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살아가는 힘이되는 책
http://blog.yes24.com/nextwave7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nextwave7
흐름출판 공식 블로그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살아가는 힘이 되는 책
흐름출판 이벤트
태그
중증외상센터 라틴어수업 템푸스 베아티투도 한동일 라틴어명언 아덴만 이또한지나가리라 외과의사 석해균
2021 / 0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월별보기
나의 친구
최근 댓글
wkf qhrh rkqslek 
감사합니다. 이 교수.. 
'때려부은 혈액'이 보.. 
아자아자입니다, 담당.. 
골든아워2 인가요. .. 
새로운 글
오늘 10 | 전체 13728
2010-12-08 개설

전체보기
[연재] 골든아워 #04 여린 밤송이 같던 아이의 머리카락 감촉은 잊히지 않았다 | 살아가는 힘이 되는 책 2018-10-17 16:17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0767368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골든아워』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 막장

 


 

 

남자는 건설 현장에서 철야 작업을 하다 8층 높이에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119구급대는 현장에서 제일 가까운 병원으로 남자를 데려갔으나, 그곳에는 중증외상 환자를 수술할 수 있는 장비나 의료진이 없었다. 환자는 다른 병원을 돌고 돌아 검사 결과를 기록한 CD와 함께 초주검이 되어서 내게 왔다. ‘골든아워를 훌쩍 넘긴 뒤였다. 1초라도 지체할 수 없었다. 추가 검사 없이 기관삽관만 해서 그대로 수술방으로 올렸다.

 

 

 

환자의 배 속은 부서진 유리창 같았다. 후복막강 전체가 부어올랐고 췌장까지 조각조각 파열되었다. 복벽을 열자마자 산처럼 부푼 혈종이 절개창 밖으로까지 치솟았다. 핏물 속에서 간신히 하나를 막으면 또 하나가 터져나왔다. 더는 잡을 수 없고 더 열어서 파고들 수도 없었다. 나는 갱도 끝에서 환자의 손을 잡고 위로 올라가려 했으나 그의 손이 자꾸 미끄러졌다. 피가 솟아올라와 버려지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어쩔 수 없이 거즈로 압박만 해서 환자를 중환자실로 보내기로 했다. 전담간호사들이 환자를 이송용 카트에 옮겨 수술방을 빠져나갔다.
 
환자는 40대 후반의 남자였다. 지옥에서 밤새 헤매다가 나온 것 같은 수술로 온몸에 피로가 쏟아졌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보호자를 찾았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어린아이 둘뿐이었다. 나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엄마는 어디 계시니?
 
아이의 눈빛은 근심도 두려움도, 낯선 이를 경계하는 어떠한 적의도 없었다.
 
엄마 없어요.
 
아이의 말이 너무도 덤덤해 나는 말문이 막혔다. 아이가 툭 뱉은 말이 묵직하게 명치를 쳤다. 옆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여자아이는 누나라고 했다. 너무 작고 마른 체구라 초등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네가 누나구나. 넌 몇 학년이니?
중학교 2학년이요.
 
여자아이는 내 시선을 피하며 작게 말했다. 제 아비의 상태를 짐작해서인지 내가 낯설어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여자아이가 누나이니 환자의 상태를 전하기에는 그나마 나을 것이다.
 
아빠가 좀 많이 아프시단다.
 
여자아이가 가만히 몸을 돌려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아버지의 상태를 설명하는 내 말에도 천진한 표정이었다. 나는 남자아이의 머리에 한 손을 올려 천천히 쓰다듬었다. 아이의 가늘고 짧은 머리카락이 엷게 손바닥을 스쳤다. 이제 막 솟은 여린 보리 순 같았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 갑판수병일 때, 짧게 깎은 머리를 쓸어 넘기던 순간의 그 생경한 감촉이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나는 아이가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녹록지 않았던 내 청년 시절과 그보다 더 속으로 울던 어린 시절의 나를 그 아이에게서 보았는지도 모른다.
 
어머, 제가 잠시 매점에 다녀와서요.
 
한 중년 여성이 서둘러 달려와 아이들 옆에 섰다. 아이들의 고모라고 했다. 나는 이 상황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어른이 있다는 게 다행스러웠다. 나는 여자에게 천천히 환자의 상태를 설명했다. 사고 이후 시간이 많이 경과돼 매우 나쁜 상태로 전원됐다는 것, 오자마자 수술을 시도했으나 현재 상태가 매우 나쁘다는 사실을 전했다.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목소리가 자꾸 작아졌다. 연신 죄송하다고 말했다.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면서도 아이들이 신경 쓰였다.
 
아이들은 누가 봐줄 사람이 있나요?
글쎄요. 애들 엄마는 아이들 어릴 때 집을 나가 연락이 전혀 없는 걸로 알아요.
 
여자의 말은 어딘지 모르게 건조했다. 아이들을 책임질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다른 친척이 있기는 할까 생각했다

 

 

 

환자는 결국 아침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날은 지나치게 밝고 눈부셨다. 늘 죽음과 마주하면서도 난 그 개별적인 죽음들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환자의 시신을 수습하고 서둘러 사회사업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진심으로 도움을 부탁했다. 환자에게 일어나지 않은 기적이 아이들에게라도 일어나길 바랐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병원의 사회사업 팀 업무는 외래 통원 치료라도 받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이 환자는 바로 사망했으므로 아이들과 병원 간에는 공식적인 연결고리가 없었다. 이 상태로는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가 모든 환자의 주변 문제까지 해결할 수는 없다. 원칙적으로 환자 개인의 문제에 대해 의사들은 선을 넘지 말라고도 배웠다. 그러나 이 아이들만큼은 지나쳐지지 않았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허 위원에게 부탁했다. 허 위원은 환자의 인적사항을 물어왔다. 나는 허 위원에게 공을 넘긴 뒤로 한동안 아이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몇 달 후 허 위원이 들고 온 아이들의 소식은 기막혔다.

 

 

 

 

그 기막힌 정보에 의하면, 병원에서 만난 중년 여자는 아이들의 친고모가 아니었고 앞집 이웃이었다. 중년 여자는 한 달에 20일 이상 집을 비우고 공사 현장을 떠도는 남자를 대신해 아이들을 돌봐줬을 뿐이다. 환자가 죽고 며칠이 지나 아이들 엄마라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고, 여자는 자신이 친모임을 증명하는 완벽한 서류를 디밀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어 애들은 엄마를 따라 천안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엄마라는 여자에게는 새 남자가 있었다. 여자는 두 아이를 데리고 두 달을 살다가, 아이들 앞으로 나온 망자의 생명보험금을 수령한 뒤 아이들을 할머니에게로 보내고 다시 사라져버렸다.
 
나는 그날 이후 지금까지도 그 아이들 꿈을 종종 꾼다. 꿈속에서 아이들은 여전히 작고 여리다. 쏟아지는 빛을 등지고 수줍게 웃고, 커다란 말간 눈으로 나를 본다.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알 방법이 없고 알 의무도 없는 일이다. 대부분의 의료 외적인 문제들에 있어서 나는 한없이 무력하기만 했다. 그런데도 여린 밤송이 같던 아이의 머리카락 감촉은 잊히지 않았다. 아이들의 안부가 궁금할 때면 허공에 손을 들어 쓸어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허공은 마치 내 인생처럼 서럽고 소슬해졌다.

 

 

 

 


 

 

 

 

골든아워 1

이국종 저
흐름출판 | 2018년 10월

 

골든아워 2

이국종 저
흐름출판 | 2018년 10월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5)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8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이벤트 세상