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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잊기 좋은 이름 (리커버 에디션)

김애란 저
열림원 | 2019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세상에 잊기 좋은 이름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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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시편 147장 4절 , 개역개정)

 

로이스 로리의 소설 <별을 헤아리며>는 이 성경 구절에서 제목을 따왔다. 나는 종교가 없고, 성경 번역체도 매우 어색하지만, 당시 이 구절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을 하나하나 다 헤아리고, 각각의 이름을 붙여주고, 기억하여 부르는 그 다정한 마음.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함.

 

<잊기 좋은 이름>을 다 읽은지 보름이 지났는데, 여전히 다시 책을 들추고, 쓰고, 찾아본다. 책을 읽다가 문득 <별을 헤아리며>가, 성경 구절이 생각났다. 2주 전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는 날, 나는 인터넷 서점에서 <잊기 좋은 이름> 두 권을 주문했다. 글 자체가 좋은 것도 있지만, 그보다 이 책은 나에게 자꾸 무언가를 떠올리게 한다. 아니, 무언가가 아니라, 누군가.

 

<잊기 좋은 이름>은 상실을 다룬 단편소설집 <바깥은 여름>으로 깊은 인상을 주었던 김애란 작가의 첫 산문집이다. 첫 산문집이라고 하지만, 33편의 길고 짧은 글들이 모두 새로 쓰인 글은 아니다. 작가가 2005년부터 2018년에 이르기까지 쓴, 소설이 아닌 글을 모은 책으로 축사나 칼럼, 포럼, 다른 단행본 서적 등 다양한 매체에서 이미 발표된 글들도 있다. 평소 산문을 즐겨 읽지 않으면서도 그녀의 산문집을 꺼내들은 것은 <눈먼 자들의 국가>(문학동네, 2014)에서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이라는 산문에 공감하고 위로받은 적이 있기 때문인데, 이 글 역시 <잊기 좋은 이름>에 수록되었다.

 

 

지난달, 임시분향소에 갔을 때 고잔초등학교에서 두 시간 넘게 조문을 기다리느데, 운동장에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도 주위에 수다를 떠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떠드는 건 오직 아이들뿐이었다. 어른들이 만든 원 바깥에서 그네를 타고, 모래성을 쌓으며 뭐라 외치고 웃는 아이들의 소리를 듣고 있자니 그 모든 게 마치 전생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순간 상복을 입은 내가 낯선 도시 한복판에서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감정 중 하나가 '삶의 생생함'이라는 걸 깨달았다. 슬픔 속에 숨기려 해도, 환멸 안에 감추려 해도, 냄새처럼 기어코 드러나고야 마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의 그 '어쩔 수 없는 선명함'이었다.

270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잊기 좋은 이름>은 1부 나를 부른 이름, 2부 너와 부른 이름, 3부 우릴 부른 이름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는 작가의 어린 시절을 포함한 부모님의 삶과 사랑이야기, 작가의 등단 전후 이야기가 담겨 있고, 2부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이나 친분있는 작가, 출판사에 대한 글이 실려있다. 3부는 우리 사회에 눈을 돌리는데, 세월호와 관련된 글이 3편이 있다는 것이 눈에 띈다.

 

나, 너, 그리고 우리.

작가는 '나'가 존재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발생해야만 했던 부모의 사랑부터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친구와 동료, 그리고 사회의 다른 사람들까지 이야기의 범위를 확대시켜나간다. 3부에 실린 '점, 선, 면, 겹'이라는 산문의 제목 역시 그러하다. 점점點點이 모여 선을 이루고, 선이 모여 면을 형성하듯이,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오히려 가장 작은 단위인 하나의 개인이 소중하다고, 누구 하나 잊혀져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나와 너, 하나하나가 모여 만든 우리. 그리고 그런 생각을 전혀 거창하지 않게 표현했다. 강하게 명령하거나 이렇게 해야만 한다고 설득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나는 이렇다고, 이런 느낌이고, 이런 생각이라고, 조곤조곤 말할 뿐이다. 덕분에 내가 사랑하는 이름들, 나를 아껴온 이름들, 내가 기억해야하는 이름들을 떠올렸다.

 

 

세상에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

300 '잊기좋은 이름'

 

 

1~3부 모두 재미있게 읽었다. 1부에서 억척스럽게 세 자매 키우면서도 반짝이는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 어머니 이야기도 남의 일 같지 않았고, 나와 같은 시대를 산 작가라서 등장하는 음악이나 만화도 익숙해서 반가웠다. 스스로 주의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너무', '엄청', '무척', '굉장히' 부사副詞를 입에 달고 사는 내게 힘이 되는 글도 있어서 웃음이 났다.

 

 

그러다가 나중엔 식당 홀과 마주한 딸들 방에 피아노까지 놔주셨다. 나는 우리 삶에 생존만 있는 게 아니라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이 깃드는 게 좋았다. 때론 그렇게 반짝이는 것들을 밟고 건너야만 하는 시절도 있는 법이니까. 어머니는 밥장사를 하면서도 인간이 밥만 먹고 살 수 없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기꺼이 아무 의심 없이 딸들에게 책을 사줬다. 동시에 자기 옷도 사고 분도 발랐다.

12 '나를 키운 팔 할은'

 

휴대전화에서 흘러나오는 들국화 노래를 듣자 그 생각이 났다. 어쩌면 1년 내내 크리스마스이브를 맞고 있을 어떤 이들이. 기념 세일, 감사 세일, 마지막 세일, 특별 세일. 세상은 언제나 축제 중이고 즐거워할 명분투성이인데. 자기 몸 하나 제대로 가눌 곳 없이 그 축제의 변두리에서, 하늘을 어깨로 받친 채 벌 받는 아틀라스처럼 맨손으로 그 축제를 받치고 있을, 누군가의 즐거움을 떠받치고 있을 많은 이들이, 도시의 안녕이, 떠올랐다.

