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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이 되었다. 용서받을 수 있을까 | 2019-08-1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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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카시지

조이스 캐럴 오츠 저/공경희 역
문학동네 | 2019년 07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스릴러로 시작해서 눈물겨운 인간애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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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 캐럴 오츠의 <카시지>는 656쪽이라는 만만치 않은 분량에도 막상 읽기 시작하면 마구 '달리게' 하는 소설이다. 유복한 집안의 19살 소녀가 사라진다. 그 소녀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은 한 이라크 참전 군인과 옥신각신 하는 장면. 그들이 함께 탄 것으로 추정되는 차에는 혈흔이 남아있다. 상병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총 3부로 구성된 글은 소녀, 소녀의 아버지, 어머니, 언니, 상병 등 여러 사람의 시점에서 쓰여졌다. 그들은 각자 나름의 상황과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사건인 것처럼 보였던 소녀의 실종은 여러 사람의 시선을 거칠수록 복잡한 사정과 심리를 보인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왜 그랬을까?

 

 

1부는 긴박감 넘치는 스릴러의 특성을 보이면서도 등장인물에 대한 애잔한 마음을 동시에 불러일으켜서 푹 빠져들었다.

 

 

 


M. C. 에스허르 (에셔)의 '상승과 하강'

104

 

 

등장인물들은 에스허르의 그림처럼 열심히 올라가지만 알고 보면 내려가고 있고 열심히 내려가지만 다시 올라가고 있다. 어디로 움직이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잘 해보려는 노력은 끝이 없고, 그 결과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흡인력에 2부까지 쭉쭉 읽어나가다가 어느 순간, 탁, 맥이 풀렸다. 드디어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2부 초반만 해도 소녀의 사정에 엄청난 비밀이 있는 것 같아서 무척 긴장감이 고조되었는데,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알고 보면 별 것 아니었다. 사랑. 사랑때문이었다.

 

 

사람은 존재하려면 어느 한 사람에게 절절한 사랑을 받아야 한다.

454

 

자존감이 낮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졌나, 싶어서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계속 읽어야하나 잠시 위기에 빠졌다. 도대체 몇 명 인생을 망친거야?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사람에게 사랑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는가? 인용문구처럼 사랑은 사람을 존재하게 한다. 사랑은 뒤를 보며 눈물 짓게도 하지만, 옆을 보며 웃게도 하고, 결국 앞으로 한 걸음씩 걸어가게도 한다. 내가 있을 곳을 알려주는 것이 사랑이다. 게다가 프롤로그에서 이미 밝혔지 않나.

 

 

나를 사랑해주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사라진 이유였다. 열아홉 살. 내 인생을 주사위처럼 던진 것이다!

11

 

 

2부 중반부터는 스릴러라기보다는 심리소설이다. 아니 어쩌면 철학을 다룬다. 죄를 지은 인간이 속죄할 수 있는가, 어떤 벌을 받아야 하는가, 용서할 수 있는가, 용서해야 하는가,인간의 운명은 정해져있는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 등 등. 잠시 책을 읽는 속도가 느려졌지만 이내 다시 제 속도를 찾았다. 하지만 읽어나갈수록 내 머리 속도 복잡하게 엉켜갔다. 소녀 크레시다는 책에서 내내 '똑똑한 아이'라고 표현되지만 내게는 그저 '어리석은 아이'로 보였다. 이 아이 하나때문에 이 많은 일들이 벌어진 것이 화가 나고 다른 인물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 감정들이 휘몰아쳐서 이성적으로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그나마 마지막 줄리엣(소녀의 언니)의 글이 그런 감정들을 다독여주었다. 그녀의 증오와 용서에 대한 심정이 내 마음과 비슷해서 마치 작가가 '그래, 너도 이런 느낌이지? 나도 알고 있단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격앙된 감정을 살짝 떼어내고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두꺼운 책이지만 한 번 더 읽었다. 처음 읽을 때는 크레시다의 이유가 실망스럽고 해결 과정이 성에 차지 않아서 마음 한 구석이 찜찜했다. 2부 중반까지 달리게 했던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흡인력이 아까웠다. 그러나 두 번째 읽으니, 비로소 이게 맞다고 느꼈다. 이런 결말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 언제까지 괴로움에 빠져 그 자리에 머무를 수는 없다. 시간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흘러가듯이 우리의 시간도 마음도 움직인다.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갈등 속에서도 끝내 용서의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 용납되는 이유는, 차마 진정한 용서를 바랄 수 없다는 걸 아는 깊은 참회가 전제하기 때문이다.

 

<카시지>는 전반적으로 기독교적인 사상이 깔려있는 책이다. 원죄를 말하고, 용서와 구원을 말한다. 비극 속에서 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은 가득해지지만, 결국에는 용서와 치유의 가능성을 넌지시 비춘다.

