 

 

 

- 청산씨, 오랫만이예요. 내가 연락을 해서 놀랬죠?

 

- 아아, 이게 얼마만이예요?, 보기 좋으네요...

 

장난을 칠 말큼 쾌활하고 인상이 좋은 명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었다. 

 

- 그런데 무슨 일이예요, 갑자기?

 

- 내가 민숙이 이야기 말고 따로 청산씨 만날 이유가 있나요?

 

- 민숙이야 시집가서 잘 살고 있을텐데 아닌가요?

 

- 잘 살면 제가 뭐하러 이러구 나왔겠어요

 

- 무슨 일이 있군요, 그렇죠?

 

- 말도 마세요, 결혼해서 처음에는 둘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죠. 깨를 볶았죠  

 

- 그런대 무슨 문제가 있었나요? 남편이란 사람이 민숙이를 그렇게 아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는 궁금했다. 레인코트는 웬만한 어려운 일들을 이것저것 다 겪어 모가 나게 처신을 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 민숙이 말로는 결혼 육개월 정도 지나면서 부터 남편의 의처증이 문제였나 봐요.

 

- 나이 차이가 문제였던 가요?

 

-  맞아요. 11살이나 차이가 났었잖아요? 남편은 비교적 자유롭게 행동하며 살아가는 민숙이를 의심하기 시작했죠

 

-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애당초 결혼에 부모들이 끼이는게 아니었는데....

 

-  그래요. 결혼해서 얼마 지난 후 민숙이 남편은 민숙이가 처녀가 아니었다고 말하며 숨도 못 쉬게하며 감시했나봐요

 

- ... 그럼 나 한테도 책임이 있는건가

 

- 그렇기야 하겠어요?, 원래 병이 있었던 거겠죠. 민숙이가 집을 비우면 남편한테서 어떤 날은 하루에도 십여차례씩 전화를 해서 행선지를 따져 묻고는 했죠. 민숙이가 외출하다가 돌아오면 다른 남자와 놀아났는지 확인을 해 보아야 겠다며 불을 환하게 켠 상태에서 옷을 벗기고 음부와 속옷검사를 했대요.

 

- 미친 놈,  아휴, 기가 막히네요. 얼마나 힘들었을까...

 

- 그 뿐만 아니에요. 심부름센터를 시켜 민숙이를 미행하고 승용차의 주행거리도 확인했고 그리고 최근에는 근거도 없이 옛날 애인을 다시 만나 바람을 피우는 것 같다고 말하며 의심을 하면서 사람을 잡았다죠. 돌아오면 허구한 날 핸드백과 소지품을 뒤지고 옷을 벗기고 몸수색을 했어요. 그러다가 자기 성에 차지 않으면 식탁의 국이고 반찬이고 다 뒤집어엎고 레인지고 뭐가 다 깨어 부셔서 도저히 살 수가 없었죠.

 

- 그래서 나이 차이가 너무 많아도 문제가 생기죠. 그래서 옛 어른들은 서너살 터울이 좋다고 그랬나봐요.

 

- 밤마다 난리가 벌어지니 민숙이도 무섭고 살 수가 없어 매일 지구대에 신고해서 경찰들이 출동을 하고 신변보호를 요청할 정도가 되었나 봐요. 결국은 살지 못하고 아이와 들쳐업고 집을 나온거죠. 별거해서 혼자 산지 벌써 일년이나 되었죠.

 

 

 이야기를 다 듣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내 책임도 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레인코트가 내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내 처지가 죽이 되건 밥이 되건 배짱 좋게 아이를 낳아 기르며 레인코트를 떠나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 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배짱도 없이 흔들리자 레인코트는 내 곁을 떠나갈 수밖에 없었었다. 레인코트가 집을 나와 별거를 하고 있었지만 아직 이혼한 것은 아니어서 엄연하게 법적으로는 그 의처증 환자의 아내였다. 하지만 별거 일년이면 벌써 이혼의 종착역이었다. 

 

- 청산씨, 내일 남편을 만나러 서울 올라가야 하는데 가는 길에 함께 가서 명희를 한 번 만나 보시는게 어때요?

 

- 제가요?

 

- 민숙이한테는 지금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힘이 될 만한 사람이 필요해요

 

-.....

 

- 만일 마음에 있으시면 내일 아침 9시까지 경부고속도로 입구에 있는 구서동 전철역 앞으로 나오세요.

