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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골든아워 #08 어차피 처음부터 지속가능성은 없던 일이었잖아요(마지막) | 살아가는 힘이 되는 책 2018-10-3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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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워』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 서한

 

 


 

 

 

6월 초, 현충일에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를 뵈러 대전으로 향했다. 중증외상센터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던 때였다. 대전으로 가는 내내 어머니는 차창 밖에 시선을 둔 채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 다. 나는 고요한 어머니를 태우고, 말없이 누워계신 아버지에게로 향했다.
 
417 묘역은 푸르렀다. 사방이 고요하고 전경은 선명했다. 하늘은 파랗고 잔디는 초록빛이었다. 늘어선 석비와 울긋불긋한 꽃들은 비현실적이었다. 아버지 함자가 새겨진 석비를 찾아 그 앞에 섰다. 주변의 잔디가 작년보다 촘촘해졌다. 나는 가지고 온 꽃바구니를 석비 옆에 내려놓았다. 초록 잔디에 흰 장미가 유독 눈에 띄었다. 챙겨온 음식은 단출했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술을 꺼내 올렸다. 아마도 이 술 한 잔이 가장 반가우실 것이었다. 아버지 이름 앞에서 거수경례를 마치고 해군 정모(正帽)를 벗어 석비 위에 올렸다. 떨어지는 초여름 빛이 정모 테두리에 닿아 꺾였다.
 
어머니는 사과 한 알을 잘라 아버지에게 내드렸다. 손놀림이 더뎠다. 어머니는 잔디 아래 누운 아버지의 나이를 훌쩍 지났다. 살아생전 없던 평안이 이제야 두 양반 사이에 있었다. 이만한 세월이 필요했던 것인가……. 문득 말없이 마주한 두 사람에게 묻고 싶었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지.

 

 

 

 

한국에서의 중증외상센터 사업은 침몰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복마전같이 얽힌 중증외상센터 사업을 뒤돌아보았다. 어쩌면 가용자원이 제한된 일개 지방 사립 의과대학을 기반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여왔는지도 모른다. 기존의 100년 된 의과대학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일이었다. 더욱이 대학의 부속 병원은 해군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다. 아니, 그렇게 움직일 필요조차 없는 기관이다. 윗선의 보직자들은 시기마다 자리를 달리하고, 일은 일관된 방향으로 추진되지 않는다. 각자 의견이 갈리고 편이 나뉘며, 조직 안에는 뒷말이 끊임없이 돈다. 이것은 한국의 전반적인 분위기였다. 의료계는 사회의 일부일 뿐이니, 대학의 부속 병원은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중증외상센터는 고도의 단계적 뒷받침이 요구되는 사업이다. 한국 사회의 투명성 정도로는 의료계나 정부 모두 이런 사업을 감당할 수 없다. 15년간 나는 그 사실만을 확인한 것 같았다.
 
나는 단 한 번이라도 중증외상센터의 세계적인 표준을 한국에 심어보고 싶었다. 아주대학교병원 중증외상센터가 문을 닫고 한국의 중증외상센터 사업이 종료되고 나서도, 다음 세대 의사들 중 누군가가 다시 중증외상센터를 만들어보려 할 수도 있다. 그때를 위해 우리가 남겨놓은 진료 기록들이 화석같이 전해지기를 바랐다.

 

우리의 기록들은 마치 내가 2002년 처음 외상외과 전임강사로 발령받았을 당시 찾았던, 한 한국계 미국인 외상외과 의사가 3년간 고군분투하다가 사라지며 남긴 기록과도 같을 것이다. 그 당시 나는 그 기록들을 들춰보며, 외상외과가 어떤 임상과인지를 더듬어갈 수 있었다.
 
이만하면 된 것 같았다. 세계적 표준을 따라가는 최상위 중증 외상센터(Level 1 Trauma Center)’의 진료기록을 만들어 남기는 일은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가슴 속에 밀려왔다.
 
어차피 처음부터 지속가능성은 없던 일이었잖아요.
 
허 위원은 학교를 떠나기 전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한국 사회에 서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시스템을 고수하기 위해 나와 함께 있는 소수의 팀원들의 희생과 허 위원의 보호 덕분에 간신히 버텨왔다. 이만하면 정말 많이 버텨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세형 비행대장은 헬리콥터의 비행 원리에 대해, 바람을 깎아 치고 올라가는 것이라고 했다. 헬리콥터는 바람과 함께 주위 모든 것들을 깎아내며 그 반동으로 솟아오르고, 앞으로 나아간다. 고정익 기체와 달리 글라이더 비행이 불가하므로 힘들어도 버텨서 항력을 얻지 못하면 곧장 추락한다. 어쩌면 나도 중증외상센터도 헬리콥터가 바람을 깎아 나아가듯, 내 동료들을 깎아가며 여기까지 밀어붙여왔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아파도 아프다고 하지 않았고, 힘들어도 힘들다고 내색하지 않았다. 간신히 구축해온 선진국 표준의 중증외상센터를 유지하기 위해 말없이 버티다 쓰러져나갔다.
 
