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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을 견딘다는 것 | 기본 카테고리 2019-09-02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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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모멸감

김찬호 저
문학과지성사 | 2014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수치심을 넘어선 그러나 죽음까지 도달하지 못한 경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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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이불 찬다는 표현을 간혹 쓰곤한다.

부끄러웠던 일이 떠올라 왜그랬을까, 후회의 몸부림을 치는 것을 그나마 귀엽게 표현한 것이라고 개인적으 로 생각한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넘어선 모멸감은, 모멸감을 느꼈던 순간은, 자다가 이불 차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이불을 물어뜯는 것으로도 풀리지 않는 비통함, 분노, 슬픔, 수치심 등등의 복합적 감정이다.

 

작가는 한국사회에 중요한 감정으로 모멸감을 지목했다.

우리는 현재 모멸감을 느끼는 사회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모멸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작가는 감정에 대한 사회학적 시선으로 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장에서는 한국인 사회적 감정을 살펴보며 그것이 어떤 일상의 환경에서 개인에게 형성되고 있는지를 다룬다. 두 번째 장은 본격적인 한국사회와 모멸의 구조를 다루며 좀 더 거시적 차원에서 감정을 다룬다. 세 번 째 장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감정으로서의 모멸감이 개인에게 어떠한 사회적 행동으로 나타나 그것을 사회에 되돌려주는지를 보여준다. 네 번 째 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멸감을 겪는 이들이 건강하게 그것을 이겨내는지를 다루며 마지막 장에서는 좀 더 깊이 들어가 모멸감을 한 번이라도 느껴본 적이 있는 독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던지는 동시에 우리함께 좀 더 건설적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제언의 글들로 이어진다.

 

작가는 수치심이 내면화된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동시에 갑작스레 느껴지는, 다른 사람들과의 심리적 거리를 인식할 때 일어나는 감정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주장을 짐멜의 말을 빌어 설득하는데 짐멜은 '제3자가 자신을 관찰하고 판단하고 판결 내릴 때 부끄러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타인의 예리한 이목을 우리 자신 안에서 인식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은 원만한 사회 유지를 위해 구성원들이 반드시 지녀야 할 감정이다.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싫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수치심을 느끼게되는 상황이 싫은 것인데, 그 상황은 나의 실수나 부족함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작게는 화장실을 다녀온 후 지퍼를 올리지 않았거나, 극단적으로는 살인을 저지르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는 범죄자들까지 그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하지만 간혹 수치심을 느껴야 할 상황임에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본다. 죄를 짓고도 뻔뻔한 그런 부류의 사람들 말이다.

물론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그 뿐만이 아니다. 나의 잘못으로 스스로 초래한 경우를 제외하고 타인이 약점을 물고 늘어져 창피한 존재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유희와 희롱의 간격은 좁다."

외형적 특징을 꼬집어 끌어내려 비하하며 놀리는 건 어릴 때 누구나 한 번쯤 당해보기도 하고, 놀리기도 했을 것이다.

나도 머릿결이 좋지 못해 동네 아이들이 수세미라고 놀린 적이 있었다. 그 때 울면서 집에 돌어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에와 수세미가 뭐 어때서, 머리가 그럴 수도 있지 역시 유치했다 웃으며 넘기지만 어린 마음엔 분명 상처였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또 수세미라고 놀리지 않을까 잔뜩 긴장한 채 등교해야만 했었다.

그런데 놀림의 문제는 더 심각하게 나아갈 수도 있다.

 

놀리는 것이 혀를 내밀고 이상한 멜로디를 붙이는 것만이 아니란 사실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취업장면에서, 근무 중에, 가정에서, 시댁에서, 처가에서, 동창회에서 등등 어느 현장에서나 약점있는 인간이기에 순간순간 게임처럼 위치를 바꾸어가며 서로를 깎아내리기에 바쁘다.

수치심과 수치심에 대한 보복과 분노의 굴레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자기의 내면과 일상(혹은 감정)을 들여다 보는 것을 통해 사회의 거시적 차원과 접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하고 있는 게임과도 같은 수치심 돌리기는 현재 우리 사회의 슬픈 현실을 반영한다.

 

"비인간화된 사회일수록 자존감을 뭉개고 존재를 부정하는 역기능적 파괴적 수치심이 자주 경험"된다고 한다. 나는 재수를 했을 때도 논문을 쓰는데 오래 걸렸을 때도, 일을 하지 않을 때도 괜히 사람들을 만나면 부끄러웠다. 도대체 언제 졸업할 수 있냐, 취업은 언제 하냐고 타인이 물으면 너무나 부끄러워서 그 순간은 죽었다가 다시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부끄러움을 느끼기에 정진한다는 점에서 수치심은 건강한 것일테지만, 그동안의 나의 삶에 대한 맥락은 무시된 채, 노력은 쌍그리 보여지지 않은 채, 그저 채근하는 듯한 목소리들은 희롱이었으며 나를 끌어내려 부끄럽게 만들려고 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내가 괜한 부끄러움을 느꼈구나, 하는 위로를 받았다.

물론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수치심은 ok지만, 건강하지 못한 사회에서 구성된 수치심에는 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멸감 말고도 우리가 짚어야 할 감정은 많다. 작가가 현재 어떤 집필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으나 다른 감정으로도 이런 시선을 담은 책을 또 내주었으면 좋겠단 바람이 생겼다.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 모멸감을 테마로 작곡한 곡들의 QR코드가 함께 실려있다. YOUTUBE로 링크가 연결되어 있는데 길지 않은 곡들이다. 반복해서 재생하며 책을 읽는다면 더욱 더 책의 의미를 감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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