 

 

 

1. 숨

 

<카시지>에는 유독 '숨'에 대한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각다위가 속눈썹에 달라붙거나 눈이나 입에 들어가면 특히 끔찍했다. 각다귀떼 속에서 숨을 쉬는 것은 더없이 끔찍했다.

그러나 숨을 멈출 수는 없다. 멈추려 해도 폐가 알아서 호흡한다. 멈추려 해도.

12

 

다행이야. 이제 우린 다시 숨쉴 수 있게 됐어.

93

 

"(...) 그는 눈을 꾹 감고 숨을 참으려고 입도 꾹 다물었죠. 일부러 숨을 안 쉬려고, 질식하려고, 숨을 끊으려고 애썼던 겁니다. 하지만 불가능했죠. 숨을 쉬려는 본능이 너무 강하니까요. (...)"

386

 

기적이 나를 구한 거야.

숨이 막히고 목이 조여 뇌 속 산소가 소진되려던 순간, 지푸라기 하나가 입이나 콧구멍에 쑥 들어와 숨을 쉬게 된 사람에게 그 사실 - 숨을 쉰다는 것 - 보다 놀라운 기적은 없다.

424

 

 

 조이스 캐럴 오츠는 스스로 질식하려 해도 사람은 저절로 숨을 쉬게 된다고, 두 번이나 강조한다. 인간의 살려는 의지를 보여준다고 느꼈다. 아무리 밑바닥까지 내려와 죽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저절로 숨을 마시고 뱉는 행동조차 수치스러워 한층 더 괴롭더라도, 인간은 끝내 숨을 쉬게 된다. 살아있다면, 어쩔 수 없는 본능. 살려고 한다. 그래서 생명은 그 자체로 존귀한 게 아닐까.

 

 

2. 속죄와 용서

 

<카시지>에는 '수치', '죄책감'이라는 단어도 자주 등장한다. 특히 가장 중요한 인물인 소녀 크레시다와 상병 브렛은 끊임없이 수치스럽고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크레시다는 못생기고,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 수치스럽다. 자신때문에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망친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브렛은 소녀를 구하지 못한 것이 수치스럽고 죄책감을 느낌다. 기독교에서 원죄를 말하며 인간에게 수치스러움과 죄책감을 말하듯이 맹자도 수오지심(羞惡之心)을 말한 것이 떠올랐다. 너무도 죄스럽기에 죽었지만 죽지 않은 상태로 살아가는 두 사람. 그들은 절절하게 참회한다.

 

저를 도우소서,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어둑어둑한 선한 도둑의 교회에서 일그러진 얼굴로 무릎을 꿇고 영혼을 구제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은 미친 짓이 아닌 것 같았다.

한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다.

556

 

나는 그들의 사랑을 죽였고, 진정한 용서를 바랄 수 없다.

나는 그 사실을, 진정한 용서를 바랄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654

 

사실 나는 브렛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우연히 잘못된 장소에 있었을 뿐이고, 오히려 구하고자 노력했을 뿐인데 왜 그가 그렇게 괴로워하고 큰 벌을 받고, 용서를 빌어야하는지 모르겠다. 그가 착한 사람이고, 좋은 사람이라서 그렇게 된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정작 잔학한 짓을 벌인 이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책에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세상일은 때때로 이렇게 흘러간다.

 

우리는 언제나 신이 나에게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해주실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까. 예수님은 안 그러실 거야. 나는 선량한 사람이니까, 해를 입지 않을 거야.

187-188

 

황야를 헤매다가 이제야 벌어진 상처가, 파괴되고 파헤쳐진 땅이, 부러진 나뭇가지들과 드러난 뿌리들이 보였다. 다른 각도에서 보고 나서야 재앙이 어느 한 개인 - 한 '희생자'에게만 닥치는 것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했다.

463

 

<카시지>의 주요인물 중 의도적으로 나쁜 짓을 저지르는 사람은 없다. 크레시다가 잘못했지만(출판사의 책 소개에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모호해진다고 하지만, 나는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크레시다조차도 그런 결과를 바라고 일을 벌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고, 어떻게든 좋은 사람이고 싶어하며, 사랑받고 싶어한다. 그들은 죄책감을 느끼고 용서받고 싶어한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처음 읽었을 때는 줄리엣의 '용서할 수 없는 마음'에 더 공감했지만, 두 번째 읽을 때는 줄리엣의 '용서할 수 밖에 없는 마음'도 이해가 된다. 소설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게 줄리엣과 브렛이었는데, 줄리엣의 마음을 따라 읽어가다보면 왜 그녀가 크레시다에게 용서할 게 없다고 했는지 가슴 아프게 와닿는다. 가족이니까. 사랑하니까. 아마 눈을 감는 날까지 줄리엣은 두 가지 마음을 다 가지고 있겠지만.

 

예쁜 아이 - 스위치 켜짐, 꺼짐

635

 

 

3. 희망

 

용서받을 가능성이라고 해야 맞는 걸까. 명확하게 용서받거나 용서하는 내용은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희망'이라고 적어본다.