결국 이 중증외상센터 바닥은 내 동료들의 피로 물들었다. 그러나 앞으로 언제까지나 이렇게 주위를 깎아내며 나아갈 수는 없다. 나는 이미 한참 전에 내가 하는 일의 옳고 그름과 방향성을 완전히 상실한 것 같았다. 내 의도와 관계없이 급류에 휩쓸려 발버둥 치다 여기까지 떠밀려왔을 뿐이다. ‘훗날 정경원이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을 이끌고 나가는 때가 오면 지금보다는 발전이 있지 않을까라고도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런 생각조차 환상이었다. 어쩌면 인생 자체가 신기루 같은 것인데 내가 너무 오래 그것을 좇아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멈춰 서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내 인생을 휩쓸고 지나가버렸다.

석비에 새겨진 아버지의 함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손끝으로 석비 모퉁이를 가만히 쓸어내렸다. 정모에 꺾여 닿은 볕이 뜨겁지 않았다. 나는 어디까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아버지는 답이 없었다. 그가 누운 자리는 평안해 보였다. 영면한 아버지의 자리가 부러웠다. 그러나 나의 끝도 멀지는 않을 것이다. 서글프도록 허망하기는 했으나, 산 날들이 대개 온전하지 않았으므로 그 사실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환자를 제외하고 모두 실명이며, 나는 그들의 노고와 헌신, 살아온 궤적들을 다 표현할 수는 없었다. 분명한 것은 이 사람들 역시 중증외상센터 설립에 생의 일부분을 뜯어내 바친 수많은 사람들 중 극히 일부라는 것이다.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그들 모두를 실어낼 수 없어 가슴이 아프다. 다시 한번 여태껏 환자들과, 선진국 수준의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을 위해 헌신해왔던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골든아워 1

이국종 저
흐름출판 | 2018년 10월

 

골든아워 2

이국종 저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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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골든아워 #07 북한군의 목숨은 이승에 남았다 | 살아가는 힘이 되는 책 2018-10-31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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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워』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 서한

 


 

 

 

 

더스트오프, 10분 안에 아주 외상센터에 도착합니다. 도착 예정 시간 10분입니다.
 
도착 예정 시간 10. 싣고 오는 환자는 총상을 입은 군인이라고 했다. 상황은 급박하게 계속 전해졌다. 흉복부와 사지에 다발성 총상을 입은 환자라고 했다. 찢어진 폐에서 새어 나오는 공기는 폐와 심장을 짓눌러 쪼그라뜨리고 있었다. 긴장성기흉(Tension Pneumothorax)이다.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몇 분 내 사망할 수도 있다.

더스트오프팀 구급대원들은 흔들리는 헬리콥터 안에서도 폐에서 빠져나오는 공기를 완벽하게 제거하도록 신속하게 응급처치를 해냈다. 그들은 거의 다 죽은 목숨을 필사적으로 붙들어 데리고 왔다. 환자는 피를 너무 흘려 블랙호크 캐빈 바닥이 피로 물들었다.
 
인계받은 환자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 혈압이 60 아래로 떨어지며 심각한 출혈성 쇼크를 보였다. 초음파 검사상 복부 안에도 피가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환자를 뚫고 지나간 총알은 최소 다섯 발 이상이었다. 총탄의 흔적은 팔다리뿐만 아니라 가슴과 엉덩이, 겨드랑이에까지 사방에 위치했다. 그 자리를 따라 피가 계속 솟구쳤다. 탄환이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부수고 어떻게 빠져나갔는지 쉽게 보이지 않았다. 확보한 중심정맥과 사지정맥을 통해 O형 혈액과 수액을 때려 부었으나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CT촬영을 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나빴다.
 
병원에 도착한 지 30분 만에 환자를 수술방으로 올렸다. 그런 와중에 군과 국정원 관계자들이 센터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환자가 북한군 병사라고 전해왔다. 나는 그 말을 듣고도 별 생각이 없었다. 북한군인과 이런 식으로 조우하는 일이 내게는 낯설지 않았다.

