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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에로스의 종말

한병철 저/김태환 역/알랭 바디우 서문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나는 어디에, 너는 어디에, 그리고 우리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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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 작가는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작가다. 

서울대 사회학과의 김홍중 교수님과 더불어 이 분들의 책을 읽고 있으면 내가 하고 싶었던 연구와 말들을 어떻게 이렇게 정확히 풀어놓고 있는지 좌절감이 들게 한다. 그리고 책을 모두 읽고 나면 사고의 폭이 확장되는 것을 안쓰던 뇌의 부분에 실질적인 자극으로 느낄수 있을 정도다. 

무튼 요즘 사랑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데 도움을 좀 받아야 할 것 같아서 관련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고, 한병철 선생님께서도 마침 에로스의 종말이란 제목의 책을 쓰셨기에 망설임 없이 구매하게되었다. 


책의 서문에 “..진정한 사랑은 타자가 도래하기 위해 정신이 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나 이외의 것, 나의 피부 바깥의 모든 것들은 내가 아닌 것들이다. 공기도 사물도 자연도 사람도 나 아닌 모든 것들은 그렇기에 철저한 부정의 존재들이다. 그러나 사랑은 그러한 완전한 부정성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를 위해 나는 내 안에 존재하는 나에 대한 긍정성을 줄여야 할 수 밖에 없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 조차 알 수 없을 초반에 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슬맺힌 풀잎 끝에도 ‘너’가 있다는 표현의 시를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한창 고민이 많던 시기에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서 온종일 그에 대한 생각만 하느라 모든 고민이나 번뇌가 사라졌던 기억이 난다. 나는 나의 뇌 안에 그가 대신 들어와 앉아 그가 나의 번뇌를 모두 짊어지고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것이 완전히 타인을 받아들였던 경험이 아닌가 싶다. 


현대 사회에서 그러한 진정한 사랑이 도대체 가능한 이야기인가 깊은 고민에 빠진다. 

왜냐하면 부정과 긍정이라는 나와 타자의 구분의 전제 조차 무색해 질 정도로 모두가 ‘동일자로 평준화’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오늘날 모든 삶의 영역에서 타자의 침식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 이와 아울러 자아의 나르시스트화 경향이 강화되어가고 있다는 점에 있다”(p.18)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는지 조차 알지 못한 채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것은 허상과도 같고, 밑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 

애초에 맨 바닥에 감정을 계속해서 쏟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갈증을 느낀다. 

채워지지 않는 충만한 마음의 갈증. 

이 책에 따르면 그것은 나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비우는 부정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저자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멜랑콜리아]라는 영화 작품을 통해 그러한 사랑과 우울에 대한 관련성을 말한다. 

사랑은 타자의 침입이자 자신의 부정이다. 에로스는 그렇기에 나르시즘적 자아 우울을 끊어내는 힘이 있다고 한다. 


학교에서 꽤 많은 아이들이 자해를 한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했고 예방을 위한 관련 연수에도 참여했지만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은 아직도 부재한다는 사실을 느꼈었다. 

내가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것은 ‘청소년 자해’가 예방하고 상담하는 것이 물론 대처방안으로 필요하지만 이제는 또 다른 접근 방식과 이해의 관점에서 그 문제를 다뤄야 할 만큼 막을 수 없는 ‘사회적 사실’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에로스의 종말’을 읽으며 아직은 뚜렷하지 않지만 그에 대한 단서를 조금은 얻을 수 있었다. 


자해는 얼핏 보기에  자신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을 죽이려고 하거나, 자신에게 상처 입히는 것만큼 뚜렷한 자기 부정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해러’, ‘자해계’라는 용어가 만들어질만큼 아이들은 자신이 자해한 모습을 SNS를 통해 공유하고 전시하고 있다. 

이것은 자신의 부정이 아닌 책에서 말하고 있는 ‘나르시즘적’ 행위이며 과도한 자기 긍정의 신호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것이 상처의 형태로만 나타날 뿐이지 자해한 상처는 오히려 이들에게 자기 착취를 통해 얻은 성과이며, 이러한 실체없는 성과를 통해 결국 심리적 파산상태에 이르고 만다. 


우울한 나르시즘적인 주체는 어떤 결론도 맺지 못한다. 하지만 결론이 맺어지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흘러가고 떠내려가버릴 것이다. 우울증의 주체가 안정된 자아상을 갖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유부단함, 결단력의 결핍이 우울증의 전형적 증상이라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울증은 과도한 개방과 탈경계의 와중에서 끝맺음을 하고 완결지을 수 있는 능력이 실종되어버린 이 시대의 특징적 현상이다. 사람들은 삶을 완결지을 줄 모르기 때문에 죽는 법도 잊어버렸다. 성과 주체 역시 결론을 맺지 못하고, 완결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자이다. 그는 더 많은 실적을 올려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바스러진다.”(p58)


그러한 아이들의 심리상태의 근원지를 따라가다 보면 채워지지 못한 사랑의 갈증을 만나게 된다. 애초에 진정한 사랑을 받아본적이 없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비뚫어진 사랑을 주고, 그 사랑을 받아 또 비뚫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악순환의 고리 안에서도 자해하지 않는 아이도 있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자해하는 아이들에 대한 내용이며 점차 그런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서 이사회에 앞으로 진정 에로스의 종말이 도래할 것이란 추측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자기를 사랑할 것을 가르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자기가 누구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고 너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은 가르쳐주지 않은 공식을 내어주고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라는 잘못된 문제에 불과하단 생각이 든다. 

나또한 책임감없이 아이들에게 네 인생을 사랑해라, 말했던 것을 이 책을 읽으며 후회했다. 

꼼꼼히 따져보지 않은 채 자해하는 아이들에게 그저 생각없이 좋은 말이라고 여겨 단순히 따라서 말한 것에 그친 것이 아닌가 처절한 자기반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나 또한 나를 비우지 못한 채 아이들을 사랑한다, 착각하며 오히려 나를 나르시스트와 같이 사랑한게 아닐까. 

과거에 누구도 사랑한적 없이 살아온 것은 아닐까, 앞으로도 누군가를 진정 사랑할 수 있을까 여러 모로 읽고 난 후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역시 무엇이든 완전에 이르는 길은 험난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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