 

<카시지>에는 '저주'라는 말도 여러 번 나온다. 이름으로 정해진 운명에 대해 암시를 하거나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하면서 거꾸로 신이 정한 운명을 보여주기도 한다. 태어나지 않는 게 낫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 아무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고, 그녀에게 마음을 쓰지도 않았어요. 그게 크레시다의 운명이었다고요."

"오, 얘야. 진정해라. 1996년 미합중국에 사는 우리는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믿지 않는단다. 지금이 중세도 아니고."

60

 

그는 신이 있지만, 어쩌면 예수그리스도가 있지만, 그를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여자애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다. 신은 그녀를 '구해주지' 않았으니까.

신이 왜 어떤 사람은 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구해주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256

 

"'사형'을 당하지 않으려면 죄를 짓지 않으면 되는 겁니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걸 믿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유의지를 믿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동물도 아니고 기계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370

 

힘든 일이 벌어지고, 점점 빠져들어가는 늪에 발을 집어넣은 것처럼 가라앉아가면 인간은 신의 존재를 부르짖으며, 동시에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 제발 도와주세요. 신이 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거야.

 

신이 진정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답하기 어렵다. 조이스 캐럴 오츠는 <카시지>에서 선을 말하는 플라톤, 유기동물이나 사람을 조건없이 돕는 여인 헤일리, 죄가 너무 깊어서 차마 예수님을 부르지 못하고 선한 도둑, 성 디스마스에게 기도하는 범죄자들을 통해 다른 답변을 보여준다. 우리는 약한 인간이지만 조금 더 노력하면 아주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신이 우리에게 준 힘은 충분히 강하지 않을지라도 사랑하기에 손 잡고 나아갈 수 있다.

 

어떤 일에 대해 알면 그것을 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지만, 가끔은 그 힘이 충분하지 않으니 이상하지. 신이 언제나 우리를 충분히 강하게 해주시진 않으니까.

남에게 베풀어라. 이웃을 사랑하라.

살인하지 마라.

264

 

예수그리스도는 인간이었지만, 발끝으로 서서 더 높은 곳에 닿으려 했던 인간이었다. 우리도 아주 조금은 그럴 수 있다.

443

 

선善을 알면 선한 일을 하고 싶어진다.

선을 모르면 온전한 인간이 되지 못한다.

465

 

그러기에 '희망'을 말해본다.

 

처음 브렛의 편지를 읽었을 때는 이 부분만 눈에 들어왔다.

 

이제 나는 젊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늙었다는 생각이 들어.

264

 

전쟁에 참전하여 삶과 죽음을 목격하고 겪어내는 사람의 이야기라서 서글펐다. 나 역시 더 이상 젊지 않고 마음이 늙은 것 같아서 아팠다.

 

그러나, 편지를 다시 읽을 때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이 문장이다.

 

왜냐하면 줄리엣 당신을 정말로 사랑하니까. 이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진실이야.

264

 

유일한 진실은 사랑하는 것.

사랑하기, 사랑받기

결국 사랑이다. 내가 너를, 네가 나를, 우리가 서로를.

크레시다가 그런 짓을 벌인 이유가 사랑이라면, 해결방법 역시 사랑이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폭풍같은 삶에서 의도하지 않게 잘못을 저지르거나 상처를 주고 받더라도, 진심으로 속죄하고 함께 그 상처를 어루만지고 안타까워하는,절절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은 살아갈만 하지 않을까.

 

 

너는 망가졌었지. 하지만 이제 낫고 있어. 우리도 너와 함께 낫겠지. 우리는 너를 사랑해.

650

 

하지만 마지막 태피스트리에서 유니콘은 작은 우리에 든 가축처럼 갇혔지만 기적적으로 소생했다.

575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가 다시 부활했듯이, 사냥꾼에게 죽임을 당한 유니콘이 다시 소생했듯이, 주저앉은 인간에게는 끝내 다시 일어날 힘이 있다. 너무도 큰 죄의 크기에 차마 용서를 바랄 수 없는 지경이라도, 결국 용서받지 못하더라도, 그 미미한 힘이 어떻게든 살아가게 할 것이다. 숨을 막으려 해도 저절로 숨이 쉬어지는 것처럼.


<카시지>는 이리저리 휘둘리며 방황하는 인간들을 그리며, 이 미약한 존재들에게 느끼는 측은한 마음과 사랑을 표현한다. 그렇게 사랑과 희망을 건네며 나도 모르게 죄인이 된 이들을 위로한다.


 

조이스 캐럴 오츠는 강력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후보로 자주 언급된다고 하는데, 나는 이번 <카시지>로 처음 만났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게 만드는 혼란스러운 상황과 그 속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탁월하게 그려내어 다른 책도 읽고 싶어졌다.

 

 

 

 

* 책을 읽으며 궁금해서 찾아본 참고자료(지도, 음악, 그림 등)를 다음 글에 정리했다.

https://blog.naver.com/hihappymay/221619288261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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