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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 살았던 두 여성의 사랑과 우정 | 뮤진트리의 여인들 2020-06-02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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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와 버지니아

세라 그리스트우드 저/심혜경 역
뮤진트리 | 2020년 06월

 


20세기 초 비범한 작가이자 친구, 연인이었던 비타 색빌-웨스트와 버지니아 울프.

시싱허스트 캐슬과 멍크스 하우스라는 각자의 공간을 중심으로 두 사람이 평생에 걸쳐 나눈 열정적인 사랑, 그리고 영원한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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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를 위한 청원 | 지금 이 책 2020-04-2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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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 허스트베트의 작품을 여덟 권째 출간한다. 소설 네 권, 에세이 네 권으로, 이번 책 에로스를 위한 청원은 네 번째 에세이다. 허스트베트의 글 스타일, 예술에 대한 지식, 정신분석·철학 등을 아우르며 주제를 펼쳐나가는 그 심도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독서의 기쁨을 기대할 만한 책이다. 문장 자체의 아름다움, 단어를 선택하고 사건을 묘사하는 방식의 정교함, 감정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각들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매혹적인 도발이 변함없이 제 자리를 빛내며 우리를 끌어당긴다.


 

에로스를 위한 청원에는 총 12개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역시나 주제가 다양하다. 한 개인과 그를 만든 장소, 나와 타인, 욕망과 에로스, 개인적이면서 몰개성적인 말들, 여성과 남성에 관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그 경계를, 그 모호한 사이를 깊이 바라보고 있는 시리 허스트베트를 만나게 된다. 그곳은 우리를 감싸고 있는 모든 것의 경계이고, 그 개념들을 가장 예술적인 방식으로 표현해내는 허스트베트가 바라본 사이.

 

글의 주제가 자신이 성장했던 미국 중서부 미네소타의 시골이든, 복장도착증이든, 아니면 유명 작가의 소설이든, 인문학자이자 소설가인 허스트베트의 에세이는 어느 것도 쉽게 지나칠 수 없다. 그녀는 늘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을 보고, 그곳에 드리운 빛의 이면을 바라본다. 이 책에서도 역시 가벼운 터치와 완벽한 명료함으로 그녀는 문학과 삶 둘 다를 가리는 문화적 편견을 벗겨내고, 작가라는 존재들에게 필연적으로 내재하는 다중인격을 탐구한다.

 

20세기의 여성이 코르셋을 지지하고, 남자가 되어보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논하고, 이 시대에 에로스를 변호하는 것이 가능한가? 허스트베트라면 가능하다. 여성과 마찬가지로 남자 역시 성적인 대상이고, 성적 감정과 애정은 엄밀히 다른 것이며,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중성이 존재하고, 욕망의 난투극 뒷면에는 경계가 불분명한 영토가,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꿈과 소망의 국경지대가 있음을 간파하고 있기에.

 

이 책의 제목과 같은 글 <에로스를 위한 청원>에서 허스트베트는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누군가와 구분되는, 어떤 마술적인 매혹을 두른 존재로 만드는 건 그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철저히 비이성적이고,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상상의 소산인, 마법에 걸린 공간이라고 주장한다. 에로틱한 매혹이 사라지지 않는 건, 여전히 닿을 수 없는 면이, 낯설고 나를 밀어내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여성에게 유익하지않은 문화적 형식을 전복하기를 원하면서도, 성적 흥분의 문제를 큰 용기를 내어 제대로 다루지는 않는 미국 페미니스트 담론을 예로 들며, 허스트베트는 에로티시즘은 성적 자유와 동일하지 않고, 법적으로 간단히 해부하고 규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심장의 문제에서 벌어지는 항구적인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내어주는 모호성과 신비를 잃지 말 것을 간원한다.

 


