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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메이킹 스토리 1. 이것은 내 소설이다 | 김영하 style essay 2013-07-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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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내 소설이다

 

 

 


분명히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데 막상 인용하기 위해 구글링을 해보니 찾을 수가 없다. 내가 기억하기로, 한 편의 희곡을 쓰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는 어느 인터뷰어의 질문에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의 작가 에드워드 올비는 이렇게 답했다.  

"평생(All my life)."

멋진 대답이어서 누군가 웹에도 올려놓았음직한데 없다. 내 기억이 틀렸거나 의외로 사람들이 에드워드 올비에게 관심이 없거나, 둘 중의 하나겠지만 어쨌든 찾아내지는 못했다. 

 

한 편의 소설을 쓰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는 질문을 나 역시 받는다. "소설마다 다르다" 정도가 내가 생각해낸 최상의 대답이었는데, 대가 올비는 역시 달랐다. 짧고 분명하게 창작의 비밀을 요약한다:

All my life.

 

이번에 찾아본 또다른 인터뷰에서 올비는 좀더 친절하게 대답하고 있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어떤 희곡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됩니다. 다시 말해, 무의식적으로 그것에 대해 매우 오랫동안 생각을 한다는 것이지요. 그게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니까 희곡 한 편을 쓰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역시 모릅니다. 한번 내가 어떤 희곡을 구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나는 계속 그것을 생각하고, 그러다보면 그 생각이 다시 무의식 속으로 잠겨들었다가, 다시 의식으로 튀어오릅니다(pops up). 그러다 마침내 어떤 순간, 더이상은 그 생각을 무의식 속으로 되돌려보내고 싶지 않은, 의식 속에 머문 채 이것을 다루고 싶은, 어떤 지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때쯤에는 나는 내 인물들에 대해 좀더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내가 내 인물들을 얼마나 잘 아는지 가늠하기 위해 나는 좀 흥미로운 일을 해봅니다. 절대로 그 희곡에 넣지 않을 어떤 장면들을 떠올려보는 겁니다. 내 인물을 그 장면에서 오래 걷게 하고, 즉흥적인 대사를 하게 합니다. 그게 잘되면, 내가 내 인물들을 극에 투입할 수 있을 정도로 신뢰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알고 있는 겁니다. 그때부터 비로소 나는 집필을 시작합니다."

 

아내의 기억에 따르면 『살인자의 기억법』의 구상을 처음 들은 것은 10년 전, 우리가 마포구 성산동에 살던 시절이라고 한다. 나는 깜짝 놀라 묻는다.
"그렇게나 오래됐어?"
자신의 정확한 기억력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아내는 주저하지 않고 정확한 시점과 장소까지 특정한다. 그제야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그 10년 동안 뭘 했을까? 다른 소설들을 썼다. 『검은 꽃』 『빛의 제국』 『퀴즈쇼』 그리고 『너의 목소리가 들려』 . 네 권의 장편을 쓰는 동안에도 내 무의식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그대로 품고 있었다. 그러다 올해 초에야 그 이야기가 내 의식 위로 (올비 식으로 말하자면) '튀어올랐'다. 그러니까 이런 일들은 늘 이런 식으로 시작된다.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시간, 방바닥에 누워 이런저런 잡념에 잠겨 있다가 문득 생각지도 않은 택배의 방문처럼, 다음에 써야할 소설이 무엇인가를 단박에 알게 된다.

 

어쩌면 아버지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작년 가을 뉴욕에 머물고 있을 때, 아버지가 구강암 4기 진단을 받으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항암치료와 3차에 걸친 대수술이 이어졌다. 회복 역시 길고 고통스러웠다. 내가 귀국했을 때는 수술은 모두 끝났지만 오랜 마취의 후유증으로 섬망증세를 보이고 계셨다. 헛것을 보고 침대에서 벌떡벌떡 일어나고 사람을 잘 못 알아보셨다.

