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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메이킹 스토리 3. 나밖에 쓸 수 없다. | 김영하 style essay 2013-07-1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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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밖에 쓸 수 없다

 

 

 

 

단편 「거울에 대한 명상」으로 등단은 했지만 『리뷰』라는 잡지가 정통 문예지가 아니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작품이 시원찮아서 그랬는지, 통 원고 청탁이 오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 「나는 아름답다」라는 단편을 써서 신생 문예지인 『문학동네』에 투고를 했다. 이틀 만에 연락이 왔다. 원고를 싣고 싶은데 그전에 얼굴을 한 번 보자고 했다.
당시의 ‘문학동네’는 혜화여고 인근의 우유보급소인지 신문보급소인지 하는 가게 2층에 세 들어 있는 작은 신생 출판사였다. 직원도 아마 7, 8명밖에는 안 됐을 것이다. 갔더니 편집위원들이 모여 있었다. 그때는 그들도 삼십대 초반의 젊은 평론가들이었다. 그중 한 사람이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사람을 너무 많이 죽이는 것 아닙니까?"

 

단 두 편의 단편에서 세 명이 죽는데, 그중 둘은 자동차 트렁크에 갇혀 죽고, 나머지 하나는 사람이 죽는 장면을 촬영하고 싶어하는 사진작가가 독살한다.
그 질문을 받고 '아, 문학계에서는 소설에서 사람을 많이 죽이는 것을 싫어하는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다. 어려서 탐독했던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 시리즈에서는 매 단편마다 최소한 한 명이 죽는다. 그런 소설에 익숙해서인지 내 소설에 살인이 빈번하게 등장한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눈이 예리한 그 평론가는 단 두 편의 단편만 읽고도 내 어떤 부분을 꿰뚫어보았던 것이다.

그 평론가의 말도 있고 해서 좀 자제할까 생각을 했지만 그후로도 그런 경향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는 세 명의 여성이 자살안내인을 만나 자살을 감행하는데 법적으로는 자살방조겠지만 문학적으로는 살인에 가깝다. 「내 사랑 십자드라이버」 「사진관 살인사건」 「크리스마스 캐럴」, 그리고 「비상구」까지 살인 사건들이 이어진다.

 

나는 왜 이렇게 살인에 관심이 많았을까.
살인에 관해 직접적으로 질문을 받은 일은 또 있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프랑스에서 출간될 때, 출판사 대표가 이메일로 질문을 보내왔다. "살인충동을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그 역시 소설의 자살은 자살이 아니라 살인이라는 것을 간파했던 것이다. 그리고 똑같은 질문을 며칠 전, 베를린에서 온 독일 기자로부터 받았다. 홍대 앞 카페에서 만난 그는 1998년의 프랑스 편집자와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15년 사이에 변화가 있었다. 1998년의 나는 정면으로 부인했고, 2013년의 나는 부분적으로 인정했다. 무엇이 나를 더 솔직하게 만들었을까. 아니, 솔직하게 만들었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을 뿐이다. 이십대의 나는 격렬한 공격성에 사로잡혀 있었다. 부수고 때리고 질주하고 욕하고 공격했다. 그런 내면에 살해충동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사람이 사람을 살해하는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앵무새는 다른 앵무새를 죽이지 않는다. 나무늘보도 다른 나무늘보를 죽이지 않는다. 인간은 다른 인간을 아주 자주 살해한다. 일간 신문의 사회면은 언제나 살인 사건으로 장식된다. 인류의 오래된 이야기들, 구약성서와 그리스‧로마 신화, 그리스 비극 등은 살해와 관련된 이야기로 가득하다. 왜일까? 인간이 앵무새가 아니라 영장류로부터 진화해왔기 때문에? 영원한 수수께끼다.
소설을 왜 쓰느냐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여러 대답이 나와 있다. 그중에서 요즘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답은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한 편을 써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여러 편을 오랫동안 써나가다보면 작가는 분명한 진실에 직면하게 된다. 지금까지 써온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살인이라는 주제와 나라는 작가를 떨어뜨려놓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살인을 제외한다면 내가 지금까지 써온 11권의 소설을 통해 가장 집요하게 건드려온 주제는 기억일 것이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는 자살안내인이자 소설가인 작가가 자살하는 이들, 곧 잊혀질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신 기록해준다. 『검은 꽃』은 1905년에 멕시코로 떠났다가 한일합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깨끗이 잊혀졌던 1033명의 이야기다. 그들은 완전히 망각되었고 세대를 거치며 멕시코 사회에 흡수돼버렸다. 『빛의 제국』은 남파된 뒤 20년이 넘은, 잊혀진 스파이의 하루를 다룬 이야기다.