허스트베트는 이 책 에로스를 위한 청원에 담긴 여러 편의 에세이에서 자신의 분절된 자아에 대해,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그녀를 작가로 다듬어갔는지에 대해 엄중하고 정직하게 써 내려간다. 또한,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피츠제럴드, 찰스 디킨스, 헨리 제임스의 작품들에 관해 흥미로운 통찰과 깊은 이해로 이야기한다.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 허스트베트는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아닌가, 라는 문제를 논한다. 평범한 세계를 요정의 숲으로 바꾸는 피츠제럴드의 밀도 높은 형용사의 매혹에 사로잡히고, 상투성의 화신처럼 보이던 머틀이 티슈페이퍼에 싸서 서랍 속에 넣어둔 개목걸이에서 심오한 슬픔을 읽는다. 그들의 언어가 다 표현하지 않은 저변까지 들여다보는, 허스트베트의 철저한 읽기가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보스턴이라는 황막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 소설 보스턴 사람들을 쓴 헨리 제임스에 관해서는, “헨리 제임스는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경험을 언어로 포착하고 수수께끼 같은 인간의 감정과 행동을 명확히 표현하는 일이 가슴 저미게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것이야말로 정확히 그가 추구했던 야심이었고 나는, 그의 충실한 독자 중 한 명으로서, 그래서 그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지적이고 사변적인 동시에 열정적이고 에로틱한 허스트베트의 글들은 텍스트와 주체 사이에서 작용하는 에로틱한 긴장이 문학과 예술, 나아가 인간성의 심도深到를 어느 경지까지 확보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실험이다. 길거리의 노숙자라도, 대도시에서 스치는 타인도, 어머니와 분리불안을 겪는 어린아이도 충분한 애정을 가진 독해자 앞에서는 자기만의 이야기대단하고 풍요로운 내면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좋은 독자(문학적 교양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자질이다)는 스스로 채워 넣을 여백을 원한다. 독자는 누구나 자기가 읽는 책을 쓰고, 거기 없는 것을 공급한다. 그 창조적인 발명이 그 책이 된다.”고 믿는 허스트베트의 자전적이고 비평적인 에세이들을 묶은 이 책은 나와, 나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타인에 관한 이야기이자, 그런 두 인격이 함께 살아가는 장소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말로 다 표현되지 못하는 이면을 헤아리게 하고, 모든 개념의 사이에 있는 회색의 영역을 바라보게 하고, 에로티시즘이 우리에게 주는 마술 같은 매혹을 잊지 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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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헨델 | 예술의 나무 2020-03-10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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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 속에서 위대한 음악은 번창한다.”

30년 이상 런던을 음악으로 지배했고, 영국의 국민음악가가 된 헨델. 그가 남긴 진정한 유산은 70편이 넘는 극작(오페라와 오라토리오)을 비롯해 종교 음악과 세속 칸타타, 기악곡, 건반 음악 등의 작품일 것이다. 52세에 뇌졸중을, 66세에는 시력 상실을 겪으면서도 삶의 마지막까지 음악에의 끈을 놓지 않았던 놀라운 창작에의 의지와 회복력은 그가 남긴 정신적 유산이다.

그는 작곡뿐만 아니라 불후의 명작을 공연하는 면에서도 최고의 전문성을 보여주었다. 가수에 대한 평가와 팀 구성, 재능 있는 예술가에게 더 높은 기준을 제시한 방식, 그 많은 음악을 직접 리허설한 것, 작품의 시각적 요소가 음악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무대와 공간을 중시한 점 등, 그가 모든 면에서 영감을 발휘하고 최고 수준의 기준을 치열하게 추구한 점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헨델의 오페라 집중 탐구

17세기 이탈리아 오페라 전문가이자 지휘자이며 영국 BBC에서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저자 제인 글로버가 헨델의 런던 시절과 그의 오페라 작품들에 관한 이야기를 매우 흥미롭게 풀어냈다. 세계 여러 곳에서 헨델의 오페라와 오라토리오를 지휘했고 <메시아>의 경우 100회도 넘게 공연한 헨델 음악 전문가인 저자는 18세기의 사회적·정치적 맥락에서 헨델의 작품을 분석하고 세부적인 역사적 사실까지 주목함으로써, 헨델의 런던 시대를 매우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헨델이 무엇보다 사랑하고 편안함을 느꼈던 분야, ‘오페라

헨델에게는 일찍부터 오페라의 맛을 보여주고 매력을 느끼게 해준 사람들이 여럿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향 할레 시절 친구이자 작곡가 게오르크 필립 텔레만, 헨델에게 오페라를 작곡해보라고 격려했던 함부르크 겐제마르크트 극장 지휘자 라인하르트 카이저, 동료 작곡가이자 다재다능한 음악가 요한 마테손이 그들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헨델을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로 초대한 토스카나 대공의 아들도 있었다. 제인 글로버는 헨델이 함부르크의 오페라하우스에서 연주자로 활동하며 여러 사람을 만난 그 시기를 그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장소에 있었다고 표현한다.