42~43 '한여름 밤의 라디오'

 

 

3부는 눈물이 많이 섞였다. 특히 세월호는 작가에게 큰 충격과 아픔을 주어 그녀의 글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렇게 아파하고 슬퍼하면서도 자신은 여전히 바깥에 있는 사람이고, 영영 그분들의 마음을 온전히 알지는 못할 것이라며 조심스럽게 말하는 손짓이 부드럽다. 비극 후에 글을 쓰는 작가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해야하는 것에 대해 고민한 흔적들이 내 마음에 닿는다.

 

 

只要天空還有一抹藍就有詩 (지요천공환유일말남취유시)

'하늘이 푸른색으로 변하는 한 시가 있습니다'라는 뜻.

249 '점, 선, 면, 겹'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 혹은 부족한 것은

공포에 대한 상상력이 아니라 선善에 대한 상상력이 아닐까.

그리고 문학이 할 수 있는 좋은 일 중 하나는

타인의 얼굴에 표정과 온도를 입혀내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러니 '희망'이란 순진한 사람들이 아니라 용기 있는 사람들이 발명해내는 것인지도 모르리라.

298 '잊기 좋은 이름'

 

 

3부에서는 '점, 선, 면, 겹'이라는 글을 여러 번 곱씹었다. 연필 애호가로서 연필에 얽힌 일화를 재미있게 풀어나가다가 어느 순간 세월호로 화제가 넘어가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리고 혐오로 가득찬 세상에서도 여전히 나뿐만 아니라 '너'를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는 사실과 상처를 치유하려는 손길도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리를 계속 걸어가게 한다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이기 전에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알려주는 말들. 그리하여 나와 똑같은 무게를 지닌 타자를 상상토록 돕는 말들을 생각했다. 우리 안으로 들어오라는 초청이 아니라 나와 너로 만나는, 그리하여 한 번 더 철저히 '개인'이 되는, 그 개인의 고유한 내면을 깊이 경험해보도록 돕는 문학의 언어들.

252~253 '점, 선, 면, 겹'

 

 

2부 동료 작가들에 관한 글이 특별하다. '그녀에게 휘파람'은 '사육장으로'라는 글로 2007 한국일보상을 수상한 편혜영 작가에게, '그녀의 푸른 손'은 '부메랑'으로 2011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한 윤성희 작가에게 보내는 축사이다. '그녀에게 휘파람'과 '그녀의 푸른 손'을 읽으면, 김애란 작가가, 두 언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생생하게 그려진다. 아프리카 부족들의 조우와도 같던 어색한 만남부터 덜렁거려서 발생한 실수들까지, 작가는 웃음기 어린 손가락으로 좋아하는 언니들을 그림 그리듯 그려낸다.

 

나는 두 번째 만남에서 더 긴장했는데, 그건 우리가 부러 만나서였다. 그 자리에는 다른 친구 등도 더 있었다. 예의라면 나도 좀 차리는 편이어서 우리는 의좋게 서먹했다. 작게 웃고, 가끔 큰 웃음을 터트리고, 침묵이 이어지는 와중에 우린 결국 억지스러운 공통점을 끄집어냈다. 밀림에서 우연히 서로를 맞닥뜨린 낯선 부족들처럼 그랬다. 그들은 서로를 죽이지 않아도 될 이유를 찾아, 그 자리에 몇 시간이고 주저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했다. 그러다 보면 어떻게든 사돈의 팔촌을 지나 공통의 연고가 나온다는 거였다. 꼭 그러려는 건 아니었지만 우리의 이야기도 그런 식으로 흘러갔다. 이를테면 '나도 그렇다'라는 것. 신인이 문단에서 느낀 긴장과 수줍음을 가지고 엄살을 부린 거였는데, 우리는 일단 모두 소심하다는 데 합의를 봤다. 언젠가 더 진솔하게 놀 마당을 다지기 위해 가짜울타리가 필요했고, '나도' 사채를 쓴다거나, '나도' 그 병에 걸렸다는 것보다는 만만했기 때문이다.

154

 

그러곤 그런 선배 모습이 선배 소설 속 인물들과 닮았다고 생각했지요. 어딘가 틈이 많은 사람들. 그러나 가늘게 빛이 새어 나오는 문처럼, 문 안쪽 어둠을 가까스로 밀고 나와, 우리도 미처 몰랐던 마음의 테두리를 보여주고, 어느 땐 어둠을 극장으로 바꿔주기도 하는 그런 틈을 가진 인물들을요.

184

 

 

그래서 나도 책을 두 권 샀다.

 

좋은 책은 환상의 세계로 사람을 초대하여 실컷 뛰놀다 가게 하지만, 때로는 눈 뜨고도 보지 못했던, 아니 잊고 지냈던 나의 세계의 문을 활짝 열어주기도 한다. <잊기 좋은 이름>은 내게 그런 책이다. 이야기 자체보다 내 사람들이 떠오르게 해서 좋은 책.

 

내가 몸과 마음이 모두 아프던 때, 내 소식을 듣자마자 자신도 수술한지 며칠 안된 몸으로 무작정 버스에 오른 우리 언니가 생각났다. 작가의 표현처럼 어린 시절 내게 언니는 '어둠을 극장으로 바꿔주는 사람'(184, 288쪽)이었다.

언니가 <잊기 좋은 이름>을 좋아하면 좋겠다.

 

 

 

 

* 책 속 궁금한 것 찾아본 자료

https://blog.naver.com/hihappymay/221638088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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