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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걷다] 천천히 걸었지만 가슴은 가쁘다. | 왜 가슴은 2021-01-16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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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동주, 걷다

김태빈 저
레드우드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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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이야기를 먼저 꺼내면 식상할 테지만, 가장 최근에 '동주'라는 이름을 또다시 가까이 할 수 있는 계기가 영화였으니 어쩔 수는 없다. '동주'가 영화로 오래되었지만 어쨌거나 우리 집에서는 최근의 일이었다.  퇴근이 늦었던 지난 12월 어느 날, 집에 들어선 내게 아내는 이어폰을 들이대며 주연배우의 저음으로 읊는 '동주'의 시를 영화 장면과 함께 들려주었고 나는 거기에 매료되어 잠시동안 멈춰서 겉옷을 벗는 것도 잊었다. 영화가 장면으로 동주를 걸었다면, 이 책 [동주, 걷다]는 그야말로 발로 가슴으로 걷는다. 동주를 따라서.

 

  [ 동주를 만나다. 시비 3 곳 ]

  저자는 먼저 동주가 유학하고 체포되고 죽어간 일본을 걷는다. 교토가 시작이다. 교토에서의 걷기는 동주의 시비를 찾는 것으로 시작된다. 교토에는 동주 시비가 세 개 존재한다. 그 첫째가 동주가 다닌 '도시샤대학'에, 둘째가 그가 하숙했던 곳, 그리고 남쪽 휴양지 우지 강변이다. 우지 강변에 시비가 세워진 이유가 먹먹하다. 동주는 태평양 전쟁이 확대되어 더는 조선인 신분으로는 학업이 불가능하여 귀향을 준비하였고, 학과 친구들과의 마지막이 될 소풍을 이곳 우지 강변으로 오게 되었다. 소풍 직후 1943년 7월 14일 특별고등경찰에 의해 체포되는 동주다. 동주가 남긴 마지막 사진의 배경이 된 장소에서 저자도 일행과 함께 사진을 찍는다. 동주는 이 사진을 끝으로 1년이 못 되어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의문사하였다.

'교토에 선 동주의 시비를 연결하면 거대한 예각삼각형이 된다. 일본의 천년 고도 교토를 날카롭게 찌르는 형국이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동주는 1942년 가을에 교토에 와 1943년 늦봄을 보내고 체포됐다. 교토 사람들이 가장 아낀다는 단풍 짙은 가을과 벚꽃 흩날리는 봄 교토에서 동주도 행복했을까?  (42쪽)

 

  [ 동주. 일본의 심장에서 부활 ]

  동주는 교토제국대학 입학시험에 낙방 후 도쿄 릿쿄대학에 입학한다. 2019년 2월 17일 릿쿄대학 예배당에서 열리는 '시인 윤동주와 함께 2019' 행사를 찾으며 도쿄 걷기가 시작된다. 벌써 열두 번째 열리고 있는 동주의 추도식. 동주가 눈 감은 1945년 2월 16일 날짜와 기독교인이었던 동주를 생각한 세심한 배려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일본의 심장에서 부활하는 동주에 놀라워 하는 저자다.

  체포기록으로 남아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었던 교토의 하숙집과는 달리 도쿄의 하숙집 찾기는 그야말로 동주에 대한 애증과 기억의 파편들로 찾을 수 있었다는 저자다.  기록도 없는 동주의 도쿄 하숙집을 고증한 인물이 누굴까.

  한 학기밖에 다니지 않은 릿쿄대학에서 동주를 추모하고 <동주 시 읽는 모임>을 이끄는 '야나기하라 야스코' 여사가 그 주인공이다. 윤동주 연구에 크게 기여한 릿쿄대학 후배. 그녀는 지금도 체포 당시 압수되었던 동주의 소장 책과 원고 찾는 활동을 하고 있다. 단서는 동주가 남긴 사인이다. 동주는 책에 사인을 반드시 남겼다고 한다. 하숙집 찾기의 사연.