 

 

 

 

환자의 상태는 순차적인 수술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했다. 외상외과와 정형외과 두 팀이 동시에 달라붙었다. 환자의 복부를 칼로 가르고 들어갈 때, 김태훈 교수의 정형외과팀이 좌측 상단의 출혈들을 빠르게 잡아나갔다. 절개창 사이로 검붉은 선혈이 내 머리끝으로 튀어 올랐다. 눈앞이 붉었다. 배 속에서 쏟아져 넘쳐흐른 핏물이 내 발을 적셨다. 마취과 의료진의 날 선 외침이 터져 나왔다. 수술방에 가득한 극도의 긴장감이 팽팽하게 날을 세웠다. 골반을 부수고 들어온 총알이 10여 군데의 내장을 뚫고 지나가며 파열시켰고, 으깨진 장에서 흘러나온 온갖 내용물이 복강과 장기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내장은 동시다발적으로 손상됐다. 살릴 수 있는 부분이 너무 적었다.
 
핏물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피 구덩이 속에서 스멀거리는 기생충들을 보았다. 적은 수가 아니었다. 의료진 모두가 일순간 얼어붙었다. 그간 찢기고 으스러진 환자들을 수없이 봤으나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보통의 상황이면 구충제를 먹이면 될 것이나 내장이 터져나간 환자에게 경구 약을 투여할 수는 없다. 약이 있음에도 쓸 수 없다는 사실에 미칠 것만 같았다. 오만에서 석해균 선장을 마주했던 때가 그대로 겹쳤다. 환자가 죽고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이 순식간에 스쳤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수술을 참관하던 코임브라 교수의 외침이 정적을 깨고 들어왔다.

 

이 교수,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기생충을 없애야 해. 짜내서 제거하도록 해. 그렇지 않으면(Dr. Lee, You’ve got to get rid of them many as you can! Otherwise)…….
 
흩어지던 정신을 붙잡았다. 그의 조언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기생충들을 짜내며 걷어내기 시작했다. 최대한 제거하는 데까지 제거한다……. 그것이 우선이었다. 기생충이 봉합한 부위를 뚫고 나오면 내장들은 다시 파열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수술은 무용한 것으로 돌아가고, 환자는 죽고 만다. 나는 시급하게 해야 할 일에 집중하려 애썼다.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갈 때 권준식의 목소리가 귓속을 뚫고 들어왔다.
 
교수님, 아직도 출혈이 많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핏발 선 눈을 한 권준식과 이호준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마취과 의료진이 쉴 틈 없이 피를 쏟아 넣고 있었으나 탄공과 열린 복부로 끊임없이 피가 빠져나갔다. 북한 환자의 피와 남한 사람들이 헌혈한 피가 뒤섞인 피였다. 저 피 중 얼마만큼이 북한 환자의 피이고 남한 사람의 피인지, 그 둘이 어떻게 섞여가는지 알 수 없었다.
 
끊임없이 피가 솟는 부위 중 일부는 꿰매고 일부는 결찰해 들어가며 출혈을 잡아갔다. 도저히 못 쓰게 된 장은 끊어내고 살릴 만한 곳은 봉합해 정리했다. 1차 수술을 마쳤을 때 수술방 바닥은 피바다였고 의료진 모두가 피 칠갑이었다. 모두가 기진하여 쓰러질 듯했다. 환자는 개복 상태로 중환자실로 올려졌다.

 

 

 

 

환자에 대한 모든 것은 보안에 붙여졌다. 국군 기무사령부와 국정원, 경찰, 지역 육군 사단까지 인원을 보내 철통 경비를 한다고 했다. 보안구역까지 정해서 지켰다. 그런데도 환자의 모든 정보는 실시간으로 빠져나가 언론에 보도되었다. 민간 병원에 있기 때문에 보안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군으로부터 흘러나왔다. 기막혔다. 언제나 보안 유지를 당부하고 지키지 않는 것은 이쪽이 아니라 저쪽이었다. 어떤 경로로 정보가 빠져나가는지 짐작이 갔으나 이번에도 나는 입을 닫고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이 지겹고 귀찮았다.
 
병원 측은 신경을 곤두세웠고, 센터에는 100여 명이 넘는 외상환자들이 누워 있었으며, 새로운 환자들도 계속 밀려들어 왔다. 수술은 연달아 이어졌다. 나와 팀원들 모두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허공 위를 걸었다.

2차 수술이 끝난 뒤, 환자 상태에 대한 브리핑에서 기생충에 대해 언급한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 날 선 비판이 튀어나왔다. 나는 조직에 속한 일개 외과 의사일 뿐이다. 환자는 군을 비롯해 국가 기관의 관리를 받고 있고, 이 환자에 관한 한 내 의지는 끼어들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또다시 내 뜻과 무관하게 그 말들 한가운데에 놓였다. 말이 말을 낳는, 말의 잔치 속에서 이리저리 뒤채는 인생이 한심스러웠다.
 