 

아버지는 백마부대의 일원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부상 한 번 입지 않고 무사히 복귀하셨고 그후로는 감기 한 번 앓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셨다. 치아마저 튼튼해서 얼마 전까지도 소주병 정도는 이로 따셨다. 그런데 환갑 직후 갑자기 뇌졸중이 찾아왔다. 뇌졸중은 명확한 인과관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보훈처에서는 고엽제, 일명 에이전트 오렌지의 후유증으로 폭넓게 인정해준다. 그 보상으로 소액의 연금도 지급한다. 아버지가 베트남에 있었을 당시에도 미군은 엄청난 양의 에이전트 오렌지를 공중 살포했고 어쩌면 아버지도 그것에 노출되었을 것이다. 고엽제의 또다른 후유증 중 하나가 후두암이다. 아버지는 구강암이지만 발견 당시 암덩어리는 편도선과 후두까지 뻗어 있었다. 고엽제 때문인지 평생 계속해오신 흡연 때문인지, 아니면 그밖의 다른 원인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보면서 당신 몸속에 있을지도 모를 죽음의 스위치를 떠올렸다. 후쿠시마의 방사능이나 베트남의 고엽제나, 언젠가 때가 되면 누군가의 몸속에서 죽음의 스위치로 작동하게 된다. 얼마 전 안젤리나 졸리는 이 죽음의 스위치를 아예 제거하기 위해 아직 아무 문제도 없는 자신의 유방을 모두 떼어냈다.

 

며칠 전, 대한민국의 대법원은 19년에 걸친 고엽제 소송의 최종 판결을 내렸다. 에이전트 오렌지의 미국 제조사를 상대로 베트남 참전 군인들이 낸 이 피해배상소송에서 법원은 '염소성 여드름'의 연관성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실상 패소한 것이다.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식물을 단번에 말려 죽이는 그 무서운 독이 인간에게는 오직 여드름만을 야기한다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마는, 증거가 불충분할 때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법의 정신에 비추어보면 법원으로서도 무작정 인과관계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에 고엽제전우회가 벌인 격렬한 시위들을 기억하는 경찰들이 겹겹으로 대법원 주변에 배치되었지만 이미 칠십 줄에 접어든 늙은 원고들은 이미 패배를 예감했던 듯 조용하게 법정을 빠져나갔다고 한다. 그렇다. 그들은 패자였다. 에이전트 오렌지 제조사에 진 게 아니라 시간에 졌다. 19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나는 동안, 고엽제의 직접적 피해로 죽을 사람은 이미 다 죽었다. 남은 이들은 지금 당장 세상을 떠나도 호상이라는 소리를 들을 나이가 되어버렸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제사로 쓰기도 했지만, 어쩐지 그 소설의 제사로보다는 이번 소설에 더 맞춤해 보이는 테르툴리아누스의 말이 떠오른다.

"오로지 태어난 것만이 죽으니, 탄생은 죽음에 진 빚이다."

 

죽음의 스위치가 어찌 방사능 피폭자나 고엽제 피해자 내부에만 있겠는가. 증권거래인들의 유명한 농담처럼, 우리는 '장기적으로' 모두 죽는다. 죽음은 바이러스처럼 우리 안에 잠복해 있다가 언젠가는 반드시 우리를 쓰러뜨린다. 혼미한 정신으로 병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내 안에 있는 또다른 스위치를 켰을지도 모른다. 무의식 속에 잠겨 있던 이야기가 의식 위로 튀어오르도록 말이다. 2013년 1월 12일의 일기에 나는 이렇게 적고 있다.
"새 장편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에드워드 올비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새 장편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을 깨달았다."

 

 

둘은 아마 같은 말일 것이다.

 

 

 

 

[예약판매]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저
문학동네 | 2013년 07월

 

 

▶ 『살인자의 기억법』 메이킹 스토리 EVENT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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