 

- 한 번 생각은 해 볼께요

 

 

오늘 명희를 만난 일이 난감했다. 차라리 만나지 않았어야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여자의 마음만이 그런것이 아니라 남자의 마음도 흔들리는 갈대다. 달려가던 길에서 옆이나 뒤를 돌아보는 일이었다. 자꾸만 레인코트를 한 번 쯤은 만나야 한다는 일종의 자기 최면같은 것을 걸고 있었다. 만나지 말아야 하지만 이대로 끝을 낼 것이 아니라, 한 번쯤은 만나 관계에 관한 최종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는 핑계. 그것이 핑계라는 것은 이미 끝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레인코트는 이제 유부녀였고 한 아이의 엄마였다. 하지만 명희를 만난 지금 레인코트와의 관계는 다시 되살아나 나를 구속하고 있었다. 내가 레인코트를 사랑했었고 어쩔 수 없이 헤어진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다시 못 만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이야기였다. 흘러가버린 과거는 과거로 잊어버려야만 했다. 그것을 되돌린다고 해서 다시 옛날 처럼 원상회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두 사람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길 수 도 있었다.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도 만나 한 번 쯤은 어떤 형식으로든 레인코트와 만나 결말을 지어야 하지 않을까. 만리포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와 우리는 한 마디 말도 없이 그렇게 헤어져 버렸다. 사명을 다한 사랑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하고 헤어졌지만 너무 아쉬움이 남는 헤어짐이었다. 내 속에서는 다시 레인코트를 만나서는 안된다는 외침이 있었다. 이제 곧 4월이면 초록바지와 결혼을 하게 된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 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상황에서 곁길로 들어서서는 안될 것이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두 개의 서로다른 내가 싸우고 있었다. 레인코트를 만나 보아야 좋을 일이 없으므로 다시 만날 필요가 없다는 나와 그래도 만나서 레인코트의 어려운 처지를 보살펴야 한다는 또 다른 내가 또아리를 틀고 앉아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머리가 쪼개질 듯한 편두통에 시달리며 혼미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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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기사회생 | '열정'연재 2014-04-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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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필수였고 성공은 운이었다.

 

연초에 있었던 시험에서 나는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소송법 2번째 문제에서 개념을 잘못 잡아 엉뚱한 설명을 늘어놓았다는 자책감으로 시달렸지만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내년쯤에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모든 일은 내 생각과는 달리 진행되었다. 채점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었다. 김해에 있는 요양원에서 공부했던 3명 중에서 진철이 형의 제외한 나와 진철이 형의 친구가 이번 시험에 붙어 버린 것이다. 당연히 요양원에서는 난리가 났다. 어디서 소식을 접했는지 그곳 지서장이 찾아오고  원장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와서 축하해 주었다. 요양원에 김양을 비롯한 직원들 간호사들도 깜짝 놀랐을 것이다. 열심히 공부한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실수를 범해 올해는 안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내 생각과 달랐으니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좌절과 실패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정작 합격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오늘의 행운을 전원생활의 덕이었을 것이다. 전원에서의 생활은 그동안 뒤죽박죽이 되었던 나의 몸과 마음을 받아들여 치유해 주었으며 내가 가야만 할 길을 바로가게 해 주었다. 졸업하고 4년이 지나 합격했으니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그리 늦은 것도 빠른 것도 아니었다.

 

 

내가 레인코트나 초록바지와 같은 여자들을 사귀지 않았거나 강사생활 같은 부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합격은 더 빨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아쉬움도 미련도 없었다. 평소 아침 앞산으로 산행을 가면서 느낀 바가 있었다. 동네에서 가까운 앞산은 걸어서 왕복 2시간 거리였는데 나는 이제 마음이 푸근해 져서 그런지 산에 나 있는 길이란 길은 모두 걸어보았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 산길은 사방팔방에서 올라와서 그런지 정말 길이 많이 나 있었다. 시험을 마쳐 공부로 더 이상 쫒길 것도 없이 느긋해진 나는 길이 나있는 대로 모든 길들을 천천히 다 돌아 보았다. 그러자니 평소보다 시간이 2배나 더 걸렸다. 자꾸 샛길만 돌아다니다 보니 주객이 전도되어 이제는 주 등산로를 이용하기 조차 싫어졌다.