대부분의 정당이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다고들 했다. 그들이 말하는 노동자에 외상센터에서 일하는 우리는 없었다. 한국 중증외상센터의 직원 고용 수준은 영미권의 3분의 1에 불과했고, 적은 인력이 과도한 업무를 감당하느라 과로로 쓰러져나갔다. 수술방의 모든 의료진이 감염의 위험을 감수하고 환자의 피를 뒤집어썼다. 전담간호사들이 다치거나 유산해 대열에서 떨어져나갔다. 그러나 이 현실은 무관심 속에 외면받고 있었다. 이곳의 노동자들은 무슨 이유로 희생을 기본 값으로 감수해야만 하는가. 거대 담론만이 존재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중증외상센터의 지속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북한군 병사의 목숨은 이승에 남았다. 그 덕에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다시 일어났다. 2011년 석해균 선장이 복지부 캐비닛에 처박혔던 중증외상센터 정책을 끌어내더니, 북한군 병사가 죽어가던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을 건져낸 셈이었다. 2018년의 시작을 알리던 겨울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골든아워 1

이국종 저
흐름출판 | 2018년 10월

 

골든아워 2

이국종 저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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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골든아워 #06 표창이고 뭐고 죽고 나면 다 소용없어요 | 살아가는 힘이 되는 책 2018-10-25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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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워』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 서한

 


 

 

 

연구실 창밖으로 한여름 장대비가 쏟아졌다. 창문을 조금 열자 빗소리가 거셌다. 바람의 방향으로 빗물이 크게 들이치지는 않아 창을 그대로 열어두었다. 아스팔트를 난타하는 빗소리가 방 안의 답답한 공기를 날려버릴 것 같았다. 피로한 몸을 의자에 깊숙이 앉혔다. 책상 위에 결재 서류들과 내 앞으로 온 편지 뭉치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나는 서류철을 옆으로 밀어두고 편지들을 뒤적였다. 강원도지사가 보내온 서한이 눈에 띄었다. 고급스러운 흰 봉투 겉면에 흑색 경필 명조체로 내 소속과 이름이 박혀 있었다. 나는 봉투를 뜯지 않은 채 그것을 멀거니 보았다. 흑백의 명확한 대비가 한 달 전 영결식장의 국화 화환들을 연상시켰다.

 

 

 

 

 

 

지난 717, 세월호 수색 작업을 마치고 복귀하던 강원 소방항공대의 AS365가 추락했다. 헬리콥터는 광주광역시 한복판으로 낙하해 바닥과 충돌하여 검은 잔해로만 남았다. 정성철, 박인돈 기장과 항공정비사 안병국, 항공구조구급사 신영룡, 항공구조사 이은교 등 다섯 명의 소방대원 전원이 목숨을 잃었다. 강원 소방항공대에는 조종술이 뛰어난 고참 기장들이 많았고, 험준한 산악 지형에서도 산등성이와 계곡을 누비며 환자를 구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았다.

나는 그들을 2011년 소방항공대 워크숍에서 처음 만났다. 모두가 적극적이었고 토론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그중 박인돈은 20여 년 가까이 육군항공대에서 비행하며 4,000시간 이상의 비행시간을 쌓은 베테랑이었다. 나는 그와 구조구급 비행에 대해 구체적으로 의견을 나누던 때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랬던 그들이 죽었다. 그 죽음을 알았을 때, 배 속 창자가 끊어질 듯 우는 것 같았다. 정성철, 박인돈은 AS365가 속절없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던 마지막까지도, 헬리콥터가 사람 없는 인도 화단에 추락하도록 조종간을 놓지 않았다고 들었다.

세월호 침몰 후 석 달이 지난 시점에 벌어진 이 참상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세월호 침몰 당시, 항공 지원을 통해 생존자 구조와 수색이 가장 필요했던 시점은 사고 당일이었다. 그때 헬리콥터들의 사고 해역 영공 진입을 막았던 정부가, 사고 발생 후 석 달이나 지난 시점에 강원도의 AS365와 소방 항공대원들을 전라도 앞바다까지 보낸 까닭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AS365는 대부분 육상에서의 구조 업무에 투입된다. 해상용 기체에 장착되는 플로트 장비가 있을 리 만무했다. 언론에서는 대원들이 자원해서 수색에 나섰다고 했다.
 
자원이라. 참으로 그럴듯한 말이다. 나는 그 말의 출처가 궁금했다. 그 단어를 곱씹으며 조직 구성원으로서 자원의 의미를 더듬었다. 윗선으로부터 내려오는 위험한 업무 투입 명령은 조직 안에서 때로 자원의 탈을 썼고, 그것은 스스로의 의지조차 강요하는 것이었다. 제 몸에 폭탄을 달고 적진으로 뛰어드는 일이 전쟁터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죽은 다섯 명의 대원들이 진정 자원해 나선 비행이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추락 원인은 며칠이 지나도록 알려지지 않았다.