  내 기억에도 남아 있는 통일꾼 문익환 목사와 황석영 선생의 1989년 북한방문기. 정부의 허가 없이 방북하였으니 당연 귀국 후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그때 그 일. 동주 하숙집 찾는데 이 사건이 무슨 연관이 있겠냐 하겠지만, 이 방북 기간 중 당시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위원장을 역임한 백인준을 만났고 그 자리에서 자신이 릿쿄대학에서 유학할 때 동주와 같은 하숙집에 있었다고 증언한다. 이를 소중히 여긴 NHK '다고 기치로' 피디는 추도사업을 벌이고 있는 '야나기하라 야스코' 여사에게 알리고 그녀는 백인준 학적부에 적힌 주소지를 확인하기에 이른다. 아울러 학창 친구인 고 문익환 목사가 방문했던 동주 하숙집에 대한 증언도 보탠다. 2층집 2층 6조방

'문학 교사로서 동주를 가르치고, 동주를 사랑하는 한 독자로서 그를 배우고, 그의 자취를 따라 걸었던 그 어떤 곳보다 주소지 숫자로만 남은 이곳 도로 하숙집 인근에서 나는 가장 서러웠다. 비는 내리고, '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옥첩방은 남의 나라'라고 쓸 때 동주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쓸쓸했을까, 부끄러웠을까. 이제야 동주의 마음자리 끄트머리에 겨우 닿는 기분이었다. (83쪽)


   [ 동주를 통곡하며 ]

  저자는 동주의 마지막 후쿠오카형무소를 걷기 전 근처 바닷가를 먼저 찾는다. 감방에서 동주가 어쩌면 파도 소리를 들었을까. 이렇듯 후쿠오카를 걷는 저자는 이전에 걸었던 곳과는 다른 심정이다. 동주의 생명과 죽음이 공존했던 후쿠오카다. 형무소 근처 바닷가는 지도에 녹색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소나무가 많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작게 표시된 글씨 '火葬場 화장장'.  바로 동주의 육신이 뼛가루가 된 곳. 징역 2년을 선고 받았으니 1945년 11월 30일이면 출감했을 동주. 그러나 해방을 반년 앞둔 1945년 2월 16일 새벽 3시 36분 파도 소리가 들렸을 일본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의문사했다. 지금은 형무소가 사라지고 구치소가 들어선 자리. 여느 걷기와는 달리 저자는 이곳으로 가지 못한다. 알 수 없는 몸서리. 다만 카메라로 담을 뿐이다. 흐느끼면서.

  동주의 시신을 수습하러 먼 길을 온 동주의 아버지는 아들을 뒤로하고 산 사람부터 찾는다. 그의 사촌 송몽규. "저놈들이 주사를 맞으라고 해서 맞았더니 이 모양이 되었고 동주도 이모양으로......" 동주의 공식적인 사인은 '뇌일혈(뇌출혈이 두개골 내에서 일어남)'이지만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것이지 사실이 아니라는 저자다. 그리고 주목하는 몽규의 증언 '이름 모를 주사'. 한국 문학을 전공한 '고노 에이치는'  『바다와 독약』이라는 전쟁 말기 일본의 실제 생체실험을 소재로 한 소설을 바탕으로 다른 주장을 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은 부족한 혈액 생성에 도움이 되는 식염수에 대한 생체 실험을 하였고 부족한 식염수를 대체할 용도로 바닷물을 인체에 주입하는 실험을 하였다. 아무리 깨끗한 바닷물이라도 미생물이 뇌혈관으로 간다면 뇌일혈을 일으킬 수 있다는 합리적 추론. 이름 모를 주사는 바닷물일까. 후쿠오카에서의 걷기에는 더없이 힘 빠지고 슬퍼하는 저자다. '죽는날 까지.........' '죽는날 까지 한 점.........'

  저자는 후쿠오카에서 마지막으로 히젠도를 보관하고 있는 구시다신사를 찾는다. 히젠도는 '一瞬電光刺老狐 (늙은 여우를 단칼에 찔렀다)' 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는 일본도다. 한 나라의 국모를 살해한 후 이를 기념하여 새겼다는 문구. 조선말기 설령 그녀가 나라의 질서를, 일파의 이익만을, 백성을 도탄으로, 외국 군대를 끌어들여다 하여도 민비가 일본인 자객 손에 죽어야 할 이유는 없다. (칼은 공개하지 않는다는 안내 문구의 사진.)