 

 나는 그동안의 내 처지가 이와 같지 않았을까 하는 깨달음이 왔다. 앞뒤 보지 말고, 옆으로 난 샛길도 보지 않고 내가 가야할 수험생활의 주된 코스를 향해 가야만 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를 못했고 세상으로 난 길은 모두 가 보고 싶었다. 레인코트, 초록바지, 초등학교여선생, 미스고, 대기업임원사모님, 숏 타임 아가씨, 김양도 모두 나에게는 거쳐가야 할 길이었다. 그 결과 가던 길은 늦어지고 이제서야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이제 나는 바라던 목표지점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목표에 이르는 과정에서 느낄 수 없었던 세세한 정경까지 다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곳 전원에 와서 사람들의 발에 무수히 짓밟히는 풀들과 피었다 지는 꽃들과 요양원에 수용되어 갇힌 사회의 낙오자들을 보았다. 나는 그 들판을 매일 걸었고 그들과 한 울타리 안에서 살았고 이제는 내 뜻을 이루는 첫 발을 디딜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스쳐지나온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내 삶의 좋은 거름들이 될 것으로 믿었다.

 

 

이제 김해 들녘에는 한 동안 이 땅을 얼게 만들었던 겨울이 물러가고 아주 서서히 봄이 오고 있었다. 아침마다 밤새 내린 이슬이 풀리면서 뿌연 안개와 더불어 봄기운이 되살아났다. 그 속에서는 민들레며 쑥이며 입맛을 돋우는 나물들이 지천에서 올라와 어김없이 봄이 왔음을 알렸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에 삶의 희망을 가지고 출발하는 나 같은 사람은 럭키한 사람이었다. 이 좋은 계절을 넘지 못하고 봄의 목전에서 쓰러진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고 있었다. 

 

 

나는 함께 공부했던 진철이 형에게 미안함을 전하면서 내년에 합격을 기원해 주었다. 그리고 초록바지에게도 합격사실을 알렸다.  이럴 때 레인코트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지 않고 그대로 내 곁에 있어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누구보다도 내 합격을 위해 헌신했던 것은 레인코트였기 때문이었다. 레인코트는 많은 헌신을 하고도 진정 합격의 순간에는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반면 초록바지는 애당초 내가 시험공부를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고 했고 내가 시험에 합격할 경우 자기를 버리고 다른 여자한테 갈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시험공부가 힘들면 그 힘든 공부를 그만 두라고 하여 나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일이 이렇게 되면서 재미있는 일은 어디서 내 연락처를 알게 되었는지 마담 뚜 들에게서 중신자리가 계속 들어오는 것이었다. 아마 시험에 합격하면 누군가가 시험주관 부서나 입소 등록을 받는 연수원 측으로부터 명단을 빼내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이른바 자동차, 아파트, 사무실의 열쇄 3개를 제시하며 이런 저런 사람들을 계속 소개해왔다.

 

 엄마와 아버지는 내가 공부를 하는 동안 레인코트를 사귀었고 그녀와 헤어진 이후로는 초록바지와 사귄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버지의 경우 실제 초록바지와 내가 공부하는 김해로도 찾아오기까지 해서 내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초록바지의 집안 보다 비교가 안 되는 좋은 조건의 집안과 중신이 들어오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엄마는 시험에 합격을 하기 전에 사귄 것이니까 이제 합격을 하고 나서는 거기에 상응한 상대를 만나야 한다고 말을 바꾸었다. 아버지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심 엄마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혼은 양쪽을 저울지하면서 이루어지는 거래였다. 사람들은 결혼의 특수성을 강조하기 위해 성스럽게 이야기들을 했지만 결국 까놓고 보면 거래였다. 잘난 사람이 못난 사람을 만나 못난 사람의 부족함을 매워주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고만 고만한 사람들 끼리 조건과 조건을 맞추기에 급급한 거래. 이런 거래는 거래를 마친 후에도 흠이 있을 경우 계약이 밥 먹듯이 파기되는 것이 다반사일 것이다. 내가 모르는 세상들이 많았다. 선을 보고 우리 측에서 답변을 하지 않으면 뭔가 부족해서 그런다는 생각을 했는지 종전 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 오기도 했다. 

 

나는 부모들의 성화를 못 이겨 그런 선을 몇 번 보았다. 오늘도 선 자리와 만남이 있었다. 내가 만날 여자는 모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아가씨였는데 아버지가 건설업을 하고 시의원을 몇 번한 지역의 부호였다. 장인이 될 사람은 건설업을 수 십 년 동안 한 덕분에 재산이 많았으며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 공천을 받기 위해 줄을 대고 있었다. 그는 이런 저런 직함을 잔뜩 박아 놓은 명함을 부지런히 돌리며 지역 텃밭을 관리해 오고 있었다. 상대 아가씨는 아버지가 돈을 버느라 고생을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아서 그런지 내가 사업하는 남자가 아닌 것이 다행이라고 말했다. 마음 씀씀이는 괞찮은 것 같았고 그렇게 공부를 많이 했다든지 똑똑하다든지 하는 것은 아닌 수수한 아가씨였다. 다만 수 백 억 원이 된다는 장인 자리의 뒷 배경이 그 여자와 맞선을 보게 된 이유였다. 나는 장인 될 사람의 요청에 따라 그가 나오라는 곳으로 가서 따로 만나기도 했다.