사고 닷새 후 열린 영결식은 강원도장()으로 치러졌다. 찍어다 박은 듯한 흰 국화 화환들이 분향대 양옆으로 늘어섰고, 제각기 다른 부서와 이름들이 적힌 검은 리본들은 아래로 처져 있었다. 리본 속 이름들 중 얼마만큼이 이 죽음을 이해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꽃으로 둘러싸여 있는 다섯 명의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뒤늦게 남쪽 바다까지 비행해 내려가야 했던 이유와, 헬리콥터가 추락한 원인을 저들은 알고 있을 것인가. 죽은 이들은 침묵했고, 살아 있는 누구도 그것을 말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순백의 봉투를 열어 강원도지사가 보내온 서한을 펼쳤다. 최고급 한지의 단단하고 부드러운 결이 손끝에 전해왔다. ‘안녕하십니까로 말문을 연 서한은 기계의 힘을 빌려 공업적으로 생산해낸 글이었다. 나는 의자에 몸을 파묻고 제일 위에서부터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지난 717일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내고자 자신들의 고귀한 생명을 바친 강원도소방본부 소속 소방대원들의 희생 앞에 애통한 심정으로 슬픔을 함께 해주신 데 대해 강원도청 전 공직자를 대신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로 시작된 글은 중간에 이르러, ‘창졸지간에 아들, 남편, 약혼자, 아빠를 잃은 유족들과 동료 공직자에게도 더없는 큰 힘과 위로가 되었습니다로 이어지고 있었다. 잠시 읽기를 멈추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여전히 비가 세차게 내렸다. 시신이 되고 만 환자를 영안실로 보낼 때 엄습하는 차고 축축한 기운이 안으로 스며들었다.
 
서한 말미에는 무더운 날씨에도 경건하고 엄숙하게 강원도장을 치를 수 있도록 뜨거운 마음을 모아주신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강원도지사까지 반듯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마지막 도지사의 서명은 친필인지 아닌지 분명하지 않았다. 발신일의 한 곳은 비어 있었다. ‘20148월 일.’ 나는 앞의 빈 공간을 응시했다. 아마 도지사는 이 서한을 보낼 때 날짜가 비어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환자들을 구조하여 병원으로 날아오는 소방대원들과 의료진은, 언제나 환자들과 함께 사선을 넘나든다. 소방항공대의 한 기장이 내뱉었던, ‘표창이고 뭐고 죽고 나면 다 소용없어요라는 말과 편지 속의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내고자 자신들의 고귀한 생명을 바친이라는 글귀가 머릿속에서 얽혀 들어갔다.

 

 

 

 

하늘을 나는 항공기, 특히 회전익 기체는 언젠가는 반드시 떨어진다. 문제는 시점과 확률일 것이다. 내가 하는 일 자체가 주위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만나본 적도 없고 선악조차 알 수 없는 이름 모를 타인을 구하려 나서는 일이다. 나는 왜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이 짓을 강요해야 하는가. 몸이 한없는 바닥 아래로 끌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동료들이 두말 않고 위험을 무릅쓰고 나서고 있는 것도, 노골적으로 내 일을 꺾어버리려는 이들의 저항을 버텨나가는 것도 지긋지긋했다. 나는 구토감을 느끼면서 창밖을 한참 멍하게 바라보았다. 몹시 피곤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자러 가고 싶었으나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골든아워 1

이국종 저
흐름출판 | 2018년 10월

 

골든아워 2

이국종 저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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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골든아워 #05 석해균 선장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았다 | 살아가는 힘이 되는 책 2018-10-25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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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워』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 아덴만 여명 작전

 


 

 

떨어지는 칼날은 잡지 않는 법이다. 석 선장은 무겁게 떨어지는 칼날이었다. 환자의 상태가 극도로 나쁠 때 의사들은 섣불리 나서지 않는다. 환자가 살아나도 공은 제 몫이 되지 않고, 환자가 명을 달리하면 그 책임은 마지막까지 환자를 붙들고 있던 의사가 오롯이 져야 한다. 그것이 이 바닥의 오랜 진리다. 석 선장이 살 가능성은 희박했고, 최악의 경우 내가 져야 할 책임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복잡한 경로를 거쳐 왕립술탄카부스병원 ICU에 도착해 환자를 처음 보았다. 환자는 의식이 없었다. 팔과 다리 여러 곳에 관통 손상이 있었고, 골절된 부분은 아직 총탄이 박혀 있는 채로 임시 봉합해둔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치명적인 탄공이 복부에만 세 곳이나 있었으며 총알이 박힌 구멍에서는 고름이 흘러나왔다. 몸통 전체가 시뻘건 벽돌처럼 보였고 부패된 사체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다. 혈액검사 지표는 한국에서 받은 결과보다도 더 나빠져서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나는 오만에 도착하자마자 맞닥뜨린 위기 상황에서 교과서적인 원칙을 계속 생각하려고 애썼다. 주위 분위기에 잘못 휩쓸리는 순간 환자는 허무하게 생명을 잃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 또한 갈 길을 잃는다. 나는 끊임없이 원칙을 생각했다.
 