'동주가 문학 공부의 꿈을 안고 도착했고, 3년 후 아버지가 동주의 유골단지를 안고 떠난 시모노세키항 인근에는(...) 이토 히로부미가 대한제국의 국교를 빼앗기 위한 교섭을 위해 하얼빈으로 가기전 하룻밤 묵은 '슌반로우'가 있다. 그날은 이토가 구국에서 잠든 마지막 밤이다. (...) 일본으로 향한 뱃길은 문명과 교류의 길이었고, 조선으로 향한 뱃길은 야만과 침략의 길이었다. 동주와 동주 아버지의 시모노세키 입출항이 그것을 거듭 상징한다. (130쪽)

 

  다시 저자는 동주의 고향인 북간도 명동과 룽징을 걷는다. 두만강을 사이에 둔 동주의 고향 명동. 동주의 묘가 있는 룽징. 동주의 묘 찾기에 또 한 명의 일본인 이야기. 가족이 룽징을 떠난 40년 동안 동주의 묘는 방치되었다. 동생 윤일주 교수는 일본의 한국 문학 연구자인 '오무라 마스오'교수에게 한 장의 약도를 건네주게 된다. 중국과 수교전이라 동생을 대신하여 그가 나선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찾은 동주의 묘. 두만강의 물고기와 남쪽의 명태, 제기를 빌려 한국의 전통 방식으로 해방후 최초로 동주에게 제사를 올린 일본인. 우리를 대신하여 소중한 일을 한 '오무라 마스오'교수. 그는 동주 묘를 발견한 게 '하필 일본인'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끝으로 저자는 언제라도 편하게 동주를 따라 걸을 수 있는 서울을 걷기 시작한다. 동주에게 가장 빛났던 그의 모교 연세대를 시작으로 서울을 걷고 유일하게 걷지 못하는 평양에서의 숭실중학 시절은 문익환 목사의 증언에 의한 상상으로 걷는다. 명동학교와 은진중학을 거쳐 숭실까지 같이 공부하였던 문익환 목사. 숭실 시절의 동주는 문목사의 증언과 함께한 사진으로 담았다. 모자를 바꿔쓴 에피소드가 있는 사진 한 장. (뒷줄 오른쪽이 동주, 가운데가 문목사)

"동주 묘소 앞에 서면 다들 말이 없다. 헌화도 하고 술도 한 잔 올리고 묵념도 하고 동주의 시도 낭송하고 사진도 찍고 해도 마음 한편이 부끄럽다. 동주가 당당하게 살았던 망국의 때를 생각하면 어쩐지 우리는 너무 안일하게, 너무 염치없게, 너무 무심하게 산 것 같아서다. (184쪽)

 

  여기까지 글을 내리고 보니 사진이 들어서인지 어색한 독후기 같다. 게으른데다 더구나 휴대폰에 붙은 카메라 액정까지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찍고 첨부하였다. 사진은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이어서 화질이 안 좋아도 어쩔 수 없었다. 거의 모든 페이지에서 사진과 함께한 동주 걷기다. '정보로통신' 실력이 형편없는 나로서는 큰 노력이자 시험이었다.

  내가 왜 이랬을까.

  흔하디흔한 표현이겠지만 이 책에서 얻고 느낀 바 크기 때문이다. 달리 독후기를 표현할 게 없다. 실제 책의 후반부 북간도와 서울을 걸을 때는 반나절 걸리는 개인 일을 핑계 삼아 회사를 쉬었다. 그러고는 일을 본 다음 오롯이 다시 저자의 걸음을 따라 걸었다. 동주를 걷는 저자의 답사는 철저히 동주와 같은 걸음이다. 동주의 동선을 따라 이쯤에서 올려다볼 하늘을 보기도 했고 이쯤에서 봤을 교회 첩탑, 후배와 들렀을 책방, 산책했을 숲길, 하숙집과 기차역 사이의 동선에서 마주할 만한 건물들까지. 저자는 정말이지 '동주 바라기'다. 잠시 '동주 덕후'라고 표현을 할 뻔했다. 요즘은 아주 긍정적인 표현으로 쓰이는 '덕후'지만 그 어원이 일본어 '오다쿠'에서 나왔음을 생각한다면 이 글에서만큼은 피해야 한다. 죽는 날 까지 자신의 시가 일본어로 쓰이기를 타협하지 않았던 동주였지 않았나.

  평소 책에서 깨침이 있거나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나올 때 책 귀퉁이를 살짝 접는 게 나의 책 버릇이다. 이 책은 처음 한두 장 접어 나가다가 내려놨다. 그냥 저자의 동주 걷기에 나도 따라 걸었다. 동주의 생애를 알았고 역사를 알았다. 그가 쓴 시, 수필은 머리가 아닌 그의 세포 사이마다 간직해서 나온 한 글자 한 문장임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동주의 첫 사진도 교복이요, 마지막 사진에도 교복이다. 죽을 때까지 학생이었던 동주. 아! 이 느낌 달리 더 표현할 길 없는 나의 미천한 글재주여. 아! 실천고픈 인식이여, 절름발이 책 읽기여.    천천히 걸었지만 가슴은 가쁘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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