 

 

 

- 요번에 우수한 성적으로 시험을 합격했다지요?

 

 

- 예, 운이 좀 좋았습니다.

 

 

- 그게 운으만 될 일인가?  하지만 실력도 실력이지만 무슨 일을 하려고 들면 하늘이 도아 주어야만 하지. 내가 하고 있는 사업이나 정치도 그렇고 ...

 

 

- 그래 장차 꿈이 뭡니까? 어디 한 번 말해 봐요.

 

 

- 아직 잘 모르지만 좋은 법관이 되고 싶습니다...

 

 

- 좋은 법관이라, 거 좋지, 나도 판사들 많이 만나봐서 알아요.

 

 

- 그런 거 말고 좀 구체적으로 말해봐요. 나는 자네같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으니까 

 

 

- 예? 그게 무슨 말씀인지...

 

- 세상에는 힘이 있어야만 해요! 내 딸과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내가 자네 뒷바라지를 다 하지. 집도 차도 그리고 다른 생각 안해도 좋을 만큼 생활비도 넉넉하게 매달 보태 줄 수도 있어요!, 물론 이건 다 내 딸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지만. 필요할 때 힘이 되어 주고 나중에 변호사 나오면 사무실도 번듯하게 내어 주는 것을 약속하지, 어때요? 나는 자네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으니깐 ...

 

 

- 말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나는 때묻은 어른들이 역겨웠다.

 

장인 될 사람은 낚시꾼이나 낚시꾼을 감독하는 사람을 곁에서 두고 싶어했을 것이다. 자기는 흐린 물속을 자기 마음대로 헤짓고 다니고 싶은데 낚시 대를 들이대고 자기네를 잡아 올리려고 하니까 방해 받지 않기 위해 낚시꾼이나 감독자를 친구나 사위로 두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자네 같은 젊은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훤하게 알고 있다"는 그 소리가 못마땅했다. 나는 그가 지금껏 자신의 욕망을 위해 마구 살아왔다는 것을 알았고 나를 곁에 두며 이용해 먹으려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시쳇말로 출세라는 것을 해 놓고 보니까 내 주변으로 몰려들면서 이런 저런 흥정을 해오는 것을 보며 사회가 얼마만큼 흐렸는가 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심지어 결혼마저 이러니 다른 것들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뭐든지 아무것도 모를 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세한 자를 전제로 하는 맞선은 성격이 거의 비슷했다. 포장이야 아닌 것처럼 이렇게 저렇게들 둘러대어서 말들을 했지만 결국 한 보따리 챙겨 줄테니 나랑 결혼하자는 노골적인 요구였다. 내가 선을 보러 나갔다 올 때 마다 부모님들은 세상 편하게 살 수 있는 처가와 맺어 지기를 기대하는 눈치가 선연했다.

 

 

내가 이런 선 자리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자 특히 엄마는 대단히 화가 나 있었다. 엄마는 어떻게 너를 키워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데 그렇게 못난 생각을 하느냐며 실망스러워했다. 어떤 날은 잔뜩 화가 났는지 못사는 집에 태어났으면 팔자를 고칠 기회가 왔는데도 잡지를 못한다면서 병신 같은 자식이라고 노골적으로 분을 내기도 했다. 아버지 역시 마음속으로는 엄마와 같은 생각이었겠지만 직접적으로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현실적인 판단을 해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시험을 치고 나서 남는 것이 시간이었다. 이참에 대학교 2학년 때 잠시 짬을 내어 따놓았던 운전면허 도로 연수를 하기로 했다. 마침 형님이 타던 차를 바꾸게 되었는데 그 차를 합격 선물로 주었기 때문이었다. 장롱면허를 써먹을 심사로 도로 연수 받았고 운전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운동신경이 좋아 그런지 차를 곧장 잘 몰고 다녔다. 나는 속도광이었다. 차를 가지고 낙동강변 산업도로와 같은 한적한 곳으로 드라이브를 나가서 속도를 내고 달리면 가슴에 맺힌 응어리들이 풀어져 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튼 핸들을 잡으면 쌩쌩 달려야 직성이 풀렸다. 사람들은 내 차를 타면 좀 천천히 달리라는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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