나는 이제 결정해야 했다. 눈앞의 선택지는 둘뿐이었다. 이곳에서 죽기를 기다리든지, 아니면 큰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한국으로 이송해 큰 수술 판을 벌이는 것이다. 어차피 끝날 판이라면 모든 걸 다 걸고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환자를 이송하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지 가늠하기조차 힘들었다. 두개골이 욱신거렸다. 무사히 살아서 한국에 도착하더라도 남아 있는 수술들의 부담은 크다. 수술이 잘 끝난다고 해도 환자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고,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상황이 최악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나는 다시 교과서적인 치료 원칙들을 입으로 중얼거렸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죽어가는 선장의 숨을 붙여 데리고 돌아가야 하므로 에어 앰뷸런스가 필요했다. 그러나 에어 앰뷸런스는 쉽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찾는다고 해도 기체가 환자를 싣고 하늘을 날아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은 몹시 복잡하다. 정부 부처가 협의하여 이 일에 대해 입장을 정리하는 데는 아득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이미 여러 정부 부처가 얽혀들어 시간만 보내고 정작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공중에 떠버리는 상황을 수없이 보아왔다. 그때 내게 분명했던 것은, 석 선장을 데리고 돌아가려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것과 그 어디에도 책임을 져줄 존재가 없다라는 사실이었다.

 

 

 

 

 

어차피 이 오만행의 책임은 내게 있었으므로 어떻게든 이 상황을 돌파하는 장본인도 나여야 했다. 직접 에어 앰뷸런스를 보내줄 수 있는 항공사 레가(Rega)와 접촉했다. 나는 머리를 두드리며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집중해보려 애썼다. 수많은 생각들을 걷어냈을 때 남는 것은 하나였다. ‘에어 앰뷸런스가 없으면 석 선장의 생환은 불가능하다.’ 내가 사인한 팩스를 레가에 보내려는데 김지영과 김후재가 막아섰다. 김후재가 내 팔을 잡았다.

교수님, 이건 아닙니다. 이렇게까지 하시는 건 아니지요. 이건 교수님이 책임질 사안이 아닙니다.
 
김지영이 내 손에서 서류뭉치를 낚아채 그대로 찢어버렸다. 서류는 김지영의 손에서 여러 차례 잘게 찢겨나갔다. 종이다발이 찢겨나가는 소리가 호텔 로비까지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찢겨 나간 서류에는 에어 앰뷸런스 사용 금액 ‘US $380,000’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4억 원이 훌쩍 넘는 돈이었다. 나는 그 액수의 무게가 얼마큼인지 생각하지 않았다. 난 항공사로부터 다시 서류를 받아서 그들 모르게 사인했고, 그대로 보냈다. 돌이킬 수 없었다
    
환자를 이렇게라도 데리고 가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나쁘면 그 책임을 다 교수님께 씌우려 할 겁니다. 지금이라도 빠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정경원은 웬만하면 이렇게 얘기할 사람이 아니다. 나와 달리 정의롭고 굳건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할 정도라면, 상황이 심각하기는 심각했다. 나는 그에게 되물었다.
 
당신이 보기에 석 선장이 얼마나 버틸 것 같아?
 
— …….
 
정부 부처 간에 차분하게 조율해서 비행기를 띄울 시점까지 석 선장이 살아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정경원은 계속 말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김후재에게 물었다.
 
그럼 삼호해운에서 몇 시간 이내에 앰뷸런스 비행기를 끌어올 가능성이 있나요?
 
김후재는 삼호해운 본사의 내부 사정을 빤히 알았다. 회사는 그럴 만한 여력이 없었다. 김후재 역시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대답 없는 둘에게 말했다.
 
어차피 우리가 사막 한복판까지 오게 된 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꼬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끌고 갈 수밖에 없어요. 만약 최악으로 깨진다고 하더라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에어 앰뷸런스를 못 구해서 선장이 여기에서 죽어도 내가 엿 먹는 건 마찬가집니다. 계약서는 이미 보냈고, 돌이킬 수 없어요. 이제 에어 앰뷸런스를 타고 돌아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에요.

그때 김지영이 갑자기 전화기를 들고 나타났다.
 