 

헨델의 호기심 많고 활달한 성격도 그가 기악곡보다 오페라에 끌렸던 데 한몫을 했던 것 같다. 이탈리아에서 머문 4년 동안 헨델은 이탈리아 전역의 우수한 오페라 공연을 즐기며 이탈리아 가수들에 대해 배우고 동료 및 지지자들과의 인맥을 구축해나갔다. 그러한 자산은 훗날 헨델이 런던에서 오페라를 작곡하고 무대에 올리는 작업에 귀중한 자양분이 되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헨델은 오페라를 위해 살았고 그의 모든 대외적 활동은 오로지 오페라의 성공을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오페라를 좋아했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십 대 초반에 이미 오페라에 관해 상당한 경험과 작곡가로서의 경력을 만들었고, 삼십 대부터는 매년 거의 두 편 이상의 오페라를 작곡한 것을 보면 열정과 실력 중 어느 것이 더 앞섰다고 말하기조차 어렵다. 더구나 직접 해외에까지 가서 가수를 발굴하고 훈련하고, 오페라단 단장까지 맡아 작곡가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총감독의 역할을 해냈던 그 세월을 책을 통해 따라가다 보면, 헨델이 창작에의 대단한 의지와 무한한 에너지를 지닌 음악인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영국인들이 보는 헨델, 영국 음악의 기준

영국인들이 게오르크 프리드리히가 아니라 조지 프리데릭으로 부르는 헨델. 스물다섯에 <리날도>로 화려하게 데뷔한 이래 연달아 걸작 오페라를 작곡해서 런던에 이탈리아 오페라를 뿌리내리게 한 작곡가. 50여 년의 세월을 런던인들과 함께했고 영국 음악의 기준이 된 음악인. 영국인들이 헨델을 어떻게 여겼던지는 글로버가 묘사한 헨델의 장례식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헨델의 장례식은 420일 금요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되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시즌마다 자주 노래를 불렀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세인트 폴 대성당, 왕실 교회의 성가대가 크로프트의 장례 음악을 노래했다. 로체스터의 주교이며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주임사제였던 재커리 피어스 박사가 예배를 진행했다. 런던 이브닝 포스트‘3,000명 이상의 사람이 장례식에 참석했다고 보도했고, 유니버설 크로니클도 동의했다. ‘한 유명인을 기리기 위해, 주교 등 성직자들과 모든 합창단이 참석했다. 또한 모든 계급의 사람들이 엄청난 규모로 모였다.’”

 

또한 제인 글로버는 헨델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 관여한 찰스 버니 박사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영국인들에게 헨델이 어떤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강조한다.

헨델은 영국 태생은 아니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영국 국민을 위해 썼다. 그는 50년 이상 영국 국민의 취향을 발전시키고, 교회와 극장 그리고 음악실에서 영국인들을 즐겁게 해주었으며, 다양한 종류의 훌륭한 음악을 영국인들에게 소개했다. 유행이 아니라 인간적인 정서가 박수갈채를 이끌었고, 영국인들은 다른 기준을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았다.”


[런던의 헨델] 저자 제인 글로버는 헨델의 음악에 대해 정통한 전문가답게, 전기적 삶의 기록에 음악적 분석을 능숙하게 엮어내며 사회적·정치적 맥락에서 헨델의 작품을 다뤘다. 다른 장르에 비해 무대라는 현장성이 중요한 오페라 공연을, 그것도 300여 년 전의 상황들을 마치 실황 중계하듯 리얼하게 설명하고 풍부한 해설을 덧붙였다. 작품 하나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헨델이 고민하고 고려했던 수많은 요소도 소개했다. 그리하여, 헨델의 외적인 활동에 치우친 경향이 있는 우리의 시선을 독창적이며 영감으로 가득한 이 창조적인 예술가의 작업에 돌리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그의 선율에 좀 더 귀를 기울이게 한다. 그리고, 궁금하게 만든다. 18세기 초에 헨델이 런던으로 옮겨오지 않았다면, 영국인들은 음악이라는 지적인 즐거움을 누구한테서 구할 수 있었을까? 헨델이 없었다면 이후 영국 음악의 역사는 어느 방향으로 흘러갔을까?



 

런던의 헨델

제인 글로버 저/한기정 역
뮤진트리 | 202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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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닝 만켈의 소설 [바람의 기록자] 출간 | 문학의 나무 2020-01-19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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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차게 내리던 비가 그치고

열대의 밤하늘에 보름달이 뜬 어느 날 새벽,

한 발의 총성이 정적을 깨뜨린다.


빵 가게에서 밤 근무를 하던 제빵사 조제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어두운 극장으로

 뛰어 들어가고, 아무도 없는 텅 빈 무대 위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한다.

거리의 아이 넬리우,

사람들이 모두 대단한 아이라고 말하는 넬리우.



홀로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던 넬리우는 조제에게 자신을 건물 지붕으로 데려다 달라고 말한다. 자신이 죽을 거라는 걸 아는 그 아이는 병원 치료를 거부한 채, 남은 시간 동안 조제에게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열 살도 채 안 된 그가 왜 가족을 떠나 거리로 나왔는지

그가 겪은 고통의 비밀이 무엇인지

거리 아이들의 리더 역할을 하며 그가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던지, 그리고,

단순히 살아남는 것과 살아남는 것 이상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를.