 

왜 이렇게 기억이라는 문제에 집착하는가에 대해서는 개인사적인 필연이 하나 마련돼 있다. 내가 열 살 때 겪은 연탄가스 중독으로 거슬러올라가는 것이다. 새벽에 집주인에게 발견돼 어머니와 함께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고압산소통 처치를 받고 깨어난 후로, 내게는 그 이전의 기억이 없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이전의 기억을 상실했다는 것을 발견한 시점이 내가 작가가 된 이후라는 것이다. 작가가 되자 나도 다른 작가들처럼 유년의 기억에 대해 쓰고 싶었다. 그러나 없었다. 내 기억은 둑에 다다른 나룻배처럼 어느 순간까지만 거슬러올라가다가 멈춰버렸다. TV 드라마에서 보면 기억상실이란 참으로 간단하고 편리하고, 심지어는 우아한 사고처럼 보인다. 약간의 충격이 가해지면 마술처럼 사라졌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화상처럼 보기에 끔찍한 사고도 아니어서 아름다운 주인공들이 겪기에 적당한 일처럼 보인다. 실제로 겪으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몽타주처럼 과거의 기억이 플래시 터지듯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사라지는 TV 드라마 같은 일은 겪어보지 못했다. 나는 기억을 잃었고, 기억을 잃었다는 것 자체를 모른 채 살았다. 즉 망각을 망각했던 것이다. 유년의 기억, 즉 과거의 어떤 부분이 깡그리 없다는 것은 자아에 대한 확신을 불가능하게 한다. 게다가 나처럼 직업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1년에 한 번씩 거주지를 바꿨다면, 그래서 고향이라는 것도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는 거슬러올라가 나 자신의 기원을 확인하거나 거짓으로라도 재구성할 방법이 없다. 우리 가족이 살았던 슬라브지붕의 장교용 관사들, 날림으로 지은 셋집들은 모두 접근 불가능이거나 헐려 버렸다. 나는 단 한 명의 초등학교 동창생 친구도 없다. 그들은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 유령처럼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내가 결국 소설가가 되고 만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처럼 보인다. 문학, 특히 소설은 기억의 예술이다. 누군가의 유명한 말마따나 소설은 황혼에 쓰여지는 것이다.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많은 소설가들이 기억의 문제와 씨름했다는 것, 소설의 바로 그런 부분에 내가 언제나 매료된 것 역시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이 모든 개인사적 필연 속에 제목이 결정되었다: 살인자의 기억법.
일기에 따르면 2013년 3월 21일부터 제목을 궁리하기 시작한 것으로 되어 있다. 탈락한 후보들은 다음과 같다.

 

푸른 수염
칼과 뼈
나를 잊지 말아요
아포리즘을 사랑한 살인자
시인―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너무 오래 사는 위험
신부의 아버지―어느 살인자의 고백
내 고통엔 자막이 없다

 

이미 정해져서일까. 아무리 봐도 『살인자의 기억법』이다. 다른 제목은 생각할 수 없다. 문득 이런 장면이 떠오른다. 오랫동안 자기 가게를 준비해온 요리사가 마침내 새로운 식당을 오픈한다. 메뉴를 정하고 인테리어를 하고 같이 일할 직원을 뽑는다. 모든 준비를 마친 그가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바로 간판을 거는 일이다. 간판이 제대로 걸렸는지를 보기 위해서는 몇 발짝 뒤로 물러나야 한다. 요리사는 그렇게 한다. 지금의 내 마음이 딱 그와 같다. 제목을 붙이면서 모든 것이 끝났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꿈에 부푼 요리사와 달리 작가는 자신이 쓴 소설로부터 즉시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가는 이런 직업이다. 

 

 

 

 

 

 

[예약판매]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저
문학동네 | 2013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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