교수님, 허 위원님과 전화 연결됐어요. 여기 사정을 얘기하고 도와달라고 했어요. 곧 다시 전화 주신댔어요.
 
오만 현지 시간으로 밤 11, 한국은 새벽 4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김지영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김지영은 한국을 떠나기 전에 허 위원이, 혹시 위기가 닥치면 본인에게 연락을 달라고 당부했다고 했다. 허 위원은 내게도 같은 말을 했으나 나는 흘려들었고, 거기까지 예상한 허 위원이 김지영에게 다시 언질해둔 모양이었다. 나는 허 위원이 고마웠다.

    
김지영의 말대로 곧 허 위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빠르고 짧지만 아주 명확한 어투로 말을 전했다. 그 통화가 끝나고 10분도 채 되지 않아 김지영의 전화벨이 울렸다. 통화하는 김지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전화기를 건네받자 굵은 저음의 힘 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청와대 정무수석이라고 했다. 한국은 이른 새벽일 텐데 그의 목소리는 잠기지 않았다. 이미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전화한 것 같았다. 그는 말을 이었다.
 
환자를 치료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무엇이든 좋으니 말씀해주세요. 제가 책임지고 해결하겠습니다.
 
책임해결’. 그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청와대 정무수석이 책임지고 해결해준다는 말을 내게 하고 있었다. 나는 필요한 것들에 대해 요점만 간단히 정리해 전했다. 환자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 국내 이송이 불가피하다는 것, 의료 장비가 갖춰진 에어 앰뷸런스 동원이 시급하나 관계 기관 결정이 늦어져 내가 자의적으로 서명했다는 것 등이었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그는 환자에게 희망이 있는지를 물었다. 환자를 무리하게 국내로 이송해오다 사망할 경우 발생할 문제에 대해서도 걱정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답을 망설이지 않았다. 오만에 온 이래 계속 생각하던 말이었다.
 
그나마 지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어 조금만 더 늦으면 정말 돌아가지 못합니다.
 
정무수석은 내게 모든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테니 걱정 말고 환자만 살려서 오라고 했다. ‘상황 통제.’ 그는 다섯 개 정부 부처가 얽혀 있고 두 개 민간기관이 각기 다른 소리를 내고 있는 이 아수라장을 통제하겠다고 했다. 나는 도대체 이 상황이 어떻게 정리될지 알 수 없었으나, 연막탄 속 같던 조금 전보다는 시야가 확보되는 듯했다

 

 

 

 

 

 

 

 


 

 

 

 

 

골든아워 1

이국종 저
흐름출판 | 2018년 10월

 

골든아워 2

이국종 저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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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골든아워 #04 여린 밤송이 같던 아이의 머리카락 감촉은 잊히지 않았다 | 살아가는 힘이 되는 책 2018-10-1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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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워』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 막장

 


 

 

남자는 건설 현장에서 철야 작업을 하다 8층 높이에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119구급대는 현장에서 제일 가까운 병원으로 남자를 데려갔으나, 그곳에는 중증외상 환자를 수술할 수 있는 장비나 의료진이 없었다. 환자는 다른 병원을 돌고 돌아 검사 결과를 기록한 CD와 함께 초주검이 되어서 내게 왔다. ‘골든아워를 훌쩍 넘긴 뒤였다. 1초라도 지체할 수 없었다. 추가 검사 없이 기관삽관만 해서 그대로 수술방으로 올렸다.

 

 

 

환자의 배 속은 부서진 유리창 같았다. 후복막강 전체가 부어올랐고 췌장까지 조각조각 파열되었다. 복벽을 열자마자 산처럼 부푼 혈종이 절개창 밖으로까지 치솟았다. 핏물 속에서 간신히 하나를 막으면 또 하나가 터져나왔다. 더는 잡을 수 없고 더 열어서 파고들 수도 없었다. 나는 갱도 끝에서 환자의 손을 잡고 위로 올라가려 했으나 그의 손이 자꾸 미끄러졌다. 피가 솟아올라와 버려지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어쩔 수 없이 거즈로 압박만 해서 환자를 중환자실로 보내기로 했다. 전담간호사들이 환자를 이송용 카트에 옮겨 수술방을 빠져나갔다.
 
환자는 40대 후반의 남자였다. 지옥에서 밤새 헤매다가 나온 것 같은 수술로 온몸에 피로가 쏟아졌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보호자를 찾았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어린아이 둘뿐이었다. 나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엄마는 어디 계시니?
 
아이의 눈빛은 근심도 두려움도, 낯선 이를 경계하는 어떠한 적의도 없었다.
 
엄마 없어요.
 