사람들이 나를 잊을까 두려워서 그러는 건 아니에요,

당신들이 누구인지 스스로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예요.”_ 17p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저 유달리 약삭빠른 능력으로 자신을 보전할 줄 아는 동물이 아니라, 가치와 원칙에 영향을 받는 삶을 살아가는 인간'1)에 관한 소설.

헤닝 만켈 [바람의 기록자]


 

바람의 기록자

헤닝 만켈 저/이수연 역
뮤진트리 | 2020년 01월

 



1)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의 '조지프 프랭크의 도스토예프스키' p335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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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기억 안 나지만 표지는 파란색이에요 | 지금 이 책 2019-12-18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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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서점들이 도서 판매 시장을 점령한 상황에서도 동네 서점이나 책방이 많아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서점들이 안정적인 수익을 내느냐 하는 것과는 별개로 각자의 개성을 살린 서점, 책방들에 독자와 작가들이 모여들어 신선한 발상으로 일상을 한결 문화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온라인 서점에서 아주 손쉽게 책을 구매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서점에 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서점은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입니다. 온라인 서점과 달리, 한정적인 공간인 오프라인 서점은 그 책 너머로 다양한 사람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곳이죠. 서점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책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가는 장소라 할 수 있죠. 그러니 카페마다 분위기가 다르듯 서점 또한 어떤 사람들이 오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게 마련일 테죠.

엘리아스


시드니의 한 서점에 취직한 엘리아스는 나는 이제 비로소 고요하고 고상한 삶을 살 수 있겠군. 마침 문학 박사 과정을 시작했으니, 이거야말로 내가 잘 알고 사랑하는 상품을 파는 시간제 일자리야"라고 생각했습니다. 동료들과 번갈아 고객을 응대하면 되는 그곳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이라고 해봐야 제목은 기억 안 나지만 표지는 파란색이에요정도일 것으로 예상하며.

역시 서점은 편안한 장소였고, 여전히 인문주의적 품위가 보장되는 조그만 우주라고 여기며 그 아름다운 서점에서 수년 동안 고객들을 응대하다가 어느 날부터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고객들을 접하며 경험한 일들을 일기처럼 적기 시작합니다. 버릇없는 아이들에서 철없는 성인들, 책을 파는 서점에 와서 자신이 필요한 정보를 찾아달라는 연로한 부인, 지난 세월을 추억하는 노인들, 서점에서 파는 카드가 예뻐서 자주 들르는 슬픈 여인, 서점 문을 열기 전부터 문을 닫을 때까지 그들과 주고받은 동정과 위안과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들을.


 

 

차양모를 쓴 여자: 찾는 책이 있는데요. 제목은 기억 안 나는데, 상당히 독특한 데가.

: 어떤 내용인지는 기억하세요?

차양모: 한 프랑스 여자에 관한 건데, 그 여자가 마침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 책 있어요?”


엘리아스가 고른 111개의 다채로운 에피소드들을 따라 읽다 보면 고객이란 참으로 비합리적이고 요구가 많고 무례하고 예측할 수 없는 존재이면서도 또한 친절하고 사려 깊고 재미있으며 파토스로 가득한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나마 다루는 상품이 책이고 책과 관련된 상품인 덕택에, 카운터를 가운데 두고 마주한 고객과 점원 사이의 때론 위험천만한 대면에도 불구하고 서점에서는 최소한의 인문적 품위가 유지되고 있는 것일까요? 정말? 엘리아스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서점은 여타 소매업의 불합리한 상황들에서 조금은 빗겨 나 있을 거라는 추측과는 달리, 그것들이 오히려 도드라지는 편에 가까운 곳인 듯합니다.


엘리아스는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답게, 책에 대해 아는 것도 많습니다. 손님이 미래에 관한 옛날 책이라고만 말해도 바로 1Q84를 찾아주고, 웬만한 책들에 관한 정보는 다 꿰고 있고, 고객이 원하는 책을 잘도 골라 줍니다. 그야말로 책을 찾는 고객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책 전문가라 할 수 있죠. 그런 그조차 고객과 대화하는 일은 즐겁다가도 머리를 무겁게 하고, 도움을 주고 싶다가도 그를 멈칫거리게 합니다.


서점이 누구나 머물고 싶은 따뜻한 공간으로, 원하는 책을 발견하고 새로운 흥미를 만나는 공간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곁에 오래도록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객과의 대화들 사이사이에 감칠맛 나게 묘사된 엘리아스, 곧 서점 직원의 심리만 잘 헤아려봐도 그 답을 바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과 서점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엘리아스의 이야기들이 바람직한 공존을 위한 창의創意의 불씨가 되어줄 것을 기대해봅니다.



제목은 기억 안 나지만 표지는 파란색이에요

엘리아스 그리그 저/필립 마스든 그림/김재성 역
뮤진트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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