아이의 말이 너무도 덤덤해 나는 말문이 막혔다. 아이가 툭 뱉은 말이 묵직하게 명치를 쳤다. 옆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여자아이는 누나라고 했다. 너무 작고 마른 체구라 초등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네가 누나구나. 넌 몇 학년이니?
중학교 2학년이요.
 
여자아이는 내 시선을 피하며 작게 말했다. 제 아비의 상태를 짐작해서인지 내가 낯설어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여자아이가 누나이니 환자의 상태를 전하기에는 그나마 나을 것이다.
 
아빠가 좀 많이 아프시단다.
 
여자아이가 가만히 몸을 돌려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아버지의 상태를 설명하는 내 말에도 천진한 표정이었다. 나는 남자아이의 머리에 한 손을 올려 천천히 쓰다듬었다. 아이의 가늘고 짧은 머리카락이 엷게 손바닥을 스쳤다. 이제 막 솟은 여린 보리 순 같았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 갑판수병일 때, 짧게 깎은 머리를 쓸어 넘기던 순간의 그 생경한 감촉이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나는 아이가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녹록지 않았던 내 청년 시절과 그보다 더 속으로 울던 어린 시절의 나를 그 아이에게서 보았는지도 모른다.
 
어머, 제가 잠시 매점에 다녀와서요.
 
한 중년 여성이 서둘러 달려와 아이들 옆에 섰다. 아이들의 고모라고 했다. 나는 이 상황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어른이 있다는 게 다행스러웠다. 나는 여자에게 천천히 환자의 상태를 설명했다. 사고 이후 시간이 많이 경과돼 매우 나쁜 상태로 전원됐다는 것, 오자마자 수술을 시도했으나 현재 상태가 매우 나쁘다는 사실을 전했다.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목소리가 자꾸 작아졌다. 연신 죄송하다고 말했다.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면서도 아이들이 신경 쓰였다.
 
아이들은 누가 봐줄 사람이 있나요?
글쎄요. 애들 엄마는 아이들 어릴 때 집을 나가 연락이 전혀 없는 걸로 알아요.
 
여자의 말은 어딘지 모르게 건조했다. 아이들을 책임질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다른 친척이 있기는 할까 생각했다

 

 

 

환자는 결국 아침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날은 지나치게 밝고 눈부셨다. 늘 죽음과 마주하면서도 난 그 개별적인 죽음들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환자의 시신을 수습하고 서둘러 사회사업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진심으로 도움을 부탁했다. 환자에게 일어나지 않은 기적이 아이들에게라도 일어나길 바랐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병원의 사회사업 팀 업무는 외래 통원 치료라도 받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이 환자는 바로 사망했으므로 아이들과 병원 간에는 공식적인 연결고리가 없었다. 이 상태로는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가 모든 환자의 주변 문제까지 해결할 수는 없다. 원칙적으로 환자 개인의 문제에 대해 의사들은 선을 넘지 말라고도 배웠다. 그러나 이 아이들만큼은 지나쳐지지 않았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허 위원에게 부탁했다. 허 위원은 환자의 인적사항을 물어왔다. 나는 허 위원에게 공을 넘긴 뒤로 한동안 아이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몇 달 후 허 위원이 들고 온 아이들의 소식은 기막혔다.

 

 

 

 

그 기막힌 정보에 의하면, 병원에서 만난 중년 여자는 아이들의 친고모가 아니었고 앞집 이웃이었다. 중년 여자는 한 달에 20일 이상 집을 비우고 공사 현장을 떠도는 남자를 대신해 아이들을 돌봐줬을 뿐이다. 환자가 죽고 며칠이 지나 아이들 엄마라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고, 여자는 자신이 친모임을 증명하는 완벽한 서류를 디밀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어 애들은 엄마를 따라 천안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엄마라는 여자에게는 새 남자가 있었다. 여자는 두 아이를 데리고 두 달을 살다가, 아이들 앞으로 나온 망자의 생명보험금을 수령한 뒤 아이들을 할머니에게로 보내고 다시 사라져버렸다.
 
나는 그날 이후 지금까지도 그 아이들 꿈을 종종 꾼다. 꿈속에서 아이들은 여전히 작고 여리다. 쏟아지는 빛을 등지고 수줍게 웃고, 커다란 말간 눈으로 나를 본다.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알 방법이 없고 알 의무도 없는 일이다. 대부분의 의료 외적인 문제들에 있어서 나는 한없이 무력하기만 했다. 그런데도 여린 밤송이 같던 아이의 머리카락 감촉은 잊히지 않았다. 아이들의 안부가 궁금할 때면 허공에 손을 들어 쓸어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허공은 마치 내 인생처럼 서럽고 소슬해졌다.

 

 

 

 


 

 

 

 

골든아워 1

이국종 저
흐름출판 | 2018년 10월

 

골든아워 2

이국종 저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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